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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 발제] 종교와 자본주의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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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수: 5520, 2002.02.08 13:39:44
  • 종교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적 동조와 종교의 산업화

    강인철(한신대 교수, 종교사회학)

    한국 종교의 기복주의와 성장지상주의가 비판된 것은 꽤 오래 전부터였다. 최근에는 교회의 세습이나 종교의 권력화 문제, 재정 운용의 비리와 불투명성 문제 등이 도마 위에 올라왔다. 특히 작년 가을부터 {당대비평}과 {인물과 사상}을 비롯한 진보 학계와 여러 언론 매체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종교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과연 이런 문제들은 우발적인 비리들, 혹은 일부 못돼 먹은 성직자들의 그릇된 사고방식에 기인하는 것인가? 이 글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글에서는 사태를 그런 방향으로 몰고 가는 일련의 사회구조적 압력들에 대해 논의해보려고 한다. 이 가운데서도 자본주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동조' 현상과 종교의 자본주의적 '변형'으로 이끄는 구조적 추세에 집중할 것이다. 특히 종교의 자본주의적 변형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학계에서 한번도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던 측면 즉 '종교의 상품화'와 '종교의 산업화' 추세에 대해, 그리고 이런 현상들이 지닌 복합적인 의미에 대해 탐색해보고자 한다.

    1. 종교와 자본주의

    최근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을 설명하기 위해 이른바 '유교자본주의론'까지 등장하는 등 종교와 자본주의의 관계에 관한 학문적 논의가 상당히 축적되고 있다. 이런 연구들을 한편으로 종교가 자본주의에 대해 작용한 결과 내지 효과 면에서 긍정적(기능적), 부정적(역기능적), 중립적인 기능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양자간 인과적 효과의 방향 면에서도 기존 연구들을 '종교→자본주의'의 방향, '자본주의→종교'의 방향, 그리고 양자간 비상관(非相關)의 세 가지로 구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식화와 단순화의 위험이 있긴 하지만, <표 1>에 이런 방식의 유형화가 요약되어 있다.

    <표 1> 종교와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한 기존 연구들의 유형화


    촉진 "현세지향적 금욕주의"로 지칭될 수 있는 종교윤리와 자본주의적 정신의 선택적 친화성으로 인해 종교가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의 형성 및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종교는 독특한 윤리를 내세워 신자들을 '축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성장에 기여하였고, 그런 과정에서 신자들을 예비 자본가로 상승시켰다. 서구의 개신교윤리를 다룬 베버(Weber) 테제, 일본과 동아시아의 경제적 성공의 종교적 원천을 각각 다룬 벨라(Bellah) 테제와 유교자본주의론이 이 측면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적응 종교가 산업화를 축으로 한 급격한 사회변동에 직면한 노동계급 성원들에게 "과도적 신조" 혹은 공동체를 제공해 줌으로써 새로운 사회질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것이다. 종교는 또한 자체의 엄격한 규율과 도덕적 훈련을 통해, 하층 신자들을 산업적 통제에 적응시키는 한편, 이들을 계층상승을 위해 노력하는 노동자층으로 변모시켰다. 종교가 이처럼 '노동으로의 동원' 그리고 '노동자로서의 주체 형성'이라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자본주의 발전을 순조롭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노동계급 신자들이 혁명적·집단적 저항운동에 가담하기보다 점진적·개인적으로 처지를 개선하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기의 영국에서 감리교가 노동계급에게 미친 영향에 주목한 알레비(Hal vy)와 톰슨(Thompson) 등이 이 측면을 강조하였다.

    보상 종교가 하층계급 성원들에게 환상적이고 허구적인 상징적·감정적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전투적인 계급의식의 성장을 저해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무관심과 순응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종교는 현세적 박탈과 좌절, 고통에 대해 내세에서의 행복이라는 상징적인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현실 변혁에 대한 관심을 전환 내지 제거하고, 주기적으로 감정의 분출 통로를 제공함으로써 고통스런 일상생활을 감내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종교에 의한 환상적·비현실적 대리만족의 제공, 종교의례를 통한 감정적 분출이 억압적 노동규율에의 순응을 유도하는 측면은 맑스(Marx)와 엥겔스(Engels), 톰슨 등에 의해 강조되었다.

    억제 노동이나 부의 축적을 천시함으로써, 혹은 기존 현실을 운명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거나 이상적인 상태로 미화하여 현실 변혁의 가능성을 배제해버림으로써 종교가 자본주의 발전을 억제했다는 것이다. 유태교, 힌두교, 불교, 유교 등 비서구 사회들의 세계종교에 대한 베버의 연구들이 이런 접근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저항 종교는 자본주의와 그것의 역사적 변형인 제국주의의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요소들에 대한 도전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기 영국에서 종교적 급진주의가 정치적 급진주의를 조장한 사례들에 대한 홈스봄(Hobsbawm)의 연구나, 제3세계의 종교적 반제국주의 운동에 대한 레위(Lewy)의 연구, 이 밖에도 해방신학이나 좌파적 경제신학의 영향을 받은 남미의 해방운동, 서구의 기독교사회주의운동 등에 대한 연구들 역시 이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동조 자본주의의 핵심 가치들이 종교에 침투하거나 종교인들이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지배적인 종교문화를 구성하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우 자본주의에 대한 종교적 축복과 찬양이 만연하게 된다. 또 이 경우 신앙형태 면에서는 노골적인 기복주의와 물신주의가 전면에 부각되고, 자본주의적 계급지배 방식이 종교조직 내에서도 관철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에 대해서는 (신학적) 비판만 무성할 뿐 진지한 학문적 연구는 별로 없다.

    변형 종교가 자본주의 사회 속에 위치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어 감에 따라 생겨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성으로 '종교의 상품화', '종교의 산업화'라는 현상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측면에 대해서는 기존 연구가 거의 없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가설적인 논의만이 가능할 뿐이며, 이 글에서 시도해보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분리 자본주의사회는 정치와 경제, 국가와 시민사회,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분리 등 일련의 '결정적인 제도적 분화'에 성공함에 따라 '경제의 비(非)정치화', '계급지배의 탈(脫)정치화'로 특징지어지게 되며, 그 결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순전히 경제적인 동기에 의해 재생산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로부터 월러스틴(Wallerstein)은 "무력과 신앙의 결합에 의한 경제적 통제방식"의 종식을, 버거(Berger)는 "자본주의의 신화결핍성"을 강조했다. 자본주의의 비종교성에 대한 이런 강조는 결국 종교와 경제의 구조적 분리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경제 분리는 종교와 경제가 서로 '무관하게' 되었다기보다는 '관계방식이 변화'했다고 보아야 정확하며, 이러한 구조적 분리 자체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도 더 성찰해볼 여지가 많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지만, 불행히도 이런 점들에 대해 만족스런 해답을 제공해주는 연구는 거의 없다.

    분화 종교와 경제의 구조적 '분리(separation)'와 유사하게, 근대사회의 제도적 '분화(differentiation)'라는 맥락에서도 종교-경제 관계의 변화가 논의되었다. 다시 말해 근대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종전에는 종교와 겹쳐 있던 경제, 정치, 교육, 의료 등의 기능들이 종교로부터 떨어져나가 제도적으로 자립화, 전문화된다는 것이다. 대체로 기능주의적 노선을 따르는 세속화론자들이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이처럼 근대적 분화 원리를 강조한 결과 역설적으로 종교와 경제의 관계에 관한 연구는 매우 드물게 되었다.

    간략히 살펴보았듯이, 종교와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한 기존 연구들은 종교활동의 사회적 결과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기능적' 측면에 집중하고 있고, 아울러 종교를 '독립변수'로 접근하는 연구가 압도적 다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종교가 자본주의에 대해 긍정적-기능적으로 작용하는 측면을 다루면서도 종교를 자본주의 발전의 '종속변수'로 취급해보려 한다. 따라서 종교와 자본주의의 관계에 관한 기존 연구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은 '동조(conformity)'와 '변형(transformation)'의 측면들을 주로 분석할 것이며, 짧게나마 '분리'의 의미에 대해서도 논의해볼 것이다. 이에 앞서, 종교-자본주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논하지는 않지만 종교의 상품화-산업화에 대한 우리의 논의에 상당한 시사점들을 제공하는 주장을 잠시 검토해보자.

