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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407] 종교개혁과 한국교회 [카테고리]
  • 최형묵
    조회 수: 6344, 2004.07.28 23:35:55
  • 종교개혁과 한국교회
    -루터와 뮌쳐를 중심으로

    김 주 한

    1. 한국교회 개혁을 위한 자원으로써의 종교개혁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이 오늘날 한국교회에 주는 의미들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기독교 전통에 대한 연구에서 펠리칸(Jaroslav Pelikan)은 전통과 전통주의와의 차이점을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전통(tradition)은 죽은 자들의 살아있는 신앙이며 전통주의(traditionalism)는 살아있는 자들의 죽은 신앙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전통을 우리 자신의 주체적인 경험으로 체현화(embodiment)시킬 때 살아있는 유산이 된다는 것이다. 종교개혁가들의 사상과 정신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개신 교회가 종교개혁 당시에 그들이 품었던 개혁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삶들을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자세를 점검하는 자료(source)로 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종교개혁은 오늘날 한국 개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풍부한 자원들을 제공한다. 그 이유는 여러 측면에서 논의될 수 있지만 필자는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는 종교개혁시대의 위기들은 오늘날 우리 시대와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16세기 유럽 사회는 개인과 사회 위기들이 동시에 분출되면서 강력한 개혁과 그 개혁에 대한 반발들이 서로 뒤엉켰던 시대였다. 급격한 사회 변화와 그에 따른 사회 불안, 천장 모르는 인플레이션, 정치와 종교에서의 권력 다툼과 이데올로기들의 갈등 등이 그 시대의 두드러진 특징들이었다. 둘째는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지탱하기 위해서 투쟁하였다는 점이다. 물론 그 당시에도 오늘날처럼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불안과 비례해서 확고부동한 자세로 기존의 신학과 목회 방식을 되풀이하면서 고수하였다. 그러나 소수이긴 하지만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하였던 개혁적인 성향을 지닌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죽은 자들의 살아있는 신앙"의 자원들을 재발견하기 위해 씨름하였고 따라서 자신들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신학과 목회들을 발전시켜나갔다. 그들의 신앙이 살아있었던 것은 그들은 신앙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실천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였기 때문이었다.
    최근 들어 그리스도인이든 비 그리스도인이든 간에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진단하면서 날카롭게 비판하는 일들이 부쩍 늘어났다.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과 개혁에 대한 요구들은 이미 오래 되었지만 요즘 들어 그러한 요구들은 이전과 비교해 볼 때 강도가 훨씬 높고 보다 조직적이다. 요즘 한창 사회 전반에 걸쳐 개혁의 목소리가 드높아있는 이때에 가장 개혁이 힘들고도 정체되어 있는 분야가 정치계라고 하는데 교회는 정치계보다도 더 힘들어 보인다. 교회는 이제 웬만한 비판에도 충격을 받지 않는다. 그 이유는 교회가 그러한 비판들을 충분히 소화해내고 충격을 흡수할 만한 역량이 있어서 라기 보다 아예 비판의 소리에 무감각해져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만성적인 도덕 불감증에 걸려 있는 것이다. 종교사회학자 이원규 교수는"한국교회의 현실과 전망"이라는 글에서 현재의 한국 교회는 내적 위기뿐만 아니라 외적 위기까지 겹쳐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한국 개신교 주요교단들의 성장률을 비교 검토한 결과 1990년대에 이르러 그 성장이 둔화되고 있음을 통계로 보여준다. 이 교수는 한국 교회는"신앙노선의 차이로 인한 교회 내적 갈등도 커지고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무엇보다도 교회가"사회적 공신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사실을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그는 한국교회가 사회적인 기능을 올바로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사회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종교별 이미지 평가에서도 개신교는 천주교와 비교해 볼 때 구제나 봉사활동 등 대 사회적 역할을 잘한다고 보는 비율은 천주교 44.8%보다 낮은 37.8%에 불과했고 또 천주교, 불교와 비교해 볼 때 개신교는 참 진리 추구보다는 교세확장에 더 관심을 갖는다라는 인상을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한국 개신 교회가 이러한 문제들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거기에 대한 해결방안들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시대변화의 흐름에 스스로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한 새 천년의 문명사에서의 그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아마도 미래의 역사에서 한국 개신 교회는 그 존재의 이유를 상실할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절박한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종교개혁가들의 사상과 정신은 한국 교회 개혁을 위한 하나의 귀중한 자원이 될 것이다. 종교개혁가들이 외친 개혁사상들은 한국 교회가 귀담아 들어야 할 중요한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루터와 뮌쳐의 개혁운동을 비교 검토해 볼 것이다. 루터와 뮌쳐는 천여 년 동안이나 절대적으로 당연시 되어왔던 신앙체계와 교회 전통들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교회 역사의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서 있다. 그들이 일생을 통해서 씨름하고 고민했던 신앙 문제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신앙적 고민과 반성들이 오늘날 한국교회에 던져주는 의미들이 무엇인지를 찾아볼 것이다.

