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로그인

180
yesterday 161
visitor 884,782
  • <대안교회, 대안신앙> 교회의 지역사회 선교 [카테고리]
  • 최형묵
    조회 수: 4628, 2003.11.23 21:37:34
  • 우리는 죽어도 예수는 바로 그려야
    -강남향린교회의 지역사회선교

    김경호(강남향린교회 담임목사)

    들어가는 말
    진보적인 교회의 실천은 어떻게 나타나야하는가? 이 문제는 지난 십년간 강남향린이 꾸준히 던져온 물음이다. 거기서 얻은 결론은 지역사회이다. 무엇이 예수운동인가? 교회가 통일운동도 할 수 있고, 노동운동도 할 수 있다. 각자 교회가 처한 환경과 주변의 여건에 따라 여러 가지 하나님나라 운동을 펼쳐갈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당이나 사회단체의 운동과 구별되는 미묘한 차이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유신이래로 진보적 기독인들은 반독재 민주화 투쟁, 통일운동 등 우리사회에 꼭 필요하고 있어야할 자리에 위치해왔다. 이것은 진보적인 기독인들의 자랑스런 전통이고 계승 발전해야할 역사이다. 그러나 지금 사회적으로 우리가 거둔 승전보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에서는 역 보수화의 바람이 거세고 진보적인 목소리는 인사치례 정도로 끝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왜 그런가?
    그동안 암울한 시절에 우리들이 길 거리로 나가 외치고 때로는 고난도 받았으며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아직은 부족하지만 많은 부분 민주화 되었고 상당한 진보를 가져온 것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 그 시대에 교회가 사회에 대해 가졌던 활발한 관심들은 퇴조했다. 거리의 투쟁이 잦아질 무렵인 1990년대 초반에 기독교계에서는 아이덴티티 논쟁이 벌어지고 그 때부터 교회들은 오히려 잠수하거나 보수화의 길로 급격히 퇴보하고 만다. 그 후로 교회에 대해 들리는 이야기들은 상직을 벗어나 입에 담기 부끄러운 이야기뿐이라 이제 뉴우스에서 교회 이야기가 나오면 차라리 피하고 싶은 심정이다. 도대체 무슨 결함이 있기에 큰 싸움에 이기고도 내적으로는 더욱 피폐해지는가?

    교회운동은 지역사회의 운동이 되어야 한다
    이제까지 교회의 운동은 목회자 개인의 양심에 의한 운동이지 사실은 조직적으로 교회의 운동으로 보기는 힘들다. 그것은 무슨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루루 종로 5가에 모여 파고다 공원까지 행진하는 식의 운동이었지 그 이상의 무엇을 시도해 보지 못했다. 이슈 중심의 운동, 하부 조직기반이 없는 운동, 엄밀히 말하면 기독인 또는 목회자 들이 개인적 양심으로 견딜 수 없을 때 기독교의 외피를 빌려 한번 거리에 나와 외치는 운동뿐이 되지 못했다면 혹평일까? 이렇게 운동이 조직 기반도 없고 즉흥적이다 보니 전문성 없는 운동이 되었고, 이것저것 사회가 분노하는 대로 모든 분야에 다 참여하는 백화점식 운동이 되고 말았다.
    우리사회가 다 전문화 되고 특성화 되고 조직화되었는데 교계의 운동은 그 밑도 뿌리도 없이 교인들은 다 교회 안에 조용히 모셔놓고 아직도 몇몇 명망가에 의한 운동, 목회자만의 운동인 채로 있으며, 교계의 운동이 마치 모든 운동을 지휘하는 주도하는 양, 사회의 문제가 일어나는 모든 곳을 다 기웃거리고, 다 섭렵하는 것은 자기 분야를 가지지 못하는 별로 유용하지 못한 운동임을 자처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그 운동의 성과를 담을 그릇도 없다. 성과가 있다면 그때 지도적 역할을 하던 분들이 국회의원으로 장관으로 정계에 진출한 것일까? 교회의 투쟁의 결과가 교회로 돌아오지 않고 몇몇 두드러진 역할을 한 개인들이 정계로 입문하는 디딤돌 역할을 해버린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분들의 의지가 아니고 사회가, 정계가 그들이 가진 도덕성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가 변화 되었다면 오죽이나 좋으랴? 그러나 결국은 부패한 정치인들의 도덕적 위장막 역할에 그쳐버리지나 않았나 의심이 간다. 그만큼 교계의 인물이 담당하기에는 현실 정치의 수렁이 깊다고나 해야 할까?
    우리 역사를 한 바탕 휩쓸고 간 민주화 투쟁, 통일운동이 교회와는 무관하게 교회 밖에서 전개되었고, 교회 안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결과 교회 내에 유능한 인재들을 교회 밖으로 끌어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러니 그동안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꾸준히 교회만을 붙잡고 지내온 보수적인 세력들이 교계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순리 아닌가?
