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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포럼] 경제 세계화와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신학적 비판 [카테고리]
  • 최형묵
    조회 수: 17177, 2004.02.24 19:32:21
  • 경제 세계화와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신학적 비판

    장윤재 (조직신학 / 이화여대 기독교학교 교수)

    세계화가 오늘 이 시대의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점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화가 정작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아울러 세계화의 신학적 의미에 관해서는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세계화란 무엇인가?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경제의 세계화는 상품과 투자, 생산과 기술의 교역량이 국경을 넘어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의미로 현 단계 경제 세계화의 본질을 설명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이런 일반적 의미의 세계화는 근대 자본주의 역사에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870년에서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3년까지, 즉 경제학자들이 소위 '세계화의 초기 황금기'(an earlier golden age of globalization)라고 부르는 이 약 반세기의 기간 동안, 세계경제는 상품과 자본의 운동의 측면에서 지금보다 훨씬 거 긴밀한 경제적 통합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화는 1970년대 초, 국경을 넘어선 자본의 자유로운 운동을 제약하고 있던 브레튼 우즈(Bretton Woods) 전후 경제체제가 붕괴하면서 시작되었으며, 따라서 현 단계 세계화의 가장 순수한 표현은 금융자본의 세계화에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 금융자본은 과거 오랫동안 국내시장에 묶여있던 족쇄에서 해방되어 주식 및 채권 시장, 투자 및 상업은행, 헤지 펀드(hedge fund) 및 사적 자본회사들과 같은 다양한 금융수단을 통해 온 세상을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다. '세계화'란 이와 같이 사적으로 통제되는 금융자본이 빠른 속도로, 예상치 못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종종 엄청난 양으로 국경의 장벽을 맘대로 넘나들며 기존의 민족국가 단위의 경제질서를 해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런데 세계화가 무엇인가를 좀더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현 단계의 세계화가 '무엇이 아닌가'를 검토해 보면 된다. 현재 세계화에 대해 두 가지 잘못된 주장이 널리 유포돼 있다. 첫째는, 세계화가 아무 사심 없는(disinterested) 시장의 힘에 의해 국제 '자유' 교역 체제를 창출하는 과정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데이비드 코르텐(David C. Korten)이 상세히 파헤치다시피, 세계화의 과정에서 지금 실제로 창출되고 있는 것은 지구촌 자유시장 경제가 아니라 금융자본의 투기에 장단을 맞추어 나가는 초국적 기업들에 의해 중앙집권적으로 계획된 지구촌 '독점' 체제이다. 둘째로 가장 흔한 세계화에 대한 잘못된 주장은 현 단계의 세계화가 아담 스미스(Adam Smith)와 데이비드 리카르도(David Ricardo)의 고전적 자유주의 이상에 기초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스미스와 리카르도는 둘 다 금융자본의 국제적 이동에 강력히 반대하였으며, 또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스미스의 믿음은 결코 시장에 대한 정부의 적법한 개입을 의심하게 하지도 않았다. 17-18세기 고전적 자유주의가 시장과 국가의 조화를 강조했다면, 현 단계 세계화는 그 둘 사이의 적대적 관계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대체 현 단계 세계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만약 오늘날의 세계화가 시장가격에 기초한 지구촌 자유경제 체제의 창출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전적 자유주의의 이상향에 입각한 세계경제의 재편도 아니라면, 도대체 우리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고통스럽게 경험하고 있는 세계화의 정체는 무엇인가?
    2001년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세프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는 자신이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과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일할 때, 워싱턴에서의 중요한 정책적 결정들이 종종 "엉터리 경제학과 어떤 이데올로기의 기이한 결합"(a curious blend of ideology and bad economics)에 의해 내려지는 것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그는 여기서 이 이데올로기가 미국 금융계의 협소한 이익에 복무하는 이데올로기, 국제통화기금(IMF)의 '시장 시장주의'(market supremacy) 이데올로기, 혹은 '워싱톤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라고도 불리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또는 '시장 근본주의'(market fundamentalism) 이데올로기라고 말한다. 현대 세계금융시장의 성공적인 수완가라고 알려진 조지 소로스(George Soros)조차도 세계화는 자유경제 체제와 열린 사회로의 이행을 위협하는 '시장 근본주의'를 의미한다고 개탄한다. 현 단계 세계화의 본질은 바로 이 '신자유주의적 시장근본주의'(neoliberal market fundamentalism)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시장에 모든 권한을 다 주라는 주장이다. 실제 그것이 추진하는 정책은 '자유' 무역도, '열린' 시장의 창출도 아닌데도 말이다. "세계화"란 '자유' 시장의 이름으로 초국적 자본과 기업의 무한한 팽창을 정당화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시장근본주의 담론(discourse)이자 수사(rhetoric)인 것이다.

