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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발제] 기독교 우파와 미국의 보수정치 [카테고리]
  • 백찬홍
    조회 수: 3876, 2002.10.01 12:07:03
  • 기독교우파와 미국의 보수정치에 대한 소고

    백찬홍(연구소 상임위원 / 시민운동정보센타 운영위원장)

    -. 기독교 우파는 어떻게 등장했는가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 가시화되는 지금 왜 기독교우파를 말하는가. 그것은 조지 부시를 중심으로한 미국의 강경파가 전 세계를 전쟁 분위기로 몰고 가고 그 영향이 한반도에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을 후원세력에 기독교우파가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우파는 지난 10년간 공화당의 배후세력으로 미국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준 집단이다.
    작년 9.11사태이후 부시는 "대(對) 테러전쟁은 ‘십자군전쟁’이다", "이라크와 이란과 북한은 악의 축"이라고 주장하는 등 과격한 용어를 남발했다. 이러한 부시의 언행은 현재 미국내 보수 기독교 지도부가 갖고 있는 생각과 일치한다. 선과 악으로 나누는 전통 기독교의‘이분법’사용하면서 테러혐의가 있는 나라들을 악마의 나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6월초 우파 기독교의 핵심인 남침례교(SBC)의 제리 바인스(전 총회장)는 "기독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만들어진 반면 이슬람교는 12명의 부인을 둔 귀신에 사로잡힌 마호메트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의 마지막 부인은 9세짜리 어린 소녀였다”고 주장하면서 반 이슬람 정서를 불러 일으켰다. 제인스는 또 “이슬람교의 신은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나님과는 전혀 다르다. 알라는 여호와가 아니다. 여호와는 당신을 테러리스트로 만들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바인스의 이 같은 발언이 있은 직후 이슬람교는 물론 유대교 지도자들과 진보적 기독교 단체들이 즉각 해명을 요구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지만 6월 11∼12일 9500명의 침례교 연차 총회에서 신임 총회장으로 선출된 텍사스-부시의 텃밭-의 잭 그레이엄도 바인스의 발언을 지지하고 나섰다.
    부시가 11월5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대이라크 전쟁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경제 침체와 부시를 비롯한 측근들의 부정비리로 공화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상태에서 민주당이 우위를 보이고 있는 경제불안과 사회보장제도 같은 국내 현안들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부시의 입장에서 이라크 침략은 국민들의 눈을 밖으로 돌리고 자신의 정치적 후원세력인 기독교우파를 확실히 묶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용가치가 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미국내 무시 못할 정치세력으로 성장한 기독교우파의 본격적인 등장은 클린턴이 집권할 당시인 94년 이른바 뉴트 깅그리치 혁명으로 불리는 공화당의 의회장악에서 비롯되었다. 미국 공화당은 지난 20세기 거의 대부분을 민주당에게 밀려 소수당에 머물렀으나 기독교우파의 지원을 받아 그 해 중간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이때 기독교우파의 핵심조직은 도덕적 다수(Christian Majority)와 기독교연합(Christian Coalition)이었다. 이들은 남부의 크리스챤 벨트를 중심으로 범죄에 대한 강경 조치, 강력한 국방, 공립학교에서의 기도를 허용하기 위한 헌법수정, 낙태 반대, 그리고 여성을 위한 남녀평등 헌법수정안의 폐기를 주장하며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인사들의 의회입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것은 미국정치에 있어서 커다란 변화였다. 지금까지 미국의 기독교 보수주의자-근본주의로 대변되는-들은 일반 미국인들의 일반정서를 대변한다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주장을 정치적인 힘으로 성장시키지 못했지만 70년대부터 그들의 목소리를 정치에 담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1920년대 진보 또는 자유주의와의 논쟁에서 기독교 근본주의가 패배한 이후 보수적 기독교인들이 정치문제에 대해 개입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20세기 초 라우센부쉬를 중심으로한 자유주의 기독교가 사회복음을 내세우며 현실참여를 강하게 내세울 때 많은 근본주의자들은 세속적인 문제-특히 정치-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근본주의자들이 정치문제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것은 급속도로 타락하는 이 세계는 결국 망할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이른바 분리주의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원래 19세기말 기독교 보수파들이 이른바 영적 각성을 통해 자신들이 속한 세계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사회개혁에 적극적이었던 것과는 정반대 입장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반세기가 지난 70년대 후반 미국 사회는 보수적인 경향이 강해지고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자유주의와 진보주의의 영향아래에서 미국의 위상이 추락했다고 주장한 보수주의자들은 마침 기독교내 다수파로 자리잡기 시작한 기독교보수파와 적극적인 연대를 시작했다.
