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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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0회] 민중신학과 '정치'(정용택) [카테고리]
  • 조회 수: 6142, 2006.05.09 17:44:25
  • 민중신학과 ‘정치’
    -‘정치신학’을 향한 ‘민중신학’의 근본적인 재구성 논의를 제안하며



    _정용택

      
    글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장에서는 먼저 비평적 신학담론의 전개라는 견지에서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신학운동의 일반적 특성과 최근 3세대 민중신학의 담론 양식이 만나지고 있음을 살펴본다. 2장에서는 특히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비평’을 민중신학의 당대성과 연관시켜 현 시기 가장 적절한 신학적 현실 개입의 담론 양식으로 규정하는 김진호 목사의 논의를 주목하여 그에게서 ‘정치’의 사유가 어떻게 관철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3장에서는 그러한 민중신학적 ‘비평’ 작업의 연장선상에 서있으면서도 그것이 갖고 있는 정치적 실천이론으로서의 한계를 일정부분 극복하기 위한 문제의식을 담아내고 있는 황용연 목사의 ‘소수자/오클로스’신학 기획에 대한 비평을 시도한다. 정치적 실천이론으로서의 현실 적합성 측면에서 그 의의와 한계를 평가하고, ‘정치신학’으로서의 민중신학이 담아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정치’의 개념을 보완적으로 제안한다.

    1. 비평으로서의 ‘민중신학’을 ‘정치신학’으로 다시 묻는다면?

       지난 1월과 2월 두 달에 걸쳐 필자는 평소 주변에 친하게 지내던 신학도 친구들 몇 몇과 공부모임을 진행한 바 있다. 필자가 공부모임을 제안한 기본적인 동기는 (각자 개인적 차원에서 민중신학에 대해 일정 부분 관심을 갖고 있던 친구들과) 현 시기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신학운동에 관한 이론적 차원에서의 점검 및 논의를 진행함으로써 민중신학에 대한 그 개인적 관심을 좀 더 공통의 일치된 문제의식으로 모아보고 공론화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연구소에서 참여하고 있는 연구자들 중 특히 ‘3세대 민중신학 논의’와의 연관성 속에서 신학적 비평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판단한 연구자 여섯 분을 먼저 선정하고, 그 분들이 최근 몇 년간 생산한 신학 작업의 성과물들을 수집하여 같이 읽고 발제ㆍ토론하는 형식으로 모임을 진행하였다.
       또한 여건이 허락된 연구자들에 한해서는 직접 만나 대담하는 시간까지 가졌었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3세대 민중신학과 관련하여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신학운동을 추동하는 주된 키워드가 (기존 신학담론, 사회, 문화, 정치, 역사 등에 대한) ‘비평’이라는 기본적 합의에서 출발한 우리의 모임은 그러한 ‘신학적 비평작업’의 이론적 자기완결성과 담론 장 안에서의 위상 그리고 현실 적합성에 관해 지속적인 고민의 과제를 남겨두고 마무리되었다.

       이 글은 필자가 그때의 모임을 통해 얻게 된 자극과 문제의식을 나름대로 발전시켜가는 과정에서 갖게 된 생각들을 정리해본 것이다. 특히 최근 서구 맑스주의 정치철학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치’ 혹은 ‘정치적인 것’의 개념과 민중신학적 비평에서 제기되고 있는 정치적 문제의식이 이론적으로 만날 수 있는 지점을 고민한 흔적들을 많이 담고 있다. 사실상 이는 3세대 민중신학이 최근 들어 실천이론으로서의 ‘신학하기’를 포기하고, ‘비평’으로서의 신학으로 방향전환을 하고 있는 ‘경향’에 대한 일종의 문제제기의 성격을 갖는 것이기도 하다.

       주지하다시피 민중신학의 태동을 자극했던 시대적 배경은 단연 조국 근대화를 기치로 내걸고 완벽하게 비민주적인 통치를 실시하고 있었던 박정희 정권이었다. 민중신학이 극악한 죽임의 체제인 동시에 국민의 삶을 극대화하려고 했던 권력인 박정희 체제와 갈등적 상호관계에 위치하여, 그 조국근대화의 프로젝트가 갖는 기만성-전태일로 상징되는-을 폭로하고자 했던 비판담론으로 형성된 것이 사실이라면 민중신학은 태생 자체가 이미 정치신학인 것이다. 박정희 정권에 이어지는 전두환 그리고 노태우 정권 하에서도 민중신학은 한국 사회의 권력구조와 억압적 체제에 저항적 태도를 유지하였다. 단, 1세대 민중신학이 지배체제가 생산하는 이데올로기(반공, 근대화, 한국식 민주주의 등의)적 진리관을 해체하며 사회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민중운동 속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증언하는 데 주력했다면, 80년대의 2세대 민중신학은 맑스주의와의 만남을 통해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억압적 사회체제를 해체하고 대안적 체제를 재구성하는 과정의 문제의식을 강하게 담아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시대별 권력의 작동방식과 그 영향력 간의 차이를 감안한다하더라도 1세대에서 3세대로 이어지는 민중신학에서 일관되게 발견되는 反권력적 에토스는 민중신학의 ‘정치’적 비판적 담론으로서의 근본적인 성격을 이미 잘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따라서 정치신학으로서의 민중신학의 재구성을 제안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매우 당혹스러운 이야기로 들릴 수 있음을 인정한다. “이미 민중신학은 정치신학에 다름 아닌데 새삼스럽게 굳이 또 무슨 정치신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가”하는 반문도 충분히 예상된다.
       그러나 적어도 필자가 이 글을 통해서 새롭게 민중신학과 ‘정치’의 접속 가능성을 다시 사유해보겠다고 말했을 때, 잠정적으로 그리고 있는 정치신학으로서의 민중신학의 과제는 3세대 민중신학이 2세대 민중신학으로부터 물려받은 “좌절된 하느님 나라의 기억”을 지속적으로 지워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축소되어 버린 민중신학 고유의 ‘정치’적 사유의 급진성을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의 연장선상에서 3세대 민중신학 담론의 형성 초기에 1-2세대 민중신학의 과오를 비판하는 차원에서 제기되었던 “민중형성에 관한 사회적 조직화의 측면”을 다시 신학담론의 정치학적 이론화의 차원에서 재고찰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에서 연구소 자체 홍보나 신학 아카데미 탈/향 홍보용으로 제작한 각종 Pamphlet에는 이런 문구들이 들어가 있다. “한국적 신학비평을 추구해온.....”, “한국적 비판신학 담론을 지향하며.....”, “한국 교회의 개혁과 진보적 신학의 건설을 위하여.....”.
       한편 지난 3월말에 발행된 기독교 저널 <복음과 상황> 181호의 기사에서는 연구소가 이렇게 소개되었다. “당대 삶의 현장에서 ‘고통’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읽어내는 것이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역할”(최형묵), “‘고통’은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것이기도......특히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와 세계화 흐름에서 발생하는 고통이 이들이 주목하는 신학의 주제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지향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숨겨진 고통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문제 제기하는 것”(김진호), “그래서 끊임없이 교회를 ‘불편’하게 하고, 사회를 ‘불편’하게 하는 게 그들의 역할인 것이다”

