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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 발제] 시온주의와 팔레스타인인의 해방 [카테고리]
  • 최형묵
    조회 수: 3793, 2002.02.26 01:55:12
  • 시온주의와 팔레스타인인의 해방 - 제국주의 지배질서 하에서의 전쟁과 평화의 역설

    최형묵(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상임대표)

    1. 팔레스타인 문제

    "겁에 질린 12살 소년이 아버지 뒤에 숨어 있고, 이스라엘 저격수들은 그들을 향해 총알 세례를 퍼붓고 있었다. 카메라에 잡힌 아버지는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그러다가 아버지와 아들 둘 다 잠잠해졌다. 아들은 죽었고 아버지는 중상을 입었다."(필 마셜, 『인티파다 - 시온주의, 미국과 팔레스타인 저항』, 책갈피, 288쪽)

    팔레스타인 위기의 상징적 사건이 된 무함마드 알-두라의 죽음 장면이다. 1987년 이후 단지 돌로 '무장한' 팔레스타인 젊은이들과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대와의 충돌은 미디어에서 이제 낯익은 장면이 되었다. 도무지 '대결'이라 할 수 없는 그 장면에 익숙해 있으면서도 팔레스타인 문제를 바라보는 일반 사람들의 시각은 그다지 변한 게 없다. 종족간의 뿌리깊은 갈등의 한 현상으로 바라볼 뿐 그 문제의 근원에 대한 인식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국제 정세에 조금 관심을 기울인 사람이라면 '평화회담'이 전개되고 있는 마당에 그와 같은 충돌이 끼칠 부정적 악영향을 우려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조금 진지한 언론이나 지식인들은 아랍 민족주의와 시온주의의 대결 구도를 해명하기도 하며 그 대결의 종교적 배경을 짚어내기도 한다. 특히 9.11 테러 사태 이후 이슬람에 대한 높은 관심에 따라 이슬람과 아랍 민족주의의 상관관계 맥락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조명하는 시각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중동'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문제에 해당하는 그 사태는 그와 같이 모호한 일반화로 해명할 수 없는(참조. 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 성일권 편역,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229쪽) 분명한 역사적 기원을 갖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봉기가 '평화회담'에 걸림돌이 되는 것도 어느 면에서는 사실이고, 또한 종족적 종교적 갈등 양상이 겹쳐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현상은 근본적인 갈등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하랄트 뮐러, 『문명의 공존』, 112쪽). 팔레스타인 문제는 1948년 시온주의를 따르는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강점이라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부터 촉발되었다.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강점 배경에는 현대 서구 제국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깊게 배어 있다.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정착 운동을 불러일으킨 시온주의 운동의 태동이 서구 제국주의 시대의 유산이며 동시에 현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강점을 뒷받침하고 있는 배경 역시 서구 제국주의라는 점에서 그렇다. 유대인과 아랍인, 이스라엘 정권과 아랍 정권들 사이의 관계 역시 현재 미국을 중심을 하는 서구 제국주의의 규율하에 놓여 있다는 점도 팔레스타인 문제가 단순한 인종적 종교적 갈등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자 하는 팔레스타인 민중과 제국주의와의 숙명적 대결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필 마셜 지음 / 이정구 옮김, 『인티파다 - 시온주의, 미국과 팔레스타인 저항』(책갈피, 2001)을 중심으로 팔레스타인 문제의 성격을 해명하고, 그로부터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들을 검토하려는 시론적 성격의 글이다.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검토를 굳이 '신학적 성찰'이라 규정하지는 않겠다. 신학을 하는 이로서 신학적 성찰의 압박감을 떨칠 수는 없다. 그러나 '신학'이라는 테두리가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게 하기보다는 성급한 일반화와 추상화로 호도하기 쉽다면 차리리 그 부담을 덜어버리는 게 나을 것이다. 이미 서남동 선생께서 '머리(관념)의 길'이 아니라 '몸(실천)의 길'(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310쪽)로서 탈신학 반신학적 글쓰기를 말하지 않았던가. "신학자가 쓴 정치경제 담론은 신학"(이정희, 「신학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하여」, 2001.12. <포럼> 발제문)이라는 말에 기대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접근을 시도해 본다.
    하지만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하는 이로서 부담을 떨칠 수가 없으니, '신학적 성찰'은 아니라 하더라도 모종의 '가교'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는 해볼 참이다.