    필자는 민주화 투쟁이나 통일운동도 신앙인이 신앙의 양심을 가지고 당연히 참여할 일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민의 한사람으로, 민족공동체 구성원의 한 사람의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제 교회의 운동은 이런 일들에 기독인이 개인의 자격으로 참여하기보다는 보다는 교회라는 공동체로서 참여하고 그 교회가 함께하는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보다 더 조직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또한 교회 역시 건강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며 교회의 갱신과 교회의 조직을 위해서도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교회의 운동은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가 속해 있는 지역사회의 운동이 되어야 한다. 통일 운동, 민주화 운동이 되더라도 그것은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을 향한 운동이 되어야 한다. 옛날처럼 무슨 이슈가 있을 때 종로 5가에 와서 한번 얼쩡거리고 가는 방식의 운동은 단지 소모적인 운동이 되기 쉽다.
    교회의 진보운동은 철저하게 그 속한 지역사회 내에서의 운동, 그 지역사회를 변화 시켜나가는 운동이 되어야한다. 참으로 우리 사회를 변화 시키려한다면, 기독교가 그 길에 쓰임받고자 한다면, 기독교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에 만족을 느끼고 안주해서는 안된다. 우리사회의 정치행위가 기독교, 천주교, 불교.... 이런 단위로 나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종교적 외피를 가지면서도 단지 종교내적인 일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사에 다 의견을 내고 참여하여 마치 작은 정부와 같이 한다면 그것은 명백히 조직적인 모순을 갖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사회에 대해 개방적이고 참여적이어야 한다는데 필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것은 당연히 교회의 조직을 통해서 또한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를 통해서 나타나야한다. 우리사회의 모든 정치, 행정의 진행이 시, 구(군), 동(면)의 단위로 나가는 것이 자명하지 않는가? 그런데 교회가 이 현실 단위를 무시하고 하는 운동은 한 개인의 양심에 근거한 운동은 될지 몰라도 교회의 운동은 아니다. 교회 없고, 지역 없는 교회운동은 번지 없는 운동이 되기 쉽고 실제 별 도움이 안 되는 환영받지 못하는 운동이 되기 쉽다. 실제로 그런 현상들이 비일비재하게 보인다.
    교회의 강점은 그 조직에 있다. 전국방방 곡곡 교회의 조직이 들어가 있지 않은 곳이 없다. 3.1운동 때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33인 민족대표중 17명이 참여하기는 하였으나 개인적으로는 대부분 망설이고 주춤거리며 참여하였으며, 나중에는 도피하거나 자신의 참여를 부정하며 심지어는 친일로 회귀한 인물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일운동의 피해자, 구속자, 살해당한 사람들을 보면 당시 전체 인구의 1% 뿐이 되지 않는 기독인들이 50-60%를 차지한다. 이것은 그 당시 기독교가 유일하게 전국적 조직망을 가진 조직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의 생각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매우 강한 강점이다. 기독교운동은 교회의 조직이 가지고 있는 전국적인 조직망을 활용하여 그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각자의 지역을 민주화하고, 개혁해 나가는데 주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지역사회를 향해 과감하게 연대하고 참여하는 구조로 가야한다. 만약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에서 그런 운동체가 없다면 교회가 중심이 되어 그 지역 내에서 시민운동, 민중운동, 통일운동 등을 창출해 나가야한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정말 이 땅의 변화와 개혁을 감당해 나가는 힘 있는 조직이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진보진영에서는 아직까지 번지수 불확실한 정치 투쟁에 매달리거나 방기하고 있는데 비해 새롭게 시작된 복음주의권의 사회참여운동이 이것저것 백화점식의 운동을 탈피하여 집중도 있고 차분하게 교회내의 갱신의 과제를 가지고 진행하는 것은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운동의 진행과정상 단계적으로 적절하고 타당한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민중신학이 가지는 "사건으로서의 교회"가 가지는 혁명적 개념을 존중하고 필자의 교회관에 주류를 형성하지만 사건이 가지는 일시적이고 유동적인 성격과 교회의 조직이 가지는 안정되고 항상 꾸준함을 요구하는 성격과 충돌한다는 것을 말한 적이 있다.

