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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9회] 김진호_동요하는 내셔널리티,황폐화되는 5.18의 기억 [카테고리]
  • 제3시대
    조회 수: 4505, 2008.05.27 11:05:21
  • "동요하는 내셔널리티, 황폐화되는 5.18의 기억
                    -민주화와 선진화 담론의 기억과 망각의 정치에 대하여"


                                                                              김진호_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목사
                  


    1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한국을 거쳐 가는 과정에서 일부 중국 유학생들의 폭력적 공격이 있었다. 그리고 종종 그렇듯이 이튿날부터 한국 네티즌들의 사이버공격이 이어졌다. 올림픽 개최로 중국이 국제적 공공성 영역과의 접촉면이 확대되면서 티벳이라는 약한 고리를 둘러싼 국제전(國制戰)이 벌어지고 수세에 몰린 중국의 민족주의가 미국, 유럽 및 세계 각처에서 분출했는데, 그러한 민족주의의 공격성이 비교적 큰 파열음을 낸 곳이 바로 한국이었던 것이다. 티벳에서의 만행에 대한 인권적 감수성이 더 강했던 것도, 반중(反中) 기조의 국제외교가 활발해질 만한 정치적 이벤트가 열렸던 것도 아니다. 이유가 있다면 중국 유학생의 숫자가 많다는 정도. 요컨대 그들이 이렇게 명분 없는 집단행동을 할 만한 이유가 단지 ‘숫자’였다면, 성찰하기보다는 너무 쉽게 흥분하는 집단심리가 이유였다면, 중국의 분출하는 민족주의와 거기에 즉자적인 공격으로 반응하는 한국의 민족주의는 매우 위험스러워 보인다.
    그 누구의 의도도 아니고 사건의 연계성도 없지만, 예상 못한 시간에 중국의 민족주의가 한국을 건드렸고, 한국의 민족주의는 곧바로 못지않은 공격성을 표출했다. 물론 이 사건은 미미한 갈등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때로 대책 없이 공격적이고 차분한 성찰보다는 감정적인 경쟁심과 좀 더 어울리는 생각의 장치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가, 조금 더 지평을 확장해서 보면, 최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삼국의 민족사 구성 문제를 둘러싼 민족국가간 충돌의 배후로 작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구화가 빠르게 확산되는 1990년대 이후 ‘언어집단’의 민족적 주체화가 가속화되어 향후 50년 내에 천 개의 독립국가가 등장할 것이라는 미래학자 네이스비트(J. Naisbitt)의 다소 과장된 주장에서 시사되고 있듯이, 전 세계적인 갈등의 배후로 이념이나 경제 문제보다 민족주의가 더욱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그것은 ‘민족’이라는 집합적 정체성이 특히 지구화 시대로 오면 일종의 갈등의 주요 표출구 같은 성격이 현저히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구화’는 근대적 국경의 견고한 장벽을 제약 없이 넘나드는 다양한 요소들로 인해 전 지구적인 상호 연결망이 확대되는 방향으로의 구조변동을 표상하는 개념인데, 이러한 변화의 파고는 영토성(territorization)이 관계 구성의 핵심인 근대적 민족국가의 특권적 지위를 크게 훼손시켰다. 국경 내부에 대한 배타적인 독점적 통제력이, 국경을 자유자재로 횡단하는 요소들로 인해 크게 교란된 것이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근대적 민족국가의 사회통합의 장치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민족주의는 지구화로 인한 ‘국가의 위기’가 구조화 될수록 오히려 더욱 맹렬히 불타오르고 있다. 마뉴엘 카스텔(Manual Castells)은 정보 네트워크의 지구화(globalization of imformation-network)로 인한 존재론적 불안을 방어하기 위해 문화공동체(cultural commune)에 대한 귀속 욕구가 강화되는 현상으로 지구화 시대 민족주의의 활성화를 설명한다.
    이렇게 지구화되면서 국지화되는 요소는 지구화 시대 국가의 체제적 속성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카스텔은 이러한 양상을 정보 네트워크가 ‘수평적’으로 확대되는 현상과 관련시켜 해석하고 있지만, 피터 드러커(P. Druker) 등의 미국의 미래학자들 중심의 이른바 기술현실주의(techno-realism)는 탈자본주의 시대 정치체제의 추동세력이 소수의 전문가집단인 ‘지식경영자’(knowledge officer)임을 주장한다. 비록 드러커 등은 기술유토피아(techno-utopia)적인 낙관주의적 시각에서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고 있지만, 지구화 이후 한국의 기업광고 속에서 민족주의 담론의 특성을 조사한 노승미에 의하면, 이 광고들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 민족을 전투적 경제공동체의 단위로 동원하며, 이에 걸맞는 배타성과 공격성의 경제주의적 요소를 정서와 기억 속에 민족주의 형태로 주입하는 담론 형식을 띤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광고 담론의 한 가운데는 지구화 시대의 민족주의적인 경제적 동원체제의 중심에 바로 지식경영자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필경 이러한 광고 속의 메시지가 이번 ‘성화봉송 폭력사태’에 대한 한국 네티즌의 신속한 배타적 공격성의 심리적 알리바이가 되었을 것이다. 광고를 통한 담론의 공공성이 무성찰적 공격성을 야기시키는 토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경영자들의 체제는 기술유토피아적인 평화롭고 발전적 세계보다는 호전적이고 위험스럽기까지 하는 불길함 속으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이러한 위험스러운 민족주의가 지구화 시대를 맞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격렬하게 부활하고 있다. 하여 국가간 경쟁과 배타주의가 격화되고 있고, 국경 내의 외부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 심화되며, 중국과 티벳의 예어서 보이듯이 국가와 소수민족 간의 물러설 수 없는 갈등을 강화시켰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MB 시대의 민족주의의 행보, 그 가능성에 주목한다. MB 체제를 낳은 시민사회적 욕구와 ‘실용’ 혹은 ‘선진화’라는 슬로건으로 표상되는 신정부 간의 상호 얽힘을 민족주의의 행보 가능성과 관련하여 살피고자 하는데, 특히 ‘5.18의 기억’이 어떻게 정치화될지에 관한 문제의식과 연계시켜 하나의 ‘불온한’ 상상력을 펼치고자 한다.


