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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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 [4월 발제] '역사적 예수1``' 연구와 톰 라이트(NT Wright) [카테고리]
  • 제3시대
    조회 수: 3094, 2008.07.25 11:12:12

  • >(각주가 많습니다. 각주보기를 원하시는 분은 첨부파일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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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예수' 연구와 톰 라이트(NT W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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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희송(학원복음화협의회 <캠퍼스 사역연구소> 연구실장, <복음과 상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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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들어가는 말
    >'역사적 예수 연구(historical Jesus studies)'는 20세기 내내 성서학계의 주요한 방법론과 경향이 바뀔 때마다 요동을 친 대형 주제이다.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이 문제에 관련된 수많은 쟁점들은 대다수가 현재 진행형의 논란거리들이고, 이를 일목요연하고도 포괄적으로 다루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 글은 그간 국내의 역사적 예수 논의가 주로 '민중 신학'의 흐름에서나 북미의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 흐름에 강하게 주도되고 있는 상황에 복음주의권 학자들의 목소리를 제출해보고자 하는 소망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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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복음주의 학자 톰 라이트(NT Wright)
    >필자가 소개하려는 학자는 현재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Westminster Cathedral)의 주임 신학자(Canon Theologian)인 톰 라이트(NT Wright)이다. 그는 왕성한 필력으로 역사적 예수 연구 분야에 끊임없이 저술을 내어놓고, 논쟁에 참여하고 있는 일급 학자이다. 그는 옥스퍼드대학에서 신학과 고전(classics) 양 과에서 우등졸업을 했고, 옥스퍼드, 캠브리지, 캐나다의 맥길(McGill) 대학 등지에서 가르쳤다. 그는 대학생 시절 '성서 유니온(Scripture Union)' 캠프에 참여했었고, 옥스퍼드 IVF 모임의 대표를 지내는 등 복음주의 학생선교단체에서 활동했고, 현재 복음주의권의 대표적 센터 역할을 하는 학교인 캐나다 뱅쿠버의 리젠트 칼리지(Regent College)에서도 교환교수로 가르치는 등 주목받는 복음주의 학자로 자리 매김되어 있다.
    >그는 학술적인 책뿐 아니라 대중적인 책도 많이 내는 편인데, BBC 같은 곳에서 역사적 예수 관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그의 얼굴을 보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널리 알려진 클레이 애니메이션 'The Miracle Maker'에도 그가 자문과 고증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런 화려한 학문적 이력을 가진 그가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지 않고, 성공회의 목회자로 오직 저술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도 특이한 일이다.
    >그를 복음주의자라고 말하는 데에는 그러나, 약간의 보충설명이 필요하다. 흔히 '복음주의(Evangelicalism)'라고 할 때에는 7-80년대 미국에서 절정기를 맞은 대중적 기독교 신앙을 일컫는 표현이다. 이는 흔히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으로 대표되고, 지미 카터(Jimmy Carter) 전 대통령으로 형상화되는 어떤 신앙적 태도이다.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내부적 흐름이 혼재하고 있고, 레이건(Reagan) 이후 부시(Bush)에 이르는 미국 남부 바이블벨트를 근거로 삼는 근본주의적 신앙인들도 이 명칭 아래 무시할 수 없는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은 성서무오설을 중심으로 매우 보수적인 성서해석을 신봉한다. 이런 미국 복음주의권의 경직된 태도에 대해서는 꾸준한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톰 라이트는 미국식의 전형적 복음주의자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의 연구가 그렇게 규정된 복음주의 신앙의 틀 바깥으로 내달리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성서학과 역사학의 연구방법론에 대해서도 유효적절한 것이라면 다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태도는 일부에서 그의 작업을 미심쩍게 바라보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보아 그의 작업이 복음주의 신학이 지금껏 탐험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탐색하는 과감한 작업으로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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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Why Not Jesus Seminar?