    2. 종교다원주의와 '시장의 비유'

    몇몇 종교사회학자들은 근대사회로의 이행함에 따라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가 점차 확고한 현실이 되어가며, 종교다원주의가 자리잡을수록 종교전문가와 신자, 종교와 종교간의 관계가 시장질서를 닮아가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종교다원주의는 법적-제도적 측면에서는 종교자유의 보장, 정치와 종교의 분리 등에 의해, 의식구조의 측면에서는 세계관 혹은 설득력구조(plausibility structure)의 다양화에 의해 달성된다. 버거와 루크만(Luckmann)은 종교다원주의가 자본주의적 상품시장과 유사한 종교간의 치열한 경쟁상황 즉 '종교시장(religious market)'을 형성시키는 경향이 있음을, 또한 근대사회의 개인들은 종교에 대해 '소비자의 지위'를 갖게 되는 경향이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하여 종교조직은 마치 경쟁적 자유기업처럼, 종교전문가는 종교적 상품의 제조자·판매자처럼, 시민들은 종교상품의 구매자처럼 변화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잠재적·현재적 신자들을 둘러싼 종교간의 치열한 경쟁은 종교의 구조와 내용 모두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한다.
    한편 다른 이들은 종교다원주의가 종교간의 경쟁을 격화시키고 이러한 경쟁이 일종의 시장상황(market situation)을 초래한다는 기존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종교경제(religious economy)' 개념을 중심으로 다소 상이한 시장모델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종교시장 개념을 근대를 포함한 모든 시대에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확장하였고, 종교다원주의가 종교들의 위기(세속화)를 의미하기는커녕 종교인구의 증가를 포함하여 종교지형 전반을 활성화시키는 경향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들에 의하면, 다른 시장경제와 마찬가지로 종교경제의 핵심적인 문제 역시 '규제의 정도(degree of regulation)'이며, 거시적으로 볼 때 종교경제는 중세의 독점적인 상황(높은 종교외적 규제)에서 근대 이후 좀더 다원적인 상황(낮은 종교외적 규제)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국가의 종교 개입 등 종교외적(宗敎外的) 규제의 정도가 아주 낮거나 없다면 종교다원주의가 번성할 것이고, 종교전문가들은 종교다원주의로 인해 더욱 치열해진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종교적 혁신(종교상품이나 서비스의 개선)에 전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종교 소비자들은 보다 질 높은 서비스를 향유하게 됨에 따라 만족도 또한 높아지리라는 것이다. 또 종교외적 규제의 정도가 높고 종교독점주의가 지배적인 상황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비록 '비유적인' 맥락에서 경제학적인 용어들이 차용되고 있을 뿐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종교다원주의와 연계시켜 근대사회에 종교의 상품화, 종교영역의 시장화(marketization)로의 구조적 압력이 존재함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해서도 많은 통찰들을 제공한다. 그러나 여기서 두 가지의 쟁점이 제기된다. 그 하나는 "자본주의와 종교다원주의의 관계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종교에 대한 경제학적 '비유'를 넘어, 종교영역의 상당 부분이 '실제로' 시장경제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전자의 쟁점은 방대한 역사적 자료들을 검토해야 해결이 가능한 문제로, 이 글의 목적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쟁점은 이 글의 후반부에서 상세히 다룰 것인데, 여기서 종교시장모델을 좀더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확장시켜 볼 것이다.

    3. 자본주의에 대한 동조

    (1) 동조의 구조적 가능성

    과연 자본주의는 종교와 분리됨으로써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신화 결핍적"인 경제체제가 되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탈(脫)종교화' 주장은 어떤 면에서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이데올로기적 주장이기도 하다. 종교가 지배계급의 신적인 기원을 승인하고, 신이 정해준 보편적인 질서임을 내세워 신분제도의 운명론적인 수용을 강요함으로써 경제적 재생산에 기여한 대가로 국가 강제력에 의존하여 십일조 등 방대한 종교세를 강제 징수하던 중세적 관행이 근대로의 이행과정에서 점차 사라진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종교와 경제는 분리되었고, 경제가 종교로부터 해방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자본주의가 독자적인 '신화'를 형성하고 그 자체가 또 다른 '종교'로 기능하는 측면도 확인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세속화되었을 뿐 아니라 그와 동시에 신화화, 성화(聖化)되기도 한 것이다. 맑스와 베버는 일찍이 '물신주의(fetishism)'나 '자본주의 정신'(spirit of capitalism) 등의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의 재생산을 돕는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가 존재함을 강력히 시사한 바 있다. 베버의 자본주의 '정신'은 힌켈라메르트(Hinkelammert)에 의해 자본주의의 '영'이라는 신학적 재해석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옹호자들은 핵심가치로서의 경쟁이 경제적 부와 효율성의 극대화 뿐 아니라, 인간 잠재력과 창의성의 계발, 자유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기초 역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월러스틴은 최근 이를 '자본주의 문명(capitalist civilization)'이라는 개념을 통해 접근하고자 했는데, 그에 따르면 '시장을 통한 공동선의 실현'이라는 자본주의의 약속은 '묵시론적' 성격마저 띠고 있다. 로이(Loy)는 오늘날 경제학은 과학이기보다 신학이며, 시장을 신격화하는 '시장의 종교(religion of the market)'가 자본주의의 이단이었던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역사상 최초로 진정한 의미의 '세계종교'가 되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와 유사하게 김항섭은 신자유주의 담론이 자체의 신, 교회, 사제, 윤리, 악마론 등을 고루 갖춘, 강력한 '종교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상의 간략한 고찰을 기초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통찰들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1) 종교-경제 분리라는 역사 과정의 정확한 의미는 '경제의 탈종교화, 비신화화'라기보다는 '경제의 탈기독교화, 탈제도종교화'에 있다고 볼 수 있고, 오히려 서구적인 종교-경제 분리를 계기로 자본주의 경제가 새로운 방식으로 '재(再)신화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특정의, 제도화된 종교(즉 기독교 교회)와 결별하고 그것의 제도적 굴레에서 해방됨으로써 시장 신화의 설득력은 더욱 '강력해졌고', 특정의 종교를 승인하지 않고도 자본주의적 가치를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수용자의 범위 또한 최대한 '넓어졌다'. '특정' 종교와 제도적으로 분리됨으로써, 자본주의는 오히려 기독교를 포함하는 세계의 '모든' 종교문화와 '보편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종교와 경제의 제도적 분리는 두 사회제도의 관계 방식도 크게 변화시켰다.
    3) 무엇보다도, 종교-경제 분리에 따라 종교가 경제적 재생산에 관여하는 방식은 봉건적 제도에서의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방식에서 자본주의에서의 '간접적이고, 비가시적인' 방식으로 변화되었다. 종교는 더 이상 '손쉽게'(많은 경우 '자동적으로') 경제잉여의 배분에 참여할 수 없으며,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 어렵사리 경제잉여에 접근해야만 하게 되었다.
    4) 또한 종교-경제의 제도적 분리는 종교의 '비영리적' 이미지를 더욱 뚜렷하게 부각시켜준다. 그리고 근대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부각된 이런 이미지는 종교조직이 경제활동에 뛰어들어 노골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사회 규범적인 제약 요소로 작용한다. 이런 이유로 근대사회에서 종교는 여타 사회제도들에 비해 한층 비경제적인, 어떤 면에서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제도로 '비쳐지게' 되었다.
    5)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종교와 자본주의의 관계가 간접적·비가시적인 것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에, 또 경제의 탈종교화라는 '외양' 때문에,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적 가치들이 용이하게 종교 내부로 침투하고 수용되거나, 반대로 종교인들이 은밀하게 자본주의적 탐욕을 추구하게 될 가능성 또한 생겨난다. 왜 그런가? 우선, 자본주의가 경제체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면, 자본주의에 대해 심각한 종교적인 판단을 앞세워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또한,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경제가 '저기 멀리로' 떨어져 나갔고 종교와 경제가 법적-제도적으로 '무관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 종교인들은 과거처럼 불평등한 경제질서를 신성시함으로써 경제적 불의를 은폐한다거나 가난한 이들에 대한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착취에 가담한다는 죄의식을 더 이상 가질 필요가 없다. 경제가 종교로부터 해방됨과 동시에 종교도 경제적 죄악의 굴레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이다. 이런 두 가지 사실로 인해 종교와 경제 사이의 종교적-심리적 장벽이 거의 사라졌고, 종교인들은 이제 '자유롭게' 자본주의와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종교-경제간 연관의 불투명성과 비가시성은 종교인들의 경제 참여가 더 이상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만들어주며, 종교인들의 부도덕한 경제활동마저도 대중의 이목으로부터 은폐해준다.

