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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발제]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의 동향 [카테고리]
  • 이남섭
    조회 수: 5886, 2002.07.02 08:56:04
  • 최근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의 동향

    이 남 섭(한일장신대 교수)


    1. 들어가는 말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의 발전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해방신학의 초창기로 알려진 60-70년대와 해방신학의 심화 발전기로 분류되는 80-90년대로 구분할 수 있다. 60-70년대의 신학적 경향이 정치 경제적 문제가 신학의 출발점이자 주요 내용이었다면, 80-90년대의 신학은 사회 문화적인 문제가 신학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단편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보여진다. 1989년 동구사회주의 세계의 붕괴와 1990년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부의 선거패배를 "해방신학의 몰락"으로 간주하여 해방신학이 더 이상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후 아이티의 해방신학 사제 아리스티데(Jean Bertrand Aristide)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든지 해방신학에 우호적인 브라질의 노동당(PT) 후보가 여전히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국내외 주요 언론매체에서 외면 당하였다. 심지어 아시아의 저명한 신학자인 C. S. Song은 최근 국내의 한 강연에서 동구의 붕괴이후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자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음을 질책하듯이 지적한 적이 있다. 이 글의 목적은 90년대 이후 전개된 최근 해방신학의 주요 흐름을 간단히 소개함을 통해 해방신학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있다. 이 글의 순서로는 먼저 신학적 성찰의 배경이 되는 변화된 현실을 요약하고 그 다음 이 시기동안 해방신학이 가장 많이 다룬 주제들을 살펴보려 한다.

    2. 변화된 현실

    2-1. 산디니스타의 선거 패배와 아리스티데의 선거 혁명

    1990년대 초에 해방신학의 향후 방향에 영향을 준 두 가지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 발생하였다. 하나는 1990년 2월 대통령 선거에서 산디니스타 혁명정부가 선거에서 패배한 점이다. 다른 하나는 10 개월 후에 치러진 선거에서 해방신학 사제 아리스티데가 미국의 막강한 지원을 받은 집권여당의 후보를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하였다는 사실이다. 산디니스타 정부가 보수 야당에게 약간의 차이로 패배하였다면 아리스티데는 집권여당을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하였다. 이 두 사건은 겉으로 보면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동일한 과정의 양면이었다. 산디니스타 혁명 정부가 교회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해방신학에 영향을 받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혁명정부의 창출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 정부에 많은 해방신학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디니스타 정부의 선거 패배는 해방신학의 패배로 인식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좌절을 안겨주었다. 아리스티데가 승리하였을 때 해방신학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희망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사건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인식은 현상을 지나치게 표피적으로 이해하는 태도이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선거에서 패배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선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신학은 이 두 사건을 통하여 한가지 사실을 명확히 하였다. 해방신학은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평화적인 민주주의 절차를 존중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오히려 국제법을 존중하지 않고 소위 "불법적인 폭력 테러"를 사용하는 집단을 지지하는 측은 미국의 보수적인 정부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산디니스타 정부를 파괴하기 위하여 미국의 레이건과 부시 정부는 합법적인 정부에 대항하는 테러집단의 게릴라 활동을 거의 10년간 불법적으로 지원하였다. 1986년 6월 27일 네델란드의 하야(La Haya)에 있는 유엔의 국제사법 재판소는 이러한 불법적 테러 활동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즉각 중단하고 테러로 피해를 입은 니카라과에 미국 정부는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미국은 유엔 소속 국제사법 재판소의 판결을 무시하였고 불법적인 테러집단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였다. 총칼의 협박 앞에 산디니스타 정부는 선거에 임하였고 국민은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한 것이다. 이후에도 라틴아메리카에서 이러한 역사는 반복되어 나타난다.

    2-2. 신자유주의 경제 혁명과 '자본주의의 신학화'