    2. 서구 제국주의와 시온주의

    오늘의 팔레스타인 사태를 이해하는 데서 가장 먼저 해명되어야 할 것은 시온주의 운동이다. 시온주의 운동은 19세기 유럽 자본주의 위기의 산물이었다. 선진 서유럽의 유대인들은 대개 자본주의적 체제에 동화되어 있었지만, 후진 동유럽에 자본주의가 침투함에 따라 봉건 경제구조에 의존하고 있던 유대인들은 위협을 받았을 뿐 아니라 동시에 자본주의의 위기가 전개되면서 발생한 대중의 분노를 무마하기 위한 희생양으로서 공격 표적이 되었다. 그 반작용으로 형성된 유대 민족주의의 완성 형태가 바로 시온주의였다.
    시온주의 운동은 유대인의 독립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였고, 그 귀착지로 선택된 곳이 성서에 나오는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이었다. 그러나 그 땅은 기원전 12세기 경 거의 같은 시기에 현재 이스라엘인들의 조상과 팔레스타인인들의 조상이 동시에 자리를 잡았던 땅이다. 본래 그 지명은 '가나안'으로 불렸지만, 로마제국 치하에서 유대국가가 완전 소멸한 이후 로마제국은 그 지명을 바꿨고 거기에서 오늘날의 지명이 유래한다. 그 후 흩어진 유대인들('디아스포라 유대인')을 제외한 소수의 유대인들과 대다수 팔레스타인인은 제국의 질서가 부침하는 가운데 적어도 1948년 이전까지 공존해 왔다.
    옛 조상들의 땅에 다시 독립국가를 세우려는 유대인들의 목표는 필수적으로 제국주의 열강의 승인과 후원을 필요로 하였다. 여기에서 시온주의 운동의 모순적 성격이 배태된다. 유럽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된 시온주의 운동이 반유대주의에 대한 해결책으로 구체화한 방안에는 바로 그 유럽 사회의 모든 특징이 들어 있었다. 바로 보수적이고 배타적이며 식민주의적인 성격이었다. 각기 다른 제국주의 열강의 후원에 의존하던 시온주의 운동의 분파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던 영국의 선택에 자신들의 운명을 맡기게 된다. 벨푸어 선언으로 가시화된 제국의 후원 약속으로 독립국가의 염원을 안은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 정착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땅은 '임자 없는 땅'이 아니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만 이미 100만명에 이르는 아랍인들이 있었다. 또 다른 독립국가 건설 후원 약속을 받고 있던 아랍인들에게 유대인의 이주는 분쟁의 화근이었다. 게다가 현지 아랍인들과는 구별되는 경제구조를 고수한 유대인들의 정착촌은 처음부터 배타적이고 적대적이었다. 영국은 공식적으로는 '공명정대한' 입장을 취한다고 했지만, 시온주의에 기울어 사실상 유대인과 아랍인을 차별하였다. 따라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고양된 아랍 민족주의 운동과 시온주의 운동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1936년 아랍인의 대규모 항쟁이 실패로 끝난 후 피폐해진 아랍 사회를 대체하는 세력으로 유대인 공동체는 오히려 급성장을 하게 된다. 수에즈 운하에 대한 확실한 통제와 페르시아만 유전 지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영국의 정책은 팔레스타인에서의 소요를 무마하기 위한 방법으로 두 세력의 분리 공존을 표방했지만, 점차 강력해진 유대인 세력 편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또 한편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제국주의 열강의 퇴조와 더불어 시온주의 운동은 새로운 파트너를 찾게 된다. 새롭게 영향력을 확보한 미국 제국주의가 그 파트너였다.

