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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안교회, 대안신앙> 교회와 시민사회 [카테고리]
  • 최형묵
    조회 수: 3989, 2003.11.23 21:32:29
  • 교회와 시민사회: 불편한 어긋남 혹은 불화(不和)

    강인철(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종교사회학)


    이번 강좌에서는 한국 개신교 교회와 시민사회의 변화되고 있는 관계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그러한 문제들이 왜 나타나게 되는지를 몇 가지 측면 혹은 차원들로 구분하여 접근해보고자 한다.

    1. '사회문제'화 하는 교회, '영향력 관리'의 딜레마

    (1) 증가하는 영향력, 하락하는 공신력: 교회의 사회문제화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social influence)'은 "특정 종교가 다른 사회부문에 변화를 초래하거나, 그 변화를 저지할 능력"을 가리킨다. 종교의 '사회적 공신력(social credibility)'은 "종교에 대한 긍정적인 사회적 인식과 평가"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의 사회적 힘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커지는데도 공신력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거나 점점 낮아지고 있을 경우, 그 종교와 (시민)사회의 대립이 심화될 가능성이 커질 뿐 아니라, 그 종교가 '문제집단'이라는 사회적 평가와 낙인을 초래하는 결과로 나타나기 쉽다.
    도덕과 윤리의 원천이 되는 종교의 특수한 사회 내 위치 그리고 종교에 대한 사회 측의 역할 기대로 인해, 종교의 사회적 공신력은 특히 예민한 문제가 되며 그만큼 훼손되기도 쉽다. 물론 종교의 공신력 하락이 항상 반드시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는 개혁(종교적 혁신)을 향한 구조적 압력을 형성함으로써 교회의 갱신과 개혁을 추동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는 낮은 공신력 수준은 종교집단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법적, 정치적, 군사적, 사회적 권위와 강제력 뿐 아니라 지적 권위마저 상실한 현대사회에서 종교집단이 사회에서 더 이상 도덕적 권위를 주장하기 어렵게 되었음을 뜻한다. 현대사회에서 도덕적 권위를 상실한 종교조직은 여타의 이익집단들과 다를 바 없어질 것이고, 이러한 사태는 조만간 종교적 정체성의 근본적인 동요로 이어질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신자들의 삶에 대한 도덕적 규제력마저 상실하게 되어 종교조직 내에 형식적인 신앙, 종교윤리와 생활윤리가 따로 노는 이중적 신앙을 만연시키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종교집단의 사회적 영향력과 사회적 공신력 사이의 긴밀한 상호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이 둘 사이의 함수관계는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제시될 수 있다. 첫째는 종교집단들이 사회적 영향력에 부응하는 공신력 수준을 유지할 때이다. 이 경우 종교집단들은 사회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요소로 나타날 것이고, 종교와 그 활동은 사회 전반으로부터 환영받을 것이다. 두 번째로, 종교집단에 대한 사회적 공신력이 적다 하더라도 (서구에서처럼) 종교집단의 사회적 영향력이 동시적으로 하락하는 경우, 혹은 (신종교들의 경우에서처럼) 종교의 사회적 공신력과 영향력이 모두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경우이다. 이때 종교의 부정적 측면들이 사회 전반에 가하는 충격은 상대적으로 덜할 것이고, 사회 전반의 관심을 끌지도 못할 것이다. 세 번째로, 시간이 흐를수록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은 증가하는 반면 사회적 공신력은 감소하는 경우, 그리고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는 데 비해 사회적 공신력은 계속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이다. 이 경우가 바로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으로 인해 종교의 부정적 측면들이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1990년대 이후 한국 개신교의 상황이 바로 이 세 번째 유형,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은 증가하는 반면 사회적 공신력은 감소하는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종교의 인적·물적·조직적 자원의 증대에 따라 사회적 영향력은 꾸준히 증가했지만 사회적 공신력은 정체 혹은 감소하는 것, 다시 말해 사회적 공신력의 증가를 동반하지 못하는 급속한 외형적·물량적 성장, 한국 개신교의 진정한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종교의 성장이나 쇠퇴에서 정치변수의 중요성은 확실히 감소하는 추세에 있지만, 사회적 공신력 변수는 여전히 중요할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종전보다 더욱 중요해졌다.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는 데 비해 사회적 공신력은 계속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 주류 종교는 사회의 기득권 세력들과 결탁하여 종교 내부의 문제들이 여론 앞에 공공연하게 노출되는 것을 일시적으로 억누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은 증가하는 반면 사회적 공신력은 감소하는 경우, 내부 개혁세력의 성장을 완전히 억압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며, 종교 내부의 문제들이 사회여론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기도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개신교는 (1) 시민사회의 높은 규범적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2) 시민사회와 교회의 증가하는 가치 격차, 그리고 그로 인한 교회의 게토화·고립화의 위험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80∼90년대의 여론조사 결과들과 신문기사들을 살펴보아도 개신교의 공신력이 급속히 추락하고 있음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유독 개신교에 대해서만 온라인 반대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현상에도 주목해야 한다. 한겨레신문의 금년 10월 24일자(31면)에는 "'안티 개신교' 온라인서 확산"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다. "온라인에서 개신교 반대운동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22일 현재 개신교의 행태를 비판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이트는 안티기독교, 반기독교연합, 안티예수, 하얀십자가, 검은십자가, 안티바이블 등 10여 개에 이르며, 안티기독교사이트를 사랑하는 모임까지 등장했다. 다음 카페에는 현재 9개의 안티기독교 카페가 활동중이다. '클럽 안티기독교'에는 5500여명의 회원이 가입해 반개신교 전사로 활동하고 있다. 클럽 안티기독교는 지난 3일 한강시민공원에서 회원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각종 플래카드와 사진자료를 전시하며 반기독교 활동을 오프라인으로 확대시켰다. 8월15일에는 회원들의 기고들을 모은 {우리는 왜 기독교를 반대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자까지 발간했다."

