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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발제] 민중신학의 틀과 꼴, 그리고 한계 [카테고리]
  • 이경재
    조회 수: 3650, 2002.03.26 13:02:38
  • 민중신학의 틀과 꼴, 그리고 한계

    이경재(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과 교수)


    자전적 서언

    필자는 한마디로 민중신학자가 아니다. 아니 민중신학자가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필자는 75년에 조국을 떠나서 98년에 귀국하였다. 따라서 민중신학이 발생하고 성립되던 시절인 7, 80년대는 물론이려니와 민중신학이 사양화되던 90년대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고생하며 살았다. 따라서 민중신학에 참여할 기회뿐만 아니라 증언할 기회도 갖지 못했다. 단지 미국을 방문하는 신학도들을 통해서 민중신학의 이슈를 귀동냥할 뿐이었고, 대학생시절에 강의를 들었던 서남동선생의 글을 통해서 그의 탁월한 천재성에 감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필자는 민중신학을 하는 사람들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음을 고백하려고 한다. 그것은 80년대 중반에 일어났던 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민중신학을 실천하다가 수많은 고초를 당했다는 후배 목사를 미국 모 대학의 캠퍼스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반가움에 뛰어가서 손을 덥석 잡고 인사를 나누었다. 후배는 나이가 많이 들어 보였다. 후배는 필자에게 형님은 어떻게 그렇게 젊은 채로 있느냐고 인사를 하였다. 그래서 젊어 보여서 미안하다고 답을 하였다. 그런데 그의 옆에 있던 초면의 동행인이 당장 비아냥거리면서 앞을 나서며 말을 했다. "당신은 우리가 민중과 함께 고난을 당하고 고생을 할 때, 조국을 버리고 미국으로 도망해서 버터 먹으면서 호사스런 생활을 했을 터이니 늙을 기회가 있었겠소." 얼굴이 붉어졌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필자는 원래 젊은 시절부터 나이에 비해 덜 늙어 보이는 체질을 타고났던 것이지, 남 달리 잘 살아서도 아니고, 무슨 약을 먹어서도 아니고, 더욱이 미국에서 호사스런 생활을 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더욱이 어떻게 기회가 되어서 미국에 일직 온 것뿐이지, 조국을 버리고 도망간 일도 없다. 그러나 어떡하랴. 왜 사느냐 묻거들랑 그냥 웃을 수밖에. 그 후로 민중신학자들에 대한 기피증이 생겼다. 그러한 기피증이 오늘도 도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여하튼 비록 민중신학의 이슈에 대하여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민중운동에 참여한 적이 없는 필자가 민중신학자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또한 민중신학의 학문적 논의에 적극 참여한 적도 없기 때문에 민중신학을 논할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필자는 자신의 입장에서 민중신학의 신학사적 위치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말하려고 한다.
    필자는 한마디로 민중신학을 '새로운 사건'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새롭다'는 말은 민중신학이 서구신학의 이식을 통하여 전개되었던 한국신학사를 뒤로하고 한민족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형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이제껏 생각하지도 못했고 시도하지도 못했던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통하여 탈식민적인 토착신학을 성립시켰다는 점에서 '새롭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건'이라는 말은 민중신학이 왜소한 강단신학을 떠나서 역사를 신학적 사유의 현장으로 삼고 역사의 주체를 민중으로 삼아 역사 변혁의 계기를 주도하였다는 의미에서 '사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무엇이 민중신학을 이렇게 새로운 사건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게 하였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민중신학자들은 한국 정치경제사에서 나타난 민중사실의 경험, 민중사건으로 성서를 읽는 새로운 방법, 비(非)제도권 학자들의 신학적 성찰 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너무나도 상세한 지적들이 있기 때문에 필자는 이에 대한 논술은 피하려고 한다.
    단지 필자는 민중신학이 운영되는 틀을 검토함으로 민중신학이 탈식민적이고 토착적인 꼴의 신학을 전개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피고, 또한 민중신학의 가능성과 한계를 지적하려고 한다. 여기서 필자는 신학을 포함한 모든 담론에는 어떠한 틀이 있는 것이요, 그 틀을 밝혀냄으로써 담론전개의 본질을 밝혀낼 수 있다고 믿는 메타신학의 입장에 서있다. 민중신학이 아무리 프락시스를 강조한다하더라도 프락시스를 말하는 신학적 틀을 밝힘으로 민중신학의 신학사적 특성을 밝혀낼 수 있다는 입장인 것이다. 물론 민중신학자들은 틀과 꼴의 이론보다도 프락시스가 더욱 중요한 민중신학의 핵심이라고 할지 몰라도, 그것은 민중신학자가 아닌 필자에게 적합한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단지 민중신학의 구조와 형태에 대한 부분만을 신학적 관점에서 언급하는 것으로 족해야 할 것이다. 비록 필자의 민중신학에 대한 논의가 무식한 사람일수록 용감하다는 경구를 재확인시키는 것이라 할지라도, 아마추어의 혼돈된 생각도 때로는 전문가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는 자위를 하면서 논의를 시작해 보자.


