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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회] 장윤재-'예수 믿기, 예수 살기': 역사적 예수와 하나님 나라(2007년 1월 28일) [카테고리]
  • 제3시대
    조회 수: 6933, 2007.01.30 15:11:12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2007년 1월 제96회 월례포럼(2007.1.29.)

    “예수 믿기, 예수 살기”
    역사적 예수와 하나님의 나라

    _장윤재

    들어가는 말

    멜 깁슨 감독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는, 예수가 왜 죽었는가 하는 ‘신학적’ 질문보다 예수가 어떻게 죽었는가 하는 ‘사실묘사’에 편중되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 영화가 기독교 신앙에서―의도했든 안 했든―역사적 사실의 중요성을 제기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멜 깁슨이 심혈을 기울여 복구했다는 역사적 사실 가운데 사실과 확실히 다른 하나가 있었다. 다름 아닌 주인공 예수의 얼굴이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 결국 “그윽하면서도 압도적인 눈빛을 가진” 제임스 캐비즐을 캐스팅했지만, 그는 이번에도 ‘잘 생긴 백인 미남’이다.
    세계적 명성과 1백 20만 부의 부수를 자랑하는 미국의 과학전문지 󰡔파퓰러 미케닉스󰡕(Popular Mechanics) 2002년 12월호는 커버스토리로 ‘예수의 얼굴’을 실었다. 종교와 과학의 만남으로 시도된 이 작품은, 영국과 이스라엘에서 법인류학, 고고학, 컴퓨터 최첨단 기술을 전공하는 학자들을 동원하여 서기 1세기경 갈릴래아 지역에 살았던, 전형적인 30대 유대인 남성의 얼굴을 복원하였다. 그런데 그 결과가 너무도 충격적이다. 그을린 갈색 피부에 매부리 코, 짧게 깎은 곱슬머리..., 약 1백 52cm의 키에 50kg의 몸무게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 예수의 얼굴은 아예 흑인의 얼굴에 가까웠다. 지난 2천년 동안 수많은 기독교 예술가들이 그림과 조각 등으로 표현한 예수의 얼굴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것이었다. 물론 이번에 과학자들이 복구한 얼굴이 실제 역사적 예수의 얼굴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은, 대부분의 기독교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예수의 얼굴은 사실 서양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시대적 기대감, 나아가 인종적 편견이 개입된 것이라는 점이다.
    ‘역사적 예수’의 문제가 일반대중의 관심사로까지 확대된 또 하나의 계기는, 최근 미국과 한국 등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된 댄 브라운(Dan Brown)의 소설 󰡔다빈치 코드󰡕의 출판이다. 황당무계한 픽션이라고 무시하기에는 이 소설의 대중적 파급효과가 너무 크다. 실제로 지금 미국의 대형 서점가에는 󰡔다빈치 코드󰡕를 비판하는 기독교 신학자들, 특히 복음주의 계열의 신학자들이 펴낸 책이 벌써 대여섯 권을 넘어섰다. 한낱 픽션에 불과한 이 소설책에 전문적인 기독교 학자들이 이렇듯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라는, 기성교회가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운 ‘학문적 성과’와 매우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주어진 ‘예수 믿기, 예수 살기’라는 주제는 이렇듯 ‘역사적 예수’의 문제와 그가 선포하고 산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긴밀히 관련된, 가히 ‘휘발성’의 주제이다. 앞으로의 기독교 교회와 신학에, 나아가 선교에 많은 것을 시사하고 의미하는 주제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먼저 ‘역사적 예수’ 탐구의 역사와 그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소개한 다음,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의 성과가 우리에게 새롭게 제시하는 예수의 모습을 살펴보고, 그를 통해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의미를 새로이 조명해 볼 것이다. 이를 통해 어떻게 ‘예수 믿기’와 ‘예수 살기’가 통전적・변증법적으로 통합되어 나갈 수 있을지를 살펴볼 것이다.


    ‘역사적 예수’ 탐구의 역사와 비평

    󰡔성서󰡕를 깊이 읽다보면 왜 󰡔성서󰡕에 같은 사건에 대한 상충되는 보도가 존재하는지 종종 의문을 갖게 된다. 󰡔성서󰡕의 첫 책인 「창세기」의 맨 처음 두 장만 보아도 그렇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네 복음서의 보도를 비교해 보아도 큰 차이가 난다. 혹 복음서에 그리스도로 선포된 예수와 실제의 예수 사이에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18세기 후반 이러한 학문적 질문을 가지고 시작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는 현재까지 약 230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다음과 같은 네 단계의 과정을 밟아 왔다.
    (1) ‘구탐구’(Old Quest): 첫 단계의 역사적 예수 탐구는 1774년 라이마루스(Hermann S. Reimarus)에 의해 제기되어 슈트라우스(David F. Strauss), 바이스(Johannes Weiss), 그리고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에 이르러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보통 ‘구탐구’(Old Quest) 시대라고 부른다. 자유주의 신학이 바탕이 된 이 첫 단계의 탐구는 예수의 전기(biography)를 써보려는, 즉 예수 안에서 이상적인 인성(人性)을 발견하려는 노력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하지만 당시의 학자들이 발견할 수 있었던 역사적 예수는 결국 학자들 자신의 이미지뿐이라는 좌절로 이 첫 시도는 끝나게 된다.
    (2) ‘무탐구’(No Quest): 신정통주의 신학의 발호와 함께 역사적 예수 연구는 이후 거의 반세기 동안 ‘무탐구’(No Quest)의 침체기를 맞이한다. 새로운 신학이 역사적 예수 문제의 폐기를 요구한 것이다. 쾰러(Martin Kaehler)가 “진짜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선포된 그리스도다”(The real Christ is the Christ who is preached)라고 선언하면서 바르트(Karl Barth), 브루너(Emil Brunner), 니버 형제(Reinhold Niebuhr and H. Richard Niebuhr), 그리고 틸리히(Paul Tillich) 등은 역사적 예수를 발견하려는 시도에 대해 극도의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무탐구’ 시대의 절정은 독일의 신약성서학자 불트만(Rudolf Bultmann)이 주도하였는데, 그는 심지어 예수께서 이 땅 위에서 실제로 무엇을 말했고 실제로 무슨 행동을 했는지와 기독교 신앙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까지 선언했다.