    이미 거대화된 종교들 가운데 한국 종교문화의 부정적 단면을 가장 자주 노출하는 것이 개신교라는 데 대해서는 대부분 연구자들의 시각이 일치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개신교에 초점을 맞추어 그 부정적 종교문화의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들도 있었다. 예컨대 이재정은 (1) 교파와 교단주의, (2) 교권과 교조주의, (3) 개인화와 탈(脫)역사화를 초래하는, 심령 구원을 강조한 보수주의 등을 한국 개신교의 부정적 요소로 지적한 바 있다. 또한 노치준은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개교회주의'와 '물량주의'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리고 강원돈은 (1) 사회윤리적 관심의 결여, 사회선교를 위한 교회지출의 경색, 대교회주의, 교회건축과 치장에 의지한 교회적 위광의 과시, 시한부 종말론의 득세 등을 부수현상으로 동반하는 교회의 보수화 추세, (2) 교회정치에서 교인총회의 형식화, 교회처리기관의 교인총회로부터의 사실상의 분리, 절대다수인 여성들의 장로 입직을 봉쇄하는 것, 교회치리기관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편파성, 청년·학생의 발언을 억압하거나 배척하는 등으로 표출되고 있는 교회 내 민주주의의 실현문제, (3) '예수 천당, 불신 지옥'과 같은 선교구호,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전통문화의 아이덴티티를 버리고 서양문화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문화적 허위의식, 전통문화에 대한 존중을 이단시하는 풍조 등을 낳는 교회문화의 토착화문제, (4) 종교다원주의신학에 대한 억압 등으로 나타나는 타종교 및 세속이데올로기와의 대화 결핍의 문제, (5) 신앙의 초(超)이데올로기성을 고집함으로써 현실의 모순관계들을 은폐하고 기존 체제의 안정화에 기여하는 신앙과 이데올로기문제 등을 지적하고 있다.

    (2) 공신력과 영향력의 변증법: 영향력 관리의 실패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을 확장하고 유지하려는 것은 종교지도자들의 내재적 속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 상승은 자칫하면 그 종교의 사회적 공신력을 위협할 수도 있다. 여기서 '영향력 관리'의 필요성이 제기되며, 많은 경우 종교의 공신력 하락은 '영향력 관리의 실패'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영향력의 극대화 노력은 종교지도자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종교의 공신력을 실추시키는 일들로 종교를 끌어들일 수 있다. 이것은 일종의 '영향력 확대의 딜레마들'로, 다음은 그 몇 가지 구조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1) 종교의 영향력 확장은 비종교 혹은 유사종교의 영역들로 종교활동의 범위가 확대됨을 의미한다. 종교가 대학, 언론기관, 병원, 사회복지기관 등을 직접 설립하거나 인수하여 운영하는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이 기관들은 역사적으로 종교의 공신력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 기관들로 인해 종교조직이 비신자들과 접촉할 기회는 획기적으로 증대되며, 이 과정에서 종전에는 사회적 관심 밖이었던 종교 내부의 문제들이 대중에게 노출될 수 있다. 성직자의 권위주의와 성차별 문제 등이 그런 예들인데, 그로 인해 종교조직이 시민사회의 지배적 가치들과 괴리되어 있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새삼스럽게 강화될 수 있다.
    (2) 많은 경우 종교가 새로이 진출한 영역들은 근대적인 영역들로서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지만, 종교지도자들은 대체로 그러한 전문성을 결여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성을 결여한 종교지도자가 새로이 진출한 전문적 영역들을 직접 관리하게 될 경우, 전문가 영역의 고유한 의사결정 규범을 무시하거나 그와 갈등하는 종교지도자의 지속적 지배라는 상황은 결국 종교지도자와 예컨대 교육, 의료, 언론 전문가의 충돌로 이어지기 쉽다. 이러한 충돌이 예컨대 파업사태 등을 통해 사회 전반에 널리 알려진다면, 영향력의 확대와 공고화 노력 자체가 공신력 감소를 불러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교회가 설립한 방송국과 신문사, 병원 등에서 빈발하는 부당노동행위와 그로 인한 장기 파업사태 등은 대표적인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다.
    (3)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 확장은 종교의 인적·재정적·조직적 자원이 증대됨을 의미한다. 종교가 보유한 자원의 증가에 비례하여 한편으로는 자원의 이용 방법에서 스캔들의 소지가 증가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독점 혹은 분점(分占)하려는 종교 내부의 욕구도 커지게 된다. 다시 말해 증가된 자원의 관리권을 둘러싼 종교지도자간의 경쟁이 심화되고, 이로 인해 성직자 사회의 분열과 권력투쟁이 강화될 수 있다. 따라서 평신도 전문가집단 뿐 아니라 동료 성직자들의 잠재적 불만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게 되며, 의사결정권력이 성직자집단의 특정 세력 혹은 층위에 집중되어 있고 그런 상황이 고착화되어 있을 경우 그러한 과제를 달성하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이런 경쟁과 갈등이 심화되고 알려질 경우 그 종교의 공신력은 추락할 것이다.
    (4) 종교의 영향력 확대는 종교조직의 관료화와 종교지도자의 특권층화를 동반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종교조직의 관료화는 종교적 혁신이 부재하거나 억압당하는 종교적 무기력증과 나태를 만연시킨다. 이런 상황 자체가 종교조직 내부에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광범위한 평신도층을 발생시키고 불만세력의 조직화를 조장하여, 종교 내부의 문제들이 외부로 노출될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이것은 결국 공신력의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5) 종교가 영향력 확장의 차원에서 대학, 노동현장, 빈민지역, 농촌 등으로 진출하는 것은 조직화된 종교 개혁세력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경향이 있다. 주요 종교의 개혁세혁들은 대부분 이러한 영역들에서 활동했거나 그런 활동에 공감하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차적으로 이들은 종교의 사회적 공신력을 높이거나 하락 속도를 늦추는 데 기여하지만, 교회 내의 개혁과제들을 쟁점화 하는 가운데 사회적 이목에 은폐되어왔던 교회의 부정적 모습을 시민사회 앞에 노출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6)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 증가는 종교의 정치적 효용 증가를 불러왔다. 종교조직이 동원할 수 있는 표와 정치자금의 증가가 이런 현상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종교의 과도한 정치화라는 위험만이 아니라, 종교간의 갈등이나 경쟁이 정치적 갈등으로 연결될 가능성 또한 커진다. 또 종교지도자들이 특정의 정치세력과 연루됨으로써 신자들의 정치적 분열이 심화될 수도 있다. 선거를 앞두고 진행되는 종교지도자와 정치지도자간의 은밀한 거래는 좀처럼 여론에 노출되지 않지만, 간혹 드러났던 사례들에서 보듯이 종교조직 전체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이 엄청나다.
    (7) 교회의 증가된 사회적·정치적 영향력(특히 신자 국회·지방의회 의원 및 단체장의 숫자나 선거에의 영향력) 및 그것에 대한 주관적 자신감은 시민사회에 대한 충분한 설득노력 혹은 공감대 형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교회의 제도적 이익을 위해 교회의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유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시민사회에 대한 설득이 아직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혹은 그러한 노력을 상당 부분 생략한 채, 국회나 정부를 상대로 직접 시위나 청원, 로비 등을 진행하여 그리스도교의 규범에 부합하도록 법제도를 개편한 후, 다시 그 법을 무기로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규제하는 데 국가권력이 동원된다면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말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러한데, ① 시민적 설득이나 동의와 불균형적으로 이루어지는, 종교의 정치적 영향력 추구는 '종교의 과도한 정치화' 내지 '종교와 정치의 불필요한 혼합'으로 비쳐질 수 있고, ② 이러한 정치적 노력이 성공적일수록 그것은 시민사회에는 '폭력적인' 행위로 비쳐질 가능성이 크고, 결과적으로 교회와 시민사회의 괴리는 심화될 것이다. 기독교재산관리법 제정운동이나 기독교정당 건설 논의, 그리고 낙태·이혼·포르노물·동성애 등의 쟁점들에 관한 대응방식에서 '독특하게 그리스도교적인' 의제들을 시민사회에 강제로 부과하려는 시도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사회와 불화 하는' 여러 사례들에는 이와 같은 '공신력과 영향력의 변증법' 혹은 '영향력 확대의 딜레마들'이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대부분의 사건들은 이 딜레마들 중 몇 가지가 겹쳐지면서 심각한 충돌을 불러오고, 공공의 주목을 받으면서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으로 보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민사회로부터 교회가 공박 당하고 있는 여러 사건들에는 교회가 지난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해온 사회적 영향력을 관리하는 데서의 실패가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교회의 사회적 힘이 보잘것없는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힘이 큰 종교들이 항상 시민사회와 갈등관계로 돌입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시대적 변화와 호흡을 같이 하면서 인간구원과 현세질서의 개선이라는 교회 본연의 복음화 사명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증대된 사회적 힘을 얼마나 잘 '관리'하는가에 있다. 그러나 현재 그리스도교 성직층은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을 상승시키려는 노력이 역설적으로 교회의 사회적 공신력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구조적 가능성들에 대해 충분히 성찰하고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오늘날 교회 지도층은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자각한'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능력에서 심각한 장애를 보이고 있고, 그 결과 시민운동 세력과의 가치 격차가 위험스런 수준으로 확대되어 가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무조건적인 사회적 영향력의 추구는 '특권적인' 시민사회의 지배적 가치들에 교회 지도층이 감염될 가능성을 증대시키며, 그 결과 교회 본연의 사명이 위축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 이 경우 교회의 이념(복음화 사명)과 현실간의 격차가 확대될 것이다.

