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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7회] 제국과 근본주의 (양권석)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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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수: 5491, 2005.11.30 14:34:38
  • 제국과 근본주의 (Empire and Fundamentalism)

    양권석(성공회대학교)


    1. 종교적으로 무장한 권력들의 시대
    종교와 정치의 결합은 우리 시대의 특징적 한 양상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의 문제는 물론이요, 보스니아 내전, 9.11 테러 사건과 이어지는 미국에 의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과 같은 세계적인 중대한 문제들과 사건들 속에 종교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다. 뿐만 아니다, 제국을 자처하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물론이요, 제국의 중요한 정책 결정과정에서도 종교의 영향력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뚜렷해지고 있다. 우리들에게 가장 위협적으로 다가왔던 악의 축(axis of evil)이라는 정치외교적 개념 역시, 부시와 그의 정책집단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신념에서 나온 것이며, 당사자들 역시 종교적 의도를 결코 숨기려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와 같이 정치권력에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종교집단이, 이슬람이나 기독교에 한정되지 않는 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특히 인도나 스리랑카에서 보는 것처럼, 여러 지역 분쟁들 속에서 힌두교, 불교, 그리고 유교마저도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적 권력들과 결합하고 있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종교적으로 무장한 정치권력들이 상호 충돌하고 있는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근본주의의 충돌; 신정정치의 충돌
    이러한 상황을 해석하고 이해함에 있어서, 정치권력이 종교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지나친 세속주의적 해석은 실상을 충분히 드러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선 세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지적해 두고 가고자 한다. 첫째로 이는 종교적으로 무장한 정치권력의 당사자들과 해당되는 종교 내부의 작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한다는 점이다. 거듭남과 회심을 강조하는 목사 같은 대통령 부시(George W. Bush)와 그의 측근들에게 종교와 신학은 결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제국의 이데올로기적 기초와 그들의 신학 사이에는 깊은 연관성이 있다. 뿐만 아니다,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을 비롯한 이슬람 과격파들에게 종교는 결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이들에게 이슬람은 제국의 지배가 그 어느 때 보다도 강화된 지구화시대에 대안적 세계관을 제공하는 핵심 원천이다. 이런 사실들을 무시한 채, 정치, 경제, 사회적인 해석만으로 문제를 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둘째로 현 상황에 대한 지나친 세속주의적 해석은 종교와 정치의 이분법을 절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근본주의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범하는 오류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와 정치의 결합이 본래부터 잘못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동맹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 종교와 정치가 만나는 일 자체가 잘 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종교는 현대의 정치 상황에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는 전 근대성을 대표한다는 암묵적 전제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급진적인 이슬람 정치에 대해서 언제는 전근대적이고 문명파괴적인 근본주의라는 말이 따라 다닌다. 하지만 이런 논리 안에 종교와 정치를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려는 의도, 그리고 세속주의적 주장을 절대화하려는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문제를 삼아야 하는 것은 종교와 정치가 관계하는 올바른 양식에 대한 것이지, 둘 사이에 뛰어 넘을 수 없는 담을 설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셋째로 현 상황에 대한 지나친 세속주의적 해석은 오리엔탈리스트적 논리를 강화한다. 이슬람에 붙여진 근본주의라는 명칭 자체가 이슬람 세계의 것이 아니라, 서구에 의해서 주입된 개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슬람에게 붙여지는 근본주의라는 명칭 안에는 다분히 서구의 오리엔탈리스트적 재단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람 근본주의에 관한 오리엔탈리스트적인 담론에 대한 비판은 다음 글들을 참고하였다. Hyas BaYunus, "The Myth of Islamic Fundamentlaism" from www.geocities.com/Collegepark/6453/myth.html; Sina Ali Muscati, "Reconstructing 'Evil': A Critical Assessment of Post-Sepetember 11 Political Discourse", in Journal of Muslim Minority Affairs, Vol. 23, No.2, October 2003, pp.249-269.
    종교와 정치를 이분하는 서구의 세속주의가 오리엔트에 와서는 아시아의 종교와 문화적 유산은 물론이요, 그것들의 영향 속에 있는 정체성을 부인하고 위협하는 논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종교적 문화적 유산들이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자산으로서 기능할 수 없게, 불임의 상태에 묶어 두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사무엘 헌팅톤(Samuel Huntington)의 문명의 충돌(clash of civilizations)과 같은 개념을 옹호하는 것으로 오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지나친 세속주의적 접근에 대해서 문제를 삼는 것은, 그러한 시도가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고도 건설적인 고민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와 정치가 관련되는 것 자체를 저주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개념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그것이 이슬람이나 기독교와 같은 종교문화 세계를 단일한 집단으로 오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종교와 정치, 경제, 사회와의 관계를 통일적이고, 단일한 것으로 오해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오해가 바로 특정한 문명에 대한 인정이나 저주와 깊이 결부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이슬람내의 다양한 흐름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을 하나로 보고, 나아가 이슬람 자체를 근본주의나 테러리스트로 보게 한다는 것이다. 문명 충돌이라는 개념이 가진 위험은 이슬람 내의 종교와 정치 결합의 특정한 형태가 아니라, 이슬람 자체를 반문명적인 것으로 부인하는 문명 차별적인 입장을 강화한다는 점이다.

    특히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으로 개념화된 부시 정권의 일방주의와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종교적 테러리즘의 충돌 양상은 문명의 충돌과는 무관한 것이다. 부시와 빈 라덴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세상에 대한 흑백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선과 악, 신실한 자와 불충한 자의 이원적으로 구별하고 있다. 일종의 종교적 회심(conversion)의 정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빈라덴이 알라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시 역시 미국을 향한 하느님의 축복과,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미국의 특별한 임무와 사명에 대해서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알라와 하느님의 이름이 동원되는 만큼, 자신들의 입장을 선험적으로 정당화하려고 하며, 폭력과 전쟁이라는 반인륜적 수단의 사용에 대한 자신들의 예외적 입장을 강조하며, 나아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이성적인 자기 성찰의 가능성은 처음부터 차단하려 한다. 이런 상황은 결코 문명 간 충돌로 불려질 수 없다. 오히려 반이성적일 뿐만 아니라 반문명적이기도 한 이 시대의 특정한 종교와 정치의 결합형태 - 그것을 근본주의적 결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가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타리크 알리(Tariq Ali)가 말하는 ”근본주의의 충돌(clash of fundamentalisms)" Tariq Ali, The Clash of Fundamentalism(New York: Verso, 2002).
    이 보다 적절한 표현이며, 하미드 세드기(Hamideh Sedghi)가 말하는 “반문명의 충돌(clash of the uncivilized)" Hamideh Sedghi, "Muslims in the West's Imagination: Myth or Reality?", issue 31, in Socialism and Democracy, Vol.16, No.1, October 2000, p.144.
    이 문명의 충돌을 가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말하는 ”무지의 충돌(clash of ignorance)" Pat McDonnell Twair, "Edward Said Addresses 9/11 Issues at Chapman University", in Washington Report on Middle East Affairs, Vol.21, No.4, 2002, p.51.
    또는 이성의 비판적 성찰적 기능을 거부하는 반이성적 체계들의 충돌로 현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현실을 보다 정확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종교와 정치의 특정한 결합형태는 곧 신정정치(theocracy)의 특정한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은 상황은 이학준이 말하는 것처럼, 부시 대통령을 포함한 보이킨(Lt. General Boykin)이나 프랭클린 그라함(Franklin Graham) 목사같은 사람들로 대표되는 미 공화당의 신정정치와 이슬람의 신정정치의 특별한 형태들이 상호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들이 선동하는 마니키안적(Manichean)적 선악의 이분법이 지구 사회를 다시 한번 중세적 암흑시대로 돌려놓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Hak Joon Lee, "Reinhold Niebuhr and the US War on Terror: A Response to Dr. Gilkey", in Political Theology, Vol.5, No.4, 2004, p.482.


