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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 발제]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문부식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 광기의 시대를 [카테고리]
  • 황용연
    조회 수: 5267, 2002.11.10 00:43:43
  •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문부식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 광기의 시대를 생각함}이 제기하는 '민주화'의 '신학적' 성찰에 대한 응답

    황용연(본 연구소 연구원, 한백교회 준목, 서울대 총기독학생회(SCA) 간사)

    1. 이 글은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의 부제를 '문부식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 광기의 시대를 생각함}이 제기하는 '민주화'의 '신학적' 성찰에 대한 응답'이라고 달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비록 신학자가 쓴 책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신학적인 이론을 전개하는 책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신학책'이나 다름없다는 말일 것이다. 이런 책에 대하여 '신학적'인 글을 쓴다는 것은 그다지 보기 좋은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신학도'라는 이름이 '신학적 성찰'의 깊이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이 글은 사실 필요가 없는 글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게 된 이유는 근본적으로는 문부식 <삼인출판사> 주간(이하 모든 인물에 대해 직함 및 경칭 생략)의 책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 광기의 시대를 생각함}이 자극한 사고를 정리하기 위함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책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들이 영 엉뚱하게, 혹은 엉뚱하진 않은 경우라도 너무 한정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자체로 <비판사회학대회>라는 큰 학술대회의 독자주제가 될 만큼의 관심이 쏟아질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 말은 문부식의 책을 다루는 글에서는 나올 수 없는 말일 것이다. 폭력은 비단 말썽이 되었던 '동의대 사건'을 다루는 장만이 아니라 문부식의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이 글은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조희연, 김명인, 김진석, 홍윤기 등이 너무나도 많이 했으므로, 굳이 필자까지 한 말 보탤 필요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 글은 제목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문부식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 광기의 시대를 생각함}의 논의에 대한 리뷰를 그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그 논의를 비춰 볼 거울로는 조희연의 ['운동의 국가화'와 과거청산의 과잉?-'광주 유공자화'와 '동의대 사태 민주화운동 인정'을 보는 다른 시각]1)(<비판사회학대회> 발표문)을 주로 사용하기로 한다.2)