       언뜻 봐도 위와 같은 진술들 속에서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신학운동의 특성은 “우리 시대의 고통의 메커니즘에 대한 신학적 비평 혹은 비판 작업”으로 정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소의 신학운동의 기본적 특성은 연구소 내에서 소위 민중신학자임을 공식적으로 자처하는 연구자들이 민중신학의 이름으로 수행한 각종 연구물 속에서 90년대 이후의 민중신학의 과제를 규정하고 있는 진술과 그 의미가 거의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령 최근 김진호 목사가 발표한 글에서 민중신학은 이렇게 정의되고 있다. “민중신학은 한국 사회에서 바로 이러한 고통과 폭력의 체계, 그 사회적 오인의 메커니즘을 문제시하면서 전개되어온 신학운동......결국 민중신학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운동의 부재 상황에 직면......‘운동의 신학’ 혹은 ‘변혁의 신학’이라는 1980년대적 실천 패러다임의 철회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적 조건이 됐다......하지만......1990년대 이후의 민중신학은 보다 견고하고 보다 정교하게 악의 평범화(banalization of evil)를 실현해 가는 사탄의 체계에 대해 비판적으로 숙고......현재의 질서를 미학화하거나 심지어는 그러한 질서를 문제제기할 때조차도 그 질서의 문법 내부에서 진리 게임에 임하게 하는 이른바 진리 형성적 담론에 대해, 그것을 파편화하여 진리 게임의 수행자들을 불편하게 하는 담론 작업, 이것이 민중신학적 ‘비평’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최형묵 목사는 작년 10월 서울대 강의안을 개정하여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글에서 민중신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 바 있다. “1987년 전(全) 국민적 민주화운동에 이은 90년대의 문민정부의 등장, 그리고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 및 자본주의 체제의 전일적 지배로 인한 세계화의 과정은 또다시 민중신학의 과제를 둘러싼 논란을 촉발시키는 계기......이러한 문제의 상황에서 3세대 민중신학이 전개......국가 내지는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적 경계화가 해체되는 가운데, 보다 다양하고 정교한 지배의 양식을 구현하고 있는 지구화의 현실은 새로운 해방 전략을 요구......제3세대 민중신학은 그러한 현실에 대응하여 정치경제학적 인식을 보완하는 인식틀로 문화정치학적 인식을 수용......거대담론과 미시담론의 통합을 추구하고 권력의 다양한 지배 양식에 주목하여 민중신학의 권력해체적 특성을 강조......사실상 현장의 운동 주체와 결합될 수 없었던 조건에서 비판적 성찰 언어로서 신학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 것은 매우 중요한 초점......담론상의 신학적 실천이 운동 현장과의 괴리를 당연시하고 그 자체를 안주처로 삼게 되는 경향은 문제......탈서구신학 기획으로서 ‘반신학’ 내지는 ‘탈신학’의 계보를 형성하고 있는 세대별 민중신학은 한국사회의 위기에 대한 개입 언어로서 신학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민중신학은 시대의 위기에 대한 진지한 신학적 개입의 성과......오늘의 시대적 위기의 성격이 어떤 것이며, 스스로가 처한 조건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인식할 때 새로운 운동과 신학의 대안은 찾아질 것이다.”
       황용연 목사의 경우, “민중신학은 시작부터 이 식민성을 극복하려는 ‘탈식민성’의 신학......현재의 민중신학의 가장 큰 특징은 이 ‘탈식민성’을 급진화하는 데......이 때 민중신학이 극복하고자 하는 ‘식민성’은......근대화/경제성장이라는 성공의 언어가 민중의 희생을 은폐해 버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그렇지만 현재 민중신학의 입장에서는......‘민주화’, ‘민족’......‘민중’이라는 언어까지도 ‘식민성’을 낳기는 마찬가지......통칭해서 ‘포스트모던’이라고 종종 칭해지는 사고의 경향은 이 지점에서 현재의 민중신학에 많은 사고의 자극을 주고 ‘포스트모던’의 경향은 체제의 ‘정상성’ 자체를 비판하는 특성을 갖게......1988년 이후 한국 자본주의는 대중의 소비 욕망을 기반으로 해서 지탱되는 소비자본주의적 특성을 가지게 되었는데, ‘포스트모던’의 경향은 이 지점에서 현재의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구성하게 되고, 그 지점에 민중신학도 함께 하는 겁니다.”
      
