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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6회] 유연희_퀴어비평 : 성서를 되찾기 [카테고리]
  • 제3시대
    조회 수: 8912, 2008.02.26 02:18:26
  •                                         퀴어비평: 성서를 되찾기


                                                                                         유연희(감신대 구약학 강사)

    서론

      이 글의 우선적인 목적은 성서 연구분야에서 가장 새로운 해석 방법론 중 하나인 퀴어비평을 소개하는 것이다. 먼저 성서 퀴어비평이 무엇인가, 퀴어비평의 주체가 누구인가, 페미니즘 성서비평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를 다룰 것이다. 그런 후 다양한 퀴어비평의 해석을 소개함으로써 퀴어비평이 실제로 성서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것은 동성애 시각 또는 퀴어 시각으로 성서를 해석한다는 것은 성서를 되찾아가는 과정이요, 퀴어를 공격하던 무기였던 성서가 퀴어를 위로하고 지지하는 성서로 변신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는 퀴어로서는 회피해야할 성경이 퀴어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뀌게 된 과정이기도 하다.
      이 글의 부차적인 목적은 독자가 자신의 사회적 상황(social location)에서 성서와 만날 때 특히 문화적 규범이라고 규정하던 것과 직면하도록 초대하는 일이다. 그것은 곧 성서 퀴어비평이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성서 해석자로서 자신이 어떤 성서 해석을 원하는지, 어떤 목적(agenda)으로 그 해석을 원하는지 밝혀야 한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퀴어비평과 만나면서 독자는 자신의 규범과 틀을 더 잘 들여다보게 될 것이고, 창조적 혼돈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I. 성서 퀴어비평이란 무엇인가?

    1. 퀴어이론, 성서 퀴어비평, 페미니즘
      신학분야에서의 ‘퀴어신학(queer theology)’이나 성서분야에서 ‘퀴어비평(queer criticism)' 은  ‘퀴어이론(queer theory)’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성서 퀴어비평을 말하기 전에 퀴어이론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퀴어이론(queer theory)이라는 말은 1990년대 초에 등장하였다. 이 말은 전통적인 게이 레즈비언 연구에서 발달된 최근의 이론 모델을 가리킨다. 퀴어이론은 1990년대에 대학가를 중심으로 견고한 학문체계로 발달하게 되었고 영화비평, 문학이론, 문화이론 등 제 분야에서 점차 증가하고 있다. 신학계에도 주요 출판사들이 퀴어신학(queer theology) 시리즈나 퀴어비평에 대한 단행본을 계속 출판하는 추세이다.  
      퀴어이론을 체계화하여 성과 젠더에 대한 담론의 지형을 바꾼 사람은 주딧 버틀러(Judith Butler)이고, 여러 퀴어이론가 중에서도 현재까지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이다. 아래의 논의는 버틀러의 주장을 요약한 것이다. 퀴어이론은 섹스(sex), 젠더(gender), 섹슈얼리티(sexuality)라는 세 범주를 가지고 이성애를 전제로 하는 모든 논의에서 불일치(incoherences)를 찾아내는 분석 모델이다. 기존의 페미니즘 논의에 의하면, 섹스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이고, 젠더는 후천적으로 사회, 문화적 환경에 의해 학습된 것이고, 섹슈얼리티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이다. 그러나 퀴어이론은 원본(the original)을 주장하는 이런 안정성 모델에 저항한다. 생물학적이고 해부학적인 섹스는 물론 원초적인 욕망인 섹슈얼리티도 제도 담론이 그렇게 명명하고 인식하게끔 지식 체계를 동원한 결과라고 보았다. 곧 근원적 욕망(sexuality)은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억압할 대상을 가정하고 있던 규율권력과 지배담론이 만든 결과물이다. 법이 욕망을 만들었다는 이 말은 욕망 때문에 법이 나왔다는 기존의 시각을 전복시킨다.
      버틀러에게 있어서 젠더는 모방을 통해 원본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패러디’와 행위를 통해서만 의미를 내는 ‘수행성(performance)’과 재의미화의 가능성을 안고 반복되는 규범에의 ‘복종’과 자신 안에 타인을 품고 있는 ‘우울증’ 등의 양식으로 발현된다.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는 결국 사회 문화적 구성물이고 규범이 만든 허구이므로 분명하게 정의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와 같은 용어나 동성애와 이성애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제도담론의 권력 효과일 뿐이다. 정체성이란 다중적이고 불안정한 위치(positions)의 집합체(constellation)일 뿐이다. 이처럼 나와 타인의 경계조차 불분명한 것이라면 남자가 여자를, 이성애가 동성애를 억압하거나 천시할 근거가 없게 된다.
      이런 식으로 퀴어이론은 결국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의 의미를 고정하는 모든 담론적 권력에 저항하는 표어가 된다. 전통적인 페미니즘의 담론은 ‘억압자 남성’과 ‘피억압자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공식에 의존하고 철저히 제도 담론에 몸담고 있어서 오히려 퀴어를 억압한다. 성서 페미니즘 비평도 같은 혐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는 창세기 말씀(1:27)은 이성애 계약의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여차하면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비정상으로 규정하는데 쓰일 소지가 있다. 사실 이 창세기 구절은 성서 전체에서 명백히 여성해방적인 몇 개 안되는 구절 중 하나이다. 이제 퀴어비평의 등장으로 그나마 몇 개 있던 양성평등적 구절조차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양성평등’이라는 말에는 퀴어가 낄 틈이 없고, 억압적이기까지하기 때문이다.
      성서 퀴어비평은 위의 퀴어이론을 배경에 깔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성서해석과 연속성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독자반응비평, 해체비평과 같은 후기 구조주의적 방법을 활용하고 해방신학이나 페미니즘의 해석 방식을 활용한다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아래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퀴어비평적 해석을 맛보는 것이 성서 퀴어비평을 가늠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2. 성서 퀴어비평의 주체는 누구인가?
      “퀴어비평의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퀴어만이 퀴어비평을 할 수 있는가?” 또는 “퀴어비평은 퀴어의 전유물인가?”라고 달리 물을 수도 있다. 먼저 간단히 답하자면 퀴어비평은 독자가 퀴어이든 아니든 누구나 할 수 있다. 현재 퀴어비평을 적용하여 성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퀴어와 비퀴어를 망라한다.
      퀴어비평은 경험에서 출발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신학이 여성으로서의 경험에서 출발하고,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이 억압의 경험에서 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성서를 퀴어비평으로 해석한 퀴어 저자들의 글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종종 생각나게 한다. 퀴어로서의 경험이 없거나 전적으로 소위 이성애 중심주의적 문화권에서만 살아온 독자는 그런 해석의 여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성애 학자들도 퀴어비평에 참여하는데, 이는 성적인 함의와 무관하게 작품의 ‘퀴어적(다른, 이상한)’ 면모를 분석하는 것도 퀴어비평의 한 유형이므로 가능한 듯하다. 또한 정상과 비정상을 규정하는 사회적 규범에 저항하는 대안문화로서의 퀴어비평에 참여하고, 새 방법론을 배우는 정신 등으로 퀴어비평에 참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II. 성서 퀴어비평의 역사