    (2) 동조의 양상들

    자본주의의 지배적 가치들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동조는 무엇보다 자본주의에 대한 종교적 강복(降福)과 찬양으로 나타날 것이다. 자본주의를 신의 창조질서와 부합하는 경제체제로 묘사하는 우파 경제신학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 종교들의 극렬한 반공주의 역시 대개의 경우 자본주의에 대한 종교적 축복과 결합되어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동조는 이밖에도 여러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기복주의 통상 '기복주의'는 개인과 그 가족의 재화 및 건강을 도모하는 (집단)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신앙유형을 가리킨다. 기복주의적 종교문화에는 물질적 성공을 지지, 정당화, 조장하는 종교행위들이 넘쳐난다. 대다수 학자들은 한국의 무속, 개신교, 불교가 기복주의적 종교문화에 물들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가장 빠른 양적 성장을 이룬 순복음교회의 성장 비결은 고난보다는 현세적 축복을 강조하는 '축복신학', 그 가운데서도 영혼의 축복, 육신의 건강, 물질적 축복을 동시에 얻는다는, 이른바 '삼박자 축복론'에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 새벽기도회의 참석자 대부분이 남편 사업의 번창과 가족의 건강과 자녀의 대입 합격을 목표 삼아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물신주의 기복주의의 핵심이 신자들의 경제적 성공을 빌어주는 데 있다면, '물신주의'의 핵심은 돈이 종교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커지는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본래 물신주의가 주체(생산자)-객체(생산물)의 전치와 역전으로 특징지어진다면, 종교적 물신주의는 이웃사랑이나 자비 등 본래의 종교적 목적을 훼손시킬 정도로 돈이 종교적 실천의 중심을 이루게 된, 일종의 '수단-목적 전치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물신주의의 정도를 가늠하는 한 척도는 신자들의 재정적 기여(헌금)에 대해 강조하는 정도일 것인데, 오늘날 주요 종교의례들이 '성스런 모금의 시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또 "천국에 간 영혼이 들어갈 살 맨션공사가 한창인데 전도를 한 숫자에 따라 그 크기가 다르며, 다이아몬드 등의 보석을 제조하는 곳이 있어 거대한 파이프를 통해 계속 보석이 쏟아져 내리고 수십만 톤씩 쌓여 있다"는, 1980년대 말 한국에서 50만 부가 팔린 {내가 본 천국}이라는 책을 통해 구원관 자체가 물신화되었음을 확인할 수도 있다. 최근 불교 사찰들의 경쟁적인 '대형 불사(佛事) 붐'이 "대형 불사를 일으켜야 신도와 관광객이 많이 몰린다"는 상업적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도 한국 종교의 물신주의적 풍토를 재삼 확인시켜준다. 교파간의 갈등이나 연합운동이 경제적 이권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계급지배의 관철 자본주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동조의 마지막 양상은 자본주의적 계급지배가 종교조직에도 관철되는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현상은 구체적으로 개별 교회 혹은 교단 안에서 계급적 지위에 따라 신자집단이 분할되는 것, 경제력에 비례하여 종교권력이 재편되는 것 등으로 나타난다. 신자집단의 계급적 단층화(斷層化)와 관련하여, 천주교의 한 주간지는 "신자들끼리 아파트 평수에 따라 어울리지 못해 구역·반 모임이 무산"되거나, "평수가 다른 동에 사는 아이들마저 주일학교에서 어울리지 않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다룬 바 있다. 경제력에 따른 종교권력의 재편은 여러 차원에서 확인되는데, 개별 교회에서 돈 없는 사람들이 장로·사목위원이 되거나 요행히 되었다 해도 그 자리를 계속 감당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실, 그리고 각종 종교연합기관과 평신도단체의 최고위 간부직이 점점 기업인이나 재력가들로 교체되는 현실, 개신교와 불교에서 금권선거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될 정도로 교단의 권력구조에 참여하기 위해 상당한 경제력이 요구되는 현실, 교단간의 관계에서도 재정동원 능력이 교단의 위상 결정에 주요하게 작용하는 현실 등이 그런 예들이다. 또 이런 상황에서는 중·상층계급의 구미와 편의에 맞게 종교활동의 내용, 용어, 시간대 등이 재구성되는 것 또한 자연스럽게 보인다.

    4. 자본주의적 변형: 종교의 상품화와 산업화

    자본주의에 대한 '동조(conformity)'가 자본주의의 핵심 가치들이 종교에 침투하거나 종교인들이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지배적인 종교문화를 구성하게 되는 과정 및 그로 인해 파생되는 양상들을 지칭한다면, 자본주의적 '변형(transformation)'은 종교가 시장경제의 한 부분으로 편입된 결과 종교 자체가 상품화 나아가 산업화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1) 종교의 상품화