       세 사람의 민중신학자의 글에서 표명되는 90년대 이후 민중신학의 과제는 “7-80년대와는 분명 달라진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구조와 체제에 대한 신학적 비판담론의 전개”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역시 공통의 키워드는 ‘비판담론’ 혹은 ‘비평’이다.
       나는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신학운동의 기본적 특성이 신학적 비판담론의 생산이라면 굳이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신학운동 방향을 3세대 민중신학의 과제로부터 굳이 엄격할 구분지어 사고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앞서 소개한 지난 1-2월의 공부모임, 그때 우리가 다루었던 양권석 교수ㆍ정혁현 목사ㆍ이숙진 박사가 그동안 써온 글들--비록 본인들이 자신들의 신학 작업의 구체적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의 성격을 지금 다시 보아도 위의 민중신학자들이 표명한 90년대 이후 민중신학 작업의 성격인 ‘신학적 비판담론’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위의 다섯 분의 연구자가 결국 모두 민중신학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제 더 이상 민중신학은 그 나름의 특수성을 갖고 있지 못하며, 어떠한 형태의 비평적 신학 작업이라도 결국 다 민중신학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차라리 그보다는 90년대 이후에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를 기반으로 활동해 온 3세대 민중신학자들과 역시 연구소에 적(籍)을 두고 활동해온 진보적 신학자들 간에 상호영향이 작용하였으며, 그래서 현 시기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회원 일부와 3세대 민중신학 진영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신학 작업의 과제를 ‘비평’ 혹은 ‘비판담론’으로서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 의견일치를 보고 있다고 판단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나는 민중신학 특히 3세대 민중신학의 계보에서 논의되는 민중신학의 당대적 과제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일반의 현 시기 신학운동 방향이 결국 ‘신학비평’ 혹은 ‘신학적 비판담론’이라는 범주 안에서 함께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민중신학이라고 하는 용어 자체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민중신학은 한국의 7-80년대 지성계에서 유행했던 ‘민중론’과 진보적 성향의 ‘신학이론’이 상호결합하여 탄생한 간학문적 ‘비판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이 담론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동어반복에 불과한 것이다. 오히려 민중신학에게 우리는 신학적 비판 담론으로서 민중신학은 그러한 담론적 실천에서 비롯되는 어떠한 ‘정치적 효과’를 전략 혹은 방법론으로 갖고 있으며, 그리고 지식의 생산과 접합, 권력의 체계 및 행사, 그것들의 담합에서 비롯되는 정치적 효과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그러한 담합구조의 메커니즘 내에서 민중신학자 자신의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계보학적 분석’으로 점철되는 후기 푸코의 작업은 담론의 형성 과정, 즉 ‘담론 구성체’와 ‘주체 구성’에 대한 명확한 규명에 천착하기보다는 담론의 효과, 담론적 실천과 비담론적 실천(경제적, 정치적 실천)의 효과인 지식과 권력(힘)을 개념적 영역 안으로 끌어들여 그 안에서 담론의 불연속적인 단편들의 분석과 권력 행사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미시정치학-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푸코에게 의미는 아무 것도 아니며 ‘주체’는 길들임의 역사적 결과로 이해된다. 그러나 푸코는 ‘의미’나 ‘해석’과 같은 거대한 인문학적 혹은 인본주의적 관습인 ‘해석 비평’에 벗어나 자명한 것처럼 보이는 지식과 권력의 관계, 그리고 넓게는 사회의 제현상, 즉 담론적 ‘진리’를 고고학적 접근으로 파헤쳐 다시 계보학적 접근으로 비판하고 문제 제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이러한 푸코의 미시적 권력 비판 차원의 담론 이론은 폭력 및 죄의 구조성과 연대성을 강조해온--신학담론으로서는 사실상 유일한--민중신학 고유의 문제의식과 충분히 상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중신학은 현재까지도 사회적 혹은 신학적 죄인 담론을 그 담론적 효과 및 권력의 욕망 차원에서 비판해올 수 있었고, 권력을 일종의 관계망으로 이해하고 그것의 편재성을 강조하는 푸코의 권력에 관한 담론이론 즉 권력의 미시물리학과 별도로 권력에 의해 사회적으로 배제당하고 죄인으로 낙인찍힌 이들이 당하는 ‘고통’에 대한 신학적(구원론적) 성찰로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바로 그러한 견지에서 서남동 교수는 “죄란 지배자의 언어이고 민중에 있어서는 그것이 바로 한(恨)”이라고 지적했으며, 안병무 박사는 이를 받아들여 신학적 구원론의 기능은 죄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죄의 ‘콤플렉스’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주장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민중신학 담론의 이론적 비판학 연구
    - “고통과 폭력의 현상학으로서 ‘민중신학’적 비평”론 비평하기