    경제 신자유주의란?

    신자유주의란 간략히 말해 케인즈 주의와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반발로 19세기의 고전적 자유주의를 소생시키고 부흥시키려는, 1970년대 이후의 현대 경제사상운동을 가리킨다. 케인즈가 사망하기 이전에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전후 브레튼 우즈 체제가 1971년 붕괴하자 서방세계는 다시 케인즈 주의 이전의 세계관으로 회귀하기 시작하는데, 밀튼 프리드만(Milton Friedman)은 이 흐름을 근대 자본주의 경제사에서 아담 스미스의 '자유방임'(laissez-faire) 물결과 페이비언주의자들의 '복지국가' 물결에 뒤이은 제3의 '자유시장 소생'의 물결이라고 분석한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적 경제이론은, 고전적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시장은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이 최소화되었을 때 근대 민족국가가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물론 신자유주의 내에는 서로 경쟁하는 다양한 학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정부가 조세나 시장개입에서 최소한의 역할만 담당할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자유시장 경제 '이론'을 넘어선다. 신자유주의란 시장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시장에 대한 일종의 '종교적 신앙'을 의미한다. 사람이 시장을 위해 지어졌지, 시장이 사람을 위해 지어지지 않았다는 하나의 종교적 믿음이 신자유주의인 것이다. 엠 피 조셉(M.P. Joseph)이 지적하다시피, 오늘날 시장은 인류 '구원의 원칙'(soteriological principle)이 되었으며, 신자유주의는 자신의 독자적인 교리를 가지고 저개발국가들을 시장이라고 하는 '구원'의 영역으로 개종시키려는 일종의 신흥종교가 되었다. 신자유주의 사상은 앵글로색슨 세계의 두 보수적인 지도자인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와 로날드 레이건(Ronald Reagan)이 1979년 동시에 집권하여 자유시장 경제정책을 전면적으로 밀고 나가면서부터 이 시대의 '정통' 경제사상이 되었다. 그리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그것은 이제 전지구적 시장의 '다스림'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라는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대처는 그 신화를 'TINA' (There Is No Alternative, "더 이상 대안은 없다") 라고 표현했고,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이라 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 이론에 사회적 정의와 평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보수적 사회윤리를 결합한 것이다. 경제 신자유주의가 오늘날 '신우파'(New Rights)로 대변되는 정치적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 이른바 '네오콘'과 완전히 밀착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시장근본주의 종교의 교리와 신학을 검토하려 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신자유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197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F.A. 하이에크의 사회철학을 깊이 분석, 비평할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평생을 '자유세계의 철학적 기반'을 놓기 위해 헌신한 하이에크는 신자유주의 사상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는 가장 훌륭한 창구이다.