    "사건으로서의 교회가 갖는 교회론의 혁명성은 이데올로기적인 측면, -이것이 가장 큰 충돌점이겠지만, 이것은 교육을 통해서 해결한다고 제쳐놓더라도 일반교회의 조직과 충돌한다. 교회의 성격자체를 자체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건의 한 단위와 동일시하게 될 때, 교회는 필요한 사안에 따라 조직하고 흩어지는 단위여야 한다. 교회는 한 당위적인 사건을 수행하기 위한 동지들의 모임은 아니다. 교회는 끊임없는 친교와 인간적 신뢰로 엮어져있는 조직이기 때문에 한번 쌓아놓은 교우들 간의 신뢰관계를 영구화하려고 하고 따라서 그 조직 자체의 항상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교회 자체를 사건의 한 단위로 인식하게 될 때 교회는 변화하는 사건에 따라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바꾸어 가야한다. 이것은 교회의 구심력을 약화시킨다. 또한 교회는 사건마다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와 다른 시각의 폭을 수용하지 못하고 배제함으로서 점차적으로 자신의 외형을 축소시켜 결국 대중과 유리된 소수로 남을 수 밖에 없다. 교회가 조직에 있어서 포용력을 상실하게 되고 협소화되며, 아직 머뭇거리는 복음의 초신자들을 수용하고 동화시켜 나갈 가능성은 봉쇄된다. 또 사건으로서의 교회론은 또한 교회가 정당, 사회단체와 구별되는 경계가 모호한 점과, 실제로 매주일 사람들이 모이고 예배하는 공동체로서, 조직체로서의 구체성이 모호해지면서 자칫하면 관념적인 형태의 교회를 상정할 수 있다는 약점을 가지게 된다."(김경호, "민중신학에 토대한 교회" 시대와 민중신학 제2권, 시대와 민중, 1995, 40쪽)

    이에 필자는 민중신학의 이러한 "사건으로서의 교회"의 개념을 계승하면서 교회의 조직적, 현실적 측면을 고려한 교회의 모습을‘해방의 진지로서의 교회’라고 이름 붙여보았다.. 이것은 필자의 목회 경험상 정치투쟁과 이슈중심의 기독교운동과 교회라는 일상의 조직, 예배공동체와 만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경계점이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조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해방 사건의 역할은 교회의 위상을 사건 중심적, 이슈 중심적으로 모든 정치적 사건에 전면에 나서서 즉각 반응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양심적인 대중을 재생산하고 교육하여 전선에 파견하며, 경제일방이 아니라 문화, 시민사회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데올로기 투쟁을 통하여 정당성을 획득해 나가는 것이다.
    교회는 기동적 힘의 그루터기로서 변화된 사람을 전선에 파송하는 역할을 한다. 교회는 일선에 있는 정치, 사회적 단체들을 후원하며 연대하고 인적자원을 파견하기도 하고 보충 받기도 하며 그들을 후원하며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교회가 교육의 역할만을 감당하는 것은 아니며 지역사회 혹은 중앙사회 속에서 해방의 사건을 일으키는 한 단위로 나서기도 하며 기동성 있게 전선에 투입되기도 하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선뜻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도 항상 염두에 두어 교회 전체가 몸을 싣는 다기보다는 교회 내 통일위원회, 지역사회 문제위원회 등의 지체를 통하여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교회조직에 있어서의 다양화가 이루어질 때, 전문화된 소그룹을 통한 다양한 참여의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필자가 제안하기도 하였다(상게서, 46쪽).
    그리고 이러한 실천을 펼치는 장으로서 중앙사회 보다는 교회가 서 잇는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이 보다 중요하며 이것은 교회가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조직의 견고성을 갖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강남향린교회의 지역사회선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상정하고 있는 지역의 의미를 알 필요가 있다. 강남향린교회가 상정하고 있는 지역은 단순히 지리적으로 교회를 중심으로 일정한 테두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는 단순한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는 건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효소, 우리 사회에 희망을 주는 그루터기이므로 교회는 문제가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투신할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 곳은 가장 가까운 이웃사회일 수도 있고 먼 이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특정 지역성을 유지하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복음의 통전적 능력(개인구원, 사회구원)을 어느 때나 보여 줄 수 있느냐에 있다. 지역이란 것은 넓게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지역사회운동은 교회 내에서 갈등을 겪기도 하였다. 특히 '화훼마을 화재사건(후에 언급될 1999년의 화재사건)'에 필자가 대책위원장을 맡고 적극 가담할 때, 그 동안 묵시적으로 참여하던 교인들 중에서 이런 불안과 갈등이 불거져 나오게 되었다. 교우 중에는 대부분 강동구 송파구 주민이기도 하지만, 타 지역의 교인도 무시 못 할 정도로 많은데 멀리서 교회가 좋아 참여하는 교우들이 "내가 속한 지역의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멀리 교회를 나와 교회 주변의 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에 왜 우리가 관심과 열정을 불어넣어야 하며 왜 매주 벌어지는 이 지역(강동·송파) 상황을 보고 받고, 그에 대한 설교를 들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이 시기는 강남향린교회와 필자가 가장 적극적으로 지역 사회에 개입한 시기였다. 그래서 그만큼 교회 내에서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이 무렵 교회의 당회원 중에서도 노골적으로 김 목사에게 지역 문제에 대한 설교를 중단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으며, 몇몇 교회 중진들이 '비닐하우스 촌에 있는 사람들이 사실은 보상을 바라고 사는 투기자들이 대부분인데, 교회가 너무 순진하게 그들의 문제에 개입한다'고 하여 교회의 선교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기도 하였다(후에 이들은 다 교회를 이런 저런 이유로 떠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 지역에 자신이 살지 않더라도 약자와 가난한 자가 있는 곳은 어느 곳이든지 "하나님께서 선교하시는 장"이고, "하나님의 지역사회"이며 우리는 그곳에 참여해야한다고 설득하였다. 우리가 일해야 할 지역은, 진정한 우리의 이웃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도 보듯이 바로 우리의 긴급한 정신적, 물질적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다. 이들을 가까이 하는 그곳이 바로 우리가 일해야 할 목장이다.