    해방신학이 겪은 이러한 정치적 굴곡과는 별도로 경제 상황과 이에 대한 신학적 성찰은 새로운 현실에 직면하였다. 1990년대는 해방신학을 위해 많은 새로운 도전이 제기되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도전중의 하나는 신자유주의와의 대면이다. 사회주의 체계의 붕괴이후, 신자유주의는 20 세기말 사회를 조직하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제시되었다. 이 새로운 자본주의 체계는 '금융 자본'과 생산의 '자동화' 그리고 '기술 전문화'를 통해 노동의 힘을 평가 절하한다. 신자유주의는 건강과 교육 같은 공공부문의 지출에 대한 감소를 요구하고 결국에는 복지국가의 포기로 이끌어 간다. 이것은 경제체제에서 배제되는 다수의 "잉여 인간 대중"을 형성하고 이들은 생존의 비인간적 상황으로 축소하거나 또는 죽음으로 내몰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경제의 국제화'와 '사회적 배제'는 신자유주의의 특징이 된다. 제3세계라는 표현은 가난한 세계를 표현하기 위하여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장경제의 국제화'는 "20대 80의 세계" 라는 전적으로 새로운 지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경제질서의 새로운 국경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국경들은 '사회적 배제'를 강화하고 있다. 오늘의 세계를 지배하는 힘은 시장이다. 시장경제에서 배제된 이들은 글로벌 체계에서 작동하는 규칙과 영향력을 변화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생산과 소비 그리고 정보의 지구화(Globalizaci n)를 통해 확대되고 있었으며 "시장 또는 소비가 인류를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다"라고 사람들을 믿게 만들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 혁명이 제기하는 신학적 도전은 보다 도발적이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를 신학화" 하는 대담성과 적극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혁명', '구조개혁', '해방' 등 자본주의가 오랫동안 기피해온 급진적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한다. 이 새로운 자본주의 신학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금융기관의 새로운 규칙에 적응하는 나라들의 승리로서 소개된다. 신자유주의 질서에의 적응은 정치적 안전과 번영을 의미한다. 이리하여 하나님을 "성공을 축복하고 체제에 잘 순응하는 나라들을 축복하는 전지전능한 왕"으로서 정의하는 '번영의 신학'이 출현하였다. 이 '번영의 신학'은 최근 해방신학이 직면한 새로운 현실이다.

    3. 해방신학의 새로운 주제와 도전

    3-1. 해방전통의 회복과 교회사의 재해석

    실천적 측면에서 중미와 남미의 신학적 관심의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난다면 이론적 측면에서 공동으로 작업한 것이 있는 데 그것은 교회사에 대한 재해석 작업이다. 이 작업은 카톨릭 교회사가 엔리케 듀셀이 핵심적으로 활동하는 교회사 연구회(CEHILA)가 주도하였다. CEHILA는 1983년 멕시코에서 라틴아메리카 교회사의 재정립과 차세대 연구자들의 형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연구회의 첫 번째 목표는 라틴아메리카 교회사를 사회사와의 관계에서 새롭게 조명하면서 교회의 해방전통을 회복하는데 있다. 연구회의 두 번째 목표는 해방신학의 관점에 선 새로운 차세대 교회사가 그룹을 형성하는데 있다. 이 노력의 결과 각 나라별 젊은 교회사가들이 발굴 형성되고 있다. 세 번째 목표는 교회사의 대중화 작업을 하는데 있다. 이 작업은 일반 평신도 교육을 대상으로 한 교재의 집필 출간을 부수적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연구회의 새로운 점은 단지 카톨릭 학자들만으로 구성되지 않고 개신교 학자들과 함께 에큐메니칼한 정신 속에서 공동연구를 진행한다는데 있다. 이 연구회는 1983년 조직된 이후 현재까지 약 11권에 이르는 방대한 교회사 전집을 기획 발간하였다. 이외에도 수많은 강연회, 연구발표회, 자료집 발간과 대중을 위한 중·단기 교회사 연구과정이 지역별로 진행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바스티앙이 주도하는 개신교회사 서술작업이 진행되어왔다. 아마도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자 가운데서 바스티앙 만큼 개신교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이도 드물 것이다. 비록 그의 유럽적 기질이 라틴아메리카인 들에게 저항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바스티앙의 멕시코 개신교회사에 대한 연구는 단연 독보적인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라틴아메리카 개신교회사에 대한 가설은 상당히 도전적인 연구라 할 수 있다. 그의 가설 가운데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개신교의 기원을 지나치게 내재적이고 민족주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 동안 개신교가 "미국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압잡이"라는 비난과 라틴아메리카 사회과학계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외부침투론"에 대한 하나의 반론이라고 할 수 있다. 바스티앙의 연구는 개신교가 혁명의 방해물만이 아니라 기폭제가 되었음을 역사적으로 입증하였다는데 크다란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90년대에는 교단별로 라틴아메리카 개신교의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감리교 전통, 침례교 전통에 대한 재구성 작업은 이미 출간되어 결실을 보았고 현재는 장로교 전통과 오순절 교회 전통을 재해석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3-2.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과 해방신학