    2. 한국 근대화의 '원죄/서술어'로서의 '폭력'
    기독교 신학은 인간의 존재를 서술하기 위해서 '원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원죄'라는 용어는 사실 진보적 신학에서 다루기가 그다지 자연스러운 용어는 아니다. 이 용어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의미인 '인간이 하느님에게서 분리되어 있다'는 함의와 그에 뒤따르는 '그 분리를 연합으로 뒤바꾸어 놓을 수 있는 분은 하느님뿐이다'라는 함의는, 결국 기독교인들에게 '신의 권력'에 순응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원죄'라는 용어는 인간의 존재를 서술하는 데에 있어 '죄의 보편성'이라는 범주를 설정할 필요가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죄의 보편성'이라는 말은 곧 '우리'의 존재에 '죄'가 서술어로 자리잡고 있으며, 그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도 '죄'가 서술어로 자리잡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원죄'에 대한 질문을 묻는 것은 그렇게 '우리'와 '사회'에 서술어로 작용하고 있는 보편적인 '죄의 연결망'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질문에 대한 대답도, '우리'와 '사회'를 연결짓는 차원에서 구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니, 애시당초 진정성을 띤 질문과 대답이라면, 그 둘을 분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문부식의 논의에서 '광주'는 단순한 한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넘어 한국 사회 전반을 읽어 내는 키워드로 작동한다. 그 결과 문부식이 다다른 지점은 국가주의, 반공주의, 발전주의로 대표되는 한국 근대화의 폭력성이다. 물론 한국 근대화의 폭력성은, 바로 그 한국 근대화를 통해 (한국적인) 근대적 주체로 자리잡은 한국인들의 일상에서도 관철되고 있을 것이며, 특히 '발전'의 열매를 통한 '유혹'의 근원으로 작동하기도 할 것이다. 다음 문장만큼 이 사실을 잘 드러내는 문장도 없지 않을까. "한국인들 사이에선 흔히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이 한국 젊은이들이 '베트남에서 흘린 피'의 대가라는 말을 하곤 하지만, 기실 그것은 '베트남 인민이 한국인으로 인해 흘린 피'의 대가일 것이다."(문부식, 75)
    이렇게 볼 때, '광주'와 같은 국가폭력은 한국 근대화의 폭력성에 의한 당연한 귀결이다. 그리고 동시에 한국 근대화의 폭력성과 동전의 양면인 '근대적 한국인'들의 폭력성이 '광주'의 또 다른 원인이기도 할 것이다. 문부식의 다음 문장은 바로 이 점을 말하고자 했을 터이다. "지금까지 '광주'에 대한 이해는 거의 대부분 미국과 군부의 '음모'에서 원인을 찾거나, 민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배신한 군부의 '예외적인 폭력'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내면에 감추어진 집단적 욕망(한국적 근대의 확장된 생산과 소비의 구조와 연결된)은 이 폭력과 무관한 것인가? 그러한 폭력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이 안전하게 보장받기를 내심으로 기대하면서 폭력을 애써 외면하려 했던 것은 아닌가?"(문부식, 82) 그래서 문부식은 바로 그 '근대적 한국인'들에게, 한국 근대화의 폭력성을 말하고, 그 폭력성에 대한 '근대적 한국인'들의 공모를 말하며, 광주에 대한 '성화'와 의문사에 대한 외면은 동전의 양면으로서 그 공모의 '민주화'판 버전이 아닌가 하고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부식에게서 '폭력'이란 어떤 특정 진영에게 잡을 수 있는 '흠'이라기보다 '광주'와 같은 폭력이 가능한 '근대적 한국'을 서술하는 서술어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그러한 '근대적 한국'을 살아 왔고 살고 있는 '근대적 한국인'을 서술하는 서술어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폭력'은 '발전'의 과실로 우리를 유혹하므로, 이 때 '폭력'은 억압적인 측면에서의 서술어만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자기 실현'의 측면에서의 서술어이기도 할 것이다. 앞에서의 '원죄'에 관한 논의를 상기한다면, 문부식에게서 '폭력'은 한국 근대화의 '원죄'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존재했던 폭력부터 성찰해야 국가 권력의 폭력을 제대로 성찰할 수 있다'(문부식, 166)는 말은 '동의대 사건'과 같은 과거의 어떤 특정한 사건에 대해서 잘잘못을 가리자는 말만이라기보다, '우리'의 일상에 이미 '원죄'로 작용하고 있는 '폭력'에 대한 성찰과 극복의 노력에서 출발해야만 그 '폭력'과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폭력'에 대한 '제대로' 된 성찰과 극복의 노력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 성찰과 극복이 없다면, 서술어로서의 폭력이란 그것이 언제나 진행형이란 뜻이므로, 이미 서술어로 작용하는 폭력은 이미 그 폭력으로 인한 희생자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근대화된 한국'에서의 폭력과 '근대화된 한국인'으로서의 폭력은 그 자체로 상호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서술어로서의 폭력'이란 지평에서 볼 때 이 두 폭력 비판은 연관되어 있으며 사실 동일하다고까지 볼 수 있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너도 나도 다 잘못이 있다'는 '책임회피'를 조장할 수 있는 논리 아니냐는 반론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광주항쟁의 폭력을 단순히 신군부세력 몇 명의 예외적인 폭력성으로만 한정하지 않는다고 할 때, 그것은 한편에서는 당시의 집단적 심리구조 전체의 문제로 돌림으로써 심리적 면책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신군부세력의 그 폭력성을 침묵으로 동조하고 그 폭력적 지시를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정당화하면서 학살을 자행했던 학살가담자의 정신구조 자체를 성찰하도록 촉구하는 보다 근본적인 논의를 촉발할 수도 있다. 필자는 바로 후자의 측면이 문부식씨가 초기에 의도했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새 책 속에서 필자가 볼 때에는 이상하게 전자의 함의가 강화되었다고 생각한다."(조희연, 235)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문부식의 논의를 뒤틀어놓음으로써만 가능하다. 문부식에게서 '학살가담자'에 대한 물음과 '집단적 심리구조'를 묻는 물음은 조희연의 반론에서처럼 분리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학살가담자' 역시 '근대적 한국인'의 한 가능한 초상, 어떤 '괴물'의 모습이 아닌 한 가능한 초상이므로, '학살가담자'를 통해 '집단적 심리구조'를 읽어 내고 바로 그 '집단적 심리구조'를 극복할 수 있어야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문부식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것은 당연히 '심리적 면책구조'의 문제도 아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학살가담자'와 '집단적 심리구조'를 분리하려 든다면, 그것은 '한국인'이 아닌 '괴물'의 범주를 '신군부'에서 '학살가담자'로 늘린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다.