    '종교의 상품화(commodification of religion)'는 "종교적 구원재들이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획득하거나 그 가치(상품가치)를 증대시켜 가는 과정"을 가리키는데, 이는 다음의 세 과정과 상호 연관되며, 부분적으로 중첩되어 있다. (1) 구원재들과 화폐의 교환가능성이 증대되는 과정, (2) 구원재 자체가 영리(즉 이윤창출) 활동의 핵심적 소재 내지 자원이 되어 가는 과정, (3)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종교의 구성요소들이 시장을 매개로 생산, 유통, 분배되어 가는 과정.
    구원재와 화폐의 교환가능성은 종교가 상품화되기 위한 필수적 전제조건으로서, '봉헌의 현금화, 화폐화' 현상과 관계가 깊다. 종교전문가와 평신도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종교전문가가 평신도를 지배하는 권력적 관계지만, 종교전문가가 카리스마의 숙달과 축적에 전념하기 위해 평신도의 경제적·비경제적 조력(봉헌)에 의존하고 평신도는 그 대가로 종교전문가들이 수행과정에서 획득한 종교적 구원재를 분배받는다는 의미에서 상호의존과 타협, 교환으로 특징지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봉헌의 현금화'는 평신도가 종교적 구원재를 분배받는 대가를 치르는 방식의 변화를 가리킨다. 즉 봉헌의 형식이 노력봉사를 포함하는 자기희생, 현물 제공, 현금 제공 등의 다양한 형태로부터 현금 제공으로 점차 단순화 내지 일원화되는 것이다. 봉헌의 현금화 현상은 다시금 다음 세 가지 구조적 추세들을 촉진한다.
    1) 종교적 구원재와 돈의 '교환가능성'이 커질수록 구원재에 대한 '구매가능성' 또한 점점 증대되고, 결국에는 양자의 교환행위에서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일정한 '등가성(等價性)'이 생겨난다. 구원재와 화폐의 교환가능성은 '복채(卜債)'라는 용어에 잘 표현되어 있다. "서원기도의 제목을 기록해 넣고 그 봉투 속에 자신이 갖고 있는 제일 귀한 것을 넣어라. 그렇게 하면 내가 기도해서 들어달라고 하겠다"고 요구하는 부흥사들도 구원재와 화폐의 교환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한다. 구원재와 화폐의 교환가능성은 암암리에 구원재에 대한 구매가능성, 즉 "구원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전제하고 있다. 또 교환의 등가성이 자리잡을수록 "대체로 이 서비스에는 얼마 정도 든다", "고급 서비스에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등의 사고방식이 퍼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등가성을 전제로 한 종교적 서비스가 화폐 지불자의 입장에서 만족스럽지 않을 때 종교전문가와 평신도 사이에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도 생겨날 것이다.
    2) 봉헌의 현금화는 오랫동안 봉헌의 지배적 원리였던 '정률제(定率制)' 방식과 아울러(혹은 그것을 대체하여) '정액제(定額制)' 방식이 강력하게 부각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다. 정률제 봉헌은 십일조로 대표되며, 소득에 따른 누진제를 기본원리로 하고 물론 봉헌의 형태도 다양하다. 반면에 정액제 봉헌은 당연히 현금의 형태를 띠며, 구원재의 등급과 효력에 따라 액수가 달라진다. 예컨대 1992년 종말설을 전파한 광주 대방주교회의 실세였던 모 권사는 수한(생명연장)기도에 50만원, 예수 믿지 않고 죽은 조상과 부모의 영혼을 구원하는 데 10만원, 낙태죄 3만원, 간음죄 10만원, 병을 고치는 데는 그 동안 병원에서 든 총액 등 기도의 유형에 따라 금액까지 명시했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정액제 봉헌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이런 정액제 기도 뿐 아니라 일부 기도원들에서는 정액제 안찰, 안수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또 덜 노골적인 형태이긴 하지만, 개신교나 천주교의 감사헌금이나 미사예물도 결혼은 얼마, 장례는 얼마 하는 식으로 '관행적 하한선'이 설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기본 성격 면에서 사실상 정액화되어 가고 있다. 장로, 권사, 집사 등 임직 취임에 부수되는 기부금도 직급에 따라 정액화되는 추세이고, 심지어 성직자의 가정방문에 대한 거마비도 하한선이 정해져 간다. 대표적인 정률제 봉헌 형태인 교무금과 십일조도 어느 정도의 '흥정을 거쳐' 조정된다는 점에서 정액제의 성격을 덧붙여 가고 있다. 대체로 아파트 평수나 월수입에 따르지만 역시 어느 정도의 흥정을 거쳐 일시불 혹은 분납(주로 적금통장을 할당하는) 방식으로 최종적인 액수가 결정되는 건축헌금도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또 전근대사회에서와는 달리 종교조직이 정치권력을 동원하여 봉헌을 강제할 힘이 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액제 봉헌형태에서는 구원의 등급에 따라 책정된 관행적 액수를 개인이 바꾸거나 폐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리고 돈을 내지 않으면 구원재를 획득할 권리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헌금 없이는 구원도 없다"), 현금의 봉헌이 다분히 '강제적인' 성격을 띠어 가며, 그에 따라 종교적 봉헌의 기초를 이루어온 '봉헌자의 자발성' 전제 또한 흔들리게 된다.
    3) "봉헌 액수에 따른 구원재의 차등적 분배"로 요약되는 정액제 봉헌 형태는 정률제 봉헌의 저변에 자리잡은 두 가지 중심적인 전제, 즉 '봉헌자의 성실성' 가정과 그에 의거한 '구원재 분배의 평등성' 가정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여기서 '봉헌자의 성실성' 가정이란 "신자들은 주어진 처지에 맞게 최선의 봉헌을 한다"는 것이고, '구원재 분배의 평등성' 가정은 "신자들이 나름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한 만큼 구원재 분배에서는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액제 봉헌 형태가 확산되면서 이 가정들이 근저에서부터 흔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감사헌금의 액수에 따라 축복의 순서와 강도가 달라지고, 값비싼 크고 화려한 양초나 연등이 앞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더 많이 봉헌한 이들에게 더 많은 축복"이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정액제 봉헌형태에서 소득 누진제 원리는 깨지며, 가난한 이들은 값비싼 고급 구원재에 아예 접근할 수 없게 되므로 종교공동체 안에 자본주의적 계급관계가 빠른 속도로 뿌리내리게 된다.

    한편 상품화될 수 있는 종교의 요소들은 다양하다. 결국 넓은 의미의 구원재 전체가 상품화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구원재의 종류에 따라 구매 가능성이나 상품화의 정도는 큰 차이를 보인다.
    종교적 서비스 여기에는 일상적이거나 주기적인 종교의례, 축성식, 세례, 혼인의례, 장례 및 위령제 등 각종 의례의 집전, 여러 형태의 기도들, 상담, 교육, 종교적 수행 지도, 성지 순례 등이 포함된다. 상품화의 정도는 서비스의 종류에 따라 매우 다양하며, 부수되는 비용의 차이도 크다. 종교적 서비스의 질과 효과를 높이기 위한 '2차적 서비스', 예컨대 종교 컨설팅이나 강론자료 서비스, 각종 조직·재정 관리 및 경영 자료 등도 부상되고 있는데, 이런 서비스들은 대개 상품화되어 있다.
    종교적 상징 성상, 사진, 그림, 음악, 문장(紋章), 의복, 십자가, 부활 양초, 성지(聖地), 종교적 축제…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종교적 상징들의 대부분이 상품의 형태로 유통 혹은 소비되고 있다. 최근에는 예수, 동자승 등의 캐릭터가 개발되어, 부분적으로 상품화되고 있다.
    종교적 주제나 신화 종교의 창시자를 비롯하여, 성인들과 종교적 영웅들의 이야기나 신화, 사후의 삶이나 환생, 지구의 종말 등의 종교적 주제들, UFO 등 신비적이거나 초자연적인 여러 현상들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런 종교적 주제나 신화들은 종교단체는 물론이고, 문화산업의 발달에 따라 거대화된 문화자본에 의해, 영화나 드라마, 연극, 음악, 서적 등의 형태로 적극적으로 상품화되고 있다.
    종교교육의 자료 여기에는 주일학교 교재를 비롯한 서적류, 비디오테입, 각종의 장단기 교육·연수프로그램 등이 포함된다. 이 대부분이 상품화되어 있으며, 물론 가장 수요가 많은 상품은 경전과 성가집이다.
    종교 시설·설비 교회나 사찰의 건물이나 설비, 토지, 묘지나 납골당, 보유 문화재 등이 그 대상이 된다. 교회나 사찰 건물의 신축이나 증축, 종교소유 토지의 매매 등이 자본주의적 시장질서를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고, 종교소유 부동산을 임대해서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근자에는 전문적으로 교회나 사찰을 개척한 후 신도 수와 재산에 따라 권리금을 얹어 매매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종교 소유의 묘지나 납골당은 거의 대부분 상품의 형태로 제공되며, 보유한 문화재에 대해 관람료를 징수하기도 한다.
    종교적 권위 이것은 성직이나 각종 종교기관의 관리·행정직에 부수되는 것으로, 이를 획득함으로써 종교적 카리스마나 신자들의 존경, 의사결정 권력, 부수되는 경제적 보상까지 기대할 수 있다. 종교적 권위의 상품화 정도는 비교적 낮은 편이고, 은밀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돈을 받고 목사안수를 알선하거나 목사직을 돈을 주고 사고 파는 행위 등 성직 매매행위는 극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고, 돈(기부)과 직책의 교환, 금권선거 등 종교권력이 경제력에 따라 재편되는 현상 역시 종교권위가 상품화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사례들이라 할 것이다.

    (2) 종교의 산업화

    종교의 상품화가 진척된다면, 그에 따라 종교산업이 번창하고 종교 전반의 산업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여기서 '종교의 산업화(industrialization of religion)'는 "종교적 구원재를 영리활동의 핵심적 소재 내지 자원으로서 조직적으로 활용하는 행위가 증가하고, 이것이 점차 제도화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종교활동이 시장경제에 편입된 정도와 영리성을 추구하는 정도에 따라, 종교의 산업화는 여러 수준과 영역에서 불균등하게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종교의 산업화를 시장경제에 완전하게 편입되어 있고 영리성이 강한 경우, 그리고 시장경제에 부분적으로 편입되어 있으면서 점차 영리성을 강화하거나 그러한 징후를 강하게 드러내는 경우로 크게 구분해볼 수 있다. 먼저 전자의 경우에 종교활동은 사실상 자본주의적 기업활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며, 대체로 다음과 같은 영역들이 포함되어 있다.