    민중신학의 독창적 틀

    필자는 『해석학적 신학』에서 토착신학의 유형학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모델로 분류하였다. 첫째, '복음(상황)'의 복음지상주의적 상황심판론의 모델로, 상황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상황의 기저(基底)까지 침투하여 복음화를 이루자는 선교신학의 모델로서, 필자는 이를 황소개구리 선교신학이라고 하였다. 둘째, 상황에 대한 일단의 이해를 참조하지만 복음 우월주의의 입장에서 상황을 변화시키자는 '복음>상황'의 모델로, 이 모델에는 복음주의적 번역론(윤성범의 씨받이 선교신학), 복음주의적 성취론(유동식의 데이트 선교신학), 복음주의적 변형론(박봉배의 누룩신학)이 속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모델들은 상호간의 수사학적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주체로 보고 상황을 객체로 보는 전통적 신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따라서 필자는 이들을 넓은 의미에서 선교신학이라고 불렀다.
    반면에 민중신학은 이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새로운 틀에서 운영되는 창조적 꼴의 신학임을 지적하였다. 그것은 민중신학의 틀이 복음을 일단 괄호 속에 넣고 상황을 통하여 복음이 드러나는 '(복음)상황'의 틀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안병무가 서구신학의 케리그마-교리-중심주의(즉 '복음>상황'의 틀)를 거부하고, 역사적 상황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운동을 신학으로 본 것은 '(복음)상황'의 틀을 간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이제는 민중신학의 시대성과 한계성을 말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또 다른 문제에 속하는 것일 터이고, 민중신학이 '(복음)상황'의 틀을 통하여 전통신학과는 전혀 다른 독창적이고, 따라서 전통적 서구신학의 이식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는 탈식민적이고, 한국의 상황을 바탕으로 하는 토착신학의 형성에 획기적 성공을 하였다고 자부하는 것은 결코 무리 없는 주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해석학적 신학』에서는 민중신학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 틀의 단초만을 언급하고 지나갔기 때문에 여기서는 보다 상세히 서술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 서남동의 민중신학이 지니는 독특한 해석학적 방법론을 합류의 해석학, 성령론적 해석학, 이야기 신학의 세 가지로 나누어 논의하려고 한다. 물론 이 같은 주제들은 '(복음)상황'의 틀로부터 자연스레 나오는 꼴이기도 한 것인데, 서남동 신학의 사회경제사 방법은 민중사상에 보편적으로 퍼져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에게만 독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위의 세 가지 주제는 특별히 민중신학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민중신학의 발전과 문화신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하고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을 논의하려는 것이다.

    1) 합류의 해석학: 서남동은 민중신학의 탄생을 성서의 민중전통과 한국의 민중전통이 '합류'하면서 탄생한 신학이라고 하였다. 그는 또한 한국의 민중전통을 성서의 민중전통과 합류하는 이야기로서 이해하였다. 따라서 서남동은 성서를 믿음의 유일한 책이 아니라 전거가 되는 참고서로 인식할 수 있었다. 서남동의 합류의 개념은 안병무의 '화산맥'의 개념과 유를 같이 한다.

    화산맥은 남과 북 혹은 동과 서로 뻗어있다. 그것이 여기저기서 공시적으로 또는 통시적으로 폭발하여 활화산을 이룬다. 해방의 의지는 화산맥처럼 지구를 꿰뚫고 잠재해 있다가 그때그때 지각을 뚫고 분출하여 거대한 활화산을 이루듯, 민중사건도 그렇게 일어난다. 거기에 동과 서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라고 한다. 그것은 각기 독자적인 사건으로 폭발되나 같은 맥에 속한다. 여기에서 한국역사와 이스라엘 역사를 구분하는 것이 배제된다.

    따라서 안병무는 서남동과 같이 "민중신학의 과제는 한국역사의 맥에서 민중사건을 이해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교적 전통에서 그것을 이해하는 과제"라고 하였다.
    여기서 서남동의 합류나 안병무의 화산맥이 동일한 개념을 표현하는 메타포라 할지라도 화산맥이 분출을 기다리는 전투적이고 폭발적이며 남성적인 이미지가 물씬 풍긴다면, 합류의 개념은 보다 시적이고 회화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필자는 서남동의 합류의 이미지를 선호하는 것이지만, 여하튼 합류나 화산맥의 개념은 민중신학 자체에서 뿐만 아니라, 기독교 전파 이전의 문화와 종교에 대한 이해, 소위 타종교나 타문화와의 대화라는 문화 신학적 질문에 대해서도 원용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해석학적 도구를 제공한다.
    첫째, 타종교와 문화에 대한 기독교의 전통적 해석학인 배타주의, 포섭주의, 병렬주의 등의 모델들은 그 한계가 분명히 드러나는 방법들이었다. 그것은 복음을 주체로 보고 다른 문화나 종교를 객체로 보는 '복음>상황'의 모델에서 운영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합류나 화산맥의 모델은 이들과는 전혀 달리 각 문화와 종교를 통하여 드러나는 해방의 사건들을 성서를 통하여 드러나는 하나님 사건과 합류하는 이야기 또는 화산맥의 역사적 분출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써 각 문화와 종교는 복음에 대한 객체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사건을 경험하는 주체로서 역전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떠한 종교나 문화의 기구에 속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 사건을 경험하고 실천하느냐의 문제로 변화한다. 따라서 합류의 모델은 하나님 사건을 향한 정행(orthopraxis)이야말로 선교라는 개념으로 선교의 개념이 재정립될 수 있고, 세속운동과의 유기적 연대신학의 가능성도 개방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또한 종교간 대화의 문제에 있어서도 정행이 대화의 기준이 되는 것이요, 이와 함께 연대적 정행의 신학도 수립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전통신학의 난제였던 예수사건 이전의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도 새로운 지평을 개방한다. 이것은 타종교와의 대화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한 것인데, 단테가 지옥의 림보에 이방의 현자들을 위치시킴으로 이 문제에 대한 해결 아닌 해결책을 제시하였는데, 이것이 전통적 해결책의 중요 양태로서 존재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합류의 해석학에서는 이런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민중신학에서는 민중사건이 되겠지만, 다른 신학에서는 인간화를 위한 해방적 정행사건이 모두 익명의 하나님사건이요 예수사건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복음)상황'의 틀에서 운영되는 합류의 해석학에서 나올 수 있는 꼴들이 전통적인 '복음>상황'의 신학에서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들을 주체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서남동의 성령론적 해석학으로 가속화된다.