    이러한 반론의 이면에는 문부식이 주장하는 ''광주'에 대한 대중의 공모'의 측면에 관한 반대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광주'의 기억은 그 기억에서 촉발된 저항의 움직임이 없었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므로 이러한 반론은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문부식의 이야기는 저항은 없었고 '공모'만 존재했다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저항'이라는 것이 기억되는 방식이 과연 정당하고 적절한가-이는 다음 장에서 자세히 다루기도 한다-를 묻고는 있지만. 그리고 문부식이 드는 예들-5공 헌법 국민투표의 90% 이상 찬성, 타 지역에서 '광주'를 '국가안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하는 경향3) 등-을 차치하고라도, 예컨대 1987년에는 6월항쟁의 한 중요거점이었던 부산이, 1990년 3당합당을 기점으로 완벽하게 구여권 지지로 돌아서고, 1993년 김영삼 집권 이후 부산의 지방언론들이 "부산을 특별시로!"라는 특집을 낸 것을 기억한다면, 국가주의, 반공주의, 발전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공모'를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닐까. 적어도 6월항쟁이라는 '저항'의 한 주체였기 때문이라도, 부산 시민들을 특별한 '또라이'로 볼 수는 없다면 말이다.

    '원죄'라는 용어의 성서적 근거로 제시되는 창세기 3장의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 보도는 그 사건의 근본 요인이 아담과 하와의 권력욕-'하느님처럼 되고 싶다'-을 자극한 데에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렇게 권력욕을 갖게끔 애시당초 권력이 작동할 수 있는 관계로 세상이 만들어진 것 자체부터가 잘못이겠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인 이상 그 세상에서 '권력욕'은 그 자체로 '원죄'로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원죄'로서의 권력욕은 동시에 아담과 하와처럼 인간 모두를 그것을 실현하려는,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를 실현하려는 주체로 만들고 있다. 그러니 세상을 그런 '원죄'가 있는 세상으로 만든 하느님도 마땅히 욕을 먹어야 할 존재지만, 새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근원적으로는 이미 '원죄'가 서술어로 작동하고 있는 자신의 존재에서부터 싸우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물론, '원죄'에 대한 질문은 '우리'와 '사회'에 서술어로 작용하고 있는 보편적인 '죄의 연결망'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라면, '죄의 연결망'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에 따라서 '원죄'도 달라지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서 다른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지만. 예컨대 근대적 한국인들이 국가주의, 반공주의, 발전주의와 싸워야 하고, 특히 앞으로는 더더욱 발전주의와 싸워야 하는 것처럼.

    3. '과거 청산'이란 가능한 것인가 : '국가'와 '공공'의 차이 속에서
    2002년 <비판사회학대회>의 발표 섹션 중의 하나로 <5.18과 트라우마티즘>4)이란 섹션이 있다. 이 섹션은 5.18 관련자들의 트라우마티즘이 그 동안의 국가 차원에서의 보상과 기념사업 등에도 불구하고 크게 치유되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5.18 관련자들이 광주시민들과의 관계에서 일정하게 게토화당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오히려 보상과 기념사업 과정에서, '피해' 이상의 광주에 대한 기억이 망각되고, 자신들의 트라우마티즘을 호소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들만의 트라우마티즘이 과대대표되거나5), 혹은 권력에 대한 욕망과 잘 맞아들어갈 수 있는 트라우마티즘만이 공식적으로 표출될 수 있었음6)이 이 섹션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이 섹션의 한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맺고 있다. '물질적 보상만을 통해 그 이면의 사회적, 심리적 5.18 트라우마티즘에 대한 기억을 망각한다면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폭력은 언제든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망각은 사회적 폭력의 결정적인 승리일 것이며, 사회적 폭력이 범죄 흔적들을 지우면서 시민들을 두 번째로 죽이는 것이다. 기억의 작업을 통해 인간들은 잔학성을 재생산하는 치욕으로부터 면제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사명은 앞을 향한 전진이고 기억은 그의 변화와 도약에 봉사한다. 과거를 가두지 않는 기억 속에서 사건들을 끄집어내서 인간답게 되는, 진실과 정의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이는 보편적인 의식의 모든 인류에 주어진 임무이다.'(박영주, 577)