    강남향린교회의 선교
    강남향린교회 선교의 중요한 두축으로 지역내 시민운동과 빈민운동을 들 수 있다. 지역시민단체인 "위례시민연대"가 교회 교육관 안에 자리를 잡고 교회와 연대하여 활동하는 것과 지역내 빈민지역 안에 어린이 방과 후 학교인 "꿈나무학교"를 세워 이를 중심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은 물론 지역 빈민들의 인권과 권익을 위해 일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시민운동과의 연대
    강남향린교회는 교회가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역 교회 하나로서는 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강남향린교회는 지역에 있는 시민사회 단체, 종교 단체와 연대하기를 원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함께 논의하고, 연대하여, 실천할 수 있는 연대 조직의 필요성이 등장하였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교회자체로서 사회운동에 참여하기보다는 지역사회 내에서 양심적인 시민단체, 또는 민중들과 연대하는 구조로 나가야 한다. 지나친 개 교회주의는 지역운동을 하는데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교회의 이름으로 사회 운동에 참여하는 데에는 아직은 우리사회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공간을 개방하여 또는 조직적인 연대의 장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이미 활동하고 있는 지역사회의 시민운동 또는 지역사회운동과 긴밀하게 결합해 나가는 것은 개 교회의 갱신은 물론 교회가 서있는 지역사회의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이다.
    강남향린교회의 예를 들면 교회 개척 한 이듬해 올림픽공원내 경륜장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시민모임이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그를 본격적인 계기로 지역연대체가 생겨나게 되었다. 마침 이듬해 1995년 처음 갖는 지자체 선거와 발맞추어 지역 사회에서 바른 선거를 치르고, 민주적 인사들이 참여하기 위한 부정선거 감시, 민주후보 지원, 지역신문 발간을 통한 선거홍보 등을 맡을 조직이 필요하게 되어 지역에서 '민주사회와 참다운 주민자치 실현을 위한 강동송파 시민회의'가 구성되었다.
    강동송파시민회의는 1996년 12월 '강동송파시민단체협의회'로 조직을 상설화하고, 사무실을 열었다. 여기에서 필자가 대표를 맡아서 지역 현안의 문제를 교회의 선교적 활동과 연계하여 실천하는 작업을 계속하였다. 강동송파시민단체협의회는 17개의 단체가 협의하는 조직이었는데, 주로 민주노총 산하의 지역노조, 노점상 연합회, 영세상인 연합회, 빈민 조직인 주거연합, 자생적인 지역단체들과 강남향린교회 등이 참여하였고 언제나 참여단체 중에서는 유일하게 참여한 종교단체로 '강남향린교회'가 맨 앞에 주관단체로 언급되었다.
    강동송파 시민단체협의회는 선거후에는 그 동안 이 지역의 의정감시활동으로 관내 구의원들의 선거 시 약속이행 사항과 이들의 의회 내 발언을 모니터하여 이행사항을 중심으로 의원들 개개인에 대한 평가서를 발간하였다. 이것은 지방자치 선거시 참고할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강동송파 시민단체협의회는 1997년 1월에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철회와 민주수호를 위한 강동송파대책위원회" 구성하여 활동하였다. 필자와 교우들은 대책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집회에 참여하여 날치기 통과의 부당성을 알렸다. 그 해 5월에는 "강동구민 북한어린이돕기 운동본부"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운동본부에서는 김동진, 황기룡 등을 중심으로 열심히 북한 어린이 돕기 성금을 모금하였는데 액수는 50,070,000원에 이르는 개가를 올렸다. 모금을 마친 후에 지역단체로는 유일하게 탈지분유 17톤을 북한어린이에게 보냈다.
