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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발제] '월드컵선교'에 대한 비판적 시론 [카테고리]
  • 리민수
    조회 수: 4262, 2002.09.01 20:35:58
  • '월드컵선교'에 대한 비판적 시론


    리민수 (성공회역사자료관 / 선교역사)


    I 서론

    지난 6월 30일부로 한 달간에 걸친 "2002한/일월드컵"이 끝났다. 120년 전 한국 축구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리고 한국 축구가 1954년도 스위스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이래로 최고의 성적인 제4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필자는 이번 대회를 통해 국민으로서의 기뻐하는 나와, 월드컵에 대해 비판적인 나를 함께 발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서로 상반된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우선, 필자는 '축구' 그 자체가 갖는 '스포츠'로서의 가치와 '월드컵'이 갖는 '상업/정치적 가치'를 분리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포츠로서의 월드컵, 다시 말해 축구를 즐긴다는 것과 월드컵의 상업/정치성에 대한 가치평가는 서로 다를 수 있을 뿐 아니라, 기독교인이 한국 축구를 응원하는 것과 선교의 방법론으로서 월드컵을 이용하는 '월드컵선교'에 대한 평가도 서로 다를 수 있다. 입장과 태도의 다름으로부터 같은 사물에 대한 판단의 변별성이 생긴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필자와 같이 같은 사건에 대하여 같은 사람이 두 가지의 서로 다른 평가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방금 말 한 것처럼 월드컵으로부터 오는 양가(兩價)적 경험으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이 시대가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하여 단선적으로 평가하기에는 너무 복선적이고 다원화 되어버린 시대에 우리가 산다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논의하고자 하는 목적은, 이번 월드컵과 함께 전개된 '월드컵선교'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분명히 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본 비평을 이해하여 주었으면 한다.

    우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왜 이 시론을 쓰게 되었는지 필자가 경험한 세 가지 사례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첫째, 월드컵 개회식을 하루 앞 둔 지난 5월 30일 명동성당 앞에서는, '6월항쟁15주년기념 반전평화대회 사업선포 기자회견'이 있었다. 1970-80년대 같으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을 법 한 이 회견장에는, 한국의 민주화를 이끌어온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기자를 포함한 한 두 명의 기자가 왔을 뿐 '기자 없는 선언식'으로 끝나고 말았다.

    둘째, 한국이 16강 진출을 놓고 포르투갈과 결전이 있었던 6월 14일, 성공회대학교에서는 '동아시아 인권에 대한 새로운 탐색 - 이론의 탐색과 실천 가능성 검토'라는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다. 당일 '동아시아의 국가권력과 스포츠, 그리고 인권'이라는 세 번째 섹션에서, "한국의 월드컵과 인권"(이동연), "중국의 올림픽과 인권"(이남주), "일본의 월드컵과 내셔널리즘"(하종문)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좋은 발표에도 불구하고 소수만이 참석한 가운데 취재기자 없이 진행된 심포지엄이 왠지 아쉬웠다.

    셋째, 6월 15일자 조선일보(총30면)에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6.13 지방선거 결과 市道의원 682석 가운데 467석을 차지하고, 현 여당인 민주당이 143석을 차지하는데 그쳤다고 하는 혁명적 변화에 대하여, "'6.13 民心' 제대로 읽을까?"(제2면)라는 사설과 10-11면, 24-25면을 할애한 반면, "World Cup"이라는 월드컵을 위한 별지(특별부록)를 발행한 것과는 별도로 월드컵에 대한 기사로서 "월드컵 2002 내친김에 8강 가자"(제2면)라는 사설을 포함 1-3면, 6-7면, 9면, 16면, 23면, 26-27면 등을 장식하고 있다. 특히 서울 광화문에 모인 50만의 붉은 물결을 본 순간, 이를 단순히 한국만의 특별한 문화현상이라고 하기에 곤란한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하나의 병리 현상이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동시에, 방금 위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월드컵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반전평화'와 '인권'이라는 용어를 외면하는 국내 언론의 태도를 보면서 놀라움을 느꼈으나, 이것을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병리현상의 한 단면이라고 이해한다면 이해를 못 할 바도 아니다.

