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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3회] 라틴아메리카에서의 해방신학과 오순절 신앙(김상근) [카테고리]
  • 조회 수: 6888, 2006.08.29 15:10:55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2006년 8월 포럼(2000.8.28)

    라틴아메리카에서의 해방신학과 오순절 신앙


    _김상근 | 연세대학교・선교학


    1. 몇 가지 자료를 소개하면서

    오랜 세월동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주어진 신학 작업을 묵묵히 해낸 동료 선배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땅에 IMF 사태라는 자본주의의 ‘괴물’이 사람의 마음과 사회의 기본 가치를 무자비하고 적나라하게 해체시키고 있을 때, 편안한 타국살이를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내 둘째동생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몇 년간의 도피생활을 하다가 끝내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할 때도 특별한 힘이 되어주질 못했다. 동생은 내가 보던 책을 빌려 보다가 그 길을 가게 되었는데. 나는 나름대로 민중적인 삶을 살아 보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민중신학의 한 모퉁이를 끝까지 잡고 힘든 1990년대와 복잡한 2000년 전반기를 헤쳐 오신 동료 선배 앞에서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 찌 난감하기만 하다. 대충 말하자면 미안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좀 심하게 말하면 죄책감 같은 것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좀 더 마음을 다잡고 생각해 보면 감사하단 생각이 든다. 민중신학의 시대는 끝났다는 공공연한 신학적 진단이 횡횡하는 가운데서도 모진 세월을 견뎌 오신 동료 선배 여러분들이 고맙고 또 그것이 민중 신학이 아닌가 생각되어지 진다.
    그러나 고맙다는 감사의 표시로 죄책감이 상쇄되지 않는 법. 별로 들을 것 없는 사람을 불러 주신 것은 까닭이 있을 것이라 사료되어 몇 가지 자료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간을 막아볼 셈이다.
    2003년, 해방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구띠에레즈의 인터뷰를 스크랩 해둔 것이 있어서 그 전문을 번역했다. 민중신학이 해방 신학과 태생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면, 최근 해방신학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회고하고 있는 구띠에레즈의 인터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 뒤에 따라 올  세 편의 글은 어느 기독교 대중월간지에 올해 연재했던 내용을 다시 옮겼다. 매월 지정 칼럼으로 나갔던 글이라 약간의 중복도 발견되지만 해방신학이 태동한 라틴아메리카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저널리즘적인 분석을 통해 해방신학과 민중의 관계에 대해 생각 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대화의 장을 열기 위한 나의 질문은 이것이다. ‘왜 민중은 민중신학적이지 않는가? 왜 라틴아메리카의 민중은 오순절 신앙에 열광하는가? 남반부 기독교(Southern Christianity)의 시대에 민중신학과 오순절 신앙의 관계는 무엇인가?’


    2. 구띠에레즈의 인터뷰

    아래의 글은 해방신학자 구띠에레즈가 미국의 인문학회 정식 회원으로 추천된 후에 해방신학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인터뷰한 내용이다. 해방신학의 역사와 미래가 가장 정확하게 정리된 글 중의 하나로 평가 받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다소 긴 내용이기는 하지만 해방신학과 구띠에레즈 사상의 진수를 소개하기 위해 전문을 번역하였다. 구띠에레즈를 인터뷰 한 사람은 시카고의 로욜라 대학에 있는 다니엘 바트넷(Daniel Hartnett) 신부이다. 원문의 제목과 출처는 “Remembering the Poor: An Interview with Gustavo Gutierrez,”(America, vol. 188, no. 3, February, 2003).  

