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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논평] 월드컵선교? 정작 선교의 타겟은 누구여야 하는가..! [카테고리]
  • 미선이
    조회 수: 4128, 2002.09.03 04:29:36
  • 논평 - 월드컵선교? 정작 선교의 타겟은 누구여야 하는가!
    정강길

    1. 사실 처음에 갑작스럽게 논평 제의를 받고서 리민수씨의 글 제목만을 탁 들여다봤을 때, 나는 솔직히 월드컵으로 인한 대한민국의 문화현상을 기독교 신학으로 비평하는 글인 줄 알았다. 물론 월드컵얘기가 많이 나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 읽어본 즉슨 이 글은 월드컵 문화담론이라기보다 오히려 월드컵을 계기로 드러나고 있는 한국교회의 선교문제에 대한 얘기였다.
    또한 글을 다 읽어본 후에도 조금 황당한 느낌도 없잖아 있었다. 물론 리민수씨의 글에 대한 황당함이라기보다 그 글에 씌어있는 <월드컵선교>라는 그 용어 자체에 대한 황당함이다. 솔직히 내게는 월드컵선교라는 용어 자체부터 이해가 안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월드컵선교라고 이름 붙일 필요가 있을까. 이것은 분명 한국 국민들의 냄비적 근성처럼 보수 기독교인들의 이벤트성 사업 같아 보인다. 하지만 정작 월드컵선교라고 굳이 이름 붙여야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드는 이유는 그것이 월드컵선교든 올림픽선교든 별의별 선교든 간에 나는 한국교회의 선교 자체에 이미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체 한국교회가 선교를 한다면 무엇을 선교한다는 것인가? 예수를 알리자는 얘기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예수를 알리자는 것인가?

    2. 월드컵을 대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여기서 기독교 진영만 고찰해본다면 크게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물론 각종파별 신앙이 보수와 진보로 딱부러지게 나뉘어진다고는 할 수 없어도 그 성향을 크게 나눠본다면 이렇게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때 보수측의 흐름도 월드컵을 대하는 자세에서 월드컵 축구 잔치 자체는 좋아하는 부류와 이것마저도 배타적으로 싫어하는 부류로 또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후자는 월드컵 기간 중에 일어났던 충현교회 사태를 통해 그 행태가 드러나기도 했었다. 이들은 적어도 전자보다는 더욱 보수적인 성향일 것이다. 이들에겐 축구마저도 천국놀음이 아닌 세상놀음에 속한다고 보니까 당연히 배타시 된다.

    3. 그런데 여기서 한국교회의 현실은 보수진영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논자는 '2002기시협'을 비롯한 보수적인 한국교회 선교단체들의 운동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것 또한 표면적인 한계에 불과하다. 리민수씨가 '월드컵선교' 주창자들로부터 월드컵과 국가이기주의의 부정적 역기능에 대한 진지한 비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에 대해 적실한 시각을 가진 적이 도대체 몇 번이나 있었던가. 설령 이들이 잠깐이나마 평화를 언급했다고 하더라고 궁극적으로 진보적 기독교 진영의 그것과는 다른 동상이몽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월드컵에 가려진 그 이면의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사건들을 보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너무나 당연한 그네들의 신앙적 결과라고 봐야 옳다. 사실 이것은 굳이 월드컵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평상시에도 지금까지 쭉 그래왔었다. 즉, 보수적인 한국교회가 사회를 보는 눈은 월드컵 열풍 기간에만 까막눈이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보는 눈은 언제나 까막눈이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기존 한국교회의 선교 문제의 한계를 보다 더 근원적으로 건드릴 수 있어야 한다. 즉 내가 보기에 한국교회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친절, 봉사, 새가정, 새나라, 민족의식개혁, 도덕성 회복 어쩌구저쩌구 아무리 찌지구 볶아봐야 결국은 그게 그거라는 얘기다. 월드컵 이전에 언제는 한국교회가 이런 것들을 주장하지 않았던가.