    2) 성령론적 해석학: 성령론적 입장은 요아킴 피오레의 성부, 성자, 성신의 시대 구분론을 원용하는 것이겠지만, 서남동은 성령론적 입장을 전통적인 신학의 기독론적 입장을 대치하는 의식적인 노력에서 취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령론적이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첫째, 성령론적이라는 말은 기독론적이라는 말에 대한 의식적 대립을 말함이다. 전통신학이 2천년전에 일어난 그리스도의 구속적 은총을 강조하고 그의 구속 사건에 대한 고백과 동의와 믿음을 강조하는 타력적 신앙을 말한다면, 성령론적 신학은 지금 여기서 나의 결단과 나의 자발적 행위를 통해서 일어나는 성령의 동행적 구원의 사건을 강조한다. 성령론적이라는 말의 초점은 구원의 사건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둘째, 성령론적 해석은 성서이해에 있어도 성서를 객관적인 신의 말씀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행해지는 나의 결단과 나의 행위에 대해 자문을 구하게 되는 참고서로 나타난다. 성서는 2천, 3천년 전 사람들이 어떻게 결단했고 그들을 통해서 하느님이 어떻게 역사(役事)했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로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전거로서 존재한다.
    이러한 두 가지 초점은 '(복음)상황'의 틀을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스위치와 같은 것이다. 상황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나님사건을 말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2천년전의 사건에 고착되는 기독론적 신학으로부터 출애굽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성서를 절대화하는 문자신학으로부터도 탈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 바람처럼 불면서 언제나 현재적 역사에 작용하는 성령의 개념은 자유와 결단의 해석학적 상상력을 위해서 매우 적절한 개념이 되는 것이다.
    성령론적 해석학에서는 교회가 기구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이라는 새로운 교회론이 등장할 수 있다. 예수가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요한 4: 21. 23)고 하였다면,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성령론적 사건이야말로 진정한 예배요 교회라는 말이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곧 앞서 말한 합류의 해석학에서처럼 정행(orthopraxis)이야말로 그리스도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조건에 대한 지평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는 민중신학이 제시하고 있는 방법론이 다른 신학에서도 어떻게 확대 발전될 수 있는가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복음)상황'의 틀에서 민중신학의 상황은 단지 정치적 상황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 상황으로까지 확대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역사적 구성물이면서도 자연적 구성물이요 의미적 구성물이기 때문이다. 상황을 정치적 상황뿐만 아니라 생태적 상황, 실존적 상황 등으로 지평을 확대할 때, 신학은 사회경제사 뿐만 아니라 인문학, 생태학, 심리학, 자연과학 등을 포섭할 수 있는 현대적 대화신학의 담론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민중신학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필자는 '나가는 말'에서 이를 다시 언급하려고 한다.