    2. 개혁의 '견인차'에서 개혁의 '대상'으로

    (1) 개신교 진보진영의 탈정치화/보수화/주변화, 보수세력의 부각 및 득세

    개신교 진보적 교파들의 모임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한교협) 차원에서 1990년대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문호개방을 통한 보수화'의 진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문호개방을 통해 일부 거대 보수교단들이 한교협으로 진입하고, 이 교단들이 신자 수에 비례하여 대의원과 분담금을 할당하는 한교협의 구조로 인해 강력한 발언권을 행사하게 될 때, 이전까지 상대적으로 동질적이었던 신학적-정치적 지향은 혼합적이거나 일관성 없는 것이 될 수밖에 없고, 이와 동시에 한교협 내의 신학적-정치적 진보세력은 '소수파'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교협은 총회 참가단체에 기관을 제외하기로 결정한 1970년부터 '한국정교회'와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를 새 회원교단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1996년까지 26년 동안 예장 통합, 기감, 기장을 비롯하여, 구세군, 성공회, 복음교회 등 6개 회원 교단체제로 운영되어왔다. 한교협 내에서 '회원 교단 확장'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1990년경부터인 것으로 보이며, 이런 움직임은 대략 세 가지 정도의 배경적 요인들에 기인한 것 같다. 그 첫 번째는 1989년 12월 신학적-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개신교 교단들의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창립된 것을 계기로 양대 연합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세 불리기'에 나선 것이다. 두 번째로, 한교협에 대한 외국교회 원조의 감소로 초래된 재정위기를 회원교단 확장을 통해 타개해보려는 것이다. 세 번째로, 1990년대 중반부터 가열된 한교협 회원 교단들간의 주도권 경쟁이 한교협의 조직개편 논의로 이어지면서 회원교단의 확장으로 귀착된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문호개방을 통한 한교협의 보수화 과정은 몇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위의 세 가지 배경적 요인들 가운데 한기총의 등장은 이를 계기로 개신교의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의 대립 구도가 과거에 비해 더욱 선명해졌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는 결코 보수화를 이끄는 힘일 수가 없다. 한기총 출범 직전 개신교의 진보 및 보수교단들은 1987년의 '개헌-호헌(護憲) 논쟁', 1988년의 한교협 통일선언을 둘러싼 좌경-용공 논쟁 등을 거쳤으며, 바로 이런 정치적 태도의 차이가 한기총의 등장에 의해 더욱 뚜렷하게 구체화되고 세력화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기총이 일단 자리를 잡음으로써 한교협과 한기총간의 세력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경쟁의 탈정치화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 한교협과 한기총은 각각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대표를 지향할 뿐만 아니라, '한국 개신교의 대표'라는 지위 또한 추구했기 때문이다. 두 조직이 '대표성의 논리'를 좇을 때 세 불리기 경쟁은 불가피해지며, 이러한 경쟁은 조만간 두 조직 모두에게 '탈정치화'의 압력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또 교단 규모 면에서 한교협 내 제3위인 기하성의 존재 자체가 대표적인 진보세력인 기장과 성공회의 비중과 영향력을 격하시키고 한교협 전체의 '보수화'를 촉진했다. 이렇게 보면 한교협 내에서는 '탈정치화'와 '정치적 보수화' 과정이 불가분하게 얽혀 동시적으로 진행되었던 셈이다.
    여기에다 세 번째 요인, 즉 1990년대에 상당히 심각한 양상으로 표면화된 한교협 회원 교단간의 주도권 경쟁을 한기총-한교협간의 경쟁 구도와 겹쳐보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요컨대, 1994∼1995년 간 한교협 내부 갈등의 핵심에는 예장 통합과 기장 교단간의 주도권 경쟁이 놓여 있었으며, 예장 통합은 보수교단 연합체인 한기총에 창립 때부터 가담하고 있으면서 한교협 탈퇴라는 카드로 위협하면서 한교협과 이를 주도해온 기장 교단 모두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신학적 지향과 정치적 선택의 수렴, 그리고 정치적 저항의 국면에서 신학적·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다수파의 상대적 침묵", 다시 말해 "국가와의 강도 높은 대립과 충돌이 연이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한교협 및 가입 교단들 내의 보수적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억압'되고, 심지어 전투의 최전방에 선 '소수의' 진보파들이 대세를 이끌어갔던 것이 1970년대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척되어 "국가와의 강도 높은 대립과 충돌"이 예견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교협 및 가입 교단들 내의 상대적으로 억압되었던 보수적 다수파의 목소리가 이제 자유롭게 분출되고, 그에 따라 "전투의 최전방에 선 '소수의' 진보파들이 대세를 이끌어갔던" 현상도 이제 더 이상 가능하게 않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민주화가 한국 종교들에 미친 중요한 영향 중 하나는, 절박한 정치상황으로 인해 표현이 억제되어왔던, 잠재된 신학적-정치적 차이와 대립들의 표면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의 분열적 효과'와 함께, 우리는 문호개방을 통한 한교협의 탈정치화와 보수화를 강제한 구조적 압력이 재정위기에서 왔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를 뒤집어보면, 1990년대 이전까지 한교협이 견지해온 진보적인 신학적-정치적 태도의 버팀목은 외부로부터의 지원구조였다는 얘기가 된다. 