    (3) ‘신탐구’(New Quest): 긴 적막을 깨고 역사적 예수의 ‘신탐구’(New Quest) 시대가 도래하였는데,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불트만의 애제자 에른스트 케제만(Earnest Kaesemann)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과 달리 역사적 예수 연구가 ‘방법론적’으로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그는, 비록 우리가 예수의 일대기를 정확하게 기술할 수는 없지만 기독교 신앙을 그 역사적 뿌리로부터 분리하면 그리스도 케리그마는 결국 현대판 가현설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 탐구는 신학적으로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리고 비록 복음서가 예수에 대한 역사적 보도가 아니고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케리그마로 짙게 채색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역사적 예수를 ‘추론’ 혹은 ‘증류’해 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른바 후기 불트만 학파로 불리는 사람들에 의해 주도된 이 ‘신탐구’는 역사적 예수를 ‘추론’하고 ‘증류’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수 시대의 유대교와 초대교회로부터 차별적인 예수의 독특성(uniqueness)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고, 불가피하게 유대교를 부정적으로 서술할 수밖에 없었다.
    (4) ‘제3의 탐구’(Third Quest): 이제까지 독일 신학계의 전유물이다시피 한 역사적 예수 연구는 1980년대 초반부터 북미로 그 자리를 옮겨 ‘제3의 탐구’(The Third Quest)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 제3탐구의 계기가 된 것은 새로운 고고학적 증거와 방대한 문헌정보의 발견이다. 오늘날의 제3탐구는 그 출판의 양과 연구조직, 그리고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학문적 방법론의 채택 등으로 인해 역사적 예수 연구의 일대 르네상스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의 기본적인 방법론이 문헌적이고 역사적인 비평인 것에 비해, 제3의 탐구는 종교역사학, 문화인류학, 그리고 다른 여러 사회과학적 방법을 폭넓게 사용하는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y)를 그 특징으로 한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제3탐구의 주체가 전통적인 신학교 교수로부터 일반대학의 학자들로 대거 옮겨갔다는 점인데, 이 점이 역사적 연구의 제3탐구가 조직신학적 성찰과 긴밀히 결합되지 못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가 되고 있다. 잘 알려진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에 속한 학자들에 의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제3탐구의 특징은, ‘신탐구’와 비교해 예수의 유대적 배경을 강조한다는 점이며, 또한 방법론적으로는 가장 오래된 본래의 예수 전통, 즉 다양한 양식의 예수전승 가운데 가장 초기의 전승층을 찾아내기 위한 ‘최소주의적 역사비평 접근방식’(minimalist historical-critical approach)을 선호하며, 구체적으로는 ‘층위학(層位學)적’(stratigraphic) 방법론을 채택한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이상과 같이 역사적 예수 탐구의 역사를 간략히 짚어보면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가진다. 첫째, 역사적 예수가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 아무 관계가 없다는 ‘무탐구’ 시대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점이다. 씨걸(Alan F. Segal)은 학자들이 역사적 예수를 탐구하면서 실제의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미지와 친숙한 이미지의 예수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오늘날 우리의 현대적 가치와 편안하게 맞아떨어지는 예수의 그림에 도달했을 때라고 말한다. 이 비판은, 비유컨대, 역사적 예수 연구라고 하는 깊은 우물 속 바닥을 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실제 우물의 밑바닥은 보지 못하고 물위에 비쳐진 자신들의 얼굴만 본다는 비난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비판하는 사람들이 과연 자신들에게도 동일한 비판을 적용하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어떤 시대가, 예를 들어 중세나 고대시대가, 우리보다 ‘시기적’으로 역사적 예수와 가깝기 때문에 ‘실제로’ 그에게 더 가까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시대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평등하게 서 있다. 때문에 과거 특정시대와 지역의 가치관 혹은 편견과 편안하게 맞아 떨어졌던 예수의 이미지를 보편화하여 다른 시대와 지역에 강요할 수는 없다.
      남미의 신학자 세군도(Juan Luis Segundo)의 주장처럼, 필자는 비록 과거의 역사적 예수 복원이 완벽히 객관적일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러한 복원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크로산(John D. Crossan)의 말처럼 ‘역사의 예수’(Jesus of history)와 ‘신앙의 그리스도’(Christ of faith)는 분리되거나 혼동되어서는 안 되며, 각각은 매 세대마다 새롭게 발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사실(예수)과 해석(그리스도)의 결합이며... 그 둘의 변증법적 구조가 기독교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신앙은 역사적 사실을 넘어서서 그것의 의미를 추구한다. 하지만 신앙은 역사적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보그(Marcus J. Borg)의 말처럼, 기독교 신앙은 ‘부활절 이전의 예수’(the pre-Easter Jesus)의 역사적 재건에만 기초해서도 안 되고, 마찬가지로 ‘부활절 이후의 예수’(the post-Easter Jesus)에 대한 케리그마 선언에만 의존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그 두 예수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케리그마에 매우 부정적인 펑크(Robert W. Funk)는 예수 자신은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또 되어서도 안 되며, 신앙이란 예수가 신뢰한 것을 신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오류를 반복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자유주의 신학에 기초한 ‘구탐구’와 신정통주의 신학에 기초한 ‘무탐구’ 모두가 극복의 대상이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목적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해진 예수를 우리에게 낯선 이방인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낯설음이 주는 충격으로 진부해진 역사와 신앙에 새 돌파구를 여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수많은 교리와 이념과 편견으로 옷 입혀진 ‘금관의 예수’는 갈릴래아 호수 주변에서 가난한 어부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웃고 우셨던 나사렛 예수로 돌아가야 한다. 