    3) 이야기 신학: 역사는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러나 사건은 사건 자체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이야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야기가 없다면 역사는 기억의 뒤 안으로 묻히고야 말 것이다. 즉 역사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언제나 이야기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따라서 이야기는 단순히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이해하는 인식론적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프레드릭 제임슨의 말처럼 이야기는 언제나 역사 화됨으로 그 이야기의 본질이 밝혀질 수 있다.
    민중신학의 이야기 이해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안병무의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예수사건이었다"는 말이나 서남동의 "태초에 말씀이 있다가 아니라,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라는 언술은 이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서남동은 태초에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면 계시는 말씀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요, 성서가 계시의 책이라는 말은 그러한 계시적인 역사 사건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서남동은 역사 사건에 대한 최초의 이야기를 '원계시'(原啓示)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원계시의 이야기에 변화가 생기면서 원계시는 사라지고 추상적이고 서술적인 교리와 신학이 등장하게 된다. 서남동의 다음의 말은 이러한 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구약성서에 있어서 계시는 기자, 편집자, 예언자들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아니라-- 그렇다면 서술적 진리의 성격을 띤 것이겠는데-- 구약성서에 있어서 계시는 바로 출애굽사건과 원이스라엘(Proto-Israel)의 발생이며 신약성서에 있어서도 계시는 바로 예수의 생애와 교회의 발생이다(처음 공동체). 그러한 원계시는 본래 이야기(민담)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구약성서에 있어서 율법이 생기면서 이야기는 끝나고, 신약성서에 있어서 신학이 생기면서 이야기는 가려져 버리고, 종국에는 이야기가 말씀으로, 교리로, 신학으로 바뀌어졌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이야기는 교회의 신학에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바뀌어졌고, 예수의 죽임(살해, murder)은 역사적 교회에서 예수의 죽음(death)으로 대치되었고 예수의 십자가형(정치적이고 형법상의 형 집행)은 예수의 십자가(종교적 상징)로 바뀌어졌다. 그러므로 예수 이야기(복음)을 되찾으려면 적어도 방법론적으로 신학(그리스도론, 구원론, 예정론 등)이 유보(moratorium)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 이야기를 되살리려면, 신학적인 말씀이 예수의 삶(생애)으로 곧 예수 이야기로 바뀌어져야 하겠고, 예수의 대속적인 죽음(死)이 예수의 죽임(살해)으로 바뀌어져야 하겠고, 예수의 십자가가 그의 십자가형으로 바뀌어져야 하겠고, 예수의 부활의 경우, 사체(死體)의 소생이 육체의 부활로 바뀌어져야 하겠다. 이렇게 탈신학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매우 대담한 주장으로서 서남동의 천재성을 번뜩이게 하는 통찰이다. 그러나 서남동의 이야기신학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여기서 특정한 역사적 계기에서 일어난 민중신학이 왜 이야기신학을 자기 식으로 전개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다루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민중신학의 이야기 이해가 다양한 신학적 이야기 신학의 전개를 위해서는 빈약하다는 것을 지적하려고 한다.
    1) 첫째, 구전으로 전승되는 민담의 경우에는 특별히 사건이라고 할만한 역사를 들추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것이 오히려 민담으로 하여금 역사 사건에 국한되지 않는 인간의 보편적 욕구와 희망을 담고 있는 소원성취의 이야기로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한 소원성취에는 특정한 역사적 조건과 생산양태에도 불구하고 해소될 수 없는 현실적 모순이 상징적으로 해소되는 정치적 무의식이 담겨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담은 특정한 역사 사건에 국한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역사 사건에 다양하게 원용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일한 프로메테우스의 영웅 신화가 중세에는 잊혀진 신화로 존재하지만 16세기에는 제도적 권위에 도전하는 양심의 상징으로 이해되고, 18세기에 이르면 진보를 가능케 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나아가서 괴테에게는 신을 대항하는 인간의 상징으로, 또는 까뮤에게는 반항인의 메타포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은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역사성이 무엇이냐는 문제와는 관계없이 프로메테우스의 신화가 어떠한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고, 어떠한 플롯에 의해서 이해되느냐의 문제로 귀착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욱이 프로메테우스를 이해하는 방법의 차별성은 프로메테우스 신화 자체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를 대하는 인간의 해석학적 관심과 관점에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둘째, 이러한 사정은 민중신학의 민담 이해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민중신학은 이야기의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하고 발견함으로 원(原)이야기로서의 원계시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역사적 사건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사적 방법이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고 믿는다.