    2
    피터 드러커, 다니엘 벨(Deniel Bell) 등의 ‘지식기반사회’(knowledge-based society)론은 지식기반경제를 위한 동원체제로 사회 각 영역이 제도화되어야 한다는 이론적 주장으로, 한국에서는 ‘국민의 정부’ 이후 불규칙하지만 크게 보면 일관성 있게 지식기반사회적 제도화가 추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에서 지식기반사회의 제도화 문제는 체제의 성격과 관련해서 내적 모순의 요소를 지닌다. 그것은 이들 민주화 시대의 정부들이, 발전주의 우선으로 전 사회적 동원체제를 구축했던 군부독재 시대의 근대화 양식(군사주의적 근대화)에서 발전과 배분의 동시적 추구를 지향하는 근대화(민주적/시민적 근대화)로의 변화를 갈망하게 된 사회적 욕망 속에 탄생한 정부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 시대 정치체제는 ‘군사주의적 근대화’를 청산하고 ‘시민적 근대화’를 구현하려는 시대정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자원의 독점에서 배분으로의 제도화가 그러한 시대정신의 지저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배분 욕망은 ‘평등’이라는 이상화된 개념을 통해 표현됨으로 보편적 함의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체험된 평등’이 아니었다. 열망해 마지않던 ‘상상 속의 평등’(imagined equality)이 갑자기 제도화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누구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보편성을 구현하는 역사의 시험대를 통과해야 하는 어려운 관문을 지나야 했다. 성찰의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실행되는 평등의 제도화는 다분히 도구적인 방식으로 구체화될 우려가 농후하다. 그리고 그 우려는 상당부분 실현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적 제도화의 시대가 산업구성에서 내구소비재의 비중이 급속도로 커지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점은 평등의 도구주의적 제도화의 문제를 고려할 때 중요한 변수다. 시민의 인정 욕망은 일상으로 침투한 자본의 호명 앞에 급격하게 ‘시장적’으로 채색되어 갔고(‘시민의 시장화’), 이 시장화된 시민은, 송호근의 표현대로 ‘교양 없는 중산층’을 이루어, 한국 민주화 시대 평등 담론의 성찰 가능성을 잠식했다. 그는, 서구의 특징인 ‘자유와 코드화된 평등’(equality codified with liberty)이 아니라, 권위주의 시대의 인정 투쟁의 산물인 ‘권리와 코드화된 평등’(equality codified with right)이 한국의 지배적인 평등 담론을 구성했다고 보는데, 이를 브루스 애커만(Bruce A. Ackerman) 식으로 말하면, (자유주의적이든 사회주의적이든) 지배체제에 대항하고 권력을 대체함으로써(정복함으로써) 구성되는 평등 담론인 ‘지배적 평등’(dominated equality)과 부합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타자에 대한 우월감에 기초하지 않고 대화적인, 그리하여 선험적으로 결정되기보다는 과정적으로 구성되는 ‘비지배적 평등’(undominated equality)과는 대비되는, 비성찰적인 평등주의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권위-평등’이 민주화 시대의 지배적 가치를 향유하는 세력인 ‘교양 없는 중산층’에 의해 전유됨으로써 성찰의 가능성은 더욱 잠식되고, 자기 집단의 지대추구적 행위(rent-seeking behavior)의 도구로 전용되는 왜곡 현상이 일상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는, 앞서 말한 것처럼, 지구화의 물결이 거칠게 몰아쳐오던 시기였고, 지난 권위주의 시대 고도성장을 이룩한 근력기반사회(brawn-based society)를 지식기반사회로 재구조화하는 급속한 이행의 시기이기도 했다. 여기서 근력기반사회는 생산성이 향상되면 생산요소를 증가시킬 필요가 발생하고 이는 다시 더 높은 생산성으로 이어지는, 하여 생산성의 향상이 더 많은 고용 창출을 낳는 경제적 체제 양식을 말한다. 그러나 지식기반사회는 생산성이 향상되어도 고용이 추가로 발생하지 않는, 심지어 더 적게 발생하기도 하는 생산 메커니즘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승자 독식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배제 가능성(실질적 배제와 잠재적 배제)의 범위가 더욱 광범위해지는 현상을 낳는다. 그런 점에서 지식기반사회는 자원배분의 위기를 일상화하는 것이다.