    점술(占術)산업 시기에 따른 다소의 부침은 거쳤을지라도 가장 오래되고 가장 일찍 산업화된 부분이다. 현행 한국표준산업분류에 따르면, 이 활동은 "기타 서비스업"의 "점술업"에 해당된다. 점술업(Astrological services)은 "예언술, 구상술, 관상(觀相) 및 골상학(骨相學), 점성술 등에 의한 점술 및 유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활동"으로 정의된다. 1950년대만 해도 이런 활동에 종사하는 이들이 정부에 의해 이른바 '미신업자'로 간주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어엿한 "직업"으로, "산업활동"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점술산업은 1990년대에 급성장한 산업이기도 하다. 더욱이 1997년 말의 IMF 사태 이후 경제불황과 실업사태, 그리고 정보화로 대표되는 급속한 사회변동의 흐름을 타고 이 산업은 더욱 팽창한 것으로 보인다. 중년 이상의 저학력층으로 대표되던 전통적 수요자집단에 덧붙여, 최근에는 대학생이나 벤처기업 종사자 등 고학력의 젊은층이 이 산업의 주요 구매자들로 새로이 편입되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점술산업은 세 측면에서 발전의 전기를 맞고 있다. 그 하나는 정보화 추세에 편승하여 소규모 자영업 형태로 머물러 있던 점술업이 대형 통신사업자와 연계하여 급속히 대형화됨으로써 일종의 "점복주식회사"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고, 이 기업들은 중앙일간지들을 이용한 대대적인 광고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인터넷을 이용하여 운세·역학·무속 사이트들을 개설하고 운세상담, 사주, 관상, 궁합, 부적, 각종 점술을 상품화하여 통신요금 수입을 올리는 점술산업이 번창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대학가에 등장한 '철학카페'나 '사주카페' 등의 신종 점술업체들인데, 이 업소들은 젊은층을 주 고객으로 삼으면서 영업장의 외형이나 내장 면에서도 종전의 판에 박힌 이미지의 과감한 변모를 시도하고 있다.

    기공(氣功)산업 기공산업은 전통적인 종교적 수련법을 상품화한 영역으로, 대부분 정신적·육체적 건강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된 1980년대 이후에 등장했다. 관련 업체들은 단전호흡, 명상, 기수련·기체조·기치료 등을 서비스의 내용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 가운데 최대 기업은 '주식회사 단학선원'으로, 1985년 설립된 이래 국내에 300개 이상의 수련원을 설치했고 1994년에는 미국에도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등 국외에도 50여 개의 지원을 두고 있다. 단학선원은 이들 수련원을 통한 회비 수입 외에도 자체 설립한 출판사나 월간지를 통해 상당한 출판 수익 또한 올리고 있다. 기업화된 형태는 아니지만, 단전호흡이나 단학, 국선도, 명상, 요가 등은 이미 지방자치단체, 복지관, 각종 문화센터, 스포츠센터들이 운영하는 여러 생활체육이나 취미교실, 노인교실 등의 상업적 혹은 준상업적인 프로그램으로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도시의 시민전용 선방이 전국에 30곳이 넘고, 요가를 수련하는 도장도 전국에 200곳이 넘는다고 한다. 이제 기공에 대한 관심과 실행은 사회지도층과 저변을 망라하는 하나의 대중적 유행으로 퍼져가고 있고, 이것이 '기공산업'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각종 교육기관과 과학자, 의사들이 과학적 정당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도 기공산업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있다.

    통과의례산업 과거에는 대부분 종교기관에 의해 수행되던 통과의례들이 독자적인 산업으로 발전한 경우로서, 결혼식, 장례식, 화장·매장의례 등의 영역이 여기에 포함된다. 한국사회의 근대화가 진척되면서 도시에 등장하기 시작한 예식장과 장의사, 그리고 도시 근교에 위치한 공원묘지 등이 이 산업의 선구자들이라 할 수 있다. 현재 표준산업분류상 '장례식장 및 장의업', '묘지 및 화장업', '예식장업' 등이 점술업 등과 함께 '기타 서비스업'의 일환으로 국가에 의해 인정되고 있다. 장례식장 및 장의업, 묘지 및 화장업 역시 정보화의 진전과 인터넷 이용의 급격한 증가가 시장 유통을 더욱 활성화시키고 있으며, 대학에도 관련 학과가 개설되는 등 확대 추세에 놓여 있다.

    종교산업(Ⅰ) 종교산업은 두 가지 하위범주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 하나는 종교단체가 '선교' 목적으로 설립하여 운영하는 기관이나 활동들이 점차 기업화한 것으로, 이 산업활동의 고객은 신자를 포함한 시민 전체이다. 정부의 산업분류방식에 따르면, 종교산업은 일차적으로 "종교단체가 포교시설과는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출판, 교육, 의료, 복지사업"을 가리키며, 이 사업들은 각각 출판업, 교육 서비스업, 의료업, 수용 복지시설 등의 '영리적-산업적' 활동으로 간주된다. 특히 종교단체들은 1980년대 말부터 중앙일간지를 창간하는 등 '신문 발행업'(출판업에 포함됨)에 의욕적으로 진출해왔다. 또한 위의 네 산업 영역에는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1980년대 말부터 활성화된, 종교단체가 설립하고 운영하는 다수의 방송국들이 새로이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종교산업의 첫 번째 범주는 처음에는 비영리조직으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시장경제에 편입된 정도가 아주 높고 영리성 또한 강하게 변화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업체들은 경쟁의 압력 속에서 생존을 위해 영리성을 강화해나감으로써, 현재에는 기존 업체들과 다를 바 없이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종교계통의 복지 및 교육시설들이 과연 완전히 시장경제에 편입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데, 이 시설들은 비영리성과 공익성을 인정받아 상당한 액수의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특히 복지시설의 경우 자체 사업 수입 및 정부 보조금 뿐 아니라 신자들의 자발적인 후원금이 시설 운영에 중요한 재원이 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계통 학교나 복지 시설들이 이미 상당한 수익을 올려왔을 뿐 아니라 '경영마인드'가 갈수록 강조되고 있고, 꽃동네 등 일부 복지시설은 초대형화되고 있다. 개신교의 수많은 무인가 신학교들이 수용인원을 초과하는 학생들을 뽑아놓고 '가짜 학위'를 남발해온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대학 설치 기준이 완화되어 상당수 무인가 신학교들이 대학원대학으로 전환된 뒤에도 무인가 '학위장사'가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최근 확인되었다. 또 일부 종교계통 복지시설들에서는 수용자들에 대한 강제노역과 착취를 통한 치부행위가 심각한 상황이고, 이 시설들에 기탁되는 신자들의 후원금이나 정부 보조금의 유용 문제 또한 자주 불거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종교산업의 첫 번째 범주 중 교육 및 복지 사업체는 영리기업으로의 과도적 이행기에 처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산업(Ⅱ) 잠재적 신자(비신자)들을 대상으로 '선교' 목적이 보다 강한 출판, 교육, 의료, 복지, 방송사업 등이 종교산업의 첫 번째 하위범주라면, 종교산업의 두 번째 하위범주는 "신자들을 배타적으로 혹은 일차적으로 겨냥한 영리적 활동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범주의 종교산업은 종교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광범위한 수요가 발생함으로써 발생하고 또한 번창하게 된다. 많은 경우, 이런 활동은 종교단체가 직접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 서적, 음반, 비디오, 건축 및 관련 설비, 그리고 앞서 거론한 '2차적 종교 서비스'…등 매우 다양한 영리적 활동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종교의 기업 설립·인수·운영 이것은 종교단체가 선교나 신자 재교육 등의 종교적 목적과는 거의 관계없이, 순전히 자산 증식이나 재정 수입 증대를 목적으로 기업을 설립 혹은 인수하여 운영하는 활동을 가리킨다. 몇몇 종교 관련 기업들은 재벌급의 규모에 이르렀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통일교에서 설립한 통일그룹, '오대양사건'과 관련된 (주)세모, '아가동산'의 음반유통업체들, '천존회'의 'FM그룹'을 들 수 있다. 불교 조계종단도 농지개혁 때 지가증권을 팔아 운수회사 등 다수의 기업들을 인수·운영한 적이 있었고, 천주교 대구교구도 매일신문사를 통해 1987년부터 팔공산골프장을 건설하여 운영해왔다. 최근 순복음교회는 5만여 명의 신자들로부터 모은 [국민일보] 평생구독 회비 370억 원을 관리하기 위해 '종합신문판매(주)'를 설립하기도 했다.