    1999년 1월부터는 '실업극복지원센터'를 운영하였는데 '실업극복 국민운동위원희'의 지원으로 설립된 것이었다. 실업극복지원센터에서는 4월부터 "사랑의 먹거리 나누기 운동" 실시하였고, 또 5월부터는 '송파구 저소득층 긴급구호 및 아동보호, 의료지원' 활동을 벌였다. 당시는 IMF시대로 모든 지역의 모든 주민들이 힘들어했다. 특히 송파지역에서는 비닐하우스 촌 등의 빈민지역이 있었기에 이 시대를 지나가기가 고통스러웠다. 강남향린교회는 강동송파시민단체협의회와 공동으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2000년 총선 강동송파 시민연대"는 2000년 3월에 결성되었다. 소속단체는 강동송파시민단체협의회, 송파YMCA, 강동송파 환경연합 등이었는데, 주된 활동은 김중위 후보 낙선운동을 전개해 5선 의원이 낙선되고 광주 투사출신의 심재권의원이 초선으로 당선되었다. 필자는 김중위에 의해 5억원의 손해 배상 소송을 겪고 있기도 하다.
    2001년에 강동송파시민단체협의회는 위례시민연대로 조직의 위상을 변화시킨다. 협의체는 말 그대로 지역 단체들 사이의 협의체 조직임에 반해서, 위례시민연대는 자체의 회원을 가지고, 회원의 의무와 권리를 가지는 조직이 된다. 위례시민연대가 출범하여 지금은 규모가 커져 지역의 의사, 교수들과 함께 공동대표제로 운영하고 있으며 별도의 위례복지센타를 산하에 두고 운영하고 있어 지역 운동단체로 자립은 물론이고 모범적인 성장을 하고 있어 만인의 한겨레신문에서 전국의 지역운동체로는 가장 조직력이 앞선 단체로 소개받기도 하였다. 교우들은 운영위원(2명)이나 회원(25명 정도 참여)으로 참여하고 있다.
    사실 이름이 시민단체이지만 그 관심은 오히려 기층 민중, 노조, 통일 운동 등에 중심을 두고 있는 특별한 장르의 시민단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지역에 기반을 두고 그 지역 주민들에 의해 직접 운영되는 가장 이상적이고 지역 기반이 단단한 단체 중 하나로 평가받기도 한다. 작년까지는 교회 교육관의 일부 공간을 내어 시민연대 상설 사무실로 썼으나 교회 이전 과정에서 독립하여 지금은 독자적인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전체 회원의 약 20%은 우리교인들로 구성되어 있을 만큼 많은 교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하여 함께 활동하고 있다.
    교회와 독립된 기관인 시민연대지만 내용상 교회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주일은 교회가 건물을 쓰지만 평일에는 시민단체가 교회를 활용하여 활발하게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주중에 진행되는 모임을 통하여 교회에 우연히 발걸음을 딛게 된 시민들이 교인이 된 경우도 있어 상부상조하고 있다. 한편 교회의 이름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지역사회의 정의, 민주화, 통일, 노동, 빈민 운동 등에 다 방면에서 지역의 인사들과 넓게 교류하며 연대하여 나가고 있고 별개의 독립적인 재정운영, 인적자원들을 확보해 나가며 교회와 지역사회가 상부상조하고 있는 것이다.

    빈민과의 연대
    한편으로는 화훼마을 화재사건으로 인해 교회와 친해지게 된 빈민지역인 비닐하우스 마을들의 요청으로 그동안 교회 교육관에서 진행하던 "선교원"을 전면 접고 비닐하우스 안에 교회가 직접 방과 후 학교인 "꿈나무학교"를 운영하게 되었다. 지금은 법인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교회의 청년 장년 중 4-5명이 상근 인력으로 교육과 주민사업을 담당하고 있으며 담임목사인 필자가 운영위원장을 당회원 중 이민형 장로가 교장의 책임을 맡고 있다.
    개원한지 일년 만에 비록 무허가이지만 꿈나무 학교 자체 건물도 여러 도움의 손길을 통해 마련하고 년 간 7천만원 정도의 교회와는 독립된 재정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 5개 빈민지역의 어린이 40여명이 매일 오후 하교 후부터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귀가하기까지 선생님들의 지도를 통해 각종 인성교육, 성교육, 부족한 학습 등에 도움을 받고 있다. 학생들은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월 1만원씩의 회비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무료이다. 재정은 지역사회 및 다른 사회단체들, 교인들과 지역인사로 된 후원회를 통해 조달된다. 한편으로는 서울 동부지역의 빈민들과 연대하며 그들의 주소지 찾기 운동, 각종 권익, 인권 찾기 운동 등에 함께 참여하고 있어 작년에는 이들의 주소지 찾기를 위한 소송에서 승소하여 주소지도 없어 각종 복지 혜택에서 제외되어있는 40만 도시빈민들이 주소지를 찾을 수 있는 소망에 중요한 근거를 마련하게 되었다.
