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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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탈/향 가을학기]<사회신학 입문: 아도르노의 ‘사회’ 읽기> 강사 인터뷰
  • 제3시대
    조회 수: 789, 2018.09.24 2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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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신학 입문: 아도르노의 ‘사회’ 읽기> 강사 인터뷰 


    Q. 강좌 타이틀이 “사회신학 입문: 아도르노의 ‘사회’ 읽기”입니다. 우선 정치신학이 아닌 사회신학이란 용어는 낯선데요. 사회신학이란 무엇인가요? 

      세 가지로 나눠서 답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정치신학과 사회신학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지요. 제 생각에, 세속적 현상과 신학적‧종교적 현상 사이의 상관관계를 탐구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 곧 정치신학과 사회신학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신학이 국가형태, 주권, 통치와 같은 개념을 중심으로 근대국가로 상징되는 수직적인 차원의 권력구조에서 ‘정치적인 것’이 취하는 종교적 형식에 관심을 기울이는 문제설정이라면, 사회신학은 상품‧화폐‧자본과 같은 가치형태들로부터 시작하여 자본주의 하에서 일상적‧실제적 사회적 과정들이 취하고 있는 종교적 형식을 문제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도식적인 구별이긴 하지만, 정치신학이 국가(state)나 국민(nation)이라는 형태를 취한 ‘종교’를 비판한다면, 사회신학은 자본(capital)과 사회(society)라는 형태를 취한 ‘종교’를 비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도대체 사회신학이란 무엇일까요? 일단 사회신학은 어떤 새로운 학문분과의 이름은 아닙니다. 사회신학은 일종의 문제설정에 가깝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신학은 사회비판과 종교비판 양자의 영역을 끊임없이 이동하는 비판, 횡단하는 비판을 가리킵니다. 일반적으로 사회비판이 사회이론의 영역이라면, 종교비판은 신학의 영역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사회신학은 그 경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경계를 횡단하고자 합니다. 이 강좌에서 다룰 사회신학은 자본주의를 순수하게 제의적인 종교로 파악하면서 이른바 “종교로서의 자본주의”를 제창했던 발터 벤야민을 쫓아서 자본주의 사회 자체가 일종의 종교를 구성하고 있다는 입장을 견지합니다. 물론 이러한 입장은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삶의 실제적 관계들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관계의 신성화된 형태들을” 추출하는, 실재추상으로서의 종교연구의 신기원을 열었던 마르크스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사회신학적 관점에선, 종교비판과 사회비판 간에 끊임없이 전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회비판의 공간과 종교비판의 공간을 이동하면서 그 경계 혹은 그 둘의 마주침을 사유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런 문제설정을 사회신학이라 이름 붙인 것입니다. 

      사회신학이라는 문제설정을 통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요? 결국 사회신학은 제도종교에 머물러 있었던 신학적 탐구의 초점을 지극히 세속적이고 비종교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온 자본주의라 불리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회형태로 이동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동이 가능한 것은 사회신학적 사유의 출발점에 고전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다음과 같은 선언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총체성(totality), 사회(society), 그리고 신성(divinity)의 개념은 사실상 동일한 관념의 단지 다른 측면들일 뿐이다.” 뒤르켐은 독일 관념론에서부터 마르크스주의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거대서사를 이해하는 궁극적 범주로 표현되어온 총체성의 개념을 매개로 하여 신과 사회를 인식론적으로나 존재적으로 완벽하게 동일시했습니다. 사회신학이라는 문제설정은 이러한 관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따라서 이제 신학적 비판만 이동이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사회학적 비판도 그 장소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가령, 오늘날 한국의 공론장에선 극우보수 개신교의 행태에 대한 분석이 사회학적 종교비판의 주를 이루고 있는데요. 종교사회학 또는 유물론적 종교비판의 이름으로 수행된 종래의 사회과학적인 종교 분석들은 종교적 현상의 필수불가결한 특징인 ‘객관적 환상’, 즉 상품교환, 신용거래, 투자, 투기 등과 같은 사회적 행위에서 수반되는 필연적인 ‘가상’이자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적 타당성을 갖는 객관적인 사유형태”를 조건 짓는 실재적인 관계들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는 소홀한 채 제도종교에서 발견되는 신앙과 같은 주관적인 환상에 초점을 맞춘 계몽주의적 종교비판에만 여전히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정말 더 문제적인 신앙은 자본주의적 일상생활의 종교에서 나타나는 지극히 합리적인 믿음인데 말이지요. 사회신학은 그러한 사회이론의 종교비판이 제도종교를 넘어 일상생활의 종교로, 세속사회의 시민종교로 이동해야 한다는 요청을 담고 있습니다. 