이는 특히 배타적이고 근본적인 신앙이 지배하는 한국 그리스도교의 풍토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둘째로, 그러나 우리는 현재 북미중심의 역사적 예수 탐구와 일정한 비판적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들의 학문적 연구의 성과는 수용하되 그 목적과 한계는 넘어서야 한다는 말이다. 역사적 예수 탐구는 기본적으로 근대적 현상이며, 서양 계몽주의의 산물이다. 이성(reason)과 계시(revelation)가 갈등하면서 근대 기독교와 서구의 문화적 정체성을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역사적 예수 연구의 기본적 동력인 것이다. ‘예수 세미나’의 기본적 공격 목표가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라는 점에서 오늘날 북미 중심의 역사적 예수 탐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한국과 아시아에서 역사적 예수의 의미가 오직 과학과 이성 앞에 기독교 신앙을 변론하는 것일 필요는 없다. 자유주의적 학자들은 ‘문자적인’ 󰡔성서󰡕 읽기의 오류에 대항하느라 신학적 관심을 등한히 한 채 객관성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피오렌자 등 많은 여성신학자들이 줄기차게 비판하듯이, 일부 예수 학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역사적 실증주의’(historical positivism)와 ‘과학적 근본주의’(scientific fundamentalism)는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할 덕목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일어난 다양한 제3세계 신학이 우리에게 제기한 바와 같이, 이제 우리의 신학적 관심은 ‘비신앙인’(non-believers)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비인간’(non-persons)의 문제로 확장되어야 한다. 고난의 역사를 살아낸 우리의 삶과 경험과 문제의식이 중요하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솟아나는 절실한 호소와 간절한 만남이 없는 역사적 예수 탐구는 자칫 냉소적인 지식인들의 자기과시로 전락하기 쉽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는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택일의 문제로 보는 이분법적 도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의 성서학자들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견해 차이는 󰡔신약성서󰡕, 특히 복음서를 어떻게 보느냐 이다. 피오렌자, 크로산, 그리고 펑크 등은 복음서에 대해 근본적인 불신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신약성서󰡕의 저자들이 예수 말씀의 ‘보존’보다는 ‘선포’와 ‘해석적 설득’에 더 관심이 있었다고 본다. 반면, 타이센(Gerd Theissen), 던(James D.G. Dunn), 그리고 위더링톤(Ben Witherington, III) 등과 같은 학자들은 역사적 예수와 복음서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역사적 예수’와 ‘그리스도 케리그마’ 사이에 연속성을 강조하느냐 단절성을 강조하느냐가 논쟁의 핵심이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그 둘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입장이 그 둘 사이의 ‘본질적 일치’를 증명하고 있지 못하다고 보고 있으며, 따라서 역사적 예수와 초대 교회 사이에는 상당한 불연속성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은 비판적 입장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신약성서󰡕와 복음서를 폐기할 필요가 없는 것임을 보그에게서 배웠다.
    보그는 복음서가 하나 이상의 목소리, 즉 예수의 목소리와 초대교회 공동체의 목소리 모두를 포함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역사적 예수 탐구의 목적은 이 ‘다양한 목소리/층’을 분별해 들을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는 예수의 목소리만 취하고 나머지는 버리려 하는 태도는 ‘기독교 문자주의’와 똑같은 ‘사실 문자주의’ 혹은 ‘사실 근본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때문에 그는 그가 속한 예수 세미나에서 시도하고 있는 예수의 언행에 대한 ‘색칠하기’(coloring)에 대해서도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빨간색을 ‘초기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발달된 층’으로, 분홍색과 회색을 ‘중간층’으로, 그리고 흑색을 ‘후기 그리고 가장 발달된 층’으로 재규정하면서, 후대의 흑색층을 평가절하 하려는 경향에 경고를 보낸다. 흑색으로 칠해진 예수의 어록과 행적들은―그들의 대부분은 이 세상의 종말과 최후의 심판, 그리고 인자의 재림과 같은 묵시론적이고 종말론적인 것들인데―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빨간색과 분홍색이 예수의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때문에 중요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 말이다. 종종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 세미나가 진정성이 없는 예수의 말씀으로 투표한 검은색의 구절들에서 삶의 용기와 희망 그리고 새로운 결단을 내린다는 점을 볼 때 보그의 말에는 분명 설득력이 있다.
    우리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역사비평적 방법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지금까지 역사적 예수 연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마치 ‘이제 복음서의 예수를 버리고 역사의 예수를 선택하라!’처럼 들렸다. 하지만 ‘역사의 예수’와 ‘복음서의 예수’는 둘 다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 중요하다. ‘나’의 고백이 소중하다면 ‘그들’의 고백도 소중하다. 타인의 경험과 고백에 열린 신앙은 복음서의 예수를 폐기할 것을 요청하지 않는다. 때문에 필자는 보그의 주장처럼 우리는 󰡔성서󰡕에 대해 ‘후비판적’(post-critical)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이 입장은 유아 단계의 ‘전비판적’(pre-critical) 단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비판적’(critical) 단계도 아니다. 후비판적 입장이란 기독교 전통의 핵심적인 이야기들을 다시금 진정한 이야기로 듣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물론 이것은 전비판적 단계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 물론 그 둘을 혼동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성서󰡕 안의 다양한 목소리를 분별해 들을 줄 아는 능력은 신앙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줄 것이다.