      성서에 대한 퀴어비평은 다른 비평법과 달리 신학교에서 시작되지 않고 1960년대 말부터 퀴어 교회의 강단과 성경공부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성서 퀴어비평의 초기 단계에는 방어적, 변증적인 입장이었다. 근본주의자들이 성경 구절을 가지고 퀴어를 공격했기 때문에 당장 해명과 변증이 시급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인 요즘의 접근에서는 보다 공세적 입장을 취한다. 먼저 수동적 방어 단계는 한글로 출판되거나 번역된 책을 통해 이미 소개가 되었으므로 여기서는 간단하게만 언급하고자 한다. 그런 후 현재 진행되고 있는 능동적 공격 단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하고 독특한 해석들을 소개하는데 지면을 더 할애하고자 한다.
      
    1. 수동적 방어(defensive) 단계

      사람들이 동성애와 성서에 대해 오랫동안 물었던 질문은, “성서는 동성애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였다. 이런 질문이 줄 수 있는 대답은 근본주의적인 해석들이었다. 성서 66권 중 6권에서 동성애를 언급하는 구절은 불과 몇 되지 않는다(창세기 19:1-28; 레위기 18:22; 20:13; 롬 1:26-27; 고전 6:9-10; 딤전 1:9-11). 이들은 퀴어를 ‘사정없이 때리는 구절(clobber passages)’이요, ‘테러본문(texts of terror)’의 역할을 해왔다. 이들 구절에 대한 근본주의적인 해석들은 퀴어에 대한 미움과 폭력을 조장해 왔고, 그만큼 퀴어를 교회와 성서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셔윈 베일리(D. Sherwin Bailey)가 1955년에 성서가 동성애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고 변증한 것이 초기 단계의 시작이었다. 이 단계는 개정주의적 접근(revisionist approach)이라고 볼 수 있다. 페미니즘비평이 성서 본문은 그리 성차별적이지 않은데 해석하고 설교하는 과정에서 남성중심적 문화적 편견을 첨가했다고 지적했듯이, 퀴어 해석가들도 문제의 성서 구절을 재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보고 성서의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배워 재번역과 재해석 작업을 벌였다. 이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여성운동가들이 딸들을 신학교에 보내어 성서 원어를 배우고 전문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했던 것과 비슷하다.
      이 단계에서는 또한 고대 지중해의 세계관에서는 사람들이 성에 대해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는지 재조명하고는 성서는 현대적 동성애 논쟁에 대해 해줄 말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곧 당시 성역할과 성(sexuality)은 철저히 지배와 비지배와 관한 것이었지 성서 저자들은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이라든가 상호적인 에로틱 관계, 평등의 표현으로서의 성 같은 것은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논쟁에 성서를 사용하려는 시도는 결국 해석자의 동성애 혐오증(호모포비아)을 낳는다고 주장하였다.
      윌슨은 성서가 퀴어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자꾸 설명하고 변증(apologetics)하는 일은 지치는 일이라고 하면서, 성서 속의 게이와 레즈비언에 대해 대담하고 당당하게 연구하자고 주창했다. 퀴어비평의 최근 접근은 바로 이러한 태도를 반영한다.

