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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발제] 그가 교회에 '필'이 꽂히지 않는 이유 [카테고리]
  • 김진호
    조회 수: 3386, 2003.03.25 16:41:05
  • 그(녀)가 교회에 '필'이 꽂히지 않는 이유는?


    김진호 | 목사·{당대비평} 편집위원


    최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등이 주도하는 이른바 '나라와 민족을 위한 평화기도회'가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어떤 이의 참관 소감을 들으니, 왜 모이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별로 없고 막연한 냉전의식 정도로만 무장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기독교인들이 반전·평화 등의 사회적 문제에 무감각하다는 반증일 터다. 그러한 교인 대중 수만 명을 시사적인 공론의 광장으로 이끌어낸 냉전주의적 기독교 엘리트들의 동원력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그럼에도 '나라·민족'과 '평화'를 한 줄로 꿴 의제 형성 능력은 지나치게 단세포적이다. 근대는 전쟁이 민족국가를 단위로 일상화되는 특징을 갖는다. 즉 근대에 일어난 대부분의 전쟁이 국가간의 국익을 둘러싼 분쟁이었으며, 국가간 관계는 그리고 국민의 일상은, 전시든 아니든, '전장(戰場)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나라와 민족을 위한 평화'라니!
    한데 이러한 동원 형태나 의제 형성 방식이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마치 오래돼서 몸에 잘 어울리는, 하지만 약간 낡았고 촌스럽기도 한 옷을 장롱 속에서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그것은 '박정희의 유산'이다. 이른바 '박정희적 가치'는 한국의 근대화와 맞물려 근대적 규율의 정신을 구성하였으며, 그가 죽고 없는, 또한 이른바 박정희식 근대화의 질곡을 충분히 체험한 현재까지도 여전히 한국인의 무의식적인 욕망 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그 역사의 골동품을 생생하게 보전하고 있는 대표적인 이해 집단이 바로 기독교라는 사실이 이 집회를 통해 단적으로 드러났다.
    아무튼 시청 앞 광장에 모인 인파가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함에도, 대표적인 대중적 매체들은 거의 전적으로 무관심했다. 단신 정도만이 이 집회의 실상을 알리는 유일한 대중매체적 정보였다. 비록 무의식적 욕망의 틀 속에 견고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그것에 반대되는 의제화의 내용이나 형식을 통해 어떤 일을 도모할 때조차도 은연중에 그 폐습을 모방하곤 하지만, 적어도 의식의 영역 안에선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이 재현한 역사 골동품의 전람회는 철저히 무시당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무관심 내지 무시의 이유는 무엇일까? 박정희의 유산이 오늘의 우리에겐 주된 청산의 대상이니 사람들에게 곱게 보일 리 없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의 수많은 의제화의 시도들 속에서, 심지어 과거 폐습의 청산을 부르짖을 때조차도 우리 자신의 얼굴 속에서 그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는가? "씨 도둑질은 못한다"는 어른들의 말은,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은, 청소년기나 청년기의 아들들에겐 꽤나 충격적인 자기 발견의 절망적 계기가 되곤 한다. 그것은 동시에 개인적인 것을 넘어서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에 대한 사회의 이러한 무시/무관심의 또 다른 이유, 덧붙여지는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내 소견을 말하자면, 이 집회가 내걸은 의제화의 내용과 형식보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그것을 주장한 주체가 다름 아닌 '기독교 세력'이었다는 점에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이기는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매체지식인들 대부분은 기독교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물론 이들만의 현상은 아닌 것 같다. 