    >2.1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
    >역사적 예수 논의는 그 역사가 꽤 오래되었으나, 최근의 급격한 대중적 관심은 북미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의 영향이 크다. 1985년에 일단의 북미 신학자들은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란 이름의 연구모임을 시작한다. 이들은 예수의 말씀이 실린 주후 300년 이전의 모든 문서를 대상으로 이것이 실제 예수가 한 말인지, 아니면 후대에 삽입된 것인지를 학자들의 투표로 결정했다. 이것을 빨강, 분홍, 회색, 검정의 네가지 색으로 나누어서 '확실하다'에서 '확실히 아니다'까지를 표시한 <다섯 개의 복음서>란 책을 93년에 내었는데, 결과적으로 여기서는 외경인 '도마 복음서(Gospel of Thomas)'와 가상의 전승인 Q 문서가 가장 신뢰할만한 예수의 어록을 담고 있다고 제시하였다. 그 모임은 그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예수는 유대지방을 돌아다니며 금언(aphorism)과 비유(parable)를 주로 쓰면서 사람들에게 낡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고 설파한 현자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들에 따르면, 예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은 있었으나, 스스로가 해답을 가졌다거나 혹은 다른 이들이 해답을 가졌다고도 믿지 않았던 인물이며, 비종교적인 독특한 발상을 과장법과 패러독스를 통해 전달했고, 예루살렘에 축제 기간 중 올라갔다가 성전에서의 분명치 않은 사건을 통해 재판 없이 처형된 인물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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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예수 세미나에 대한 비판들
    >이런 예수 세미나의 작업에 대한 평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한편에서는 고고학, 인류학, 사회학, 성서학 등의 학제간연구(interdisciplinary study)를 통해 역사적 예수가 누구였는지를 파격적으로 재조명해내었다는 평가가 있는가하면, 다른 편에서는 자신들이 전제하고 있는 예수상을 도출하기 위해 자료나 연구 방법을 선택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학문의 외피를 입고 있을뿐 엄정한 연구가 아니란 평도 있다. 이 그룹의 실질적 리더인 로버트 펑크는 자신들의 연구가 근본주의 기독교(fundamentalist Christianity)가 상정하는 예수상을 깨고, 이 시대를 위한 예수의 모습을 제시하는데 있다고 밝힌바 있고, 그가 내어놓은 현대 기독교를 위한 21개 테제는 그가 지향하는 기독교의 상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예수 세미나에 가해진 주요한 비판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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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는 그들의 '선정주의(sensationalism)'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대중매체의 입맛에 맞게 소개한다는 식의 불평만은 아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저작을 '교회의 지배와 간섭에서 자유로운 학자들의 작업의 결정체'란 식으로 주장하고, 자신들의 성경을 가리켜 'The Scholars Version'이라고 명명한 것은 당연히 그 모임에 속하지 않고, 동의하지 않는 다른 많은 학자들의 반발과 비웃음을 살 일이었다. 벤 위더링턴(Ben Witherington)이나 리차드 헤이즈(Richard Hays)등이 '예수 세미나에는 북미나 유럽의 주요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자들이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고로, 그들의 학문적 대표성 운운은 어불성설이다'는 비판은 그래서 상당히 심정적 동감을 얻어내었다. 현재는 그 참여폭이 꽤 확대되기는 했으나, 예수 세미나의 초창기에 참여한 이들은 그리 폭넓은 배경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물론 공동의장인 로버트 펑크(Robert Funk)나 도미닉 크로산(Dominic Crossan) 등은 SBL(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등에서 활동하는 거물급 학자인 것이 분명하나, 여전히 비슷한 전제와 관심사를 중심으로 모인 이들이 산출해낸 예상 가능한 결과물이란 비판을 결정적으로 피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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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는 방법론(methodology)의 문제이다. 이 모임은 공동작업을 통해 예수 어록(the sayings of Jesus)과 예수 행위(the acts of Jesus)의 진정성(authenticity)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를 결정하기 위해 사용된 방법론에 대해 상당한 비판이 가해졌다. 우선은 그 전제(premises)인데, 예를 들면 진정성 확정을 위해 적용한 '상이성의 원칙(principle of dissimilarity)'는 원래 다양한 사본 가운데서 더 오리지날에 가까운 사본을 정할 때 적용하는 제한적 원리이나, 여기서는 그 적용범위가 확대되어서 '독특하면 독특할수록 더 예수적'이란 선입견을 불어넣게 된다. 이는 결국 예수를 당대의 사고방식이나 문화적 맥락에서 더 유리되면 될 수록 더 예수적이란 식으로 그려낼 방법론적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인데, 이들의 연구 결과가 비유대적(non-Jewish), 일탈적 현자(subversive Sage)로서의 예수상으로 귀결된 것은 이런 면에서 예측가능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또, 색깔별 판별에서 어떤 구절이 빨강과 분홍을 많이 받았으나, 다른 이들이 검은 색을 더 많이 던지면, 산술적 평균은 회색, 즉 '아닐 것이다'로 기운다는 점이다. 