    2. 능동적 공세(offensive) 단계

      이 단계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성서가 퀴어를 공격하는 도구가 아니라 퀴어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으며 성서를 다시 소유하려는 단계이다. 요즘 퀴어비평의 경향은 최근의 단행본 제목, Take Back the Word(말씀을 되차지하기)가 한 마디로 대변하고 있다. “성서가 동성애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라는 질문이 성서 연구에 있어서 퀴어를 대상으로 여겼다면, “퀴어는 성서를 어떻게 읽는가?”와 같은 새로운 질문은 성서의 주인으로서 읽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웨스트는 해방신학이나 여성신학이 성서를 구원이라는 주제로 읽었다면, 퀴어신학은 커밍아웃(coming out)라는 주제로 읽는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윌슨은 반대말을 사용하여 ‘성서를 아우팅(outing)시키기’라고 불렀다.
      이 능동적 공세 단계에서는 해석자의 사회적 정황(Social Location)을 적극적으로 주창한다. 모든 독자는 각자의 인종, 성, 계급, 종교, 사회경제적 위치, 교육정도와 같은 사회적 정황을 가지고 본문을 읽는다. 그 중 한 요소를 두드러지게 가지고서 본문을 읽을 수 있다. 페미니스트는 여성의 경험을, 퀴어는 거기에 성적 지향을, 억압당한 그룹(흑인, 민중 등)은 자신의 억압 경험을 가지고 성서 본문을 읽는다. 여기에 여성과 가난과 인종이 다중으로 결합할 수 있고, 퀴어와 가난과 인종이 결합할 수 있다. 서양의 부유한 백인 여성이 성서를 읽는 것이 가난한 아시아 여성이 읽는 것과 다를 수밖에 없듯이, 퀴어가 성서를 읽을 때 해석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또한 같은 퀴어라도 퀴어에 대한 수용이 열려있는 서구 문화권에서 읽는 것과 한국처럼 아직 덜 수용하는 문화권에서 읽는 것은 다를 것이다. 성서의 의미는 저자의 원래 의도에서도 찾을 수 있고, 현재 성서를 읽는 독자에게서 나올 수도 있다. 누가 본문을 읽느냐는 누가 본문을 썼느냐 못지않게 중요하게 되었다. 이런 면에서 퀴어비평은 독자반응비평이나 이데올로기비평 등을 적극 수용한다. 아래의 소개에서와 같이 성서에서 동성애 관계나 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표현한 것을 찾는 것도 이 단계의 특성에 속한다.  

    가. 어긋난 이성애 논리 찾기

      퀴어비평적 논문 모음집인 Queer Commentary and the Hebrew Bible의 편집자이자 구약성서에 퀴어비평을 적용하여 여러 편의 논문과 단행본을 저술한 켄 스톤(Ken Stone)은 호세아서를 남성성 이미지라는 주제로 꿰뚫는다. 호세아가 하나님을 묘사할 때 사용한 것은 당시에 일반적인 남성성 이미지였다. 당시 남성성(masculinity)의 정의란 여성을 울타리 안에 보호하고 식량을 제공하며 동시에 여성의 성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호세아는 바알이 아니라 야훼가 바로 그렇게 여성 이스라엘에게 식량과 안전을 제공하는 남성이라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은 야훼의 땅이요, 야훼의 아내이다. 야훼는 비와 연관된 분(호 6:3; 10:12)이고, 이스라엘이라는 밭에 생명을 주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생명을 낳는 분이다. 호세아는 자신과 아내 고멜과의 관계를 야훼와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빗대었다. 그런데 호세아는 야훼를 묘사할 때 남성성에 대한 깊은 불안의식을 드러낸다. 고멜이 난잡하다고 비난함으로써 하나님만을 예배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나무라려고 했지만 이 비유는 남자의 불안을 보여준다. 고멜이 낳은 둘째, 셋째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가 불확실하다는 것 역시 보호와 경계로서의 담장, 곧 남자가 부실하다는 뜻이다. 호세아의 분노는 남성성을 증명하지 못한 유약함과 불안정에서 나온다. 남자답지 못하다고 밝혀진데서 오는 상징적인 거세에 대한 두려움을 보이는 것이다. 호세아는 야훼가 식량을 주시는 분이라고 강조하면서, 한편 아내를 의심하며 처벌하는 이로 묘사함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야훼를 자신감이 없는 불안한 남성으로 그려낸다. 결국 호세아가 사용한 식량과 성의 수사학은 호세아의 하나님이 상징적인 거세의 가능성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런데 불안은 성서에서 하나님을 묘사하는 기법이 아니므로 독자가 불안하게 되므로 역설적이다.
      이와 같은 켄 스톤의 퀴어 독법은 호세아의 이성애에 기초한 논리를 해체한다. 이 해석은 앞에서 소개한 버틀러의 지적처럼 페미니즘의 이성애 중심주의적 측면을 도전하고 초월한다. 동시에 그간 페미니즘비평이, 호세아서의 수사학이 이스라엘의 불성실한 종교생활에 가부장적 논리로 고멜에 빗댄 것을 비판해왔기 때문에 스톤의 퀴어 독법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퀴어비평은 페미니즘비평과 함께 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나. 퀴어 에로티시즘 찾기