    서남동은 원계시의 근거가 되는 사건을 해석된 역사인 geschichte에 대하여 역사 자체인 historie라고 불렀다. 그러나 역사 자체라고 부르는 historie와 historie에 대한 최초의 이야기인 원계시에 대한 관점에는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역사 자체와 이야기의 관계는 그렇게 명확한 것이 아니다. 사건이 있고서야 이야기가 있다는 말은 시간적 선후관계에서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논리적 선후관계에서는 사건을 바라보는 틀이 있고서야 사건은 사건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역사 자체가 가공되지 않은 자료(raw material)라면 역사를 사건으로 만드는 것은 일종의 플롯으로서의 틀이다.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서 플롯이라는 말을 조금 더 상세히 서술할 필요가 있다. 역사에 대한 일차적 서술은 이야기다(narrative)다. 따지고 보면 인간적 세상에는 이야기 아닌 것이 없다. 그런데 이야기를 시간적 연속선상에다 놓고 보면, 스토리(story)가 된다. 예를 들어 연대기는 스토리에 속한다. 그런데 스토리에 대하여 '왜'의 질문을 하면 플롯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왕이 죽었다. 왕비가 죽었다"고 말하면 historie요 이야기다. 그런데 이야기를 시간적 연속성에서 "왕이 죽었다. 그리고 왕비가 죽었다"고 말하면 스토리가 된다. 나아가서 "왕이 죽었는데, 왕비가 '비통에 잠겨' 죽었다"고 말하면 플롯이다. 그러나 "왕이 죽었는데, 왕비가 '너무 좋아하다가' 죽었다"고 한다면 또 다른 플롯이 생긴다. 플롯은 '왜'에 대한 이해요 설명이며 스토리의 정신이요 구조다.
    이 같은 사정을 전제로 한다면, 서남동이 혼동적으로 사용하는 이야기라는 말에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일종의 플롯과 해석이 내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서남동이 말하는 historie는 또 다른 플롯의 geschichte라는 말이다. 여기서 다양한 플롯의 가능성은 사건에 대한 당사자들의 실존적, 역사적 지평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자면 사건은 사건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실존적 역사적 지평의 전(前)이해를 통해서 사건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표상하는데서 생기는 것이다. 즉 모든 사건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해석학적 사건이요, 해석학적 사건으로서의 플롯은 하나가 아니라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플롯이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플롯에 대한 해석 또한 다양할 수 있다. 한 예로 오이디푸스 신화의 경우를 살펴보자. 오이디푸스의 신화에는 분명히 플롯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이 플롯을 비평가들은 다양하게 해석해 왔다. 전통적으로는 얽혀진 실타래가 이야기의 전개와 함께 서서히 풀어지게 되는 데뉴망(denoument)의 이야기, 따라서 탐정소설의 효시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이를 인류의 보편적 사건으로서의 친부살해에서 플롯으로 해석한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해석을 민중신학적 언어로 변형시키자면,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친부살해였다"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오늘날 사회경제사적으로 이를 풀이한다면 또 다른 해석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플롯에 다양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플롯에 대한 해석에도 다양성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니체의 용어를 원용한다면 관점주의(perspectivism)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관점주의를 택하든 안 하든 지의 문제는 고사하고라도 사회경제사라는 것도 해석학적 관점 중의 하나일 뿐이다. 만약 민중신학의 경우에서처럼 원계시는 오직 하나라고 본다면, 오히려 필자는 원계시를 하나의 이야기로 보는 입장이 어떤 이데올로기를 표방하고 있고, 어떤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해석학적 순환의 질문이기도 한 것인데, 민중신학은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원계시의 일의성(一意性)을 자신의 알키메데스 포인트로 확립시켰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민중신학이 성서의 historie와 원계시를 말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여기서 물어지고 행해지며 드러나는 민중신학의 현재적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그렇게 묻고 보게되는 해석학적 사건이요 해석학적 순환의 결과인 것이다. 민중신학이 성서의 이야기를 역사화 시킨다면, 거꾸로 민중신학의 담론 역시 역사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민중신학은 자신의 신학적 입장에서 민담에 담긴 정치적 무의식을 탈은폐 시키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따라서 민담은 성서와 함께 민중신학의 참고서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민중신학의 입장에 서지 않더라도 이미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나 제임슨의 마르크스주의적 비평학을 통해서 혁혁한 학문적 성과가 이루어진 분야였다. 특히 제임슨의 경우에는 민담에 담긴 정치적 무의식을 민중신학과 같이 원계시적 사건으로 환원시키는 환원주의에 빠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 필자는 민중신학의 민담에 대한 해석이 다양한 해석의 하나라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이를 긍정한다. 그렇지 않다면 민중신학의 이야기신학은 민중신학의 이데올로기로 환원되는 교리신학으로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히려 historie에 대한 다양한 플롯과 해석은 신학에서 부정되어야 할 약점이 아니라 긍정되어야 할 장점이라고 보는 것이다.
    3) 셋째, 역사는 계속 변화하는 것이고, 역사에 대한 해석으로서의 이야기도 계속 변화하며 형성되는 것인데, 민중신학은 이를 고의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historie와 원계시에 대한 알키메데스 포인트 때문에 역사의 과정을 통하여 이야기의 플롯이 변형되고 창조되면서 다양한 해석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민중신학의 historie는 민중사건 또는 예수사건이요, 알키메데스 포인트는 지배구조에 대한 민중의 해방이다. 따라서 이외의 해석학적 플롯은 지배세력을 옹호하는 반동의 지배이데올로기로 평가절하 된다. 서남동의 말을 들어보자.