    ‘제3탐구’의 성과와 새로운 예수의 모습

    그렇다면 오늘날 역사적 예수에 대한 ‘제3의 탐구’는 어떠한 학문적 성과를 내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에게 새롭게 제시하는 예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우리는 거기에서 어떤 새로운 신앙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가? 제3탐구의 내용적 성과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예수와 그의 메시지인 하나님 나라를 ‘비묵시적’으로 또 ‘비종말론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한 변화이다. 지금까지는 예수와 하나님의 나라를 묵시주의적이고 종말론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세기는 ‘종말론의 르네상스’라 불리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시기였다. 또한 한국의 민중신학자들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미륵사상’이나 ‘천지개벽’ 사상 등과 같은 묵시사상과 연결시켜 이해하곤 했던 것도 엊그제 일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역사적 예수 연구는 이러한 경향성에 일대 수정을 요구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기독론적, 교회론적, 그리고 선교론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1) 묵시주의적 렌즈 벗기기
    케제만은 묵시주의(apocalyptic)가 “모든 기독교 신학의 어머니”라 했다. 하지만 예수가 실제로 묵시주의자였는지 그리고 그의 하나님 나라 메시지가 어느 정도로 묵시주의적 영향을 받았는지는 지금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핵심적 쟁점 중의 하나다. 샌더스(E.P. Sanders), 베르메스(Geza Vermes), 그리고 마이어(John P. Meier)와 같은 학자들은 슈바이처 이후 강력하게 자리잡아온 묵시주의적 예수라는 그림을 지지한다. 하지만 이에 맞서 맥(Burton Mack), 크로산, 보그와 같은 학자들은 가장 오래된 예수의 전승층에는 묵시주의적인 종말의 기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크로산에 의하면 묵시주의적 종말의 기대는 세례요한의 것이었지 예수의 것은 아니다. 크로산은 예수가 처음에 세례요한의 제자로, 따라서 묵시주의적의 신봉자로 사역을 시작한 것은 사실이나, (아마도 세례요한의 처형 이후) 예수는 그와 같은 묵시주의적 노선을 버렸다고 주장한다. 그 문헌적 증거는 ‘금식하는 세례요한’(fasting John, 「마가」 2,18~20) 대 ‘잔치를 벌이는 예수’(feasting Jesus, 「마태」 11,18~19 혹은 「누가」 7,33~34에 있는 Q 복음서)이다. 즉 요한이 묵시적 금욕주의를 살았다면 예수는, ‘먹보’요 ‘술꾼’이라 불렸던 것처럼, 그와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신학자들이 예수와 묵시주의를 연결하는 데에 별반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이유는 기존의 성서학계에서 묵시주의를 사회적 소외계층의 전유물로 보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는 묵시주의적 그룹이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주변화 되거나, 혹은 박탈당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하는, 이른바 ‘박탈이론’(deprivation theory)의 영향 때문이다. 이 이론은 베버(Max Weber), 만하임(Karl Mannheim), 그리고 트뢸취(Ernst Troeltsch)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정립되었다. 분명 묵시주의는 위기에 처한 집단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삶을 이어가게 하는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때문에 몰트만(Jurgen Moltmann)은 묵시문학을 ‘반란적 지하문학’이라고도 부른다. 기독교 역사에서 피오레의 요아힘(Joachim of Fiore)과 재세례파(Anabaptists), 그리고 뮌처(Thomas Muentzer) 등이 실제의 예이다. 문제는 이것이 역사의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다. 흥미롭게도 콘스탄티누스 황실의 어용신학자였던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는 묵시주의를 현존질서를 옹호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양면적인 역사’에 대해 󰡔히브리성서󰡕/󰡔구약성서󰡕의 학자 스티픈 쿡(Stephen L. Cook)은 「에스겔서」 38~39장, 「스가랴서」 1~8장, 그리고 「요엘서」와 같은 최초의 묵시주의적 본문을 분석하면서, 전통적으로 묵시주의적 그룹이 소외된 하층민들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이른바 ‘박탈이론’을 비판하고, 묵시주의가 유대 사회의 중심부인 사제 집단이나 그들과 제휴한 집단들에서도 일어났던 것임을 증명하였다. 사실 묵시주의는 그것의 일부 긍정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 특히 여성신학자들의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켈러(Catherine Keller)는 비록 수많은 여성들이 묵시문학의 상징들 속에서 저항의 수단을 찾아온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묵시주의의 뼈대에 담긴 여성혐오적(misogynic) 요소들은 더 이상 긍정될 수 없다고 단호히 비판한다. 역사적 예수 연구의 제3탐구는 예수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묵시주의적 렌즈를 벗기고 있다.

    (2) 임박한 종말론의 렌즈 벗기기
    종말론이 근대 성서학의 주류에 편입된 것은 바이스와 슈바이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종말론에 대한 선호는 불트만, 타이센, 그리고 한스 큉과 같은 독일 학자들에게서 뚜렷이 나타난다. 현대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종말론에 관한 뚜렷한 견해일치는 없다. 샌더스는 예수를 유대교적 갱신의 신학전통에 서 있는 종말론적 예언자라고 주장하는 반면, 맥은 예수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종말론의 적용도 철저히 거부한다. 크로산은 ‘묵시적 종말론’(apocalyptic eschatology)을 거부하고, 보그는 ‘임박한 종말론’(imminent eschatology)을 거부한다. 피오렌자와 호슬리의 경우에는 예수 전통의 사회정치적 읽기를 시도하면서 이 세상적이며 변혁적인 종말론을 옹호한다. 이렇듯 명확한 합의점은 없지만 최근 역사적 예수 연구는 예수와 하나님 나라를 비종말론적으로 보려는 강한 경향성을 띈다. 예를 들어 예수를 비종말적 사회 예언자로 보는 보그는, 예수의 중심적 메시지가 임박한 세상의 종말인 것처럼 잘못된 인상을 주는 것은 대부분 「마가복음」 탓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마가복음」이 ‘전시 복음서’(wartime gospel)임을 상기시킨다. 즉 주후 66~67년 로마에 항거해 일어난 유대전쟁의 와중에서 이 복음서가 쓰였기 때문에 그 안에 임박한 세상의 종말에 대한 기대가 강하게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보그의 주장은 예수가 종말론에 대해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주장의 요지는 예수가 하나님의 나라를 말할 때 여러 가지 뉘앙스 중의 하나로서 종말론적인 뉘앙스를 말했을 뿐이지, 그것이 하나님 나라 전체를 지배하는 중심적 뉘앙스가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제3탐구의 두 번째 특징은 예수와 하나님 나라를 종말론적으로 보는 렌즈를 벗기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제3탐구는 어떤 모습의 새로운 예수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가?

    (3) ‘지혜전통’으로 돌아가기
    어떻게 본다면 기독교 2천년의 역사는 역사적 예수와 가장 친근했던 한 전통을 잊어버린 망각의 역사일지도 모른다.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에 의하면 그것은 바로 ‘지혜전통’(wisdom tradition)이다. 기독교 교회사에서 놀랍도록 오랫동안 무시된 이 전통은 「잠언서」, 「솔로몬의 지혜서」, 그리고 「에녹의 비유서」 등에 담겨 있는 전통이다. 현재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한 뚜렷한 합의점은 예수를 ‘현인’(賢人, sage) 혹은 ‘지혜 스승’(wisdom teacher)으로 본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지혜란 ‘관습적인 지혜’(conventional wisdom)가 아니라 ‘전복적 지혜’(subversive wisdom)이다. 관습적인 지혜란 어떤 기성질서가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을 그 사회 구성원들에게 내재화(internalize)하고 사회화(socialize)한 것을 말한다. 이것은 보통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가족, 부, 명예, 그리고 종교행위 등과 연관되어 있다. 전복적인 지혜란 물론 이러한 관습적인 것들을 뒤집는 반사회적(counter-order)이며 파괴적인 담론을 말한다. 맥은 가장 오래된 예수 전통의 층은 지혜층이라고 단언한다.