    바트넷: 선생님은 신학자로서 그리고 사제로서 활동하시면서 많은 명예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이번에는 미국 인문학회에서 특별한 상을 받으셨습니다. 특별한 감회가 있으신지요?
    구띠에레즈: 솔직히 말해서 제가 이 상을 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후보자 중의 한 명이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제가 이 학회에 소속되어 있는 탁월한 학자들과 과학자들, 그리고 사회의 리더들의 모임에 참여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제가 학자의 자격으로 이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도 제게는 큰 기쁨입니다. 또한 제가 이 기회를 통해서 복음의 의미를 광범위한 사회의 여러 계층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된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바트넷: 소속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선생님께서 도미니코 수도회에 소속을 결정하신 것은 불과 5 년 전의 일입니다. 왜 도미니코 수도회 입단을 결정하셨습니까?
    구띠에레즈: 도미니코 수도회(Order of Preachers)와 처음 관련을 맺은 것은 제가 오래 전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그 때 콩가르(Congar), 체누(Chenu), 쉴레베스(Schillebeeckx)와 같은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신학자들과 교류했습니다. 저는 그 신학자들의 생각과 이해가 신학과 영성, 그리고 복음 선포의 세 가지 측면에서 모두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해방신학은 이 세 가지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연구했던 바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의 사상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도니미코 수도사였던 라스 카사스는 라틴아메리카와 흑인 노예들이었던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지켰던 인물입니다. 저는 아주 오랫동안 도미니코 수도사들과 친분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저는 결국 이 수도회에 입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저를 가족의 일원으로 환영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바트넷: 선생님은 언제나 가난의 문제를 신학적 논의의 핵심으로 삼아 왔습니다. 모든 신학자들은 선생님처럼 사회적 불평등에서 기인하는 고통의 현실에 주목해야 합니까, 아니면 이 가난의 문제는 이런 사회적 불평등과 가난에 속박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입니까?
    구띠에레즈: 저는 가난의 문제는 단순히 사회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 비인간적인 가난의 문제는 대부분의 인류가 지금 처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가난의 문제는 신학자뿐만 아니라 모든 양심적인 기독교인에게 가장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요즈음 상황화 신학(Contextual Theology)에 대해서 자주 말합니다. 그러나 신학은 언제나 상황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일부 신학자들이 이 상황에 더 민감한 것이 사실이고 또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신학적 탐구는 그 신학자가 속해 있는 구체적인 역사적 배경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함께 진행되어야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신의 도성󰡕을 저술했을 때, 그는 자기 시대가 처한 심각한 역사적 변화를 진지하게 분석하면서 동시대인들이 복음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특징은 한마디로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너무 현격하다는 것입니다. 양심적인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도 이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 ‘저는 이런 실정인지 정말 몰랐습니다’라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가난은 옛날처럼 은폐되어 있지 않고 만천하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가난의 모습은 이제 우리가 대면해야 할 모습입니다. 또 우리는 가난의 이유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그것이 지속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가난의 문제가 아예 해결될 수 없는 문제로 치부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견해는 더 이상 받아들여질 수 없고, 또 정확한 분석도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가난의 단순한 운명의 장난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가난은 결국 정의롭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물론 실제로 중요한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난을 물리칠 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신학은 가난을 없애는 모든 기술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학을 통해서 절대로 가난의 문제를 도외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우리가 어떻게 가난의 문제를 다루는지에 따라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설정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정치가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정의와 평등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의 경제적인 부정의 상태에 대해 선지자적인 목소릴 내야 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국제화(Globalization)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이 좋은 예일 것입니다. 그는 ‘이 세계화의 흐름이 가난한 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언제나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관심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요?
    바트넷: 선생님께서 주장하셨던 ‘가난한 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Preferential Option for the Poor)’이 이제 가톨릭교회의 사회윤리에 내부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 용어가 탄생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구띠에레즈: 예,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가난한 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을 존중하는 정책이 가톨릭교회에 충분히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합니다. 그 용어는 라틴아메리카 교회의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정확하게 그 용어가 탄생했던 때는 메델린(Medellin)에서 개최되었던 라틴아메리카 주교단 회의(1968년)과 프에블라(Puebla)에서 개최되었던 회의(1979년) 어간이었을 겁니다. 메델린에서 세 가지 중요한 단어들, ‘선택’ ‘우선’ ‘가난’이 모두 등장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메델린 주교단 회의가 끝난 후에 이 세 단어를 한데 묶어 한 문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가난한 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이란 용어는 라틴아메리카 교회의 경험에서 나왔다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러나 그 내용과 깊은 의미는 모두 󰡔성서󰡕의 가르침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해방신학은 󰡔성서󰡕의 가르침에 기초해 있는 이 핵심사항을 더 심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은 서서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서 중심부를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간략하게 각 단어의 의미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가난’은 실제로 존재하는 가난을 말합니다. 제가 말하는 가난은 ‘영혼의 가난’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혼의 가난’ 때문에 무엇인가를 선택하면 그것은 너무 쉬운 선택이겠지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무엇을 한다면 그 선택은 매우 제한적일 것입니다. 가난을 우선 선택한다고 말할 때 그 ‘가난’은 ‘물질적인 가난’을 말합니다. ‘물질적인 가난’이란 미성숙하고 부정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가난한 사람’이란 인간이 아닌 사람으로, 비인간적으로 대우받는 사람을 뜻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의미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통계숫자에 불과합니다. 그들에게는 이름이 없습니다.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고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결코 무의미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선적’이란 단어를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선적’이란 단어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선택의 의미를 약화시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평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보편적인 사랑과 개체에 대한 특수한 사랑입니다. 이 두 가지 사랑 사이에 긴장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코 모순된 관계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느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세상의 풍요로움에서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편애를 베푸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우선적’이라고 말 할 때, 그 용어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의 또 다른 측면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선택’이란 용어는 전체 문장에서 가장 부드러운 표현처럼 보입니다. 영어 표현에서 ‘선택(Option)’은 두 가지 물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때 사용됩니다. 그러나 스페인어에서 이 단어는 어떤 선택에 대한 ‘자기 헌신’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은 역설적으로 하나의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 말의 참 뜻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선택하지 않거나 둘 중의 한 선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메델린(Medellin) 주교단 회의에서 확증되었듯이 ‘선택’에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자들과 연대’하면서 그들과 함께 서는 것이고, 또한 ‘비인간적인 가난에 항거’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은 궁극적으로 ‘우정’의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가난한 자에 대한 우정이 결여되어 있다면, ‘가난한 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은 그저 공허한 이론에 불과합니다. 사회 계층, 인종, 문화, 사상 등과 같이 무의미한 이론에 불과한 것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적 삶에서 ‘우정’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더 정확한 표현을 발견합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종으로 부르지 않고 친구로 부르겠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런 우정을 재생산해 내야 합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과 친구가 될 때, 그들의 존재가 우리 삶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할 때만 우리는 지속적으로 그들에게 헌신할 수 있습니다.
    바트넷: 많은 사람들이 해방신학의 공헌에 대해 말해왔습니다만 최근 들어 해방신학이 학문적으로 쇠퇴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이 평가에 동의하십니까? 해방신학의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구띠에레즈: 어느 학문분야에서든지 새로운 발견은 초기에 많은 관심을 촉발시킵니다. 그러나 이런 초기의 흥분은 서서히 진정되면서 일상적인 학문분야에 점차 흡수되거나 통합되기 마련입니다. 이런 현상은 해방신학의 여러 중요한 발견들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신학과 마찬가지로 해방신학은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과 맞물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상황이 바뀌었는가? 당연합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정치 경제적 변화는 해방신학이 태동했던 1970년대와 1980년대와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은 지금이나 그 때나 기본적으로는 마찬가지란 사실입니다. 이렇게 변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기독교인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그들이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결심하는 한, 우리는 해방신학과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해방신학이란 용어를 단수로 쓰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제 다른 상황과 다른 대륙에서 해방신학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해방신학은 모두 특별한 고유의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통점 또한 존재하는데, 그것은 모든 신학들이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해방신학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다방면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바트넷: 미국의 해방신학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시겠습니까? 우리가 ‘해방되어야’ 할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소비주의, 편협한 인종주의 같은 것입니까? 만약 선생님께서 미국에서 계속 일을 하셔야 한다면 어떤 방식을 신학을 하시겠습니까?
    구띠에레즈: 우리는 오랜 역사의 경험을 통해서 가난이 인격과 국가를 파괴하고 무능하게 만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재물과 풍요로움이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헌신을 무디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나라에 이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깨달아야 하고, 또 이를 극복함으로써 복음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사실 가난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풍요롭고 국력이 강한 나라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편협한 인종우월주의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문화를 목격한다면 예언자적인 비평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점을 고귀한 품격으로 비평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가톨릭교회는 오랜 기간 동안 가난의 문제와 씨름해 왔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이민 1세대를 위해서 기초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병원과 대학을 설립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 신도들의 사회적 신분이 점차 상승되자 소비주의라는 미국의 보편적 문화에 함몰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황께서는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라고 조언하고 계십니다. 지금 미국에는 많다 싶을 정도의 학자들이 상황 신학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연구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문화적 도전에 적합한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에 대한 신학적 연구는 반드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기독교인의 책임은 국경선으로 나누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대하여 이 세상을 섬길 때, 국제적인 차원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트넷: 선생님께서 어려움을 당하실 때나 비난을 받으실 때, 어떤 방법으로 생의 기쁨과 희망을 유지하셨습니까?
    구띠에레즈: 기독교인의 기쁨은 어떤 특정한 사물과 연계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무제한적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할 때 주어집니다. 기독교인의 참된 기쁨을 하나님을 알 때, 그리고 하나님의 따를 때 발생합니다. 기쁨이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리아 찬가(눅 1: 46~55)에서 볼 수 있듯이, 마리아는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뿐 아니라 역사 가운데 현존하시며 자유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기뻐합니다. 마리아는 가난한 자에게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섬길 때, 이러한 기쁨에 충만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에 충만한 사역을 통해서만 사람은 변화됩니다.
         또한 우리는 언제나 희망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희망은 낙관주의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낙관주의는 단순히 외형적인 모습이 언제가 개선될 것이란 욕구를 의미합니다. 낙관주의 차제가 나쁠 것은 없지만, 우리는 그 낙관주의 매일 가질 수 없습니다. 희망의 신학적 의미는 낙관주의보다 더 심오합니다. 희망은 우리 삶과 이 세계 가운데서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존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를 유지시키는 힘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희망 때문입니다. 찰스 페구이는 희망을 설명하면서 마치 그것은 신앙과 자선의 키 큰 자매들 사이에서 함께 길을 걷고 있는 작은 자매와 같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키 큰 자매들이 지쳐갈 때 이 작은 자매인 희망이 그 둘에게 새로운 활력과 에너지를 제공해 줍니다. 희망은 우리들의 믿음이 쇠약해 지는 것을 막고, 우리의 사랑이 식어가는 것을 방지해 줍니다.
         나는 젊은 시절에 이 희망과 기쁨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나는 12살 때부터 18살 때가지 골수염을 앓았기 때문에 항상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실망할 일도 많았지요. 그러나 나는 기도와 독서, 그리고 가족과 친구를 통해서 희망이라는 선물을 항상 느꼈습니다. 나중에 내가 사제로서 리마의 회중을 섬길 때, 그들의 고통 가운데서 발견했던 풍성한 기쁨의 열매는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욥에 대한 글을 쓰리고 결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꼭 필요한 것은 희망입니다.