    문화자본에 의한 종교의 상품화 이것은 종교가 상업화된 대중문화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어 상품가치를 갖는 아이템으로 부각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또 이 현상은 문화자본이 나서서 상품성이 있는 종교적 소재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해나감으로써 종교의 산업화가 진전된다는 점에서, '소극적 의미의 종교 산업화'라 할 수 있다. 문화산업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는 근자의 현상이기도 하다. 종교적 소재 혹은 주제를 상품화하는 데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분야는 영화와 출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은행나무침대'(1996)와 속편인 '단적비연수'(2000), '고스트맘마'(1997), '여고괴담'(1998)과 속편인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 '퇴마록'(1998), '자귀모'(1999) 등의 영화들이 1990년대 중반 이후 대규모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이 영화들의 성공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작품을 TV드라마, 소설, 패러디 비디오, 애니메이션 등 다른 문화산업 영역들로 파급시켰다. 한편 출판계에서는 1993년에 처음 PC통신 소설로 등장한 이우혁의 '퇴마록' 이후 "신과 인간, 실제와 허구가 불분명하게 섞이는 초현실적, 초자연적 가상의 세계"를 다루는 판타지 소설이 10∼20대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으로 "충격적인 문화현상"으로 떠오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문·잡지마다 운세 코너를 앞다퉈 도입하는 가운데, 무속인의 저서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는 {내가 본 천국}, {다가오는 미래} 등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종말론의 상품화'가 활발했다. 티벳 불교, 힌두교 등이 '∼신드롬'이라는 형태로 대중문화적 유행을 타고, 최근 상업광고의 소재로 종교인들이 빈번하게 등장하게 된 것도 문화자본에 의한 종교의 상품화 현상을 잘 보여준다.

    5. 영혼주식회사?

    이 절에서 다뤄야 할 대상은 "시장경제에 부분적으로 편입되어 있으면서 점차 영리성을 강화하거나 그러한 징후를 강하게 드러내는 종교활동"으로, 특히 개개의 교회나 사찰 등 '본연의' 종교조직들이 과연 또한 어느 정도나 산업화되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최근 한 시인은 "우리의 교회들과 사찰은 더 이상 종교단체가 아니라, 일종의 '영혼주식회사'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에 화답하듯이, 금년 4월 초 출범한 '개혁을 위한 종교NGO네트워크'도 발족선언문에서 "복을 빌고 복을 파는 위선과 기만에 찬 '영혼 주식회사'가 성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런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응답이 가능할 것 같다.

    1) 높은 수익성 투자에 대비한 수익성으로만 따진다면, 이만한 사업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것은 대형화된 교회나 사찰에 해당되는 이야기이지만, 한국에 대형 교회나 사찰이 유난히 많다는 게 문제이다. 요컨대, "방대한 수입이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세금으로 떼이는 것도 없이, 수입에 대한 사후 감사나 견제가 부실한 가운데" 생겨나는 것이다.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은 단연 개신교로서, 값비싼 부동산을 헌납하는 이들도 적지 않고, 직책을 받은 이들은 대부분 그 대가로 거액의 특별헌금을 바친다. 신자들이 무급으로 선교나 포교 활동에 나서기 때문에 많은 투자가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신자들이 교회 관리를 위해 봉사하므로 최소한의 사무·관리원만 고용하면 되고, 이들에게 주어지는 임금도 일반 회사에 비해 아주 낮다. 불교 조계종은 1999년 한 해에만 '문화재관람료' 명목으로 267억 원을 벌어들였는데, 최고의 관람료 수입을 올린 불국사의 경우 이 해에 42억 3천만 원의 수입을 올렸다. 문제는 국립공원에 위치한 19개의 사찰들은 국가공무원들이 관람료를 '대신' 걷어 갖다주고 있다는 것이고, 2000년 5월 시민단체가 문화재관람료 반환소송을 제기할 정도로 국민적인 저항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종교 신자들을 포함한 관광객 전체에게' 여전히 관람료가 강제로 징수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문화재 수리 보존비' 명목으로 국립공원 입장료의 10∼30%를 공원 내 사찰에 제공하던 관행이 1997년 11월 이후 강제조항으로 법제화됨으로써, 이른바 '관람료사찰' 혹은 '관광사찰'들은 막대한 관람료 외에도 매년 10억 원 이상의 입장료 수입까지 안정적으로 제공받게 되었다. 더욱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관람료사찰이 급속히 늘었으며, 조계종은 2000년 12월 관람료를 30%나 인상하여 또 한번 시민단체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쳤다.
    불교 사찰들은 납골당 분양을 통해서도 큰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특히 도심 사찰의 납골당이 불교신자는 물론이고 비신자들에게도 큰 인기라고 한다. 도심 사찰들은 보통 1000∼3000기의 소규모 납골당을 짓고 회원인 경우 1기당 200∼300만 원에 분양한다고 하는데, 따라서 이를 모두 분양할 경우 20∼90억 원의 수입이 발생한다. 미국의 '크리스찬월드' 지가 발표한 세계 50대 개신교 교회에 한국 교회들이 무려 23곳이나 포함되어 있는데, 10대 교회 중 한국 교회가 5곳을 차지하며, 출석교인이 10만 명을 상회하는 교회는 한국의 두 교회뿐이었다. 현재 한국에는 성인 신자가 1만 명 이상인 개신교 교회가 14개, 성인 신자 1천명 이상인 교회가 1천 개나 된다고 한다. 도시에 자리잡은 천주교 교회들도 대체로 대형화되어 있다. 이 대형교회들의 현금 수입이 엄청날 것은 분명하다. 세계 최대 교회인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경우, 1988년 [국민일보]를 창간한 후 매월 20억 원씩 경영자금을 지원하는 등 창간 이후 1999년 9월까지 지원한 돈이 무려 6,400억 원에 달한다고 하는데, 이 점만 보아도 이 교회의 수입이 과연 어느 정도일지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개신교 계통의 대형 기도원들도 상당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2) 재정의 사유화 경향과 불투명성 교회나 사찰의 매매행위는 종교 재정이 종교전문가에 의해 완전히 사유화되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충현교회, 광림교회, 성락교회 등 초대형교회들에서 이미 진행되었거나 현재 진행 중인 '교회 세습' 역시 종교전문가가 교회를 사유물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더욱이 100여 개의 대형 개신교 교회들이 담임목사의 은퇴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개신교 목사들의 65%가 담임목사직을 자녀에게 세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교회 세습 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교회 재산을 담보로 담임목사 아들의 사업자금을 대주고, 교회가 설립한 기업의 경영을 담임목사의 친족에게 맡긴 여의도 순복음교회 역시 교회재정의 사유화 추세를 확인시켜주는 예이다. 교회 부동산이 목사 개인 명의로 등기된 경우도 적지 않다. 성직자의 자리 이동이 개별 종교조직에 완전히 위임되고 성직자의 결혼이 허용되어 있을 때, 이러한 가능성은 한층 커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천주교에서도 사제에 의한 대규모의 공금 유용 혹은 횡령 의혹이 몇 차례 제기되었고, 결국 인천교구의 한 본당에서는 1999년 2월 신자들이 공금 횡령 및 유용 혐의로 신부를 형사고발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불교계의 경우 지난 5년 동안만도 10여건의 크고 작은 공금 횡령 혹은 유용 사건이 발생했다. 나아가 국립공원체제가 시작된 후 대형 사찰들에 돈이 넘치면서 '은처승(隱妻僧)'이 공개 비밀이 될 정도로 보편화되고, 이중호적을 유지하면서 가족들에게 종교 재산을 빼돌리는 일도 잦아 승려법으로 엄하게 제재하는 사유재산 금지령이 유명무실화되고 있다고 한다.
    종교 재정 사유화를 보여주는 예는 상급기관에 대한 분담금을 적게 내기 위해 혹은 다른 목적으로 수입을 축소보고 하거나 이중장부를 작성하는 관행이다. 이런 관행은 물론 '개교회주의'의 발로라고 할 수 있지만, 정직하지 못한 돈 관리에 의해 공식적 회계에서 누락된 부분은 언제든 개인적 치부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된다. 예컨대 교단 부담금을 적게 내기 위해 경상회계 결산액을 축소하는 오래된 관행을 시정하자는 움직임이 감리교에서 벌어졌던 일, 혹은 조계종 총무원이 실사를 통해 산하 사찰들 대부분이 실제 수입의 30∼60%만 공식장부에 기록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보도 등을 통해 종교계의 재정축소보고 실상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종교 재정 사유화의 결과이자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는 재정 운용의 비공개성과 불투명성이다. 이 때문에 '공적인' 수입과 자산의 '사적인' 성격이 강화되고, 종교 자산의 사유화 가능성 또한 커지는 것이다. 또 헌금과 기부금의 수입-사용 내역에 대해 조세당국에 신고할 의무를 면제받는 특권이 불투명한 재정 운용 현실과 결합하여, 최순영 대한생명 회장의 외화 밀반출 및 횡령사건이나 조기현 청우건설 회장의 상무대비리사건 등에서 보듯이 교회나 사찰이 수십∼수천억 원 규모의 돈세탁 혹은 탈세의 통로로 이용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개혁을 위한 종교NGO네트워크'가 "교단재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교단재정이 종교 목적에 맞게 바르게 쓰여지도록 하는 활동을 전개할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내세우고 있을 만큼 종교 재정은 비공개적이고 또한 불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 불교의 경우 1997년에야 조계종 교구본사로는 처음으로 백양사가 사찰재정 현황을 처음으로 공개했을 만큼 재정 전반이 베일에 싸여 있었다. 전국 238개 개신교 교회의 회계제도에 대한 조사에서도 헌금의 사용에 대해 신자들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구분하지 않는 교회가 47%에 달해 특별한 목적을 위해 걷힌 헌금이 적절한 통제 없이 전용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천주교의 경우, 대부분의 교구에서 재무평의회는 사제들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재무평의회를 설치한 본당은 거의 없다. 대신 대부분의 본당은 사목평의회 산하에 재정분과를 두고 있으나 위원 임명권은 본당 신부가 독점하고 있고, 재정 집행의 최종 결정권자도 본당 신부이며, 감사제도를 두고 있는 본당도 거의 없다.