      흥미롭게도 호슬리, 피오렌자, 크로산, 보그, 그리고 심지어 ‘예수 세미나’에 비판적인 위더링톤도 예수와 지혜전통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인정한다. 이것의 문헌적 증거는 학자들이 ‘예수 자료의 기반암석’이라고 부르는, 예수의 ‘경구’(aphorism)와 ‘비유’(parables)와 같은 전통적인 지혜양식의 문서이다. 트웰프트리(Graham H. Twelftree)가 밝힌 대로 예수의 귀신추방 기사는 복음서 자료의 가장 오래된 층에 속하는데, 유대교 전통에서 귀신추방은 특히 솔로몬 및 그의 지혜와 연계되어 이해되고 있었다. 위더링톤에 의하면 이러한 지혜전통은 공관복음서의 많은 자료들, 특히 예수의 비유적 가르침의 배경과 내용을 가장 잘 설명해 준다. 예수는 특히 ‘먹는 일’과 ‘마시는 일,’ 그리고 ‘잔치를 베푸는 일’을 강조하였는데, 위더링톤에 의하면 이것은 삶의 기쁨(Joie de Vivre)을 누리고, 살면서 먹는 것과 친구와 착한 일들을 즐기라고 권하는 지혜전통에서 볼 때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을 높이 평가하고, 금식보다 잔치로 인생을 즐기며, 율법적으로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잘 지키는 것에 가치를 두지 않는 예수의 언행도 지혜전통에서 볼 때 잘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위더링톤에 의하면 이외에도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예수와 관련된 기사들도 지혜전통으로 이해할 때 보다 잘 이해된다.
    지혜전통의 복원과 관련해 우리의 특별한 주목을 끄는 것은 피오렌자나 존슨(Elizabeth A. Johnson)과 같은 여성신학자들의 학문적 성과이다. 존슨에 의하면 지혜는 “이 세상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가장 인격적이고 강력한 표현”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혜는 󰡔성서󰡕 밖의 다양한 여신들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피오렌자는 기독교 역사의 최초의 기독론(Christology)이 지혜론(sophialogy)이었다고 확언한다. 즉, 예수 사후 20년 내에 다양하게 발달했던 여러 가지 유형의 그리스도론은 모두 유대교의 지혜신학을 그 공통의 모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의 사역과 처형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성찰하던 이 최초의 시기에 유대교의 지혜신학이 그것의 적절한 신학적 언어와 신화적인 준거틀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피오렌자는 기독교의 성육신과 삼위일체의 교리도 “현자와 지혜의 예언자로서의 예수”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주장한다. 존슨 역시 성육신과 성삼위일체라는 기독교의 핵심적 교리의 배후에는 예수를 하나님의 여성적 이미지인 지혜로 본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왜 그리고 어떻게 예수의 원(原) 전통인 지혜전통이 ‘정통’ 기독교 역사에서 지워졌을까? 존슨은 「요한복음」 이전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소피아와 연결시키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요한이 지혜(소피아)를 말씀(로고스)으로 대체한 것은 당시의 기독교 공동체가 가부장적 구조로 변모하고 있던 맥락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즉 소피아가 억압되는 과정은 곧 교회 안에 성차별주의(sexism)가 성장하는 과정과 정비례한다. 존슨에 의하면 이후의 기독론은 소피아 대신 ‘로고스’ 혹은 ‘아들’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게 되었고, 소피아는 예수의 어머니인 나사렛의 마리아에게 전가되었다.
    피오렌자는 현인이자 ‘지혜(소피아)의 예언자’로서의 예수는 우리의 삶 속에서 은혜로운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우리의 끊임없는 노력을 중재해 줄 뿐만 아니라, 종교적 다원주의와 정의의 문제를 함께 풀 수 있는 길을 찾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적지 않은 학자들이 지혜전통의 위험성에 경고를 보낸다. 쇼트로프(Luise Schottroff)는 특히 여성신학자들이 소피아 기독론에 매혹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유대교의 지혜전통은 이스라엘 남성 엘리트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으며, 따라서 여성신학에서 지혜전통에 특권을 주는 행위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의 진정한 핵심인 ‘가난한 자들의 복음’을 무색케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지혜전통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복음’ 정신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예언자적 전통이 여성신학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미의 해방신학자 세군도(Segundo) 역시 지혜전통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에 의하면 지혜문서는 명백히 비정치화되어 있으며, 개인주의화, 내재화되어 있다.