외부로부터의 지원은 교회 및 관련 기관들의 국제적 네트웍에서 오는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지원, 재정적 지원, 인적 지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민주화로 인해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지원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과거에 비해 크게 감소했으며, 재정적 지원은 현저하게 감소되었거나 중단되었고, 인적 지원은 요원의 한국인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종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종속성의 역설', 즉 "종교적 종속성이 강할수록 정치적 자율성은 오히려 증대되는" 현상은 1970년대나 1980년대처럼 뚜렷하게 나타날 수가 없다. 그 반대로 재정 지원이 감소하자 재정위기를 타개해보려는 노력을 매개로 해서 한교협의 탈정치화·보수화는 대단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WCC를 비롯한 외국교회의 재정지원 감소가 어떻게 신학적 보수화, 나아가 정치적 보수화를 촉진하게 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 밖에도 개신교 한교협 계열의 보수화를 촉진한 요인들 몇 가지를 더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비판적 정치참여의 '종교적' 결과"가 매우 복합적인 것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기독교 사회운동의 상대적 약화. 개신교에서는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노동, 농민, 도시빈민, 대학생, 청년, 성직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운동 조직들이 구성되었으며, 1980년대를 거치면서 이 조직들이 연대하여 전국적인 네트웍을 갖는 하나의 운동 '권'을 형성했다. 그러나 기독교 사회운동 세력은 1987년과 1992년의 대통령선거에 대응하는 전술적 선택을 둘러싸고 '분열'되었으며, 통합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보이면서 '분화·이질화'되었고, 적지 않은 평신도 지도자들이 제도정치권이나 세속적 사회운동 영역으로 '이탈'하는 과정에서 약화되었다. 기독교 사회운동의 상대적 약화는 그 자체가 그리스도교의 보수화를 능동적으로 촉진했다기보다는, 그러한 보수화를 '저지'하거나 '완화'시킬 종교 사회운동의 힘이 감소되었음을 의미한다.
    지도자들의 정부 참여와 그로 인한 교회-국가 간 비판적 거리의 축소 혹은 소멸. 1993년 김영삼 정부 등장 이후 개신교와 국가와의 대립 관계는 급속히 약화되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등장 역시 유사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민주화의 진전은 그리스도교 지도자들 사이에 '(민주정부 수립에 따른) 종교 민주화세력의 임무 완수론'이라고도 부를 만한 정서를 확산시켜 일종의 "행복한 철수"를 꿈꾸게 만들기도 했는데, 이러한 "'투사'에서 '고문관'으로의 역할 변화" 역시 국가-교회간의 비판적 거리를 축소시킬 것이다.
    보수적 교회들의 더욱 빠른 성장과 개신교 교회정치의 특성. 1970년대에 개신교에서는 보수적인 교회들이 진보적인 교회들에 비해 더욱 빠른 교세성장의 양상을 보였으며, 진보적인 교단 내에서도 같은 양상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한교협 소속 교단들에서도 보수 성향의 목회자들이 시무하는 교회들 중 상당수가 대형 또는 초대형 교회가 되었다. 개신교의 가장 대표적인 기장 교단에서조차 교회의 양적 성장과 개인 구원, 성령 체험을 중시하는 목회자들, 특히 '성풍회' 소속의 목사들이 이미 대형화된 자기 교회를 발판으로 총회와 노회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신자 수 및 상회(上會: 노회·총회 혹은 지방회·연회) 분납금에 비례한 의사결정권을 보장하는, 한마디로 대형교회일수록 유리한 개신교의 '민주적' 정치구조와 결합하여, 보수파들의 교단 내 입지와 영향력을 강화함으로써 교단 전반의 보수화를 촉진했다.
    '성장을 위한 모색'과 국가-교회 접근. 개신교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신자증가율이 둔화되기 시작하여 1990년대 초부터는 거의 정체상태에 빠져들었다. 신자증가율의 둔화 및 성장정체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개신교가 추구한 돌파구는 '해외선교'와 '북방(구 공산권)·북한선교'였다. 그러나 매우 대조적인 배경을 지닌 움직임임에도 불구하고 성장 애로를 타개하기 위한 이러한 노력 역시 국가와의 협조적 관계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보수화를 촉진한다.
    국가영역과 종교영역의 접점이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경향. 해방 이후 군대, 경찰, 감옥 등 억압적 국가기구들에 대한 종교조직의 참여는 점차 확대되어왔으며, 1970년대 이후에도 이런 추세는 계속되었다. 개신교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교육분야도 마찬가지이며, 국공립병원에서의 선교활동 역시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1980년대 이후 종교들이 방송과 종합일간지분야로 활발하게 진출함에 따라 방송국이나 신문사의 설립·확장과 관련된 국가-종교간 접촉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점도 중요한 변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지방자치제의 실시 역시 종교조직으로 하여금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와의 교섭부담을 크게 늘려놓음으로써 국가-종교의 접점을 확대한 요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국가와 종교의 접점 확대경향과 관련하여 최근에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사회복지의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런 일련의 변화들로 인해 교회가 국가와의 공공연한 대립을 선택하기는 갈수록 힘들어진다.

