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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논평] "이주노동자..."를 읽고(이석규) [카테고리]
  • 최형묵
    조회 수: 3638, 2005.05.29 22:46:06
  • 황용연의 “이주노동자-외부로서의 내부, 내부로서의 외부”를 읽고

    이석규(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감신대 강사/신학)

    1. “직접 대면하지 않은 시선”으로?

    이주노동자의 일거리는 이른바 3d(어렵고, 위험하고, 더러운)업종이다. 이 업종들은 비록 남한의 노동자들의 일거리였지만, 지금은 회피하고 취업하기를 꺼려하는 일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노동 시장을 “2차 노동시장”으로 불린다. 여기에서 발제자는 이러한 ‘2차 노동시장’으로 인한 사회적인 문제로서 “노동시장의 차별화”를 지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차별의 문제가 특히 한국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노동운동의 이슈인 “비정규직”이기도 함을 지적한다. 노동이란 자유 계약에 따른 자유로운 노동력 판매이고 능력에 따른 차이 외에는 어떤 차별도 허용될 수 없음을 인식하면서도 실제로 “차별받는 노동”의 현실 없이 “차별 없는 노동”이 작동할 수 없다고 논자는 평가한다.

    2. 무감각의 ‘민족의 핑계를 댄 타자화한 시선’에서 ‘우선적인 선택’으로 이행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결정적이기 보다는 한국사회의 노동 자체에서 나타나는 노동 차별화로 인한 “하층노동”의 어쩔 수 없는 현상과 한국의 소비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불쌍한”, “도와주어야 할” 대상으로 제시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것은 “타자화한 시선”이다. 오히려 이러한 시선은 차별화의 대상에 대한 책임을 망각할 때 가능하다.

    3. 다수자의 소수자를 위한 운동에서 점진적 주체적인 소수자 운동으로의 분화

    운동의 성과로서는 49년만의 국적법 개정과 고용허가제 도입, 재외동포법 개정 등이며 한계로서는 운동이 지원 단체에 지나치게 의존적이고 지원 단체의 종교적, 선교적 의도가 강하고 지원 단체들 간에 지나친 경쟁으로 본래의 의도에서 벗어났다는 것.

    현재 이주노동자의 운동의 주체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고 한다. 외노협 등이 중심이 된 지원운동단체가 주류이고 - 이주노동자의 운동의 주체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있는 점. 평등노조 이주지부 -> 이주노동자 지부로 이어지는 운동세력
    생산적이고 능동적인 이주노동자운동은 스스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있는 주체적인 소수자 운동으로서 평등노조-이주노동자 노조의 운동이다.

    4. 이주노동자가 과연 다음과 같은 꿈을 실현할 수 있을까?

    1)이주노동자가 ‘또 다른 자본가’-되기에 일조한다는 것은 현실 노동자의 투쟁/혁명을 무색 하게하는 환상이다.
    2)자본가와 제국/제국주의에 대항하고 투쟁하는 이주노동자운동이 가족의 해체나 재정착 의 실패를 가져온다라는 명분.
    3)이국에서 노동의, 재화축적 기회를 통해서 희생자인 이주노동자를 자본가와 편승하는 부티-부르주아로 보는 오해다.

    6. ‘외부의 시선에서 내부의 시선’으로 그리고 ‘내부의 시선에서 외부의 시선’으로

    발제자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시각과 판단은 구체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측면보다 매우 주관적이고 거기에 사례들과 자료들을 연결시키는 것 같다. 따라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타자의 시선’에 머무는 과감함과 솔직함이 엿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자적’인 측면에서 즉 ‘이주노동자-되기’의 차원에서, 요컨대 ‘지구화의 희생자’로서 이주 노동자라는 판단과 노동의 주체로서 이주노동자에게 저항과 대항 그리고 혁명을 위한 대안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는가. 여기에 비록 기독교이 맑스의 비판대로 ‘상부구조’라는 지탄을 받고 있지만 민중신학적인 시각에서 ‘하부구조’로서의 기독교->예수운동이 이주노동자운동을 위해서 일조해야 할 해결책을 찾아보아야 하지 않는가. 가해자로서 외부의 시선에서 희생자로서 내부의 시선으로, 기득권자로서 내부의 시선에서 타자를 위한 외부의 시선으로의 이행이 작동되어야 하지 않는가.

    지금 18만 명에 미치는 남한의 미등록 상태의 이른바 불법 외국인 노동자들이 ‘8월 31일’이라는 시한부 노동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경찰로 구성된 단속반이 공장지대를 뒤지며 검거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2005년 4월 21일 외노협 기자회견낭독 문 중). 지금 남한에 살고 있는 500만 명이 최저 생계비(4인 가족 기준으로 120만 원정도)에 못 미치는 빈곤의 생활로 허덕이고 있고 앞으로 몇 년 후 국가의 부채가 200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투쟁과 임금투쟁, 노동권투쟁의 외침이 뜨거운 여름을 더욱 달굴 것 같다.

    만약 우리가 상부구조로서의 종교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끊임없이 탈주를 시도하고 있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할 명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맑스가 과연 이러한 오늘날 경제적 지구화 세계를 지배하는 초국적, 다국적 정부와 자본가로부터 그 아래서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노동자들에게 또 다시 구출할 어떤 희망을 선사할 수 있을까? 오늘의 구출될 노동자들이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이라면 맑스의 그 희망은 어떻게 펼쳐져야 하는가? 상부구조로서 종교라는 테두리에 속한 기독교인들은 맑스가 주는 희망을 실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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