    3. 라틴아메리카 교회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1)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한국에서 땅을 밑으로 파 들어가서 지구의 중심을 지나 반대편으로 나올 수 있다면 그 곳에 라틴아메리카가 있다는 것은 초등학생 수준의 상식이다. 둥근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라틴아메리카. 그러나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무관심하다. 독일 월드컵이 다가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현란한 개인기의 브라질 축구에 경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브라질 최초의 노동자 출신 좌파 대통령 룰라(Luis Inacio da Silva)가 어떤  경제 정책을 펼치고 있는 지에 대해 무관심하다. 한국의 언론 지상에 자주 오르내리는 우루과이 라운드나 FTA 칠레 협정 등에 등장하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실체에 대해서 우리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특별히 라틴아메리카 교회는 우리들의 관심 밖이다. 겨우 구스타보 구띠에레즈(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만이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신학적 흐름으로 소개되어 있을 뿐, 한국 교회는 라틴아메리카 교회의 신학적 도전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흥미롭게도 필자가 라틴아메리카 교회의 중요성을 재발견 한 곳은 브라질이나 페루가 아니라 필리핀에서였다. 2005년 4월, 필자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열린 국제 선교 학술모임에 참석했다. ‘제3 세계 기독교 선교운동에 관한 역사적 및 사회학적 분석’이라는 주제로 열린 선교 학술대회에는 비서구 국가 중에서 해외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대표적인 제3 세계 선교 국가들의 학자들이 함께 모여 21세기의 기독교 선교 운동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내놓았다. 소위 ‘신흥 선교사 파송 국가(New missionary-sending countries)’들의 대표들이 함께 모여 서구교회의 선교가 중단된 이후 그 바통을 이어받고 있는 제3 세계 선교사 파송국가들이 당면하고 있는 선교 신학적 주제들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한국을 대표한 필자 외에 필리핀(David Lim), 나이지리아(Metthews Ojo), 남아프리카 공화국(Xolile), 중국(Kim-Kwong Chan), 페루(Dario Lopez), 그리고 브라질(Paul Freston)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이 학술모임의 진행 책임자였던 폴 프레스턴 박사는 마침 일본에서 학술 발표를 마치고 일찍 마닐라에 도착해 있었기 때문에 제일 먼저 필리핀에 도착한 필자와 함께 저녁식사를 나누게 되었다. 프레스턴 박사는 브라질의 대표적인 오순절교회인 IURD(Igreja Universal do Reino de Deus) 연구로 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는 학자이다. 필자는 프레스턴 박사와 함께 마닐라의 아담한 중국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나누고 시가지를 산책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오고 있는 대표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복잡하고 번화한 마닐라의 거리를 걸어가고 있던 프레스턴 박사와 필자에게 한 필리핀 아가씨가 다가와서 함께 예배에 참석하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선교학회에 참석한 두 선교학자가 필리핀에서 선교를 당하게 된 셈이다. 어리둥절해 하는 우리를 이끌고 그 아가씨는 인근 큰 건물로 들어갔는데 낡은 극장을 개조한 교회 건물 안에서는 이미 저녁 부흥집회가 시작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집회는 브라질의 IURD에 소속된 선교사가 주최하고 있는 전도 부흥집회였다. 프레스턴 박사는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브라질의 오순절교회인 IURD에 대한 전문 연구가인 프레스턴 박사가 우연히 필리핀 마닐라의 IURD 부흥집회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IURD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던 필자에게도 그것은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 날 집회를 인도하던 부흥사는 브라질에서 온 IURD 선교사였고 그의 아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백인 여성이었다. 전형적인 오순절 스타일의 부흥집회를 마치고 선교사 부부와 우리는 자리를 옮겨 환담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IURD 연구자(프레스톤 박사는 원래 영국 출신이지만 브라질로 귀화했다)와 IURD 선교사가 만나서 유창한 포르투칼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한국 남성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 여성. 우리는 모두 낯선 상대로 인해 생소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놀라운 것은 브라질의 오순절교회인 IURD가 필리핀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매일 부흥집회를 개최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이나 한국의 오순절교회가 필리핀에 선교사를 파송했다면 모를까, 브라질 교회가 아시아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는 사실에 필자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수많은 선교 신학적 의문들이 필자의 머릿속에서 스쳐갔다. 선교와 국제화(Globalization)의 관계, 보다 낳은 교육과 직장의 기회를 잡기위한 민족의 디아스포라가 선교에 미치는 영향(브라질 이민자들이 필리핀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오순절 신앙의 국제적인 이동에 대해 필자는 학문적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지금 지구 반대편 라틴아메리카 교회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브라질의 오순절교회가 필리핀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지에 대한 필자의 의문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2) 라틴아메리카와 오순절교회의 부흥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부터 라틴아메리카는 16세기 가톨릭 선교의 일차적 대상이 되었다. 그로부터 500여 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라틴아메리카는 가톨릭 국가로서의 종교적 특징을 유지해 오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토착문화가 가톨릭 신앙과 결합하여 나타난 과다루페 성모(Our Lady of Guadalupe)의 발현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라틴아메리카의 가톨릭교회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종교현상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물론 이베리아의 가톨릭 신앙이 액면 그대로 라틴아메리카로 전이된 것은 아니다.
    종교예식과 신앙 조직체계가 가톨릭의 형식을 답습하고 있을 뿐 그 내용은 다분히 라틴아메리카적이란 사실은 이미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결과로 밝혀진바 있다. 통계지표상 라틴아메리카는 가톨릭 대륙임에 틀림없다. 데이빗 바렛(David Barrett)이 2001년에 편집 발표한 󰡔세계기독교 총람󰡕(World Christian Encyclopedia)에 의하면, 1900년 기준 92%에 해당하던 전체 라틴아메리카의 가톨릭 인구는 2000년 현재에도 약 87% 선을 유지하고 있다. 바렛은 기독교를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독립교단(Independent), 성공회, 그리고 소수주변 교단(Marginal) 등 여섯 개의 중심 블록(Mega Bloc)으로 구분하고 그 중심 블록사이에서 발생하는 이동(개종 혹은 소속집단 변경) 현황을 추적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발생하고 있는 대부분의 중심 블록사이에서의 이동은 가톨릭 혹은 전통적인 개신교 블록에서 복음주의나 오순절 신앙으로의 급속한 전환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라틴아메리카의 가톨릭 성도들이 오순절 신앙으로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바꾸어 가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미 1990년에 이러한 종교이동 현상을 분석한 바 있는 데이빗 스톨(David Stoll)은 그의 유명한 󰡔라틴아메리카는 개신교화 될 것인가?󰡕(Is Latin America Turing Protestant?)라는 책에서 라틴아메리카의 개신교 인구 증가율이 실제 인구 증가율의 5~6배에 달하고 브라질의 경우 개신교 인구 증가의 약 90% 이상이 모두 오순절 신앙에 속한다고 발표했다. 하버드 대학의 신학자, 하비 콕스(Harvey Cox)의 현장 취재에 의하면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였던 브라질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톨릭 신부의 숫자보다 브라질 태생의 오순절교회 목사들의 숫자가 더 많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데이빗 스톨의 예측이 정확하다면 조만간 라틴아메리카의 몇 나라는 개신교인의 숫자가 가톨릭 교인의 숫자를 상회할 날이 올 것이다. 각 국가별 인구 조사를 통해 반영되는 형식적인 종교인의 숫자가 아니라 실제 예배나 미사에 참석하는 숫자로 따진다면 브라질의 경우 이미 개신교의 오순절 예배에 참석하는 숫자가 가톨릭 미사에 참석하는 숫자보다 더 많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개신교인 숫자를 자랑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렇다면 500년 전통의 가톨릭 국가가 대부분이었던 라틴아메리카에서 왜 이처럼 빠른 속도로 오순절교회가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3) 라틴아메리카 오순절교회는 왜 성장하고 있는가?
    라틴아메리카의 오순절교회가 급성장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가장 심각한 반응으로 보이고 있는 사람들은 가톨릭교회의 해방신학자들이다. 종속이론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으로 라틴아메리카의 가난과 속박을 분석하였던 해방신학자들은 ‘가난한 자들의 우선적 선택권리(Preferential option for the poor)’라는 신학적 명제를 라틴아메리카의 빈자(貧者)들에게 제시했는데 정작 그들은 해방신학의 사회주의적 투쟁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대신 오순절 신앙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브라질의 대표적인 오순절교회인 IURD의 경우, 대부분의 소속교인들은 브라질 사회의 최하층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1996년 리오 데자네이로에서의 통계 분석 자료에 의하면 45%의 브라질 전체 인구가 최저생계비를 겨우 벌고 있는 시점에 IURD 교인들의 63%가 최저생계비로 생활하고 있었다. 교육의 정도에서도 오순절교회 교인들은 최하층에 속한다. 같은 통계에 의하면 브라질 전체 인구의 39%가 초등학교 교육을 받은 최하층임에도 불구하고 IURD 교인들의 경우 무려 50%가 4년 미만의 초등학교 교육을 받았을 뿐이다. 이처럼 라틴아메리카 사회의 최하층에 속한 사람들이 오순절 신앙으로 급속하게 이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이들은 전통적인 가톨릭 신앙을 버리고 오순절 신앙을 선택하게 된 것일까?
    라틴아메리카의 오순절 신앙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이유에 대한 첫 번째 해석은 지속적인 가난과 불투명한 사회체제 안에서 살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아노미(Anomie) 현상에서부터 기인한다는 이론이다. 막스 베버(Max Weber)의 사회학 이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이 이론은 에밀리오 빌렘스(Emilio Willems)의 종교사회학을 통해 이미 1960년대에 발전되었다. 그의 종교사회학적 견해에 따르면 급변하는 가치관의 부침(浮沈)과 정치 경제적 혼란의 와중에서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은 삶의 기준과 도덕적 가치의 규범을 상실한 아노미 상태에 이르게 되었고, 사회적 약자인 이들은 오순절 신앙이 확고하게 제공해주는 새로운 삶의 가치와 규범 가운데서 심리적 안정감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 미국의 사회학계를 풍미했던 근대화 이론(Modernization theory)에 입각한 빌렘스의 주장에 의하면 결국 라틴아메리카의 오순절 신앙은 도시 빈민의 근대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오순절 신앙에 관한 두 번째 해석은 도시로 이주한 빈농들이 고향에서 믿었던 미신적인 가톨릭 신앙(Folk Catholicism)을 도시적 환경에서 재현하고 있다는 종교현상학적 분석이다. 아노미 현상으로 설명하는 첫 번째 해석과 출발점은 같아 보이지만 결론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미신적 가톨릭 신앙이 도시의 환경에서 사제나 지주들의 감독 없이 공공연하게 진행되는 오순절 신앙은 형식은 개신교이지만 내용은 원래 미신적 가톨릭 신앙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내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배의 형식은 개신교 혹은 오순절 신앙을 따르고 있지만 주술적이며 기복(祈福)적인 신앙행위의 내용 자체는 미신적 가톨릭 신앙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견해도 있다. 도시 빈민의 근대화 과정으로 보는 첫 번째 이론과 미신적 가톨릭 신앙의 도시적 표현이란 두 번째 이론과 달리 이 세 번째 이론은 이데올로기 비평적인 측면에서 출발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오순절 신앙은 도시 빈민 계층이 당면하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저항운동의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앞의 두 이론이 도시 빈민의 적응과정을 강조한 분석이라면 세 번째 이론은 라틴아메리카의 도시 빈민이 주체적으로 선택한 오순절 신앙이 독자적인 신비로운 힘과 영적 권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프리카의 독립교단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듯이 새로운 힘의 표시인 상징물을 강조한다든지(예를 들면 화려하게 장식된 󰡔성경󰡕을 영적인 힘의 원천으로 보는 것), 제3 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통해 하나님과 자신의 직접적인 영적 대화가 가능함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에게 부여된 새로운 영적인 힘을 강조하는 현상들이 이를 설명한다고 보는 이론이다. 결국 급성장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오순절 신앙은 사회적 약자들의 상실감과 위기를 극복해 줄 수 있는 보다 높은 차원의 영적인 힘(Higher spiritual power)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를 사회적 약자들은 이 새로운 ‘높은 차원의 영적인 힘’을 자기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개인화(Privatization of the power)시키는 과정을 통해 급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 라틴아메리카 교회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선교역사에 있어서 라틴아메리카는 개신교 선교의 관심 밖이었다. 위대한 선교의 세기였던 19세기가 지나가는 동안 유럽의 개신교회와 선교단체들은 라틴아메리카 선교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1823년에 선포된 미국의 먼로주의(Monroe Doctrine)는 유럽 국가들이 더 이상 아메리카 대륙에서 식민주의를 확대하거나 각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에 자연히 라틴아메리카 선교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선교의 역사적 이정표였을 뿐 아니라 20세기 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1910년의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가 열렸을 때 라틴아메리카는 완전히 잊혀 진 대륙이었다. 단 한 명의 선교단도 에딘버러 대회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약 100년이 지난 지금 라틴아메리카는 이제 남반부 기독교(Southern Christianity)의 핵심 축으로서 급성장하고 있다. 21세기 기독교에서 라틴아메리카는 잊혀 진 대륙이 아니라 새롭게 떠오르는 대륙이며, 이 새로운 부상(浮上)을 이끌고 있는 것은 오순절교회의 활발한 움직임이다. 필리핀에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는 브라질 오순절교회의 선교사를 만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는 때가 곧 찾아 올 것이다.
    2000년을 기준으로 약 300가정(600명)의 한국 선교사들이 라틴아메리카 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선교사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가톨릭교회를 선교의 대상으로 볼 뿐 아니라 그들의 신앙 전통 자체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토착종교와 지나치게 결탁되었다는 점, 가톨릭 성도들에게 성경적 지식이 없다는 점, 도시지역보다 오지나 변두리에서 그 영향력이 더 크다는 점, 그리고 성자의 축일이나 가톨릭 명절만 지키는 명목적인 가톨릭 성도들이 많다는 점을 들면서 한국의 선교사들은 라틴아메리카의 가톨릭교회가 가지고 있는 사도적 전승(Apostolic tradition)을 부정하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현상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가톨릭교회의 부정적인 모습에 관심가지는 것보다, 날로 성장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오순절 신앙과의 관계성 속에서 이 문제에 접근할 것을 권유하고자 한다. 한국 선교사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오순절교회의 지도자들은 가톨릭교회에 대해 적대적이다. 오순절 신앙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것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대응하는 곳도 다름 아닌 가톨릭교회이다. 일부 가톨릭교회에서는 먼저 손을 내밀어 오순절 신앙의 다이내믹을 자신들의 사목(司牧)에 활용하는 가톨릭 수도회나 교구가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가톨릭 영성의 역사를 라틴아메리카의 빈자(貧者)들이 가지고 있던 오랜 영성의 역사를 연결시킴으로써 오순절 신앙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도 보인다. 해방신학자로 알려져 있는 구스타보 구티에레즈가 최근에 쓴 책은 투쟁을 선도하는 이념서 아니라 가난한 자의 영성에 관한 역사적 분석이었다.
    우리는 먼저 500년의 역사를 가진 라틴아메리카의 가톨릭교회에 대한 역사를 배워야 한다. 그들의 성공과 실패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라틴아메리카인들의 영성에 접근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종교적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오순절 신앙을 구체적으로 연구 분석함으로써 진정으로 우리가 라틴아메리카의 교회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그 무엇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오순절 신앙이 국제화될 수 있다면, 아니 이미 브라질의 오순절교회 선교사들이 필리핀에서 활동할 만큼 오순절 신앙이 국제화되었다면, 우리는 라틴아메리카의 국제화된 오순절 신앙을 통해서 모든 인류에게 차별 없이, 직접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마닐라의 거리에서 만났던 그 필리핀 여성은 이미 브라질 오순절 신앙을 통해 새로운 국제화 시대의 영성을 발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4. 라틴아메리카 선교의 슬픈 역사