      테드 제닝스(Ted Jennings)는 사무엘서에 등장하는 야훼, 사울, 다윗, 요나단 등 남성 인물 사이에서 동성애(homoeroticism) 주제를 본다. 이 전쟁 이야기(saga)는 남성을 위해 씌어졌고, 여성 인물은 보조적으로만 등장한다. 엘리트 무사들 문화의 특징 중 하나는 성인 무사의 주요 동료가 연하의 무사라는 점이다. 교차문화적으로 살펴보자면, 일본 도쿠가와의 사무라이들에게 동고동락하는 소년 무사들(companions)이 있었다. 소년들은 잘생겼고 용감하였고 충성을 다했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에는 동성애가 있었다.
      성서의 무사들도 외모와 무관하지 않다. 사울(삼상 9:1-2)이나 다윗(삼상 16:12)은 잘생겼다고 묘사되었다. 성서의 무사들에게는 무기병(armor bearer)이 있었고, 이들은 보통 더 어리고, 신분이 더 낮았다. 무기병은 무기를 나르는 역할만이 아니라 사무라이의 미소년처럼 전투를 같이 하는 동반자였다. 다윗은 잠시 사울의 무기병 역할을 했었다(삼상 16:21-22 참조). 요나단에게도 소년 무기병이 있었다(삼상 14:1 참조). 다윗만이 무기병이 있었다는 말이 없는데 제닝스는 다윗과 야훼와의 각별한 관계 때문이라고 본다. 다윗은 자신을 해치려는 사울을 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이유는 과거에 사울의 무기병으로 일한 적이 있어서 충성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울과 다윗은 무사와 무기병 사이였고, 그런 후 다윗과 요나단이 절친한 친구가 된다. 제닝스는 이들의 관계에 성적인 활동이 있었을 것인지 묻고는, 대답은 독자의 경험에 달려있다고 한다. 경험이 있거나 그런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은 가능하다고 볼 것이고, 그렇지 않은 독자들은 그런 일은 생각할 수도 없고, 그런 생각만으로도 화를 낼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제닝스는 야훼를 다윗이나 사울 같은 등장인물로 본다. 야훼는 탁월한 전장(warrior chieftain)으로서 무사(warrior)의 코드에 따라 행동한다. 야훼는 거칠고, 맹종과 충성을 요구하고, 변덕스럽고, 속이 좁고, 동시에 유능한 전략가로 묘사된다. 야훼는 무기병으로서 사울과 다윗을 선택할 때 용맹과 담대함도 고려했지만 맨 먼저 외모를 고려했다.
      야훼와 다윗과의 ‘특별한’ 관계는 법궤를 둘러싼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삼하 6장). 법궤 사건은 야훼와 다윗의 밀고 당기는 연인관계를 보여준다. 법궤는 야훼의 임재를 나타냈는데,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려고 하다가 일이 생겨서 석달간 다른 곳에 두었다. 그 일이란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소들이 뛰는 바람에 궤가 떨어지려고 하자 웃사가 붙든 것을 가지고 야훼가 진노하여 웃사를 죽인 사건이다. 다윗은 그 일로 야훼께 화가 나서 궤를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에 두었다. 석달 후 법궤가 머물던 곳이 복을 받았다는 것은 다윗에게 야훼가 남성호르몬성 짜증을 가라앉히고 교훈을 얻었다는 표시였기에 예루살렘으로 궤를 가져오게 된다. 다윗은 기뻐하며 법궤 앞에서 벌거벗고 춤을 추었다. “오늘 이스라엘의 임금님이 건달패들이 맨살을 드러내고 춤을 추듯이 신하들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몸을 드러내며 춤을 추셨으니 임금님의 체통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삼하 6:20)라는 미갈의 말이 이를 강조한다. 다윗의 이 행동은 옛 연정을 불사르려는 것이 아니라 야훼의 착한 행동에 상을 주는 것이다.
      이제 야훼는 부드러워졌고 삼무엘하 7장이 말하듯 야훼 한쪽이 영원히 다윗에게 신실할 것을 서약하는 일종의 결혼(union)을 한다. 다윗은 연인을 위해 집을 지어주려고 하고, 집 안에 길들이려고 한다. 그러나 야훼는 예언자 나단을 통해 야훼가 다윗에게 집을 지어주는 것으로 수정하고, 관계에서 주도권을 갖는다. 야훼의 말은 엄격하면서도 다정하여 다윗을 아브라함과 모세에게만 부른 말인 ‘나의 종'이라고 부른다. 이 결합에서 다윗은 이스라엘을 대표한다. 초기에 통제불가능한 남성적 공격성을 보인 야훼가 헌신적인 남편이 된 것이다. 이같은 야훼와 다윗의 관계는 예언서에 이르러서는 야훼와 아내 이스라엘의 관계가 되어 다윗은 여성, 곧 트랜스젠더가 된다. 이스라엘은 결혼에 불성실하여 야훼를 배반하나 야훼는 다윗을 기억하며 이스라엘을 끝내 내치지 않는다.
      제닝스가 교차문화적 접근으로 사무라이와 미소년 동반자들의 동성애 관계를 초기 이스라엘 왕국의 남성 영웅들의 관계에 적용한 것은 다분히 퀴어적이다. 후기 구조주의적 성서 읽기에서 새롭고 도전적인 해석들이 많이 나왔지만 제닝스의 퀴어독법은 상상력과 표현 등 여러 면에서 틀을 확실히 깨고 있다. 점잖은 학술 논문에 등장하지 않을만한 난감한 표현도 제법 나온다. 소위 틀을 깬다는 것은 독자가 사회적 상황(social location)에서 성서를 읽을 때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이는 제닝스의 글을 담고 있는 단행본의 의도이기도 하다. 제닝스는 경험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퀴어비평 실천 여부나 수용 여부는 결국 독자의 몫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다. 이성애 에로티시즘으로만 읽지 않기