이것은 투표행위로 결정하는 방식 자체가 갖는 문제인데, 이는 그 모임의 구성원이 얼마나 성서학자들의 대표성을 지니느냐에 따라 결정적으로 신뢰성이 달려있는 문제인데, 앞서 살펴보았듯 '예수 세미나'는 그런 점에서 다른 학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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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는 위의 방법론과도 결부되는 문제로 사용한 자료(data)의 문제이다. 대부분의 학문적 작업들은 결국 무슨 자료를 어떤 방법론으로 연구하느냐에서 차이가 생긴다. 예수 세미나에서 선호하는 '도마복음서(Gospel of Thomas)'와 가상의 전승인 Q에 대한 학자들 간의 합의는 아직 도출된 바 없다. 예수 어록(the sayings of Jesus)의 진정성을 투표로 결정한 것이나, 그 결과 도마복음서(Gospel of Thomas)를 사복음서와는 별도의 예수 전승을 담고 있는 주요 어록으로 부각시킨 것이나, 여타 다른 외경들(베드로 복음서, 마가의 비밀복음 등)에서 초기 전승의 층을 뽑아내는 등의 작업이 상당부분 성서학 전반에서 견지하는 방법론적 합의 바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도마 복음서의 경우, 많은 성서학자들은 이것이 마태와 누가의 내용이 혼합된 후기의 저작으로 영지주의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반면, 예수 세미나 쪽은 이것이 가장 이른 전승을 담고 있고, 사복음서와 독립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자료의 선정에 있어서 다른 신약학자들과 차별화된 만큼 그들이 그려내는 그림이 파격적일 것은 명약관화하다. 예수 세미나의 전형적 특성은 예수의 말과 행동에서 초자연적 층위(주로 기적)와 종말론적 내용을 배제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로써 남는 것은 '무소유와 자유정신을 설파한 디오게네스에 비견될 견유철학자(Cynic)로, 혹은 지중해 연안의 농민현자(Peasant Sage)로서 촌철살인의 전복적(subversive) 가르침과 삶을 살았던, 그러나 어떤 정치적 프로그램이나 의도는 없었던 인간'으로서의 예수이다. 만약 예수의 진면목이 이러했다면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초대 교회가 저지른 엄청난 실수(a big mistake)이거나, 매우 불순한 음모(conspiracy)가 아닐 수 없다. 예수 세미나는 이런 위대한(?) 거짓말, 혹은 착각을 바로잡음으로써 기독교가 서야할 바른 자리를 찾아주겠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재구성에 대해 독일 하이델베르그의 신약학자 게르트 타이센(Gerd Theissen)은 '도미닉 크로산의 예수는 일세기 갈릴리보다는 20세기 캘리포니아 분위기가 물씬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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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NT Wright의 역사적 예수
    >3.1 브레데의 길(Wredebahn) vs 슈바이처의 길(Schweitzerbahn)
    >앞서 살펴본 바대로 예수 세미나는 매우 비전통적 예수상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런 접근 방식은 '역사적 예수 연구'의 역사에 있어서 드물지 않다.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가 라이마루스(Herman Reimarus)에서 브레데(W Wrede)에 이르는 서구의 '역사적 예수 연구'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면서 내린 한 중요한 평가는 19세기까지의 주요한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은 대체로 '후대의 교회들이 인간 예수를 신앙의 대상으로 신격화'한 것으로 비판하면서 '역사적 예수'의 복원에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연구자 자신들의 시대적 관심사를 투사(projection)한 것이 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슈바이처에서 또한 중요하게 부각된 부분은 '종말론(eschatology)'이다. 역사적 예수는 철저히 일세기 유대교의 종말론적 관심아래 추동되었다는 점(thoroughgoing eschatology)을 그는 강조했다.
    >톰 라이트는 '역사적 예수 연구'는 결국 브레데의 길(Wredebahn)을 택할 것인가, 슈바이처의 길(Schweiterbahn)을 택할 것인가에서 갈라진다고 본다. 예수 세미나는 확연히 '비유대(non-Jewish)', '비종말론(non-eschatological)', '최소주의적(minimalist)' 예수의 상을 택했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현재 성서학의 주요한 성과나 흐름은 다른 방향 즉 '신약의 유대교적 특성(Jewishness)', '일세기 유대교 내의 종말론적 특성'을 재인식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길이 좀더 역사적 자료에 충실한 예수를 그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 가운데에는 예수 세미나와 달리 예수의 기적(miracle)과 축사(exorcism)를 '역사적 예수'를 재현하는데 중요한 주제로 삼는 이들도 있고(Morton Smith, Geza Vermes, John Meier 등), 종말론(eschatology)이나 유대교(Judaism)의 맥락이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란 점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다(EP Sanders, James Dunn, Gerd Theissen, NT Wright 등).