    결국 당면한 과제는 종교와 정치의 특정한 결합형태로서 우리 시대의 신정정치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그러한 특정한 형태의 신정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상황에 대한 분석과 이해도 중요하지만, 아울러 종교적. 신학적 분석과 비판이 또한 필연적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충분히 종교적이고 신학적인 시각을 가지고 이슬람을 포함한 다양한 종교에서 나타나는 종교적으로 무장한 과격주의에 대해서 탐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과제들을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필자의 역량 탓이 제일 크지만, 다루어야할 신학적 이론적 맥락 또한 상당히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지구적 지배력을 가진 제국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공언하고 나서는 미국과 부시 행정부의 근본주의적 신정정치에 대해서 검토해 보려한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앞에서 말한 제 종교들에서 나타나는 근본주의는 지구화와 세속화의 공격 앞에서 생존을 지속하기 위한 긴박한 노력으로 드러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자타가 제국임을 공언하는 미국이 만들어내고 있는 근본주의적 신정정치는 제국의 신학이 되고, 이데올로기가 되어 세계인의 삶에 보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근본주의적 신정정치에 대해서 비판한다는 것은, 지구화 시대 제국의 신학에 대한 비판이 될 것이다.

    3. 제국의 신정정치; 미 공화당의 신정정치
    미 공화당의 근본주의적 신정정치는 현 부시 정권의 핵심세력인 신 보수주의(neo-conservatism) 집단과 기독교 우파(Christian Right)로 알려진 종교적 근본주의 운동의 동맹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겨레 신문 논설 위원 김지석의 <미국을 파국으로 이끄는 세력에 대한 보고서> 김지석, 미국을 파국으로 이끄는 세력에 대한 보고서(서울: 교양인, 2004).
    는 이 동맹 현상에 대한 자세한 보고서이며, 나아가 미국 보수주의 정치 지형에 대한 구체적인 안내 자료가 된다. 네오 콘은 구 보수파를 비판하면서 1960-70년대 이후에 부상한 말 그대로 새로운 보수파다. 현재 미국의 대외정책, 곧 세계 지배 전략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에게 있어서, 팍스 아메라카(Pax-Americana)나 미 제국(American Empire)이란 말은 더 이상 장막 뒤에서만 하는 말이 아니다. 과거에 이런 표현들이 미국의 헤게모니에 대항한 좌파 비평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9.11 이후의 부시 정권에서 네온 콘들은 자신들의 의도가 그와 같은 용어로 표현되는데 대하여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 퍼블릭 인트리스트(Public Intrest)>, <코멘타리(Commentary)>,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 같은 대표적 네오 콘 정치 잡지들과 함께, 호주의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이 소유한 또 하나의 보수 잡지 <위클리 스탠다드(Weekly Standard)>의 편집장인 윌리암 크리스톨(William Kristol)은, 네오콘의 왕세자답게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람들이 우리를 제국주의적 권력이라고 부르고자 한다면, 좋다 그렇게 불러라.” 유럽은 세속주의에 의해서 타락했고, 개발도상국은 가난 때문에 부패하였으니, 미국이야말로 새로운 세계질서에 걸 맞는 “도덕적 틀”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고 그는 주저 없이 주장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높은 이상과 굳건한 원칙을 가지고 하는 일이라면, 지배(dominance)라고 해서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라고 오히려 반문하고 있다. Jim Wallis, Dangerous Religion: George Bush's theology of empire, in Sojourners Magazine, September-October,2003. t
    이처럼 네오 콘은 더 이상 제국적 지배의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이러한 네오 콘들의 제국에의 야망이 기독교 우익(Christian Right)과 결합하고 있다. 기독교 우파의 활동은 미국 유권자 20-30%에 해당하는 미국의 복음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기독교인들의 투표 향방을 좌우하고 있다고 한다. 통계에 의하면 복음주의나 근본주의 계열 기독교인들의 80%가 투표에서 부시를 지지했으며, 부시 정권의 창출과 부시의 재집권을 위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복음주의 목회자들의 정치 활동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하라. James L. Guth, Linda Beail, Greg Crow, Beverly Gaddy, Steve Montreal, Brent Nelsen, James Penning and Jeff Walz, "The Political Activity of Evangelical Clergy in the Election of 2000: A Case Study of Five Denominations", in Journal of Scientific Study of Religion, Vol.42, No.4, 2003, pp.501-514.
    이처럼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을 선거에 동원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제리 폴웰(Jerry Falwell)이나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 같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는 기독교 우파의 운동이다. 네오 콘과 기독교 우익의 결합은 제국의 욕망과 신적인 위임의 결합이며, 미국식 애국주의와 신앙심의 결합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모는 부시 대통령의 신정정치 설교들 안에 그대로 녹아있다. 9.11 직후인 2001년 9월 20일 부시의 국회 연설은 아마도 국제 정치에 있어서 미국식 신정정치 선언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연설을 신학적으로 분석한 캐린 리스월드(Caryn D. Riswold)는 이것이 단순한 정치적 연설이 아니라, 교리적 선언문 같은 수사와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Caryn D. Riswold, "A Religious Response Veiled in a Presidential Address: A Theological Study of Bush's Speech on 20 September 2001", in Political Theology, Vol.5, No.1, 2004, pp.39-46.
    여기서 부시는 선과 악의 명백한 이분법을 밝힐 뿐만 아니라, 신이 미국 편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슬픔과 분노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임무와 그 기회를 발견한다.... 우리 시대에 위대한 성취이면서 동시에 모든 시대의 희망인 인간 자유의 진전이 지금 우리에게 달려있다.... 이 투쟁의 과정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결과는 분명하다. 자유와 공포, 정의와 잔인함은 언제나 전쟁 가운데 있어왔으며,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이 그들 사이에서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안다. Our mission and Our Moment: President George W. Bush's Address to the Nation Before a Joint Session of Congress, September 20, 2001(New York: Newmarket Press, 2001), pp.12-13.