    하여, 앞서 말했듯이, 탈권위주의 시대의 정부들은 자원배분에 대한 사회적 욕망을 제도화하는 민주적 정부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자원독점을 더욱 강화하는 지식기반사회적 제도화를 모색했다. 문제는 이 두 요소, 배분 지향성과 독점 지향성이 잘 조정되기보다는 불안정하게, 모순적으로 접합되곤 했다는 데 있다. 그것은 급박하게 진행되는 외적 현실, 특히 지구화의 위협 속에 이행과 조정을 여유 있게 진행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한 각각의 사회적 행위자들, 지배를 위한 자원을 충분히 갖지 못한, 그리하여 개혁을 필요로 하는 집권세력이나, 충분한 자원을 갖추었음에도 도전세력의 위치로 추락해 있던 구지배세력, 그리고 그밖의 다양한 민주 지향적 세력들과 반민주 지향적 세력들이 대화적이기보다는 정복주의적인 자세로 상호간에 무한경쟁에 돌입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러한 잘 준비되고 조정되지 못한 제도화는 광범위한 ‘배제’를 발생시켰다. 중산층의 몰락/하층민화가 심화되었고, 하층민의 자기 파괴현상 또한 심화되었다. 매우 높은 수준의 몰락 가능성은 중산층과 하층민 사이의 ‘하향의 회색지대’(going-down gray zone)를 광범위하게 형성했고, 이는 지난 시대 상승 가능성에 충일된 ‘상향의 회색지대’(going-up gray zone)의 사회와는 다른 의미의 사회심리를 낳았다. 한국의 뉴라이트 진영의 이데올로그인 박세일이 말하는 ‘항아리형 경제’라는 표현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 ‘하향의 회색지대’의 사회심리는 무능력화에 대한 ‘사회적 공포’와 연결된 규율체제를 야기시킨 것이다. 이러한 규율체제는 일터와 쉼터, 일과 여가 사이의 구분 자체를 해체하고 끊임없는 자기 개발을 추구하게 하는, 노동중독증 걸린 탈근대자본주의적 노동주체의 사회이며, 경제적 실패자의 심리적 상실감 내지는 배제감을 더욱 가중시키는 효과를 낳아, 결국 하층으로 추락한 이들의 무능력화를 심화시키는 ‘사회적 배제의 체제’이다.
    이상과 같이 지식기반사회로 급속하게 이행하면서 ‘하향의 회색지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그 속에서 생존게임에 돌입한 ‘시장화된 시민’은, 프레드릭 제임슨이 문제제기한 것처럼, 일상 깊숙이 침투한 자본의 영역이 확장되는 만큼, 도구주의적 관계 영역을 확대하면서 주체화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공공성(publicness)은 치명적으로 해체되어 간다. 민중신학자 안병무가 ‘공(公)의 사유화’에서 인간 존재의 원죄성을 읽어낸 것, 즉 죄성(罪性)의 존재론적 근원을 상상한 것처럼, 공공성의 붕괴는 존재론적 위기의식을 낳았던 것이다. 이러한 전망이 보이지 않는 공공성의 위기는 다양한 사회적 행위들을 규제하는 규범영역의 무력화를 수반하기 때문에, 도구주의적인 지대추구행위는 제약받지 않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바로 민주화 시대의 한국사회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고 있다는 진단은 다소 과장되지만 뜬금없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고 넓게 자리잡고 있는 사회적 인식의 지점에서 ‘민족주의’는 공공성의 회복을 위해 다시 소환된다. 하지만 그것은 민주화 시대의 정화의식을 거친 민족주의여야 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민족주의는 그 시대의 공공성과 분리할 수 없이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대는 ‘탈빈곤에의 의지’가 지배하던 시대였고, 그것을 위해 사회의 모든 자원이 총동원되던 시대였다. ‘국가’는 이러한 총동원체제의 축이었고, 가족, 그리고 개체(개인)는 국가 중심의 연대(soliderity)의 견고한 하위요소였다. 그런 점에서 이 시기 가족과 개체는 국가에 전유된 하위주체였다고 규정할 수 있다. 요컨대 이 시대의 공공성은 이러한 ‘권위주의적 연대’가 공유하는 이상화된 가치와 결부된 것이고, 이 시기 민족주의는 이러한 연대를 공고히 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 시대에 민족주의 담론에는 ‘닫힌 민족주의 대 열린 민족주의’ ‘나쁜 민족주의’ 대 ‘좋은 민족주의’ 등의 이항대립적 수사어가 활용된다. 송호근 식의 어법으로 표현하면, 민주화 시대에 이 용어들이 보다 명료한 함의를 얻게 되는데, ‘닫힌 민족주의’가 ‘국수주의와 코드화된 민족주의’라면, ‘열린 민족주의’는 ‘세계적 보편성과 코드화된 민족주의’이고, ‘나쁜 민족주의’가 ‘권위주의와 코드화된 민족주의’라면 ‘좋은 민족주의’는 ‘민주화와 코드화된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항대립의 인식틀은 지난 시대의 청산의 요소가 무엇인지를 보다 명료하게 드러내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다. 한데 문제는 ‘열린’ ‘좋은’ 등의 새롭게 전유하고자 하는 긍정적 민족주의의 함의를 담은 수사어는 성찰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그것은 임지현이 지적한 대로, 역사적 실체로서 민족주의를 읽어내기보다는, 이상화된 신화적 개념으로서 민족주의가 호출된 탓이다. 과거의 신화를 해체하는 데는 역사적 탈신화화의 예각화된 물음이 적절히 활용되었지만, 현재적 의제와 부합하도록 재신화화하는 과정에서는 비판적 인식이 멈춰버린 것이다.