    3. 미 제국주의와 시온주의 커넥션

    유럽 제국주의 열강이 물러간 자리에 미국은 기민하게 그 영향력을 확대했다. 아라비아 반도에서의 석유 발견은 미국이 중동에 대한 지배력 확대해야 할 충분한 이유였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새롭게 형성된 냉전체제는 미국에게, 소련을 배제하고 중동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실히 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 팔레스타인의 시온주의 운동은 중동에 새롭게 관심을 기울인 미국에 손을 내밀었다. 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 중 급성장한 미국내 시온주의 운동의 영향력 또한 영국을 대신한 미국을 강력한 파트너로 삼게 되는 한 요인이었다. 애초 친유대인 정책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아랍 세계에서의 역효과를 염려하여 미온적이었던 미국은, 안정적인 동맹국이 없는 중동에서 친서방 국가 건설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시온주의 운동의 요구에 결탁한 것이다. 아랍인들 그리고 세계의 많은 민족들과 국가들에게는 이율배반으로 비취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에게는 일관된 부동의 협력체계의 기틀은 이렇게 마련되었다.
    1947년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안의 통과와 1948년 이스라엘 국가 수립은, 시온주의와 제국주의의 커넥션에 맞서는 팔레스타인 및 아랍 민중들에게 중대한 기점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팔레스타인인들은 무슬림, 기독교도, 유대교도를 통합하는 독립국가를 주장하였고, 이에 따라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건설하려는 원칙을 폐기할 것과 독립국 정부가 이민 정책을 결정할 때까지 시온주의자들의 이주 중단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분할안과 이스라엘 국가의 수립은 그와 같은 요구를 가볍게 묵살해 버린 결과였다. 그 결과 험난하고 지루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있다.