    5.18 트라우마티즘에 대한 이러한 연구들을 보면서 문부식의 다음 문장을 떠올린다면 잘못된 것일까. "성화된 기억은 결코 위험하지 않다. 또한 성화의 과정은 실제의 기억들을 지우는 과정이기도 하다."(문부식, 82) 또한 이 문장을 떠올릴 수 있다면 다음 질문들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정사로서의 광주가 종결시킨 것은 국가의 폭력적 성격인가 아니면 그것에 맞서게 해온 기억의 역능인가"(문부식, 8) 나아가서 문부식은 이렇게까지도 묻는다. "광주항쟁은 반드시 국가의 공식적 기억이 되어야 하는가? 광주는 국가 폭력을 늘 상기하는 시민의 공공적 기억으로 남겨 두면 안 되는가?"(문부식, 116)
    조희연도 문부식의 이런 질문이 전혀 잘못되었다고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희연은 기본적으로 민주화운동의 '국가화'는-문부식이 지적하는 딜레마가 있긴 하더라도-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현재의 '국가화'에서 어떤 문제가 나타난다면, 그것은 한국의 민주화가 '위로부터의 보수적 민주화'이기 때문에 생기는 불철저함의 측면이 강하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상'과 '기념사업'이라는 방식에서, 특히 앞의 연구에서 인용한 '국립 5.18 묘지'에서 드러나는 것은, 경제적 지출과 공간적 점유를 가능하게 하는 국가의 물질적 권력이다. 이러한 국가의 권력을 통해 이루어진 경제적 지출과 공간적 점유는 그 자체로 이후의 사회적인 기억에 강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5.18 유족회가 국립묘지화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이유일 것이며, 조희연이 '국가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게 국가의 물질적 권력이 강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조희연도 인정하는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물질적 권력이 낳은 물질적인 산물들은 그 자체로 고정의 효과를 가지며, 그 물질적인 산물들이 다시 사회적인 기억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기억마저도 고정시켜 버린다는 딜레마. 여기에 한국의 '국가주의'가 기억을 할 수 있는 생각의 도구마저도 이미 제공해 버리고 있다는-예컨대 '붉은 악마'-현실까지 겹치면, 국가가 사회적인 기억에 행사하는 영향력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더군다나 그렇게 국가가 행사한 영향력의 결과가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찬 기념사업과 그 욕망에 조응하는 기억만의 생존, 그리고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트라우마티즘이라면 말이다.
    물론 이러한 현실을 두고서 '보수적 민주화의 불철저함'이라는 용어를 써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때 '보수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예컨대 5.18 기념사업에서 드러나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5.18 유족회와 국가의 합작품이라면, 이것은 '보수적 민주화'인가 아닌가. 이런 현상을 '불철저함'이란 단어로 표현할 수야 있겠지만, 그 '불철저함'을 '보수적'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문부식의 다음 문장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도대체 역사나 과거라는 것은 '청산'될 수 있는 것인가?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는 마치 결산서를 작성하여 집행하면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그런 것인가? 과연 과거 청산이라는 말은 희생자 쪽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가해자나 방관자 쪽에서 나온 것인가?"(문부식, 129-130)
    '국립 5.18 묘지'는 5.18 트라우마티즘을 치유하지 못했으나, 그러면서도 엄연히 '국가의 공인'을 표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 뒤에 숨겨져 있는 것은 5.18의 기억이 불러 온(그리고 '트라우마티즘' 등의 형태로 지금도 부르고 있는) '국가'와 '사회'의 동요를 잠재우고자 하는 의도이다. 그런데 이 의도는 앞에서 보았듯이 '국가'만의 의도가 아니라 '국가'와 '대중'-심지어 '피해자'의 일부까지도-이 공유하는 의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거 청산'이란 말은 바로 이렇게 '과거'가 불러올 수 있는 동요를 잠재운 '평안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다면 그러한 '평안한 사회'는 대체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
    한국에서도 국가주의는 발전주의와 쌍을 이루어 작동했고, 발전의 결실 이후에야 한국인들에게 내재화될 수 있었다. '국부'라는 이승만에 대한 존경보다는 '근대화의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존경이 훨씬 높지 않은가. 이것은 국가주의가 단순히 '국가'에 개인을 종속시킨다는 문제만으로 파악될 수 없지 않은가 싶다. 국가주의가 만들어 놓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 이후의 다른 '권력'에 대한 욕망과 접속할 수 있는 충분한 토양을 만들어 준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권력'에 대한 욕망은 동시에 '자기 실현'의 출구를 열어 주기도 할 것이고. 예컨대 '붉은 악마'는 그 가장 좋은 예가 아닐까. 그리고 '국립 5.18 묘지'도. 혹시 이 두 가지는 '포스트 박정희(탈박정희?/후기 박정희?)'를 상징할 수 있는 가장 지배적인 예가 아닐까.