    (2) '비판적 시민사회'와의 증가하는 충돌, '대체 이미지'의 구축

    1960년대 말 이후 혹은 늦어도 1970년대부터 한국의 그리스도교 교회들은 대학과 함께 권위주의 국가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해 왔으며, 다른 저항적 사회운동들이 형성되고 성장하는 요람으로 기능해 왔다. 한 정치학자에 의하면, 이 시기에 일부 개신교와 천주교 교회들은 "정치적 반대운동의 중심적인 역할"과 함께, "다른 반체제 세력에게 일종의 피난처 구실"을 담당했다(최장집 1985, 210). 또 이 시기에 그리스도교 교회들은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정치적, 사회적 불만들을 표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이기도 했다.
    그리스도교 사회운동 발전의 '한국적인 모델'은 서구와 라틴아메리카에서 그리스도교 사회운동이 출현하고 발전한 맥락과도 상당히 다른 것이다. 서구와 라틴아메리카의 그리스도교 사회운동(예컨대 기독교사회주의운동, 사회복음운동, 가톨릭액션 등)은 급진적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의 성장에 따른 신자들의 교회 이탈에 대한 방어적 대응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서구와 라틴아메리카의 그리스도교 사회운동이 이미 존재하는 강력한 사회운동에 '맞서' '사후적으로' 등장하고 발전되었다면, 한국의 그리스도교 사회운동은 저항적 사회운동의 폐허 위에서, 저항적 사회운동에 '선행하여' 등장하였고, 자신의 발전 과정에서 저항적 사회운동의 '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민주화운동은 1960년대 후반 이후 약 20년 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며, 198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른바 '시민운동 단체들'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민주화운동은 군사 정권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효과적으로 실추시켰고, 결국 군사 정권으로부터 민간 정권으로의 이행을 관철시켰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
    한국 그리스도교 교회들은 1970∼80년대의 민주화·인권운동 과정에서 정서적으로도 강력하고 광범위한 '인적 네트웍'을 구축해왔다. 이러한 인적 네트웍은 일차적으로 과거에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연약한 사회운동을 보호하고 육성해온 '요람 기능(cradle function)'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운동 지도자들 가운데 교회 관련 조직에서의 활동 경험, 혹은 교회의 보호와 후원과 완전히 무관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한국의 대다수 사회운동 지도자들이 교회를 매개로 엮여진 '오래 된 동지들'인 것이다(Kang, 2000: 245). 이런 면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된 한국의 비판적 시민사회는 교회 내부의 사정에 비교적 밝고, 교회에 대해 각별한 애정과 호의를 갖고 있으며, 바로 그 때문에 교회 내의 부정적 측면들이 노출될 때에도 실망하고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개입하기를 꺼려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신교 진보진영의 탈정치화·보수화·주변화라는 최근의 흐름이 가시화되면서, 비판적 시민운동의 지도자들 사이에는 한교협에 대해 더 이상 또렷한 진보적 목소리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어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CBS 사태에 대한 실망은 매우 컸다고 생각된다. 반면에, 주5일 근무제에 대한 반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공격, 대북화해정책(햇볕정책)에 대한 공격과 극단적인 친미반북활동, 이라크파병을 중심으로 한 침략전쟁에 대한 지지, 동성애자들에 대한 공격 등 한기총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의 목소리와 존재는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하나같이 비판적 시민사회에서 폭넓게 합의된 가치들과 충돌하는 일들이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류의 위협적이고 공격적인 전도, 다른 종교의 성직자를 모욕하거나 불상 혹은 단군상 등 타종교의 성물(聖物)을 훼손하는 일, '붉은 악마' 명칭에 대한 시비, 성남 일화 축구단 추방을 위한 운동, '삼보일배' 방식의 환경운동에 대한 비난 등도 시민사회가 추구하는 다원주의적 공존 및 관용의 가치와 부딪친다.