    강상중은 지구화가 야기한 지정학적 교란 상황을 민족주의를 통해 재영역화하여 공공성의 회복을 도모하려는 사회적 욕구 속에 스며 있는 배타주의의 불온함을 전후 일본의 사회역사적 체험과 그것의 보수주의적 담론화 과정에서 읽어낸다. 한국에서는 비슷한 상황이 (보수주의 담론이 아니라) 민주적 개혁담론과 결합되어 나타났다. 앞서 말한 것처럼, 민주화 시대 곳곳에서 분출했던 소수자 집단의 인정투쟁들, 그 ‘정체성의 정치’들은 ‘민주주의와 코드화된 좋은 민족주의’ 담론이 은연중 은폐 혹은 배제를 작동시키고 있었음을 삶의 영역 곳곳에서 폭로하였다. 지식기반사회적의 배제의 장치들이 민주적 민족주의 담론과 동거하는 기묘한 담론 연계의 상황에서, 민주화 정부들의 ‘시민’ 개념 속엔 민중은 추상적 맥락에서만 포섭되어 있을 뿐, 실제의 제도화 과정에서는 지속적으로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에 등장한 민족주의 담론 형식의 독특성은 소비자본주의적인 미디어 상황의 변화와 관련된다. 흔히 ‘카니발적 내셔널리즘’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유형의 민족주의는, 국가기구가 아니라 시장이 담론 구성의 중심 역할을 하며, 대중은 적개심보다는 쾌락을 통해서 민족주의를 소비하는 담론 형식을 가리킨다. 이때 민족주의와 더불어 유희하는 대중은 보다 지속적인 연대의 일원이라기보다는 보다 순간적인 연대를 이루며 담론을 소비한다. 마치 시청 앞에서 월드컵 축구를 관람하는 대중의 붉은색 물결과 같은 민족주의의 소통 양식 같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지할 것은 카니발적 내셔널리즘은 시장의 욕구를, 그 가능성의 영역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그 가능성 가운데서 소비하는 개체가 자기 자신과 접속되는 지점을 찾아 거기에서 쾌락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자본-국가-개체 간의 연대가 형성된다. 하지만 말했듯이 이 연대는 일시적이다. 하여 시장과 국가는 끊임없이 그러한 카니발적 연대를 위해 스펙터클한 이벤트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우리가 주지할 것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서 배제된 대상을 대중은 망각하기 쉽다는 점이다. 국가 권력이 우리의 시선에서 물리적으로 제거하여 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제거의 정치), 늘 주위에 있음에도, 제거라는 야만적 기재를 활용하지 않아도 시선에 포착되지 못하게 하는, 이른바 ‘부드러운 야만’으로서의 ‘망각의 정치’가 작동한다.
    이러한 망각 속에서, 주위에 있으면서도 망각된 존재,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교환할 수 없는 고통의 담지자들은 종종 자기 존재 파괴의 상황으로 추락한다. 북미 연구자들에 의해 규정된 ‘하위계급’(underclass)은, 더 폭력적이고 더 범죄적이며 마약이나 술 등에 더 의존적인, 한마디로 희망 없는 자아 유실 상황의 존재로 끝없이 추락하는 주체 파괴적 존재에 관한 설명을 함축한다.
    이렇게 공공성이 붕괴된 민주화의 시대에 호출된 민족주의는 과거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청산작업을 거쳐야 했지만, 오늘 우리 시대 자체를 성찰하는 요소를 결여하고 있다. 특히 위에서 보았듯이 배제와 차별의 현장을 망각하게 하는 기재가 작동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재형성된 민족주의 담론은, 현재를 지양하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요소일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부정적인 작동 가능성을 우려스럽게 한다.
    정리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 시대는 ‘평등의 제도화’라는 차원에서 빈약했고, 반면 그 담론의 대중적 소비는 풍부했던 시대였다. 하여 지배를 위한 자원이 풍부하지 못한 만큼 퍼퓰리즘의 성격이 강했던 민주적 정부들은 지구화 시대 성장전략으로 지식기반사회적 제도화를 추구하면서 배제든 평등이든 보다 일관성 있는 정책의 방향을 주도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이 시기의 민주적 제도화 과정은 정치경제적인 안정도 존재론적인 안정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이러한 ‘불안’에 대한 대중의 공포가 지속되면서 2007년 대선을 결정적 계기로 하여 민주주의에 대한 바람이 철회되었다. 이것이 사회구조적인 변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이른바 ‘실용정부’의 탄생은 ‘민주주의에 대한 바람의 철회’라는 대중의 국면적인 선택이 민주화 정부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제도화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여기서 민주화 시대 정부들로부터의 ‘전환’은 어떻게 구체화될 것인가라는 물음이 도출된다. ‘실용’이니 ‘선진화’니 하는 전환을 상징하는 기표들은 아직 내용이 모호하다. 다만 지난 대선 때에 바람을 일으킨 ‘경제대통령 신화’는 모호하나마, 현 정부 그리고 민주화에 대한 국면적 철회를 선택한 대중 사이의, 아마도 유일한 연결고리일 것이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사납게 몰아치는 지구화로 인한 누적된 피로를 민주적 제도화 과정이 해소시켜주거나 그럴 비전을 주지 못했던 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는 것이다. 즉 현 정부의 등장은 ‘부정’의 정서이지 대안에 대한 ‘긍정’에 의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정권이 등장하자마자 보여준 우왕좌왕하는 정책적 동요는, 송호근의 민주화 정부들에 대한 평가처럼, 아직은 현 정부 역시 ‘진보(민주화)의 실패를 뒤집는 요인들의 모자이크로서의 보수’임을 보여준다.  