    도대체 월드컵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많은 사람이 열광하고, '반전평화'나 '인권'보다 가치 우선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정말, 한겨레 월드컵특별자문위원인 정윤수의 말처럼 월드컵에 대한 열광이 한국의 경제적 성장과, 88올림픽 때의 전두환 정권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김대중 정권의 정치적 성장, 그리고 '즐기는 문화'에 대한 성숙한 의식으로부터 오는 柔然함에 기인하는 것일까! 정말, 월드컵은 그 선전 문구처럼 '세계의 평화와 문화의 제전'이기 때문인가! 적어도, 본 시론에서 다루고자 하는 한국개신교도들의 상당수는 월드컵을 '세계의 평화와 문화의 제전'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나, 또는 그리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필자는 월드컵과 스포츠를 동일하게 보는 월드컵지지자들이 말하는 '스포츠유익론' 내지 '스포츠중립론'이란 언제나 FIFA의 정치 경제적 이익과 유치국의 세계정치/경제적 야심이 상호부조 하는 도구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월드컵열풍은 아마도 FIFA식으로 말하는 월드컵유가치성의 파도를 이용한 파도타기가 아닌가 한다. 즉, 한국의 월드컵열기는 외신기자들의 지적과 같이 한국인들의 "애국심과 민족적 자부심을 전 세계에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의 발로라고 보는 것이 적합할 지도 모른다. 불행하게도 개신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월드컵선교'는 월드컵의 세계정치/경제적 효용성의 파도를 이용한, IMF이후의 한국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그 가치 위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유치한 월드컵을 통해서 선교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 선교의 대상은 누구이며, 선교의 목표란 무엇일까? '반전평화'나 '인권'이라는 가치보다 월드컵이 갖고 있는 가치를 우선하는 현상에 부조(扶助)하고 있는 기독교의 선교란 무엇일까? 이러한 의문들이 바로 본 비판적 시론을 생각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본 시론은 기독교계의 신문기사와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자료들을 주로 그 분석의 자료로 삼았다. 여기서는 우선 '월드컵선교'의 목적과 방법을 세 가지로 열거 정리함과 동시에 각기 그것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마지막으로 평가와 결론에서는 1명을 배려하지 못하는 '월드컵선교'를 비평하고, 나아가 21세기 한국기독교의 선교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시민운동(NGO)과의 관계로 아주 간략히 그려보았다. 한편 본 시론에서는 지면의 관계상 시민운동(NGO)에 대해서는 다루지 못하고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음을 양해하여 주었으면 한다.

    II 본론: '월드컵선교'의 목적과 방법 그리고 문제점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선교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들은 1999년도부터 이미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월드컵선교'란 '2002한/일월드컵'을 의식하여 새로이 만들어진 선교단체는 물론 기존의 교회나 교단의 차원에서 월드컵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리고 그 전후로 계획되어진 좁은 의미에서의 전도운동 및 선교운동 일체를 지칭한다. 실제로 '월드컵선교'는 그 활동의 목적과 영역에 있어서 상당히 넓은 범위를 갖고 있다.
    우선 '월드컵선교'를 지향하는 각 단체들의 활동 유형과 목적을 일별 하여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구태의연한 부흥전도운동; 둘째) 사회기득권의 가치기준에 맞춘 보수적 바른생활운동으로서 전 민족의 의식개혁운동 및 세계 앞에 앞서가는 한국의 위상 회복 과 세계선교를 위한 초석마련; 셋째)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없는 세계의 화해와 평화의 확장 그리고 한일간의 화해와 일본에 대한 복음전파.