    최근 한국의 비판적 시민사회, 시민운동 세력들은 상충하는 기억들로 인해 혼란스럽고 힘겨웠던 퍼즐 맞추기를 끝내고 1970∼80년대와는 완전히 다른, 그리스도교 교회에 대한 비교적 일관된 '대체 이미지(alternative image)'를 구축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새로운 이미지를 보강하는(reinforcing) 사건들이 이어진다면, 이 이미지는 '일관성'만이 아니라 상당한 '안정성' 또한 얻게 될 것이다. 그 경우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사회 안에서 통용되고 당연시되었던 그리스도교 교회의 이미지와는 다른, 새로운 폐쇄성과 지구력을 갖는 교회 이미지가 상당 기간 동안 한국사회 안에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런 '이미지 교환' 내지 '이미지 대체'는 교회가 시민사회와 관계하는 방식이나 양상이 결정적으로 달라짐을 뜻하기도 할 것이다.
    이런 변화의 영향은 아마도 장기적이고 광범위할 것이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까지 어떤 양상으로 작용할지를 예측하는 것은 현재로선 어렵고 거의 불가능하다. 상황은 아직 유동적이고, 따라서 이미지의 재역전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일종의 '부정적 순환'이 서서히 작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 경우 교회는 시민사회를 설득하는 데 과거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시간을 허비해야 할 것이고, 교회의 잘못에 대한 시민적 인내심의 수위는 낮아질 것이며, 교회의 부정적인 측면들이 노출되더라도 사람들은 놀라거나 우려하기보다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교회의 발언이나 행동은 과거와 같은 주목을 받지 못할 것이며, 교회에 대해 아예 무관심한 태도가 자리잡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이런 가정이 현실화된다면, 신자들의 신규 충원은 감소하는 대신 기존 신자들의 이탈은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3) 민주화 이후 개혁정권의 등장과 '개혁 대상'인 교회: 1990년대 조세분쟁의 사례

    지난 1990년대에는 세수를 확대하고 조세 형평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국가, 그리고 종교의 비영리성과 공익성을 내세워 면세 혜택을 유지 혹은 확대하려는 종교 사이에 일종의 '세금전쟁'이 벌어졌다. 이 분쟁은 1993년 가을부터 시작되어 1990년대 중반에 절정에 이르렀고, 그 이후에는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가와의 갈등에서 주역은 단연 개신교였다.
    1990년대에 표출된 국가-개신교간 조세분쟁의 일차적인 원인은 민주화 이후 등장한 정부의 '경제개혁 의지'에서 찾을 수 있다. 한마디로 이것은 '민주화의 심화(深化)'로 인한, 혹은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이었다. 국가-개신교간 분쟁의 초점은 어김없이 토지공개념이나 부동산실명제, 금융실명제, 재산공개 등의 개혁적 조치들로 인해 새로 도입된 조세제도들이었다. 민주화에 따라 국가가 시민사회의 요구에 좀더 민감하게 반응함으로써 사회복지·교육 등에서 급속히 팽창하는 재정지출 규모를 따라잡기 위해 세수 확대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강화되어왔던 것도 국가-개신교간 조세분쟁이 불거진 주요한 원인이었다. 물론 이러한 세수 확대 노력 역시 '경제개혁'의 명분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실제로 1990년대의 조세분쟁은 대부분 개신교 소유 부동산을 둘러싸고 벌어졌지만, 만약 김영삼 정부 이후에도 금융실명제가 내실 있게 집행되었더라면 현금·채권·주식 등의 형태로 방대한 자산을 보유한 종교들에 대한 과세 시도가 갈등의 또 다른 초점으로 떠올랐을 것은 분명하다. 1990년대의 전형적인 패턴은 정부의 경제개혁 의지가 강하면 국가-개신교간 조세분쟁이 격화되고, 반대로 정부의 개혁 의지가 약화되면 조세분쟁 역시 잦아드는 식이었다. 경제적 민주화 혹은 경제개혁의 강도나 속도와 국가-개신교간 조세분쟁의 정도 사이에는 일종의 함수관계가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종교와 비종교 단체 사이의 조세 격차는 여전한데 종교와 경제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지는 경향'은 국가-종교 조세분쟁의 또 다른 거시구조적 맥락을 이루고 있다. 특히 종교단체 소유의 건물·토지 등에서 나오는 임대 수입이나 이들 부동산의 매매를 통해 얻는 양도 차익, 금융기관과의 현금·채권·주식 거래를 통한 수익 등 경제적 이득을 낳는 종교계의 경제행위가 그 빈도·규모·범위 면에서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는 '과세를 위한 국가의 종교영역 개입과 통제'를 촉진한다. 또한 종교계 전반에서 확산되고 있는 '구원재의 상품화' 및 '종교의 산업화' 경향 역시 종교계에 폭넓게 주어지는 면세 혹은 감세 특전의 기본전제들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국가와 종교간의 조세분쟁을 부추기고 있다. 종교계의 방대한 현금 수입, 불투명한 재정운용, 면세 특권, 종교계의 재정상황에 대한 국가의 정보 공백 등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종교인들에 의한 경제범죄의 급증과 대형화 추세 또한 범죄수사나 조세 추징 등을 무기로 한 국가의 종교통제를 유도하고 있다. 빈발하는 종교인들의 경제범죄도 종교단체에 주어지는 면세 혜택의 근거를 의심하도록 만드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종교인 및 종교단체의 경제행위 증가·확산, 종교의 산업화, 경제범죄의 증가·대형화 등은 이른바 '민주정부'로 하여금 '조세제도를 수단으로 한 종교개혁'을 사회개혁의 주요 의제(agenda) 중 하나로 간주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미 확인했듯이, 1990년대 조세분쟁은 주로 종교 소유의 부동산에 대한 국가의 과세 시도로 시작되었으며, 국가를 상대로 한 종교 측의 갈등 주체는 거의 항상 '개신교' 혹은 '불교'였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부동산 관련 세제들만이 주로 문제되었던 것은 금융실명제 및 금융소득 종합과세제도가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금융실명제와 관련된 세제를 강력하게 추진했더라면, 국가-종교간 조세분쟁은 실제보다 훨씬 격렬하게 전개되었을 것이라고 예측해볼 수 있다. 한편 앞의 거시구조적 요인들이 대부분 종교계 일반과 국가 간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왜 하필이면 개신교와 불교가 주된 갈등 주체로 부각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다른 방식의 설명이 필요하다. '종교에 대한 몰이해'니 '종교의 자유 침해'니 하는 해당 종교들의 주장과는 달리, 1990년대 조세분쟁은 '종교 전반'과 관련된다기보다는 '특정 종교들'에서만 발견되고 작동되는 미시구조적 맥락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조세분쟁과 관련하여, 종교단체가 소유한 부동산의 '규모' 자체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많은 부동산 자산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조세분쟁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소유한 부동산의 매매 빈도와 그로 인한 차익의 크기, 부동산의 위치 혹은 소재(교회 혹은 사찰의 경계 내부/외부), 부동산의 용도(종교 고유 목적 부합성), 부동산이 유휴지화(遊休地化) 될 가능성, 부동산 소유의 적법성 등이다.
    개신교의 경우 소유 부동산의 매매 빈도와 차익의 크기, 부동산의 위치, 부동산의 용도, 부동산의 유휴지화 가능성 등의 문제들을 두루 안고 있었다. 개신교에서는 거의 완전한 자유경쟁의 상황 속에서 '독특하게 왜소한 출발'을 강제하는 독특한 교회 형성 및 발전 방식으로 인해 부동산 거래의 빈도가 매우 높고 그로 인해 방대한 양도 차익이 발생하며, 부목사나 전도사 사택과 주차장 등 교회 울타리 바깥에 상당한 부동산을 소유할 가능성이 높고, 교회시설 건축용 부동산 구입과 실제적인 건축행위 사이에 상당한 시차가 발생함으로써 부동산이 유휴지화될 가능성이 높고, 나아가 사실상의 투기를 목적으로 한 부동산의 매입 및 보유 관행이 꽤 확산되어 있는 점 등이 조세분쟁의 요인들로 작용했다. 이런 개신교적 특성들을 잘 설명해주면서도, 그 자체가 이런 특성들을 더욱 강화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는 것이 바로 '개교회주의'와 '성장(제일)주의'였다. 1990년대의 신자증가율 정체 및 신자들의 종교적 이동 경향, 과시적인 교회건축 문화, 교회건축 시 편법적이고 불안정한 방식의 현금동원 관행, 영세한 개척교회 설립을 강제하거나 조장하는 교단정책 등이 또 다른 촉진 요인들로 작용하고 있었다.