    앞에서 인용했던 문부식의 마지막 질문에서는 '공공'과 '국가'가 구분되며 미묘한 긴장관계를 맺고 있다. 반면 조희연에게서는 그러한 구분과 긴장관계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국가화'의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국가화'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결정적 이유는 그 영향력이 전 사회적으로 발휘될 수 있다는 '실용적인' 측면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공'이라는 형태로 그러한 '전 사회적인 영향력'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문부식의 주장이 설령 그런 '실용적'인 측면에서 평가하더라도 조희연의 주장보다 낮은 점수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공공(公共)'이라는 문제의식은, 일단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共'을 창출해야 하고, 다시 그 '共'이 전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公'을 성취해야 한다는 함의이므로,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운동과 투쟁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인 운동과 투쟁에는 앞 장에서 다룬 '원죄'를 갖고 있는 인간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므로, 그 운동과 투쟁이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원죄'에 대한 싸움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국립 5.18 묘지'는 그런 싸움과 운동과 투쟁을 비약해 버린 '국가화'는 실패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증표가 아닐까.

    4. 민주화운동 : 사회적 정당성과 '기억의 정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동의대 사건' 관련자들은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원회>로 약칭)에 명예 회복만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들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대체 그들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은 것이 명예 회복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명예 회복이라고 한다면 그 핵심 사항으로 전과를 소멸하는 작업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동의대 사건' 관련자들의 전과는 '현주건조물 방화치사상죄'와 '특수공무집행 방해죄'이다. 이 둘 중에서 당연히 핵심은 '현주건조물 방화치사상죄'일 터이다. 그렇다면 '발생한 결과가 중대하다는 것만으로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부인할 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심의위원회>의 결정은 대체 '현주건조물 방화치사상죄'의 전과를 소멸하는 것에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국가에서 인정을 받는 것이 '명예 회복'이 될 수 있다면, '민주화운동'이란 딱지로 부여받는 '명예'는 '현주건조물 방화치사상'이라는 '전과'에 상관없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결론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건 좀 과장하면 '민주화운동 관련자'는 그 과정에서 '현주건조물 방화치사상'을 저질러도 문제가 안 된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러니 유족이 반발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보수 세력의 반격을 자초할 수밖에 없으며, 그러니 '민주화운동이라도 면책특권은 없다'는 지적이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동의대 사건'에 대한 <심의위원회>의 결정의 진정한 문제는 '동의대 사건'이 민주화운동이냐 아니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의대 사건'이-'경관 7명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를 해결하지 않고도-그러한 사회적 정당성을 누리는 것이 마땅하냐 아니냐에 있다. 만약 후자의 질문을 전자의 질문으로 바꿔치기해서 읽는다면, 거기에는 민주화운동을 곧바로 (국가가 보장해야만 하는) 사회적 정당성으로 연결시키는 비약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예컨대 이러한 비약의 한 예가 조희연의 다음과 같은 문장 아닐까 싶다. "진상규명은 가해자를 가려내는 것이다. 이상적으로 하면 과거 독재의 가해사실을 진상규명하고 그러면서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명예회복하고 보상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러나 그것은 87년 이후의 위로부터의 민주화의 성격과 보수세력들의 저항에 의해서 불가능하게 되고, 아래로부터의 노력에 의해 그나마 '진상규명 및 처벌과 분리된 명예회복 및 보상'이 별개로 추진되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운동 명예회복위원회의 활동이라고 하는 과거청산의 제한된 공간을 활용하면서 명예회복 신청을 한 것은 진상규명운동의 연장선 상에서 충분히 유의미한 것이다."(조희연, 240) 조희연의 '진상규명'과 문부식의 '진상규명'은 전혀 다른 의미인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비약의 근원에는 앞 장에서 지적했던 '공공'과 '국가'의 긴장관계에 대한 망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의 '공공'과 '국가'의 긴장관계는 예컨대 문부식의 다음 문장에서 잘 드러난다. "민주화 운동 진영 내에서 '동의대 사건'을 민주화 운동의 일환으로 인정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될 수 있다. 거듭 말하지만, 나 역시 그 사건이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생겨난 사건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앞서와 같은 민주화 단체들의 성명이 언급하고 있는 것은 국무총리 산하 심의위원회가 제도적으로 '동의대 사건'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한 것을 전제로 나온 것이다. 이 경우 민주화 운동 진영이 아니라 그 누구도 사회의 공론 영역에서 다른 의견의 존재 가능성을 부정하는 일방적인 집단적 자기 주장은 삼가야 한다."(문부식, 181) 그런데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조희연을 비롯한 비판자들은 <심의위원회>의 결정 이유를 반복하는 데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심의위원회>의 결정 이유는 '민주화운동 진영 내'에서 그 사건을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생겨난 것으로 판단하는 데-즉, 문부식도 동의하는 지점-에는 유의미할 수 있어도, '제도적'인 차원, 즉 '사회적 정당성'이라는 '공공'의 문제와 연결지어야 하는 차원-문부식의 논의의 본질적인 지점-에서는 앞에서 보았듯이 아무런 대답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차원을 망각한 채 논의를 진행함으로써 민주화운동을 (국가가 보장해야만 하는) 사회적 정당성으로 곧바로 연결시키는 '비약'을 저지른 것이 문부식 논쟁(?)이 '폭력' 논쟁(?)으로 빠져 버린 결정적 이유가 아니었을까.