    >
    >3.2. 톰 라이트의 방법론(Methodology)
    >톰 라이트는 전체 5-6권을 예정으로 집필중인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대한 질문' 첫 번째 책 NTPG에서 자신의 방법론과 일세기 유대-팔레스타인의 배경 지식을 정리해놓았다.
    >
    >1) 가설과 검증(hypotheses & verification)
    >그는 '역사적 예수 연구'를 하는데 있어 본질적 차원의 문제는 '지식(knowledge)'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계몽주의 이후 지식에 대해서는 두 가지 극단을 찾아볼 수 있는데, 하나는 낙관적 실증주의(positivist position), 즉 '우리는 객관적(objective) 실재를 알 수 있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지식은 주관적(subjective)이므로 우리는 실재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식이란 '가설과 검증 과정(hypothesis-verification process)'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으며,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 이를 적용하는 자신의 입장을 '비판적 실재론(critical realism)'이라고 명명하였다. 이는 아래와 같은 다이아그램으로 표현될 수 있다.
    >
    >story-telling humans ---------------------------------------------------------------------------- story-laden world
    >initial observation (already within a story)
    ><------------------------------------------------------------------------------------------------------------------------------
    >is challenged by critical reflection on ourselves as story-tellers (i.e. recognizing our claims about reality may be mistaken)
    >----------------------------------------------------------------------------------------------------------------------------->
    >but can, through further narrative, find alternative ways of speaking truly about the world, with the use of new or modified stories
    >
    >인간의 삶은 '이야기(story, narrative)'로 구성되며, 이는 결국 '세계관(worldview)'으로 총화를 이루게 된다고 톰 라이트는 주장한다. 어떤 지식도 진공 중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견지하는 세계관 혹은 중심적 이야기에 근거해서 판단하고, 그 체계에 균열이 생기고 도전을 받을 경우 그 사건을 더 잘 설명해주는 이야기를 받아들임으로써만 그 갈등은 해소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가 지식의 획득을 이렇게 설명하는 방식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토마스 쿤(Thomas Kuhn)의 패러다임 이론(paradigm theory)이 제기된 이후, 현대 해석학이나 과학 철학계에서는 이제 상식화된 논의의 적용이라고 보아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는 이야기 가운데에는 '실제 일어난 사건은 아니나 세계관을 진술하기 위한 이야기'가 있고, '실제 일어난 사건을 말함으로써 세계관을 진술하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 예수의 비유(parable)는 전자에 포함되고, 마카비서나 요세푸스의 글들은 후자에 속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현재의 신약학계에서는 이것이 뒤집혀서, 눈으로 보았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는 요한복음이 가장 비역사적인 문서로 인식되고, 분명 전자로 분류되는 것이 더 타당할 '영지주의' 문서들이 후자로 분류되는 상황이란 점을 꼬집는다.
    >
    >2) 세계관(Worldview)
    >톰 라이트의 과제는 일세기 유대인들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규명해내고, 그 세계관의 맥락 위에서 예수의 말과 행동이 어떤 의미형성을 해낸 것인지를 분석하는 작업이다.
    >언어화된 신조(articulated beliefs)는 사실상 언어적, 비언어적 세계관의 요소들이 표면화 된 것이다. 톰 라이트는 일세기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구성을 살펴본 후에 일세기 유대인들의 이야기, 상징, 실천을 분석하는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세계관은 매우 기본적인 몇 가지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단순화 시킬 수 있다.
    >
    >첫째, 우리는 누구인가(Who are we)? 우리는 이스라엘(Israel), 창조주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chosen people)이다.
    >둘째,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Where are we)? 우리는 성지(Holy Land)에 있고, 그 중심은 성전(The Temple)이다. 그러나, 이율배반적으로 우리는 아직도 포로되어 있다(in Exile).
    >셋째, 뭐가 잘못 되었는가(What is wrong)? 우리는 잘못된 통치자 아래 있다: 한편으로는 이방인들 아래, 한편으로는 헤롯과 그 가족들 같은 타협한 유대인들. 우리는 전혀 이상적이지 않은 상황 속에 살고 있다.
    >넷째, 해결책은 무엇인가(What is the solution)? 우리 하나님이 행동하셔서 하나님의 통치를 정당하게 세워진 통치자를 통해 이루어주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은 언약에 충실해야 한다.
