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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406]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 비판과 그 민중신학적 함의 [카테고리]
  • 최형묵
    조회 수: 4246, 2004.06.27 23:51:34
  •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 비판과 그 민중신학적 함의

    강원돈(아시아경제윤리연구소장)

    I. 머리말

    오늘의 세계에서 자본주의는 경제의 지구화와 정보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의 발전, 신소재 기술의 확산, 유전자 조작, 지구적 차원에서 실현된 생산, 유통, 소비의 네트워크 등은 한 세대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지적 소유권에 근거한 지식기반 경제의 발전은 이미 자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요구하고 있는 듯하며, 미래 경제에서 "유형자본"에 대한 "무형자본"의 우위를 약속하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눈부시게 발전하는 자본주의는 그 이면에 약탈과 억압의 광기를 감추고 있다. 엄청난 몸집으로 부풀어 오른 화폐자본은 1990년대 말의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보듯이 국민경제들을 초토화할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으며, 국가의 전통적인 경제주권을 무력화하고 있다. 지구적 경쟁의 격화는 노동절약적 합리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린 생산의 지구적 네트워크 등을 통하여 노동을 압박하고, 북반구와 남반구의 어느 사회에서나 새로운 사회적 가난을 확산시키고 있다. 지적 소유권에 근거한 신경제는 정보 처리와 획득의 사회적 불평등을 확산시키고, 유전자 자원에 대한 약탈을 제도화한다.
    이러한 자본주의 발전의 양지와 음지는 모두 자본의 축적과 팽창의 논리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세계에서 지구와 그 위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자본의 팽창과 실질적 포섭의 대상으로 완전히 포획된 것처럼 보인다. 자본의 축적과 팽창의 논리는 암세포의 증식논리와 닮아서 자본의 숙주인 인간과 자연을 죽이고 무덤 속에 파묻어 버리고 있는 것 같다.
    바로 이것이 오늘 민중신학이 대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중신학은 인간과 자연의 생명공동체를 창조하고 유지하고 완성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역사에 책임 있게 동참하는 기독교인들의 실천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중신학은 자본의 팽창과 축적의 논리에서 비롯되는 생명 파괴의 세계 현실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일을 회피할 수 없다.
    이러한 현실 분석과 대안 모색 과정에서 민중신학이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재검토하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자본의 축적과 팽창의 논리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하나의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잉여가치의 원천이 인간의 노동에서 기술로, 그리고 지식기반 경제에서 "지식"으로 옮겨져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이 더 이상 현실에 대한 설명 능력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자본주의적 경쟁에서 기술 독점과 지식 독점이 초과 이윤 능력을 가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기에 일리가 있으나, 시장경제의 심층에 있는 잉여가치 추출 메커니즘의 끈질김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장경제가 존속하는 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비판적 현실 인식과 실천적 대안 모색에 기여할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우선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핵심을 이루는 부르주아 노동가치론 비판을 분석하면서 그것이 사회적 관점과 생태학적 관점을 통합하여 자본주의 사회를 해부하고 있음을 밝혀낼 것이다. 그 다음, 잉여가치의 배분에 관한 마르크스의 견해를 재구성하여 자본의 축적과 팽창의 논리에 대항하는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정상 경제의 몇 가지 원칙들을 기업 차원과 국민경제 차원에서 제시할 것이다. 그러면 마르크스 이전의 부르주아 노동가치론이 어떻게 발전되었는가를 간략하게 살피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하기로 한다.

    II. 마르크스 이전의 부르주아적 노동가치론의 전개

    마르크스 이전의 노동가치론은 존 로크의 노동소유권 이론에서 싹이 트고, 아담 스미드의 교환척도 이론에서 비교적 세련된 모습을 갖추고, 데이비드 리카아도의 노동가치론에서 완성된 형태를 취한다.