    하이에크는 누구인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는 1899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출생하여 1992년에 죽었다. "아담 스미스 이후 가장 위대한 자본주의 철학자" 라고 불린 하이에크는 마르크스에 대한 철저한 반대자였다. 하지만 그는 재미있게도 마르크스와 똑같이 독일어권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사람이었고, 또 마르크스와 똑같이 대부분의 시간을 대영 박물관에서 보내며 자본을 주제로 연구활동에 몰두했던 사람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유일한' 차이점이 있었다면, 마르크스는 오른쪽 귀가 먹었던 반면 (때문에 '우파'의 소리를 듣지 못했고) 하이에크는 왼쪽 귀가 먹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좌파'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하이에크는 한때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다. 케인즈 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던 1950년대와 60년대에 그는 정치적으로 괴팍한 인물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전후경제의 부흥이 케인즈 주의를 신봉했던 국가들을 인플레이션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고, 케인즈 주의의 전통적인 요법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게 되자 서방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하나씩 그들이 한때 내다버렸던 고전적 자유주의의 가치관으로 돌아서기 시작한다. 바로 이 서방세계의 사상적 대전환 속에서 한때 '학문적 부랑아'로 간주되던 하이에크는 1974년 온 세상을 놀라게 하며 자유시장 경제론자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다. 하이에크 자신도 놀랐다는, 이 '이단' 경제학자에 대한 노벨상 수상은 현대 경제사상사를 가르는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 이후 '얼간이'(goofball) 하이에크는 '정신적 지도자'(guru)로 급부상 한다.
    이후 하이에크는 전세계 보수적인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앵글로색슨 세계의 네 대표적인 보수 정치지도자 윈스턴 처칠, 배리 콜드워터, 로날드 레이건, 마가렛 대처 모두가 하이에크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하이에크는 제2세계와 3세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는 남미에서 '피노체트 장군의 정신적 스승'이라고 추앙 받았고, '남미 자유주의자들의 정신적 횃불'이라고도 불렸다. 하이에크의 사상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동구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경제로 이행하면서 시행한 가혹한 경제정책들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인용되기도 했다. 물론 우리가 사는 실제의 세계는 한 사상가의 영향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요인들에 의해 움직여진다. 하지만 하이에크의 경제사상, 특히 시장은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라는 그의 독특한 이론은 오늘날 전세계에서 곳곳에서 밀어붙여지고 있는 가혹한 신자유주의적 시장근본주의 정책들의 사상적 버팀목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이에크는 단순한 이론적 경제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고전적 자유시장 이론을 정치적 신보수주의의 비전과 이념으로 변모시킨 심오한 사상가였다. 하이에크는 세상을 등진 상아탑의 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사상의 힘을 통해 세계의 변혁이 가능하다고 믿은 열정적 선동가였으며, 실제로 '자유의 투사'들을 조직하고 훈련시키기 위해 1947년 서방세계의 저명한 자유주의 사상가들을 모아 '몽 페를랭 협회'(Mont Pelerin Society)를 조직하기도 했다. 아마도 다음의 하이에크 말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으며 또 무엇을 위해 분연히 일어섰는지를 우리에게 잘 말해줄 것이다.

    우리는 다시금 자유사회를 건설하는 일을 지적 모험으로 그리고 용기 있는 행동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은 자유주의적 유토피아(a liberal Utopia)입니다. 현재의 질서를 그저 옹호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적당히 사회주의를 가미한 것도 아닌, 진정한 자유주의적 급진주의(a truly liberal radicalism)인 것입니다. 우리 자유주의자들이 사회주의자들의 성공에서 배워야 할 한 가지 중요한 덕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토피아를 향한 그들의 용기입니다. 바로 이 용기 때문에 그들은 지식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고 나아가 여론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이에크의 자유주의적 유토피아 : 사회정의와 이웃사랑에 대한 전면적 부정

    그렇다면 하이에크가 평생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자유주의적 유토피아' 혹은 '자유주의적 급진주의'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였는가? 그것은 어떤 구체적인 경제, 사회윤리로 나타났는가? 하이에크의 자유주의적 유토피아의 가장 독창적인 주장은 사회정의(social justice)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기독교 윤리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이다. 만약 우리가 하이에크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자유(individual liberty)는 결코 사회적 정의와 양립할 수 없다" 이다. 하이에크는 사회정의란 오직 '신기루,' '미신,' '사교,' 그리고 '자유문명에 대한 중대한 위협'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일 내게 그럴 힘이 있다면,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봉사는 다시는 사람들이 [사회정의라는] 그 거짓 주문을 못 쓰도록 단단히 창피를 주는 일이다"라고 그는 말하곤 했다.
    하이에크의 자유주의적 유토피아에서 사회정의는 아예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질서는 '비인격적'(impersonal)인 시장이 만드는 질서요, 그런 질서 안에서는 사회적 불평등이 아무의 책임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이에크에 의하면 사회정의는 오직 계획경제(command economy)에만 해당된다. 따라서 그것을 자유경제 체제에 적용하는 것은 '범주 착오'(category mistake)이며, 가진 자에 대한 질투의 산물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사회정의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선의의 표현이 아니라 "책임 있는 지식인이라면 사용하기를 부끄러워해야 할 민중선동 혹은 싸구려 저널리즘"에 불과하다. 하이에크는 매우 직설적이다. 급속한 경제발전은 사회적 불평등 때문에 가능했으며, 만약 사회적 불평등이 없었다면 인류는 오늘날과 같은 규모의 경제에 이르지도 또 그것을 유지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빈곤은 부의 재분배가 아니라 오로지 급속한 경제발전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그는 서슴없이 말한다.
    바로 이러한 '급진적 자유주의' 경제윤리에서 하이에크는 성서의 '이웃사랑' 윤리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는 적용될 수 없는 부족적(tribal), 원시적(primitive) 윤리라고 맹공을 퍼붓는다. 하이에크에 의하면, 인류는 이미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살던" 그래서 "공동의 목적의식으로 얽혀있던 부족사회"로부터 "규칙으로 묶인 열린사회"로 이행했다. 따라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윤리는 "부족사회의 윤리를 열린사회에 강요하려는 억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 우리는 이웃이라는 개념을 과거보다 더욱 엄격하게 제한해서 사용해야 한다. 사실, 성서가 말하는 '이웃'이라는 개념은 문자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이웃은 우리가 가까이 살면서 서로 얼굴을 알 수 있는 사람들로 제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웃사랑이라고 하는 종교적 가르침은 소규모의 부족사회를 위해 개발된 윤리이다. 이제 우리는 그런 원시적 사회를 떠났다. 때문에 이제 우리는 우리의 태생적 윤리를 버리고 '상업적 윤리'를 따라야 한다. 우리가 '핵가족'이라고 부르는 우리의 직계가족들만 제외하고 말이다.