보다 폭넓은 차원에서 반기독교적 정서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듯하다. 이러한 최근의 분위기는 기독교가 무가치하다던가 비도덕적이라던가 하는 합리적 평가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보다 뿌리깊게는 만나고 싶다던가 뭔가를 듣고 싶다던가 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 나아가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그들이 하는 일이라면 왠지 모르게 싫어지는, 일종의 혐오 감정과 연관된 것이라는 얘기다. 요컨대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반감은 교회의 도덕적 재무장 정도로 해소되기에는 너무 깊은 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난해에 있었던 {예수는 신화다}를 둘러싼 해프닝을 떠올려본다. 예수의 역사적 실재성을 대부분 부정하고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지중해 지역의 신화 현상의 일부라는 이 책의 주장은 분명 기독교로서는 참을 수 없는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기총' 등의 과민반응은 바로 교회가 건강한 시민사회 형성의 '독소'임을 자인하는 결과에 다름 아니었다. 그들은 책의 출판을 철회할 것과 시중에 배부된 책의 회수를 요구했다. 문화적 재화의 존재 타당성을 평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소비자(독자)의 몫이다. 국가에 의해서든 시민사회 내의 어떤 이해집단에 의해서든 어떤 것의 존재의 타당성이 미리 재단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무수히 자행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사전 검열은 사회적 혼란을 막고 갈등을 억제하는 데 있어 유효하다는 명분 아래 수행되어온 권력의 전형적인 시민사회 통제 양식의 하나다. 그리고 그것은 이질적인 것을 견디지 못하고 단일대오적 총화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편집증적인 시민사회를 낳는다. 그런 점에서 검열이라는 것은 파시스트의 습관적 사고방식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한기총과 교회는 이 사태에 대해서 분명 파시스트적으로 행동했다.
    잠시 얘기를 빗겨가서 수년 전 기억 하나를 떠올려본다. 한 후배가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다니던 때였다. 수유리의 한신대학 캠퍼스와 이웃하고 있는 화계사의 학승들이 성탄절을 맞아 축하 현수막을 신학교 앞에 내걸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에 응답해서 신학대학원생들이 이듬해 사월 초파일을 맞아 부처님의 오심을 경축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바로 그 자리에 걸었다. 한데 그때부터 '십자군들의 테러'는 시작되었다. 밤에 몰래 와서 현수막을 가위로 난도질하기가 몇 번이고, 심지어 휘장을 두른 지방 도시의 '십자군'이 먼 수유리까지 달려와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땅에 평화를 선사한 예수의 제자들의 모습이다. 절대적인 것에 대한 확신이 낳은 편집증적 신앙 양태는 이미 기독교인 개개인의 구체적인 행위에 이렇게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과 그들의 종교를 도대체 누가 좋아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는 신화다}에 관해 거의 모든 매체들이 이 책에 대해 침묵하는 동안, 순복음 계통의 한 일간지가 유독 이 문제에 관한 기사와 논평을 연일 게재하였다. 하지만 단지 몇 편의 글에서만 진지한 토론의 자세를 엿볼 수 있었을 뿐, 대부분의 글은 이렇다할 논리도 결여한 채 격앙된 감정만을 표출하는 데 그치고 있었다. 일체의 비판에 대해 견디지 못하는 이들의 강박증적 과민반응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한편 좀 뒤늦게 논의에 개입한, 온·오프라인 매체인 <뉴스엔죠이>는 비교적 침착하게 이 문제를 다루었다. 전체적으로 {예수는 신화다}의 주장에 대한 기독교 측의 가장 진지한 태도는 역사적인 접근을 하는 예수 연구자들에게서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역사의 예수' 연구가 거둔 근대의 성과들을 요약 정리하면서 그 책은 19세기 예수 연구의 일부분이 범한 잘못을 답습한 데 불과하다는 주장을 폈다. 즉 예수 이야기가 신화라는 주장은 예수에 관한 역사적 연구를 통해 이미 극복된 것이라는 얘기다.