      제닝스가 본문에서 퀴어 에로티시즘을 찾았다면, 스톤은 한 본문을 이성애 에로티시즘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창세기 1-3장 이야기는 오랫동안 남자와 여자 창조 및 결혼과 출산의 유래를 설명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퀴어가 커밍아웃을 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이 이야기는 퀴어를 공격하고 이성애 결혼을 못박아 강조하는 본문으로 사용되었다. 창세기의 이 본문이 동성애를 다루어서가 아니라 종교계에서 동성애 이슈가 큰 관심사인데 비해 성서가 동성애를 별로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퀴어를 반대하는 입장에 의하면,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지어졌기에 서로를 그리워하고, 남자와 여자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담과 이브 이야기의 주제인 인간의 도덕성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만드셨지, 아담과 스티브를 만드셨냐”고 꼬집는다.  
      스톤은 아담과 이브이야기가 성적인 문제로 해석되어온 것이 사실이나, 성(sex)만이 아니라 음식(food)에 관한 이야기로 읽은 학자들을 찾아낸다. 카에사리아의 바실(Basil of Caesarea)은 식탐 때문에 아담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고 악이 세상에 오게 되었다고 해석한 바 있다.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더러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금하셨지만(창 2:17) 명을 어기고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실에게 있어서 인간이 ‘타락(fall)’한 것은 순전히 음식 금지규정을 어겼기 때문이다. 노아, 함, 에서, 롯과 같은 인물이나 광야의 이스라엘도 먹고 마시는 것 때문에 죄를 지었다.
      금식에 대해 저술한 교부들은 음식과 성에 대한 그리스 로마 사상에 영향을 받았고, 먹고 마시는 것의 양에 따라 성욕이 늘거나 준다고 보았다. 식탐이 성 문란에 이르게 하듯이, 금식은 금욕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터툴리안은 금식에 관해 저술하면서 아담과 이브는 채식주의자였다고 본다. 하나님이 모든 나무의 열매는 먹어도 좋다고 말씀하셨지(창 2:16) 고기는 언급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성기가 위장 가까이에 있는 이유는 정욕과 식탐이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Clement of Alexandria)는 생산과 성교에 대해 논하는 도중 갑작스레 ‘우리는 위장의 즐거움을 통제해야 하고 위장 아래의 생식기를 절대적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썼다. 이들 교부들은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이야기를 성의 관점으로만 보지 않고 음식 및 식탐의 관점에서도 해석하였다.
      또 다른 교부들의 해석은 아담과 이브이야기를 이성애 결혼을 규정한 본문으로 보기 어렵게 한다. 제롬(Jerome)과 크리소스톰(Chrysostom)은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 있을 때는 숫총각, 숫처녀였는데, 동산에서 쫒겨난 후부터 성관계를 가졌다고 보았다. 크리소스톰(Chrysostom)은 한 발 더 나아가 결혼은 불복종과 저주와 죽음 때문에 생겼다고 했다.
      성서 이야기를 해석 공동체의 필요와 개인의 사회적 위치(social location)에서 해석한다고 볼 때, 교부들은 해석공동체에게 음식과 성의 연결고리에 대해서 윤리적, 신학적 규정을 제공할 필요를 느꼈기에 아담과 이브이야기를 그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마찬가지로 스톤은 지적하기를, 현대의 일부 독자가 아담과 이브이야기를 이성애를 규범으로 정하는 본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의 개인적인 해석일 뿐이라고 한다.  