    (1) 누구를 위한 ‘슬픈 밤’인가?
    1519년 무력으로 아즈텍을 점령한 스페인의 귀족 대장 에르난 코르테스(1485~1547)는 단순히 비정한 식민주의자만이 아니었다. 그는 불과 500여 명의 스페인 군인과 16필의 말(馬), 그리고 14문의 대포를 이끌고, 당시 권력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목떼수마(Moctezuma) 왕의 떼노쉬띠뜰란(Tenochtitlán, 지금의 멕시코시티)을 단숨에 정복했던 뛰어난 전략가였다. 그는 정말 사자(獅子)의 폭력성과 여우의 교활함을 동시에 가졌던 인물이다. 인디오 원주민들이 생전 처음 본 말(馬)의 힝힝거리는 소리에 잔뜩 겁에 질린 것을 보고, 청천벽력과 같은 대포의 폭발음과 말의 울음소리를 교묘하게 결합시켰던 심리전의 귀재였다. 그는 목떼수마를 적대시하던 인근 인디오 부족을 유도하여 공격의 선봉에 세우는가 하면, 교묘한 심리전으로 목떼수마의 부하들로 하여금 과연 전쟁이 필요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들게 함으로써 용맹스런 인디오 전사들의 불같은 전의(戰意)를 꺾어 놓았다. 무엇보다 목떼수마는 코르테스의 갑작스런 방문을 텁석부리 수염과 흰색 피부를 가진 ‘깃털달린 뱀 신(Quetzalcóatl)’의 도래로 잘못 이해했다. ‘흰 얼굴의 텁석부리 신’이 돌아오면 한 시대가 마감되고 새로운 세계가 개벽할 것이란 아즈텍의 종말론은 목떼수마와 그의 부하들로 하여금 유럽의 군대를 극도로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즈텍인들이 그냥 앉아서 당한 것만은 아니다. 비록 코르테스의 심리전에 속아 초기 대응에 실패함으로써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지만, 곧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스페인 군대의 라틴아메리카 정복사(征服史)에서 가장 처절한 패배로 기록될 ‘슬픈 밤(Noche triste)’의 전투는 아즈텍인들의 군사적 용맹과 야만적인 침입자들에 대한 분노를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었다. 1520년, 코르테스가 자신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행군해 오던 스페인 군대를 방어하기 위해 해안으로 떠난 틈을 타, 아즈텍의 용맹한 전사들이 떼노쉬띠뜰란에 머물러 있던 스페인의 잔여군대를 완전히 괴멸시킨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유럽인의 시각에서 기록된 수많은 역사책에서 1520년의 사건을 ‘슬픈 밤’이라고 명명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수천 년을 굳건히 지켜오던 인디오들의 문명이 일시에 붕괴되고, 인구의 9/10가 전염병으로 몰살당하는 비극은 마치 당연한 역사의 귀결로 받아들여지는 대신, 수백 명도 되지 않는 스페인 침략군들의 괴멸은 ‘슬픈 밤’으로 기록되는 역사의 부당성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역사는 결국 강자의 기록’이란 자조적인 경구를 되새기게 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라틴아메리카 정복사는 슬픔의 역사였다. 그리고 그 슬픔은 수천 년간 잉카와 아즈텍 문화를 지켜오던 수천만 명에 달하는 인디오들의 뼈 속 깊이 사무친 슬픔이었다. 라틴아메리카의 오랜 슬픔의 역사를 먼저 이해하지 못하고 오늘 급변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기독교를 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역사는 단절되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성의 릴레이를 통해 서서히 방향을 틀어가기 때문이다.