    4. 제국주의와 아랍 민중의 대결

    시온주의와 팔레스타인인들의 대결을 핵으로 하는 제국주의와 아랍 민중의 대결구도 안에는 여러 대척점들이 있다. 제국주의 지배질서에 좌우되는 중동의 판도와 그 안에서의 다양한 세력들의 대결 지점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팔레스타인 사태를 종교적 갈등을 포함한 종족간의 대결양상으로 보는 제한적 관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여러 대결 지점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유대 시온주의 운동은 서구 제국주의와 다를 바 없는 팔레스타인의 식민화 조치로 귀결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유대인 정착촌과 그 주변부인으로 전락한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실상은 제국주의 식민지배의 전형성을 그대로 안고 있다. 흔히 '사막을 옥토로' 바꾸었다고 칭송되어 온 유대인 정착촌은 사실상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피와 눈물을 빨아먹는 전략적 거점일 뿐이다. 정착촌 주변의 팔레스타인 노동계급은 이스라엘 경제를 떠받치는 시장구조에 편입되어 있다. 그것도 유대인 노동자에 비해 고작 40% 밖에 이르지 않는 저임금을 받을 뿐 아니라 인신에 가해지는 온갖 부당한 처우를 강요당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유대인의 정착과정에서 사적으로 이득을 챙기기도 한 팔레스타인 출신의 부르주아 및 지주들의 형편과는 또 구별되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실상이다.
    아랍 국가들과 지배세력의 타협성과 기만성 또한 중요한 초점 가운데 하나이다. 아랍 민족주의의 기세를 타고 등장한 이집트의 나세르 정부가 집권 10년만에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아무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고 선언한 것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아랍 정권들의 시각을 드러내 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사우디 아라비아 같은 미국의 동맹국가는 말할 것 없거니와, 많은 아랍 국가들의 지배세력은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를 지원한다고 표방하면서도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급진화에 대해서는 항상 견제의 고삐를 놓치지 않고 있다. 아랍 국가들 내 곳곳에 흩어진 팔레스타인인들의 소요가 자신들의 체제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숨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개의 아랍 정권들은 국가자본주의 발전에 몰두하면서 내부적으로 권위적인 정권의 유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대표하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의장으로 현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의 수반인 아라파트의 노선의 무력함도 문제다. 1987년 이후 최근의 팔레스타인의 봉기는 시온주의와 제국주의 세력에 대한 저항의 성격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무능하고 부패한 아라파트 노선에 대한 저항의 성격까지 함축하고 있다. 아라파트의 외교적 협상노선은 사실상 독립국가로서 지위를 보장받기 어려운 서안과 가자 지구내의 팔레스타인 '소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을 뿐이며, 철저하게 미국 주도의 제국주의 질서하에서 농락당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사실상 항복선언에 해당하는 오슬로 평화협정이 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독립국가 실현의 전도가 난망해보이는 현실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아라파트는 현재의 중동 질서에 균열을 가져 올 수 있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봉기를 오히려 억제하려들고 있다. 그것은 제국주의 질서의 통제하에 있는 아랍 국가들의 내정에 팔레스타인인들이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타협주의 노선의 결과이다. 평화협상의 결과가 팔레스타인에서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들의 동등한 관계의 수립과 항구적 평화를 가져올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의 굴복을 전제로 하는 것임을 아라파트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잠재적 역량을 이끌어낼 좌파 세력의 대안부재 상황도 심각하다. 1923년 좌파 시온주의적 유대사회주의 노동자당(MOPSI)에서 떨어져 나와 결성된 팔레스타인공산당(PCP)은 그나마 국제주의적 원칙을 갖고 아랍인과 유대인을 모두 조직했던 팔레스타인에서 유일한 세력이었지만, 혼란을 거듭하다 1938년 결국 시온주의 분파로 흡수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후 아랍의 여러 공산당들도 지리멸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랍 국가의 여러 공산당을 황폐화된 데에는 계급노선을 포기하고 민족운동을 지지할 것을 선언한 코민테른과 스탈린의 노선이 절대적으로 기여하였다. 게다가 중동에서의 영국의 퇴각을 우선시한 스탈린 정권의 시온주의 국가 승인은 아랍 세계에서의 공산당의 입지를 더욱 협소하게 만들었다. 이집트와 같이 아랍 세계에서 일찍이 공업화된 국가에서도 좌파는 노동자들을 이끌 수 없었으며, 석유 산업을 근간으로 성장하는 노동계급을 이끌 세력은 중동지역 어디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 공백 가운데서 그나마 대중적 지지를 이끈 것은 급진 민족주의 세력이었다. 아라파트의 정치적 기반이자 동시에 쁘띠 부르주아 출신의 팔레스타인 청년들을 중심으로 하는 파타가 득세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였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중추로서 아라파트의 파타 노선은 아랍 자본주의가 설정해 놓은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파타는 1960년대 이후 민족주의 투쟁과 게릴라 전투라는 두 가지 원리에 기초한 전략을 가지고 활동했지만, 제국주의 질서와 아랍 정권들을 위협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단지 그 세력에게 압력을 넣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으며 대중적인 투쟁이 될 수 없었다. 결국 알랭 그레쉬(A. Gresh)의 평가대로, "그 저항은 아랍국가들의 지원 없이는 승리하기를 바랄 수 없고, ... 또 다른 한편으로 저항이 발전하면 이 나라들과 충돌하게 되는 모순"(필 마셜, 『인티파다』161쪽)에 빠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그 '모순'이 팔레스타인 운동 전체를 재앙으로 이끌고 있다.