    라. 퀴어의 아픔을 호소해주는 성서

      모나 웨스트(Mona West)가 예레미야 애가를 읽은 방식은 퀴어비평이 어떻게 성서를 ‘되찾는지,’ 어떻게 성서의 주인으로서 읽는지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웨스트는 애가를 에이즈로 인해 고통받는 게이 공동체를 위한 책으로 이해한다. 애가는 예루살렘의 함락과 그에 따른 처참한 경험을 묘사하는 역사 문서이지만, 이 책은 모든 시대에 걸쳐 어떤 이유로든 극심한 고통을 겪은 이들이 자신의 고통을 호소할 수 있는 성서적 공간 역할을 하였다. 마찬가지로 애가는 에이즈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애도할 수 있는 성서 공간인 것이다. 웨스트는 애가를 트라우마(trauma) 문학이라고 부르면서 보통 트라우마에서 회복되는 3단계와 연결한다. 이들 단계란 안전(establishment), 기억과 애도, 일상생활과 재연결하기 등이다. 웨스트는 애가가 에이즈로 엄청난 상실을 겪은 개인과 가족과 지역사회가 이 3단계를 겪고, 표현하고 제 자리를 찾아가는 상태를 말해줄 수 있다고 여긴다.  
      애가에는 고통의 근원인 하나님이 고통을 내리셨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탓하는 저항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 신명기 역사가에 의하면 사람이 고난을 받는 것은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애가는 이 신학에 저항한다. 애가에서는 신명기신학이 ‘파산한 신학체계’일 뿐이다. 애가에는 또한 기억하고 애도하는 목소리가 들어 있다. 예를 들어 1장 8-9절은 에이즈로 인한 몸의 수치를 대변한다고 읽을 수 있다. “예루살렘이 그렇게 죄를 짓더니 마침내 조롱거리가 되었구나. 그를 떠받들던 자가 모두 그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서 그를 업신여기니, 이제 한숨지으며 얼굴을 들지 못한다. 그의 더러움이 치마 속에 있으나, 자기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비참해져도 아무도 위로하는 이가 없다”(표준새번역 개정판). 웨스트는 에이즈로 인한 집단적인 죽음과 같은 극단적인 사건을 경험하고 아파하면서도 용기있게 직면할 때 새로운 신학 체계를 낼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신명기의 인과응보식 단순 신학이 아닌 복잡한 인생의 고난 경험을 통합할 수 있는 신학을 역설한다.
      이와 같이 애가를 통해 게이 공동체의 아픔을 표현하고 위로를 찾는 성서 읽기는 ‘아무도 성서를 소유하지 않는다’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이는 곧 누구나 성서를 소유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마. 성서에서 퀴어 찾기