       민중신학은 고통이 개체적으로 체감된 것이든 집단적인 것이든, 그것의 사회적 차원에 주목해왔다. 고통이 사회적 맥락과 깊이 연계되어 있음을 지적한 것도 타당한 것이며 지배적 담론이 고통의 실상을 왜곡하고 은폐한다는 것을 폭로한 것까지 정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폭로(피해자에게 있어 그들의 고통에 대한 ‘증언’이기도 한)의 행위를 수행하는 것이 자신의 고통을 언표화할 수 없는 민중에 대한 지식인의 언표적 대언행위로서 민중신학자의 역할이라고 말해온 것도 윤리적으로 볼 때는 아무런 흠이 없는 것이었다. 이제 민중신학은 폭력과 고통의 현상학을 주장하며 그 고통과 폭력의 작동 메커니즘을 상세히 분석하여 폭로하고, 나아가 그러한 메커니즘의 작동을 정당화하는 제도 및 권력으로서의 지식담론까지도 해체하고 파편화하는 담론 작업 즉 ‘비평’으로 자신의 작업을 규정한다.
       예컨대 김진호 목사는 앞서 인용한 글에서 오늘날의 “민중신학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운동의 부재 상황에 직면했”으며 “그것은 ‘운동의 신학’ 혹은 ‘변혁의 신학’이라는 1980년대적 실천 패러다임의 철회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적 조건이 됐음”을 의미한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90년대적 당대의식이 형성되면서 (3세대) 민중신학은 ‘비평’이라는 새로운 실천적 개입의 담론 양식을 발견해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비평’(Kritik)과 ‘주석’(Kommentar)의 구분법을 따라 80년대의 민중신학이 대안적 사회에 대한 구체적 상을 제공하는 데 공헌하고자 했던 진리 형성적 차원의 담론이었다면 그러한 하느님 나라의 환상 즉 그 나라를 향한 도정을 목적론적/진화론적으로 이해하였던 신념이 철저히 붕괴되는 것을 경험한 90년대 이후의 민중신학은 더 이상 대로주의의 욕구를 갈망할 수 없기 때문에 진리 해체적 지향의 담론으로서, 민중신학은 이제 철저히 ‘비평’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역시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신학운동의 특성으로서 신학적 비평작업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가장 적극적인 설명을 시도하고 있는 이는 김진호 목사이다. 나는 3세대 민중신학의 담론양식을 ‘비평’으로 재규정한 김진호 목사의 글을 분석하면서 그의 민중신학적 ‘비평’에서 징후적으로 발견되는 ‘정치’적 사유의 단초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김진호 목사에게서 민중신학적 비평 작업의 양상은 공식적으로는 신학적인 차원과 윤리학적 차원에서만 한정되어 표명된다. 김진호 목사에 따르자면 고통 생산의 메커니즘을 폭로하고 지식/권력의 담론을 해체하며 결과적으로 민중의 고통을 공론장(公論場) 안에서 대언해 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바로 민중에게 민중신학자가 말을 거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때 ‘말을 거는 것’이라는 표현은 스피박의 ‘말걸기’(Speaking-to) 개념을 그대로 빌려온 것이다. 이는 유명한 만큼 오해도 많은 스피박의 유명한 질문인 “하위주체(Subaltern)는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그녀 자신의 부정적인 답변 속에서 지식인이 새롭게 가져야 할 임무로 소개한 개념이었다. 스피박은 하위주체들이 현장에서 자기의 목소리를 직접 재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할지라도 그것이 현실적으로는 당장 불가능한 일이며 설령 목소리를 낸다 하더라도 중심과 주변부의 지배 권력과 특권층에게는 들리지도 않을 것이며, 우리의 문화적 담론에 영향을 미치기도 어려울 것이라 말한다.
       사회화된 자본의 순환과 이익으로부터 가장 배제된 채 남아있는 집단인 하위주체가 스스로의 고통을 공적인 담론의 장 안에서 말할 수 없다는 그녀의 진술은 동시에 푸코나 들뢰즈와 가타리 같은 서구의 급진적 남성 지식인들의 언술 즉 억압받아온 타자로서의 제3세계 하위주체가 이제 나서서 자기 경험을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처럼 이론을 전개하는 것에 대해 강한 비판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스피박에 따르면 이들은 욕망과 권력, 주체성 사이의 관계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적 관계의 이데올로기적 재생산과 주체 구성 사이의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한 이해를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지식인의 역사적 역할에 아무런 비판의식도 없이 억압받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경험을 가치 있다고 여기는 태도를 보이며” 지식인과 억압받는 대중 사이에 놓인 괴리를 무시하고 자신들을 대중들의 대표 혹은 대변자로 정체화하고 있다. 이들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스피박은 “그들이 억압받는 타자를 자신에게 동화시키는 방법으로 타자를 인정하는, 여전히 주권적인 주체에 머물러 있으며, 이는 서구가 제3세계를 타자로 전유하는 방식과 일치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스피박은 하위주체를 둘러싸고 있는 겹겹의 이데올로기적 담론구성의 가공할 위력 때문에 “하위주체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지식인이 하위주체를 대표하며 묘사하려고 할 때 먼저 지식인의 입장과 하위계층의 대중들 사이의 괴리를 철저하게 인식할 것을 요청한다. 말하자면 억압의 상황에 놓여 있는 하위주체나 그들을 재현하고자 하는 지식인이나 모두 결코 투명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거듭하여 지식인들이 하위주체를 재현하는데 있어 비판적으로 숙고해야만 하는 재현의 두 측면 즉 대표성과 묘사성 간의 차이의 문제를 강조한 후 지식인이 윤리적 책임감을 갖고 하위주체에게 말걸기를 하여 그들이 말하게 하고, 그것을 담론과 문화영역에 지식인은 제대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하위주체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말할 수 없으므로 지식인들이 ‘징후적 독법’(symptomatic reading)으로 하위주체의 모순을 파악해내고 그들로 하여금 말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우리는 스피박이 그토록 “하위주체는 말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서도 결국 다시 ‘말걸기’와 대언의 행위를 지식인의 윤리적 책무로 제시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하위주체가 아무 것도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하위주체의 주체성마저 부정해야 하고, 하위주체를 재현하기 위한 모든 종류의 글쓰기도 포기해야만 한다는 주장이 그릇된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스피박에게 있어 “하위주체가 말할 수 없다”는 주장은 하위주체가 정말 자신들의 억압적 상황에 대한 ‘자기표현’을 할 수 없다는 논리를 부각시키기 위한 데 궁극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섬세하고 정교하게 수행되는 서구 식민이성 및 제3세계 지식/권력의 인식론적 폭력과 공모하지 않고, 하위주체와 지식인 간의 이질성을 인정하면서, 그들과의 관계 수립을 새롭게 모색하려는 ‘윤리적 책무’를 지식인들이 항상 자각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스피박에게 있어 지식인의 대언은 지식인으로서의 윤리적 책무와 관련된다면, 민중신학자에게 있어 민중의 고통에 대한 증언 행위는 도의적인 책임에 입각한 지식인으로서의 현실 참여인 동시에 민중과 그 자신이 종교적 인식의 지평에서 함께 연루된 신앙적 구원론의 문제이기도 하다. 즉 자신의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상실하였기 때문에 그 고통을 다른 정서로 대체함으로써 해소하는 “고통의 치환” 현상을 경험 중인 민중에게 민중신학자가 다가간다. 그리고 민중들이 민중신학자에게 그들의 고통을 말하도록 먼저 말을 걸고, 민중은 자신에게 말을 걸어 온 민중신학자의 도움으로 현재의 비언표적 상황을 가로지르는 자기표현의 행동을 취한다. 모든 혁명은 민중혁명이다. 이는 민중이 자신의 힘에 의해, 자신을 위하여, 자신의 직접적인 행동으로 지배적인 권력이 정착해놓은 다양한 제한과 억압의 조건들을 혁파하고 전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사회에서 이미 무능력화되어 언어조차 잊어버린 민중은 여간해서 역사를 변혁하는 혁명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혁명의 주체가 될려면 누군가 그들의 언어를 먼저 되찾아 주는 일을 해야만 한다. 안병무를 비롯한 모든 민중학자들에게 있어 예수는 갈릴래아 오클로스들에게 그러한 역할을 해준 존재였다. 예수의 사역을 계승하는 민중신학자는 민중의 자기표현 행위를 catch하고 그것을 다시 공론장 안에 제기할 수 있는 ‘언표’로 전화하여 민중들의 실어증을 제도화한 체제의 작동 양식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담론을 조직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고통 혹은 한(恨)을 내면화하고 있던 민중은 자신의 대언자를 통해 그 한(恨)을 풀게 되니 구원을 경험하는 것이고, 말걸기와 대언 행위를 실천하는 민중신학자 또한 고통의 비언표적 상황에 놓인 민중, 곧 사회적 경험에서 은폐된 이들의 고통스러워하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예수의 고통을 체험하게 되는 ‘구원’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신앙의 모범인 예수를 본받는 행위이기도 하므로 이것은 신앙에 입각한 윤리적 실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결국 구원과 윤리, 신앙과 실천은 별개의 차원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김진호 목사의 비평으로서의 민중신학은 87년 이후 변화된 한국사회의 상황에서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민중’과는 전혀 다른 배제의 메커니즘에 의해 새롭게 등장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다시 말해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민중/오클로스가 국가라는 영토의 외부로 쫓겨난 ‘비국민’이라는 단일요소로 묶일 수 있었던 반면, 87년 6월 이후 ‘성찰 없는 민주주의로서의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는 ‘비시민’이라는 다층적 영토화의 배제 메커니즘의 희생자가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비시민으로서의 민중/오클로스는 비균질적 존재이며 이런 맥락에서 민중/오클로스는 ‘소수자’(minorities) 개념과 맞물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분석을 다시 살펴보면 흥미로운 견해를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우선 그가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민중/오클로스가 ‘비국민’이었다고 주장하는 대목을 다시 보자. 