    아무튼 정권 초기에 보여준 MB적 리더십은 대기업 CEO형 리더십으로 비추어졌는데, 문제는 이것이 지식기반사회적인 ‘지식경영자’ 상과는 다른, 제도적 차원에서는 여전히 건재하지만 대중의 감성 차원에서는 이미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퇴색한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이었다는 것이다. 최근 지지율의 급락은 그러한 엇나간 리더십, 반민주적이고 참여 배제적인 독재자 스타일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형 근력기반사회의 전형적 CEO 풍의 MB식 행보가 문제로 표출되고 있기는 하지만, 일종의 시대착오적인 시행착오가 점차 교정된다고 가정하면, ‘실용과 선진화’라는 슬로건이 MB 정부의 아직 부재한 대안을 구체화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일 것이다. 이 점에서 MB 정부의 이데올로그로서, 뉴라이트 입장에서 실용과 선진화 담론을 주도한 ‘박세일’을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실용’은 박세일뿐 아니라, 최근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며 부상하고 있는 이른바 ‘중도’ 노선의 이데올로그들 사이에서 널리 활용되는 것으로, 대체로 탈이념적인 유연성을 강조하면서 개념화되고 있는 용어다. 그런데 박세일 류의 실용은 신자유주의적 색체가 보다 강하다. 가령 여기서 실용은 참여정부의 분배정책들이 이념과잉의 산물이라는 비판을 함축하고 있다. 즉 경제활동주체들의 활동력을 강화시킴으로써 경제적 활력을 향상시켜 경제성장이 이룩되어야 분배정책이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는데, 여기에 국가가 나서서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분배정책을 하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불필요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송호근이 잘 지적한 것처럼, 참여정부의 분배정책은 정책레짐에 의해 구상된 것이라기보다는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그때그때 임기웅변적으로 반응한 ‘프로그램적 개혁’의 성격이 더 강한 것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즉 그것은 이념과잉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이념과소의 산물인 것이다.
    아무튼 박세일 식 실용론의 탈이념주의는 시장자유주의와 ‘작은 정부론’이 결합된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성향이 대단히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자유주의’의 자율적 행위자는 지식기반사회적 인간일 것이다. 물론 그의 주장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지식기반사회의 인간형으로서의 자율적 행위자 범주에서 ‘실패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적인 제도화에서 행위자율성이 늘 간과되는 이들 존재, 즉 비존재들은 자유로운 행위자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은 착취의 대상도 아니며, 착취의 자격조차도 박탈된 이들이다. 하여 울리히 벡과 그의 부인 엘리자베쓰 벡-게른샤임(U. Beck & E. Beck-Gernsheim)이 잘 지적하고 있듯이 이들은 사회의 공동체 범주에 포섭된 내부의 최하층민(the very bottom)이 아니라 ‘외부적 존재’(outsider)인 것이다.
    비록 박세일은 실용과 선진화 담론에 의한 비전적 실체를 ‘공동체 자유주의’라는, 얼핏 공화주의적 함의를 담은 표현으로 이야기하는 듯이 보이지만, 도덕공동체 외부의 존재, 곧 비존재는 바로 ‘외부적 존재’이기 때문에 공동체적 자유주의를 구성하는 시민적 덕성으로 무장한 지식기반사회적 개인이 인지하는 공동체의 범주에서 제외된 대상, 곧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 범주의 연장선에서 ‘민족’이라는 ‘상상의 범주적 주체’(imagined categorial subject)가 설정된다. 민주화 시대의 정부들을 동요하게 했던 사회적 배제의 문제를 보다 단호하게 간과하는 가운데, 지구화 시대의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비성찰적이고 즉자적으로 유희하게 하는 민족주의는 저 외부에 대한 망각, 그 야만성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을 무력화시킨다. 2004년 깐느 영화제에서 14세 소년에게 남우주연상을 선사한 영화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유야 야기라 주연)는 지구화시대의 메트로폴리탄인 도쿄에서 차상위계층의, 거의 고아인 네 명의 아이들이 지역의 일상 속에 지속적으로 사람들과 마주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모르는 존재, 곧 비존재로서 살아가고 있는 현상을 사실적 은유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바로 그러한 ‘비존재인 존재’는 ‘제거’의 대상이 아니고 일상 속에 우리와 함께 있지만 사회적 관계망에서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은폐된 이들을 의미하며, 사회적 배제는 바로 이러한 은폐의 메커니즘을 문제제기하면서 발전한 개념인 것이다.
    결국 MB와 박세일을 코드화함으로써 그려지는 MB 정부의 행로에 대한 추측은 지난 민주화 시대의 정부들을 동요하게 했던 사회적 배제에 대한 견제의 장치들을 제거하면서 그려지는 사회상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이는 자본주의에 의해 상품화된 ‘달콤한 민족주의’는 즐기면서 배제의 제도를 망각하게 하고, 개체화된 일상에서 유실된 공동체를 가상체험하게 하여 공동체 감수성을 강화하면서도 배제된 이들에 대한 시민사회의 부채감을 경감시키는 이중의 부정적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앞에서 길게 논한 바 지식기반사회적으로 재구조화되는 사회 현실에서 일정하게 부정적인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는 더욱 문제적일 수 있는 민족주의는 향유의 대상을 넘어서 성찰의 대상으로 사유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뒤에서 논할 5.18과 같은 국가화/민족화된 기억의 의례에서 민족주의가 작동하는 양식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은 지식기반사회로의 제도화가 보다 본격적으로 전개될 가능성 앞에 놓인 우리에게 당면한 주요 과제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지난 5월 18일, 광주민주항쟁 28주년 행사의 대통령 기념사(記念辭)는 “우리 모두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되살려 ‘선진화’의 새 역사를 써 나갑니다”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다. 이와 같이 청유형 어미(모두 ‘나갑시다’로 끝난다)의 문장이 연설문 제목을 포함해서 4번 나오는데, 그 모두에서 새 역사의 비전은 ‘선진화’로 수렴되고 있다. ‘선진화’라는 단어는 이 네 번을 포함해서 모두 9번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연설문에서 사용된 명사 가운데 빈도수가 가장 많은 단어의 하나다. 요컨대 이제 ‘5.18’은 국민통합의 담론으로 자리잡아야 하며, 그것을 도구삼아 ‘선진화’를 이루자는 주장이다.