    1 부흥전도운동을 통한 한국교회 제3의 부흥을 도모

    'Goal2002 전국위원회'가 2002년 4월 29일 제주도를 출발하여 5월 29일 서울의 사랑의교회까지 실시한 전국 투어 전도 대성회와, '민족통일선교협회 민족복음화운동본부'(총재 신현균 목사)가 " 교역자들의 회개와 한국교회 제3의 부흥을 위해, 월드컵 성공과 민족의 번영을 위해" 등을 기도의 내용으로 하여 실시한 구국대성회 등을 그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부활의 영광! 월드컵 승리!'라는 주제로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있었던 2002년 부활절 연합예배 또한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예수교대한감리회, 예수교대한성결교회 등등 각 교단이 가진 특별기도회도 국내선교의 활성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침체된 개신교의 국내선교를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한 기도운동과 전도운동이라는 점에서 '월드컵선교'는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명분 아래 진행되고 있는 '월드컵선교'의 구태의연한 부흥전도운동은 그 무분별함 때문에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기의 정체성이 분명치 않은 '기도운동과 전도운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다. 상업적인 월드컵대회의 시기를 이용하는 것 이외에 과거 한국교회가 해 온 사회 일탈적 전도전략과 하등 다름이 없는 이와 같은 부흥운동들이 정말 오늘날 한국교회가 처한 침체를 회복시키고 치유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2 사회기득권의 가치기준에 맞춘 보수적 바른생활운동의 전개

    '월드컵선교'가 지향하는 보수적 바른생활운동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명목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전 민족의 의식개혁; 둘째) 세계에 앞서가는 한국의 위상회복 과 세계선교를 위한 초석마련

    (1) 민족의 의식개혁

    1999년 9월 3일 창립총회를 갖고 창립된 '2002월드컵 기독시민운동 협의회'(이하 '2002기시협')의 설립목적에 의하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하여 교회의 힘을 하나로 결집하는 계기로 삼아 전 교회적인 기도운동, 전도운동을 일으키고 문화와 사회봉사의 절호의 기호로 삼아 새의식, 새가정, 새나라를 가꾸어나가는 바른 생활운동이 국민생활에 정착되어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전 민족적인 의식개혁운동을 일으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이 운동은 "전 교회적인 기도운동, 전도운동을 일으키고"자 하는 측면에서는 전자의 구태의연한 부흥운동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은 그 내용에 있어서 색다름이 있다. "새의식, 새가정, 새나라"를 지향하는 바른 생활운동을 통해 민족의 의식개혁을 하자는 것이 바로 이 단체가 지향하는 '월드컵선교'의 내용인 것이다. 즉 종전의 신앙 부흥 대성회와는 달리 '친절', '봉사', '청결', '정직', '질서' 등을 중심으로 기독교인의 모범적인 삶을 실천함으로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고 전도의 문을 열겠다는 것이 이 운동의 갖고 있는 특징이다. 이 운동의 필연성에 대하여 '2002기시협'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왜 해야하는가!

    88 서울 올림픽이 한국의 국력신장과 마음을 하나로 결집했고 획기적인 국위 선양을 했던 사실을 감안할 때 2002년 월드컵은 그보다 더 큰 차원의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어서 960여 운동단체가 참여 연대를 구성하여 정부 국회 언론 환경 등 사회 모든 분야를 감시하며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자원 봉사 운동이 과거 어느 때 보다 활발해졌습니다. ......이런 추세는 세계적입니다. ...... 물론 교회는 세상에 속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상 안에서 세상을 위하여 빛과 소금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한국 교회와 세속사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담이 생기고 최근에는 한국교회를 향해서 사회적 분노와 고발의 분위기가 안개처럼 서서히 깔리고 있는 느낌마저 줍니다. 전도의 길도 막히고 있습니다. 인심도 떠나고 있습니다. 인구 1/4이나 점하고 있는 기독교를 향한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기 때문입니다.
    한국 기독교는 역사와 민족의 운명을 책임져야하겠습니다. 1200만 교회에는 뭉쳐서 행동만 할 수 있다면 세상을 변화시키고 통합할 수 있는 잠재적 에네르기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믿음으로나 역사적 경험으로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번만은 신앙적 애국심을 발휘해서 세계의 눈앞에서, 특히 일본과 비교해서 평가받는 시험대에 올라있음을 의식해서 정직하고 친절하고 청결하고 질서 있는 한국인 상을 부각해야겠습니다. 교회의 힘도 하나로 결집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겠습니다. 문화와 사회봉사선교의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십시다. 닫혀진 전도의 문이 열리기를 기도합니다. (골4:3)"