    고대사회에 만들어진 성서의 경제윤리를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성서 근본주의'(biblical fundamentalism)라고 비판하는 미국의 신보수주의 경제신학자 마이클 노박(Michael Novak)이 하이에크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정말 우연한 일이 아니다.
    사실 하이에크가 꿈꾼 자유주의적 유토피아의 세상에서는 계급간 '이익의 충돌'이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자들은 물질적 조건에서 단지 "다른 사람들이 아직 다다르지 못한 진화의 한 단계"를 앞서 살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수탈'이라고 하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자들은 앞서고 다른 사람들은 그 뒤를 따르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하이에크가 꿈꾼 자유주의적 유토피아는 극단적인 사회적 불평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의 부정을 의미다. 때문에 어떻게든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이상을 조화시켜려 애쓰던 그와 가까운 자유주의 사상가들조차 하이에크에게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철학이 이런 극단적인 경제, 사회윤리를 낳았는가?

    하이에크의 사회철학 (Moral Philosophy)

    상당수의 자유주의 사상가들이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를 경험한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이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하이에크는 "가장 극악무도한 범죄가 정부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개인의 자유를 가장 우선시 하는 앵글로색슨 원칙을 복권시켜 "인간의 어리석음이 세워놓은 장애물로부터 자생적 발전과정을 해방시키는 것"이 자신의 과제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는가? 서구사회를 사회주의나 복지국가와 같은 정부주도의 계획경제로 나아가게 한 문제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하이에크는 그것이 인간의 이성(reason)에 대한 미신적 믿음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 앞으로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미신의 시대였다고 회고할 것이다... 그들은 20세기에 널리 유포되었던 생각들, 즉 공정한 분배를 위한 계획경제라든지, 억압과 인습으로부터의 해방이라든지... 하는 모든 개념들이 다 미신적 믿음에 기초했던 것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얄궂게도 이런 미신적 믿음의 대부분은 우리가 이성의 시대(Age of Reason)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자신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을 미신이라고 간주했던 바로 그 이성의 시대에서 물려받은 것이다. 만약 계몽주의가 과거에 인간의 이성에 부여된 역할이 너무 적었다는 것을 발견했다면, 지금 우리는 계몽주의가 인간의 이성에 할당한 과제가 너무 크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계몽주의의 자손이었다. 때문에 그는 이성의 역할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성주의적'(rational), '과학적'(scientific) 진보를 믿지 않았다. 그러한 이성주의적 구성주의(rationalistic constructivism)는, 사회질서는 인간의 계획과 설계에 의해서만 만들어지고 또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사회질서에 대한 잘못된 해석일 뿐이다. 사회질서란 인간의 행위가 만들어낸 산물이긴 하지만 인간이 설계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이에크는 말한다. 인간의 이성은 자연과 사회 밖에 존재하는 어떤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사회의 문화적 진화의 한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이에크는, 인간이 자신의 사회를 자신의 희망에 따라 건설하거나 변혁할 수 있다는 생각은 '치명적 자만'(fatal conceit)에 불과하다고 했다. 한마디로 하이에크는, 인간의 이성은 결코 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끈질기게 주장한 철저한 반이성주의자(anti-rationalist)였다.