    (2) 슬픈 대륙과 분노하는 라틴아메리카
    슬픈 대륙의 역사가 기독교 선교의 역사와 처음부터 함께 펼쳐졌다는 사실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라틴아메리카를 향해 식민정복자(Conquistador)들을 태우고 떠났던 수많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범선에 늘 가톨릭 선교사들이 동승했다. 초기 식민정복자들이 엥코미엔다(Encomienda) 제도의 확장을 통해 신대륙의 봉건영주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선교사들은 그들의 종교적 하수인이 되곤 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유럽인들보다 열등한 존재이기 때문에, 고귀한 주인을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주장했던 이론가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파견된 선교사나 고위 성직자였다. 1517년, 프란체스코회 선교사 루이즈(Francesco Ruiz)는 당시 인디오를 이렇게 평가했다.

    인디오들은 사악한 인종으로 기독교인을 해칠 방책을 늘 생각해낼 수 있다. 그들은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인종일 뿐 아니라, 고귀한 기독교 신앙을 받을 자격이 없는 인종이다. 또한 기독교로 개종하거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종교적 덕목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 인종은 마치 말(馬)이나 짐승들이 그런 것처럼, 강제적으로 다스려져야 하고, (유럽의) 기독교인에 의해 잔혹하지 않는 방법으로 통치되어야 마땅한 인종인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초기 선교사들은 인디오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짐승(bestias libres)”로 사는 것보다 차라리 유럽인들의 ‘노예 인간(hombres siervos)’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고 공공연하게 설파했다. 고귀한 기독교 복음은 유럽인들의 인종적 우월성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정신적 고매함을 상징하고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정복의 역사와 가톨릭교회의 선교의 역사가 함께 추진됨으로써, 16세기의 유럽 선교사들은 인디오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다. 라틴아메리카는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유럽의 대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디오들에게 전혀 면역이 없었던 유럽의 전염병이었다. 불과 100년 사이에 무려 라틴아메리카 인구의 9/10가 몰살당하는 참극이 일어났다. 지금 멕시코 지역의 아즈텍 문명권에서 16세기 초반에 살고 있던 2,500만 명의 인디오들은 전염병과 노동력의 착취로 인해 100년 사이에 약 100만 명으로 인구가 줄어들 정도였다.