    2. 루터와 뮌쳐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 무대에 등장한 개혁그룹들은 크게 두 파로 나뉘어진다. 루터, 쯔빙글리, 부쳐, 칼빈 등과 같은 제도권(magisterial)종교개혁가들이 한 축을 이루고 있고 칼 슈타트, 토마스 뮌쳐, 아나뱁티스트들(재 세례파들)이 또 다른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마틴 루터(1483-1546)와 토마스 뮌쳐(?-1525)는 그들의 신학사상과 개혁운동 방식에 있어서 가장 뚜렷하게 대조된다. 뮌쳐는 루터의 개혁방식은 너무 중세적이며 가톨릭 교회와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불만을 터뜨리면서 독자 노선을 택하였고 루터는 뮌쳐의 개혁운동은 너무 혁명적이며 성서를 사회변혁의 수단으로 오용하면서 복음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하였다고 비판하였다. 두 사람 모두 중세 후기 교회에 저항하였다. 하지만 성서의 가르침들을 이 세상에서 어떻게 실천하느냐의 방법론에 대해서 그들은 서로 입장이 달랐다.

    1)루터의 길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95테제를 발표하고 나서 그것을 널리 뿌려야 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 테제가 담고있는 내용의 폭발성과는 달리 루터의 행동은 단지 학문적인 토론을 위한 요청이었다. 그러나 루터가 그 테제들에서 비판한 이슈들은 신앙의 본질과 교회 교직제도의 권위문제들을 건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민감하고도 위험스러운 것이었다. 따라서 95테제의 파장은 일파 만파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루터는 교황청과 활발한 논쟁을 벌이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지게 되면서 당시 개혁운동의 맨 앞에 서게 되었다. 루터가 당시 교회를 비판하고 나서게 된 동기를 부여한 것은 면죄부 판매였다. 면죄부 판매는 중세 후기 교회의 부패와 타락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행위였다. 루터는 면죄부 판매 행위에 대한 비판을 계기로 자신과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아주 오랫동안 괴롭혀 온 매우 중요한 문제에 해답을 찾기를 원하였다. 그 문제는 바로 구원에 관한 것이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오늘날 한국 교인들은 이 질문에 대해 그것은 "오직 믿음으로"(sola fide)라고 아주 명쾌하고도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루터 시대에 교회가 가르친 구원론은 교회 권위와 결부되어 아주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그러한 가르침에 시비를 건다는 것은 곧바로 교회 질서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그 누구도 그러한 체제에 도전한다는 것은 여간 불가능해 보였다. 중세 후기 교회가 가르친 구원론의 핵심은 "선행의인화"(works-righteousness)신학으로 요약된다. "선행 의인화"신학은 "인간의 구원은 신앙과 더불어 하나님의 은총의 도움으로 선행(good works)을 통해서 가능하다"로 요약된다. 즉 하나님은 최선을 다해 선행을 한 사람들에게 은총을 주실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구원의 과정에 우리 자신의 어떤 공로(merit piety)를 전제한 것이었고 이것은 정확히 루터가 고민한 신앙 문제의 근원이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해야한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인간과 신의 협력(synergism)을 통해서 가능하다. 이것은 신의 은총과 인간 업적의 균형 잡힌 결합이다. 루터는 괴로워했다. 도대체 내가 얼마만큼 선행을 해야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가? 이러한 구원 이데올로기를 이용하여 당시 교회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고 면죄부(indulgence)판매는 이러한 업적 경건(piety of achievement)의 표본이었다. 여기에 대해 루터는 절대 은총 사상으로 저항하였다. 루터는 당시 교회가 복음을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들에게 올바로 매개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먼저 교회의 선포를 새롭게 개혁할 필요를 느꼈고 그 선포의 중심에는 그의 칭의론(doctrine of justification)이 자리잡고 있다. "신앙을 통한 은총에 의한 의로움"(Justification by grace through faith)을 외친 루터의 주장 속에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전적인 죄인이라는 인간이해와 인간의 어떠한 선행도 구원에 상응할 만한 조건은 되지 못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루터에 의하면 인간들은 그들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는 결코 의롭게 될 수 없다. 만일 인간들이 그들의 행위에 의해서 의롭게 된다면 구원은 인간 행위에 의존하게 되는 조건적인 것이 되며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은 조건적인 사랑으로 환원되어 버리고 만다. 루터는 주장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앙만이 인간들을 의롭게 한다. "하나님의 의는 빈번히 반복된 행위들에 의해서 획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해서 전가된다(imparted)." 이러한 칭의론 신학을 기초로 해서 루터는 그의 새로운 개혁신학을 더욱 발전시켜나갔다. 