    교회 인권선교부, 지역사회선교부, 문화선교부등이 연대하여 매월 주민들과 함께 하는 잔치로 노래자랑, 건강교실, 마을 축제 등의 행사를 하고 있다. 주민들과 교회의 관계는 매우 좋아 교회에 행사에 주민들이 참여해 도움을 주고 교회가 공사나 이사를 하면 직접 주민들이 찾아와 거들어 주기도 했다. 빈민들과 함께 하는 과정에서 교회는 깊이 관여하고 실제 교인들의 참여로 운영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교회라는 이름을 다 빼 버리고 지역사회에 다가서고 있고 그 시점부터 지역사회 주민들과의 연대가 한층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해방적 선교
    강남향린교회의 지역선교는 시혜나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닌 지역 사회 주민들의 어려움에 함께 하고 그들에게 고통을 가져오는 근본적 문제를 풀어주는 해방적 선교(나타나는 현상보다는 잘못된 제도나 구조, 법 등을 개선해 나가자는 보다 근본적인 선교를 이름)로 나가고자 하였다.
    1999년 초 화훼마을에 대형화재가 발생했고 400여명이 한 겨울에 길거리로 나 앉게 되었다. 어려움을 당한 주민들이 우리교회를 찾아와 호소하였고 즉각 우리교회가 개입하였다. 평소에 같은 비닐하우스 촌인 통일촌 어린이들을 무료로 교육해온 일들로 이들이 우리 교회를 믿고 찾아온 것이었다. 지역 사회의 가장 어려운 빈민들이 딱한 일을 당해 제일 먼저 우리교회를 떠올리고 도움을 호소해 온 것은 그만큼 우리교회가 지역사회에 이런 저런 봉사를 통해 주민들의 신뢰관계를 갖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대책위원회의의 공동대표의 책임을 맡고, 주변의 교회. 사회단체들에 호소해 만 3개월 간 400여명의 먹거리를 책임져왔고, 공동모금회에서 5천만원의 복구비등을 비롯하여 기타 단체의 성금으로 순수 민간 자금으로만 6개월에 걸친 대 사역 끝에 117세대 전체를 복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을 계기로 교인들과 지역주민들이 하나가 되어 밖에 세계와 격리된 채, 우리사회의 가장 비참한 생활을 하는 최하층 빈민의 문제를 노회의 집회, KNCC(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농성, 고난 받는 자를 위한 목요기도회 등을 통하여 사회를 향하여 호소하고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그런 결과 매스컴에 주목을 받고 곧장 이 문제는 그 동안 이들의 숙원이었던 수도를 송파구내 6개 빈민촌에 놓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또 전기도 정식으로 가설 할 수 있게 되었다.
    단지 우리가 가진 것으로 자선을 베푸는 일이 아니라 이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내고 그것을 사회에 호소하여 중요한 성과를 가져오는 매우 보람있는 선교였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해방의 사건-출애굽 사건-구원사건을 일으키는 참다운 교회의 선교의 모습이다. 단지 가진 것 일부를 나누어 주는 자선적 선교는 아무 위험 부담 없는 점은 좋으나 지극히 미봉적이고 제한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주변에 약 2천여 빈민촌 주민들은 우리교회에 대해 매우 감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산적한 문제를 교회와 연대해서 해결해 나가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우리 교회도 이런 저런 선교의 모색에서 빈민촌을 중심으로한 구체적인 선교의 장이 형성되고 교인들의 관심사가 모아질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교회가 이런저런 선교를 하면서도 교회가 그들에게 시혜나 자선을 베푼다면 그 양으로 볼 때 우리는 겨우 살림살이의 자급자족이 될 정도의 약한 개척교회이니 한계가 분명했다. 단순 시혜적인 것을 벗어나 지역사회 주민들의 어려움에 함께 하고 그들에게 고통을 가져오는 근본적 문제를 풀어주는 '해방적 선교'로 나아가고자 하였다. 해방적 선교란 나타나는 현상을 치료하는 대증요법, 우리는 이것을 자선적 선교라고 부르는데 이런 임시방편의 치유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잘못된 제도나 구조, 법률 등을 개선해 나감으로 문제를 원천에서부터 고쳐나가는 것을 말한다.
    자선적 선교란 마치 비유하면 찌그러진 깡통을 펴는 것과 같다. 펴도 펴도 사방에 끝도 없이 찌그러진 깡통이 널려져 있다. 그래서 보니 원래 깡통을 만드는 기계부터가 찌그러진 깡통을 찍어내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당연히 그 기계를 고쳐야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찌그러진 깡통을 쫒아서 펴는 것을 자선적 선교라고 한다면 이와는 구별되는 그 문제가 발생하는 구조나 법률, 제도 자체를 고치는 것을 '해방적 선교'라고 부른다. 이것은 단지 우리가 가진 것으로 자선을 베푸는 일이 아니라 이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내고 그것을 사회에 호소하여 중요한 성과를 가져오는 매우 보람 있는 선교이다. 이것은 해방의 사건-출애굽 사건-구원사건을 일으키는 참다운 교회의 선교의 모습이다.