    그러나 피오렌자는 기존의 지혜전통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에 의해 변혁되었음을 지적한다. 특히 많은 경우 복음서에 담긴 지혜전통은 당시 여성들의 것이었다고 할 수 있는 ‘보통사람들의 지혜’(folk wisdom)가 반영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사실 필자는 왜 지혜전통이 예언자적 전통과 갈등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또 왜 그것이 ‘가난한 자들의 복음’과 거리가 있는 것인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쇼트로프의 주장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잘못된 전제가 깔려 있다. 첫째, 비록 예수를 예언자로 보아 온 것이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지속적이고 친밀한 견해이긴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예수의 행태는 예언자의 행태라고 보기에 어려움이 크다는 점이다. 위더링톤의 지적처럼, 우리가 ‘예수=예언자’라고 안이하게 항등식화 할 수 없는 이유는, 예수에게 가장 중요했던 귀신추방을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엘리야를 제외하고는 예언자들이 예수와 달리 제자나 후계자를 두지 않았고, 또한 예수의 말씀 가운데는 한 번도 전형적인 예언자의 말의 형태인 “주님의 말씀이니라”(Thus says the Lord)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보다 중요하게는, 만약 ‘삶이라고 하는 투쟁 한복판에서의 생명과 창조성과 안위’와 같은 지혜전통의 대표적인 가치들이(이것은 정확히 유대교와 기독교의 묵시주의적 전통과 대립하는 것인데) ‘가난한 자들의 복음’과 거리가 먼 것이라면, 도대체 무엇이 가난한 자들의 복음이라는 말인가? 살면서 먹는 것과,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과, 좋은 일들에서 기쁨을 얻는 것, 또한 금식보다는 잔치를 베풂으로써 삶을 즐기는 것과 같은 것들이 가난한 자들의 복음과 상관이 없는 것이라면 도대체 가난한 자들의 복음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제3세계의 신학자들, 특별히 여성신학자들은 삶 속에서 먹는 것과 좋은 친구를 사귐과 좋은 일들에서 기쁨을 얻는 것과 같은 ‘실용적’인 것들이 가난한 기층 여성들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강하게 대변하고 있다. 여러 제3세계 신학자들의 주장에서, 특히 여성신학자들의 주장에서 우리는 결코 지혜전통이 ‘가난한 사람들의 복음’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굶지 않고, 목마르지 않으며,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이웃을 두고, 그리고 가끔 좋은 일들이 일어나는... 험한 세상살이 속에서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웰빙’(well-being)에 대한 ‘소박한’ 기대가 어떤 이들의 눈에는 ‘궁극적 관심’이 되기에 하찮은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굶주리고, 목마르며, 버림받고, 살면서 좋은 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하찮아 보이는 것들’이 곧 ‘궁극적 관심사’이다. 지혜전통은 바로 이 ‘하찮아 보이는 것들’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과 은혜와 자비와 소망을 읽어내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만약 역사적 예수에 대한 제3의 탐구가 우리에게 주는 한 가지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까지의 묵시론적이고 종말론적인 거대 역사담론에서 눈을 돌려서, '일상적'이고, '여성적'이며, ‘하찮아 보이는 것들’ 속에서 생존과 생명과 평화를 위한,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변혁을 추구하는 영성일 것이다. 압제와 저항, 혁명과 반혁명으로 얼룩졌던 ‘휘발성의 시대’가 가고 이제 보다 근원적이고 장기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이 시기에 역사를 과거-현재-미래라는 단선적이고 직선적인 시간관념 위에서 조급히 몰아가는 묵시주의적이고 종말론적인 패러다임은 이제 (적어도 잠정적으로) 폐기되어야 한다. 필자는 종말론과 지혜사상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그의 주장대로, 비종말론적인 예수의 요지는 종말론이 하나님 나라 전체를 지배하는 유일한 뉘앙스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세상 지금 그대로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는 종말론적 믿음은, 기성질서의 내재화와 사회화를 추구하는 ‘관습적 지혜’를 뒤집는 ‘전복적 지혜’와 상충되지 않는다. 희망은 우리의 일상 안에 그것을 초월해 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제3의 탐구’는 우리에게 그동안 억제되어 왔던 토착적이며, 여성적이고, 그리고 원시적인 패러다임으로 돌아가 이 세계와 미래, 그리고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다시 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함께 먹고 치유하는 사랑의 ‘쑥대밭’

    그래서 박재순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밥상 공동체’로 표현한 것은 대단히 적절한 일이었다. 사실 박재순 만큼 그렇게 ‘노골적’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 얼마나 민중에게 중요한 ‘궁극적인 관심사’인가를 신학적으로 강조한 사람은 없다. “함께 먹고 마시는 일이야말로 민중에 대한 사랑과 연대의 가장 구체적인 행동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상징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구체적인 사랑과 연대의 사건이 벌어지는 곳이면 그 어디나 하나님의 나라라고 그는 말한다.
    사실 북미의 예수 학자 가운데 박재순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크로산이다. 그는 ‘치유’(healing)와 ‘먹기’(eating)라는 두 단어를 예수운동의 핵심어로 결합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가장 밑바닥 민중들 사이에서 영적인 치유와 물질적 음식을 나누는 나눔의 평등주의”(a shared egalitarianism of spiritual [healing] and material [eating] resources at the most grassroots level)이다. 그는 우리에게 ‘식탁의 법칙’(commensality)의 인류문화학적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사람은 굶주림의 고통을 제거하기 위한 생리적 이유만으로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류학자들은 한 사회 질서의 축소판으로 ‘식탁의 법칙’이 존재함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흑인들의 민권운동이 시작되던 1960년대를 연상해 보라. 흑인 청년 몇 사람이 의도적으로 한 식당의 흑인금지 구역에 앉아 샌드위치와 콜라를 주문하였다가 봉변을 당하였다. 소위 현대화되고, 계몽되었으며, 민주적이라는 미국사회에서도 누가 어디서 누구와 먹는지에 관한 법칙이 존재하였던 것이다. 흑인들은 결코 백인들과 섞여서 식사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인종적으로 분리된 점심식탁’은 다름 아닌 당시 미국 사회 전체의 축소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크로산은 바로 그와 정반대의 ‘열린 식탁’(open table) 운동이 바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었다고 말한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단지 상징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굶주린 사람들이 함께 먹을 것을 나누는 사회저변의 열린 식탁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크로산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존의 패러다임, 즉 ‘현재 대 미래’라는 전통적 시간구분에 ‘지배계급(구체적으로는 가신그룹과 학자층) vs. 피지배계급(구체적으로는 농민과 일반민중)’이라고 하는 계급구분을 투사하여 예수 시대 네 가지 유형의 하나님 나라를 도출한다. 제1유형은 ‘미래적’(따라서 묵시주의적)이며 '지배계급'의 것인데 다윗 왕국 혹은 메시아왕국의 임박한 도래를 노래한 「솔로몬의 시편」(Psalms of Solomon) 등이 그 예다. 제2유형은 같은 ‘미래적/묵시적’이면서도 농민과 같은 ‘피지배계급’의 것인데, 모세와 여호수아를 내세운 세례요한과 같은 예언자 그룹이 그 예이다. 제3의 유형은 ‘현재적’(따라서 지혜적)이며 ‘지배계급’의 것인데 이 때 하나님 나라는 현자와 의로운 자와 덕망이 높은 현인들이 지금 들어갈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제4유형은 ‘현재적/지혜적’이면서 ‘피지배계급’인 갈릴래아 농민의 것인데 이것이 바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이 네 번째의 것이 바로 “가장 밑바닥의 민중들 사이에서 영적 치유와 물질적 음식을 나누는 나눔의 평등주의”라고 크로산은 결론짓는다.