      이 기념사는 네 개의 단락으로 나뉘는데, 첫째 단락은 민주화 시대까지의 5.18의 의의에 관한 ‘과거의 차원’을 이야기하고, 둘째 단락은 선진화를 향한 미래적 전망을, 셋째 단락은 선진화를 위한 ‘현재’의 실천으로서 한・미 FTA의 필요성을, 그리고 마지막 단락은 응어리진 한을 유보하고 화해를 통해 선진화의 길로 나아가자는 내용을 다룬다. 여기서 첫째 단락은 ‘국민’과 ‘광주 시민과 전남 도민’을 향하여 말하고, 둘째와 셋째 단락은 ‘국민’에게, 그리고 넷째 단락은 ‘광주 시민과 전남 도민’을 향하여 말을 건넨다.
    이와 같이 선진화를 위한 행위자 범주는 ‘국민’ 일반과 ‘광주 시민/전남 도민’, 이렇게 둘로 나뉜다. 이와 같은 행위자의 범주화는 5.18에 관한 집합기억(collective memory)을 현재화하는 데 유용하다. 이렇게 범주화함으로써 이들이 살고 있는 현재의 세상은 단순화되어 해석되고, 그런 단순화된 세상 속으로 현재화된 집합기억 또한 단순하고 도식적으로 재현된다. 그리하여 단순 명쾌하게 현재화한 집합기억은 범주화된 행위자들을 주체화하는 데 용이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국민’은 5.18의 기억을 통해 ‘민주화’를 추동한 존재이며, ‘선진화’를 향해 나아갈 미래 역사의 주체로 규정된다. 이때 ‘국민’이 ‘민족’과 교환 가능한 존재임은 말할 것도 없다. 미래적 비전을 ‘선진화’로 해석한 것은 MB식의 각색이지만, 이와 같이 5.18을 통한 사회건설의 주역으로 국민/민족을 묘사하는 것은 상투적이다. 이러한 상투성, 곧 낯설지 않음은, MB식 각색을 대중이 공유하는 것을 손쉽게 해준다.
    한편 ‘광주 시민/전남 도민’은 이 연설문에서 역사의 희생자로 재현된다. 원 사건에서도 희생자였고, 이후의 역사 과정에서도 차별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들이 역사 건설의 주역임이 자명한 것은 아니다. 국민과 함께 역사건설의 주역으로 호명하는 네 번째 단락은, 이들의 역사 주체화에 단서를 붙인다. 자신의 ‘맺힌 한과 응어리’를 스스로 봉합해야 하는 것이다. 즉 이 기념사의 논리에 따르면 화해는 해원(解寃)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오로지 피해자의 자기 성찰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한데 이것 역시 5.18에 관한 집합기억의 요소에서 낯설지 않다. 시민사회는 이 불행한 역사의 사건에 대한 비용을 충분히 치루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봉합되고 해소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MB의 어법은 그러한 시민사회의 욕망을 기억의 요소로 활용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는, ‘국민과 광주 시민’의 이분법을 통해 5.18의 기억을 재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MB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광주 시민’은 자기 초월의 모범을 보여준 존재이며, 국민은 이러한 실천을 범례 삼아야 역사의 올바른 주체가 될 수 있다. 즉 ‘광주 시민이 희생자’라는 범주적 이해에 있어서는 양자가 동일하나, 여기서는 희생자이기 때문에 그들이야말로 역사의 진정한 주체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광주 시민’은 역사 건설 행위자의 범례적 주체가 되며, 국민은 그러한 범례를 준거 삼음으로써만 진정한 역사의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역사 변혁의 주체이기는 하되, 조건부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이러한 해석은 5.18이 공식적인 국가의례로 지정된 이후의 기념사에서 제기된 것이지만, 그 이전의 기억, 저항기억으로 유통되던 시기의 기억 양식과, 적어도 이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저항의 집합기억 속에 ‘고난’은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존재론적 특권처럼 신화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적 구원론과 담론상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 특정한 사건이 성화(聖化)되어 교환 불가능한 ‘단 하나’의 고난 사건이 된다. 여기서 이 고난 사건 자체는 승리의 기억이 아니다. 그럼에도 기억의 정치는 승리로서 의미를 재전유함으로써 구원론적 서사를 갖추게 된다. 즉 ‘집단 학습’을 거치면서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고 나아가 저 희생자들의 불의한 죽음에 무지했던 것에 대한 자기 충격, 그리고 자신이 살아있음에 대한 수치심과 죄책고백을 경유해서, 일종의 인식론적 구원 체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여 그 교환 불가능한 원초적 고난 사건, 그리고 그로 인한 죽임당함은 산 자들의 내면에 도사린 죽음 같은 현실을 내파하는 구원론적 승리의 요소였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구원 체험을 통해, 많은 이들이 독재에 항거하고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투쟁의 대열에 나서게 되었다는, 구원담론의 결론부 같은 형식으로 저항기억이 마무리된다.