그의 "하나님 의"(iustitia Dei)에 대한 새로운 발견, 즉 선한 자는 상급을 주시고 악하고 불의한 자들을 징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에서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고 의롭게 만드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의 이해변화, 그리고 도덕적인 노력이나 합리적인 추론에 의해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다(루터는 이러한 견해를 "영광의 신학"이라고 불렀다)라는 주장에 반대하여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십자가에서 "감추어 계신 분"(absconditus Deus)으로 이해한 십자가 신학, 이 모두는 루터의 개혁 사상의 데이터베이스였으며 그의 개혁 운동에 하나의 방향타였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루터가 일생동안 그의 개혁 운동을 전개함에 있어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판단 규준은 언제나 성서였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개혁신학의 기초 위에서 루터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 정면으로 도전하였고 그의 개혁운동은 당시 교회와 교인들의 신앙생활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

    2)뮌쳐의 길

    토마스 뮌쳐(1489-1525)는 루터의 개혁 사상에 크게 감명을 받은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뮌쳐가 어떻게 해서 루터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지만 1519년 라이프찌히 논쟁에 뮌쳐가 참석한 일이라든가 그 이후 쯔비카우(Zwickau)등 몇 개 도시에 있는 교회 설교자로 루터가 추천한 일등을 보면 종교개혁 시작 단계에서부터 루터는 뮌쳐를 개혁의 동역자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뮌쳐는 쯔비카우와 알스테드(Allstedt), 프라하(Prague)등지를 전전하면서 보여준 과격성으로 인해 루터와는 더 이상 개혁 공동전선에서 함께 할 수 없게 되었고 그와 루터는 서로를 맹렬하게 비난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루터와 뮌쳐의 개혁운동 방식을 결정적으로 차이 나게 만든 것은 성서에 대한 해석 차이였다. 뮌쳐는 성서를 전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성서에 대한 그의 해석은 루터에 의해서 주장된 것과는 달랐다. 뮌쳐는 기독교 진리란 성서의 문자나 성례전, 교회 직제(ecclesiastical hierarchy)들에서가 아니고 주관적으로 경험된 신앙 안에서 발견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뮌쳐는 하나님으로부터의 확고한 직접계시(direct revelation)를 강조하면서 그의 신학 시스템에서 축자주의(literalism)를 거부하였다. 뮌쳐에게 하나님의 계시는 성서의 문자에 제한됨이 없이 오히려 그것을 넘어선다. 사실 뮌쳐에게 영과 문자(the Spirit and the letter)는 서로 날카롭게 대립되어 있다. 그의 프라하 선언(Prague Manifesto, 1521)에서 뮌쳐는 성서 말씀을 "죽은 문자"(dead letter)로 간주하면서 그것을 사람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하나님의 살아있는 목소리"와 대비시킨다. 그는 성서는 신앙에 대한 증거이지 신앙 그 자체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뮌쳐는 신자들의 본질적인 변화는 하나님의 살아 계신 음성인 성령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그에게 성서는 "계시의 과정에 대한 역사적으로 제한된 표현"이었으며 하나님의 계시는 기존의 세상 질서를 혁명적으로 변혁하기 위한 자원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성령의 직접성을 기대해야 한다. 루터의 "오직 성서"(sola scriptura)의 원리는 뮌쳐에게 와서는 "오직 성령"(sola spiritus)이 되었다. 이것은 뮌쳐가 성서를 이차적인 자료로 취급했다거나 또한 그것을 무시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서는 루터나 뮌쳐 모두 그들의 개혁 신학을 위해 핵심적인 자료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해서는 서로 철저하게 달랐다. 루터가 외부로부터 전가된(imputed) 하나님의 외적인 말씀을 강조하고 있다면 뮌쳐는 성령의 내적인 증거에 의한 인간의 거듭남(regeneration)을 강조하였다. 뮌쳐에게 성서는 성령 안에서 중요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성서와 다른 외적인 객관적인 권위들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성령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인도함 받기를 원하는 종교적인 주관주의자였다. 뮌쳐는 성령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을 소외된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동일시하였다. 예수께서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심령이 참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지상에서 하나님왕국의 대리자들이다. "고통과 인내를 통해서 심령이 가난" 해지기를 열망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에 의해서 통치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다.