    2003년 1월의 부시의 국정 연설 State of the Union Address, Jan. 28, 2003.
    www.whitehouse.gov/news/releases/2003/01/20030128-19.html
    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은 세계 문제에서 함께한다. 신은 미국이 중동에서 해방의 십자군을 이끌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역사의 소명이 올바른 나라에 왔다.” 더 나아가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면서 그의 수사는 연일 자유와 민주주의에 매달리고 있었다. “우리가 미국에서 사랑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자유다. 자유는 미국이 세계에 주는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신이 모든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다.” 미국은 신이 주는 자유를 지키고 전파하는 신적 사명을 부여 받은 선택된 국가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4. 네오 콘의 제국주의 기획
    과거 많은 비평가들은 미 제국주의의 특징은 스스로 제국을 주장하지 않는다는데 있다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제국주의 기획은 노골적이란 표현조차도 무색할 만큼 너무나도 공개적이다. 그리고 그 기획을 주도하는 세력들 역시 자신들의 의도를 전혀 우회적으로 표현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2002년 9월 20일 백악관이 부시 독트린으로 알려진 ‘미국의 국가 안보전략(The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을 발표했을 때, 세계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같은 해 1월의 국정연설 State of the Union Address, Jan. 29, 2002,
    www.whitehouse.gov/news/releases/2002/01/20020129-11.html
    에서 다분히 신학적이고 우주론적으로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북한, 이라크, 이란에 대해서 선제공격을 할 수 있음을 명백히 하였고, 소위 자신들이 규정하는 불량국가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우방 동맹세력에게 마저도 결코 도전을 허용하지 않는 군사적 힘의 우위를 지킨다는 입장을 명백히 하였으며, 미국의 국가적 이익이 곧 세계의 이익이며, 미국의 역사와, 미국의 가치와 원칙은 곧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원칙임을 강변하면서, 미국이 결정하면 곧 세계가 따라야 한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부시 독트린 안에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본성과,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점을 분명히 가지고 있으며, 민주와 자유와 평등과 자유무역을 중심으로하는 자본주의로 자신들의 이념을 분명히 표현한다. 그래서 미국은 세계를 위한 보편적인 원칙 위에 세워진 나라이고, 때문에 미국이 세계를 다시 만들어 가는 일을 감독할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명확한 도덕적 원칙과 가치 판단을 통해서 인류 문명사의 보편적인 목표를 실현해 간다고 말한다. 미국이야 말로 그 도덕의 최고의 실현자이고, 인류를 위해서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자, 곧 구세주 국가임(Savior Nation)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처럼 근본주의적인 제국의 선언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 구세주 국가 고백문, 세계 지배를 위한 독트린을 만들어 내는 일을 기획하고 발전시켜 온 핵심 인물들이 바로 네오 콘들이다. ‘미국 기업연구소(AI)’, '해리티지재단,‘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 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등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역사적 뿌리는 60-70년대로 되돌아가지만 이들이 구체적으로 영향을 가진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은 레이건 행정부 때부터이다. 특히 ‘미국의 새로운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 곧 PNAC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도 강력한 군사력과 공격적 외교정책을 기조로 했던 레이건 시대를 아버지 부시 시대 보다 더욱 중요한 자신들의 정치모델로 삼고 있다. 파나마 그라나다등 중남미 지역에 무력침공을 거듭하고, 이란에 대항하기 위해 이라크와 사담 후세인의 무장을 주장했던 이들도 같은 사람들이다. PNAC의 회원이며 제1차 걸프전 때 국방부 차관이었던 울포비츠(Wolfwitz)는 지금의 미국의 제국기획의 초안이 되는 문서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클린톤(Bill Clinton)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이들의 꿈은 잠시 유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클린턴이 소말리아와 보스니아 사태에 대응하여 다자주의와 평화유지임무에 매달리고 있을 때, 이를 비판하면서, PNAC(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개시한다. 1997년에 발표된 이 그룹의 선언문은 사실상 부시 독트린의 핵심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막강한 군사력의 우위를 전제할 뿐만 아니라 지켜야 한다고 보고 있고, 다자간 행동 보다는 일방적 행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고, 군사적 힘과 도덕적 명료함을 가진 레이건 시대의 정치를 본받아, 미국은 미국의 원칙과 이익에 부합하는 새로운 세기를 만들어갈 결단을 해야 한다고 천명한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아버지 부시 시대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리고 현 부시 대통령의 집권 초기에도 상당히 유보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9.11이라는 기회를 그들은 놓치지 않았고, 미국민들에게 깊이 스며든 공포심에 기반해서 자신들의 제국의 기획을 설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부시 독트린 곧 미국의 국가 안보 전략에 관한 선언은 이들 PNAC그룸이 만들어 낸 각종 외교 관련 문서들의 사실상 결정판이며, 집대성이다. (이 선언문은 위에서 말한 김지석의 책 중에 부록으로 실려 있다. 반드시 한번 정독하길 바란다.) 이 선언문의 뼈대를 제공하고 있는 PNAC의 원칙에 관한 성명서를 여기에 옮겨 본다.

    원칙에 관하여 www.newamericancentury.org/statementofprinciples.htm


    1997년 6월 3일

    미국의 외교 안보 방위 정책은 표류하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클린턴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에 대해 비판해 왔다. 또한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집단 내부에서 고립주의적 충동들에 저항해 왔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전략적 비젼을 신념을 가지고 진전시켜 오지 못하였다. 그들은 미국의 외교 전략을 위해 지침이 될 수 있는 원칙들을 제안해 내지도 못하였다. 보수주의자들은 전략적 목표들에 대한 잠정적 합의의 가능성을 모호하게 할 수 있는, 전술에 대한 차이들을 허용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미국의 안보를 유지하고 새로운 세기에 미국의 이익을 진전시켜 갈 수 있게 하는 방위 예산을 위해서 싸우지도 않았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변화시키려한다. 우리는 미국의 지구적 리더쉽을 강력히 주장하고 그것을 지원하기 위해 모일 것을 목표로 한다.

    20세기가 저물어 가면서 미국은 세계에서 월등한(preeminent) 힘으로 자리 잡고 있다. 냉전에서 서방을 승리로 이끌면서, 미국은 하나의 기회와 하나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수 십년간 이룩한 업적들을 진전시켜 갈 비젼을 가지고 있는가? 미국은 미국의 원칙과 이익에 부합하는 새로운 세기를 만들어 갈 결단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기회를 놓쳐 버릴 위험 가운데 있고, 도전에 실패할 위험 가운데 있다. 우리는 과거 정부들이 이루어 놓은, 군사적 투자와 외교 업적들이라는 자산에 의지해서 나아가야 한다. 외교 업무와 방위비 지출의 삭감, 정치 도구나 수단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일관성 없는 지도력은, 세계 전역에 걸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단기적 상업적 이익에 대한 약속이 전략적 고려를 무시하도록 위협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현존하는 위협에 대처하고 앞에 놓인 더 큰 도전들을 다룰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우리는 레이건 행정부 성공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요소들은)현재와 미래의 도전들에 응할 수 있는 준비되고 강한 군대; 해외에서 미국의 원칙들을 목적의식을 가지고 대담하게 진전시켜 갈 수 있는 외교 정책; 미국의 지구적 책임을 수용하는 국가적 지도력이다.

    물론 미국은 자신의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신중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구적 지도자적 책임이나 그 책임의 수행과 관련된 대가를 안전하게 피할 수 없다.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와 중동에 있어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책임을 회피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근본적인 이익에 대한 도전들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20세기의 역사는 위기가 출현하기 전에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위협이 무서운 재난이 되기 전에 위협들에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음이 분명하다. 금세기의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미국의 지도력이라는 대의를 받아들이도록 가르쳐 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의 목적은 미국 사람들에게 이 가르침들을 상기시키고, 오늘을 위한 그 가르침의 중요성을 견인해 보려는 것이다.

    *우리가 지구적 책임을 수행하려면, 방위비 지출을 크게 증가시키고, 그리고 미래를 위해 우리의 군대를 현대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동맹 세력들과 동맹을 강화하고 우리의 이익과 가치에 적대적인 정권들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

    *해외에 정치적 경제적 자유라는 대의를 촉진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의 안보와 우리의 번영과, 우리의 원칙들에 우호적인 국제질서를 유지하고 확장하는데 있어서 미국의 독특한 역할(America's unique role)위한 책임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군사적 힘과 도덕적 명료함이라는 레이건 시대의 정책이 오늘날 세태에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이 금세기의 성공들 위에서 더욱 진전해 가고, 다음 세기에 우리의 안보와 우리의 위대함을 보장하려 한다면, 그것(군사적 힘과 도덕적 명료함에 기반한 레이건 시대의 정책)은 필연적이다.