    {예수는 신화다}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퍽 취약한 책이다. 왜냐면, 신비주의 연구자라는 저자들의 이력에도 불구하고, 책의 내용은 비약과 아마추어적 논변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기독교계에 던져주는 의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부터 이미 배제의 대상이 되어버린 일련의 신비주의 텍스트들을 예수 담론에서 대거 복원시키려 한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들 신비주의 텍스트들의 역사적 가치는 이른바 기독교계 연구자들에게서 대부분 필요 이상으로 폄하되어왔다. 최근 일단의 여성신학자들이 예수 연구에서 이런 텍스트들의 유의미성을 강조한 바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 예수 연구자들에게는 가려진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여성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초기 기독교 신비주의 운동에는 여성을 포함한 마이너리티 집단들의 존재가 추론된다. 그들의 예수 이해가 역사의 예수를 읽는 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은 두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여성신학자들은 예수운동 지도자 그룹에서 여성의 존재를 복원함으로써 예수운동을 새롭게 조명하였으며, 민중신학은 예수운동에 참여한 기층대중(오클로스)의 존재를 통해서 사도계 공동체와는 다른 예수운동의 민중적 계보를 추론해냈다. 이러한 비판적 연구들은 기독교 지성사와 예수 연구사에서 마이너리티적 시선의 부재가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즉 예수 연구사는 결코 가치 중립적으로 수행되어오지 않았으며, 이와 연동되어 기독교 신학이 다수자의 계급적 편향을 극복하지 않으면 오늘의 사회에서 '신앙의 위기'는 필연적이라는 주장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잃어버린' 신비주의적 텍스트들을 통해 예수에 관한 전통적 관점에 의문을 던진 것은 이 책의 주요한 미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독자들이 {예수는 신화다}에서 이러한 의의를 찾아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의 의의에 관한 나의 평가는 저자들의 관심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요컨대 나는 책이 말하지 않았고 저자가 생각하지 않은 지점을 이 책에서 읽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저자들의 관심은 기독교 측의 예수 신앙이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신화적 허구에 의존하고 있다는 데 있다. 여기에는 '신화 대 역사'라는 이분법이 전제된다. 달리 말하면 '허구 대 사실'이라는 이분법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러한 이분법은, 이 책과 기독교적 예수 연구간의, 상반된 입장에도 불구하고, 양자간의 인식론적인 공유지점이기도 하다.
    한데 오늘날의 역사학과 신화학은 역사적인 것과 신화적인 것을 이분법적으로 가르지 않는다. 신화적 텍스트에는 '의미의 잉여'가 과도하게 넘쳐흐르지만, 거기에는 텍스트의 시공간적 맥락에 연계된 실천들이 어떤 형태로든 얽혀 있다. 또한 어떠한 역사적 의미화도 신화적인 '의미의 과잉'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역사학은 고정된 어떤 시간적인 것(facts)을 향한 귀향 작업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화하는 과거적 기억의 해석 과정이며, 그런 점에서 허구와 사실에 관한 판단은 역사적 해석들간의 갈등 및 헤게모니적 절합(hegemonic articulation)의 결과인 것이다. 결국 {예수는 신화다}와 그에 대한 예수 학계의 논쟁은 두 개의 우물 안에서 각기 하늘을 보면서 그것이 하늘 전체라고 주장해온 논의가 서로 마주친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논쟁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러한 성찰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이야기한 것이다.
    요컨대 이 책의 도발적인 주장은 기실 내실 없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고, 따라서 그다지 주목할 만한 것이 못되었다. 그런데 기독교 측의 대응은 지나치게 과민했다. 또한 부적절한 논쟁으로 일관했다. 한데 이 책은 당시 꽤나 많이 팔린 책에 속한다. 즉 선정적 상업주의는 성공한 것이다. 기독교 측은 아마도 책 자체보다는 이러한 성공에 과민 반응한 것으로 보이는데, 책의 선정적인 주장들과 논쟁할 줄만 알았지, 대중의 '반기독교' 정서를 읽을 줄 몰랐다는데 문제가 있다. '예수가 신화인가 역사인가'의 논쟁은 각기 자기 주장들만 내세웠을 뿐 일반적 지식의 영역에서 설득력 있는 논리를 어느 편도 갖추지 못하였다. 또한 이기기 위한 게임에 몰두한 나머지 자신을 성찰하는 데 또 한번 실패하였다.