    하이에크 사회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두 번째 핵심사상은 그의 철저한 사회적, 문화적 진화주의(societal/cultural evolutionism)이다. 식물학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하이에크는 생물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생물학적 진화이론을 사회질서에 그대로 적용했다. 하이에크의 사회철학에서 이 사회, 문화진화론은 너무도 중요해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하이에크 사상의 핵심적 주장인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 곧 "경쟁적 시장에 의해 창조되는 자생적 인간의 질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하이에크에 의하면, 모든 인간의 질서는 철두철미 사회적 진화의 결과로 만들어진 자생적 질서이다. 아무도 그것을 설계하지 않았으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이 어디로 갈 지, 또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질서를 만들고 명령하는 사람이 없어도 인간사회는 사회진화 덕분에 혼란이 아니라 오히려 더 훌륭한 질서를 만들어간다. 때문에 사회질서를 계획하거나 변혁하려는 시도는 오직 역효과만 초래할 뿐이라는 것이다. 하이에크의 반이성주의는 그의 사회, 문화진화주의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이에크의 사상에서 인간은 문명과 사회와 문화의 창조자가 아니라 생물학적, 문화적 진화의 산물일 뿐이다.
    하이에크 사회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세 번째의 핵심요소는 '초월의 세계'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다. 하이에크는 시장의 힘에 의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지는 이 감각의 세계 밖에는 또다른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사실 하이에크는 모든 추론적인 형이상학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철저한 칸트주의자였다. 하이에크에 의하면 인간의 경험과, 이해관계와, 감각의 질서에 조금도 때묻지 않은, 어떤 순수한 외부적 혹은 초월적 관점은 인식론적으로 불가능하다. 즉, 모든 의미의 세계는 내면의 정신세계로 귀속되며, 따라서 인간의 감각과 경험을 통해 인지할 수 있는 세계와 동떨어진 별도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이에크는 '궁극적인 것'(the ultimate) 혹은 '초월의 세계'(the beyond)에 대한 철저한 철학적 회의론자였다. 당연히 초월의 세계에 대한 그의 부정적 인식은 그의 신 이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이에크는 공개적인 불가지론자(agnostic)였다. 과연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그는 알 수 없다 했다. 하지만 하이에크는 신에 관한 한가지 분명한 견해가 있었다. 그것은 신에 관한 "모든 의인적(anthropomorphic), 인격적(personal), 혹은 물활론적(animistic) 해석," 즉 신을 "인간처럼 행동하는 존재"로 이해하는 모든 해석에 대한 거부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종교인들이 말하는 신은 누구인가? "아마도 그것은 인간의 사회적 삶을 지탱해온 도덕률과 전통적 가치에 대한 의인화"에 불과할 것이며, 따라서 그런 존재는 "이 세계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특성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하이에크는 말했다. 그러니까 하이에크의 하나님은 - 만약 존재한다면 - 우리의 감각적, 물질적 세계 밖에 존재하는 어떤 실재가 아니라, 이 세계 안에 완벽히 내재하는 한 특성이다. 종교인들이 그것을 의인화하여 신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하이에크의 이런 신론은 모든 추상적인 형이상학을 부인한 칸트적 세계관과 일치한다. 모든 의미는 인간의 감각의 세계 안에만 존재한다는 그의 철학적 인식론과도 상통한다. 그리고 인간의 문명은 "그 안에 추가의 진화를 이끌어내는 자기교정 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살아있는 생명유기체와 같다는 그의 사회진화론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한마디로 하이에크는 모든 초월적 세계를 부정한 철저한 자연주의자(naturalist)였다.
    요약하면, 하이에크는 근대 서구사회가 사회주의와 "강요된" 복지체제로 나아가는 흐름에 대항하여 하나의 '급진적 자유주의' 사상을 발전시켰는데, 그 사상의 핵심은 역사 안에서 인간의 의식적, 창조적 역할을 부정하는 철저한 반이성주의(anti-rationalism)와, 시장을 자생적 질서로 이해하는 사회, 문화적 진화주의(societal/cultural evolutionism)와, 나아가 초월의 영역을 부인하는 철저한 자연주의(naturalism)이다. 사회정의와 '이웃사랑'에 대한 그의 전면적 거부와 냉소적 비판은 바로 이런 사상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하이에크는 하늘 높은 보좌 위에 앉아 이 세상을 통치하는 초월적 신의 존재를 거부했고, 그렇다고 그 자리에 신격화된 인간이성을 대체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시장의 힘에 의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사회적 진화에 우리의 운명을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고 가르쳤다. 정말이지 하이에크에게 있어서 시장이란 자연세계의 바람과 물처럼 성스러운, 그래서 인간이 통제할 수도 그리고 통제하려 들어서도 안 되는 어떤 신비한 존재였다.