    조희연은 문부식이 '동의대 사건'이 피할 수 있었던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그것은 결과론에 지나지 않은 논리로 당시의 사건 관련자들의 절박함을 고려하지 않는 주장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조희연의 논리는 거꾸로, '동의대 사건'에 대해 필요한 '기억의 정치'의 가능성을 막는 논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조희연의 논리대로라면 '동의대 사건'에 대한 기억은 관련자들의 당시 생각에 대한 '전달' 이외에 무엇이 가능할까. 더군다나 사실 이미 그 '전달' 과정 자체가 하나의 '기억' 과정일 뿐이라, 그 '기억'에 이미 '기억의 정치'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문부식의 주장이 바로 그 '기억의 정치', '우리의 사회적 정당성'에 사로잡혀 전개되는 그 '기억의 정치'에 대한 이의제기였다면 말이다.

    물론 '민주화운동'이 이렇게 사회적 정당성으로 자신을 비약시키고 싶어하는 현상은, 그리고 그 비약을 국가로부터 공인받고 싶어하는 현상은, '국립 5.18 묘지'를 보더라도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아마 이 지점에서 '불철저한 민주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공공성이 사회적 욕망을 적절하고 정당하게 표출할 수 있는 출구를 못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므로.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비약이 '민주화'라는 다행스러움으로 작동할 것인지 아니면 도리어 '불철저함'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것인지에 있을 것이다. 그 '불철저함'이 '국립 5.18 묘지'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일종의 '공모'를 그 근원에 두고 있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것은 그 비약이 일종의 '기득권'에 대한 욕망과 그 실현의 증표라는 말일 것이며, 따라서 '민주화운동'이 여전히 폭력을 그 서술어로 하는 한국 근대화에 편입되어가고 있다는 말일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재의 'CBS 사태'는 바로 그런 '기득권'과 '편입'의 증표가 아닐지.

    어쩌면 현재 '민주화운동'이 겪고 있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기독교가 아주 고참선배격이 될 지도 모르겠다.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반란자로 죽은 예수의 수난을 기억하는 '위험한 기억'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기억으로 자신들의 대중을 통합해낸다. 그 통합의 강고함은 기독교가 로마 제국을 이길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의 하나였으며, 근대 이후의 정교분리라는 환경 속에서 기독교가 존속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 승리와 그 존속의 과정은 동시에 기독교의 패권주의적인 신앙이 형성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현재의 기독교에서 '수난'은, 그리고 그 '수난'의 뒤를 이은 '순교'는, 그 패권주의적인 신앙의 정당성을 보증해 주는 가장 유력한 기억, 그래서 또다른 의미에서의 '위험한 기억'이다. 이러한 '위험한 기억'을 가짐으로써, 기독교는 '폭력'을 '원죄'로 하는 세계에 편입되어 버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정도를 넘어 기독교 자체가 하나의 '원죄'가 되어 버렸다고 하면 자학인 걸까.