    이것은 한국의 국력신장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신앙적 애국심의 발로이자, 최근 한국사회의 교회에 대한 비판에 대한 한국교회 스스로부터 시작된 자기반성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의 글을 자세히 보면 여전히 한국교회가 민족과 사회단체에 대한 경쟁심과 강박관념 속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바른생활운동은 교회가 기존의 시민운동단체들이 이미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운동에 연대 또는 함께 하기보다, 오히려 기존의 '시민단체와 교회' 그리고 국가간에 있어서는 '일본과 한국'을 서로 상대 비교하는 경쟁의식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한편 여전히 기독교가 여전히 "역사와 민족의 운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것들을, 교회가 갖고 있는 다른 집단에 대한 도덕적 우월의식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어떤 다른 집단과는 다를 뿐 아니라 우리야 말로 민족과 역사를 책임져야한다'는 생각을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교회는 사회의 다른 단체와 연대는 물론 함께 할 수 없다. 그러니까 결국 기독교가 중심이 되는 별도의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의식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이 운동을 한국사회와 세계 앞에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자하는 욕망이 앞선 가식적인 운동이라고 평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바른생활운동은 개신교의 금주금연운동과 같은 개신교 선교초기의 바른생활운동을 기억나게 하는 전 민족 의식개혁운동이라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그리고 '월드컵선교'를 통한 이번의 바른생활운동은 세계에 앞서가는 한국의 위상 회복 과 세계선교를 위한 초석마련이라는 점에서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목적의식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월드컵선교'의 바른생활운동은 박정희 군사독재 하에서의 새마을 운동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바른생활의 가치기준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은 중요한 질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문제 삼지 않는 바른생활 운동이라면 기득권층에 그 기준을 맞춘 보수 세력의 운동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애석하게도 '2002기시협'의 주의주장 어떤 곳에서도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 점이다. 따라서 필자는 '2002기시협'이 전개하는 바른생활 운동이란, 한국기독교의 보수 세력이 전개하는 또 하나의 운동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점이 '2002기시협'이 갖고 있는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세계에 앞서가는 한국의 위상 회복 과 세계선교를 위한 초석마련

    이번 '월드컵선교'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모습은, IMF의 어려움으로부터 회복한 자랑스러운 한국을 세계에 드러내고, 한국의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하는 프로그램과 동시에 앞으로 감당할 세계선교를 위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인상심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앞서 소개한 '2002기시협'의 바른생활운동과도 맥이 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월드컵을 기해 세계에 자랑스러운 한국을 소개하고 친절과 질서와 안전에 유의함으로 성공적인 월드컵이 되도록 하자는 한국장로신문(2002년 6월 8일)의 시론은 '월드컵선교'에 임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잘 설명하고 있는 대표적인 시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선교한국의 상임총무인 한철호 선교사의 말처럼, 이번에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직접 전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줌으로 차후에 한국 선교사들이 그 나라에 갔을 때 좋은 접촉점을 마련할 수 있도록"하자는 제안 역시 '월드컵선교'에 임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목적임에 분명하다 할 것이다.

    3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없는 세계 화해와 평화의 확장 및 한일간의 화해와 일본에 대한 복음전파