    어거스틴 이래 중세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나라’(basileia)를 영토, 구조, 제도, 혹은 기구와 같은 어떤 지정학적 실재로 이해했다. 그러나 달만(Gustav. Dalmann)이 그리스어 ‘바실레이아’의 히브리어에 해당하는 ‘말쿠스’(malkuth)가 야훼와 결합하여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왕권적 통치’(God's kingly rule)를 의미한다고 밝힌 이래,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바실레이아’를 더 이상 영토적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또한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맥이 ‘바실레이아’가 예수 시대에 유대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 헬레니즘 문명권 속에 널리 퍼진 ‘정치권력에 관한 하나의 담론’임을 밝힌 이래, ‘바실레이아’를 완전히 종교적이면서 동시에 완전히 정치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신약성서󰡕의 복음서 안에는 ‘미래적인 하나님 나라’와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가 동시에 나타난다. 미래적인 나라는 우리가 ‘(들어) 가는’(「마가」 9,47) 나라다. 현재적인 나라는 지금 이곳에 임하는(「마태」 12,28), 그리고 예수에 의해 ‘이미’ 이 땅에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이다. 이 나라는 하나의 과정, 상태, 성장을 의미하는 역동적인 나라이다. 이 두 가지 나라 중 예수는 특히 이 땅에 임하는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였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느냐고 묻자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 가운데 있다”(「누가」 17,21)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예수는 비유로만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였다. 그는 철학적인 개념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강론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보아라, 여기 있다’ 또는 ‘저기 있다’ 하고 말할 수 없는, 즉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했다(「누가」 17,20). 이 세상에 감추인 것, 신비한 것, 그래서 인간의 말로 직접 지칭할 수 없는 것이기에 예수는 늘 “하나님의 나라는 ...와 같으니”와 같은 비유로만 설명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많은 비유 가운데 필자는 「마가복음」 4장 30~32절/「마태복음」 13장 31~32절/「누가복음」 13장 18~19절/「도마복음」 20장 1~4절에 나오는 이른바 ‘겨자풀의 비유’가 오늘날 역사적 예수 연구의 성과에서 볼 때 가장 역사적 예수에게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비유라고 생각한다. 「마가복음」의 본문은 이렇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길까? 또는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겨자씨와 같으니, 그것은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에 있는 어떤 씨보다도 더 작다. 그러나 심고 나면 자라서, 어떤 풀보다 더 큰 가지들을 뻗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 수 있게 된다.

    이 비유를 읽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면 2천 년 전 예수의 청중이 느꼈을 강한 충격을 포착한 것이리라. ‘하나님 나라’는 예수가 새로 시작한 이야기가 아니다. 유대인들의 오랜 기다림이었고, 그 기대는 「에스겔서」 17장 22~23절, 31장 1~6절과 「다니엘서」 4장 7~9, 19절에 나오는 전통적 이미지로 축약되어 있었다. 「에스겔서」 17장 22~23절의 본문은 다음과 같다.

    주 야훼가 말한다. 내가 백향목 끝에 돋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겠다. 내가 그 나무의 맨 꼭대기에 돋은 어린 가지들 가운데서 연한 가지를 하나 꺾어다가, 내가 직접 높이 우뚝 솟은 산 위에 심겠다... 거기에서 가지가 뻗어 나오고, 열매를 맺으며,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온갖 새들이 그 나무에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들이 그 가지 끝에서 보금자리를 만들 것이다.

    󰡔히브리성서/구약성서󰡕에서 하나님 나라의 상징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세 있는 백향목 혹은 송백(cedar)이다. 이름 그대로 향기 나는 이 나무는 성전이나 궁전을 짓는 데만 사용하던 최고급 나무였으며 권세와 호화로움을 상징한다. 예수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망하던(그리고 지금도 대망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는 바로 이런 나라였다. 구체적으로 다윗 왕조의 영화가 회복되는, 이스라엘 민족의 강성한 제국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 제국은 백향목과 같은 사람들, 즉 선택된 종교적 선민들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였고,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나라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예수는 ‘잡초’ 같은 겨자풀에 고귀한 하나님 나라를 비유하고 있다. 많고 많은 식물 가운데 왜 하필이면 겨자풀인가? 겨자는 다년생 나무도 아니고 일년생 풀에 불과하다. 백향목처럼 자라 새들이 가지에 둥지를 틀 수도 없는, 그래서 「마가복음」의 표현대로 오직 “그 그늘에 깃들 수 있”는 풀에 불과하다. 더구나 겨자풀은 땅 위에 급속히 번지면서 토양을 망가뜨려서 이스라엘 농민들이 기피하던 식물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3미터까지 성장하는 이 풀은 너무도 강인하고 억센 생명력으로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지면서 다른 식물의 성장을 방해했다. 그러니까 이 겨자풀이 번지면 그 일대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는 이렇듯 당시 유대인들의 관습적인 사고와 지혜에 일대 ‘전복적인’ 충격이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과거 다윗 왕조와 같이 군사적 힘과 상업적 발전에 의해 지탱되는 정치적 메시아 왕국이 아니었다. 이 땅에 사는 무지랭이 잡초와 같은 인생들에게 주어진 현재의 나라였다. 그리고 그 잡초와 같은 인생들은 다름 아닌, 유대법에 의해 ‘죄인’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었다.