    뮌쳐는 성서의 율법에 기초한 기독교화 된 세상을 꿈꾸었다. 그는 하나님 법의 순수성을 분명하게 강조하면서 그 법에 의해서 새로운 사회가 건설될 수 있다라고 믿었다. 따라서 그에게 이 세상을 통치하기 위한 표준은 성서의 율법이었다. 따라서 기독교 왕국에서 악한 사람들은 "율법을 통해서 정의롭게 변해야 한다."
    뮌쳐의 이와 같은 성서 이해는 사회 구조를 변혁시키려는 그의 이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에게 성서는 그것에 의해서 이 세상의 질서가 변혁되어야하는 하나님의 법이었다. 이런 점에서 그의 비전은 혁명적인 율법주의(revolutionary legalism)였다. 이러한 입장에 근거해서 그는 혁명적인 프로그램을 그의 목회 현장에서 실천해 나갔다. 뮌쳐와 그의 추종자들은 지상에서의 하나님 왕국 실현은 기존 질서의 변혁에 의해서 가능하다라고 자신했다. 뮌쳐의 혁명적인 비전은 빈번히 루터의 종교개혁 노선과 갈등을 일으켰는데 그는 루터의 종교개혁은 "부패하고 무능한 사회의 인격화(personification)"라고 공격하였다. 그가 보기에 루터의 종교개혁은 기존 통치자들과의 강력한 연대 속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따라서 기존 사회질서를 개혁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뮌쳐에게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거듭남은 사회-정치적인 관계들의 재편성과 불가분리 연결되어 있다. 뮌쳐는 기존의 통치자들을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정치적인 혁명가가 되었다. 그의 종말론적이며 혁명적인 비전은 농민 전쟁과 밀접하게 결합되었다. 그는 농민 전쟁을 기존의 사회가 전복되고 선택된 자들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새로운 사회가 건설 될 수 있는 묵시적인 사건으로 보았다. 결국 뮌쳐의 혁명적인 프로그램은 비극적인 대량학살로 끝을 맺고 말았다.

    3. 분리될 수 없는 사실: 종교개혁과 사회개혁

    뮌쳐의 개혁 프로그램은 종교적이며 도덕적인 개혁뿐만 아니라 사회 질서의 급진적인 혁명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권 종교 개혁가들(the magisterial Reformers)과는 달랐다. 뮌쳐는 루터를 향해 "거짓말쟁이 박사," "교활한 여우," "비텐베르크 교황," "버릇없고 염병할(testicled)박사"등 격렬한 말투로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뮌쳐는 루터의 칭의론을 비판하면서 행위가 없는 오직 신앙에 의한 의로움은 "거짓 신앙"이며 "위선적인 신앙"이다라고 주장한다. 이 지상 위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는 그의 시도에서 뮌쳐는 개인적이며 사회적이고, 영적이며 종교적이고,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삶의 차원들을 신자들의 혁명적인 공동체의 이상과 결합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교회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권력자들과도 충돌하였다.