    (1) 세계 화해와 평화의 확장

    비록 적은 사례일지라도, '월드컵선교'는 이번 월드컵을 오이쿠메네를 향한 세계의 화합과 평화의 도구로 활용하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금년도 6월 1일자로 간행된 월드컵과 함께하는 평화의 기도라는 소책자에 의하면, 세계의 화해와 평화를 기원하는 염원을 기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 소망은 최소한 오늘날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의한 세계패권질서라는 문제를 함께 다루는 속에서 논의되어야 할 일로서 그저 무작정 기도한다고 될 일은 물론 아니다. 스포츠대회를 기회로 세계 평화를 위해 기여하겠다고 하는 발상은 기독교사상 제522호(2002년 6월)에 실린 논문 "스포츠는 21세기 평화 정착을 꿈꾼다"(김동환)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스포츠가 세계의 평화에 기여해 왔다는 주장과 그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주장이 쉽게 세계패권주의자들과 국가이기주의의 도구로 이용될 위험이 클 뿐 아니라, 특히 월드컵과 같은 세계규모의 스포츠대회가 열릴 때 그 대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간과하기 쉽다는데 있다. 과연, '월드컵선교'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월드컵을 한국에 유치하고자 한 그 명분이 한민족에게 가져다줄 '국가의 이익과 민족적 단결'이라는 민족주의에 있었다고 하는 사실, 그리고 스포츠와 국가이기주의가 서로 하나가 될 때 생길 수 있는 부정적 가능성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안타깝게도 필자는 아직까지 '월드컵선교'를 주창하는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비판을 들어보지 못했다. 반드시 스포츠가 갖고 있는 순기능이 있다면, 그에 반하는 역기능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최소한의 비판 없는 '세계의 화해와 평화의 확장'이라는 구호는 힘 있는 자들이 사용하는 속임수의 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2) 한일간의 화해 및 일본에 대한 복음전파

    마지막으로 이 번 '월드컵선교'는 한일간의 화해 및 일본의 복음화를 하나의 목표로 하고 있다.
    2001년 미션재팬 선교대회에서는 2002년 월드컵 기간 동안 일본 선교를 위해 노력하기로 하였다. 또한 일본복음선교회(JEM)는 5월 31일부터 월드컵 기간 동안 '월드컵 일본 단기선교 사역'으로 일본교회와 협력하여 일본의 6개 지역 월드컵 구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전도활동을 펼치기로 하였고, 축구선교단 '할렐루야'는 일본을 순회하며 친선경기를 하며 일본의 복음화를 위해 기여하여왔다. 이처럼 일본에 대한 복음의 전파는 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자하는 순수한 복음의 열정으로 가득한 '월드컵선교'는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의 복음화를 주장하는 '월드컵선교'는, 선교에 앞서 '한일간의 교과서의 문제', '일본수상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문제' 등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들이 있다고 하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실제로 작년 '월드컵선교'에 돌입하기 전에 있었던 2001년 미션재팬 선교대회에서 양국간에 산재되어있는 문제들을 위해서 기도했던 것과 같이, 한일간의 화해는 1년 2년에 해결 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월드컵선교'는 한일간의 화해를 위한 긴 과정 가운데 한시적으로나마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기대하는지 좀더 분명히 언급하여 주었으면 한다. 그러나 한일간의 화해 및 일본의 복음화를 주장하는 '월드컵선교' 주창자들이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분명하지가 않다. 즉, 긴 프로세스 속에서 '월드컵선교'가 어떤 시점에서 한일간에 화해를 위해 노력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어떤 점을 어떻게 화해 할 것인지, 나아가 양국간의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을 보지 못했다. 그저 화해하고 일본에 복음을 전하자는 것 이외에 화해를 위한 구체적인 신학을 갖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한일간의 문제는 일시적인 그리고 감정적인 화해분위기만으로는 해결되거나 풀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복합적이고 어려운 문제인 만큼 지속적이고도 성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도대체 '월드컵선교'가 말하는 한일의 화해와 일본의 복음화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위에서 언급한 선교목적의 성취를 위해 '월드컵선교'는, (1) 내국인을 위해 전국(특히 월드컵이 경기가 열리는 10도시)을 순회하는 전도대성회, (2) 세계로 나가는 선교사들을 위한 교육, (3) 문화시민 의식의 확산을 위한 10대 바른생활실천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홈스테이, (4) 기독교를 알리기 위한 전도지 및 CD-ROM의 배포, (5)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 전도단을 파견하여 집회 등을 개최하는 국외선교, (6)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기도하는 기도운동의 실시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상으로 '월드컵선교'의 목적 및 방법을 간단히 정리하였다. 지금부터 '월드컵선교'에 대하여 ''월드컵선교'는 한 마리의 어린양을 소중하게 여기는 기본에 충실한가'라는 관점으로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III 평가: '월드컵선교'는 한 마리의 어린양을 소중하게 여기는 기본에 충실한가.