    Q. 아도르노 역시 낯선 인물인데요. 아도르노에 대해서도 소개 부탁합니다. 

      아도르노는 프랑크푸르트학파라 불리는 독일 비판이론의 1세대를 대표하는 학자입니다. 최근까지 영어권에서도 그랬지만 국내에선 아도르노가 철학자이자 미학자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아도르노는 독일 사회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사회학계에서 실증주의 논쟁을 주도했던 당대 최고의 사회학자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변증법적 사회이론가 또는 비판적 사회이론가라 할 수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강좌에서 다룰 아도르노는 사회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지평 안에서 이해하고 있는, 그렇기에 그의 사회이론이 동시대 자본주의의 논리를 꿰뚫어보는 데 굉장히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프레드릭 제임슨 식(式)으로 말하자면, 후기자본주의에 대응하는 ‘후기마르크스주의자’ 아도르노입니다. 

      최근 서구 학계에서도 마르크스주의자 아도르노에 대한 재발견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특히 1960년대 중반 독일에서 알프레드 슈미트, 한스 게오르그 바크하우스, 헬무트 라이켈트, 한스 위르겐 크랄, 헬무트 라이니크, 헤르베르트 슈내델바흐, 위르겐 리처트 같은 이들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마르크스 독해’(Die Neue Marx-Lektüre; The New Reading of Marx)가 그 뿌리를 아도르노의 비판적 사회이론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그의 후기 저작들에 대한 전면적인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강좌에서도 그러한 논의들을 적극적으로 참조하여 아도르노의 글을 새로운 관점에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결국 아도르노에 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어도, 심지어 그의 글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더라도, 이 강좌를 듣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어차피 이번에 우리가 만날 아도르노는 기존에 알려진 아도르노와는 많이 다른 아도르노일 테니까요. 



    Q. 사회신학 강좌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아도르노의 「사회」라는 텍스트를 선택하신 이유는? 

      여기서도 세 가지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위의 답변의 연장선상에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요. 우리가 함께 읽을 아도르노의 「사회」는 1965년 독일 개신교회에서 출간한 『국가사전』 내의 ‘사회’ 항목을 위해 아도르노가 집필한 글입니다. 학술논문으로 발표한 글이 아니라 백과사전의 항목으로 쓴 글이니 당연히 쉽게 써졌겠지요. 흥미로운 사실은 같은 해에 그의 제자이자 새로운 마르크스 독해의 창시자로 간주되는 바크하우스가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아도르노의 강좌의 일부로 마르크스의 가치형태론에 관한 세미나를 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미 3년 전인 1962년에 아도르노가 진행했던 마르크스와 사회학 이론에 관한 세미나에 조교로 참여하면서 아도르노의 강의를 상세히 기록했던 바크하우스는 1965년 당시엔 아도르노의 영향 하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정교하게 다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같은 해에 발표된 「사회」에서 우리는 새로운 마르크스 독해의 뿌리가 되는 아도르노의 비판적 사회이론의 마르크스주의적 요소를 농밀하게 읽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작년에 아도르노 전집 중에서 사회학 관련 글들이 수록된 전집 제8권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는데요(『사회학 논문집 Ⅰ』, 문병호 옮김, 세창출판사, 2017). 「사회」라는 글은 바로 그 책의 맨 앞에 실린 글로서, 그의 사회학적 사유의 정수가 담겨 있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전집 제8권에 수록된 다른 글보다 이 글이 먼저 영어로 번역된 것도 그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도르노의 책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쉬운 책이면서 아도르노의 사회이론의 전모를 풍부하게 담고 있는 『사회학 강의록』(1968)에서도 이 글은 자주 인용될 만큼 중요한 글이라 아도르노의 사회이론을 넘어 아도르노 사상 전반에 입문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글은 없으리라 봅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도르노나 비판이론에 대해 전혀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바로 이 글을 통해서 이번 기회에 입문한다고 생각하면 되니까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회신학적 관점에서 이 글이 매우 독특하기 때문입니다. 강좌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겠지만, 아도르노에게 사회는 곧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그는 사회 일반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특수한 자본주의 사회를 주관적-객관적 현실로서 문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를 “개인의 행위가 행위주체 자신들을 지배하는 객관적 영역을 창설하는 특수한 구조”로 파악합니다. 다시 말해, 대중들이 자신의 노동에 의해서 자본에 대한 노예상태를 증가시키고, 모든 종류의 고통으로서 스스로를 위협하게 되는 실재를 산출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도르노가 보기에, 자본주의 사회는 전체이자 총체성이며 보편자입니다. 사회적 총체성에 있어서 그 자리를 갖고 있지 않을 수 있는, 사회적으로 사실적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도르노 사회학의 대전제입니다. 