    하이에크의 사상에 대한 비판

    필자는 하이에크의 사회철학을 정치경제학적 측면, 윤리적 측면, 그리고 신학적 측면 세 가지로 비판하려 한다. 첫째로, 시장이 사회적 진화에 의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질서라는 하이에크의 주장은 사실적으로(factually) 틀렸다. 칼 폴라니(Karl Polanyi)가 그의 역작 <위대한 변혁>(The Great Transformation)에서 밝히다시피,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자연적인 생성물이라는 생각은 허구적인 상상에 불과하며, 역사적으로 자유시장은 중앙집권적이고 강력한 국가의 개입과 통제에 의해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존 그레이(John Gray)가 날카롭게 서술하듯이,

    자유시장은, 오늘날의 경제철학이 가정하듯이, 시장 메커니즘에 대한 정치적 개입이 제거되었을 때 발생하는 자연적 상태가 결코 아니다. 역사를 보다 넓고 긴 안목에서 관찰하면, 자유시장은 가끔 발생하는 일시적인 탈선현상에 불과하다. 오히려 규제된 시장(regulated market)이 규범이었으며, 그것이 모든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현상이었다... 신우파 사상가들이 상상하거나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자유시장은 결코 사회진화가 우리에게 선사한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공학과 단호한 정치적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최종생산물인 것이다.