      론 스탠리(Ron L. Stanley)는 느헤미야를 환관이라고 본다. 에스라, 느헤미야서에는 느헤미야가 환관이라고 나오지 않지만 여러 문맥을 고려할 때 그가 환관이라는 것이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Artaxerxes) 1세의 술 따르는 일을 맡았다. 고전 자료에 의하면 궁정 시음관(cupbearers)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왕의 독살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술과 음식을 맛보는 것이었다. 스탠리는 외경 토빗(토빗 1:22)에 언급된 토빗의 조카 아히칼이 환관이었는데, 그가 산헤립왕 때에 수라상을 주관하고, 옥새를 보관하고, 모든 행정과 재정을 맡아보았다는데 주목한다. 이처럼 시음관은 단순히 음식을 시중드는 사람이 아니라 왕 가까이서 신뢰와 특권을 누리며 왕을 보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가까운 관계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대해 왕과 대화한 것이나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맡은 것에서도 드러난다. 고대 자료들에 의하면 대부분의 시음관이 환관(eunuch)이었다고 한다. 페르시아의 첫 왕 고레스(Cyrus)는 환관을 궁정에 고용하기 시작했다. 결혼한 남자는 왕에게 온전히 충성하지 못할 거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고레스는 개인적인 시종을 모두 환관으로 했다. 이 관습이 고레스 시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는 것은 아닥사스다 2세 때 궁정 의사였던 스테시아(Ctesias)가 기록한다.
      스탠리는 퀴어비평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성서 구절을 조명한다. 느헤미야보다 약 300년 전에 살았던 이사야가 예언하면서 환관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비록 고자라 하더라도 나의 안식일을 지키고,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하고, 나의 언약을 철저히 지키면, 그들의 이름이 나의 성전과 나의 성벽 안에서 영원히 기록되도록 하겠다. 아들딸을 두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더 낫게 하여 주겠다. 그들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도록, 영원한 명성을 그들에게 주겠다”(56:4-5, 표준새번역 개정판). 이사야의 이 예언은 환관의 몸에 대한 오명이나 후손이 없는 것에 대한 오명을 제거했다.
      느헤미야는 에스라에 비해서 필요한 리더십을 고루 갖추었다. 사람들의 반대를 겪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며 예루살렘 성벽을 수리하는 과제를 완수했다. 페르시아에서 환관으로 훈련받았기에 예루살렘에서 리더십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었다. 환관이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문제로 부각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은 이사야가 예언한 바를 느헤미야에게 적용했을지도 모른다. 느헤미야는 예배를 인도하기도 했는데, 포로기 전이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느헤미야는 중요한 문제를 이끈 강하고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였고 그래서 그의 성적인 상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스탠리처럼 마이클 피아자 (Michael S. Piazza) 역시 느헤미야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편안하게 살 수 있었지만 기꺼이 어려운 일을 맡아 섬김의 지도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스탠리가 성서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한 환관을 찾았다면 빅토리아 컬러코스키(Victoria S. Kolakowski)는 부정적인 역할을 한 환관 이야기를 가지고 기존의 퀴어비평적 해석에 도전한다. 그녀는 예후의 명령에 따라 이세벨 왕비를 창에서 던져 죽게 한 환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왕하 9:30-37). 컬러코스키는 이 본문을 가지고 두 명의 퀴어이론가, 윌슨과 제니스 레이몬드(Janice Raymond)를 비판한다. 성서에서 환관(eunuch)과 불임여성이 동성애자와 양성애자의 선조라고 생각하는 윌슨은 성서의 환관이 두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하나는 하늘과 땅을 매개하는 마술사와 무당이요, 다른 하나는 왕궁의 이중 스파이이다. 이세벨을 창에서 아래로 밀어뜨린 두, 세 명의 환관이 바로 하나님과 엘리야 예언자를 위해 일한 이중스파이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레이몬드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트랜스젠더를 한 사람들을 비평하면서, 과거의 남자가 거세하여 여성의 몸과 영혼을 갖고 페미니스트가 되었다고 해서 남자가 아니라고는(un-men)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가부장제를 지키는 남자들이 여성 운동을 통제하는 한 그렇다고 했다. 컬러코스키는 트랜스젠더이자 페미니스트인 자신이, 그간 충성을 바친 여왕을 창문밖 아래로 던지는 이중스파이 환관과 동일시되는 것도, 가부장제를 지키는 자로 치부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고 한다. 이와 같이 퀴어이론 내부에도 성서 속의 퀴어 조상을 이해하는 관점이 다양하다.