      그에 따르면, “하늘과 땅 사이에, 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중에서 사회에 의해 매개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는 “실재적이지만 명백하게 가시적인 직접성으로 옮겨질 수 없는 전체 체계인 총체성과 관련을 맺지 않고는 사회적인 것에 대해 아무것도 사고할 수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신학의 출발점, 곧 “총체성, 사회, 그리고 신성의 개념은 사실상 동일한 관념의 단지 다른 측면”이라는 뒤르켐의 선언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도르노가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총체성을 신(神)으로 바꾼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죠. 그런 의미에서 아도르노 역시 사회신학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강좌 소개문에도 썼듯이, 아도르노는 이러한 총체성-사회-신에 관해 뒤르켐을 비롯한 여타의 사회신학적 사상가들과는 매우 다른 입장을 지닌 사회신학자였습니다. 이번 강좌의 주된 목표가 바로 그런 아도르노 사회신학의 독특성을 「사회」라는 글을 통해 발견하는 것입니다. 



    Q. 최근 (개신교 아카데미들 안에서) 인문학 담론들과 결합된 신학강좌들이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런 강좌들과 본 강좌가 가진 차별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오늘날 한국엔 인문학적 교양을 길러주는 유익한 신학강좌들이 많이 열리고 있고, 또한 사회학적 관점에서 종교를 분석하는 다양한 연구들이 제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비판이론의 담론장 속으로 뛰어들어 그 논쟁에 참여하고 동시대 사회과학의 분석적 성과를 적극적으로 전유하는 비판적 신학담론은 잘 접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모순적이고 복잡한 현실에 관한 보다 정치하고 구체적인 분석을 수행할 수 있는, 그래서 세계에 관해 기존의 진보적인 신학담론들보다 훨씬 더 내재적인 비판을 전개할 수 있는 신학이론이 요청되고 있지만, 사회과학이나 비판이론과 대화하는 신학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울러 사회이론의 관점에서 종교란 무엇이고, 종교와 사회의 관계는 무엇인지, 종교비판과 사회비판이 어떻게 같이 갈 수 있는지를 이론적으로 진지하게 논의할 기회도 잘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 강좌를 통해 어렵더라도 종교비판을 사회비판으로, 사회비판을 종교비판으로 번역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Q. 그렇다면 특별히 어떤 분들이 본 강좌를 들으면 유익할까요? 