    70-80년대 중미에서 신학이 혁명의 선두에 서서 '제국의 신학'과 치열한 투쟁을 하고 있을 때 80-90년대 남미에선 군사독재 정부에 대항한 민주화 운동을 교회가 주도하고 있었다. 남미의 민주화 과정과 함께 라틴아메리카 사회과학계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전통좌파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남미의 현실에 맞지 않는 이론이라고 비판하였으며 수정좌파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효성을 주장하였다. 사실 남미 민주화 운동의 새로운 주체로 등장한 신사회 운동은 전통적인 계급 개념으로는 설명될 수 없었으며 이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적 틀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은 현실성이 있다는 견해가 받아졌다. 여기서 해방신학은 신사회 운동의 이론적 매개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해방신학이 근대성을 수용하는 첫 번째 측면은 근대적 자유를 옹호한다는 점이다. 해방신학은 프랑스 혁명의 근대적 가치들인 자유, 평등, 우애, 민주주의와 교회와 국가 사이의 분리를 인정하였다. 이점은 서구교회 또한 인정한 가치들이다. 이러한 근대 정신의 회복 또는 인정은 해방신학이 교회내의 권위주의와 자유의 제한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만약 모든 새로운 신학들이 민주적 교회론에 공감한다면,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의 집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교회의 권력구조는 상대화되어야 하고 교회의 바닥에서부터 민주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해방신학은 선언하였다. 보프의 "교회, 카리스마와 권력"(1981)는 거의 직설적으로 교회내의 권위주의적 구조와 제국주의적이고 봉건적인 권력 구조 형태에 대한 비판이었다.

    해방신학이 근대성을 수용하는 두 번째 측면은 과학적 분석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신학에 있어서 사회과학적 통합을 수용한다는 점에 있다. 신학이 사회과학을 이용하는 것은 오랫동안 카톨릭 교회에 의하여 "근대주의 이단"으로 간주되어 거절되었다. 이러한 입장은 바티칸 제 2 공의회 이후 변화되어졌으며 사회학과 심리학의 이용이 추천되었다. 70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사회과학과 남미의 종속이론은 해방신학의 '사회분석'의 기본도구가 되었으며 특히 라틴아메리카 가난의 원인을 설명하는 것과 기독교인들의 실천을 위한 불가결한 수단으로서 인식되었다.

    만약 해방신학이 프랑스 혁명의 기본원칙을 받아들인다면 근대성의 다른 측면들에 대한 입장은 보다 비판적이다. 즉 자본주의 산업문명과 그 발전,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진보에 근거한 문명, 자본의 축적과 상품생산 그리고 소비의 팽창, 개인주의, 경제적 계산의 정신과 같은 것에 대하여 해방신학은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해방신학은 자본주의가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자를 위해 경제적 진보, 자유주의, 근대문명을 가져왔다는 것에 비판적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진보적 신학과 해방신학이 다른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서구의 진보적 신학은 제 3세계 민중의 배제를 일시적 또는 우연한 것으로 간주하고 미래는 서구에 있으며 그리고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발전에 달려 있다고 전제한다. 이와 반대로 해방신학은 역사를 정반대로 생각한다. 즉 패배자, 제외된 자, 가난한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이들을 보편적 구원의 담지자로 간주한다. 유럽의 진보적 신학과는 달리, 해방신학은 역사를 진보로 보는 낙관적 사관, 이러한 진보와 객관적 조건으로서 기술과 근대과학의 가치부여, 사회발전의 기본적 기준으로서 개인의 해방을 거부한다. 그러나 이것은 해방신학이 과학적 진보와 기술적 진보 그리고 개인적 자유의 형식적 기준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순히 역사를 이러한 "서구"라는 환경 요소에서 출발하는 것을 부정한다. 다시 말해 근대성의 문제-계몽주의와 이성의 문제-에 있어서 해방신학은 서구의 진보적 신학보다 훨씬 전통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해방신학은 구조의 해방과 개인의 해방을 통해 사회의 진보를 가져 올 수 있다는 낙관적 믿음을 신뢰하지 않는다.