    한편 책이 상업적으로 성공했고 기독교 측의 반응이 거의 모든 매체에서 외면당했음에도, 동아일보사는 책을 절판하기로 결정했다. 이 사태에 대중이 개입할 틈도 없이 '침묵의 카르텔'이 작동했고, 검열은 성공을 거두었다. 거대언론과 종교 권력은 시민사회의 건강한 자정 능력을 퇴화시키는 일에 또 한번 담합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예수는 신화다} 사태는 기독교가 시민사회 내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여기서 교회는 전혀 대화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 첫째로 비판자에 대해서는 대화보다는 이기기 위한 공격에만 치중하고 있으며, 둘째로 대중사회에 대해서는 가르치고 통제하고 검열하는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고, 마지막으로 외부의 권력 집단에 대해서는 권력 자원을 분할·배분하는 교섭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이것은 서양의 기독교가 한국에 유입되면서 국가와 맺은 관계 방식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종교학자 장성만은 기독교가 '정교분리' 및 '신앙의 자유'를 관계의 원칙으로 하여 한국의 시민사회 내에 자리잡게 되었다는 점을 주목하면서, 이 문제에 접근한다. 정교분리와 신앙의 자유 원리란 서양의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기독교 신앙의 근대적 정체성의 요소들로, 신앙을 서양의 전근대로부터 분리하고 나아가 '또 다른' 전근대인 비서구와 구별짓게 하는 배타적인 잣대의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원리들이 선교라는 이름 아래 한국에 (적절한 '번역' 과정 없이) 무매개적으로 이입되면서, 문화나 종교 같은 전통적 시민사회를 배제하는 근대화 담론의 선봉장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형성된 한국의 기독교 신앙은 시민사회 내의 다른 요소들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고 공세적인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서양의 기독교 신앙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선 더욱 노골적으로 발현하였다.
    한국의 근대화가 돌진적(rush-to) 성격을 띠던 1980년대 전반까지는 교회의 이러한 배타적 승리주의는 그 부정적 이미지보다는 오히려 선망의 이미지로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기독교의 종교적 성화(sanctification) 구조와 권위주의적 체제의 정치사회적 성화 구조는 서로 등가를 이루며, 근대화라는 한국의 '시민종교'를 안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특히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세속화 내지는 탈성화(desanctification) 현상을 두드러지게 나타냈다. 우선 '민주화' 담론의 확대가 그러한 현상을 확산시키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였음이 분명하다. '민주화'란 관계 구조가 수직적 네트워크에서 수평적 네트워크로 이행하는 정치 사회 문화적 제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러한 수평적 관계 구조의 확대는 민주화의 확대라는 차원만이 아니라 소비 자본주의의 심화라는 물적 조건의 변화와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소비 자본주의가 한국 사회에서 본격화된 시기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다. 당시 국제 경제 환경의 악화를 내수시장으로 전화시키는 데 있어 올림픽은 유효한 계기였음이 분명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비 자본주의적 전개는 '개인'이 욕망의 주체로서 부각되는 과정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한편 1990년대 이후 정보통신망의 비약적 확대로 비주얼한 매체의 점유 영역이 크게 확대되었고 그 순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짐에 따라, 주체로서의 개인의 감수성은 보다 감성적인 요소에 민감하게 되었다. 나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은 한국 사회의 행위주체로서 ('집단'이 아닌) '개인'의 등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계기였다고 본다. 비록 '글로벌 풋볼'이 월드컵을 통해서 국가주의를 고도로 강화하지만, 여기서 국민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전체주의적 국민이 아닌, 개체화된 결속체로서의 국민이었다. 그리고 이때 주체화된 개인은 감성적 감수성이 한결 강화된 존재였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탈성화/세속화된 한국의 시민사회 안에서 기독교의 위치는 변화의 강력한 요청에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이 시기에 기독교의 '위기 담론'이 본격적으로 언설화되기 시작했다는 데서 엿볼 수 있다. 이것은 대내적으로는 팽창주의적 교회 행정의 위기, 선교의 위기, 교회 회중 충성도의 이완 등으로 나타났지만, 보다 결정적인 것은 대외적으로 기독교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변화되었다는 데 있다. 그것은 탈성화/세속화라는 상황 변화에 대해 교회가 어떻게 대응했느냐의 문제에서 그 요인을 살펴볼 수 있다.