    교회는 화훼마을 투쟁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화훼마을 선교를 위한 모임을 구성하여 이들의 바닥의 생활상을 책으로 엮어 발행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들 중 몇몇 미꾸라지 때문에 도매금으로 투기꾼으로 몰려 이중, 삼중의 고통을 당하는 빈민촌 주민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는 일, 주민등록도 되질 않아 모든 사회적 혜택에서 제외되어있는 '국민 아닌 국민'들을 향해 우리가 구체적으로 할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서야겠다고 생각하여 그 이듬해 그 당시 위례시민연대와 참여연대가 함께 하여 그 지역 주민 송영숙 씨 등이 "주민등록이 소유권을 판단하는 것은 아닌데,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주민등록을 거부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취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도록 하였다.
    이찬진 변호사(참여연대)가 변호를 맡고 재판 때마다 지역주민,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여 응원하였고 이 재판에서 승소, 송파구청이 항소하였다. 1년 이상 걸린 재판의 결과 고법에서도 마침내 승소, 대법 판결이 나면 전국의 50만 명가량의 비닐하우스 촌 주민들에게 합법적 주민등록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데, 아마 이를 우려한 상부의 지시인지 상고를 포기하고 송파구 내의 비닐하우스 주민들에게만 주소지가 부여되었으며 타 지역은 별도의 소송을 제기해야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판례는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였기 때문에 다른 지역도 주소지 문제가 해결될 전망이다.
    주소지 문제가 해결된 것의 의미는 실제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면서도 기초생활보호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주민들이 위장 등록으로 오는 불편 - 어린이들의 원거리 학교 배정, 각종 고지서, 통지서 지연, 그로 인한 연체금, 행정적 소외, 주민등록 말소, 투표권 부재에서 오는 민주적 시민권 제한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이들이 그로부터 투표권 행사, 곧바로 마을길 포장, 주민들의 숙원이던 다리 개통, 횡단보도 개설, 신호등 설치, 공동 우체통 개설, 기초생활보호대상자 지정 등의 복지 혜택이 뒤따르게 되었다.
    이를 모범사례로 각 지역 비닐하우스 촌에서 문의가 쇄도하였고, 인근 강남구의 K마을 - 규모가 가장 큰 비닐하우스 -에서는 행정소송을 한다고 주민들에게 소송비 수천만 원을 걷어서 사라지는 사건도 생기게 되었다. 이 때 재판 당사자였던 2급 장애인인 송영숙 씨는 지금 강남향린교회의 충실한 교우로 봉직 중이다.
    화훼마을 화재 사건에 대한 교회의 대응은 지역사회의 선교에 시사하였다. 그 중에서도 교회의 선교는 구제(救濟)하는 정도의 단기적 선교가 아니라, 주민의 권리를 찾고 제도적 개선으로 나아가는 중장기 대응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강남향린교회는 지역 가난한 주민들의 진정한 친구로 거듭 인식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마치는 말
    강남향린교회는 교우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들이 쉽게 접근하여 자신들의 삶의 질을 향상 시킬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그들의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치유하고 구원을 경험하게 하는 열려있는 공간으로서의 교회이고자 노력했다.
    창립 10주년을 맞이하여 거여동에 아담한 새 교회당을 마련하여 이사한 후로 교회는 더욱 지역 주민들의 문화와 교육의 공간,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공간, 건강한 시민으로서의 삶과 건강한 영성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지역 주민들이 그들의 삶의 전 영역에서 치유와 구원을 경험하는 교회가 되고자 한다. 자신들의 삶의 문제를 상담하며 그들 스스로 활동의 주체가 되어 교회와 함께 호흡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확립해 나가는 교회가 되길 꿈꾸고 있다.
    새 교회당을 마련하기 전에 교회는 YWCA에서 운영하는 가락복지관 건물을 이용해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주일만 사용하므로 주중에 모임은 거의 불가능했으며 체육관 바닥에 앉아서 드리는 예배이므로 예배 분위기도 어수선한 8개월을 보냈다.