    >
    >이런 세계관적 토대 위에서 제2성전 시기의 유대인들이 견지했던 신조들이 설명된다. 유일신론(Monotheism), 선택(Election), 종말론(Eschatology)은 이들의 기본적 신조(basic beliefs)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파생되는 다양한 신조들(consequent beliefs)은 다양한 유대교 내의 집단들이 기본 신조를 구체화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차이들을 반영한다. 바리새인들과 에쎈파들은 기본적으로 유대교란 큰 사고의 틀을 공유하고 있었으나, 그를 구체화하고 실현하는데 있어서는 상당히 상이한 신조를 채택했다. 또한 이는 단순히 종교적 운동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다.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운동들 역시 이런 세계관의 매트릭스(matrix) 바깥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었다. 혁명적 운동들 역시 단순히 로마의 지배에 대한 항거로만 파악될 것이 아니라, 그 항거를 추동하는 세계관적 배경과 신조들, 혹은 신념들의 작동 양상을 살펴볼 때라야 제대로 이해가 될 것이다.
    >역사적 예수, 혹은 예수의 운동을 이런 세계관의 매트릭스 위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톰 라이트의 작업이 지향하는 지점이다. 또 더 나아가 예수 이후의 초대교회들 역시 이 매트릭스 위에서 살펴볼 때 가장 적절한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함축을 갖는다. 흥미롭게도 NTPG에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본격적 분석은 들어있지 않으나, 이스라엘의 세계관과 신조를 분석한 III 부 다음에 초대교회의 세계관과 신조를 분석한 IV부가 이어져 나온다. 그 내용으로 볼 때, 초대교회가 지니고 있던 세계관은 일세기 유대교의 범주 안에서 무리 없이 자리매김 되며, 초대교회의 신앙고백과 신조는 이스라엘의 그것을 새롭게 하는 대안적 이야기들(alternative stories)이다. 이런 분석이 갖는 함의는 이스라엘에서 초대교회로 넘어가는 전환에 있어서 세계관과 핵심 내러티브가 이런 정도로 연속적이라면 이를 추동한 예수 역시 이 연속선 상의 어느 지점에서 파악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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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톰 라이트의 예수
    >'세계관(worldview)'이 어떤 한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관점의 총화라면, '사고체계(mindset)'는 한 개인이 갖고 있는 세상에 대한 관점을 말한다. 사고체계는 당대의 지배적 세계관의 매트릭스 위에서 조직된다. 둘 다 대표적 이야기, 근본적인 상징, 관습적 행위, 기본 질문들에 대한 응답을 연구함으로써 파악해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사고체계는 단순히 세계관이 개인화(individualization), 혹은 내면화(interiorization) 된 것에 머물지 않는데, 특히나 역사적으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들의 경우는 대부분 그들의 사고체계가 당대의 세계관을 상당정도 변용한 것(significant variations)인 경우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예수를 탐구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예수의 사고체계를 그려내 보려는 노력과 맞닿게 된다. 그것은 상당정도로 일세기 유대교의 세계관을 변용한 것일 터이나, 그 매트릭스 위에서 의미형성을 해낸 어떤 것이어야 마땅할 것이다.
    >톰 라이트는 이를 위해서 다섯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수는 일세기 유대교 속에 어떻게 자리매김 되는가?'; '예수의 목표는 무엇이었는가?'; '왜 예수는 죽었는가?'; '왜, 그리고 어떻게 초대교회는 시작되었는가?'; '왜 복음서가 그렇게 쓰여졌는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것이 역사적 예수를 진정한 일세기 팔레스타인의 지평 위에서 보게하는 작업이 될 것이란 것이 톰 라이트의 신념이다.