    5. 돌들의 혁명, 인티파다

    최근의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생적 봉기는 그 모순을 벗어나는 탈출구로서 의미를 지닌다. 1982년 레바논 공습 이후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배가 안정되어 마치 더 이상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이 무력해졌다고 여겨질 즈음 팔레스타인과 인근 지역에서는 민중들의 자발적 봉기가 줄을 이었다. 1987년 12월 8일 이스라엘 군의 탱크 운반 크레인이 아랍 노동자들을 태우고 가던 자동차를 덮친 사건에서 폭발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는 곧바로 봉기로 이어졌고, 그 봉기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오랜 숙원을 다시 일깨움과 동시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시 국제적인 의제로 부각시켰다.
    이 봉기는, 일부 시온주의자들의 희망과 다르게 팔레스타인인들이 물리적으로 제거될 수도 없고, 아랍 지배자들의 의도와 달리 주변으로 완전히 밀려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또한 서방 국가들의 지배들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으며,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점령지를 시온주의 국가에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점령지에 대한 이스라엘의 식민 정책이 결코 성공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치기도 하였다. 더욱 중요한 성과는 그 봉기가 점령지구 내에 한정되지 않고 인근 아랍 국가 민중들의 연대운동으로 발전하는 양상이다.
    단지 돌을 던지고 기껏해야 화염병을 들고 중무장한 군대에 맞선 봉기 덕분에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다시 부상하였다. 그리고 다른 아랍 국가들과 동등한 실체로 인정을 받았을 뿐 아니라 평화협상 테이블의 파트너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PLO는 여전히 '모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단지 중동의 석유 지배권에 동요를 불러일으킬지 모르는 소요 사태를 막기 위한 목적에서다. 아랍 국가들 역시 팔레스타인 '인자'가 자신들의 나라에 전염되는 사태를 염려할 뿐이다.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PLO의 협상 전략이 성공을 거두기 어렵고, 결국 모처럼의 민중들의 자발적 봉기로 인한 사태 전환 기회는 또 한 번 좌절을 겪을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최근 팔레스타인인들의 봉기 및 인접 아랍 국가 민중들의 봉기에서 노동계급의 참여가 두드러진 점과 그 잠재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진정한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제안인 '장기적 해법'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제국주의와 아랍 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사회 세력들과 국제적 연대 전략을 통한 해법이다. 아랍 민족주의가 국가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권위주의적 체제와 결탁하는 한편 극단적인 종교적 수구주의와 결합하는 데서 드러난 것처럼 그 한계가 명백한 마당에 아랍 민족주의에 의존하는 전략은 해방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인티파다를 일으킨 새로운 세대의 팔레스타인 활동가들과 진보 진영에 대한 마셜의 제안이다.

    "칼 마르크스는 역사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비록 팔레스타인 문제가 베이루트의 난민촌이나 서안의 마을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날지라도, 그 해결책은 다른 곳에 있다. 변화의 과정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은 무엇보다 이집트의 산업 도시들, 즉 아랍 자본주의의 중심지에 존재한다. 이집트의 대중운동은 제국주의와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와 대결하는 데 진정한 이해관계를 가진 하나의 계급이 집권하도록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공장을 장악하고 농민들이 토지를 점거하게 되면, 아랍 자본주의와 시온주의 국가 모두에 대한 대안이 처음으로 나타날 수 있다."(필 마셜 책, 284쪽)
    "PLO가 염원했던 팔레스타인의 해방, 즉 민주적이고 세속적인 국가로 가는 길은 가자나 예루살렘을 통과하지 않는다. 그 길은 카이로, 다마스쿠스, 바그다드를 통과하는 길이다."(필 마셜 책, 309쪽)

    팔레스타인 민중들에게 상실감과 좌절감만 안겨주는 지루한 '평화협상'의 기만성을 보면서 새삼 곱씹어봐야 할 제안이다. '전쟁'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한 '평화'의 허구를 우리는 팔레스타인에서 보고 있다.

    6. 몇 가지 생각

    앞서 밝힌 대로 어설픈 '신학적 성찰'을 시도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숙명의 트라이앵글'(노암 촘스키, 『숙명의 트라이앵글: 미국-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이후)이라고 했던가? 사태를 분석하고-이해하고-성찰하는 '숙명의 트라이앵글'에서 도망가지 못하니, '신학적 성찰'은 아니더라도, 신학하는 이로서 주목하고 싶은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해야만 할 것 같다. 앞뒤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는 문제들은 아니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1) 시온주의의 망령