    70년대말 기독교 우파가 세력화할 수 있었던 것은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의 성장에서 찾을 수 있다. 이미 뉴스위크는 1976년을 "복음주의자들의 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지금까지 자신들을 소수라고 생각해온 보수파 기독교인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 왔지만 70년대 중반부터 그들도 역시 60년대 이후 미국사회에 불어닥친 민권운동으로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과 여성의 권리신장, 마약, 동성애, 낙태등으로 미국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느끼고 이것을 막아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것을 잘 활용한 사람들이 빌리 그래함과 팻 로버트슨으로 대변되는 유명한 TV부흥사들이었다. 이들은 60년대 이후 본격적인 TV시대가 도래하자 미디어를 적극 활용했다. 이들은 라디오와 TV를 통하여 수백 만 명의 고정적인 시·청취자를 확보할 수 있었고, 이들은 일어나는 이슈들에 대해서 자신들의 견해를 전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방송매체를 통해서 여론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TV부흥사들은 백인 보수층의 입장을 반영해 자신들의 청취자들에게 보수주의적 견해에 대한 정치가들의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예를 들어 어떤 후보가 낙태반대, 공립학교에서의 기도 허용, 당시 소련이나 동구권의 종교자유등 보수주의적 견해를 지지하는가를 알려주었고, 따라서 보수주의적 견해와 반대되는 정치가들에 대한 비판도 서슴치 않았다. 이것은 미국정치에 있어서 놀라운 변화였다.
    60년대이후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자유주의에 눌려 자신들의 입장을 강력한 힘으로 결집시키지 못했던 것을 TV목사들이 보수층 기독교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에서 제리 폴웰(Jerry Falwell)이 창설한 "도덕적 다수"는 진보적인 여성운동, 동성연애자들의 합법적인 결혼문제, 공립학교에서의 기도, 음란비디오의 보급과 같은 민감한 이슈에 대한 정보를 400백만에 달하는 자신들의 회원들에게 알려주었고 워싱톤에 로비스트들을 파견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입법화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많은 기독교 우파 단체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의 주장하는 내용은 궁극적으로 가정과 신앙의 자유였다.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사회의 구조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반면에 보수주의자들은 가정문제와 낙태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또 혼전순결준수, 이혼예방, 가정에서의 부권회복문제, 마약금지, 음란물에 대한 제재 등을 위하여 활발하게 움직였다.
    기독교우파는 현재까지도 신앙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미국 대법원이 공립학교에서 성경 읽기와 기도회 같은 것을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을 뒤집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미국의 건국정신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흥미를 끄는 것은 이들 보수파들은 미국의 외교문제에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이 제3세계 권위주의 정부의 인권탄압에는 깊은 관심을 가져온 것에 비해 이들은 중국이나 러시아, 이슬람 지역의 선교사들이 종교박해를 받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개선을 촉구하며 미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근에는 반미감정으로 발생한 아랍권의 선교사 탄압을 비난하며 반이슬람 정서를 부추키고 있다.

    -. 부시정권과 기독교우파의 관계

    지금까지 70년대 이후 기독교우파의 등장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가능한 차원에서 9.11 이후 기독교우파와 부시정권의 상관관계를 보고자 한다.
    뉴트 깅그리치 혁명이후 지난 1998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상하원에서 다수파가 되지는 못했지만 크게 약진했다. 98년 선거에서 승자는 클린턴이었고 패배자는 선거결과에 책임을 지고 정계은퇴를 발표한 깅그리치와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에 강경한 태도를 취했던 공화당 지도부 및 기독교우파였다.
    기독교우파 지도자의 한 사람인 게리 바우어는 공화당 패배의 원인이 클린턴 행정부와의 98년도 예산안 협상에서 대규모 감세안을 관철시키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종교적 우파들은 그들의 아성인 크리스챤 벨트에서조차 패배하면서 상당한 충격에 빠졌다. 특히 클린턴과 힐러리는 그들이 꼭 떨어뜨리고 싶었던 2명의 적, 즉 클린턴 탄핵에 적극적이었던 뉴욕주 알 드마토 상원의원과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로치 페어클로드 상원의원을 낙선시켜 정치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 민주당의 승리는 경제호황에 힘입은 바가 크다. 경제가 안정되면서 중도보수파가 공화당에서 이탈하면서 여론이 민주당에 호의적인 입장을 보인 것이다.
    당시 ABC방송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자신을 보수파라고 답한 사람은 94년 선거때 37%이었으나 98년에는 31%로 줄었고, 자유주의자라고 답한 사람은 18%에서 19%가 되었는데, 중도파라고 답한 사람은 45%에서 50%로 증가했다.