알다시피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은 국민들의 민주화를 향한 열망을 외면하고 불법적인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했다는 자신들의 통치 상의 죄의식을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민생안정의 군주적 욕망으로 대체하려 했던 정권들이었다. 두 정권 다 국가의 부강과 국민의 안녕을 위해 마음껏 죽일 수 있었다. 긴급조치와 반공법, 국가보안법 등으로 상징되는 죽일 수 있는 군주적 권력의 힘은 번영과 행복이라는 근대적 생명권력(bio-power)와 함께 회전하였다. 그들은 지배받는 대상으로서의 국민을 인구(population)로 치환하였고, 그 인구의 관리는 다름 아닌 민생의 안정이었다. 국민의 삶, 생명을 돌보는 권력으로서 국민의 배고픔, 질병, 무지, 실업, 부패, 게으름, 성적 방종, 이 모든 국력 극대화의 위협 요소들과 투쟁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위협의 요소들에 대해 비단 국가권력만이 투쟁했던 것이 아니다. 국민들 대다수가 바로 저 위협의 요소와 싸웠고 그들은 자신들의 그러한 싸움을 도와주기 위해 자신들을 죽이기도 하는 그 국가권력의 통치를 인정해주었다. 그렇다면 그때 ‘비국민’은 누구였을까? 바로 국가가 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두던 국민 일반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아니 오히려 반드시 죽여 버려야만 했던 그 ‘비국민’, 그 ‘민중’은 대체 어떤 이들이었을까? 김진호 목사는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국가가 용인한 정치적인 공동체 안에서 완전히 배제된 그런 존재, 아감벤이 말한 바 저 유명한 ‘호모 사케르(homo sacer)’라고 불러도 무방할 ‘벌거벗은 날것의 삶’을 살아가야 했던 바로 그런 이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적어도 생물학적인 종(species)으로서 인종 혹은 생명 혹은 삶의 주체로서 국민을 상대했던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비국민으로 분류된 자들이라면, 단순히 국력 신장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사회적 무능력자의 차원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당시의 사회를 정상적인 유일한 사회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이었으며 그들의 그러한 저항이 국가로 하여금 그들을 ‘비국민’의 영역으로 배제할 수밖에 없게 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유신헌법을 지지하고 국가보안법을 성실하게 준수한 정치적 공동체 안의 시민이나, 여당인 유신공화당과 전두환(노태우)의 민정당을 비판하는 김영삼의 신민당이나 김대중의 평민당에게 선거 때마다 투표한 시민들 역시 정치의 주체였다. 노동자든 여성이든, 농민이든 이때는 모두가 시민으로서 자유민주주의가 충실히 구현된 정치의 주체였다.
       정치적 관점에서 비국민, 비시민이 된다는 것은 언론ㆍ집회ㆍ결사의 자유, 투표와 선거의 자유 따위를 실천할 수 있는 형식적 차원의 정치적 권리마저 박탈당했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며, 그들이 그런 배제를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단순히 그들의 가난함이나 무능력에서 비롯되지는 않았던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이 경제적인 제도나 문화적인 관행처럼 사회를 구성하는 하위적인 영역 혹은 체계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정치’를 거부하고 정치와 경제, 문화 등의 하위 영역이나 체계로 구성된 사회, 바로 그 사회를 구조화하는 원리를 결정하는 몸짓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의미의 ‘정치’, 아니 실제로는 ‘정치의 장’ 자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것으로서 진정한 의미의 ‘정치’를 그들이 실천하고자 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전자의 의미의 정치가 ‘정치의 장’ 내부에서 행해지는 것이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운동 내지는 시민운동 역시 단지 그러한 의미의 정치에 영향력을 미치고자 하는 것이라면, 반면 후자의 ‘정치’는 기존의 ‘정치’ 자체까지도 폐기하려 드는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정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진호 목사의 현 시기 민중신학적 비평은 ‘1987년 이후의 체제’, 소위 민주화 이후의 체제가 합리화된 악이 본격적으로 구조화되는 계기였다는 것을 예리하게 지적하며 민주화의 그 위대한 역사적 과정은 비시민을 보다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사회적 제도화의 다름 아니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3세대 민중신학이 2세대 민중신학의 1980년대 한국 사회에 대한 경험을 1990년대를 거치면서 다르게 기억해냄으로써 신학하기의 새로운 문제설정을 제기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다른 기억이란 2세대 민중신학의 ‘좌절된 하느님나라’의 기억임과 동시에 현재 민주화를 일구어내고 마침내 한국 사회의 주도적 권력 집단이 된 ‘386세대’가 맞닥뜨린 ‘민주주의의 야만화’에 대한 당혹스러움이다.
       그는 2세대 민중신학의 좌절의 본질이 그들이 하느님나라를 향한 도정 자체를 목적론적/진화론으로 이해하였던 신학적 신념의 좌절에 있다고 본다. 그가 특히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은 선한 우리 대 악한 저들이라는 이분법적 사유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역사 인식은 민중 우상주의와 우리 중심주의의 덫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마침내 근대성과 우리 자신들의 관계 자체를 깊이 성찰하지 못한 사유의 실패로 귀결된다. 2세대 민중신학이 적어도 잠정적인 대안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그들 스스로가 극복하고자 했던 이 세계의 질서 곧 근대적 권력의 지배양식인 통치성 혹은 정치적 합리성의 질서와 닮아 있다는 것을 성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진호 목사에 따르면, 이는 비단 2세대 민중신학만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1980년대 한국 사회의 비판적 담론과 운동 진영 모두가 공유했던 근대적 합리성에 대한 앏의 의지와 욕망을 2세대 민중신학 역시 공유했었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그가 ‘대로주의’라고 명명한 ‘대안적 진리’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확신과 진리를 살리려는 일체의 억견은 ‘1987년 6월 이후의 체제’라는 삶의 전반에 편재하고 있으며 바로 이것이 87년의 좌절된 경험의 실체라는 것이다.
       87년의 좌절된 경험의 실체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는 김진호 목사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가 부여했던 문화정치학적 비평의 과제를 수정한다. 예컨대 1997년 5월에 발표한「민중신학의 계보학적 이해 - 문화정치학적 민중신학을 전망하며」에서 “1990년대 민중신학은  일상생활에까지 침투하여 욕망을 상품화하고 있는 자본과 권력에 대항하는 담론을 형성하고, 대항담론의 주체 곧 (역사 주체로서의) 민중을 형성하기 위해 문화정치학적 비평의 영역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문화정치학’적 민중신학적 비평은 그 후 황용연 목사가 지적한 바 그 자체가 ‘정체성의 정치’의 전략이었던 동시에 그 정체성을 또다시 어떻게 변혁시킬 것인가를 문제 삼는 ‘탈정체성의 정치/횡단성의 정치’까지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황용연 목사가 당시 지적했던 바와 같이 그때나 지금이나 김진호 목사는 자신의 담론의 구체적인 근거가 될 시공간을 확보하지 못했고 일반 비판담론과의 이론적 차원에서의 시공간과의 접합만을 계속 보여 오고 있다. 아니 이제 김진호 목사에게서는 구체적인 현장을 근거로 한 신학적 비평 작업 자체가 또다시 ‘대로주의’의 욕망에 물들어 ‘좌절된 하느님 나라의 기억’을 반복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문화정치학적 신학하기’의 요체도 대로주의의 욕구의 무의식적 정치학을 해체적으로 문제시하는 것으로 수정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대로주의를 해체하는 문화정치학’과 ‘민중신학적 비평’은 결국 동의어이며 그러한 작업의 방법론적 도구가 되는 ‘고통의 현상학’에서 민중은 비공공적 담론 속에 은폐되어 있는 고통의 담지자로 제시된다. 고통이라는 지표가 충분히 사회적인 것이지만 고통은 실상 모든 계층을 망라하는 인간 실존의 보편적 양태일 수 있기 때문에 사회학적 개념화의 지표는 될 수 없다는 외부의 비판과 바로 그러한 개념화의 어려움이 ‘주체화’ 이론의 불가능으로 이어지며, 그것은 결국 민중의 고통이 사회적ㆍ정치적 역량으로 전환될 계기를 이론화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함을 스스로도 인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그의 민중신학적 비평은 은폐된 고통의 담지자로서 민중을 찾아내고 비판담론의 장 안에서 그들의 고통을 증언하고 그들의 존재와 이름을 회복시키는 가운데 그들에게 고통을 강제한 이 사회의 체제와 지식/권력에 대한 공격적 비판으로 그 내용이 구성되어진다. 그러나 그러한 희생자, 고통의 담지자가 계속해서 출현할 수밖에 없는 사회의 비민주성을 폭로하고 조롱하지만, 우리가 그리고 또 민중들이 이런 사회에서 계속 살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차원인 ‘정치’를 다시 사유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애초부터 그에게 있어 민중은 이제 더 이상 저항의 잠재력을 가진 역사 변혁의 주체로 생각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중의 자기 초월 가능성은 어디까지나 그에게 있어 종말론적 신앙의 차원에서 존재할 뿐이다. 민중신학 담론이 목표로 하는 ‘정치’적 실천의 방향은 민중의 목소리가 사회 속에 들리도록 하는 데만 있을 뿐이다. 민중이 사회로부터 당하는 배제와 고통을 원천적으로 ‘극복하는’ 것에도, 그들의 삶의 욕구의 실현을 가로막는 장벽을 제거하는 것에도, 민중의 고통과 차별, 배제, 억압적 착취에 의존하여 작동하는 사회를 변형하는 것에도 있지 않다. 요컨대 그의 민중신학적 비평은 ‘고통의 현상학’으로서 정교한 이론적 비판학 내지는 비판담론은 될 수 있을지언정 이론적 정치학은 될 수 없다. 김진호 목사가 포기한 민중신학의 이론적 정치학 시도 곧 ‘민중의 정치적 주체화’ 기획의 지점에서 바로 황용연 목사의 ‘소수자/민중’신학이 시작되고 있다고 나는 본다.  