    3-3. 마르크스주의의 비판적 재구성과 경제 신학의 모색

    아마도 90년대 해방신학이 이룬 이론적 작업의 금자탑을 지적한다면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대한 비판적 재구성 작업일 것이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이로는 듀셀(Dussel), 힌켈라메르트(Hinkellamert), 비달레스(Vidales), 성정모(Sung Jung Mo) 등이다. 오랫동안 해방신학은 마르크스주의 영향을 받았거나 추종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지난 20년 동안 전개된 해방신학은 이러한 비난이 근거 없는 편견임을 보여주었다. 1989년 동구의 몰락 이후 제기되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해방신학을 비판하기 위하여 이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마르크스주의는 해방신학의 심오한 합리성을 이루며 이 합리성의 죽음과 함께 해방신학도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해방신학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해방신학은 마르크스주의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현실과 해방실천에서 온 하나님의 구원 경험에서 태어났다. 해방신학은 비판적으로 사회과학을 사용하며 그 가운데서 마르크스주의의 몇몇 이론적 요소를 사용한다. 사회과학내의 모든 위기는 해방신학을 위해 하나의 도전인 것은 사실이나 그러나 해방신학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초기 해방신학에 마르크스주의의 분석방법이 영향을 준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현재로는 오히려 해방신학이 마르크스주의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90년대의 해방신학은 보여 주었다. 오늘 위기에 있는 마르크스주의를 해방신학은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측면에서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이점은 해방신학이 새로운 경제신학을 모색하는데서 나타난다.

    듀셀, 힌켈라메르트, 비달레스, 성정모과 같은 신학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경제적 현실의 빛에서 해방신학을 다시 성찰하였다. 가령, 듀셀은 자본론에 대한 연구를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에서 새롭게 하였다. 거의 10년에 걸친 작업 끝에 그는 마르크스의 주요 작품을 재해석하였다. 마르크스의 철학비판, 자본론, 정치경제학 비판을 그는 그의 연속적 연구서 3권에서 다루었다. 특히 마지막 3 권은 동구의 붕괴가 절정에 이르고 있을 때, 마르크스 과학아카데미가 문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라틴아메리카에는 마르크스가 아직 유효하다"는 결론을 내고 있어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힌켈라메르트도 마르크스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였다. 그는 독일 출신으로서 오랫동안 남미에서 거주하면서 라틴아메리카 현실에 대한 경제적 비판과 신학적 전망을 제시하여 왔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죽음의 이데올로기적 무기"와 "유토피아적 이성의 비판" 등이 있다.
    비달레스는 제 3세계의 외채구조와 부르조아 경제를 비판하는 제 3세계 신학을 전개하였다. 그는 '제국의 신학'에 대항하는 '생명의 신학'을 제시하였다. 또 그는 멕시코 인디오 원주민의 피를 지닌 혼혈인 신학자로서 인디오 문제에 대한 신학적 작업을 선구적으로 전개하였다.
    마지막으로 라틴아메리카 신학의 차세대 이론가로 주목받고 있는 성정모의 경제신학이 있다. 아스만과 힌켈라미르트의 영향을 받은 그는 시장경제의 현실을 심층적으로 비판하는 경제신학을 전개하였다. 그에 의하면 "초기 해방신학은 방법론의 첫 단계로서 사회 분석적 매개를 사용하였지만 사실상 그 분석에 있어서 경제를 간과하였다"고 지적된다. 신학과 경제 사이를 연결하려는 경제신학의 새로운 모색은 최근 라틴아메리카 해방 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역중의 하나이다. 이들 경제신학자들은 신자유주의의 '번영의 신학'이 은폐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신학적으로 비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3-4. 기초공동체의 새로운 성서 읽기: 출애굽에서 지혜문서로

    다른 한편 해방신학과 그들의 목회 노력은 교회의 목회 사상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그것은 기초공동체 운동으로 구체화되었다. 1960년대에 태어난 이 기초공동체 운동은 특별히 로마 카톨릭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참여를 강화하였다.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그리고 다른 대륙 전역에 수많은 기초공동체가 흩어져 있다. 기초공동체에 속한 대다수는 그들의 문화적 뿌리를 사랑하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투쟁하는 대단히 가난한 사람들이다. 기초공동체 운동은 교회가 되는 새로운 길로서 민주주의, 참여, 연대와 나눔을 강조하였으며 그것을 그들 공동체의 투쟁과 연관 지었다. 기초공동체는 해방자 하나님이 가난한자의 희망이었다는 것을 경축하는 것을 즐긴다.