    Elliott Abrams Gary Bauer William J. Bennett Jeb Bush
    Dick Cheney Eliot A. Cohen Midge Decter
    Paula Dobriansky Steve Forbes Aaron Friedberg
    Frank Gaffney Fred C. Ikle Donald Kagan
    Francis Fukuyama Dan Quayle Paul Wolfowitz
    Zalmay Khalilzad I. Lewis Libby Norman Podhoretz
    Peter W. Rodman Stephen P. Rosen Henry S. Rowen
    Donald Rumsfeld Vin Weber George Weigel

    이 성명서가 97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대통령 취임 초기에 겸손한 외교를 말했던 부시 대통령이 왜 9.11 이후에 강경한 본심을 드러내게 되었는지, 그리고 9.11이후 이들 PNAC을 중심으로 한 신 보수주의자들의 강경론이 득세하게 된 이유를 알만하다. 아마도 이들은 자신들의 예언대로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와 명료한 도덕성, 그리고 그것에 기반 한 미국의 지구적 지도국가로서의 책임이라는 자신들이 주장한 정책들을 무시한 결과가 9.11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미 이 문서 안에 네오 콘들의 제국의 기획은 숨김없이 드러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근본주의가 이미 확연히 드러나 있다. 이 문서는 자신의 영원한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초안 문이며, 동시에 그 영원한 제국을 지켜 내기 위한 방위 전략 문서이다. 또한 이 문서는 부시 독트린에서 확실하게 드러난 대로,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와, 명료한 도덕성을, 높은 가치(values)와 원칙(principles)과 이상(ideals) 이상과 가치와 원칙을 지닌 지구를 책임진 지도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미국 메시아주의의 선언이다. 그리고 분명히 잊지 않고, 우리의 이익과 가치에 도전하는 정권들은 가만 두지 않겠다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자유와 민주를 외치며, 미국의 가치와 이익을 절대화하고, 미국을 따르는 자들은 선한 편이고, 그렇지 않은 쪽은 악한 쪽이라고 하는 선악의 이분법, 곧 악의 축이라는 개념을 가능하게 했던 원리가 이미 여기에 있다. 모든 국제법과 국제기구들의 의사결정을 무시하고 미국의 예외적 역할과 일방적 역할을 세계에 각인 시키겠다는 의도도 이미 여기에 숨겨져 있다.

    그리고 이 문서 안에는 네오 콘이 신자유주의자들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향후 기독교 우익들과 만나게 될 계기도 충분히 드러나 있다. 강력한 국가에 대한 강조, 단기적 상업적 이익보다는 전략적 이익에 대한 강조등은 신자유주의자들과는 분명히 다소 다른 입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문서에서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가치와 도덕성과 자유의 이념에 대한 강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윌리암 크리스톨의 아버지이며, 네오 콘의 대부로 알려진 어빙 크리스톨(Irving Kristol)은, 신 보수주의자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가치와 도덕, 종교와 문화적 전통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한다는 점에서 다른 보수주의자들과 차이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김지석, 미국을 파국으로 이끄는 세력에 대한 보고서, pp.150-151.
    결국 이런 점이, 이후 과정에서 복음주의자와 근본주의자들, 그리고 오순절파, 카리스마 운동파 등 다양한 기독교 우익 그룹과 만날 수 있는 기초가 되었으리라고 볼 수 있다.

    5. 기독교 우익(Christian Right)의 성장 이 부분은 클라이드 윌콕스(Clyde Wilcox)의 다음 글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Clyde Wilcox, "Laying Up Treasures in Washington and in Heaven: The Christian Right and Evangelical Politics in the Twentieth Century and Beyond", in Magazine of History, 17, 2, Jan. 2003, pp.23-29.

    우리가 듣고 있는 기독교 우익(Christian Right)이라는 것은, 미국의 복음주의적 기독교인들을 정치에 동원하기 위한 초교파적 사회운동이다. 이 안에는 제리 폴웰(Jerry Falwell) 같은 사람을 대표로하는 근본주의 파(fundamentalists), 성령의 은사나 방언등을 강조하고 하느님의 성회(the Assembly of God)가 대표적 교단인 오순절파(pentecostals), 특정하고 선택된 사람들에게 내리는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는 범교단적인 카리스마운동파(charismatics), 빌리 그라함(Billy Graham) 같은 사람들이 대표하는 다소 온건하고 타협적이라 할 수 있는 신 복음주의파(neo-evangelicals)등의 다양한 복음주의 계열의 교회와 인사들을 포함하고 있다. 한국의 상황에서도 그렇지만, 이들 복음주의 집단들이 초교파적으로 연합하는 일은 사실상 쉬운 일이 아니다. 배타적이고 편협한 교리적 입장을 갖는 이들의 경우 끊임없는 분열과 분파가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교회와 세계에 대한 이원론인 입장을 갖기 쉬운 이들이 현실 정치에 개입한다는 것도 우리가 가진 상식으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특히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이들은 대단히 공개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였다.

    하지만 미국의 보수 기독교 진영이 정치에 개입해 온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이미 1920년대 근본주의 운동에서부터 정치, 사회적 문제에 개입해 온 전통이 있었다. 북아메리카 성서동맹(Bible League of North America), 아메리카 성서 십자군(Bible Crusaders of America), 기독교 신앙의 수호자(Defenders of Christian Faith), 질주하는 근본주의자들(Flying Fundamentalists) 등이 이 시대의 대표적인 근본주의 운동 단체들인데, 이들의 핵심적 과제는 공립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진화론 교육에 반대하는 운동을 통해서 정치 사회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반 진화론을 지지하는 대중의 의견을 결집하기 위한 대중집회를 비롯해서, 입법 책임자를 설득하여 진화론 교육에 반대하는 법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였으며, 때로는 법정 투쟁을 통해서도 진화론 교육에 반대하는 각주에 진화론 교육에 반대하는 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어 진화론 교육에 반대하는 운동이 열기를 잃어 가면서 이들 근본주의자들은 반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하게 된다. 그리스도 세력과 적그리스도 세력이 이스라엘에서 마지막 전쟁을 하게 될 것이라는 성서의 예언을 따라 이들은 소련 진영이 적그리스도를 형성한다고 보고 반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 근본주의자들의 반진화론 운동과 반공산주의 운동은 주류 교단들의 협력을 끌어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이들의 편협하고 독선적인 입장은 초교파적 연합을 힘들게 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1930년대의 대 공황기의 재정 동원의 어려움과, 변화된 사회적 환경은 이들의 설자리를 더욱 좁혔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 대 역류의 시기가 사실은 훗날 미국의 복음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기독교의 성장을 위한 기초를 놓았던 시기라고 전해진다. 정치적, 사회적 활동에서 후퇴한 이들은 성서학교와 신학교 등을 세우고 교육하는 활동을 통해, 미래를 위한 진지와 요새를 강화하는데 모든 노력을 경주하였던 것이다.