    월드컵은 그야말로 잘사는 나라는 물론 못사는 나라라도 실력만 있으면 본선에 출전할 수 있다. 시장경제논리로 이야기하자면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세계의 축제인 것이다. 부자는 물론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해야하는 가난한 사람조차도, 보수적인 사람은 물론 평소에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사람조차도 월드컵경기 앞에서 환호를 지르며 열광 하는 모습을 보면서 월드컵이 갖고 있는 마력을 느낀다. 비판적인 사상조차 삼켜버리는 월드컵 앞에서는 월드컵대회로 인하여 얻어지는 엄청난 경제적 부가가치가 어디로 편중되고 있는가하는 질문은 터부시 되어버린다. 오히려 모두를 위해 평등하게 배분되고 있다고 조차 느끼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고, 단지 많은 사람들이 대중의 열기 속에서 함구하거나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2002년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위원회의 상임총무 한창영목사는 부활절예배의 주제를 "부활의 영광! 월드컵 승리!"로 정한 이유가 "국민과 함께 하려는 열망"에 있다고 했다. 나아가 "동 연합예배의 장소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은 원래 쓰레기장으로 버려진 땅이었으나 경기장으로 부활한 의미성도 담아낼 수 있는 곳"이라고 그 장소가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그러나,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건설 때문에 1999년 9월 17일과 11월 8일 그리고 2000년 1월 25일 세 차례에 걸친 철거가 있었고, 그 때문에 집을 잃고 혹은 잡혀가야만했던 이웃들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지는 않는다. 기억하기는커녕, "원래 쓰레기장으로 버려진 땅"이 "경기장으로 부활한 의미"를 담아낼 수 있다고 조차 이야기 하고 있다. 한국경기가 있을 때마다 시청 앞 분수대주변과 광화문에 수십만의 '붉은악마'들이 모여 대국민적 응원을 할 때, 바로 그 시청 정문 앞에서 2001년 12월 31일부터 시작된 상암동 철거민의 1인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 사실에 주목하는 일반 언론이나 기독교계의 소식은 없다. 개신교와 카토릭 등을 비롯한 한국의 7대 종단의 지도자들이 지난 5월 8일 대 국민 호소문을 통해 "정쟁의 중단"과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는 노사에 대해서는 나라 경제를 위해 대화로 문제를 풀어갈 것" 등을 촉구하는 등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호소할 때, 월드컵개막 이 틀 전인 29일 4명의 여성노동자들은 한강대교위에서 고공시위를 해야만 했다. 월드컵이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아우르는 제전이라지만, 역시 이 제전에 속 할 수 없는 이들이 소수일 망정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얻은 중요한 교훈으로 "기술보다는 기본을"이라고 하는 점을 들고 있다. 요는 히딩크 감독이 끓는 냄비와 같은 여론의 변덕 속에서도 자신의 철학을 갖고 "일시적인 성과"나 "잔재주"가 아닌 "기본"을 훈련시킨 것이 오늘날의 한국 국가대표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선교에 있어서의 기본이란 무엇일까? 누가 선교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하는 질문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적어도 그 어떤 경우이든 교회는 그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에게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닐까! 월드컵에 환호가 있다고 하면 그 환호 속에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이 사회 어디에 있는지 그 존재조차 확인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스도가 '건강한 사람들보다 병든 자를 찾으신 것처럼' 그리고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생각하신 것처럼', 비행기 타고 휴가를 얻어서 한국과 일본을 올 수 있는 사람들보다, 오늘도 공장에서 온갖 서러움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 마음에 간직하고 이 한반도 땅에서 노동해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 한 달 동안의 자본주의의 열기 속에서 노래할 때, 홀로 시청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도대체 50만 60만의 '붉은악마'들이 시청 앞과 광화문 앞에 모여 월드컵응원을 할 때 시청정문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시위자는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서 있어야만 했을까? 안타까운 일은, 소위 '월드컵선교'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기도문 속에서 그리고 선교내용에 있어서 이런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나 배려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2002월드컵 기독시민운동 협의회'가 정한 주간 기도제목 총56개중 단 한군데 금요일의 기도문 가운데 외지고 소외된 이웃을 위한 기도가 있다: "4. 월드컵기독시민운동이 외진 곳, 소외된 이웃들에게 도움과 소망의 기쁜 소식이 되게 하소서" 그러나 이런 기도는 있는 자들이 외지고 소외된 이웃을 일방적으로 대상화할 때 가능한 기도이다. 왜냐하면, 싸움(투쟁)을 하고 있는 철거민을 대상으로 '2002월드컵 기독시민운동 협의회'가 말하는 '바른생활운동'이란 도무지 격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왠지 이런 단체가 말하는 외지고 소외된 이웃을 위한 선교란 실질적인 선교의 대상으로 서라기보다 명분상의 구색 맞추기 정도에 그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선교의 방법에 있어서도, 월드컵이라는 축제에 편승하여 일시적이고도 화려한 성장 일변도의 선교보다는, 당장 결과는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시간과 공을 들여 검소하고도 지속적으로 우리의 이웃과 함께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 마리의 양이 소중한 것이다.