    기독교 신앙에서 교회란 기본적으로 하느님과 세계 사이의 중개자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과도적 존재로서 의미부여되어 있다. 하느님과 세계 사이의 간격이 근원적으로 해소되는 이상적 지평인 '하느님 나라'에서 교회는 무의미하다. 즉 신앙적 행위자의 '지금 여기'라는 실천의 무대에서만 교회는 존재 의의를 지니며, 그 실천이란 신과 인간 사이의 만남을 중개하는 일인 것이다. 특히 교회는 그러한 실천을 공간의 차원에서 사유할 때 등장한다. 요컨대 하느님 나라의 이상적 만남을 '미리 맛보는' 무대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유대교의 회당과 다른 것은 예수의 신앙 해석이 교회 신학에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수의 신앙 해석이란 '그가 사람이 된 신'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왕족이나 귀족 같은 고귀한 혈통도, 라삐나 사제 같은 신실한 직능도 배경으로 삼지 못한, 심지어는 메시아의 고향으로 부적절한 별 볼 일 없는 깡촌 출신, ..., 어느 모로 보나 육화된 신의 전형에 부합하지 않는 존재가 다름 아닌 그토록 '기다리던 그 신'이라는 얘기다. 가장 초기의 예수 추종자들의 이러한 집단적 이미지를 다가와 겐조(田川健三)는 '역설적 반항'이라고 명명한다. 복음서들에 나오는 예수의 수많은 언설들은 이러한 역설적 반항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것은 일상화된 의미의 코드를 교란시키는 역설들로 가득하다. 여기서 다가와가 지적한 요지는 예수라는 존재가 역설인 것은 그것이 하나의 대안적 코드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비유 연구자인 에이머스 와일더(Amos Wilder)의 분석처럼 예수 특유의 말은 발화자에게서 완성된, 꽉 채워진 어떤 것이 아니라 수용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과정을 향해 열려진 것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요컨대 예수는 단단한 것, 불변의 진리로서 코드화된 하느님에 관한 신앙을 흔들어버림으로써 메시아적 존재임을 실현한 이라는 얘기다. 이때 그 불변의 진리란 '범접할 수 없는, 영원의 거리 저편에 있는 거룩한 신'이라는 이미지다. 그것을 해체함으로써 예수는 신과 세계 사이의 새로운 대화 구조를 창출했다. 바로 수직적 관계 구조를 수평적 관계 구조로 바꾸었던 것이다. 수직적 관계는 '계시와 순종'의 관계로, 영원한 발화자와 영원한 수용자만을 허용한다. 반면 수평적 관계는 끊임없는 대화 구조 속에 신이 개입해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완결된 의미의 전달과 그것의 수용이라는 형태의 의사소통이 아니라, 부단한 대화를 통해 항상 새롭게 의미를 창조하는 의사소통을 요한다.
    그런데 교회는 얼마 되지 않아 이러한 예수의 신앙 해석을 전도시킨다. 하느님과 세계 사이에는 또 다시 심연의 거리가 가로놓이고, 교회는 그 배타적인 중개자의 역할을 자임한다. 신의 발화를 중개하는 존재로서 교회는 세계 위에 군림하며, 세계를 향해 말하고, 축복과 저주를 내릴 배타적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그리고 동시에 교회는 내적으로 그러한 계시의 배타적 해석자이자 중개자인 성직자와 그것의 수용자인 평신도 회중이라는 이분화된 수직적 계급 구조로 분화된다.