    1950년대 맥카시(Senator Joe. McCarthy) 선풍은 이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허락하였다. 근본주의자들은 맥카시의 반공산주의 선전활동에 가담하기 위해 다시 한번 결집하였고, 기독교 십자군(Christian Crusaders), 기독교 반공산주의 십자군(Christian Anti-Communist Crusade), 교회 연맹(Church League)등의 근본주의 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반공산주의는 훨씬 정치적인 주제였다. 때문에 반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한 근본주의자들은 다양한 비 종교적 세력과 연합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이들과 함께 사회주의적 영향을 받은 사회보장 제도를 반대한다거나, 아니며 우파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일에까지 가담하게 된다. 특히 1964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를 지지하는 저극적인 정치 개입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맥카시 선풍은 물러가고 있었으며, 1960년대 미국은 그야말로 문화적 대혁명기라 할만한 사회적 변화의 시기였다. 전통에 대한 반란과 반전의 물결이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한번 이들 기독교 우익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진지와 요새로 돌아가 재정비 할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 우익 운동이 미국의 공화당 보수정치 세력과 결정적으로 결합하게 되는 것은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부상하는 과정에서였다. 1970년대 말 공화당 활동가들은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 “기독교인의 소리(Christian Voice)”, “종교 라운드테이블(Religious Roundtable)”과 같은 근본주의 종교 단체들을 활성화 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들 단체들 중에서도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가 가장 주목을 끄는 단체였다. 제리 폴웰(Jerry Falwell)이 바로 그 단체의 대표다. 침례성서교회(Baptist Bible Fellowship)의 목사로서, 불과 수 십 명으로 시작한 버지니아의 토마스 로드(Thomas Road) 침례교회를 만 오천 명이 넘는 대형교회로 성장시킨 장본인이다. 사실상 제리 폴웰과 같은 기독교 우익의 도움이 레이건의 당선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기독교 우익 운동은 서서히 정치적 전면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1980년대 초에 제리 폴웰과 “도덕적 다수”는 기독교 우익 운동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제리 폴웰의 근본주의적 태도와, 침례교 근본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도덕적 다수”는 그 막강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초교파적으로 교계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는 별로 성공적이지 않았다. 대다수 주류 복음주의 교단들은 도덕적 다수에 대해서 그렇게 관용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 80년대 기독교 우익, 특히 “도덕적 다수”나 “기독교 소리”등이 내세운 정치적 주제들은 과거 기독교 우익들의 운동으로부터는 크게 발전한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낙태 반대, 동성애자들의 시민권 반대, 학교 기도의 부활과 같은 그들의 종교적 근본주의 교리에서 출발한 내용도 있지만, 인종분리정책을 지속하던 남 아프리카를지지 한다거나,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고, 공화당 보수주의자들의 경제 정책을 지지하고, 사회복지 예산 증액에 반대하는 모습 등에서 나타나는 것은 과거 기독교 우익 운동 보다는 훨씬 광범위한 정치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말 이후 기독교 우익 운동을 이끌고 있는 핵심 인물은 팻 로버트슨(Marion Pat Robertson)이다. 그는 198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서 아버지 부시에게 패하긴 하였지만 세상을 놀라게 했던 인물이다. 전국망으로 방송되는 텔레비전 종교 대담 프로그램 700인 클럽(700 Club)의 진행자이자 침례교 목사인 로버트슨은 카리스마적 복음주의 운동에 깊이 연루된 인물이다. 그 점에서 그는 과거 기독교 우익 운동을 주도했던 근본주의자들과는 많은 점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특히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그는 다양한 분파들과 접할 수 있었고, 카톨릭이나 주류 프로테스탄트는 물론이고, 복음주의자들, 근본주의자들, 그리고 오순절파, 카리스마 운동파, 그리고 흑인 프로테스탄트들에 이르기 까지 광범위하게 접하면서, 종교적으로는 절충적인 접근에 대단히 익숙해진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표현하기를 역사적 계승이라는 면에서 볼 때 카톨릭 신자이며, 예배 면에서 성공회 신자이고, 하느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는 장로교신자이며, 거룩성 측면에서는 감리교 신자이며, 믿는 자들의 사제직과 세례라는 측면에서 그는 침례교도이며, 성령세례라는 면에서 그는 오순절파라고 한다. 이처럼 자신을 초교파적으로 포장하는 능력은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고, 이후 기독교 우익 운동이 초교파적 활력을 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로버트슨은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는 실패했지만, 그는 상당한 경험과 정치적 기반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이후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기독교 우익 운동을 가능하게 하였다. 비록 선거에는 패배하였지만, 그의 조직원들은 각주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구체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그는 1989년 90년대 기독교 우익 운동의 중심 조직인 “기독교 연합(Christian Coalition)”을 조직한다. 그리고 자신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패배한 이유를 보다 적극적으로 초교파적 연합을 실현하지 못한데 있다고 보고, 자신을 지지하는데 주저하였던 카톨릭과 침례교 양 세력을 끌어들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아울러 그는 선거 정치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 모든 준비를 다하였다. 1990년 기독교 연맹의 활동가와 후원자 총회에서 그는 이 단체의 정치적 목적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는데, 그것은 1990년대 중반까지 의회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게 한다는 것이고, 2000년 대선에서는 공화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 목표는 그의 계획대로 실현되었다. 2000년 대선에서 부시가 얻은 표의 40%가 바로 기독교 우익 진영에서 만들어 낸 표라는 사실은 그의 계획의 성공을 증명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90년대 이후 기독교 연합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우익 운동은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갖는다. 근본주의 보다는 다소 온건한 복음주의 입장이 득세하고 있으며, 초교파적 입장이 훨씬 강화되고 있고, 종교적 입장의 분파주의가 후퇴하고 보수 정치를 위한 초교파주의가 강화되고 있으며, 그리고 가장 구체적으로 선거에 참여하여 득표활동을 통해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아울러 종교적 조직을 넘어 구체적인 정치적 조직으로서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그래서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 동원력을 가지며, 현대화되고 세속화된 홍보수단들을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다. 특히 비 기독교인을 향해서는 비종교적인 정치적 언어를 세속 정치가 이상가게 사용하고 있다. 자유과 권리라는 언어는 이들에게도 중요한 수사이다. 미국은 기독교 국가이고 그래서 공립학교에서는 기도로 일과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보다는, 기독교인 자녀들은 그들의 종교적 믿음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낙태에 대해서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의 권리를 주장한다. 말하자면 종교적으로 뿐만 아니라, 종교와 세속정치 사이에서도 절충주의적 입장을 더욱 강화해 가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주제의 측면에서는 과거의 기독교 우익운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것을 풀어 나가는 방법에 있어서는 훨씬 세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들은 부시를 당선 시키고, 재선시키는데 성공하였고, 9.11 이후에는 네오콘들과 함께 미국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스피커들이 되고 있다. 그리고 제리 폴웰과 프랭클린 그라함(Franklin Graham: 빌리 그라함의 아들) 같은 사람들의 이슬람을 저주하는 설교는 미국에서도 악명이 높다. 초기에 기독교 우익 인사들과 부시 사이의 밀월관계에 대해서 말하던 미국의 언론들은 기독교 우익과 부시 정권과의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부시가 결코 기독교 우익의 요구를 다 수용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내 문제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공립학교의 기도문제나, 동성애자들의 권리문제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관계에 있어서 9.11 이후에 테러와의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은 이들이 충분히 한배를 타고 갈 수 있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시에게 배신당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에게 근본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신념을 바꾸게 할 수 있는 계기는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정치적 수동성만 한 동안 지속될 것이다.

    6. 제국의 근본주의 신학; 제국의 신정정치학
    지금까지 살펴 본 것처럼, 공화당의 보수주의 우익과 근본주의적 기독교 우익의 활동이 결합해 온 역사는 결코 짧지가 않다. 하지만 이러한 결합이 제국의 이데올로기와 신학, 나아가 제국의 신정 정치학으로 발전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은 9.11 사태였다. 9.11은 무엇보다 먼저 미국 제국의 심장부가 테러의 공격에 노출되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미국 본토 역시 테러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위기감과 두려움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이렇게 조성된 미국인들의 전쟁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은, 그리고 위기 앞에서 급상승한 민족주의적 정서의 부활은, 부시 정권의 네오 콘들에게나, 기독교 우익들에게 지금까지 자신들이 주장해 온 바를 설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장기적인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모든 도전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져야 하며, 미국의 가치와 이익을 절대화하는 명확한 도덕성을 강조해야하고, 나아가 세계 지배의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네오 콘들은 자신들이 제기해온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정책 실패의 결과가 바로 9.11이라고 보았다. 근본주의적 기독교 우익들에게도 9.11은 미국 사회가 자신들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로 보였다. 9.11은 미국 사회의 반 성서적 세속화와 도덕적 타락이 심판을 초래할 것이라는 자신들의 예언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순간이었다. 9.11은 지금까지 미국 사회 내에 내재 되어 왔던 정치적 근본주의와 종교적 도덕적 근본주의라는 충동들이 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대중의 공포심, 네오 콘들의 철저히 계산된 제국을 향한 전체주의적이고도 근본주의적 야욕, 그리고 기독교 우익들의 종교적 도덕적 근본주의와 정치적 욕망, 이들 세 요소가 결합하는 가운데 부시의 정치적 설교를 통해서 제국의 근본주의적 신정정치학이 표현된다.

