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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 논평] 운명의 삼각관계 : 자본주의-제국주의-민족주의 [카테고리]
  • 황용연
    조회 수: 6466, 2002.03.12 15:24:37
  • 이원복의 {먼 나라 이웃 나라}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1) 조그마한 이스라엘 병사를 여러 개의 총들이 겨누고 있다. : "조그마한 이스라엘이 중동의 모든 나라와 맞서 싸울 수 있으며"
    2) 엉클 샘 모자를 쓴 커다란 미국 사람이 1)에 나온 이스라엘 병사를 감싸고 있다 :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감싸고 도는 것도"
    3) 파이프 담배를 점잖게 피우고 있는 전통 의상 차림의 유대인이 서 있다 : "바로 그 뒤에 있는 돈 많은 미국의 유대인들 때문인 거야."
    이 만화를 보면서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거릴 것 같다. 어쩌면 아라파트도 고개를 끄덕거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 마셜과 최형묵은 절대로 고개를 끄덕거리지 않을 것이다.

    필 마셜의 {인티파다}와 (그 책을 중심으로 전개된) 최형묵의 글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바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제국주의'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온주의 운동이 영국과 미국 등의 제국주의 세력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게 되면서, 그 운동은 시초부터 사실상 '식민주의'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중동의 석유를 통제하기 위한 '경비견'의 노릇을 이스라엘이 수행하게 되면서 이스라엘은 그 존재 자체로 제국주의의 한 기관으로 기능하게 된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민중의 투쟁은 곧 제국주의와의 투쟁이 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민중의 투쟁을 이렇게만 이해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적'인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우군'이라는 아랍 정권들과의 관계도 오히려 팔레스타인 민중의 투쟁을 지지하기보다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아랍 정권들의 '지지와 지원을 얻기 위해' 대중 투쟁을 벌이기 때문에 그 정권들을 위협하게 되면 대중 투쟁을 억제할 수 밖에 없는 PLO의 주류 세력 파타의 모순된 전략에 있다. 아랍 정권들과 파타가 공유하고 있는 아랍 민족주의 하에서는 이러한 모순된 전략이 필연적이라는 것이 팔레스타인 민중의 비극인 것이다.
    결국 이러한 모순된 전략의 결과로, 파타는 어쩔 수 없이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소국가'에 만족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 '소국가'는, 이미 이스라엘 경제에 통합될 대로 통합되고, 그것도 하층 노동자 충원 지역으로 통합된 그런 지역을 기반으로 함으로써, 경제적인 종속국 신세가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소국가'다. 파타마저도 불신하면서 일어난 인티파다가 오히려 파타의 이러한 '소국가' 전략에 발언권을 부여하고, 그리하여 오히려 그 '소국가' 안에서의 파타의 민중봉기 탄압으로 돌아오는 아이러니가 팔레스타인 민중운동이 부닥친 막다른 골목이다.
    따라서 필 마셜에게서는, 이러한 막다른 골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 따라, 노동 계급을 중심으로 한-따라서 아랍 민족주의를 탈피한-아랍 민중운동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아랍의 노동자.민중운동은 이스라엘과 아랍 정권 모두를 반대해야 한다. 결국 필 마셜의 주장은 아랍 국가들의 경계를 넘어선 마르크스주의 혁명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귀결되며, 그러기에 그 길은 어쩔 수 없이 '장기적인 해법'이다. 다만 필 마셜에게는 파타마저도 불신하는 인티파다가 그러한 '장기적인 해법'의 싹이 될 수 있다고 보인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촘스키의 {숙명의 트라이앵글}은 1982년 레바논 전쟁 당시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전쟁 비판 시민운동들을 소개한다. 물론 이런 시민운동들은 이스라엘에서는 별로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국제적으로는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이런 시민운동들은 오히려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의 논거로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양심적' 시민운동이 자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나라라는 이유와, 팔레스타인엔 이렇게 '상대편의 입장을 생각해 주는' 시민운동이 없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만약 이 에피소드에서 이스라엘이라는 '국민국가'의 '근대성'을 읽어낼 수 있다면, 이 에피소드는 '제국주의 경비견'이라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아주 잘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 논자의 생각이다. 제국주의-식민주의란 애시당초 자본주의의 전 세계적 확장과 맞물려 있으며 그런 확장 그 자체라는 것은 오늘날 하나의 상식이며, 그러한 자본주의의 확장이 동시에 '근대성'의 확장이었다는 것도 상식이다. 시온주의 역시 팔레스타인-필 마셜이 지적하듯이 아직 자본주의와 근대성의 세례를 받지 않았던-에 자본주의와 근대성을 확장하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만약 이렇게 본다면, 건국 이후 이스라엘이 보여 온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탄압도, 물론 종교적 광신이라는 시각에서 읽을 수도 있지만, '정상적인' 국민국가라면 어떤 경우나 존재할 '국민 만들기'의 '정상적인' 한 과정으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특히나 일반적으로 '비둘기파'로 알려져 있는 이스라엘 노동당이 이스라엘 건국 이후 30여년 간 정권을 독차지하면서 현재의 이스라엘을 만들어 왔으며,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점령한 바로 그 정권임을 염두에 둔다면 더더욱 그렇다. 여기에다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하층 노동력 충원지'로 만들어 버리는 이스라엘 경제의 현실을 첨가한다면, 이 모든 것들을 '자본주의-근대성'과 그 그릇인 '국민국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실마리로 보는 것이 지나친 주장만은 아니리라.
    최형묵이 지적하는 '시온주의의 망령'의 문제는, 그런 점에서 '(근본주의) 기독교'가 대표하는 '(서구) 근대성'이, 한국 기독교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묻는 관점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평화'의 허구'의 문제도, 그 때의 '평화'라는 기호의 기의가 '근대성과의 기능적 결합' 아니냐는 문제의식 하에 읽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제국주의가 자본주의-근대성의 한 축에 위치한다면 다른 한 축에는 민족주의가 위치할 것이다. 특히 이런 경우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형성되는 것이며 그러기에 어떤 식으로든 대중운둥을 촉발시키고 대중운동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필 마셜이 그려낸 팔레스타인 대중운동의 역사도 역시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앞에서 살폈듯이 팔레스타인 대중운동의 민족주의적 전략은 그 전략의 힘이 되는-비의도적으로라도-대중운동을 탄압하는 민족국가라는 막다른 골목에 부딪쳤다.
    민족주의가 애시당초 그 '민족'을 구성하는 내부의 차이를 봉합하면서 그 '봉합'을 '통합'이라고 우기는 이데올로기이며, 그렇게 우김으로써 이해관계의 단위를 '민족'으로 착각하게 하는 이데올로기라면, 이런 막다른 골목으로 드러난 PLO의 주류 세력 파타의 실패는 '민족주의 투쟁의 잘못된 결과'가 아니라 '민족주의 투쟁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애시당초 아랍 정권들을 똑같은 '아랍 사람'으로밖에 보지 못하고 더군다나 그들의 '지지와 지원'까지 바라는 마당에 그들과 싸운다는 전략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또 아랍 정권들도 '아랍 민족주의'에 기반해 있는 한, 애시당초 그들은 '민족'의 그릇인 '국가'를 통치하고 있는 상황인데, 내 배가 부른데 남 배 고픈 게 보일 리가 없지 않겠는가. 역시 민족주의가 대중운동과 오랜 관계를 맺어 온 한국에서-그리고 특히 최근에는 '부시'와 '오노' 때문에 이런 경향이 더 심해지는 한국에서-이런 이야기는 남 이야기만일 수는 없을 것이다.
    민족주의라는 것이 이렇게 이해관계의 단위를 '민족'으로 착각하게 하는 이데올로기라면, 그리고 그런 착각에는 당연히 '권력'이 개입하게 마련이라면, 그런 '권력'의 입장에서 볼 땐 반드시 제국주의가 꼭 '적'이어야만 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사우디아라비아나 팔레비 왕조의 이란, 사다트와 무바라크의 이집트 같은 경우에서 보듯이,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얼마든지 공모 관계를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필 마셜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스라엘과 아라파트도 이제 이런 '공모 관계'에 들어갔다고 보이지 않을까. 한국은 이런 '공모 관계'에 아주 익숙하다. 이승만과 박정희라는이름으로.