    만약 그레이의 말대로 자유시장이 역사의 종착점이 아니라 한 순간의 과정에 불과하고 또 여러 가지 형태의 시장경제 가운데 한가지 방식에 불과하다면, 시장에 무한대의 자유통치권을 주라는 하이에크 사상과 시장 근본주의의 주장은 정치경제학적으로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가 하이에크의 사상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윤리적 이유는 그것이 윤리적 규범(norm)과 당위성(oughtness)을 상실한 극도의 사회적 보수주의이기 때문이다. 하이에크 사회윤리의 뒤에는 시장과 경쟁이 스스로 필요한 윤리적 조건들을 자동적으로 만들어낸다는 가정이 깔려있다. 우리는 이것을 '자유주의적 내재주의'(liberal immanentism)라 부른다. 하이에크는 스스로 진화하는 시장이 자생적으로 그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도덕률을 생성해 내리라 믿었다. 다시 말해, 하이에크는 윤리의 영역을 자생적 질서라는 맥락에서 접근하였으며, 윤리 역시 사회적 진화의 한 산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자유주의적 내재주의 윤리의 문제는 그 안에 아무런 윤리적 규범과 당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도덕을 넘어선 윤리"(ethics beyond morals)가 부재하다는 말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하이에크의 글을 읽다보면 우리들은 부지불식간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자연스런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염려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편안한' 마음에 빠져들게 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하이에크의 진화론적 사회윤리는, 이미 사회적으로 우세한 것을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강한 경향성을 띄고 있다. 사회정의와 이웃사랑 윤리가 바로 이런 식으로 부정되었다. 그가 비판한대로 기독교의 '이웃사랑' 윤리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윤리가 되기에는 너무 순수한 면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부정하면 우리는 인간의 윤리적 가능성을 위한 궁극적 규범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고 필자는 믿는다. 윤리적 규범과 당위가 없는 하이에크의 사회철학이 '도덕적 공허'(moral emptiness)로 꽉 차 있지 않는가. 사실 하이에크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것은, 조나단 삭스(Jonathan Sacks)가 지적하다시피, 시장의 최대의 적은 바로 시장 그 자신이라는 점이다. 시장은 그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도덕률과 전통을 자생적으로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파괴해 나간다. 시장은 가장 반전통적인 세력인 것이다.
    윤리적 규범이 부재하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시 하는 하이에크의 '급진적 자유주의' 사상이, 역설적이게도, 개인의 자유가 설자리가 없는 문화적 전통주의(cultural traditionalism)로 귀결되고 만 것은 어쩌면 예상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하이에크는 누가 뭐라도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시한 자유주의 사상가였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법 아래 자유'(liberty under law)를 강조했고, 나아가 "성공적인 자유사회는 대부분 전통에 묶인 사회이며" 따라서 "모든 진보는 전통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하이에크는, 자유로운 개인은 자율적이지도 또 내면화된 규칙에 의해 스스로 움직인다고도 보지 않았으며, 오히려 인간의 개성은 결국 문화적 유산과 전통의 산물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전통에 맞설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때문에 하이에크의 사상의 궁극적 윤리의 준거는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개인이 아니라 '법' '도덕' '관습'과 같은 추상적인 사회질서인 것이다. 그래함 워커(Graham Walker)가 날카롭게 지적하듯이, 하이에크의 윤리적 방법론은, 윤리의 준거틀이 개인의 차원에서 집단적 차원으로 이동했다는 점에서, 그와 불구대천 원수지간에 있는 집단주의적 사상가들의 방법론과 동일해 지고 만 것이다.
    세 번째, 우리가 하이에크의 사상에 동의할 수 없는 신학적 이유는, 그의 인간 이성의 오용과 남용에 대한 적절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이 '하늘의 가능성'(heavenly possibilities)에 닫혀진 철저한 자연주의적 사상이라는 점이다. 하이에크 사상에서 사회질서는 비인격적 시장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자생적 질서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그 질서 바깥에서 그것의 의미를 묻고 의미를 줄 수 있는 초월의 영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하이에크는 '내재적 비판'(immanent criticism)이라는 원칙을 내세우며 인간사회에 대한 모든 열려진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였다. 내재적 비판의 원칙이란 "한 사회질서에 대한 비판과 개선의 노력은 반드시 주어진 가치의 틀 안에서만 수행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하이에크는 이렇게 '이미 주어진 것' 이외의 것에 자신을 완전히 닫아버렸다. 신학적으로 하이에크에게는 '이미 주어진 것'이 반드시 절대적일 필요는 없다는 믿음, 즉 루벰 알베스(Rubem A. Alves)가 말한 '기독교적 이상주의'(Christian idealism)의 믿음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알베스는 기독교적 이상주의를, "완벽한 사회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a belief in the possibility of a perfect society)이 아니라 "지금의 이 불완전한 질서가 반드시 절대적일 필요는 없다는 믿음"(the belief in the non-necessity of this imperfect order)이라고 정의했다. 바로 이러한 믿음의 결여로 하이에크의 사상에는 역사를 해석하는 초월적인 힘, "갱신과 희망의 초월적 원리," 즉 "우리의 조건과 관습을 넘어서 하늘의 가능성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이 없는 것이다. 하이에크가 꿈꾼 자유주의적 유토피아의 세계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없다. 이 세계로 '침범'해 들어오는 하나님의 나라도 없다. 오직 스스로 자신을 성취해 가는 무한한 시장의 진화사슬밖에 없는 것이다. 천상의 가능성에 스스로를 걸어 잠근 하이에크의 시장 유토피아 세상은 그래서 "거룩함과 초월의 상실"로 특징 지워진 '자폐적 세속주의'(self-enclosed secularism)의 세계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일상 한 가운데에서, 절망과 고통으로 점철된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한 복판에서, 감히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하고, 형언하기 어려운 것들을 말하며, 또 실현될 수 없는 것들을 꿈꾼다. 믿음 안에서 우리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는 '머나먼 저편'(the beyond)을, 그리고 우리의 세속 한 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거룩함(the sacred)을, 나아가 우리의 비극 그 중심으로 치고 들어오는 '또 다른 세계'(another world)를 미리 맛보며 살고 있는 것이다. 성서는 바로 이런 두 개의 세계, 즉 우리의 일상의 세계와 '또 다른 세계,' 그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마르커스 보그(Marcus J. Borg)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성서의 핵심전통은 '원시전통'(primordial tradition)인데, 그 전통 안에 살던 사람들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제적인, 아니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현실적인, 그리고 눈에 보이는 이 세계의 원천이자 비판으로서의 '또 다른 세계' 혹은 '영적인 세계'를 생생하게 경험하며 살았다. 예수는 바로 이 또 하나의 세계, 즉 '하늘'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시던 '영적 인물'(Spirit person)이었으며, 따라서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계에 대한 '하늘'을 의미했던 것이다. 예수는 이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으며(막 1:15b) 이미 "너희 가운데 있다"(눅 17:21b)고 선포했다. 예수의 복음은, 필자가 믿기에, 바로 이 새 하늘과 새 땅에 자신과 역사를 열기는 거부하는 모든 완고한 자기 폐쇄적 세속주의에 대한 '거대한 부정'(Big No)이었다. 우리는 종말론적 부정(eschatological No)의 힘을 상실한 하이에크의 자연주의적 이상주의에 신학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현대신학에 대한 하이에크의 도전