    바. 퀴어비평식 주석

      위 네 가지 예가 한 주제와 퀴어 시각을 가지고 성서를 읽었다면 퀴어비평식 주석은 전통적인 주석서들이 성경구절 한절 한절에 주석을 달듯이 각 성서를 다룬다. 물론 제한된 지면 때문에 문자적으로 한 절씩 다루지는 않으나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주요 구절을 모두 다루며 퀴어 시각으로 전체를 관통한다.
      마이클 카든(Michael Carden)은 창세기 주석에서 인간의 창조 이야기에는 흔히 생각하듯 이성애 중심적으로만 보기 어려운 모호함과 의문의 여지가 많다고 지적하며 아일벅-슈바르츠(Eilberg-Schwartz)의 다음 질문을 타당하게 여긴다. 창 1:26-27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여자와 남자로 지으셨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은 남자인가 여자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창세기는 남성과 여성, 이렇게 두 가지 성만 있는 제도를 규정하는 것인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사람은 어떠한가? 하나님은 또한 사람더러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8)고 명했는데 창세기는 출산하는 섹슈얼리티만을 규정하고 있는가?
      카든은 유대교의 카발라와 랍비 유대교 전통에서 답을 찾는다. 카발라 전통에서 창조는 10개의 세피라(Sephira)로 설명된다. 세피라란 신의 발현을 가리키는 용어로 보석 이름인 사파이어가 여기서 나왔다. 그러니까 창조도 신의 열(10) 세피로트(복수형)의 상호장용으로 이루어진다. 이 열 세피로트를 생명나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를 카발라 전통에서는 하나님의 모습 또는 하나님의 지도(map)라고 말하기도 하고 원래 인간(primal human)의 지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각 세피라는 남성이나 여성, 또는 둘 다의 측면을 가지므로. 나무는 양성적(androgynous)이고 섹슈얼리티를 갖는다. 이런 전통에는 보다 다형적이고 평등한 섹슈얼리티를 위한 여지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카든은 모든 사람이 남자나 여자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인정한 랍비 유대교 전통을 인용한다. 툼툼과 아일로니트라는 용어는 중간의 성을 가리키는데 전자는 성기가 없는 사람을, 후자는 자궁이 없는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탈무드에서도 여타 중간 성의 범주를 언급한다. 이처럼 고대에도 성을 남성과 여성으로만 구분하지 않은 전통이 있었다.
      카든이 창세기 주석에서 언급한 가벼운 소재로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창 6-7장)에서 동물을 암컷과 수컷의 짝을 맞추어 방주에 넣어 구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한 퀴어 기독교인이 이 홍수이야기가 이성애를 표준으로 규정하는 것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고 소개한다. 카든은 스스로 답하기를, 창세기는 홍수 이전과 이후에 생명이 지속되는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홍수 설화는 이성애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처럼 노아가 동물을 암수 쌍에 맞추어 방주에 넣었다는 이야기를 지금껏 무심코 읽던 독자에게는 퀴어 독자의 도전이 새롭게 들린다.  
      카든에게 있어서 이삭의 희생(Akedah) 사건은 퀴어 자녀들이 겪는 일과 흡사하다. 기독교 전통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칭찬한다. 대부분이 이 사건을 아버지의 시각에서 읽지, 자녀의 시각에서 읽지 않는다. 그러나 카든은 이삭이 겪은 일은 많은 퀴어 자녀들이 부모와 가족의 동성애 공포증과 이성애주의 때문에 겪는 경험과 유사하다. 자녀가 동성애자라면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고 말하는 부모가 많다. 퀴어 자녀들이 완전히 보통 사람처럼 적응하고 살든가 아니면 죽기를 바란다. 카든이 보기에 부모들은 자녀가 커밍아웃을 하지 않고 차라리 벽장에 숨어있거나 가짜 게이였다고 거짓으로 밝히거나 교정 치료 프로그램을 받게 하거나 또는 자살하게까지 내몰면서 동성애 혐오증의 제단에 퀴어 자녀를 바친다. 그리고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는 퀴어 자녀들이 이 과정에 온전히 협조하고 자신의 머리를 제단에 기꺼이 드리운다고 믿고 싶어한다. 재가 된 이삭이 새롭게 변화되어 부모와 사회가 원하는 인생이 되는 것으로 상상한다. 그러나 이삭은 죽을뻔한 기억에 평생 시달리는 인물이다. 어머니의 장막에 살고 땅을 떠나지 못한다. 이삭 설화는 짧고 이삭은 그나마 주체적 역할을 별로 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바라는 아들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영적으로나 신체적/물리적으로나 죽은 인생이다. 이처럼 이삭의 인생은 퀴어 자녀들의 인생을 대변한다. 카든은 이삭이 그러한 경험을 배경으로 어머니 사라 및 아내 리브가와 관계를 맺듯이 퀴어 자녀들도 고통스런 경험을 배경으로 가족과 주변과 관계를 맺는다고 둘을 유비하여 전개한다.
      앞에서 정리한 다양한 퀴어 해석은 장르와 방법과 해석 면에서 전형적이지 않은 성서 해석을 보여준다. 또한 똑같이 해방을 지향하는 퀴어비평 안에도 이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

      동성애 성서 해석사는 성서가 퀴어들을 공격하던 무기에서 퀴어들을 위로하고 옹호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동한 과정, 하나님의 말씀을 되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진정한 의미에서 성서 퀴어비평은 퀴어이론을 배경으로한 최근의 해석 단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성서 퀴어비평은 여전히 전통적인 성서 해석 방식과 대화하면서도 퀴어라는 렌즈로 성서를 보므로 전형적인 해석방식의 틀을 넘어서서 창의적이고 사뭇 도발적인 해석을 낳는다. 미국에서 동성애 문제는 교회 내에서 노예제 문제 이후로 가장 논쟁적인 문제이다. 성서 퀴어비평은 이 논쟁에 퀴어와 비퀴어 기독교인을 학문적 대화로 초대한다. 퀴어비평은 페미니즘비평에게서 해석 전략을 배우면서도 동시에 도전한다. 퀴어비평은 사회적 규범의 틀에 저항하는 비퀴어 독자들을 친구와 동지로 초대하면서도 도전한다. 퀴어비평은 성서와 진지한 만남을 갖고자 하는 모든 독자들을 이제까지와는 전적으로 다른 세계로 초대한다. 그 세계는 독자가 준비가 되었든 되지 않았든 자신의 사회적 정황과 정해 놓은 틀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불확실하고 모호하고 불확정한 발걸음을 내딛도록 떠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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