    여기서 말하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라는 말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서 미국의 종교적 상황에서 등장하였던 기독교 근본주의 현상을 전제하는 종교적 개념정의를 훨씬 넘어선다. 우리 시대에 근본주의라는 개념의 용법은 역사적 기독교 근본주의를 넘어서, 종교적 차원은 물론이요 폭넓은 인류학적 차원을 포함한다. 때문에 근본주의에 대한 개념 정의는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이글의 범위가 외적으로 종교적인 주장을 하지 않는 정치적 근본주의 현상과 정치적 개입을 시도하는 종교적 근본주의 현상을 다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할 때, 그러한 전제와 부합하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 정의가 도움이 된다. 근본주의에 대한 다양한 설명들을 참조하면, 근본주의는 종교적 현상이기도하고, 정치적 운동이기도 하고, 또한 하나의 의식상태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별히 사회에 대한 깊은 불만을 가지며, 세속 국가를 일차적인 적으로 가정하기도 한다. 변화된 사회 상황과 인식을성찰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종교적 믿음에 의한 선입관이 모든 판단을 좌우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그리고 즉각적인 종말이나, 대 격변에 대한 믿음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고, 그래서 선한 세력과 악한 세력 사이의 우주적 전쟁에 대한 가정한다. 당연히 선악에 관한 이분법적 구분이 선험적으로 이루어지고, 그러한 선험적 이분법을 실제 세계 안에서 구체적으로 선한 세력과 악한 세력을 구분해서 바라보려는 강한 경향을 가지며, 이것이 적과 동맹세력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구분을 만든다. 그래서 적이나 악으로 인식된 집단에 대항한 폭력이나 전쟁을 신적인 권위로 정당화하려 하는 경향을 가지며, 이런 정당화는 자신들의 가치와 원칙이 절대적으로 정당하다든가, 하느님이 자신들에 편에 있다는 확고한 가정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런 점에서 파시즘, 스탈린주의, 신자유주의와 같은 전체주의적 세계관 역시, 다른 가치와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 근본주의적 특징을 갖는다.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종교적 정치적 대학살, 십자군, 거룩한 또는 의로운 전쟁, 마녀사냥, 종교재판, 홀로코스트, 테러, 집단자살, 그리고 투옥, 고문, 인권탄압의 사건들 뒤에는 근본주의적인 종교와 정치의 결합이 있어왔으며, 다른 종교 문화적 전통 안에서도 유사한 예가 충분히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근본주의의 특징들은 미국의 신정정치 신학 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이나 제리 폴웰(Jerry Falwell)과 같은 기독교 우익들은 9.11을 한결같이 미국 사회의 도덕적 타락의 결과라고 해석하였다. 포르노, 낙태, 동성애 등은 미국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 결과 하느님의 징벌이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질적인 것에 너무 관심을 가졌다. ... 우리는 우리 정부의 최 고위 수준에서부터 하느님을 모욕해왔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그것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자신의 보호하는 손길을 우리에게서 거두시려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리 폴웰의 사태에 대한 진단이다. 애드류 머피(Andrew R. Murphy)에 의하면, 이 기독교 우익 근본주의자의 설교는, 미국이 하느님의 통치하에 있는 선택된 백성이라는 뿌리 깊은 미국의 사고와 연결되어 있다. Andrew R. Murphy, ""One Nation Under God," September 11 And The Chosen Nation: Moral Decline And Divine Punishment In American Public Discourse." in Political Theology, Vol.6, No.1 (2005), pp.9-30.
    때문에 이들 기독교 우익들의 설교는 단순히 도덕 회복을 위한 설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도덕적 타락에 따른 징벌을 피하기 위해서는 선택된 백성으로서 미국의 특수하고도 예외적인 위치를 다시 인식해야 하며, 세계를 향한 선교적 책임을 재 확인해야 하며, 나아가 선택된 백성으로서 미국이 전통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치와 원칙을 우주적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사명을 확인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부시의 신정정치 신학은 이와 같이 자신의 대통령직을 신적인 위임으로, 그리고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 행위를 신적인 선교와 연관시키는데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부시는 40세에 복음주의자들, 특별히 빌리 그라함 목사의 도움을 받았다고 알려지는 회심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뿐만 아니라, 신적인 계획이 모든 인간적인 계획에 앞선다는 믿음을 갖지 않았다면 그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는가 하면, 후보시절에 하느님께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9.11 이후에 그는 신적인 사명에 불타고 있으며, 십자군 사령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Jim Wallis, "Dangerous Religion: George Bush's theology of empire," Sojourners Magazine, September-October 2003, p. ; 김지석, 미국을 파국으로 이끄는 세력에 대한 보고서, pp.70-71.
    한 개인이 소명을 갖는 다는 것이 문제일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한 국가의 대통령이, 자신이 그 국가를 대표해서 하는 일을 신적인 위임이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문제다. 뿐만 아니다, 그것이 자신과 자신의 국가가 하는 일이 곧 신적인 위임이요 선교라고 생각한다면 더욱 큰 문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우리도 들어서 알고 있듯이, 미국이 세계 복음화의 책임을 위임 받은 나라라는 생각, 그리고 미국은 역사의 종말론적 성취에 책임적인 국가라는 생각을 설교해 온 근본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 이야기는 적어도 미국의 종교사에서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국가를 대표하는 인물과 권력에 의해서 정치적 언어로 표현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부시는 그런 관행을 깨뜨리고 있다.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한 그의 연설들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목표를, 신적인 위임으로, 종교적인 선교로 해석하고 있다. 2003년 1월 국정 연설에서는 “하느님은 세계 문제에서 함께한다. 하느님은 미국이 중동에서 해방의 십자군을 이끌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역사의 소명이 올바른 나라로 왔다”라고 했는가 하면,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자유는 미국이 세계에 주는 선물이 아니다. 하느님이 인류에게 주는 선물이다. 우리 미국인은 스스로를 믿지만 자신만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섭리의 모든 길을 알지 못하며 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믿을 수 있으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자신감을 모든 생명, 모든 역사 뒤에 위치시킨다. 하느님이시여, 이제 우리를 인도하소서. 그리고 계속 미국에 축복을 내리소서.”라 하였다. 여기서 네오 콘들이 말하는 세계 지배의 책임과 사명은, 세계 해방의 메시아적 소명으로 표현된다. 미국은 이 소명을 받은 나라이고, 이 특벽한 선교적 위임을 받은 미국을 통해 하느님은 자유라는 자신의 선물을 세계에 전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테러와의 전쟁은 하느님이 미국에 위임한 하느님의 선교이며, 이 선교를 책임진 미국과 미국 군대는 폭력의 사용을 위임 받은 십자군이 된다. 이렇게 해서 미국이라는 한 국가의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행위가 하느님의 선교 행위로 둔갑하면서, 미국의 국가 이데올로기와 신앙 사이에 구별이 없어지고 있다. 국가와 교회가 일되고, 국가의 제국적 욕망이 하느님의 뜻으로 동일화한다. 부시 제국의 신정정치학은, 국가 이데올로기와 신앙, 그리고 국가와 교회와 하느님의 관계를 혼동하는데서 출발한다. 부시가 자신의 대통령직과, 테러와의 전쟁에서 최고사령관 책임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자신들을 신의 현현이며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해 왔던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포함한 제국의 황제들의 모습니다. 그리고 제국의 성취를 하느님 나라의 성취를, 제국의 평화를 하느님 나라의 평화로 둔갑시켜 온 요술을 여기서도 본다. 그리고 이러한 제국의 신정정치학이 갖는 공통점은 제국의 권력 아래에 하느님과 백성들을 강제로 통일 시킨다는 것이다. 하느님과 통치와 백성의 통일이 아니라, 제국의 통치 아래 신과 백성의 통일이다. 결국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이나 해방이 아니라, 제국의 구원과 해방이요, 하느님의 메시아가 아니라, 제국의 메시아주의, 곧 미국이 메시아로, 구세주로 드러나는 상황이 된다.