    예수는 이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나라를 직접 몸으로 살았다. 당시 사회에서 버림받은 소위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신 것이다. 이것은 당시 유대사회의 질서에 대한 커다란 모독이자 노골적 반란행위였다. 1세기 팔레스타인 땅에서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곧 그를 인정하며 그와 함께 삶, 즉 생명을 나눈다는 의미였다. 때문에 이는 당시 유대종교의 법과 질서에 대한 전면적 도전행위였다. 당시 유대사회는 철저한 이분법적 사회였다. ‘깨끗한 자 대 부정한 자,’ ‘거룩한 자 대. 속된 자,’ ‘의인 대 악인’의 구별에 근거한 사회였다. 물론 이러한 이분법은 바빌론 포로기 이후 풍전등화와 같은 민족의 위기 속에서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벌인 민족의 ‘순수성’을 지킴으로써 민족의 ‘정체성’을 보존해 나가려는 민족갱신운동의 산물이었다. 말하자면 ‘딱딱한 율법주의의 껍질’로 연약한 속살과도 같은 민족의 생명을 이어나가려는 운동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이분법적 정결법이 수많은 ‘죄인들’을 조직적으로 양산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죄인들’은 오늘날 우리가 보통 말하는 죄인과 다르다. 당시의 ‘죄인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다 지킬 수 없던 사람들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안식일 법이었다. 곡간에 먹을 것을 쌓아둔 사람이야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일하지 않고도 거룩하게 지킬 수 있다. 하지만 가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굶주린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도 안식일을 어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이 바로 겨자풀과 같은 인생, 즉 잡초와 같은 인생들이었다. 구체적으로 당시에 ‘죄인들’이라 불렸던 가난한 자, 눈먼 자, 절름발이, 앉은뱅이, 문둥이, 창녀, 세리, 귀신들린 사람들이었다. 예수는 온갖 사회적・종교적 비난을 무릅쓰고 이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 그들과 열린 식탁 친교를 가진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적대자들은 예수를 ‘먹보’요 ‘술꾼’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예수의 답변은 명쾌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가」 2,17) 여기서 ‘죄인’은 정확히 ‘소위 너희들이 말하는 죄인’이다. 예수는 인간이 세운 관습법의 기준에 의해 죄인으로 내몰린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자비는 똑같이 임한다고 선포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였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죄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프냐? 네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더 아파라!’ 그러나 예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프냐? 네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 아프지 마라!’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속에 ‘겨자풀’처럼 번지는 것이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탐욕과 배척과 이권으로 가득 찬 이 세상 속으로 사정없이 밀고 들어가 나눔과 섬김과 치유와 사랑의 새 질서로 이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다. 그 나라를 선포하고 그 나라를 살다가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혔다. 하지만 예수를 잡아 죽인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경건한 신앙인들이었다. 하지만 ‘닫힌’ 경건주의자들이었다. 예수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 8,32)고 하였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진리를 위해 남을 죽일 수도 있는 무자비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예수는 부활했다. 세상이 그를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하나님의 나라는 일단 시작되면 세상이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나가는 말: ‘예수 믿기, 예수 살기’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의 삶은 예수의 삶을 닮지 않았다. 교회는 종종 ‘예수를 닮지 않은 그리스도’를 예배한다. 신학강단에서 가르쳐지는 기독론은 종종 예수를 따르지 않기 위한 교묘한 신학적 알리바이로 둔갑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라는 자신의 중심적 메시지로부터 ‘이혼’당한 슬픈 예수를 본다. 물론 하나님 나라가 떨어져 나간 예수의 빈자리는 언제나 정치적 권력, 문화적 우월감, 종교적 완고함, 기존질서에의 순응, 그리고 도피적 구원관이 메운다. 이제 다시금 우리는 이 땅에 오신 예수가 믿고 살았던 것을 믿을 때가 되었다.
    중국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I hear and I forget; I see and I remember; I do and I understand.”(나는 듣고 잊어버립니다. 보면 기억할 겁니다. 그런데 실천해보니 비로소 이해가 됩니다.) 나는 여기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약 3:17)이라는, 신앙에 있어서 실천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행함을 강조하는 말 속에는 여전히 믿음(‘예수 믿기’)과 실천(‘예수 살기’)이 마치 각각의 것인 것처럼 전제되어 있다. 나는 여기서 ‘예수 살기’(실천)가 ‘예수 믿기’(믿음)의 인식론적 근거(epistemological basis)가 된다는 것을, 즉 ‘예수 살기’ 없이는 ‘예수 믿기’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예수처럼 살아야 예수를 알고 믿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 2,20)고 했다. 󰡔영어성경(Newly Revised Standard Version)󰡕을 보면 이 구절의 후반부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by faith of the Son of God) 사는 것이라 번역되어 있다. 󰡔한글성경󰡕은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이 목적어로, 즉 믿음의 ‘대상’으로 나의 밖에 있다. 하지만 󰡔영어성경󰡕에서는 나와 그리스도가 이미 하나가 되어 있다. 왜냐하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의 경지에 이르면 ‘예수 믿기’와 ‘예수 살기’는 별개가 아니다. ‘내 안에 예수가 있기’ 때문이다. 내 속사람이 이미 그리스도로 대체(replace)되었기에 이제 그의 믿음이 나의 믿음이 되어 내가 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그가 가졌던 믿음이 나의 믿음이 되어 내가 살기 때문이다.
    ‘예수에 대한 믿음’(faith in Jesus)은 ‘예수의 믿음’(faith of Jesus)으로 이어지고 성숙되고 발전되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 믿기’를 통해 ‘예수 살기’로 나아갈 수도 있고, ‘예수 살기’를 통해 ‘예수 믿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예수처럼 살지 못하면 예수는 이름뿐인 나의 주(Lord)이거나 자신의 이권을 합리화하는 제의적 상징일 뿐이다. 하지만 예수를 나의 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헌신(devotion)이 나오지 못한다. ‘예수 믿기’와 ‘예수 살기,’ 그 둘은 원래 하나이며 변증법적 관계 안에 있다. ‘신앙의 그리스도’(예수 믿기)와 ‘역사의 예수’(예수 살기)가 택일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미국 남북전쟁 때 ‘프레드릭스버그 대전투’라는 유명한 싸움이 있었다. 육탄전까지 치르고 수많은 부상자들을 중간에 남겨 놓은 채 쌍방은 후퇴하여 대치하고 있었다. 이 때 북군 병사 하나가 물통을 들고 달려 나갔다. 남군에서 사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병사가 목숨을 걸고 남군, 북군 가리지 않고 부상자들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광경을 보고 사격은 중단되었다. 이를 계기로 쌍방은 한 시간 동안 휴전을 하기로 하고 서로 부상자 처리를 하게 되었다. 이 때 한 남군 장교가 이 북군 병사에게 물었다. “What is your name?” 그러나 그가 대답했다. “My name is Christian!” 그에게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은 싸고 편리한 이름이 아니었다. 목숨을 건 이름이었다. 전 존재를 건 이름이었다. 그 병사에게는 ‘예수 믿기’와 ‘예수 살기’가 별개가 아니었다.
    교회란 이러한 ‘크리스천 정신’(Christian spirit)에 기초한 신앙인을 훈련해내어 탐욕과 배척과 이권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나눔과 섬김과 치유와 사랑의 ‘쑥대밭’으로 만드는, 그래서 이 나라와 세계와 역사의 새 미래를 열어 가는, 신나고 영광스런 소명의 자리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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