    >톰 라이트가 그려내는 예수는 단순화해서 말한다면, '이스라엘의 메시야(the Messiah of Israel)'이다. 그는 NTPG 제10장에서, 제2성전 시기 이스라엘은 묵시적 언어(apocalyptic language)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담아내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묵시적 언어와 상징들은 미래적이긴 하나, 피안적 소망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not other-worldly)고 보았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스라엘 백성 위에, 자신들의 거룩한 땅(holy land)에서 실현되는 것을 갈망하는 언어라는 것이다. 예수는 바로 이런 이스라엘의 소망이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구현되는 것(enacted & embodied in his life & death)으로 보았던 메시아적 자의식(messianic awareness)을 가진 존재였다는 것이 톰 라이트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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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지자 예수(Jesus the Prophet)
    >예수의 지상 사역은 이스라엘의 선지자 역할로 잘 묘사될 수 있다(JVG, II부).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가르치면서 당대의 유대교 체제에 시비를 걸었다. 톰 라이트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자'란 주제의 조명 아래, 예수의 행위(praxis)와 이야기들(stories)과 상징(symbols) 작용을 분석해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톰 라이트는 예수의 비유(parables of Jesus) 해석에 독특한 시각을 선보이는데, 펑크나 크로산 등이 복음서의 비유를 심미적(aesthetic), 주의 환기적 언어 작용(evocative linguistic performance)으로 본다면, 톰 라이트는 오히려 비유를 일관되게 내러티브(narrative)로 이해하는 입장을 취한다. 예수의 행위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들이 주로 안식일, 식사 및 계층간의 정결례, 민족적 정체성, 성전 등이었던 것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고 있는 유대교의 상징체계(symbol system)를 향한 도발이자, 대안적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이해된다.
    >
    >2) 메시아 예수(Jesus the Messiah)
    >약간 의외일지 모르나, 톰 라이트가 '예수는 메시아'라고 말할 때, 그 메시아는 '신적 존재(divine being)'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신이었냐, 아니냐는 것은 역사학이 증명해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다만 가능성을 시사할 뿐이다. 메시아는 신성과 관련된 범주가 아니라 철저히 이스라엘과 밀착된 개념이다(not divine category, but Israel category). 메시아(messiah), 혹은 그에 상응하는 헬라어 표현 그리스도(Christ)는 원래 '기름부음 받은 자(the anointed)'를 의미하는데 이스라엘에서는 주로 왕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이스라엘의 왕 개념은 독특해서, 그가 곧 그 백성들을 대표하고, 그 역관계도 성립한다. 예를 들면, 이사야의 '종의 노래'에서 '종'을 단수와 복수로 번갈아 쓰고 있는 것은 오래된 성서학의 난제 중 하나이지만, 톰 라이트의 입장에서는 메시아와 그 백성의 상호환원 가능한 용례로 해소가 되는 것이다. 이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맡겨진 특별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메시아가 이스라엘에서 성취할 것으로 기대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의식이 있었을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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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대속적 죽음(atoning death)
    >'예수가 왜 죽었는가?'란 질문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인데, 대부분 학자들이 지배 권력에게 위협적 존재로 비침으로써 죽임을 당했다는 사회정치적(socio-political) 설명을 여러 방식으로 변주하고 있는데 반해 그는 예수의 죽음이 초대교회에 의해 신속하게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Christ died for our sins)'는 신학적(theological) 진술로 옮겨가고 있음을 주목한다. 그리고, 이는 오직 이스라엘의 세계관적 기초, 즉 외세에 의해 지배당하고 불의한 권력자들 아래 놓이게 된 것- 즉, 연장된 바벨론 포로 생활(extended Exile) -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충실치 못한 이스라엘의 죄 때문이란 이야기 위에서 의미를 갖는 진술이란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성전의 재건(rebuilding the Temple)으로 이야기 한 것이나 자신의 주변에 12명의 제자들을 세우고 사역한 것 등은 명백히 현존하는 유대교의 전면적 재편을 염두에 두고 의식적으로 행한 것이란 점이다. 예수의 죽음은 예수 그 자신도 그 의미를 알고 있었고, 초대교회는 바로 그 의도를 충실히 계승한 새로운 이스라엘(New Israel)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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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닫는 말
    >국내의 역사적 예수 연구 상황을 둘러보면서 흥미롭게 느낀 부분은 민중 신학쪽 라인에 서는 이들이 톰 라이트의 입장에 공감과 동의를 표하는 경우가 적지 않더라는 점이다. 필자는 이런 조짐이 세부적인 내용에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화의 접촉점을 마련해주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한국교회가 그 신앙이 딛고서 있는 원초적 출발점인 '역사적 예수'에 대해 새로운 관심과 적극적 탐구를 통해 오도된 예수 상을 걷어내고, 예수의 제자(disciples of Jesus)로 새로워지기를 간절히 원한다. 후속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필자의 홈페이지(, 혹은 사이월드 내 클럽중 '복음주의'를 검색하라.)가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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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희송: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영국 Trinity College, Bristol University (BA)과 London Bible College, Brunel University (MA)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대학시절부터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에 깊이 관여했고, '기독노래운동 뜨인돌' 대표간사를 지냈으며, 현재 월간 <복음과 상황> 편집위원이고, <학원복음화협의회> 캠퍼스사역연구소 실장으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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