    루터는 뮌쳐와 그의 동료들을 위험한 광신주의자들, 유토피안들, 그리고 반역의 주창자들(the instigators)로 여겼다. 그리고 종교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서 집권자들이 뮌쳐의 혁명을 제압한 것에 대해서 찬사를 보냈다. 루터는 뮌쳐나 농민들과 같은 광신주의자들이나 종파주의자들을"복음 안에서 그들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는 사람들"로 간주하였다. 루터에 의하면 뮌쳐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율법과 심판을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와 혼돈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뮌쳐는 복음을 법률적인 코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루터가 보기에 뮌쳐의 결정적인 오류는 말씀과 영을 혼돈한 것이었다. 성령의 내적인 경험을 통해서 세상의 질서를 재편성하려는 뮌쳐에 대항해서 루터는 성령은 절대적으로 외부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확실히 루터에게 말씀은 성령보다 우선성(priority)을 가지고 있었다. 루터는 성서의 말씀과는 유리된 채로 성령에 의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직접계시에 대한 뮌쳐의 호소는 사회질서 재편을 위한 자료와 규범으로써 성서를 이용하는 그의 성서에 대한 확신을 스스로 가치 폄하 하고 있다고 말한다. 루터는 뮌쳐의 노선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칭의와 성화에 대한 적절한 관계를 왜곡하고 있다고 느꼈다. 확실히 뮌쳐는 성화(sanctification)에 대한 그 자신의 신학을 가지고서 루터의 칭의론 신학에 도전하였다. 이것은 루터가 그의 신학에서 성화론을 발전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루터가 율법과 복음 사이에는 적절한 구분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확실히 루터에게 칭의론은 성화론과 같은 다른 어떤 교리보다도 훨씬 더 우선적이었다. 루터가 보기에 뮌쳐의 입장은 선행에 기초한 중세교회의 도덕관의 다른 측면에 불과 하였다. 뮌쳐에게 단지 선행들은 주로 윤리보다는 개인의 영적 경험의 영역에 위치해 있었다. 뮌쳐는 하나님의 은총보다는 인간의 성취(achievement)에 초점을 두었다는 것이 루터의 판단이었다.
    우리는 루터와 뮌쳐의 개혁운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 두 사람을 평가할 때에 당시의 시대정신, 사회적 현실여건, 문화 등 여러 조건들과 결부시켜서 보아야 한다. 루터와 뮌쳐가 주로 상대한 사람들의 사회적 신분상의 구분들은 명확했다. 루터는 주로 수도승들, 학생들, 학자들, 귀족들과 친했고 영주들과 서신 왕래도 자주 하였다. 반면에 뮌쳐는 상인들, 광부들, 도시 빈민들, 노동자들, 농민들을 상대하였다. 표면적으로 보면 루터는 개혁을 지향하고 뮌쳐는 혁명을 꿈꾸었던 사람으로 비쳐진다. 뮌쳐는 "민중의 파워"를 내세우고 루터는"법과 질서"를 외친 사람으로 보인다. 뮌쳐의 농민전쟁 참여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는 기존 정치 체제의 근본적인 변혁을 추구한 혁명가였고 기존 질서의 사악한 악들을 제거하고 사회 조건들을 평등하게 하기 위해서 정부체제의 철저한 변혁을 추구한 급진주의자였다라는 견해를 갖게 했다. 반대로 농민전쟁에 대한 루터의 반대와 정부와 제도권 정치인들과의 그의 연대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는 기존 질서를 고수하고 정치적인 진전을 가로막은 보수주의자 혹은 심지어는 반동가였다는 견해를 갖게 했다.