    그렇기 때문에 사이드가 제기한 '시민권'이라는 문제는 물론 거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단계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형묵의 주장대로 단순히 '비약'으로만 처리해 버리기도 힘든 문제일 것이다 싶다. 이미 민족주의 전략의 파산이 드러난 상태에서 '시민권'은 팔레스타인 대중들의 주장에 정당성과 적절성을 담보해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를 비롯한 여러 가지 집단주의의 맥락에서 대중운동이 자유롭지 못한 한국의 경우에도 이미 앞에서 살핀 것처럼 '시민권'은 중요한 화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평화적 공존의 길'은 어쩌면 '두 개의 국가 수립'을 거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가능할 것이다. 서안과 가자 지구에 세워진 '소국가'가 '식민지'로 불릴 정도의 경제적 종속을 당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서안과 가자 지구가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일 경제권(그러므로 단일 생활권)의 분리불가능한 일부라는 뜻일 것이기 때문이며, 따라서 '팔레스타인의 일부'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워 '두 개의 국가'를 만든다는 개념 자체가 적절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형묵이 주장하는 대로 (그리고 필 마셜도 아마 동의할 테지만) '종교적 신념과 민족적 경계를 넘어서는 민중적 연대'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마도 그렇다면 그 민중적 연대의 궁극적 모습은, '시민권' 개념이 기반을 이루는 '제2의 남아공'에 가깝지 않을까.

    글을 맺으며 뜬금없는 이야기 몇 가지.
    1) 지난 총선 때 어떤 386 후보가 상대편 후보의 병역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이것을 본 어떤 사람이 '어? 저 사람도 법무부 빽(?)으로 면제받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 사람 군대 갔다 왔냐고 물었다고 한다. 한 사람이 이렇게 대답하더라나? "징병제 폐지를 주장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쪽팔리게시리......"
    2) 아마도 지금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이름은 '김동성'일 것이다. '스포츠의 공정성을 헌신짝으로 여기며 부당하게 금메달을 강탈해 간 미국'에게 분노하면서, '김동성에게 금메달을 찾아 줍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그런데 만약, 김동성이 실격을 당해서 '은메달'을 타지 못했다면, '스포츠의 공정성을 헌신짝으로 여기며 부당하게 은메달을 강탈해 간 미국'에게 분노하면서, '김동성에게 은메달을 찾아 줍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릴까.
    더 뜬금없는 이야기 하나.
    얼마 전 '재야'의 원로 한 분이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며칠 전 스포츠신문에서 이 분이 '월드컵대표팀 정신교육'에서 강연을 한다는 기사를 봤다. '민중민주파'의 원로가 '월드컵대표팀 정신교육'이라니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이 분의 연구소 이름을 생각하면 그럴듯 하긴 하다. {조선일보}와 인터뷰했다고 해서 욕먹었지만 역시 욕하는 사람들과 같은 편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잘못'보다, '월드컵대표팀 정신교육' 강사를 하는 잘못이 더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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