    1. 존 로크의 노동소유권 이론은 소유권의 근거가 노동의 기여에 있다는 것을 그 핵심 내용으로 한다. 그는 화폐 발명 이전과 이후의 자연상태를 구별하면서 노동소유권 이론을 전개했다.
    우선, 화폐 발명 이전의 자연상태에서 소유권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로크에 따르면, 태초에 신은 아담과 그 후손에게 세계를 공유재로 부여하였지만, 개개인은 자기 것을 자기 것으로 주장할 권리를 갖고 있다. 만인의 공유와 개인의 소유 사이에 나타나는 이 모순을 해명하기 위하여, 로크는 개인의 특성에 주목했다. "땅과 모든 하등 생명체들은 모든 인간에게 공히 부여되었지만, 각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다." 각 사람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독립적인 행위 주체이며, 노동은 이 행위 주체가 한 일이다. "각 사람이 몸을 놀려 한 일과 손을 놀려 만든 것은 (…) 본래적 의미에서 그 사람의 소유이다."
    로크에게서 노동을 통한 소유의 정당화는 다음과 같은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다. 1) 각 사람은 생명을 유지하고 삶을 향유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획득해야 한다. 2) 무엇인가를 자기 것으로 얻기 위해서는 일해야 한다. 3) 일을 해서 얻은 것은 그 일을 한 사람의 소유이다. 중요한 것은 소유의 대상이 생활필수품에 국한되지 않고 생산수단까지도 포함한다는 점이다. 개인은 경작되지 않는 땅을 개간해서, 곧 노동의 기여를 통하여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고, 이를 노동을 위한 수단으로 지배한다.
    그 다음, 화폐의 발명 이후의 자연상태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화폐의 발명은 무제한한 소유를 향한 길을 연다. 왜냐하면 화폐는 노동의 소산이 썩을 것에 대한 염려를 불식시키기 때문이다. 이제 경작지의 소유는 한도를 모르게 되었다. 각 사람이 땅을 더 많이 개간하면 할수록 땅의 소산은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로크의 노동 소유권 이론은 자연에 대한 인간 노동의 절대적 우위를 전제한다. 이러한 주장 뒤에는 인간에게 부여된 신의 노동 위임이 땅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포함한다는 이신론적 견해가 깔려 있다. 그는 생명공동체를 형성하라는 신의 계명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땅의 점유와 지배를 신의 계명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인간 바깥의 피조물들은 "충만한 자연의 보고"로서 인간의 "향유"를 위해 주어진 것으로 간주되고, 인간은 노동을 통하여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을 자연으로부터 탈취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인식된다. 인간의 노동 능력(이성, 근면, 수고)은 자연재를 자원으로서 지배한다.
    로크의 노동소유권 이론은 후대의 노동가치론의 발전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두 곳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는 가치 형성에서 자연이 기여한 몫을 무시하는 관점이다. 로크는 가치 형성에서 원료를 공급하는 땅이 기여한 몫을 거의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 몫은 너무나도 적기 때문에 우리에게서조차 땅은 목축이나 개간 혹은 식물 재배조차 하지 않고 자연에 내맡겨둘 정도이다." 가치 형성에서 자연의 기여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생활필수품은 오직 그것이 노동의 산물이기 때문에 제 가치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로크의 견해는 장차 부르주아적 노동가치론의 기본 특징을 이루게 된다.
    또 다른 하나는 임노동자의 소유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로크는 화폐의 발명 이후에 임노동이 등장하였고 부르주아 사회에서 사실상 보편화되었다고 간주했다. 그러나 그는 임노동은 노동의 대가를 이미 지불받았기 때문에 그 소산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못박았고, 따라서 임노동자는 소유의 보호를 목표로 해서 조직된 정치공동체에 참여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2. 경제학의 틀에서 노동가치론은 본래 시장에서 등가교환을 보장하기 위한 가치 척도를 규정하기 위해 구상되었다. 경제학자들은 하나의 상품이 쓸모가 있을 때에만 교환관계에 들어선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용가치가 상품 교환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쓸모가 있는 물건들을 어떤 척도 아래서 서로 교환하여야 하는가? 교환되는 재화의 등가성(等價性)을 객관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상품의 교환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정밀한 척도가 있어야 한다. 그 척도는 과연 무엇인가? 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담 스미드였다.
    스미드는 시장 가격이 독점이나 교환 강제 혹은 사기에 의해 동요되지 않는 이상적인 상태를 전제하고서 "모든 재화의 교환가치를 측정하는 진정한 혹은 사실상의 척도"는 노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적 분업과 공정 분업의 조건들 아래서 "보통 노동"의 동등성을 출발점으로 삼고, 노동자가 상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고 수고한 보통 노동의 양을 기준으로 해서 교환가치를 규정했다.
    스미드에 따르면, 가치를 결정하는 데 고려되는 것은 오직 노동, 더 엄밀하게 말하면, 양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형태의 노동뿐이다. 자연의 생산성을 강조한 중농주의자들(Boisguillbert, Vantillon, Petty, Quesney 등)과는 달리, 자연은 스미드의 가치 결정에서 완전히 배제된다. 스미드는 자연이 자유재 형태의 원료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고, 따라서 자유재로서의 자연은 경제학에서 어떤 가치도 갖지 않는다고 전제했다. 자연 자원은 오직 인간의 노동에 의해 가공되어 노동 소재로 소유될 때에만 그 가치를 갖는다. 자연 자원의 가격은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공하는 데 들어가는 생산비용에서 비롯된다.