    3) 물량주의와 성장주의 종교의 기업화 추세를 보여주는 또 다른 현상은 종교조직 자체가 물량주의와 성장지상주의에 빠져드는 것이다. 노치준 교수는 한국 개신교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로써 '물량주의'를 거론하면서, 이를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物)과 수치로써 측정할 수 있는 것(量)을 가장 중요시하면서 그것을 확장하고자 하는 태도"로 정의한 바 있다. 물량주의적 태도가 지배적일 때, 신도의 숫자, 건물의 크기, 헌금의 규모 등을 비롯하여, 성직자의 사례비와 승용차모델에 이르기까지 물량적 지표들이 종교적 성공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자리잡게 된다.
    한편 '성장주의'는 "물량적 성장을 향한 무한한, 무절제한 욕망"으로 특징지어진다. 지역 주민들과 기존 신자들을 놓고 단위 종교조직 사이에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고, 마치 대형 할인점에 의해 동네의 소매점들이 질식당하듯이 대형 조직이 군소 조직을 질식시키는 현상이 나타난다. 우리는 종교적 다원상황이 독점상황보다, 그리고 분권적 종교조직이 중앙집권적 종교조직보다 강한 경쟁의 압력으로 인해 시장논리의 침투에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형적인 종교다원주의에 의해 지배되는 한국사회에서 대부분의 종교들은 격심한 종교적 경쟁상황의 압력 속에서 독점과 정복의 논리를 좇고 있으며,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종교적 제국주의'에 다름 아니다. 천주교의 각 교구들이 1990년대 이후 방송국·신문사·신학교의 설립, 성지 개발 등 대형 사업들을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는 것, 불교 사찰들의 대형불사 붐과 문중 중심의 세 확장 경쟁에서도 우리는 대형화와 무한 성장을 향한 강렬한 욕망을 느낄 수 있다.

    4) 재정 운용의 '내부화' 성장주의의 한 양태이자 결과는 재정 운용의 폐쇄성과 '내부화(internalization)' 현상이다. 경쟁 압력 속에서 무한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이 그러하듯이, 수집된 재원은 거의 전적으로 내부 용도로만 축적되고 재투자된다. 자기 조직 '바깥으로' 나가는 돈은 최저 수준으로 통제된다. 1992년의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 교회들이 선교비, 상회비(上會費), 사회봉사비 등의 명목으로 외부로 돌리는 재정은 전체의 12.0%선에 머물러 있다. 다른 종교들의 경우 이런 유의 자료를 발견할 수 없지만,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수입을 축소 보고해서라도 상급 기관에 내는 분담금을 기피하는 태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무엇보다 종교의 비영리성과 공익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역인 사회봉사비가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아주 낮다. 이미 인용한 1992년의 개신교 관련 자료에 의하면, 전체 재정 대비 사회봉사비 비율이 3.9%였다. 또 1996년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가 실시한 전국적인 조사는 본당 재정 중 사회봉사비 비율이 평균 4.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불교의 사회복지활동이 개신교나 천주교에 비해 현저히 빈약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5) '규모의 경제'와 계열화 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종교전문가들은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와 그로 인한 '규모의 이익' 또한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을 겸한 예배소, 유치원이 입주해 있는 교육관, 기도원이나 수양관, 자체 공동묘지 혹은 납골당, 나아가 (가능하다면) 각급 학교, 자체 신학교육기관, 복지시설, 영안실, 신용협동조합 등을 고루 갖춘 종교조직이 인접해 있는 한, 그 조직과 경쟁하여 성장을 계속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일정한 신자 규모와 재정, 설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반면에 앞서의 요소들을 두루 갖추는 데 일단 성공하면, 그 종교조직은 비교적 적은 투입만으로도 더 많은 생산성(더 많은 신자와 재정 수입)을 낼 수 있다. 규모에 따른 다른 추가적인 이득도 기대할 수 있는데, 이런 규모를 갖추면 이 자체가 인센티브가 되어 더 많은 신자들(예컨대 젊은 부모들과 노인들)을 유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유치원과 묘지 등이 새로운 재정 수입원으로 작용하기 시작하며, 인구비례 원리 혹은 재정적 기여도 원리를 따르는 종교정치에서도 좋은 자리가 보장되며, 성직자의 높은 위상이 그 조직의 위광을 높여줌으로써 다시금 새 신자 유치에 도움이 되는 피드백 효과도 발생한다. 한편 불교의 경우 '규모의 이익' 논리는 다음과 같이 다소 변형된 형태로 관철된다고 한다. "돈이 있어야 거대한 문중을 형성하여 후계자를 양성할 수 있고, 그런 돈의 집적을 위해서는 거대 사찰을 장악해야 하며, 다시 거대 사찰을 장기적으로 점유하기 위해 조계종 종단의 종권을 장악해야 하고, 종권 장악에는 정치권력과의 관계 유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여러 측면들이 결합하여, 조직의 관리자에게 어느 정도의 규모 확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지상명령'이 된다. "성장하지 못하면 고사 당한다."
    몇몇 초대형 교회들의 성장 패턴에서 발견되는 한 특징은 지교회 혹은 지성전을 설립하여 마치 대기업처럼 '하청 계열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교회를 개척하여 독립시키거나, 영세한 교회를 재정적으로 지원하여 영향권 내에 두는 것과는 판이한 방식이다. 교회의 수직적인 계열화를 통해 광대한 지역에 산재한 신자들이 하나의 교회로 통합된다. 이 교회들은 많은 경우 멀티미디어를 이용하여 예배의식을 부분적으로 공유하고 있고, 인사는 물론이고 재정까지 통합된 경우도 있다. 특히 계열 교회들의 재정이 통합 운용될 경우 매주 엄청난 재정 수입이 보장될 것이다. 말하자면, 지교회들에서 걷힌 헌금이 매주 월요일 아침에 모교회(母敎會) 혹은 본부 교회의 통장으로 입금되고, 지교회들은 필요에 따라 모교회로부터 자금을 타다 쓰는 방식인 것이다.