    전통적 신학은 '지배의 신학'이다. 곧 지배(통치)의 이데올로기에 편입, 흡수되어서 지배질서를 정당화해 주고 그것을 축복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문자와 서적과 체계적인 신학이 그렇다. 하느님의 초월성, 전지전능, 무소부재, 그리스도의 왕권, 주권을 강조하는 내용이 다 정치적 지배구조 안에서 얻어진 상상(지배자의 언어)이며 그 고정화, 항구화를 기능한다. 도대체 신학이라는 것이 성서적인 계시 이후에 생겨진 사상체계로서 그리스도교 신학체계가 발생한 사회학적인 '삶의 자리'는 고대 노예제사회인 그리스와 로마 사회다. 자유시민과 노예, 초월과 천속(賤俗), 물질과 정신의 형이상학적 이원론, 사회적 이중구조가 그 신학이 발생한 모태며 그렇게 유전적으로 구조적으로 생겨진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지배의 신학이다. 문자, 그 중에서도 한문 문자와 서양철학(신학도)은 지배층의 특권이며 전유물이며 그들의 자기방위와 민중지배의 무기다. 본래 성서적 계시의 삶의 자리는 노예제사회에서 탈출한 가나안과 갈릴리의 민중들--그들의 이야기다. 그것은 신학이 아니라 이야기며 그런 의미에서 반신학이다. 통치 이데올로기와 지배체계와 그 문화를 비판하고 시정하려는 민중의 이야기는 반(反)신학이다.

    필자는 이야기신학으로서의 반신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에 있지만, 서남동의 이야기신학은 오직 원계시의 이야기에만 한정됨으로 이야기신학의 지평을 지나치게 축소시켜 버렸다. 물론 그가 처해있던 상황을 고려해 보면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만, 서남동의 반신학으로서의 이야기 신학은 신학을 교회 내(內)의 바벨론 포로로부터 해방시키고 신학의 장르를 확대하였다는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지평은 더욱 확대되어야 할 과제를 안는다.
    서남동은 구약성서에 있어서 율법이 생기면서 이야기는 끝나고, 신약성서에 있어서 신학이 생기면서 이야기는 가려져 버리고, 종국에는 이야기가 말씀으로, 교리로, 신학으로 바뀌어졌음을 개탄한다. 그러나 서남동은 말씀과 교리와 신학도 이야기의 한 종류임을 잊고 있다. 만약 말씀과 교리와 신학이 닫힌 지평에서 이해된다면 서남동의 말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말씀과 교리와 신학이 닫힌 체계가 아니라 열린 체계로 이해된다면, 그것은 언제나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개방하는 새로운 이야기의 질료로서 존재할 것이다. 말씀은 말씀 형성사요, 교리는 교리 형성사이며, 신학은 신학형성사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아킴 피오레가 전통적 교리인 삼위일체론을 성부시대, 성자시대, 성령시대의 경세론으로 역사화 시켰을 때, 그것은 반동적 지배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혁명적 이데올로기로 변화하는 것이다. 실제로 서남동은 historie와 원계시에 대한 주장에서와는 달리 이러한 교리와 신학적 해석학을 자신의 신학적 출발점인 성령론적 해석의 방법으로 수용하였다. 문제는 원계시와 교리(또는 신학) 사이의 차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교리와 신학에 대한 해석학적 차이와 이야기의 플롯에 있는 것이고, 교리와 신학을 닫힌 체계로 보느냐 열린 체계로 보느냐의 문제에 있는 것이다. 서남동은 이 문제에 대하여 원계시를 말할 때에는 교리와 신학을 닫힌 체계로 보고, 자신의 성령론적 입장을 말할 때에는 이들을 열린 체계로 보는 모순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보다 급진적으로 교리와 신학을 모두 이야기의 상징적 형태로 보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와 교리와 신학이 모두 언어행위요 언어사건에서 이해한다면, 교리와 신학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주장은 해체되어야 한다. 단지 서남동이 말하는 이야기와 교리와 신학은 언어행위의 은유형, 환유형, 제유형, 아이로니형, 서술형 등의 차이에서 말해질 수 있는 것이고, 이들의 플롯과 플롯의 역사적 계기와 이데올로기의 내용 등을 비판적으로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문예신학 또는 문학신학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필자는 문예를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상황에 대하여 살고 싶은 이상상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열린 체계요, 열린 체계에서 행해지는 의미와 해방을 향한 자유정신이요 변화정신이며 실천정신이라고 이해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신학을 문예, 문학, 또는 이야기의 한 장르로서 이해하는 문예신학이라는 반신학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민중신학과 급진유형학 신학