    1990년대의 경험이 개신교 지도자들에게 어떤 교훈 내지 경고로 받아들여졌으며, 따라서 이 사태가 이 개신교의 내부적 혁신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될지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 부동산투기 바람에 일조(一助)하거나 그에 편승해왔다는 비난마저 듣고 있는, 부동산 거래의 규모와 빈도를 비정상적으로 높이는 현재의 관행들이 과연 개선될 것인가? 특히 높은 지가 및 임대료 부담에도 불구하고, 상급 교단기관 혹은 기존 교회들의 충분한 도움도 없이, 출혈적인 자유경쟁의 분위기 속에서, 지극히 영세한 임대교회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지금까지의 교회 개척 관행은 과연 억제될 수 있을 것인가? 영세 개척교회들의 출현을 조장해온 개신교 교단들의 정책들(교회개척 의무화방침 및 교회증설운동 등)은 재고(再考)될 것인가? 특정 교단 내에서 혹은 교단들의 연합체 안에서, 교회의 지리적 이동이나 신설 등을 통제·조정하는 움직임이 강화될 것인가? 보다 근본적으로, 이런 개신교적 특성들을 조장해온 '개교회주의'와 '성장주의'가 과연 제어될 수 있을까? 나아가, 교회 재정지출의 상당 부분을 시민사회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사회적 공공선(公共善)을 증진하는 용도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인가? 시민들의 자발적인 존경을 이끌어낼 만큼 성직자나 수도자들의 생활양식을 청빈(淸貧)하게 바꿔나갈 수 있을까? 종교인들의 대규모 경제범죄를 차단할 수 있을 정도로 재정운용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민주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발생하게 된 구조적 맥락들을 볼 때, 1990년대의 조세분쟁은 이러한 변화들을 향한 요구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쟁의 과정에서 대부분의 종교지도자들이 (이를 내적인 반성과 쇄신의 기회로 여기기보다는) 정부의 '잘못된' 종교정책을 성토하고 그에 저항하는 데 주력했던 점으로 미루어, 전체적으로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은 낮다고 말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조세분쟁이 가져온 매우 중요한 결과 중 하나는 (민주화에 따른 종교의 탈정치화, 사사화라는 예상과 충돌하는) '종교의 정치화'였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조세정책들이 기성 종교들에게 '통제의 강화'와 '불이익의 증가'라는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종교지도자들은 다양한 정치적 수단들에 의존하여 면세 혜택의 유지라는 자신들의 제도적 이익을 지키려고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자기 종교의 신자인 국회의원들을 동원한 로비와 압박, 그리고 선거에서의 지지 여부를 무기로 조세제도를 변경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방식이 가장 중요한 수단들로 활용되었다. 면세 특혜의 유지를 위해 '기독교재산관리법' 제정을 추진했던 개신교의 경우, 신자 국회의원들을 동원한 입법활동이 지지부진하자 선거를 앞두고 직접 '기독교정당'을 창당하여 법을 관철시키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민주화에 따라 선거정치가 활성화되면서, 종교지도자들은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회 의원 선거 등을 정치인들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수단으로 십분 활용하였고, 실제로 이런 시도들은 매우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거를 앞둔 정치세력들은 각각 1천만 명 이상의 추종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종교세력들의 단호한 저항 내지 지지 철회 압력 앞에 대체로 무력하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되곤 했다. 따라서 선거를 전후하여 특정 종교를 겨냥한 예외조항들이 늘어나면서, 개혁적 세제들은 개혁적 잠재력을 점차 잃어갔다. 그러나 선거를 매개로 한 정치엘리트와 종교엘리트의 상호 접근은 은밀하고 불투명한 정교유착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개혁적 조세제도들이 등장 당시 종교에 대한 직·간접적 통제 효과를 발휘했음은 분명하지만, 선거에 즈음해서 종교-정치 관계는 '돈(세금 깎아주기)과 정치적 지지의 교환' 관계로 변질되었다는 의심을 살 만했다. 국가와의 계속되는 조세분쟁이라는 상황에서, 교단 지도부의 역량 또한 정치인들을 통한 로비능력이나 주요 선거를 활용하여 정부의 양보를 얻어내는 능력에 따라 평가되기 쉬워지게 마련이다. 궁극적으로 1990년대에 '종교의 정치화'는 시민사회에 의해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혹은 시민사회의 기대에 반하는 면세 혜택의 존속 혹은 확대라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공동선 정치'라기보다는 (종교집단만의 협소한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 정치'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하겠다.
    김영삼 정부가 출범 초기에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를 뼈대로 한 과감한 경제개혁조치들을 밀고 나갔을 때 종교지도자들은 일단 환영과 지지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개혁조치들이 막상 시행에 들어가자 종교지도자들은 거세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종교집단이 개혁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거대 종교집단들이 '개혁에 저항'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종교지도자들 사이에 개혁 혐오증 내지 개혁에 대한 공포심이 확산되었고, 이런 사회심리적 정황은 곧 종교집단의 '수구적' 면모, '집단이기주의적' 면모로 대중 앞에 가시화되었다. 바로 이것이 1990년대 조세분쟁의 또 다른 의미이자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김영삼 정부 말기, 그리고 IMF 위기와 함께 등장한 김대중 정부 이후 국가의 경제개혁 의지는 크게 약화되었고, 그에 따라 종교단체가 소유한 부동산·동산에 대한 과세 시도를 둘러싼 갈등은 거의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개혁과 민주화를 경제영역으로까지 밀고 나가려는 정치세력이 등장한다면, 조세분쟁은 얼마든 재연될 수 있다. 최근의 주목할 만한 변화는, 유력한 성직자들의 대형 경제범죄나 스캔들, 고소득과 귀족적 생활양식, 교회의 사유화 추세…등이 종종 보도되면서 종교인과 종교단체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라는 압력이 시민사회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조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인들이 면세 특혜의 핵심적인 근거가 되는 '공공선'에의 기여, (성직자의) 삶의 '청빈함'을 시민들에게 입증해 보이는 데 실패한다면, 이런 압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고, 민주적인 정부는 여론의 압력에 어떻게든 반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3. 맺음말