    3. 데이비드 리카아도는 스미드의 노동가치론을 두 방향에서 철저하게 다듬었다. 우선, 그는 스미드의 자유재 개념을 자연상수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상품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 외적인 자연은 모든 생산과 모든 가치 형성의 항구적인 전제조건이다. 이 자연은 경제의 영원하고 고갈되지 않고 파괴되지 않고 무제한한 조건이다. 그 다음, 리카아도는 자연상수를 전제한 순수 노동가치론을 정식화했다.
    그는 노동의 두 측면에 주목했다. 첫째, 노동은 가치생산적이라는 것이고, 둘째, 노동은 또한 상품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두 주장을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시장에서 상품들 간의 가치 관계를 결정하기 위해서 리카아도는 "인간의 노동에 의해 증식되지 않는 것을 예외로 치면, 노동은 모든 물건들의 교환가치의 근거"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서로 다른 두 상품들의 가치 관계가 인간이 각각의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수행한 "사회적으로 평균적인" 노동의 양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다음, 이와 동시에 리카아도는 노동이 상품으로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만일 상품들의 가치 관계가 지출된 노동의 양에 의존한다면, 노동이 상품으로서 갖는 가치를 정확하게 규정하는 것은 모든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출발점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노동의 가치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유지하고 자신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지출하는 비용으로 귀착한다. 바로 여기서 리카아도식 가치 분석의 난제가 발생한다.
    만일 가치 형성에서 자연의 몫을 절대적으로 배제하여야 한다면, 생산비용을 공제하고 난 뒤에 남는 가치의 잉여는 노동에게 귀속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리카아도는 노동이 가치창조적이라고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리카아도의 자본주의에서는 사정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자본가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지불했다. 자본가의 입장에서 임금은 생산비용에 속하며 임금 지불을 통하여 가치 형성에 기여한 노동자들의 몫은 인정되고 보상되었다. 따라서 가치의 잉여가 노동자들에게 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근거는 더 이상 없다. 가치의 잉여는 당연히 자본가에 의해 전유(專有)된다. 그런데 가치의 잉여가 자본가에게 전유되어야 한다면, 자본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가치의 형성에 참여하였음을 증명하여야 한다. 바로 여기서 리카아도는 하나의 딜레마에 직면하였음을 안다. 왜냐하면 그는 노동이 가치생산적이라고 전제하였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리카아도는 상품의 생산을 위해, 다시 말하면, 가치의 생산을 위해 지출한 노동량을 산 노동의 몫과 죽은 노동의 몫으로 나누었다. 산 노동은 노동자의 생산적 노동이고, 죽은 노동의 집적은 고정 자본, 곧 생산수단의 형태로 나타난다. 리카아도의 눈에는 산 노동과 죽은 노동이 아무런 차이 없이 가치 생산에 참여한다. 자본가가 생산수단의 소유자로서 가치의 잉여를 전유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 죽은 노동의 가치창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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