    (3) 광야의 외치는 소리
    그러나 역사는 늘 악당들만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있었으니, 인디오 원주민들의 비참하고 학대받는 삶을 측은하게 여기며 살아있는 하나님의 공의를 외쳤던 선지자적 사자후(獅子吼)도 있었다. 인디오들에게도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을 깨달아 알 수 있는 내적 능력이 있음을 신학적으로 증명했던 살라망카 대학의 신학자 프란체스코 데 비토리아(Francesco de Vitoria)부터, “인디오들의 눈물을 닦아 준 사람(The Collector of the Indians' Tear)”으로 불렸던 바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Bartolomé de Las Casas), 그리고 16세기 말 페루 선교의 현황과 문제점을 면밀하게 연구 보고함으로써 유럽 교회의 경각심을 일깨운 호세 데 아코스타(José de Acosta, 1540~1600)까지, 수많은 정의파 선교사들과 신학자들이 인디오를 보호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지금도 우리를 감동시키는 1511년의 한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 선교사(Antonio Montesinos)의 명설교문은 당시의 상황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당신들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나는 오늘 이 강단에서, 광야에서 홀로 외치셨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려주고자 합니다. (.........) 그 광야의 음성이 단언합니다. 당신들은 죽을 죄악을 범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당신들이 지금 이 순수한 인디오들에게 저지르고 있는 온갖 잔인함과 폭압적 독재 때문에, 당신들의 삶과 죽음이 판가름을 받게 될 것입니다. 도대체 당신들은 어떤 구실과 권리를 가졌기에 그토록 잔혹하고 처참한 방식으로 인디오를 노예로 부려먹는 것입니까? 자기 땅에서 평화롭고 온순하게 살고 있던 그들에게 당신들은 어떤 권리로 전쟁을 선포하고 그들을 도륙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심하게 억압하면서 충분한 음식도 주지 않는 당신들은 무슨 권리로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입니까? (.........) 그들도 사람이 아닙니까? 그들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성적 존재가 아닙니까? 당신들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의 정복사 과정에서 가톨릭교회와 선교사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정치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유도되었다. 스페인의 절대군주는 라틴아메리카의 식민개척자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계속해서 마련했다. 스페인의 절대군주는 라틴아메리카를 ‘누에바 에스빠나(Nueva España)’ ‘페루(Peru)’ ‘누에바 그라나다(Nueva Granada)’ 그리고 ‘라 쁠라다(La Plata)’로 나누어 4개의 부왕령(Virreinato)으로 통치하면서 자체적인 권력의 독점을 막았다. 300여 년에 걸친 식민통치 기간 중 모두 170명의 부왕이 임명되었고 602명의 총독이 임명되었지만 오직 4명의 부왕과 14명의 총독만이 라틴아메리카에서 태어난 백인 출신(끄리올요)이었다. 나머지 모든 부왕과 총독은 스페인으로부터 직접 임명을 받은 백인들이었다. 초기의 식민개척자들이 라틴아메리카의 봉건계급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고 심지어 부왕과 총독들의 권력 독점을 막는데 가톨릭교회가 동원된 것이다.
    바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를 위시한 초기 선교사들의 인도주의적인 노력은 그 취지는 고상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인디오들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것은 결국 식민개척자들의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과 다름없었다.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식민지 정책을 고수했던 스페인 절대군주의 의도에 따라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초기 식민정복자들과 끄리올요(라틴아메리카에서 태어난 백인 지도층)의 권력을 견제하기 쉬한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예수회의 신앙촌 역시 그 고귀한 원래 의도와는 달리 식민지배 체제 강화를 위해 사용되었다. 결국 이러한 정치적 과정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가톨릭교회는 점차 상류층을 대변하는 정치적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지금도 이러한 현상은 계속되고 있는데, 라틴아메리카의 보수적인 이념 지배층은 결국 가톨릭교회의 세력과 동일한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교회의 수구적 입장에 대항해서 등장한 1970년대의 저항 운동이 바로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이다.

    (4) 기득권자를 위한 가톨릭교회와 해방신학의 등장
    논의의 빈도가 이전보다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구스타보 구티에레스가 1968년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의 이름으로 제기했던 신학적 도전은 불평등과 가난의 문제가 여전히 산적해 있는 오늘에도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는 신학적 담론이다. 특별히 미국의 거대 매판자본에 의해 독점적으로 관리되어 오던 라틴아메리카의 종속 경제체제하에서 해방신학은 그동안 역사의 주변인물로 간주되어 오던 민중과 바닥 공동체를 재발견하였을 뿐 아니라, 구체적인 프락시스(Praxis)를 통해서 신학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이성적인 성찰을 강조하던 서구 신학체계의 한계를 극복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해방신학을 개신교적 담론으로 이끌었던 호세 보니노, 해방신학에 역사적, 경제사적 통찰을 제시한 엔리케 두셀, 그리고 브라질의 사제인 보프 형제 등의 새로운 신학체계는 1970년대의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여성신학(Feminist Theology), 흑인신학(Black Theology), 한국의 민중신학, 그리고 인도의 달리트 신학(Dalit Theology)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1980년대를 지나오면서 해방신학은 두 가지 방향에서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비판의 한 방향은 그동안 해방신학자들의 조직적인 실천력에 눌려 소리를 낮추고 있던 기존 보수 세력들의 저항이다. 이들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는 종교적 보수주의의 바람을 등에 업고 해방신학들이 교회의 사명을 망각하고 불순좌파 세력과 결탁해 있다고 비판한다. 해방신학에 대한 또 다른 비판 세력이 바로 라틴아메리카에서 들판을 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오순절 운동이다.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해방신학자들은 의식화할 것을 요구했으나, 가난의 당사자들은 해방신학의 프락시스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순절 운동의 카타르시스를 추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라틴아메리카의 오순절 운동이 피안적(彼岸的)인 염세주의를 추구하는 운동이라고만 볼 수 없다. 라틴아메리카의 가톨릭교회가 지금까지 가진 자의 교회였다면, 라틴아메리카의 오순절교회는 없는 자의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새로운 현실 타개를 위한 정치적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5) 라틴아메리카 오순절교회의 선교적 도전
    라틴아메리카의 오순절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뻬드로 모레노(Pedro Moreno)의 조사에 의하면 1980년대 초반 불과 1,860만 명에 불과했던 라틴아메리카의 오순절교회 소속 교인들의 숫자는 1990년대 말 기준으로 무려 6,000만 명을 상회하고 있다. 불과 10년 사이에 300% 이상의 폭발적 성장세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조사에 의하면, 이미 브라질, 과테말라, 그리고 니카라구아에서는 가톨릭 신도보다 개신교신도의 숫자가 상회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에 소속된 개신교도들의 2/3 이상이 오순절 운동에 소속되어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이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오순절 신앙 운동의 사회학적, 혹은 종교학적 분석과 전망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과연 라틴아메리카의 오순절 운동이 사회적 약자들의 아노미 현상에서 비롯된 도시화, 혹은 근대화의 과정인지, 아니면 토속적이며 주술적인 농촌 가톨릭 신앙의 도시적 표현인지, 아니면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저항운동의 성격을 지닌 정치 신학적 표현인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관찰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라틴아메리카의 오순절 운동을 이끌고 있는 대부분의 카라스마적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라틴아메리카 출신이란 점은 오순절 운동이 토착적인 요소와 함께 성장해 나간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해 주고 있다. 또한 라틴아메리카의 오순절 운동이 브라질과 페루 출신의 선교사들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면, 이 또한 매우 흥미진진한 교회사적 의미를 제기하고 있다. 오순절 신앙의 전(全)세계적 확장이 21세기 기독교의 새로운 모습이라면, 라틴아메리카의 오순절 신앙은 전 세계로 선교될 수 있는 것인가? 한국의 오순절 신앙은 어떠한가? 한국의 오순절 운동과 라틴아메리카의 오순절 운동은 어떤 유사점과 상이점을 가지고 있는가?