    전에 교회당은 비록 임대로 있었지만 공간을 이용해 여러 가지 지역사회의 일들이 진행되었었는데 교회가 주일만 장소를 빌어쓰게 됨으로 그동안 교회를 이용하던 지역사회의 활동들은 동시에 타격을 받게 되었다. 우선 교회 교육관에 상설 사무실을 쓰고 있던 위례시민연대는 교회와 함께 자리를 비우고 부랴부랴 회원들에게 모금을 해서 천호동에 월세 사무실을 얻어 나갈 수밖에 없었으며 교회 건물을 이용해서 모이던 지역의 모임들이 중단되거나 다른 장소들을 찾느라 애를 쓰게 되었다. 교인들이 주중에 활발하게 모이던 소모임들도 거의 이 무렵 쉴 수밖에 없었으며 특히 교회 기독교 안에 우리문화를 뿌리내릴 목적으로 활동하던 교회 내 풍물모임인 "시람"은 연습할 장소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 한번도 모이지 못한 채 거의 괘멸상태까지 이르렀다. 교회 공간이 주는 안정성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요즈음 주일날 학교 강당을 빌려서 모이거나 자체 건물을 가지지 않고 예배하는 공동체 들이 개혁적인 공동체로 추앙 받으며 주목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이런 현실을 참 아이러니라고 생각한다. 오직 교회가 제 역할을 못했으면 아예 주일날만 일시적으로 모이는 공동체들이 마치 개혁의 모델인 것 모양 찬양되는가? 교회가 제 역할을 포기하고 아주 소극적으로 주일 날 예배만 드리는 것이 찬양될 바에는 아예 모임 없이 온라인으로 설교문 보내고 온라인으로 헌금 받는 교회가 더 개혁적이지 않겠는가? 주일은 무엇하러 모이는가? 이런 교회들이 건물 마련과 유지에 쓰는 비용을 절약해서 몇 십 퍼센트를 선교에 쓴다는 것이 아마 소위 '개혁적'이라는 내용인가 보다. 그러나 민중과 함께 하는 삶이 없이 주일에 헌금을 거두어 주욱 온라인으로 이 단체 저 단체 보내는 '온라인 선교'가 과연 우리의 새로운 개혁의 모델이 될 수 있겠는가? 그리 따지면 민중 속에 더불어 사는 민중교회는 예산의 몇퍼센트를 남을 위해 쓰기는 커녕 오히려 기성교회에 도움을 받아야 되는데 그런 민중교회는 어떻게 보겠는가? 그렇게 본다면 민중교회는 그 전체 백퍼센트가 남을 위해 쓰는 선교의 몫이리라. 정확히 하면 민중교회 목회자, 교우들의 노동력의 갑이 정확히 선교비로 환산되어야 할 것이다.
    삶의 나눔 없이 단지 예산의 얼마를 나누어 준다는 것은 그리 자랑할 것이 못된다. 그것 자체가 물량주의적인 의식을 부추기는 것들이다. 물론 그것도 한국교회에서는 매우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교회의 역할을 최소화한 모델을 마치 개혁적 선두에 선 모델로 추앙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가장 소극적 역할이 가장 칭찬받는 다면 "차라리 없어지는 것이 낫다"는데 손을 들어 주는 자기모멸의 논리이다.
    교회가 임시로 가락 복지관에서 모이는 땅을 구입하여 아담한 우리만의 새로운 공간을 신축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지만 건축비의 부담이 만만치 않아 송파구 거여동 198-5에 빨간 벽돌로 된 기성교회 당을 구입하고 리모델링해서 2003년 4월에 입주하게 되었다. 아직은 부채도 많고 힘겨운 것이 사실이지만 이 공간을 근거로 거여동 지역에 지역사회 일들을 해나가지 위해 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이미 입주 전에 이 지역조사와 실사를 통해 지역조사를 모두 마치고 지금은 진정한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교회당을 주민들의 음악감상실로 개방하는일, 정기적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일, 주민들의 모임 및 파티장, 공연장, 예식장으로 교회를 개방하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지역 어린이들과 청소년들, 저소득층 맞벌이 주부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계획 중이다.

댓글 0 ...

http://minjungtheology.kr/xe/45451
번호
분류
제목
닉네임
52 카테고리 최형묵 4656 2005.05.29
51 카테고리 최형묵 6965 2005.05.29
50 카테고리 최형묵 5613 2005.05.17
49 카테고리 최형묵 4915 2005.03.29
48 카테고리 최형묵 3944 2005.03.01
47 카테고리 최형묵 4856 2005.01.28
46 카테고리 최형묵 4973 2004.12.07
45 카테고리 최형묵 4569 2004.10.27
44 카테고리 최형묵 5190 2004.09.21
43 카테고리 최형묵 6759 2004.07.28
42 카테고리 최형묵 5721 2004.06.27
41 카테고리 김진호 4668 2004.06.04
40 카테고리 최형묵 5709 2004.05.08
39 카테고리 최형묵 8495 2004.02.24
38 카테고리 최형묵 17152 2004.02.24
37 카테고리 최형묵 4844 2003.11.23
36 카테고리 최형묵 4314 2003.11.23
35 카테고리 최형묵 6456 2003.11.23
카테고리 최형묵 4628 2003.11.23
33 카테고리 최형묵 4520 2003.11.23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