    그러나 우리는 루터와 뮌쳐의 신학과 신앙 노선의 차이들은 사소한 친구와 적과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진정한 역사적 변증법적인 관계에서 보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루터와 뮌쳐는 동시대에 함께 활동하였다. 루터 없는 뮌쳐의 종교개혁이나 뮌쳐 없는 루터의 종교개혁의 성격을 온전히 파악하기는 힘들다. 루터는 교회개혁을 우선시 하고, 뮌쳐는 사회개혁에 헌신한 사람으로 단정지어 말 할 수는 없다.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은 서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을 바로잡는 루터의 포용 목회(ministry of acceptance)는 언제나 현상유지를 바라면서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기존 체제에 도전하면서 변혁을 시도하려는 뮌쳐의 대결목회(ministry of confrontation)를 필요로 한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목회현장에서 기능적 사고와 갈등적 사고는 언제나 필요하다. 루터의 목회에서 놀라운 사실은 개인과 사회가 불안한 가운데서도 그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하셨던 것을 말했다는 점이다. 죄의 용서와 받아들임에 대한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 개혁 프로그램은 쉽게 인간 자신의 프로그램이 되어 버린다. 뮌쳐의 목회에서 중요한 사실은 복음에 대한 헌신은 현행 사회적 문제들을 무시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확신아래 그의 신앙을 사회변혁과 연결시켰다는 점이다. 우리는 루터의 판단이 옳았는지 그리고 뮌쳐의 운동에서 복음의 진리의 문제가 그렇게 가혹하게 공식화되어야 할만큼 실제로 상황이 신학적으로 명확했었는가하는 문제는 역사적으로 규명되어야 하지만 이 두 사람의 개혁 운동에서 이론과 실천은 늘 함께 하였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루터에게서 믿음에 의한 칭의는 사회 윤리적인 결과들을 수반하지 않는 신학적인 추상이 아니며 개인 칭의는 그 자체가 사회적인 차원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뮌쳐에게서 사회개혁은 성령의 내적 확신을 통한 인간 자신의 내적인 갱신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서두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루터나 뮌쳐가 분노하며 도전했고 응답했던 신학적인 성찰들(reflections)은 현재의 상황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거나 중요성이 상실된 것은 아니다. 그 당시 그들이 제시한 해법들은 시대에 뒤짐이 없이 오늘날 교회에서도 여전히 적용될 수 있는(transferable)것들이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이 취한 입장에서 무엇이 보존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에 따른 과제들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첫째는 교회 선포를 새롭게 개혁해야 한다. 루터가 깨달은 복음은 오직 믿음에 의한 구원이었다. 이것은 당시 교회 선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업적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구원에 대한 이해를 분명히 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우리의 선한 행동이나 공로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 자신도 모르게 공로주의가 우리의 신앙 의식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공로주의는 보상심리와 통한다. 대가를 바라는 신앙은 루터의 칭의론에 정면으로 위배되며 중세 후기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둘째는 교회 개혁은 사회개혁으로 연장되어야 한다. 루터나 뮌쳐의 개혁운동은 중세 교회의 우상들을 철거하고 교회의 불합리한 구조들을 타파하면서 중세기적 질서의 해체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실로 루터와 뮌쳐 시대에 정치, 사회, 경제적인 주요 가치와 제도들은 이제 더 이상 전통적인 종교적인 합법화에 의해서 설명되거나 정당화 될 수 없었다. 교회 개혁이 교리나 제도 개선(renovation)에 머물고 만다면 그것은 무의미하다. 신앙 개혁은 사회적 실천을 통해서 가능하다. 우리가 루터나 뮌쳐의 개혁운동에서 배울 점은 그들은 개인적인 성결을 사회적인 성결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하였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신학과 신앙이란 실천적인 훈련이었다. 한국 교회의 개혁 운동에 대한 필자의 관심은 그 운동이 지향하는 방향성(direction)에 있다. 물론 운동의 내용과 방향성은 맞물려 있다. 교회 개혁 운동의 목표가 교회 내의 구조나 제도 개선, 그리고 신자들 각자의 성화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 성결이 믿음의 내면이라면 사회적 성결은 믿음의 외면인 것이다. 이 둘은 나누어 질 수 없으며 분리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종교개혁 이념이 규격화되고 율법주의적 경향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종교 개혁적인 사고의 역동적인 성격을 견지해야 한다. 에클레시아 젬퍼 레포만다!(ecclesia semper reformanda). 풀이하면 교회는 항상 개혁한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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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최형묵 6344 2004.07.28
42 카테고리 최형묵 5152 2004.06.27
41 카테고리 김진호 4276 2004.06.04
40 카테고리 최형묵 4829 2004.05.08
39 카테고리 최형묵 7959 2004.02.24
38 카테고리 최형묵 14490 2004.02.24
37 카테고리 최형묵 4357 200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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