    필자는 민중신학이 한국신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탈식민신학과 창조적 토착신학의 수립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민중신학이 세계 신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무엇일까? 필자는 신학의 구조적 측면에서 민중신학을 시학적 급진 신학의 전통에 서있다고 말하고 싶다. 시학의 희랍어가 포이에시스(poiesis) 즉 창조를 의미하듯이 시학적 신학은 도그마에 얽매이지 않는 창조신학이다. 창조신학은 성서를 전거로 하면서도 성서를 '닫힌 책'(closed book)으로 보지 않고 '열린 책'(open book)으로 본다.
    닫힌 체계에서 일어나는 신학은 성서를 도그마 체계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알레고리로 해석한다. 알레고리는 이것의 의미는 저것에 있다는 일종의 환원주의다. 따라서 성서의 닫힌 체계 안에서 신학은 케리그마에 근거하고 케리그마로 환원되어야 한다. 루터가 성서는 그리스도가 누워있는 말구유라고 했을 때, 그것은 성서의 모든 사건을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으로 환원시키는 알레고리로 바라보는 닫힌 체계의 신학이다. 성서가 닫힌 체계가 될 때, 신학 또한 닫힌 체계가 되고, 교회는 닫힌 체계의 수호자가 된다. 따라서 닫힌 체계를 열려고 하는 어떤 시도도 반교회적이거나 이단이라는 죄목으로 정죄를 받는다. 한마디로 알레고리의 환원적 신학 또는 닫힌 신학은 기구적 교회 안에 바벨로 포로가 되어 있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성서를 열린 책으로 바라보는 창조신학은 성서의 의미와 도그마의 의미를 기구적 교회를 위한 알레고리로 환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서의 사건들을 새로운 유형의 지평으로 개방시키는 급진유형학의 신학이다. 성서의 일반유형학은 구약과 신약, 언약과 성취, 타입과 안티타입(anti-type) 등으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닫힌 체계다. 반면에 급진 유형학은 타입과 안티타입의 일반 유형을 급진적으로 개방하면서 그것이 역사적으로 새롭게 정립될 수 있고 새롭게 해석될 수 있음을 주장하는 열린 유형학이다. 따라서 급진 유형학의 신학은 전통적-기독론적 알레고리 신학에 반대가 되는 신학이다.
    그러한 전형적 예를 12세기의 혁명 사상가였던 요아킴 피오레의 신학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요아킴 피오레는 정통신학의 삼위일체 도그마를 급진적으로 역사화 시키면서 역사를 성부시대, 성자시대, 성령시대로 구별하였다. 성부시대가 저녁이라면, 성자시대는 아침이요, 성령시대는 대낮이다. 성부시대는 율법의 시대로서 노예의 시대, 공포의 시대, 노인의 시대다. 성자시대는 은총의 시대로서 아들의 시대, 신앙의 시대, 청년의 시대다. 성령시대는 보다 큰 은총의 시대로서 자유의 시대, 친구의 시대, 자유의 시대, 어린이의 시대다. "너희가 어린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을 볼 수 없나니..." 역사의 모순은 천상에서 초월적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사랑이 지배하는 성령의 도래와 함께 해소될 것이다. 성령시대는 인간의 영적 지성의 자유와 어린이의 비의를 이해하는 자에 실천될 것이다. 성령시대는 제3의 시대요, 제3의 복음으로써 초월은 내재를 통하여, 거룩은 세속을 통하여, 신은 인간을 통하여 카이로스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로써 초월과 내재, 성과 속, 신과 인간은 '모순의 일치'(coincidentia oppositorum)를 이룬다. 한마디로 요아킴 피오레의 삼위일체 교리의 역사화는 성서를 닫힌 책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타이폴로지로 재해석하고 다시 쓰는 창조신학이요 급진신학인 것이다.
    피오레의 급진적 유형신학은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자아의식의 발전사라는 다른 유형학적 신학의 모습으로 재창조된다. 성부가 즉자(卽者)적 존재요, 성자가 대자(對者)적 존재라면, 성령은 즉대자(卽對者)적 존재다. 성부는 자기 부정을 통하여 성자가 되고, 성자의 부정은 성령에 이른다. 성부의 자기 부정은 하나님의 죽음이다. 즉자적 하나님은 예수의 골고다 산성에서의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의 부르짖음과 함께 십자가상에서 죽었다. 그것은 성자시대의 도래, 신약적 하나님의 도래를 확인하는 부르짖음이다. 실로 헤겔은 하나님의 죽음을 니체에 앞서 증언했던 것이요, 자신의 철학의 원리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골고다의 십자가, 예수의 죽음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부정으로써 성령을 도래시킨다. 성자의 부정이 없다면 성령의 도래는 불가능하다. 성령의 도래와 함께 하나님은 초월적 성부나 동행적 성자가 아닌 내재적 성령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헤겔은 종교사를 성부적 종교, 성자적 종교, 성령적 종교로 구별하면서 성령적 종교는 기독교에서 완성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부가 즉자(卽者) 의식이라면, 성자는 대자(對者) 의식이요, 성령은 즉대자(卽對者) 의식이다. 즉자 의식의 부정은 대자 의식으로 발전하고, 대자의식의 부정은 부정의 부정으로서 즉대자 의식으로 완성된다. 이것이 정반합으로 표현되는 변증법의 논리가 된다. 인간의 의식은 부정성을 통하여 타자를 향하고, 타자에 대한 대자 의식은 다시 부정을 통하여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이로써 인간의 자아의식은 즉자의식의 부정의 부정 즉 대긍정으로 완성된다. 이러한 헤겔의 도식은 피오레의 성부시대, 성자시대, 성령시대의 혁명적 급진신학을 자아의식의 관점에서 재창조한 부르주아적 창조 신학이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민중신학 또한 성서를 열린 책으로 바라보는 급진 유형학의 창조신학적 계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앞서 말한 서남동의 신학적 틀과 꼴을 재정리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첫째, 민중신학은 성서의 케리그마를 닫힌 메시지로 보지 않고, 오히려 케리그마에 은폐되어 있는 기구적 교회의 이데올로기를 탈은폐 시키며, 케리그마 이전의 예수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재해석하면서 성서의 세계를 급진적으로 개방하였다.
    둘째, 민중신학은 성서의 지평을 개방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회경제사적 방법을 도입하였다. 그것은 도그마를 해석하고 변증하기 위한 전통적 조직신학의 닫혀진 방법을 거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피오레의 혁명적 정열신학이나 헤겔의 부르주아적 관념론의 신학에 비하여 사회과학적이고 실증적인 토대를 갖추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민중신학은 신학을 도그마에 대한 변증과 조직의 담론이라는 좁은 지평으로부터 사회경제적 담론을 포함하는 민중사건의 담론으로 확대 해석하는 신학의 새로운 개방성을 가능케 하였다.
    셋째, 특히 서남동은 피오레의 성부 성자 성령 시대를 수용하는 듯 현재를 성령시대로 규정하면 전통신학의 타력적인 기독론적 입장을 대치하는 자력적인 성령론적 입장으로 전개하였다. 성령론적 해석학과 함께 해석의 무게 중심이 과거의 성서로부터 오늘의 삶과 실천에 초점이 옮겨졌다. 여기에 성서는 오늘을 올바로 살고 결단하기 위한 규범(norm)이 아니라 참고서(reference)라는 관점이 가능해 진다. 이것은 역사상 성서를 열린 책으로 바라보는 관점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이고 창조적인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민중신학이 세계 신학사에서 창조적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성서의 개방, 이에 근거한 새로운 포이에시스의 급진신학으로 자리매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넷째, 그러나 민중신학은 자체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전통신학의 기독론적 알레고리 신학을 탈피하여 급진적 유형학의 신학으로 개방하였지만, 다시 성서와 신학을 민중사건을 축으로 삼는 알레고리 신학으로 환원시켰다. 이와 함께 민중신학은 사회적 기독교의 지평은 넓혔지만, 종교적 기독교, 문화적 기독교의 지평을 오히려 축소시켜 버렸다. 그것은 '(복음)상황'의 틀에서 상황을 사회경제사적 민중상황으로 제한한 결과라고 생각되는데, 여하튼 이로써 민중신학은 다시 알레고리 신학의 폐쇄성을 갖게 되고 당파적 젤롯주의의 신학이 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민중신학의 정체성이자 한계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이에 대한 논의로 나가는 말을 대신하도록 하자.