    5. 구원의 가능성 : "이기든 지든 괜찮아!"
    문부식의 책 후반부는 한국 근대화의 폭력성에 맞서 싸운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중에 어떤 시원한 '승리'를 거둔 사람들은 없다. 굳이 그 중에 '승리자'를 꼽는다면 서승이겠지만, 서승의 경우에도 자신을 굽히지 않았다는 것 이상이 아니다(물론 그 가치를 평가절하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윤이상의 경우는 좌절이며, 김경환의 경우는 아예 패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부식은 그들에게서 "결코 상품화할 수 없는 정신과 직립 보행의 당당한 인간"(223)을 본다.
    문부식은 김경환의 책 뒤에 붙인 발문으로 쓰여진 그의 책 제8장에서 "이기든 지든 괜찮아!"라는 김경환의 말을 소개한다. 그 말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직후 노동운동을 준비하던 김경환의 소속 조직이 조직 사건으로 깨지던 시간에, "동지들이 잡혀가고 있다"고 울먹이며 "우리 승리할 수 있을까?"를 묻던 그의 여성 동지에게 14년만에 건네는 대답이다. 김경환은 10여년 뒤 그가 속했던 또다른 조직이 총책의 완전 투항과 전향으로 깨진 상황에서 도망치는 망명도, 이미 실망한 북한 체제에 대한 투항도 선택하지 않고 '이곳에서 비를 맞는', 정직하게 지는 투옥의 길을 택한다. 문부식이 여기에 붙이는 최인훈의 문장. "광장에서 졌을 때 사람은 동굴로 물러가는 것, 그러나 과연 지지 않는 사람이란 게 이 세상에 있을까. 사람은 한 번은 진다. 다만 얼마나 천하게 지느냐, 얼마나 갸륵하게 지느냐가 갈림길이다."(문부식, 278 에서 재인용)

    문부식 논쟁(?)에서 비판의 입장에 선 거의 모든 사람들은 문부식의 주장이 약자의 '흠'을 지나치게 들춰내 강자에게 이용당할 소지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비판을 했다. 이 비판에 대해서 필자는 한번 이렇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대체 희생자의 입장에서 볼 때, '강자의 폭력'이나 '약자의 폭력'이나 어떤 차이를 둘 수 있을까. 예컨대 아프가니스탄에 떨어진 폭탄으로 죽은 목숨값과 세계무역센터에 부딪친 비행기 안에서 죽은 목숨값에 차이를 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자의 흠을 지나치게 잡으면 안 된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면에는, 어쩌면 '약함'과 '정당성'을 이유로 해서 '흠'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으려는 생각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러한 '면제'가 '승리'를 위해 필요하며, 그 '승리'는 '정당한 편'의 승리이므로 정당하고, 그러한 '승리'로 인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 그 뒤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생각해 오지 않았겠나 한다. 앞에서 지적했던 문부식의 주장에 대한 다른 비판들, 예컨대 '광주'에 대한 공모라는 해석이 위험하다는 비판이나, '국가화'에 대한 우려가 지나치다는 비판, 그리고 자기 반성에만 사로잡혀 민주화운동의 사회적 정당성을 훼손했다는 비판 등은 결국 이러한 '정당한 편'의 '승리'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 근본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여기에 대해서 문부식은 김경환을 빌어서 말한다.
    "이기든 지든 괜찮아. 지게 되면 정직하게 지자."