    3. 신학담론의 이론적 정치학 연구
      : “전복과 해체의 이중전략으로서 ‘소수자/오클로스’신학”론 비평하기

       나는 황용연 목사의 ‘소수자/오클로스’신학 기획이 그가 98년에 쓴 논문,「‘정체성의 정치’와 민중신학」에서 제기한 ‘경제적 합리성의 탈중심화’에 기반한 ‘정체성의 정치’와 절합된 민중신학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파악한다. 당시 그가 민중신학의 사건론에 ‘정체성의 정치’에서 논의되던 ‘정체성’의 문제를 끌어들여 ‘자기 형성과 자기 실현’을 해 나가는 주체로서의 ‘자기’는 이미 고립된 개인일 수 없으며, 고정된 실체일 수도 없으며, 단지 특정 시공간에 따른 한 ‘정박점’을 가질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을 때 이미 최근의 “한 주체 안에 분열적으로 병존하는 ‘소수자성/다수자성’” 논의의 핵심이 틀 지워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1) ‘소수자성/다수자성’(‘소수자 정체성/다수자 정체성’), ‘소수자/다수자’.

       주체성 혹은 정체성에 관한 문제의식은 황용연 목사의 신학 작업 전반에 걸쳐서 나타난다. 그의 민중론도 그의 정치신학 논의도 모두 주체성에 대한 사유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주체성에 관한 논의는 최근 들어 ‘소수자성 대 다수자성’ 혹은 ‘소수자 대 다수자’ 구도의 개념을 통해 더욱 확고하게 이론화되고 있다. 김진호 목사의 민중신학적 비평 작업에서 ‘고통(과 폭력)의 (신학적) 현상학’이 하나의 이론으로서 그 나름의 고유한 문법 논리를 가지고 반복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면, 황용연 목사의 민중신학적 비평 작업 안에서는 소수자와 다수자가 존재하는 전복적 대립의 구도가 먼저 설정된 후 그 구도 안에서 소수자 정체성이 자신의 존재를 계속 유지한다면 ‘그로인해’(?) 결국 다수자 정체성도 해체되고, 궁극적으로는 소수자 정체성도 해체되는 결과가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이 반복된다. 일단 그러한 논리를 반복하고 있는 그의 글 몇 개를 인용한다.