    기초공동체의 신학적 성찰은 이들 공동체 구성원의 억압과 해방의 체험에 기초하고 있다. 비록 사회적 상황이 해방의 과정을 충분히 나타내고 있지 않지만 해방신학은 해방의 가능성과 도전의 비전을 끊임없이 유지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기초공동체는 어떠한 억압의 상황에서도 해방과 구원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60-70년대 해방신학이 그 성서적 근거를 위해 가장 즐겨 읽은 성서는 출애굽기였다. 이외에도 가난한 공동체들이 자주 읽은 또 다른 중요한 성서는 예언서, 복음서, 사도행전, 계시록이었다.

    그러나 80-90년대 이후 심화되는 고통, 실종 그리고 전망의 상실은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기초공동체로 하여금 성서를 새롭게 읽도록 이끌었다. 그것은 욥의 책, 시편, 잠언과 같은 지혜서를 읽도록 이끌었다. 특히 욥기는 해방신학의 주목을 받았다. 무고한 고난과 불의로 고통받는 시대에 기초공동체의 많은 사람들은 구약의 지혜서를 읽으며 대답을 찾기 위한 성찰을 하였다. 이를 통해 해방신학은 고난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해방의 지혜를 공동체에 제공하고 있다.

    3-5. 원주민 신학과 해방문화의 토착화

    아마도 최근 해방신학이 새롭게 집중하고 있는 영역은 원주민 신학의 발전과 해방문화의 토착화일 것이다. 사실상 해방신학은 이제 라틴아메리카 대륙 정체성의 일부이며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유산의 일부가 되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만이 아니라 기독교계 밖의 일반 지식인들과 노동자들도 느끼는 현상이다. 해방신학은 신학과 교회의 한계를 훨씬 넘어서 확장되어 가고 있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노래, 라틴아메리카의 춤은 해방신학과 독립된 현상이나 서로 영향을 주고 있다. 따라서 이들 새로운 문학, 음악, 춤에는 해방신학이 함축되어 있다, 다시 말해 해방신학은 단지 신학적 개념으로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기타, 북, 신화, 상징, 춤, 이야기, 전설 등 문화전반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또 해방신학의 토착화가 논해 지는 문화적 배경이 된다.

    "자기신학" 또는 "신학의 자기발견" 이란 표현은 해방 신학이 토착화의 길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일면이다. 이것은 '적응과 조정'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토착화와 다르다. 전통적 토착화의 주요한 특징은 일방통행의 길로 남아있다. 전통적 토착화의 기준은 서구문화이다. 그것은 교회중심주의, 성직자 중심주의, 인종차별주의 등과 관련이 있으며, 우월성의 느낌을 가지고 있는 서구문화이다. 이와 반대로 해방신학의 토착화 논리인 '문화동질화'(Inculturati n)는 지역의 상황을 강조하며 지역의 문화를 전적으로 존중한다. 여기에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교육적 요소가 포함한다. 해방신학에서 '상호 문화동질화'(interculturati n)의 실천은 성육신의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이중의 운동이다: 신앙의 '문화동질화'이고 '문화의 복음화'이다. 이 이중의 운동이 필요한 이유는 복음이 모든 문화에 생소하기 때문이다. '문화동질화'는 쌍방향의 길로서, 상호문화화가 필요하다. 해방신학의 토착화에서 특수성은 격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상호 문화동질화'의 과정은 지역과 분파적 관심으로 조성된 격리의 상태를 극복하면서 해방문화의 토착화를 전개한다. 원주민 신학의 출발점은 여기에 있으며 이 신학은 현재 많은 결실을 내고 있다.

    4. 맺는 말

    지금까지 필자는 1990년 이후 해방신학의 동향을 다섯 가지의 주요한 주제를 중심으로 간단히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9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은 동구의 붕괴이후 침묵만을 지켜 온 것이 아니라 신학적 생산활동을 왕성하게 전개하여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이외에도 해방신학은 다양한 주제를 논의하였다. 가령 해방신학은 교리와 영성과 같은 이론신학의 고전적인 주제뿐만 아니라 땅, 노동, 여성해방, 에큐메니즘, 환경과 생태 그리고 오순절운동과 같은 새로운 주제에 대한 풍부한 신학적 성찰을 심화하여 왔다. 또 현실 분석 방법론의 차원에서 해방신학은 사회학과 철학과도 대화해 오고 있으며 이것은 계속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브라질의 한 해방 신학자는 "해방신학은 죽었는가" 라는 질문을 한 다음 해방신학은 죽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개인주의와 소비주의가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신학은 공동체의 삶을 건설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현재는 해방신학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의 기회를 준비하는 역사적 '카이로스'(Kairos)의 순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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