    부시 제국의 신정정치학은 미국의 희망과 이상을 신적인 희망과 이상으로 혼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앞에서 말했듯이 미국이 세계에 주는 자유라는 선물, 민주라는 선물은 하느님이 세계에 주는 선물이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서 미국은 이 자유와 민주를 전파할 책임이 있음을 입증해 왔다고 분명히 한다. 그 유명한 부시 독트린의 서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자유와 전체주의 사이의 20세기의 위대한 투쟁은 자유세력의 결정적인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단 하나의 지속 가능한 국가적 모델을 낳았다. 자유, 민주주의, 자유로운 기업이 그것이다. ... 자유의 이런 가치는 모든 사회에서 모든 사람에 대해 옳고 진실이다. 자신의 적에 맞서 이런 가치를 보호할 의무는 전 지구의 모든 세대에 걸쳐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소망이다.” 냉전 이후 미국이라는 정치, 경제, 사회적 모델만이 유일하게 타당한 모델이라고 보는 네오 콘들의 생각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그런데 미국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서 교묘하게 계산된 네오 콘들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부시에게서는 하느님의 세계를 향한 희망과 뜻으로 둔갑한다. 그리고 부시의 하느님을 등에 업은 유일 가능한 모델에 관한 네오 콘들의 정치 이데올로기는, 이제 우주적으로 신적으로 유일 가능한 모델이 되고, 미국과 부시에 의한 자유에 관한 이해와 해석의 독점을 주장하는 근본주의적 전제가 된다. 2002년 9.11사건 1주년 기념식에서 부시는 “미국의 이상은 인류의 이상이다. ... 그 히망이 이미 우리의 길을 비추고 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다. 어둠이 빛을 이겨 본적이 없다”라고 하였다. 요한복음의 문구를 차용한 이 연설의 의미는, 미국의 이상은 인류의 이상이며, 하느님의 세계를 향한 희망이라는 강변이며, 미국은 국가가 아니라 교회이며, 자신은 대통령이기 이전에 미국이라는 교회를 치리하는 대장 목회자이거나 대 사제정도 된다고 말하는 것으로 들린다. 이처럼 미국이라는 국가와 교회와 하느님을 무책임하게 혼동하는 부시의 신정정치학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미국식 애국주의적 시민 종교를 설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종교의 최고 책임자다운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근본적인 가치와 원칙을 하나의 국가가 독점하고 있다는 생각, 그것을 종교적으로 선험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생각 보다 더한 근본주의적 특징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시가 말하는 자유와 민주의 설교 속에 다른 사람들의 권리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사실상 미국을 향한 복종만이 있을 뿐이다.

    하느님의 선교를 위한 십자군의 사명을 위임받은 나라, 하느님의 이 세상을 향한 뜻, 곧 자유와 민주의 이상을 간직한 나라, 미국은 결코 다른 나라와 같을 수 없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이상과 전통이 곧 신적인 것이며, 미국민의 영혼은 신적인 영혼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와 종교 역사에서 미국의 예외주의(exceptionalism)에 대한 주장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것이다. Claes G. Ryn, "The Ideology of American Empire", pp.392-395; Andrew R. Murphy, op.cit., p.25.
    특별한 사명을 가진 선택된 백성이라는 예외적 인식은 미국에서 오랜 역사를 갖는다. 하지만 이것이 외국제관계나 외교관계에 있어서 모든 국제법적 관행을 초월하는 일방주의로 둔갑하게 된 것은 9.11 이후 부시 제국의 신정정치학을 통해서다. 2002년의 한 연설에서 부시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왜 미국입니까?’하고 묻습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뒤를 쫓습니까? 왜 어떤 사람들은 이 나라와 전쟁을 하려하는 것입니까? 그 대답은 우리가 자유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유를 증오합니다.” Remarks of President to United Brotherhood of Carpenters and Joiners of America, 2002 Legislative Conference, June 19, 2002, www.whitehouse,gov/news/release/2002/06.
    그리고 9.11사건이 일어난 3일후에 국가 대성당에서 그가 한 연설에서는 미국이 자유의 수호자이며, 자유의 집이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을 공격했다고 하였다. Remarks, National Cathedral, Sept. 14, 2001.
    이런 이야기의 배후에는 미국이 식민지 개척시대부터 가지고 있던 선택된 백성, 새로운 이스라엘 건설이라는 비젼과 연관된다. 선택된 백성으로서 미국은 모범적인 자유롭고 도덕적인 사회가 되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간직한 민주와 자유의 가치를 무력으로라도 세계에 전파해야 할 특별한 선교적 책임을 갖는다. 미국은 자유의 원칙과 자유 사회의 가치를 가지고 신앙으로 유지되는 나라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책임과 의무와 기회를 갖는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특별하고도 예외적인 선택된 백성의 책임을 감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에 테러의 공격이 온 것이다. 때문에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미국은 다시 한번 자신의 특별한 책임과 소명을 인식하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이 부시의 신정정치학의 핵심이다. 미국의 예외주의의 적극적 실천을 통해서만 미국은 자신의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는 것이다.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예외주의는 결국 국가의 제국을 향한 욕망을 성스러운 것으로 치장하려는 노력이다. 국가의 정신을 메시아적 정신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여기서 미국이 맺는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들이 드러내는 욕망과 폭력은 성스러운 목적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수단이 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에 한 국가가 자신을 성별된 예외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 상황은, 미국이 이슬람에 대해서 달고 있는 모든 전근대적인 수사들보다도, 더욱 전근대적이다. 뿐만 아니라 집단적이고 대화적인 결정보다는 일방적이고도 독단적인 결정을 선험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이 시도는 그 어떤 것보다도 근본주의적이다.

    자신들이 신적으로 선택된 예외적 백성이라는 주장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선과 악으로 분리하되, 선험적으로 분리하는 특징을 갖는다. 다시 말해 부시의 신정정치학에서는 자신의 예외성을 인정하느냐 마느냐가 선과 악, 적과 동맹세력의 구분 방법이 된다. 이미 앞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9.11이 지난 3일 후 국립 대성당의 설교는 미국의 책임은 테러와의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고, 악의 세계를 제거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같은 해 9월 20일 의회 연설에서 그는 “자유와 공포, 정의와 잔인함은 언제나 전쟁 가운데 있어왔으며, 우리는 하느님이 그들 사이에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안다”고 하여 하느님이 자신들과 함께 할뿐만 아니라, 미국이 곧 선한 세력임을, 현재의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가 아니라, 몰역사적으로 종교적으로 선험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물론 기독교 우익 지도자들의 설교, 특히 플랭클린 그래함 목사 같은 사람들의 설교는 이미 선악의 이분법으로 가득차있고, 특별히 그것을 한 개인이나, 한 집단이나, 특정한 한 정책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슬람권 전체로 확장해서 말하였다. 프랭클린 그라함은 이슬람의 하느님은 같은 하느님이 아니며, 이슬람은 매우 사악한 종교라고 결론을 맺고 있다. 2001년 11월 8일 대국민 연설에서는, 미국은 모든 미국인을 죽이고, 모든 유대인을 죽이고, 모든 기독교인을 죽이는 것을 바란다고 자량하는 적들의 목표물이라고 하는가 하면, 미국이 문명을 구하기 위한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같은 해 11월 10일 유엔 연설에서는 악이 실재하지만 선이 그것에 맞서 승리할 것임을 확신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부시의 선/악 이분법의 신정정치학의 바탕 위에서 이란, 이라크, 북학은 악의 축으로 지칭하는 2002년 1월의 국정 연설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더 이상 중립적이지 않다고 했던 그의 신학적 표현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모든 사람들은 우리 편 아니면 우리의 적일 수밖에 없다는 엄청난 주장으로 변모하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우리의 적이라고 하는 폭력적 수사로 이어지게 된다.