    <소수자 운동의 문제의식에서 본다면, 현 사회의 ‘다수자’ 중심성은 근본적으로 소수자에 대한 은폐와 억압에 근거하는 것.....소수자 운동의 문제의식을 관철한다면, 소수자는 다수자 중심의 사회에 ‘통합’될 수가 없으며, 다수자 정체성을 해체하여 다른 사회를 만듦으로써 소수자 정체성까지도 해체되는 그러한 길을 걷게 마련.....>

    <소수자적 주체성은 ‘다양성의 인정’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체제의 체제 통합을 도와주는 기능을 하기보다 다수자적 주체성을 해체시키는―그리고 그로 인해 소수자적 주체성 자신도 해체될―체제의 근본적인 외부의 기능을 하게 됨.....사회적 배제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기인한다는 특성과 체제의 근본적인 외부의 기능을 한다는 특성은 소수자적 주체성이 ‘민중’과 같은 일괴암적인 종합의 대상이 될 수 없게 함.....오직 각각의 트라우마에서 기인하는 각각의 언어와 각각의 주체성들의 끊임없는 움직임이 있을 뿐.....사회적 배제로 인해 성립되는 주체성 그 자체를 해체한다는 의미에서 소수자적 주체성은 ‘도덕’의 근본 기능인 주체성을 ‘교정’하는 기능을 가질 수도 없다.>

    <애시당초 다수자라는 정체성 자체가 소수자를 배제하고서야 성립할 수가 있는 것이고, 그 지점에서 고통과 희생이 생기고 은폐되는 겁니다.....소수자 정체성을 끝까지 관철해서 다수자 정체성 자체를 해체하고, 그렇게 해서 소수자 정체성 자체도 해체되는 것이 해결 방향.....소수자로 존재하는 부문에 대해서는 자신의 해방을 위해 다른 이와 연대해서 싸우고, 다수자로 존재하는 부문에 대해서는 자신의 ‘원죄’를 자각하고 그 부문의 소수자의 목소리를 겸허히 듣는 것이 ‘구원’의 길....>

    <‘소수자성’은 언제나 ‘다양성’이란 이름으로 포섭되거나 혹은 ‘다수자성’의 근거없음을 끝까지 폭로하여 사회의 존재 방식을 근원적으로 소환하는 두 지점 사이에서 요동하게 마련.....각각의 ‘소수자성’은 하나의 지점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언제나 각각의 지평에서 각각의 방식대로 사회의 존재 방식을 근원적으로 소환.....끊임없이 기존의 ‘소수자성’을 ‘다양성’으로 포섭하려 하며 동시에 그 포섭을 ‘시장효율성’ 등의 이름으로 새로운 ‘소수자’를 만들어 내는 합의의 동력으로 삼으려 하는 것이 현 시대의 특징이라면, 민중신학은 ‘소수자성’을 사회의 존재 방식을 근원적으로 소환할 수 있는 끊임없는 정치성으로 살려 나가는 담론이 될 필요가 있는 것.....>

         2) ‘정치’없는 ‘전복’과 ‘해체’?!

         위에 인용된 글들에서 우리는 일단 어렴풋이나마 황용연 목사의 ‘정치’적 문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소수자 대 다수자로 설정된 대립 구도가 그가 자신 있게 선언하는 대로 전복되고 또 해체되기 위해서는 소수자와 다수자 간에 어떠한 형태로든 정치적 문제 해결의 과정이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위에 인용된 네 편의 글들 중 앞선 세 편의 글은 차치하고 마지막으로 인용된「포스트 황우석, 포스트 민주화, 그리고 민중신학」이라는 글에서는 분명 민중신학의 정치적 담론화의 필요성이 언급되고 있다. 사실 황용연 목사는 위의 글들 보다 훨씬 앞서 민중신학의 정치신학화를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글을 쓴 바 있다. 아래에 그 글을 인용한다.

    <‘평화의 조건’을 만든다는 문제는 결국 ‘소수자 정체성’이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느냐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소수자 정체성’들의 발현의 문제도 그렇고, 지금 예를 든 이 문제도 그렇고, 이런 문제는 사실은 ‘정치’의 영역의 문제.....이른바 ‘의회정치’로 한정되는 ‘정치’가 아니라, 개인과 집단의 전반적인 삶 자체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고유의 의미에서의 ‘정치’.....‘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자기 긍정은 이 ‘정치’의 영역을 흡수하여, 삶의 문제를 ‘방향 설정’의 문제가 아니라 ‘대책 마련’의 문제로 바꿔 버리려는 속성을 가짐.....그러기에 민중신학이 ‘탈분단’의 문제에 개입한다는 것은 아마도 다시금 ‘정치신학’이 되는 것.....‘소수자’인 나, ‘노동자’인 나가 ‘탈분단’의 상황에서 '소수자인, 노동자인 나의 삶을 어떻게 결정하고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를 다루는 ‘정치신학’.....>

         그가 적어도 위에서와 같이 ‘소수자 정체성’의 존재 자체만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발현’되어야만 한다는 즉 당위성을 말하며 그것이 결국 ‘정치’의 문제라고 말했었던 데서 보듯이, 그는 ‘소수(자)적 정체성’론과 ‘다수(자)적 정체성’론에 기반한 ‘다수자 대 소수자’의 대립적 차별 구도가 가만히 있어도 다수자 자신의 윤리적 회개로 인해 전복되고 해체될 것이라 고 그저 신실하게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그러나 위의 저 글이 발표된 이후에도 그가 동일한 문법인 소수자와 다수자의 구도를 서술하며, 소수자성 및 다수자성의 해체론을 ‘선언적으로만’ 반복하고 있을 뿐 ‘소수자성’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발현’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는 기존 민중신학의 ‘민중’ 개념을 ‘소수자’로 대리보충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예 완전히 ‘대체’하고자 하는 생각까지 비추곤 하는데, 굳이 그 이유가 민중이라는 용어가 갖고 있는 ‘몰적 주체’의 이미지 즉 ‘사회적 하층부’라는 비주체로서의 의미와 ‘역사의 주체’라는 일괴암적 주체로서의 의미 때문이라면, 그래서 ‘사회적 하층부’라는 특징은 도덕적 실천의 당위성을 상상할 수 있는 근거가 되며,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일괴암적 주체로 등장할 때 그 주체는 세계를 갱신할 ‘도덕’을 담보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라면, 과연 그의 ‘소수자/오클로스’가 갖고 있는 소수자적 주체성이 ‘소수자 대 다수자’ 구도 안에서 다수자에게 원죄를 자각하게 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그의 설명은 얼마만큼 ‘도덕주의’적 주체성 이론에서 탈피한 것일까? 도덕적 행동이 없이도 존재 자체만으로 죄의식을 자각할 수 있게 한다는 그의 설명이 분명 충분히 형이상학적인 의미에서 ‘신학적’일 수는 있지만 과연 그러한 (도덕적/윤리적 주체성이 없으며, 정치적 실천의 주체성도 아직 ‘미약한’) 초월적인 신학적 주체성만 가지고 어떻게 상징계에서 정치신학이 가능할까 궁금해진다.