    비기독교인, 비판적 시민사회, 개혁적 정부와 점점 일그러져 가는 관계를 어떻게 정상화시킬 수 있을까? 대안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은 "성찰능력의 제도화"라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개혁운동의 조직화·활성화를 중심축으로 하되, 대안적 언론, 대중적인 신자교육 시스템의 구축이 반드시 함께 가는 게 필요할 것이다. 이를 통해 "아마도 앞으로 더 많은 추문들이 생산·유통·소비되고 나서야 비로소 교회의 추문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한편 교회개혁세력은 교회 내적으로 다음의 네 가지 제도적 개선에 힘을 쏟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1) 교파난립의 방지. 교파의 분립이 (생존경쟁에 가까운) 선교열정에 불을 붙임으로써 개신교 지형 전체의 역동성과 확장을 추동해가던 시대는 이제 끝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교파의 난립, 교단간의 과잉경쟁은 개신교 전체의 공신력 하락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 무수히 난립해 있는 교단들의 통합운동을 포함하는 교회일치운동이 시급히, 파격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여기에 신학교들의 통합 및 학생 수 축소를 반드시 포함시킴으로써, 성직자의 과잉배출 문제, 성직자의 질 저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 교회난립의 방지. 앞서 말했듯이, 높은 지가 및 임대료 부담에도 불구하고, 상급 교단기관 혹은 기존 교회들의 충분한 도움도 없이, 출혈적인 자유경쟁의 분위기 속에서, 지극히 영세한 임대교회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지금까지의 교회 개척 관행은 억제되어야 한다. 영세 개척교회들의 출현을 조장해온 개신교 교단들의 정책들(교회개척 의무화방침 및 교회증설운동 등)은 재고(再考)되어야 한다. 특정 교단 내에서 혹은 교단들의 연합체 안에서, 교회의 지리적 이동이나 신설 등을 통제·조정하는 움직임이 강화되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런 개신교적 특성들을 조장해온 '개교회주의'와 '성장주의'는 제어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선의의, 선량한 교역자들마저 '돈에 미치게 만드는' 현재의 구조가 극복되어야 한다. (3) '머리수 교회정치'의 시정. '머리수 교회정치'는 현재 교단, 초교파 기관 수준에서 개신교의 보수화를 촉진하는 핵심적인 힘 중 하나이다. 신자 규모에 따라 영향력과 의결권을 보장하는 명시적, 관행적 교회정치구조를 '민주주의적인' 것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이것은 주식 소유 비율에 따른 의결권을 보장하면서 소액주주들의 참여를 제한하는, 주식회사나 다를 바 없는 비민주적 정치구조이다. 교회와 교단, 초교파 기관에 대한 '과두적 지배'를 조장하는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교회 내 민주주의 원리를 모색해야 한다. (4) 교회의 사유화와 성직자 권위주의 방지 장치, 교회재정운용의 투명화·공공화를 위한 장치 마련. 언론에 보도되는 개신교의 추문들 대다수가 이 문제들에서 기인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교회개혁운동의 핵심적 목표가 된다는 데 대해서는 폭넓은 공감대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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