    역사는 스스로를 해석하고 스스로를 성취해 나간다는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 사상이 시장 근본주의를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확산시켜가고 있는 이때, 기독교 신학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는, 다시 한번 폴 틸리히(Paul Tillich)가 말한 '프로테스탄스 원칙'(Protestant principle), 즉 이 세계에 내재하는 어떤 것도 하나님의 초월적인 실재를 완전히 소유할 수도, 대표할 수도, 또 동일시될 수도 없다는 원칙을 세상에 힘있게 증거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지난 30여 년 간 현대신학계의 중심적 관심사의 하나는 하나님의 내재성(divine immanence)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하이에크 사상의 도전에 비추어 볼 때, 필자는 다시금 하나님의 초월성에 대한 진지한 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난 20세기 전반 칼 바르트는, 이성의 힘에 의한 역사의 진보를 낙관하며 당시의 세계에 대한 비판력을 상실한 기독교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하나님의 절대적 초월성을 강조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초월성의 '올바른 자리'를 다시금 깊이 성찰해야 한다. 하나님의 초월성의 올바른 자리란, 어떻게 하면 초월하신 하나님이 이 세계와 무관한 '전적인 타자'(wholly other)가 아니라, 창조세계를 살리고 지탱하는 '친밀한 존재기반'(intimate ground of being)으로,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존재방식 너머에 있는 '궁극적 존재기반'(ultimate ground of being)으로 자리 매김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자생적 질서인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라는 자연주의적 낙관주의가 팽배하고 있는 이 시대는 다시금 신학적으로 '바르트적 제동'(Barthian reaction)을 필요로 한다.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가 지적하다시피, 모든 자연주의 세계관의 오류는, 초월의 영역을 현상의 진행과정에 무의식적으로 귀속시킴으로써 역사 안에서 절대적인 선이 출현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우리의 '바르트적 제동'은 하지만 더 이상 하나님과 세계에 대한 신학적 이원론을 의미하지 않아야 한다. 과정신학자, 환경신학자, 그리고 여성신학자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세계가 존재론적으로 상호 독립(independence)이 아니라 상호의존(interdependence) 되어 있음을 보게 되었다. 샐리 맥패그(Sallie McFague)는 온 우주가 하나님의 '자궁'(womb)으로부터 '몸이 되어 나온 것'(bodied)이며, 따라서 세계는 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와의 관계성 안에 계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천상의 가능성으로 '유인'하시며(alluring) 이 세상에 '새 것'(novelty)을 불어넣으시는 우리의 '타자'(the other)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내재성(divine indwelling)은 필수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God-with-us)은 언제나 '우리를 넘어 계시는 하나님' (God-beyond-us)이시다. 하나님은 창조세계를 낳고 보존하시는 우리의 가장 깊숙한 생명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 세상의 기초를 흔드는, 또 우리의 불완전한 질서가 절대적이라는 이 세대의 완고한 불신앙을 흔들어 깨우는 하늘의 소망이시다.

    나가는 말

    아직도 저항은 가능한가? 시장의 무제한적, 전지구적 지배에 저항할 공간은 아직도 남아있는가? 이 지상의 눈에 보이는 것들과 동일시할 수 없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계시는가? 이것이 경제 신자유주의가 오늘날 그리스도교에 던지는 질문이다. 하이에크는 시장은 물과 바람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며,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거나 변혁하려는 인간의 이성과 지식의 힘은 제한돼 있고, 그리고 현상의 세계를 넘어선 초월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 대한 저항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가르쳤다. 그의 이러한 가르침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이 역사 안에 더 이상의 대안은 없으며 또 역사는 종언을 고했다는 "세계화" 담론은 '지적 테러리즘'(intellectual terrorism) 이다. 그것은 초월의 세계와 궁극적 실재를 믿는 모든 종교에 대한 영적 테러리즘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때에 기독교 신학의 과제는 그 옛날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보았던, 저 사망의 골짜기로 사방에서 불어왔던 생기의 바람(겔 37:1-14)을 간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피리를 불고 곡을 하여도 더 이상 울지도 춤을 추지도 않는 '저 장터 속의 이 세대'(눅 7:31-32)를 향해 우리의 불신앙의 장벽 너머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미 와 계신 하나님의 현현(顯現)을 소리 높여 증거하는, "새벽을 일깨우는"(시 108:2) 시와 노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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