    딴 지면(최형묵, 「욕망과 배제의 구조로서의 기독교적 가치」,『당대비평』, 200/봄)에서도 살짝 언급하고 지나간 적이 있지만, 한국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팔레스타인 사태를 보는 시각을 함축하는 한 일화가 있다. 성지순례를 주선하는 어떤 여행사에서는 물건을 사더라도 아랍인 가게에 가서 사지 말고 이스라엘인 가게에 가서 사라고 안내까지 한단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을 노상 불러 왔던 기독교인들에게는 너무나 지당한 선택일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바울이 그토록 싸웠던 '유대인'('선민')과 '이방인'의 도식은 전혀 파기되지 않고 있다. 시온에 대한 찬가에 익숙하고 미국을 선교의 모국으로 삼고 있는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그 미국이 돕고 있는 이스라엘은 여전히 구원의 선민이며 그들과 싸우는 팔레스타인인은 여전히 이방인 '불레셋'일 뿐이다.
    한국 기독교인은 스스로가, 바울이 말했던 그 '이방인'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다. 엄연히 '성문밖'에 있는 자신들을 '(선교)모국'과 '큰형님 나라' 성안의 사람들(다들 "미국에 들어간다"고 하지 않은가?)과 동일시하는 타자화된 인식은 끊임없이 또 다른 타자들을 배제하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게다가 문자주의적 성서이해는, 너무나도 간단 명쾌한 답을 제시해준다. '불레셋'은 물리쳐야 할 '악의 축'인 것이다.
    '성지'가 다 뭐고 '시온'이 다 뭔가? "이 산 위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니"(요한 4:21)라고 한 예수의 말은 시온주의의 망령에 짓눌려 그 존재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성서의 '시온'이 현재의 예루살렘 시온으로 동일시되고 있는 마당에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따위의 찬송은 부르는 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와 같은 상징과 신화가 선과 악, 선민과 이방인, 서구와 비서구, 이스라엘과 아랍을 차별적으로 등식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면, 그 상징을 해체하고 비신화화 해야 하지 않을까?

    2) '평화'의 허구

    '평화'의 이름으로 불공정한 현재의 사태가 기정 사실화되고 그 사태를 타개하려는 저항이 억압당하고 있는 가장 극명한 사례를, 우리는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본다. 평화의 이름으로 억압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제국의 지배질서의 기본 속성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팔레스타인 사태에서는 더더욱 철저하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팔레스타인 정책은, 시온주의 유대인 국가의 팔레스타인 강점을 기정 사실화하는 맥락에서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 어떠한 형태이든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은 그 질서에 균열을 내는 불안한 소요사태로 간주되고 있을 뿐이다. 팔레스타인에 거주해 온 주민들의 정당한 생존권의 차원의 문제로는 도무지 인식되지 않는다. 영국이나 미국에게 뿐만 아니라, 아랍의 국가들에게도 그와 같은 인식은 마찬가지다. 아랍의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아랍 민족주의의 선전 도구로 이용할 뿐 팔레스타인들의 해방에는 관심이 없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전개되는 평화협상은 현재의 질서를 존속시킴으로써 더 이상의 소요사태를 막으려는 사기극에 지나지 않는다. 그 평화협상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투항을 강요하는 절차일 뿐이다. 사실상 시온주의 이스라엘의 식민지에 불과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소국가')의 역할과 한계에 관한 협상마저도 진전이 없이 지지부진한 최근의 상황도 미국의 힘의 우위 전략의 '성공'과 직결되어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반테러전쟁'의 승리로 미국은 중동에서의 지배권을 확증하였다. 전투에서의 승리 뿐 아니라, 아랍 국가들마저 반테러전선의 대열에 세우는 데 성공한 미국은 사실 팔레스타인의 소요사태와 같은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려 시간을 허비하려 않는다. "까불면 맞는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입증한 미국으로서는 변방의 미미한 소요사태를 막기 위한 '평화협상'마저도 한가한 놀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평화의 이름으로 억압된 팔레스타인 민중의 고통을 우리는 새삼 확인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의 해방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모색해야 한다. '로마의 평화'에 대항해 '불을 지르고 분열을 일으키러' 온 예수(누가 12:49 이하 참조)의 태도로, 우리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3) 대중운동과 테러