    5. 브라질 오순절교회의 현황: IURD(Igreja Universal do Reino de Deus)를 중심으로

    (1) 성령의 역사인가, 아니면 사이비 종교인가?
    1977년, 리오 데 자네이로의 한 허름한 동네에서 브라질의 복권 사무국에서 근무하던 에디르 마케도(Edir Macedo)가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다. 예배 장소는 임시로 빌린 장례식장 건물이었다. 그 예배는 브라질 여러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순절교회의 저녁 부흥집회와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마케도의 설교는 처음부터 그 내용이 조금 달랐다. 어떻게 하면 교인들이 열광적으로 반응하는지를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의 설교에 교인들은 손뼉을 치고 화답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회개의 눈물을 쏟아 냈다. 한참 설교를 하던 마케도는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에게 안경을 낀 사람들은 모두 앞으로 나와서 강대상 옆에 안경을 놓고 가라고 말했다. 교인들은 쓰고 있던 안경을 마케도 앞에 쌓았다. 그리고 그는 모든 눈 나쁜 교인들의 시력이 하나님의 치유의 은혜로 정상이 되었다고 선포했다. 이미 열광적인 분위기에 들떠 있던 몇몇 교인들이 큰 목소리의 아멘으로 화답했다. 어떤 사람은 안경이 없어도 잘 보인다며 기쁨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케도는 강대상 앞으로 걸어 나가 쌓여 있던 안경을 발로 짓밟아 깨트리기 시작했다. 마케도는 발로 쌓여 있는 안경을 부러트리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시력은 정상으로 돌아가라!”며 외치기 시작했다. 교인들은 추던 춤을 멈추고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올렸다. 1977년, 이렇게 해서 브라질과 라틴아메리카의 오순절교회를 대표하는 IURD(Igreja Universal do Reino de Deus)가 탄생했다. 마케도의 IURD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오순절 교단이다. 현재 IURD는 브라질에서 두 번째로 큰 텔레비전 방송사를 소유하고 있으며, 수백 개에 달하는 라디오 방송국과 신문사, 은행, 신용회사, 레코드회사 등을 운영하고 있는 종교재벌로 성장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6백만 명이 IURD에 소속되어 있으며, 2001년을 기준하여 약 85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IURD는 브라질의 하류층과 도시 빈민층, 그리고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라틴아메리카 계열의 이민공동체에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오순절 운동이다. IURD는 모든 질병과 근심의 원인인 악한 영을 쫓아내는 퇴마(Exorcism)의식을 강조하며 기적을 통한 치료(Miracle healing)를 통해 교인들이 겪고 있는 영육간의 고통을 제거하는 데 많은 관심을 보여 왔다. 예를 들면 IURD가 미국 동부 로스엔젤리스 지역의 라틴아메리카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방영하고 있는 인기 프로그램인 <고통은 이제 그만(Pare de Sufrir)>은 IURD 부흥 강사들이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를 기도로 치유하는 장면을 자주 방송으로 내보내고 있다. 영육간의 질병을 사악한 악령의 소행으로 보는 IURD의 입장은 브라질에 남아 있는 아프리카 종교의 영향으로 보인다. 가톨릭교회에 대한 집단적인 혐오의식의 공개적 표출 또한 IURD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IURD의 반(反)가톨릭 강경노선은 약 1억 5 천만 명의 전체 인구 중 무려 1억 1천만 명 정도가 가톨릭 교인으로 등록되어 있는 브라질에서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IURD가 브라질의 하류층과 경제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이민자 공동체를 통해 확장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일 드려지는 각종 예배에서 지나치게 헌금을 강조하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헌금을 많이 드리는 사람이 더 많은 축복을 받는다는 IURD의 공식적 입장은 이미 여러 차례 주류 언론과 각국 정부로부터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러나 IURD가 지금까지 종교 단체로서의 생명력을 잃지 않고 오히려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언론과 미디어의 힘을 잘 활용해 왔기 때문이다. IURD가 텔레비전 방송사와 수많은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헌금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어쨌든 탄탄한 재정구조를 가지고 있고, 제 아무리 언론 플레이를 잘한다고 해도 이런 것들이 IURD의 급성장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을 악한 영과 선한 영의 영적 싸움으로 보고, 악한 영에 대한 절대적 승리를 강조함으로써 현세에서의 물질적 축복을 강조하는 아프리카 종교의 특징이 IURD의 신학에 그래도 반영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IURD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브라질의 하층민과 소외받는 이민자 공동체에서 퍼져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좀 더 본질적인데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브라질의 가톨릭교회와 각 이민 사회의 기존의 주류 개신교회들이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소망만을 강조하면서 그들의 실질적 고통을 외면해 왔다면, IURD는 지금 이 땅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드러난다.
    IURD의 설립자 에디르 마케도는 엄지손가락이 없는 상태로 태어난 일종의 장애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지난한 삶을 통해 이 땅에서 고통 받고 사는 것이 어떤 것이지를 잘 아는 인물이었다. 지난 1997년, IURD 설립 20주년 기념 방송에서 에디르 마케도와 그의 아내는 기자들로부터 왜 IURD를 설립했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IURD가 설립되었던 1977년에 사실 자기 딸 비비안(Viviane)도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갓 태어난 아기는 아빠처럼 엄지손가락이 없는 불구의 상태였다. 그 때를 떠올리며 마케도는 슬픈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딸이 엄지손가락이 없는 불구의 상태로 태어났을 때, 나는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딸의 출산과 함께 말입니다.”
    16세기부터 정치 종교적 기득권을 누려왔던 라틴아메리카의 가톨릭교회와 독재를 일삼았던 브라질 정부는 그동안 브라질 하층민과 도시빈민을 방치해 왔다. 그러나 IURD는 그들에게 새로운 종교적 희망을 제시했다. IURD는 오순절 운동의 범위를 넘어서는 활발한 사회활동을 장려한다. 투표나 정당 활동을 포함한 정치활동의 참여를 강조하는 것은 기본이다. 심지어 활발한 경제활동을 독려하면서 희망하는 소규모 자영업자에게 창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IURD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총체적인 배려를 통해 희망의 근거지를 저 세상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곳에 둘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했다. 새로운 희망이 싹트는 곳에서 IURD가 성장을 거듭했던 것이다.