    나가는 말: 민중신학의 닻과 덫

    1) 민중신학의 일원적 플롯과 억압 요소:
    민중신학이 다른 민중론과 구별되는 것은 자신의 준거점을 성서에 두고, 성서의 민중사건과 예수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도교 전통에 둔다는데 있다. 여기서 민중신학이 의미하는 그리스도교 전통은 곧 민중사건과 예수사건을 의미한다. 따라서 신학적이라는 말은 민중신학이 예수사건 또는 민중사건의 준거점을 통하여 피지배민중의 구조악에 대항하여 자유와 해방을 실천한다는데 있다.
    이러한 논지가 억압하거나 간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통하여 우회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민중신학의 신학적 준거점이라는 말은 융의 정신분석학적 용어를 사용하자면 원형(archetype)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원형이라는 심리학적 용어는 신학적으로 하나님에 해당한다. 여기서 민중신학의 하나님은 원형으로서의 예수사건이요 민중해방이다. 이 원형에 따라서 성서가 이해되고 역사가 해석된다. 그러나 원형은 하나가 아니라 영웅 원형, 자아 원형, 혁명 원형, 등으로 다수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하나의 원형에 따라서 모든 것이 해석되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하나의 원형에 의한 보편주의적 전횡은 아닌 것인가?
    정신분석학에서 치료의 대상은 개인의 신경증적 콤플렉스다. 콤플렉스는 개인의 역사적 삶을 통하여 형성되는 억압된 정서의 얽혀진 묶음이다. 여기서 얽힌 실타래를 풀어주는 것이 정신분석학적 치료요, 치료에 동원되는 도구가 원형이다. 그러나 원형으로 실타래를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 원형이 이용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원형은 막스 베버의 유형(types)과 같이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형태다. 따라서 신적이다. 그러나 유일신이 아니라 다신임을 주의하자.
    원형과는 달리 콤플렉스는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이다. 따라서 정신분석학은 유일한 원형을 따라서 다양한 콤플렉스를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개체적 콤플렉스에 따라서 원형 중의 하나 또는 몇을 적용하려고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정신분석학은 과학적 형태를 벗어나서 독단적이고 교조적인 종교의 하나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예를 들어 프로이드는 오이디푸스 반역을 역사 해석과 종교 해석의 historie와 원계시로 생각함으로 『모세와 유일신론』이나 『토템과 터부』를 썼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 좋은 역사 소설이나 종교 소설로서 취급될 뿐이지 사회과학적 이론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그것은 프로이드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결과, 신적 언어로 취급한 결과가 아니냐는 질문과 연결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민중신학은 예수사건과 민중 사건의 원형만을 모든 개인적 콤플렉스와 집단적 콤플렉스 그리고 역사적 콤플렉스를 해석하고 해소하기 위한 유일한 원형으로 삼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민중신학이 사회과학의 내용을 포섭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종교와 신학의 옷을 입은 일원적 플롯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필자는 모든 콤플렉스를 민중신학이 말하는 원형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민중신학의 원형을 따라서, 즉 플롯을 따라서 얼마든지 개인적 삶을 이해하고 역사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만이 정당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다양한 개인적 콤플렉스와 집단적 콤플렉스와 역사적 콤플렉스를 단지 일원론적 원형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냐의 질문을 하고 싶은 것이다.
    만약 그것이 신학적이라는 말의 뜻이어야 한다면, 필자는 그러한 신학적이라는 말은 유보되고 방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일원적 플롯은 얽힌 복합적 플롯으로 얽혀있는 실타래를 시원하게 풀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또 다른 면에서 실타래를 얽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중신학의 일원적 플롯은 모든 일원적 플롯이 그렇듯이 하나의 원형을 통하여 모든 것을 관통하고 지배하려는 유일신론적 편견이나 무의식적 권력에의 의지인지도 모른다.
    이에 대하여 프랑스 문인 알랭(Alain)의 말은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역사와 픽션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는 두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인간에게서 관찰될 수 있는 모든 것은 역사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인간의 공상적 또는 로맨틱 측면(픽션으로서의 로망)은 체면이나 부끄러움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꿈, 기쁨, 슬픔, 자기 대화와 같은 '순수 열정'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 본성의 측면을 표현하는 것이 소설의 주 기능중의 하나가 된다."
    여기서 알랭이 체면과 수치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표현한 것이 민중신학에서와 같이 민중사건이라는 일원적 역사의 플롯으로는 이해하고 해석할 수 없는 개인의 억압된 콤플렉스요, 순수열정이며, 인문의 기능이다. 그것은 역사 이상으로 중요하게 개인적 의미의 세계를 형성하는 다양성과 복합성의 세계다. 이 다양성과 복합성의 세계를 민중 사건의 일원적 역사로 환원시키려 할 때, 알랭이 말하는 역사로 환원될 수 없는 인간의 측면은 더욱 얽혀진 채 의미를 향한 꿈의 절규를 수행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중신학의 역사 담론이 인간 해방을 외치면서 또한 인간 소외의 담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지는 않는가의 질문은 '(복음)상황'의 틀에서 상황을 확대 해석함으로만 풀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2) 민중신학은 민중이라는 언어에 발목이 잡힌 것이 아닌가?
    필자는 민중신학이 다양성의 중층해석학으로 자신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얼마든지 가지고 있는 탁월한 해석학이라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에는 어려운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민중이라는 언어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민중신학은 민중사건을 축으로 발전된 신학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민중이라는 말에 얽혀있는 신학이다. 따라서 민중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지면 민중신학의 정체성도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민중신학은 그 탁월한 신학적 형식과 내용에도 불구하고, 민중이라는 언어의 제한적이고 당파적인 개념 때문에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민중신학은 바로 그 이유가 민중신학이 민중 신학이 되는 이유라고 말할지 모르겠으니, 또한 바로 그 이유가 민중신학의 발전을 저해하고 끝내는 당파적 젤롯주의로 역사에서 유배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민중신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민중신학의 탁월한 창조적 해석학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발전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이다.
    만약 민중을 축으로 하면서도 신학의 이름을 달리하였더라면 민중신학은 얼마든지 다양성을 포섭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오클로스 신학이라든지 해방의 신학이라든지 민초신학이라든지 인간화의 신학이라든지 또는 예언 신학 등으로 이름이 붙여졌더라면 민중의 신학이라는 개념보다 더욱 포괄적이고 확대 가능한 신학으로 발전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람의 이름이 중요하듯이, 사상의 이름은 더욱 중요하다. 이름은 단순히 수동적 호칭이 아니라 사람을 규정하고 사상을 규정하는 능동적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사상을 실존주의라고 부르는 것을 거부함으로 실존주의의 틀에 갇히지 않는 사상을 자유로이 전개할 수 있었다. 인간은 언어라는 감옥 속에서 사유하는 존재요, 거꾸로 언어는 존재가 자신을 탈은폐 하는 존재의 목동이다. 가상의 예를 들어 빈자의 신학과 거지의 신학이라는 이름 사이에는 그 신학의 방법과 개념과 내용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빈자의 신학이 가난한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면, 거지의 신학은 거지만을 대상으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 거지라는 말을 가난한 자의 메타포로 사용한다든지, 역사의 희생자를 가리키는 메타포로 사용할 수 있다면 거지의 신학은 그 범주를 확대할 수 있고 그 방법도 정교해 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필자의 말에 일리가 있다면, (스스로는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다양한 욕구와 실천이 사회 도처에서 분출하는 오늘날의 다원사회에서 민중신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민중의 개념을 확대하던지, 또는 민중이라는 언어를 버리든지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곧 민중신학의 고전적 정체성에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질문은 민중신학이 수정노선으로 발전될 수 있는가 또는 정통노선에서 왜소화를 감수할 것인가의 택일의 문제로 남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민중신학의 경우에는 그러한 메타포적 확대가 불가능하리 만치 이미 민중이라는 말의 뜻과 민중사건의 의미가 당파적으로 정착되어 있다. 그렇다면 민중신학의 성공은 곧 실패를 안고 있는 것인가? 토인비의 메타포적 언어로 젤롯주의는 헤롯주의를 포섭할 수 없는 것인가? 만약 민중이라는 언어의 개념을 메타포적으로 확대시킨다면, 그것은 민중신학의 수정 노선이 되든지 아예 민중신학이기를 그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민중신학은 민중이라는 언어에 발목을 잡히어 더 이상 발전을 할 수 없는 것인가? 민중이라는 언어는 축복인가 또는 저주인가? 닻은 곧 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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