    민주당은 또한 히스패닉-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인으로 상대적으로 멕시코출신이 많다-과 흑인들이 지지를 받았는데 이들은 기독교우파의 인종주의에 위기를 느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들은 총 투표자의 16%밖에 되지 않았지만-94년의 12%에 비하면 크게 늘어났다-결집력 때문에 여러 지역에서 승패의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주지사 및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히스패닉표의 70%, 흑인표의 80%, 여성표의 60%를 얻었다. 뉴욕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챨스 슈머 후보는 히스패닉표의 82%, 흑인표의 86%, 여성표의 59%를 얻었다. 조지아주에서 흑인은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인구의 27%밖에 안되지만 흑인투표율은 총투표율의 29%이었다. 조지아 주에서 민주당의 로이 바네스 후보는 백인표는 40%를 얻었으나 흑인표는 90%를 얻음으로써 승리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기독교우파는 그 기세가 완전히 꺽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잠시 창끝이 무뎌지기는 했지만 그 영향력은 아직도 여전하다는 것이 대부분의 분석이다. 2000년 대선을 앞두고 기독교우파는 지난번 중간선거와 98년 대선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모호한 입장을 보였지만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부시를 적극적으로 밀었다. 부시는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의 적극지지와 개인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공화당 후보가 될 수 있었다. 대선에서 여전히 '가난한 사람을 저버릴 수 없다'며 온정적 보수주의를 밀고 나간 그는 고어와 대접전을 벌이다가 마침 플로리다 주지사를 맡고 있던 자신의 동생-젭 부시-의 도움으로 대통령의 권좌에 올랐다.
    대통령이 되자 부시는 곧 본색을 드러냈다. 부시가 취임후 처음 한 일이 대폭적인 세금감면이었고 인종차별주의자인 애시 크로프트를 법무장관에 임명해 우익들을 기쁘게 했으며,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 탈퇴로 신보수주의자를 감격시켰다. 9.11이후 그는 즉각적으로 '악의 축’에 대항, 대테러 전쟁을 불량국가들과의 전쟁으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우파에 엄청난 기대를 줬고 이라크에 대한 전쟁의지를 재확인하면서 기독교보수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기독교우파들의 목소리는 다시 커지고 있다. 팻 로버트슨은 9.11직후인 9월 22일 자신이 창설한 기독교방송네트워크의 `700 클럽'에서 " 이슬람 이민자들은 우리 외교 정책을 그토록 경멸하면서도 미국에 살려고하니 이상하지 않느냐"면서 "코란에도 분명 이교도를 보면 죽이라고 적혀있다"고 말하고 " 이슬람은 공존을 원하는 평화로운 종교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우리의 이민정책은 유럽 쪽에서 멀어지고 중동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 때문에 그들을 우리 가운데로 불러들였다. 그들 속 어디에나 틀림없이 테러 조직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9.11이후 계속되는 기독교우파인사들의 이러한 발언은 새로운 적으로 이슬람을 목표로 하면서 남부의 기독교인들을 강하게 묶어두고 있다.
    부시가 아프간에 이어 이라크에 대한 전쟁 약속을 이행할 경우 그는 레이건과 같은 반열에 오르게 될 것이다. 부시는 그런 면에서 매우 솔직한 인물이다. 그에게는 공화당의 지지기반인 군수산업과 자신의 배경인 석유산업, 기타의 보수파에 영합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전쟁분위기는 경기 침체에 따른 노동투쟁의 증가를 우려해 '국민통합’을 빙자해 대자본의 사주를 받아 이슬람신자들을 악마로 묘사하는 미국 언론의 부추킴도 한몫을 한다.
    여기에서 부시와 기독교우파가 더 긴밀히 결합하게 된 것은 미국의 경제지형변화에도 요인이 있다. 1970년대 이후 미국경제의 중심은 전통적인 공업지대인 북동부에서 남부지역으로 옮겨졌다. 조지아·앨라배마·노스&사우스 캐롤라이나·테네시 등 남동부 5개 주는 근래 들어 새로운 경제적 요충지-이른바 산업벨트-로 주목받고 있다. 동북부지역의 대도시들이 인구나 산업시설 면에서 포화상태에 달하고 주력산업인 철강·자동차 산업이 일본과 신흥공업국과 경쟁하면서 활력을 잃은 반면 남부지역은 미국산업의 강점인 첨단산업과 서비스, 석유산업의 약진으로 큰 혜택을 입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우파의 근거지에 신의 축복(?)이 떨어진 것이다. 80년대 이후 남부에 근거를 둔 기독교 보수파가 각종 정치자금 기부를 통해 선거에 적극 개입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돈줄이 확보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것을 통해 정치경제와 종교가 하나의 공동전선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부시는 텍사스에서 주지사로 성장하고 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남부의 경제발전에 기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부시에게 남은 것은 전쟁이외에 대안이 없다. 자신의 지지자들을 위해서 그는 반드시 이라크와 전쟁을 해야한다. 이라크에 대한 공격이 마무리되면 남은 것은 북한과 이란이다. 기대하는 바는 '악의 축'인 이라크와 '악의 화신'인 사담 후세인이 새로운 히틀러인 부시와 새로운 파시스트 국가인 미국을 이기는 것이다. 이라크가 미국의 도움을 받아 화학무기를 개발했음에도 미국의 응징을 받는 다면 대량살상무기의 위력을 미국에 확실히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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