         그의 ‘소수자/오클로스’가 ‘민중’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도덕주의적이지도 않고 동시에 정치적 급 급진성을 담보해내기 위해서는 단순한 선언적 명제를 넘어서 구체적인 이론적 정치학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다수자를 향해서든 이 사회를 향해서든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보다 근원적인 담론투쟁과 자신들을 그렇게 배제한 이 사회를 거부하는 격렬한 권력투쟁, 가령 우리가 일터에서의 민주화에 관하여 마음껏 주장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 아예 전혀 다른 경제 질서, 다른 분배의 원칙에 관하여 상상하는 차원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정치’의 본연적 의미라면 민중신학 역시 그러한 ‘정치’적 상상을 실천하는 비판담론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안병무가 시민운동도 사회운동도 아닌 민중운동 속에서 사회의 근본적 질서를 뒤집는 메시야사건의 현존을 기대했듯이, 바로 그러한 사건이 예수사건이라고 명명했듯이 우리는 다시 민중신학의 불온한 정치적 상상력을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적 소수자를 발생시키고 또 그것의 차별적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몇 가지 요소를 살펴보면서 소수자 정치학의 과제를 탐구해보자.  
         소수자가 발생하는 것은 단지 사회적 인정이 특정한 인간 정체성에 대한 복종을 유도하고 이에 배치되는 사람을 무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사회적 ‘인정-부인’ 행위가 옭고 그름이라는 인지주의적 정당화 요구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푸코가 비판한 진리게임식 인정질서는 사회적 인정을 인간에 대한 과학적 진리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인정행위를 인지주의적으로 정당화하는 구체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즉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정상의 속성을 타인에게서 지적할 수 있을 때 그 당사자를 정상적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사회적 인정에서 배제한다는 것은 비록 인정에서 배제당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자기실현 권리 행사를 원천적으로 박탈해갈지라도 어디까지나 인간과학에 근거한 합리적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화가 사실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사회의 통치성이자 권력행사의 자의적 결과일 뿐이라는 것을 계보학적으로 분석하고 그 논리의 정당성을 해체하는 것, ‘인정과 배제’의 행위를 합리적으로 정당화하는 숱한 담론들로 구성된 인간과학 자체가 보편적 진리로서의 지위를 가질 수 없는 역사적 구성물이라는 것을 폭로하는 것, 그것은 아마도 김진호 목사가 정의하는 그런 비평으로서의 민중신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일 것이다.
         동시에 또 다른 형태의 인간과학인 문화적 차이의 사회학 등에 근거하여 소수자 혹은 민중이 그 삶의 영역을 생물학적인 삶, 단지 살아서 먹고 숨 쉴 자유만 얻은 그런 삶 속에 한계 지워져 버리는 사태를 극복하고 시민 사회 내에서 정치적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로 복권시켜가는 담론투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수자적 정체성을 국민-국가의 시민으로서의 정체성과 연결시킬 때 그것을 담당하는 역할을 새롭게 부여받고 있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투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동성애자들이 스스로의 소수자적 정체성을 국민-국가의 시민권 영역에 그대로 가져가 이성애적 규범성을 허문 새로운 ‘성적 시민권’을 쟁취하고자 투쟁하는 것과 별도로 그들의 그런 정치적 투쟁 의지 자체를 원천적으로 무력화시켜버리는 소위 전지구적 인기상품으로서 ‘게이-코드’의 붐 현상이 존재한다. 정치의 공간에 나아가는 것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그것의 이데올로기 역할을 하는 다문화주의적 차이와 관용의 윤리학에 대해 소수자정치학은 다시금 비판적으로 숙고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소수자적 정체성이 인간의 주체성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사회적 관계에 기초한 구체적인 경험이나 정치적 동원 혹은 문화적 경험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구성물이고, 또한 사회가 다원화될수록 개인들은 보다 복합적인 ‘다중적 정체성’을 지니게 되지만, 부각되는 정체성은 역사적ㆍ사회적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견해에 동의한다.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에 기반한 모든 종류의 정체성의 정치(소수자 정치도 해당하는)가 본질적으로 억압과 배제된 사회집단의 인정을 요구하는 정치로서, 그것은 자본주의가 유지되고 있는 한 계속 존재할 계급적 이해관계에 근거한 ‘이해의 정치(politics of interests)’와 공존하고 전략에 따라 항상 접합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대부분이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하층계급성’을 갖고 있는 동시에 제3세계로부터 온 이주자이자 비국민으로서 ‘소수자성’을 갖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시민권 쟁취를 향한 정체성의 정치이자 계급적 적대를 해소하기 위한 이해의 정치이기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소수자정체성이 과연 계급적 이해관계를 반영한 주체성 이론인지 현재로서는 의문을 갖고 있다. 분명 그들의 투쟁은 그들이 사회ㆍ문화적 권리로서 누리고 있는 아니 인권의 차원에서 인정받고 있는 그들의 소수자적 정체성을 다시금 정치의 공간 안에서 시민권 취득을 위한 투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며 그 사회 안에서 유일하게 보편적 계급인 부르주아지를 제외한 모든 비-계급은 프롤레타리아트로서 노동자이자 산업예비군이며 무산자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정치’는 언제나 노동이 적대적 사회관계라는 사실과 대면할 수밖에 없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유일한 계급인 곧 다수자라고 할 수 있을 그 부르주아지 이외의 모든 비-계급(프롤레타리아트)는 소수자이기 때문에 다시 소수자의 정치적 투쟁은 계급 대 비-계급의 계급투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수자를 자본의 공리계와 연관지어 사유하면 그들은 곧 프롤레타리아트이며 그들이 하는 정치는 ‘계급투쟁’에 다름 아닌 것이 되며, 비-계급으로서 소수자가 벌이는 계급투쟁은 계급사회에서 계급의 철폐를 이루어가는 말 그대로 본연의 ‘정치’로 복귀하게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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