    IV 결론: '월드컵선교' IMF 이후 등장한 기독교 보수화의 한 모습

    그렇다면, 온 국가가 들썩이며 월드컵 만세를 외치는 속에서 월드컵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없는 것인가? 이번 '월드컵선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중요한 요소 중 한 가지는,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를 배경에 두고 있는 월드컵을 견제하는 비판들이 교회보다도 시민그룹(NGO)에 관계하는 사람들 쪽에서 활발하게 이야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한국교회는 국가적 경제논리에 함몰되어 보수화되어버렸다. 특히 2002년 3월 6일 힐튼호텔에서 열린 '제34차 국가조찬기도회'에서도 월드컵에 대한 국가/국민적 기대가 한국경제의 세계적인 급부상에 있고, 기독교 역시 이러한 국가/국민적 입장과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월드컵의 시기에 맞추어 선교를 하자고 하는 '월드컵선교'는 IMF이후 나타나고 있는 한국의 국가/민족주의의 경제논리에 영합하는 한국 기독교의 보수화 현상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국가를 위한 경제이익과 맞물려있는 월드컵의 세계정치/경제적 이익 때문에 비판은 물론 거부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기독교의 '월드컵선교'는 한국의 국가적 관심과 경제논리에 부조(扶助)하는 한국사회의 기독교기득권세력이 주창하는 보수적 선교운동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월드컵선교'란 그리스도 영성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논리에 함몰되어버린 하나의 선교방법론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기독교의 선교전체에 문제가 있다고 속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사회의 저변의 선교현장에서 묵묵히 수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단지 그들은 '월드컵선교' 따위를 주의주창하거나 언급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점을 간략하게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우선 이 작업을 하면서 느낀 첫 번째 느낌은, 이미 오래전부터의 일이겠지만, 그러나 특히 IMF이후 한국사회의 보수화와 함께 기독교의 대사회적 시각도 급속히 보수화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는 한국사회의 비판기능을 감당해야하는 세력의 약화로 우려해야할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로, 이와는 별도로 최근에 한국사회의 건전한 비판세력으로 등장한 시민그룹(NGO)의 발견을 들 수 있다. 한국사회의 예언자로서 감당해온 한국교회의 비판기능의 상당부분을 이미 시민그룹이 담당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한국사회의 비판그룹의 약화에 대한 대안으로서 긍정적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 한국교회의 새로운 선교형태로 시민그룹과 보다 적극적인 연대를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필자는 본 시론의 마지막으로 한국사회의 보수화에 대항하는 선교를 위하여, 이제 더 이상 교회가 단독으로 선교 할 것을 고집하지 말고 보다 적극적으로 시민그룹(NGO)들과 함께하는 선교를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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