    이렇게 참여정부의 5.18 서사나 저항기억으로서의 5.18 서사는 ‘원 사건으로서의 5.18’을 성화된 기억으로 고착화시킴으로써, 기억공동체로서의 국민 내지는 민족의 범주가 5.18의 정신으로 결속되어야 하는 핵심적인 역사적 실체로 규정된다. 이것은 국민/민족으로 범주화된 공동체의 결속이 5.18에 관한 신화적 정체성에 기초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MB는 ‘광주 시민과 전남 도민’의 고난을 경제적 고통으로 현재화한다. “저는 늘 호남에 두 배 더 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호남이 잘 사는 것이 낡은 시대의 차별과 지역갈등을 근원적으로 없애는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표현 속에는 지금까지 겪어왔고 현재도 겪고 있는 배제의 체험이 훗날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될 때 다 해결된다는 주장이고, 거기에는 당장은 배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이 전제되어 있다. 그리하여 지금은 경제적 생산성 향상을 위해 지난 역사의 응어리를 풀고 ‘국민’이 하나 되어 나아갈 선진화의 대열에 동참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이 하부의 이질적 기억공동체인 광주 시민과 전남 도민은 선진화를 위한 국민의 진정한 일원이 된다는 논리다. 물론 이 선진화를 위한 기억 동맹의 성격은 경제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MB의 기념사에서 11회나 사용하고 있는 ‘변화’라는 용어는 필경, 산업화 시대의 권위주의적 경제공동체나 민주화 시대의 개혁공동체와는 다른, 선진화 시대의 지식기반사회론적인 경제공동체로 기억동맹이 구성되어야 한다는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셋째 단락에서 그는 국민이 당면한 현재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한・미 FTA 비준동의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전 지구적인 변화의 물결에 적응하는 변화, 곧 신자유주의적 지식기반사회로의 재무장화, 그것이 바로 ‘변화’라는 용어에 함축된 의미이다.
    정리하자면 저항기억으로서의 5.18 담론이나 참여정부의 5.18 담론이 과거의 신화화된 사건에 준거한 ‘도덕공동체’로서 국민/민족을 호명하고 있다면, MB와 실용정부의 5.18담론은 미래 지향적인 ‘경제공동체’로서 국민/민족의 결속을 주장한다. 전자는 과거적 차원(도덕적 요소)이, 그리고 후자는 미래적 비전(경제적 요소)이 각각 기억공동체를 형성하는 주된 동력이 되고 있는데, 공히 이 기억공동체의 중심 단위는 국민/민족이라는 범주이다. 그런데 이러한 5.18 기억 동맹의 주요 범주로 국민/민족을 호명하는 일이 민주화를 위해서 매우 큰 기여를 하였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또 향후 지구화를 대처하는 주된 단위일 수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왜냐면 국민/민족 내부의 차이를 인식하는 데 이러한 기억공동체는 언제나 장애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강상중이 말하는 바, 국민/민족과 그 국경이 강조될 때마다 내적 국경, 즉 심상(心像)적 국경들은 더 많이 혹은 더 강력하게 생성되기 때문이다. 차이들에 대한 감각이 둔화되고, 공통성을 강조하는 담론들이 활발해지면, 내부의 이질적인 것들에 대한 규율의 체계가 작동하고, 또한 여기서 배제가 실행되는 것이다. 소수성 가운데 많은 부분이 배제의 대상이 될 것인데, 여기서는 앞에서 길게 논한 것처럼 참여정부나 실용정부 모두 지식기반사회적 변화를 지향하고 있고, 같은 시기에 사회적 배제의 문제가 급격하게 심화되었다는 점에서 내적 국경의 폭력성에 관해 좀 더 논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얘기를 하기 전에 하나 더 언급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 기념행사의 사회적 효과에 관한 평가의 문제이다.
    5.18 의례의 국가화가 시작된 1997년 이후 올해까지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7회이고, 총리가 참석한 것은 5회이다. 즉 국가수반이나 그 대행자인 총리가 불참한 5.18행사는 한 차례도 없었다. 그만큼 5.18은 국가의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 각 정당대표를 포함한 국회의원 다수, 그리고 정부각료 등 참석자의 면면으로만 보면 국가의례 중 최고의 위상을 갖는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국가의례가 시작된 이후 기념식의 TV 생중계가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행사의 국민적 위상 또한 그러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우선 국가 의례가 된 이후 참배객의 수는 급속도로 하락하고 있고, 생중계되는 식을 보느라고 TV에 눈길을 주는 이 또한 별로 많지 않다. 대통령의 기념사를 듣거나 읽는 이도 거의 없다. 마치 교황의 성탄 메시지 같다. 즉 5.18 기념행사는 도덕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거기에서 충일된 민족의식으로 무장하여 새 역사의 일꾼이 되겠노라고 결심하는 장면은 일종의 코미디에서나 있을 법하다. 즉 의전으로서의 5.18 기념행사는 살아있지만, 대중의례로서의 5.18은 거의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5.18은 점점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함에도 왜 계속 ‘강한 의전성(儀典性)’을 갖는 것일까? 더 이상 국가폭력에 대한 도덕적이고 감정적인 저항자원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5.18은 어떻게 소비되는 것일까? 또 국가의 공식기억을 통해 생산적 가치로 재구성된다고 해도, 가령 MB 정부가 선진화를 위한 원동력으로 5.18을 해석한다고 해도, 대중이 그것에 영향을 받아 선진화를 위한 국민의식으로 무장한 주체로 변할 만큼의 대중적 호소력도 없다. 그럼에도 왜 강력한 의전으로 계속되는 것일까?