    선택된 예외적 제국에 관한 신학과, 명확한 선악의 이분법 위에선 부시의 신정정치학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단순히 미국의 전쟁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의 전쟁이며, 문명의 전쟁이며, 도덕적 전쟁이며, 나아가 그리스도세력과 적그리스도 세력이 싸우는 세상 끝날 까지 이어질 마지막 전쟁의 시작이다. 어그스틴(Augustin) 이후에 서구 기독교 안에서 발전되어 온 의로운 전쟁의 개념, 왕권과 신적인 선교사명을 결합시켜, 이방인 정복을 위한 십자군과 식민지 개척을 가능하게 했던 선교 개념이 그대로 되살아나고 있는 듯 하다. 의로운 전쟁과 선교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데이비드 보쉬(David Bosh)의 책 The Transforming Mission(New York, Orbis Books, 1996)의 제7장 “The Medieval Roman Catholic Missionary Paradigm"을 참조하라.
    그런 점에서 다시 중세의 암흑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표현에 설득력이 있다. 자연적 질서를 내세우며, 제 집단들을 동일한 인격으로 정의하던 사고방식도 여기에 그대로 되살아난다. 그리고 부시의 신정정치학에서 선한 세력과 악한 세력은 실체가 없는 개념이 아니다. 명확하게 누가 악한 세력이지, 누가 선한 세력인지 구분한다. 그리고 그 악한 세력과 선학 세력 안에 있는 모든 구성원은 그 선악의 이분법적 전제에 종속된다. 그 안에 다름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정의된 악한 세력에게는 국제법의 보호 조항도 해당사항이 없다. 이미 정의된 선한 세력은 다른 사람들의 동의 없이도 악한 세력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

    부시의 근본주의 신정정치학은 미국 국내 정치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종교적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신학을 기반으로 하는 부시의 신정정치학에서는 선택된 백성의 도덕성이 제일 중요한 문제가 된다. 네오 콘들이 말한 바와 같이 명확한 도덕성은 곧 압도적 군사력과 함께 세계를 지배하는 힘이다. 하지만 도덕에 대한 주장이 사회정의를 압도하면서, 사회적 책임 보다는 개인의 책임이 우선적인 문제가 되고, 개인의 회심이 사회적 개혁에 우선하게 된다. 부시의 신정정치학에는 자유에 대한 주장은 있지만 권리와 분배의 정의에 대한 주장은 힘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복지 국가의 이상은 도덕국가의 이상으로 전환된다. 네오 콘들의 강한 정부에 대한 이상과 함께 하는 이러한 도덕적 정치적 권위주의는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는 것이 많은 미국 지식인들의 경고다. 자유가 권리를 가리고, 종교적 경건과 도덕적 엄격함이 사회적 권리를 침묵시키는데 이용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경고다. 엘리자베스 휘르스트(Elisabeth Hurst)와 함께한 공동 필자들은 부시 정권이 끊임없이 조상들의 도덕성을 동원하는 것은, 근본주의와 물질주의, 신앙과 자본의 결합을 위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Elisabeth Hurst, Joe Lockard and Joel Schalit, "Jesuslands: Where Fuandamentalism Meets Politics", in Bad Subjects, Issue 72, February 2005.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부시는 기업의 대표들과 복음주의 신앙을 가진 목회자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개인적 삶과 도덕성을 규제하려 드는 정권이, 기업을 위해서는 탈규제화에 몰두하고 있다고 본다. 때문에 부시가 정권이 종교적 신앙의 묘책들을 동원하여 만드는 신정정치학은 사실은 자본주의와 그 체제의 특권계층의 이익을 위한 목적 이외에는 없다고 말한다.

    7. 제국의 미래
    지금까지 말한 것으로도, 부시 정권의 제국주의적 의도 안에 숨겨진 근본주의적 신정정치학의 특징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시의 정치 신학의 문제점도 상당부분 지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가장 큰 문제는 그가 미국의 일방주의를 신학적 선교적 열정으로 말하면서, 선교에 있어서 하느님의 주권성을 찬탈하고 있는 측면일 것이다. 선교의 주체는 한 국가가 될 수 없다. 그것은 하느님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제국의 힘 아래에 하느님과 백성을 동시에 굴복시키려는 무모한 시도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제국의 통치자들의 지혜와 능력을 대비시켰던 바울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제국의 통치자들의 지혜와 능력 안에서 만들어지는 하느님과 왕과 백성들의 관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백성들 사이의 관계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둘 다 왕국의 일치와 평화를 말하지만, 그 길은 전혀 다르다. 한쪽은 신을 끌어 내리고 백성들을 짓밟아서 만드는 일치와 평화이지만, 다른 한쪽은 왕이 스스로 십자가를 감당함으로서 지배와 통치를 폐하여 얻어지는 일치와 평화이다. 요한 계시록은 제국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13장에서는 전체 세계가 법석을 떨면서 제국이라는 짐승을 놀라서 바라본다. 제국이라는 짐승에게 권한을 주는 용을 예배하면서, 이 같은 짐승을 없다고 찬양한다. 그리고 감히 누가 이 짐승과 싸우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19장에서 요한의 비젼은 백마를 타고 오시는 분, 하느님의 말씀이시오, 왕 중에 왕이시인 분이 오시어 그 제국과 제국의 예언자들을 잡아들일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지금까지 부시의 근본주의적 신정정치학을 문제 삼은 것은 세속주의만이 대안이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정치 신학을 만들어가야 할 필요성을 알리려는데 목적이 있다. 종교적으로 무장한 권력들이 충돌하는 시대에, 제국의 근본주의가 일방 통행하는 시대에, 정치와 신학,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새롭게 고민해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하다 할 것이다.





    <기타 참고 자료>
    Karen Armstrong, The Battle for God, New York: Ballantin Books, 2000.

    Bassam Tibi, The Challenge of Fundamentalism: Political Islam and the New World Disorder,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8.

    Mansoor Moaddel and Kamaran Talattof, eds., Modernist and Fundamentalist Debates in Islam, New York: Palgrave Macmillan, 2002.

    Wes Avram, ed., Anxious about Empire: Theological Essays on the New Global Realities, Michigan: Grand Rapids, 2004.

    Chalmers Johnson, The Sorrows of Empire, 안병진 역, 제국의 슬픔, 서울: 삼우반, 2004.

    Edward Said, The Crisis of Orientalism, 성일권 편역,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서울: 김영사, 2001.

    Theodore Roszak, World, Beware!, 구홍표 역, 세계여 경계하라, 서울: 필맥, 2004

    Noam Chomsky, Hegemony or Survival, 황의방, 오성환역, 패권인가 생존인가, 서울: 까치,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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