    에드워드는 사이드는 "지난 200년간의 대부분의 식민지 문제에 있어 팔레스타인만큼은 예외였다"는 것을 역설한다(에드워드 사이드,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144쪽). 아무런 진전이 없는 평화협상의 허구, 그리고 사실상 투항에 불과한 협상노선과 대책 없는 테러 전술의 무모함을 꼬집는 말이다. 그래서 사이드는 "대중의 힘을 극대화하도록 하는 전략과 전술"을 강조하고 있으며(에드워드 사이드, 앞의 책, 146쪽), 아랍인과 유대인의 동등하게 누려야 할 보편적 가치로서의 '시민권'을 강조한다(같은 책, 191쪽). 사이드는 이 점에서 양식 있는 여러 유대인 지성과 견해를 같이한다. 이러한 견해는 아라파트의 소득 없는 투항노선을 경계하는 것이며 동시에 현재의 질서를 변화시키는 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는 이슬람 무장 집단의 테러전술을 경계하는 것이다.
    아라파트의 투항노선에 관해서는 앞서 여러 차례 지적했기에 여기에서 재론할 필요는 없다. 절망적인 항변의 성격을 지닌 테러전술이 의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갖는 파괴적 성격(이에 대해서는 최형묵, 「위험한 선택 - 폭력의 악순환과 그 악순환을 막는 길」『시대와 민중신학』7호 참조) 때문에 그것이 아닌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면 우리는 결국 사이드가 말한 대중의 힘을 극대화하는 전략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비폭력 노선으로 동일시될 수 없으며, '평화'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의 정치에 맞서는 반폭력의 정치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사이드가 말한 '시민권' 역시 그 진지한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에 선결되어야 할 많은 과제들을 순식간에 건너뛰어 버리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팔레스타인의 아랍계 주민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력 통치와 경제적 식민화를 극복하는 과제를 뛰어넘어 '시민권'을 강조하는 것은 상당한 비약을 의미한다.
    결국 노동계급의 잠재력에 주목한 필 마셜이 제기한 것처럼, '장기적인 해법'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4) 평화적 공존의 길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장기적 해법'에 주목한다면, 장차 팔레스타인에서의 평화 공존 문제의 해법도 실마리가 보인다. 장기적 해법은 배타적 민족주의 또는 배타적 종교를 내세우는 해법과 다르다.
    그 어떤 민족이나 종교이든 팔레스타인에 대한 독점적 영유권을 주장해서는 사태의 악순환만 가중시킬 것이다. 중세와 근세는 말할 것 없거니와, 성서시대조차도 팔레스타인은 어떤 한 민족의 배타적 영토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주목해야 한다. 팔레스타인은 유대인만의 배타적 영역도 불레셋인만의 배타적 영토도 아니었다. 어떤 민족에 속하든 어떤 종교 집단에 속하든 그 땅에 거주하는, 그리고 지금은 '난민'이 되어 있지만 그 땅을 삶의 근거지로 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평화적 공존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평화공존의 방법으로 팔레스타인에서의 두 개의 국가 성립을 지지한다. 현실적으로 가장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형태이다. 그러나 두 개의 국가 수립 자체가 궁극적인 목표이거나 사태의 근원을 제거하는 방법일 수는 없다. 목표가 거기에 한정되면, '평화협상'의 굴절과정이 입증하듯 힘에 의한 균형 논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제국주의 지배 질서의 균열이 없는 상태에서 두 개의 국가 성립은 결국 그 위계적 질서의 하위단위로의 편입을 의미한다. 아라파트가 현재의 당면 목표로 하고 있는 '자치정부'가 사실상 이스라엘의 식민지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이를 보여 주고 있다. 현재 팔레스타인의 상황 자체가 제국주의 지배 산물임을 분명히 인식해야한다.
    따라서 대안은, 그 질서에 균열을 가져 올 수 있는 민중연대에 의한 장기적 전망에서 찾아져야 한다. 그 장기적 대안은 평화적 공존체제를 이룰 수 있는 국가 수립 문제를 유보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평화공존 가능한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긴 여정이다. 기만적인 평화협상마저도 사실은 아라파트의 타협주의 노선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아랍 민중의 자생적 봉기의 산물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은망덕하게도 아라파트는 자치정부 재정의 60%를 사용해가면서까지 봉기를 억제하고 팔레스타인 민중을 규제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안팎에서 종교적 신념과 민족적 경계를 넘어서는 민중적 연대를 이룰 수 있을 때 실질적으로 평화공존을 이룰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 민중적 연대를 이룰 수 있는 지도력이 부재하다는 것이 현재 팔레스타인의 가장 큰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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