    '근대적 한국인'은 앞에서 보듯이 국가주의, 반공주의, 발전주의에 공모하며 살아왔고, 그리고 계속 공모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윤상원, 양원태, 김경환 등과 같이 그 공모에서 탈주하고 있다. 이렇듯 '공모'와 '탈주'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 '근대적 한국인'의 모습이라면, '근대적 한국인'에게는 신뢰도 불신도 적절한 태도가 아니다. 아니, 신뢰를 하든 불신을 하든 간에, 그렇게 '공모'와 '탈주'가 공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게 더 정확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현실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승리'만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직하게 지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정직하게 진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전부에 정직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사실은 그렇게 자신의 삶의 전부에 정직할 수 있는 지평이므로 "이기든 지든 괜찮아!"가 성립할 수 있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기든 지든 괜찮아!"가 성립할 수 있다면, 이기든 지든 앞으로 나갈 수 있기도 하다. 또한, 삶의 전부에 정직할 수 있는 지평이라면, 삶에 작용하는 모든 서술어, 특히 '원죄'로서의 서술어에 정직할 수 있다는 말이므로, 그 지평에서는 자연스럽게 '우리'에 대한 성찰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지점에서 더 이상 '비판'의 가능성은, 그리고 그 '비판'에서 출발하는 '구원'의 가능성은, '강자'나 '약자'라고 자신을 스스로 주장하는 어떤 세력의 '승리' 여부에 달려 있지 않다. "이기든 지든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직립 보행의 당당함"이 존재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예수의 마지막 생애 1주일 간에는 '호산나'라는 승리의 모습과 '십자가'라는 패배의 모습이 교차한다. 예수의 마지막 모습은 '호산나'가 아니라 십자가다. 물론 십자가 뒤에는 '부활'이 있긴 하지만, 부활은 '호산나'의 버전업이 아니다. '교회'는 부활을 '호산나'의 버전업으로 읽어 왔지만 말이다.
    '호산나'가 의미하는 '승리'의 모습, 어쩌면 '메시아'라는 단어는 그러한 '승리'와 분리될 수 없는 '단어'일 지 모르겠다. 그리고 '호산나'의 함성은 패배자로 나타난 예수에게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규탄으로 되돌아왔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어쩌면 '메시아'에 대한 부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메시아가 부정된 자리에서, 그런 패배를 다시 당하지 않을 새로운 메시아-그것이 설령 '민중'이라는 이름이라도-를 찾을 게 아니라, 삶이 계속되는, 그래서 '공모'와 '탈주'가 교차하는 현장, 그런 현장이라면 당연히 곳곳에 존재할 "직립 보행의 당당함들"에서 다시 출발하라는 것. 그것이 부활의 의미가 아닐까. 감히 말한다면, 이러한 메시아 부정론에서 귀결되는 구원론, '승리'가 아니라 '패배'에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구원론이, '승리'도 겪지만 '패배'도 겪는, '탈주'도 하지만 '공모'도 하는, '민중'의 삶에 일어나는 '사건'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찾는, '민중 메시아론'의 한 함의이기도 할 것이다.

    1) 조희연의 이 글은 <경제와 사회> 2002년 가을호에 발표된 [과잉 과거청산인가, 과소 과거청산인가?]와 그 논지가 비슷하나 내용은 많이 보충되었다.
    2) 이 두 문헌에서 인용할 경우 별도의 각주 없이 인용문 끝에 각각 (문부식, 쪽수), (조희연, 쪽수)로 표시한다(조희연의 경우 쪽수는 <비판사회학대회> 자료집의 쪽수이다). 그리고 다른 문헌을 인용할 때도 처음 인용 때 문헌명을 밝힌 다음 두 번째부터는 같은 방법으로 인용한다.
    3) 필자의 고향은 부산인데, 경북이 고향인 아버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때 광주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한 군데만 더 그런 사태가 터졌으면, 김일성이 밀고 내려왔을 거다."
    4) 이 섹션에서 발표된 글들은 다음 세 편이다.
    최정기, [기억의 정치, 보상의 정치 - 5.18 기념사업 및 행사를 중심으로]
    박영주, [5.18 트라우마티즘과 기억 되살리기]
    정호기, [트라우마티즘과 기념사업 - 5월운동과 5.18 기념공간을 중심으로]
    5) '현재의 법과 제도 하에서 보상과 기념사업은 5.18 주체의 극히 일부라고 할 수 있는 물리적 피해자 중심의 보상과 기념사업이 될 수 밖에 없으며,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전시민적 저항이나 당시 광주에서 형성되었던 공동체에 대한 기억은 별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중략) 나아가 물리적 피해 중심의 보상과 기념사업은 자신의 피해를 주장할 수 없는 사람, 피해를 입증할 수 없는 사람에게도 별다른 의미가 없다. 입증은 법적으로 본인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5.18 이후 정신적 장애로 시달려온 사람들 중 많은 수가 보상 및 기념사업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최정기, 560)
    6) '(국립 5.18 묘지는) 국립현충원의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권위주의적 공간적 특성들을 보여주는 원리들이 그대로 투영되었다. 중앙의 수직적 추모탑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다. 또한 입구와 묘지의 거리가 매우 멀게 설계된 점, 입구보다 높이 위치한 묘역, 다양한 죽음의 기원과 특성들이 드러나지 않는 획일적으로 배열된 정리된 묘들의 모습, (중략) 등은 국가기념비적 공간과 별다른 차이가 없게 하는 요인들이다'(정호기, 591). '이러한 현상들은 5.18 묘지가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부터 국립묘지 승격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략) 특히 강력하게 국립현충원의 구조와 외형을 추구했던 것은 직접적 피해자집단인 유족회였다. 국립묘지를 추구했던 것은 5.18에 대한 국가의 부정적 평가를 확실하게 종식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해 있었다.'(정호기, 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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