    4. 논평자가 보기에 크게 질문할 사안은 다음과 같다. 리민수씨는 한국 사회의 보수화에 대항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여기에는 응당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보수적인 한국교회도 포함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는 한국교회의 선교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한 글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만약 우리가 한국교회가 행하는 월드컵선교의 문제를 비판코자 한다면 '월드컵선교'라는 이슈적 선교사업에 대한 비판과 문제점을 들춰내는 것에 국한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선교신학 자체가 품고 있는 문제점을 가지고서 '월드컵선교'라는 시류적 문제를 고찰해야 더욱 적실한 비판이 나오지 않냐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알고보면 한국교회의 선교분야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이고도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선교신학에서 배웠듯이 선교라는 것자체는 교회의 부수적인 사업이 아니라 바로 교회의 본질적인 기능에 속하기 때문이다. 리민수씨는 한국교회의 선교 대상이 소외된 한 마리 양들에게 우선적으로 관심하는 선교여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 말 자체는 옳다. 그러나 그것은 한계가 있는 얘기다. 즉, 기존 한국교회는 선교 이전에 선교를 할만한 그릇이나 자격조차 없을뿐더러 도리어 그 자신들이 이미 선교의 혜택을 받아야할 집단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교회는 선교를 행하는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역설적으로 한국교회야말로 선교의 타겟이라는 시각이 확보되지 않는 한 한국교회 문제는 근본적으로 치유되기 힘들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리민수씨의 글은 제 생각엔 한국교회의 심장부를 정면으로 푹 찌르는 비판적 글이 아니라 그냥 그 언저리만 콕콕 찌르고 마는 아쉬운 글이 아닐까 싶다.

    5.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혹시 여러분들은 지하철역과 거리곳곳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이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보는가? 아니면 비그리스도인으로 보는가? 분명하게 말하지만 나는 그들을 비그리스도인으로 본다. 일찍이 서남동 목사님이 말했듯이 그들이 믿는 예수의 피는 그저 주술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그리스도인도 아닌 그저 일반인일 뿐이다. 즉, 보수적인 불교인 혹은 보수적인 이슬람인들과 같은 레벨에 있는 자들일 뿐이라는 얘기다. 어떻게 우리가 이런 자들에게서 신자유주의를 악마로써 고찰하는 눈을 기대할 수나 있겠는가.
    게다가 선교의 타겟이 꼭 외국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평소에 선교라는 개념을 잘못 생각하고 있진 않는가? 선교는 기독교라는 종파에서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는 외부진영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리스도적인 것>에서 <그리스도적이지 않은 것>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기독교인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비기독교인들이 아주 많다. 선교란 <신자화>가 아니라 <인간화>다. 참기독교는 바로 이러한 인간화를 위한 활동을 기독교라는 문화적 기제들을 통해서 일궈내고 있을 따름이다.

    6. 끝으로 논자가 말미에서 언급한 두 가지 사항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논자는 한국교회가 IMF이후에 급속히 보수화되고 있기에 비판 세력의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은 그와 달리 한국교회는 언제나 보수적이었는데 이것이 IMF라는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더욱 보수화 바람이 일어난 것으로 보였을 뿐이라고 본다. 즉, 한국교회는 결국엔 영혼구혼에만 몰두하는 사회 비판 세력의 비자도 못되는 집단이라는 얘기다.
    또한 두 번째 제안에 대해선 일단 교회가 NGO와 연대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생각이라고 본다. 사실 NGO는 교회사업의 잃어버린 한 페이지를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교회가 NGO의 역할을 할 수는 있어도 NGO가 교회의 역할을 할 수는 없다고 본다. 신성에 대한 경외감이 없는 집단은 결코 종교적이라고 볼 수 없기에. 종교란 언제나 그 사회의 궁극적 답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종교운동이라면 그것은 이미 사회운동까지 내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 역은 아닌 것이다. 내 삶에 있어 지금까지도 내가 종교운동을 사회운동으로 환원시키지 않고 나의 주, 나의 사랑되신 예수에 대한 신앙을 놓치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교회는 NGO와 연대하는 방향이 아니라 교회가 NGO가 하는 일마저 담당할 수 있는 쪽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교회 산하에 그러한 기구를 두던가. 그럴 경우 오히려 일반 시민들이 한국교회의 사업에 동참함으로써 진정한 선교 효과도 톡톡히 볼 수 있다고 하겠다.

    7. 우리는 이 시점에서 <에큐메니칼>이라는 교회연합일치운동도 생각의 전환을 가지고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만약 우리가 보수적인 기독교와의 연합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에큐메니칼이 아니라 <선교>라는 용어로 표현되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내가 보는 <에큐메니칼>의 진정한 의미는 전세계 진보 세력들의 연대와 포섭이다. 이것이야말로 궁극적인 에큐메니칼의 참뜻이 아닐런지.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복음적인 것일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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