    6) 성직자의 CEO화, 성직자-평신도 관계의 변질 조직 규모의 증대는 한편으로 관리 부담의 증대를 불러옴으로써 조직의 관료화를 촉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직자를 기업의 최고경영자처럼 변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조직이 대형화되면서 부서 체계와 의사결정구조는 더욱 중층화되고 복잡해지며, 성직자는 하위 성직자, 준(準)종교전문가, 평신도 사무원, 기능직원 등을 거느리고 조직을 관리하고 경영해나간다. 대부분의 평신도는 성직자를 직접 만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헌금을 내고 의례에 참여할 따름이지 복잡한 조직 운영의 내막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게 된다. 또한 신자 수, 건물 크기, 헌금 규모 등 물량적 지표들이 종교적 성공의 기준으로 자리잡을수록, 규모에 비례한 성직자의 보수 책정은 자연스런 관행이 되어간다. 물론 천주교와 불교의 성직자 봉급은 액수가 중앙에서 일률적으로 책정되고 아주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으나, 이런 공식적인 규정에도 불구하고 '규모에 비례한 보수의 원리'는 대체로 관철된다. 이 때문에 이른바 "물 좋은" 본당이나 사찰로 배치되기 위한 인사청탁이 적지 않은 것이다. 성직자들의 주택, 부식비, 차량유지비, 자녀교육비도 교회에서 부담하며, 가정방문, 결혼, 장례, 세례 등 일상적인 종교적 서비스에 대해 별도의, 적지 않은 사례비가 제공된다. 또 종교조직이 대형화되면서, 주거, 레저, 취미, 자동차, 음식…등에서 성직자들의 귀족적인 생활양식 또한 자연스런 풍경이 되어간다.
    한편 종교조직의 비대화·관료화에 따라 평신도가 조직 운영에서 분리되는 추세와 '나란히', (이 글의 2절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가 점점 상품의 판매자-소비자의 관계처럼 변화되는 경향 또한 나타난다. 한 천주교 신부의 표현을 빌자면, 이 관계는 "신자들을 최고의 손님으로 모신다. 본당신부, 수도자, 봉사자들은 손님들을 위해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6. 종교 상품화·산업화의 딜레마: 결론을 대신하여

    이 글에서 초점을 맞춘 한국 종교의 여러 양상들은 결국 '자본주의에 굴복한', 혹은 '자본주의의 포로가 된'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분석했듯이, 그것은 한편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동조, 다른 한편으로 종교의 상품화·산업화를 축으로 하는 종교의 자본주의적 변형이라는 구조적 변동의 산물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는 결론을 대신하여, 종교의 자본주의적 변형과정에 내포되어 있는 자기모순, 그리고 그로 인한 딜레마들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나는 3절에서 근대적인 종교-경제의 분리로 인해 종교는 두드러지게 비영리적인 이미지를 얻게 되었으며, 어떤 면에서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제도로까지 비쳐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근대사회에서 '종교-경제간 연관의 간접성·비가시성'과 결합된 '종교의 비영리적 이미지'가 수행하는 양면적 기능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다. 이런 면에서 근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종교-경제의 분리는 종교를 대표적인 '비영리조직(NPO: nonprofit organizations)'으로 분류하는 데, 그리고 그에 따라 종교에 면세 혜택을 부여하는 데 구조적인 기초를 제공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종교의 상품화 및 산업화 추세는 몇 가지 측면에서 종교조직의 비영리성과 면세 혜택의 근거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의 종교단체들은 '비영리법인' 중에서도 '공익법인'으로 분류되어 거의 모든 세금을 면제받고 있으며, 선진국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많은 세제혜택을 누리고 있다. 현대의 법률체계에서 종교조직에 주어진 헌금이나 기부금을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근거들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과세 대상 소득의 부재 혹은 과소함"(종교가 원래부터 비영리조직이므로 과세할 만한 순소득이 아예 없거나 무시할 만큼 적을 것이라는 것), "종교의 공익성"(종교가 수행하는 활동이 기부자 개인의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니고 공동체 전반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라는 두 가지는 두루 인정되고 있다. 문제는 이 전제들이 현재 과연 충족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첫 번째 전제는 이 글에서 분석한 종교의 산업화 추세에 의해 도전 받고 있다. 이미 기업의 형태를 갖춘 활동은 당연히 과세 대상이 되므로 문제될 것이 없겠으나, 종교와 기업의 모호한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이 점점 증가되고 그로 인한 소득도 커지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더욱이 이런 활동은 종교의 비영리성에 대한 시민사회의 규범적 기대와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또 두 번째 전제는 재정 운용의 '내부화' 경향으로 인해 종교의 공익성을 대표하는 사회봉사 영역의 재정 지출이 아주 미미한 현실에 의해 도전 받는다.
    또한, 대형화된 교회나 사찰의 성직자들이 고소득을 올리고 귀족적인 생활양식에 젖어들면서도 세금을 면제받는 현실도 이들에 대한 면세 조치의 근본 전제와 모순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성직자의 소득, 그리고 사택의 임대가치 혹은 (사택이 주어지지 않을 경우의) 주거보조금에 대한 면세 조치의 근거가 되는 원칙은 이들이 성직을 받을 때 '청빈선언(vow of poverty)'을 했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성직자나 수도자들이 스스로 '가난하게 살기로' 엄숙히 선언한 이상, 그것을 존중하여 그들의 소득이나 주거와 관련된 수입에 대해 면세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성직자들이 더 이상 가난하지도 않을뿐더러 교회 규모에 비례한 봉급 증액을 당연시하고 있는데도, 천주교와 극소수의 개신교 목사들을 제외하곤 여전히 세금을 낼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다. 더욱이 유일하게 교단 차원에서 소득세 납부 문제를 공론화한 천주교의 경우 1994년 이후 교구별로 면세점 이상의 월급을 받는 신부들에게 소득세를 내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월급의 몇 배에 달하는 비공식적 수입이 제외될 경우) 신부들의 공식 월급 액수는 대부분 면세점 이하이기 때문에 이 권고사항조차 거의 실효가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의 성직자들은 '비영리성을 명분으로' 하여 '더 많은 면세 혜택'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현재 종교조직이나 성직자에게 주어지는 면세 혜택의 세 가지 근거, 즉 비영리성(순소득의 부재 혹은 과소), 종교활동의 공익성, 성직자의 청빈성 모두가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시민사회의 강력한 저항을 촉발할 것이며, 최근 그런 움직임이 급속히 가시화되고 있다. 또한 종교 측의 늘어나는 수입에 대해 과세하고자 하는 국가와 세제상의 특혜를 유지하려는 종교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도 불가피할 것인데, 이 역시 1990년대 이후부터 이미 빈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종교의 산업화로 인해 종교조직 자체의 기본적 정체성이 심각한 혼란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종교 내부의 개혁운동들은 바로 그런 혼란에 대처하기 위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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