    (2)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IURD의 역사
    그러나 IURD의 역사는 한마디로 구설수의 역사였다. 창립 초기부터 최근까지 수많은 추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IURD는 스캔들을 통해서 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수많은 추문은 어쨌든 IURD를 대중의 관심권 안으로 묶어 놓았다. IURD에 첫 번째 위기가 닥친 것은 IURD가 레데 레코드(Rede Record)를 인수하면서 대외적으로 교세의 급성장을 증명해 보였던 1990대 초반부터였다. 브라질 사법당국은 1992년, IURD가 4천 5백만 불이라는 거금을 지불하고 레데 레코드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에디르 마케도가 탈세를 저질렀다고 보았다. 결국 그는 11일간 구속되었다가 겨우 석방될 수 있었다. 마케도가 브라질의 언론과 미디어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레데 레코드를 인수하자 브라질의 각 언론매체들은 그를 견제하기 시작했고, 마케도의 시련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위기는 1995년에 한 IURD의 주교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브라질의 상징인 가톨릭 성모상을 발로 차는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사건은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로마 교황청이 공식 담화문을 발표할 정도로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사건의 자초지종이 이렇다.
    IURD의 지도부에 속한 인물이자 주교(Bishop)인 세르지오 본 헬데(Sergio von Helde)는 상파울로에서 방영되는 한 텔레비전 신앙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는 브라질의 국가 성모상(Our Lady of Aparecida)을 보여주면서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우상”이라고 비아냥거렸고 “이렇게 못생긴 것은 당신을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며 모욕적인 언사와 함께 성모상을 발로 차기까지 했다. 1991년부터 IURD가 브라질의 텔레비전 방송과 언론 쪽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을 경계하던 글로보(Globo) 그룹의 경쟁 방송사가 이 장면을 반복적으로 방영함으로써 브라질의 가톨릭교회가 발칵 뒤집혔다. 이 사건으로 인해 IURD는 궁지에 몰렸다. 브라질 각 지역의 IURD는 가톨릭 교인들의 시위로 몸살을 앓았고 폭탄 테러 위협도 받았다. 결국 세르지오 본 헬데 주교는 재판에 회부되어 다른 종교에 대한 신성모독의 혐의로 2년형에 처해졌다.
    1997년에는 브라질 정부가 직접 나서 IURD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탈세, 외화관리법, 돈세탁 등의 혐의로 집중적인 조사를 받았지만 그때마다 마케도와 IURD는 사법부의 추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많은 의회 의원들이 이미 IURD의 교인이거나 IURD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브라질 내부에서는 이런 정치적인 방패막이들이 있었지만 외국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IURD의 선교활동에 대한 외국에서의 견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벨기에 정부는 공식적인 의회 청문회 절차를 거쳐 IURD를 ‘조직범죄 집단’으로 규정하면서 이들의 ‘종교의 이름을 가장한 극단적인 기업행위’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에디르 마케도의 누이인 에드나 페르난데스(Edna Fernandes)의 자신에 찬 주장처럼, “IURD는 박해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 성장한다”는 사실이 전 세계에서 현실로 입증하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주류 언론들과 각국 정부는 IURD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타임󰡕(1996년 3월 11일), 󰡔뉴욕 포스트󰡕(2000년 7월 23일), 󰡔워싱턴 포스트󰡕(2001년 2월 13일), LA Weekly(2001년 7월 5일)등 대부분의 주류 언론은 에디르 마케도의 IURD가 물질적인 축복만을 강조하는(Prosperity Theology) 일종의 사이비 종교집단이라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URD는 브라질에서 여전히 성장하고 있으며 오히려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3) 국제화 시대의 IURD 선교: 오순절 운동의 세계화?
    이미 언급하였듯이 브라질의 기독교는 급속한 속도로 오순절화 되어가고 있다.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통계로만 보더라도 약 60만 명 정도의 가톨릭 교인들이 매년 개신교로 옮겨가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오순절교회로 이동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IURD가 브라질 하층민들 사이에서 가장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브라질의 일반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IURD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비록 언론과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지만 창립 초기부터 제기된 끊이지 않았던 각종 스캔들로 인해 브라질 사회의 일반적인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IURD에 대한 브라질 내부의 부정적인 견해는 오히려 IURD로 하여금 브라질의 국경선을 넘어 해외 선교를 치중하는 교단으로 탈바꿈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IURD는 2001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 85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거나, 독립교회를 운영하고 있다. IURD가 제일 먼저 브라질의 국경선을 넘어 ‘해외선교’를 시작한 시점은 1985년으로, 인접해 있는 파라과이가 첫 번째 선교 목표였다. 1990년까지 미국, 아르헨티나, 그리고 포르투갈로 IURD의 선교사들이 파송되었지만 본격적인 해외선교는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브라질 내부에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피하기 위해 아예 교단의 중심지를 미국과 포르투갈, 그리고 남아프리카로 옮기는 정책적 결정도 내려졌다. IURD가 집중적으로 해외 선교활동을 펼치는 지역은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이민자들이 많은 국가와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살고 있는 유럽 국가들이다. 아무래도 언어적인 문제 때문에 아시아와 중동 국가에서는 아직 해외선교가 본격적으로 시도되지 않고 있다. 단, 브라질 농업이민자가 많았던 일본의 경우, 1995년에 이미 여러 곳에 IURD교회가 설립되었다. 스페인 문화권의 영향이 남아있는 필리핀에도 서너 개의 IURD 교회가 설립되어 있다. 스위스와 프랑스에 있는 IURD 교회의 경우는 포르투갈 이민자들이 세운 교회이고, 네덜란드의 경우는 화란어를 구사하는 수리남(Surinam)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아시아(일본과 필리핀 제외)와 중동국가를 제외한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에서 IURD 교회가 ‘해외선교’를 확장하고 있는 현상은 매우 흥미로운 오순절 운동의 진화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세 대륙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IURD를 통해 우리는 오순절 운동의 세계화(Globalization) 과정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4) 남겨진 과제와 교훈
    IURD가 급성장했던 1990년대는 브라질의 총체적 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였다. 농업과 광업 중심의 후진적인 경제 구조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 대해 지속적인 종속성 때문에 당시 브라질은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었다. 군부의 정치개입과 정치적 불안정,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은 당시 브라질의 하층민과 도시빈민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에디르 마케도는 가난한 이웃들의 힘겨운 삶의 모습을 통해 IURD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발견했다. 엄지손가락이 없는 불구의 아픔이 자기 어린 딸에게도 반복되는 실존적인 고통과 슬픔이 그를 더욱 극단적인 오순절 신앙으로 몰고 갔다. 현실을 짓누르는 삶의 고통은 가톨릭교회가 제시하는 장밋빛 희망으로 극복될 수 없는 무거운 짐이었고, 마케도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그 짐을 내려놓은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수많은 추문과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IURD가 성장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마케도와 IURD가 가난하고 소외된 도시의 하층민들을 보듬었기 때문이다.  
    1906년, 미국의 아주사 거리에서 시작된 오순절 운동의 역사는 사실 지금 브라질에서,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공동체에서 성장하고 있는 IURD와 여러 가지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다. 흑인과 여성으로 대표되는 그 시대의 소외된 사람들이 미국의 오순절 신앙을 통해 새로운 해방의 가능성을 발견했던 것처럼, IURD의 교인들은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의 오순절 신앙을 통해 새로운 소망의 터전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IURD가 받고 있는 지탄과 추문을 묵과해서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IURD가 브라질과 해외 선교의 현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신앙적 도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업자 6백만 명의 시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양극화의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한국교회는 과연 도시 빈민과 생활보호대상자를 위해서 어떤 목회적 배려를 하고 있는가? 쪽방으로, 길거리로 내몰린 수많은 IMF의 희생자들에게 우리는 어떤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가? 우리는 그들에게 살아있는 소망의 터전을 제시하고 있는가? IURD는 한국교회가 비판하고 배척해야만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반성의 근거를 찾아야 할 이 시대의 목회적 화두인
    오순절 운동이 미국에서 출발했다는 것 자체가 미국 사회가 그만큼 불평등한 사회였다는 점과 다양한 충돌요소로 구성된 사회였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성령의 역사는 위기와 함께 찾아온다. 초대교회에 나타났던 성령의 역사처럼(행 2: 1~13) 오순절 운동은 다양한 충돌요소로 구성된 사회에 불평등의 사회적 위기가 심화되었을 때 불처럼 일어났다. 브라질에서 IURD와 같은 다소 극단적인 오순절 운동이 도시 빈민층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의 이민자 공동체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국 다양한 충돌요소로 구성된 사회에 불평등의 사회적 위기가 국제화 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불평등한 위기의 사회에서 오순절 운동은 궁지에 몰린 교인들에게 종교적 희망을 제공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오순절 운동이 세계화 하고 있다는 점, 아니 불평등한 위기의 사회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오순절 운동이 “전(全)방위로 확대되어가는 다양한 주체들의 확산(a multisource diffusion of parallel developments)”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오순절 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위기가 있는 곳에서 오순절 신앙이 성장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오순절 신앙이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면 이는 결국 세상의 위기가(혹은 위기의식이) 국제화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브라질의 IURD를 포함한 제3 세계 오순절운동이 국제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국교회는 어떤 역할을 맡게 될 것인가? 브라질의 오순절 운동이 세계 선교를 통해 아프리카와 유럽, 그리고 라틴아메리카를 서로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면, 과연 한국교회는 어떤 선교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국제화되고 있는 브라질의 IURD가 아직까지 포르투갈어와 아프리카 종교성이라는 문화적 특수성을 극복하고 있지 못한 이 시점에서, 과연 한국교회의 오순절 운동은 어디까지 국제화 될 수 있을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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