    앞서 말했던 것처럼 민족주의가 오늘날 활성화되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카니발적 민족주의’ 형식이다. 가령 한・일 축구경기는, 스포츠로서의 축구를 좋아하든 아니든, 양국의 대중으로 하여금 카니발적으로 축구를 소비하게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양국 대중은 국민으로 결속된다. 지난 월드컵 당시 경기마다 붉은색 셔츠를 입은 사람들의 물결이 전국을 덮어버린 것처럼, 사람들은 적어도 그 순간만은 하나로 뭉치고 놀라운 활력을 표출했다. 핏발을 올리고 단식을 하고 삭발을 하며 나아가 혈서를 쓰지 않아도, 다수가 즐겁게 유희를 벌이면서도 민족주의는 열기 넘치는 축제처럼 소비된다. 그러나 문제는 카니발적 민족주의는 경기가 끝나면서 급속도로 냉각되고, 또 그 자체로 경기를 넘어서 의미화되지도 않는다. 단지 즐기면서 결속하는 열정만 불타오를 뿐이다. 그런데 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경기를 관람하면서 어떤 민족주의를 의식하게 되며 또 실행에 옮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 내면에 이미 민족주의를 해석하는 의미틀(프레임, frames)이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5.18은 이러한 의미틀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 점에서 5.18 의례의 국가화는 국민적 통합을 위해 기억의 헤게모니를 점유하려는 권력의 욕망과 분리할 수 없이 얽혀 있다. 그래서 각 정권마다 기념사 등을 통해 5.18의 공식기억의 구성에 개입하려 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국가의례로서의 5.18은 사건으로서의 5.18을 해석하는 표준적 양식이 함축되어 있는 장이며, 나아가 국민의 정체성과 실천에 관한 해석이 자리잡고 있는 주된 ‘의미틀의 장’(field of frames)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민족주의적 의미틀의 장으로서의 5.18은 내부의 차이를 간과하게 하는 생각의 장치로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여러 연구들에서 이미 지적된 것처럼, 1980년 5월 광주에서, 대학생이나 시민계층이 아니라, 노동자, 빈민, 무직자, 고등학생 등이 사건의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들 후자의 행위자들은 일상적인 질서가 잘 작동하는 공간에서는 공적인 발언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대개 아직 국민이 아니거나, 국민의 자격을 박탈당했거나 혹은 그러한 심각한 위험 아래 놓인 자들이다. 시민이 아니라, 이들이 사건 전개의 추동자적 역할을 하였다고 할 때, 과연 1980년 5월 광주의 상황에서 시민정신의 모범을 찾아내는 식의 방식은 얼마나 타당한가. 국민 일반의 범주 속에 아무런 갈등 없이 그들은 통합될 수 있는가? 실제로 1980년 광주에서 실재했던 저항세력 내부의 갈등 중 적어도 상당부분은 시민적 주체와 비시민적 주체 간의 성향의 차이와 관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5.18 담론에서 이 내적인 차등성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필경 그것은 감추어진 이야기로서 5.18 담론의 주변부를 떠돌고 있을 것이다. 기억의 메커니즘은 이들 주변부를 배회하는 기억의 편린들을 공적인 것에서 제거했다. 물론 이때 제거는 색출하여 격리시키는, 권위주의 체제 특유의 ‘제거의 정치’(politics of elimination)와는 다르다. 대중담론에서 기억의 삭제는 대개 ‘망각’에서 온다. 망각은 격리시킴으로 기억의 권역에서 사라지게 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잊어버림의 정치’(politics of forgetting)라고 하는 게 더 타당하다.
    ‘잊어버림의 정치’라는 개념어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관한 연구에서 제기된 ‘배제의 메커니즘’을 지칭하면서 사용한 일종의 사회학적 레토릭이다. 요컨대 이것은 지구화의 공습을 받은 체제가 배제를 작동하는 양식을 설명하는 개념인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배제는 배제된 대상의 언어를 앗아간다. 그들은 생물학적 장애인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장애가 발생한 존재인 경우가 많다. 일종의 사회적 실어증이다. 언어 장애가 있음으로, 자기를 적절히 표현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자기 PR의 시대에 자기의 부재를 체험하는 존재인 것이다. 잊어버림의 정치가 말하는 사회적 배제는 이렇게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동료집단에서 제거되며, 심지어 때로 범죄적이거나 폭력적으로 자기가 구성된 존재다.
    5.18의 삭제된 기억, 그 잊어버림의 정치와, 오늘 우리 시대, 지식기반사회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잊혀진 이들에 관한 배제의 정치는 서로 유사성을 갖는다. 그리고 이들 배제의 대상은 내적국경들 외부로 밀려난 존재들, 결과적으로 국민 혹은 민족의 결속 밖으로 내몰린 존재다. 그러므로 5.18에 관한 대안적인 기억의 정치는 이 정전화된 담론을 해체하고, 그곳에서 다양한 차이를, 특히 은폐되고 배제된 차이의 요소를 복원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잊어버림의 존재를 발견하려는, 그들의 유실된 언어를 찾는 작업을 동반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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