      현대 사회이론의 신학적 전유에 관심 있는 분들. 비판적 사회이론에 입문하고자 하는 분들. 평소 아도르노에 대해 궁금했지만 선뜻 다가가기 어려웠던 분들. 비단 이론적인 관심사를 떠나서 이 강좌를 공동으로 주최하는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와 연구집단 CAIROS의 작업에 관심 있는 분들이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좌소개


    사회신학(社會神學)이란 신학의 대상인 종교로부터 사회를 읽어내고 사회학의 대상인 사회로부터 종교를 읽어내려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회신학은 자본(capital)과 사회(society)라는 형태를 취한 ‘종교’를 비판하기 위해, 상품‧화폐‧자본과 같은 가치형태들로부터 시작하여 자본주의 하에서 일상적‧실제적 사회적 과정들이 취하고 있는 종교적 형식을 문제화합니다. 이번 강좌에서는 사회신학 입문을 위해, 동시대 자본주의의 논리를 꿰뚫어보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후기마르크스주의자’ 아도르노의 「사회」라는 글을 함께 세밀히 읽어나갑니다. 「사회」는 아도르노의 사상이 집약된 글로서, 특별한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아도르노 사상 전반에 쉽게 입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텍스트입니다. 나아가 이 글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현상들을 설명하는 데도 유용하지만, 특히 그동안 사회이론에서 제출된 여타의 사회신학적 접근들과 궤를 달리하는 독특한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이 강좌는 아도르노 사회신학의 독특성, 아도르노 사회이론의 현재성을 「사회」라는 글을 중심으로 ‘지금 여기’의 관점에서 풍부하게 다루게 될 것입니다. 현대 사회이론의 신학적 전유에 관심 있는 분들이나 비판적 사회이론에 입문하고자 하는 분들, 평소 아도르노에 대해 궁금했지만 선뜻 다가가기 어려웠던 분들 모두에게 유익할 강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강사소개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상임연구원, 연구집단 CAIROS 운영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신대 신학과에서 신약성서신학과 기독교사회윤리학을 전공했고(박사과정 수료), 현재는 ‘노동과 복지’를 주제로 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에 있다. 민중신학 및 비판이론 연구자로서 그동안 주로 공적인 인정투쟁의 문턱 아래에서 작동하고 있는 ‘정치 이전의 고통’(pre-political suffering)의 현상을 탐구하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최근에는 급진적 신학담론과 비판적 사회이론 간의 대화를 모색하는 가운데 사회적 고통과 자본주의적 사회형태들, 사회신학과 정치신학, 이데올로기와 물신숭배 등의 주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 『촛불과 광장, 정치와 종교』,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교회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 이야기』, 『박근혜 정부의 탄생과 신학적 성찰』, 『사회적 영성』, 『세월호 이후의 사회과학』, 『당신들의 신국』, 『가장 많이 알고 있음에도 가장 숙고되지 못한 ‘십계’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 『민중신학, 고통의 시대를 읽다』 등에 공저자로 참여했고, 『21세기 민중신학』을 함께 번역했으며, 신(神)의 죽음과 사회(社會)의 죽음을 시차적 관점에서 하나와 그 자체의 간극으로 읽어내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



    일시_ 2018. 10. 2 ~ 11. 20 (화요일) 총 8강, 오후 7:30~

    장소_ 안병무홀(한백교회)

    튜터_ 정용택(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연구원)

    수강료_ 12만원(온라인수강 8만원, 일일수강 각 2만원)

    주관_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집단 CAIROS 

    문의_ 3era@daum.net (메일)

    강독텍스트_ 테오도르 W. 아도르노, 「사회」, 문병호 옮김, 『사회학 논문집 Ⅰ』, 세창출판사, 2017, 9-24쪽. (수강신청을 완료하신 분들에 한해서 강독 텍스트 준비에 관해 보다 자세히 안내해드립니다)


    일정
    1강 10. 02 사회는 무엇이 아닌가?

    2강 10. 09 총체성으로서의 사회

    3강 10. 16 매개로서의 사회

    4강 10. 23 캐릭터마스크

    5강 10. 30 시장과 지배

    6강 11. 06 사회는 적대를 통해서 유지된다

    7강 11. 13 관리와 지배

    8강 11. 20 속박에 얽매인 총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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