    {예수는 신화다} 사태에서 보았듯이 교회는 여전히 수직적 관계 신앙에 대한 집착에 빠져 있다. 또한 이른바 시청 평화 집회에서 보이는 교회의 친미적 태도는 수직적인 권력의 카르텔에 미국이 상위의 파트너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기독교 신앙이 수직적인 상위 세력의 폭력에 무감각하며, 반면 그 외부의 잠재적 위협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한국 기독교의 친미주의는 최근 비로소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 형성사 속에 내면화된 뿌리깊은 현상이다. 예수의 대속으로 인한 거듭남의 신앙은 한국 전통으로부터의 탈주체화와 하느님/하늘 나라의 성도(시민)로의 재주체화로 인식되었다. 이때 주목할 것은, 그러한 인식에 선교사들의 영향이 압도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의 대다수는 미국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제국주의에 대해 철저히 비성찰적이었다. 즉 한국의 기독교에서 하느님은 미국의 신의 이미지, 나아가 미국 자신으로 오버랩되어 신앙 속에 재현되었으며, 이렇게 물상화된 하느님 신앙 아래 탄생한 한국 교회의 새로운 '성도(시민)'는 미국의 하위시민처럼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이다. 결국 신앙이란 식민지적 자의식의 형성 과정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한국 기독교의 역사는 곧 한국 근대화의 역사라는 점에서, 한국 근대성의 핵심인 민족주의는 동시에 기독교 신앙의 무의식적 기반이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요컨대, 많은 민족주의 비평가들의 지적처럼, 한국의 근대성은 민족주의와 식민주의의 절묘한 결합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한데 최근의 반미 분위기는 신앙의 이 두 요소간의 갈등을 야기시켰고,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에 대한 기독교 보수주의 엘리트들의 대응이 바로 시청 집회였던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오늘날 기독교에 대한 한국 대중의 무관심/무시의 태도의 근저를 이야기해보려 하였다. 교회의 위기론을 이야기하는 여러 신학자들은 기독교의 도덕적 해이가 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기독교의 도덕적 해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기독교가 근대화 과정에서 맺은 한국과의 불행한 인연에 그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한때 그 만남이 불행한 것으로 이해되기 전까지는 기독교 신앙의 위기론은 심각하게 거론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 및 자본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대중의 주체화가 강화되었고, 한국 근대성에 대한 이들 개인적 주체들의 성찰적 태도가 의식·무의식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교회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는 보다 냉소적이고 비판적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독일의 문예미학자 페터 지마의 말대로, 아름다움이란 "개념 없이 마음에 드는 것"이다. 거기에는 숭고한 의미가 부여되기 이전에 즐거움이 그(녀)를 감싸 안는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는 즐거움이 소거된 신앙적 억견(도그마)의 파괴적 운명이 다루어져 있다. 숨막히는 총체성의 언어로 누적된 신앙 제도의 역사, 그러한 교회의 전통은 아름다움을 개념화했고, 즐거움의 느낌을 밀랍 우상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므로 교회는 지금 여기의 사람들의 욕망과 만날 수 없다. 더욱이 식민지 근대화 과정의 소산인 한국 기독교는 탈식민화를 향한 대중의 욕망에 부정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다. 오늘 한국인에게 기독교가 줄 수 있는 즐거움이란 성령파 교회들의 천민적 희열에 불과하다.
    레비나스의 주이쌍스를 성찰적 희열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면, 한국 기독교는 한국의 주체화된 대중에게, 성찰적이고자 하는 욕망의 주체에게 주이쌍스를 주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말하는 '기쁜 소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러므로 나는 교회가 신앙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하느냐, 세계에게 무엇을 선사할 수 있느냐를 고민하기에 앞서, 이 세계의 욕망의 구조를 바로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 세상과 대화하는 열린 태도를 필요로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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