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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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탄절은 과연 성경적인 것인가?(말씀샘)
  • 김인찬
    조회 수: 3858, 2003.12.16 10:51:40
  • 본인은 장로교(개혁)에서 안수 받은 목사입니다.

    [교회의 각종 절기는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성탄절의 날짜는 예수의 탄생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러한 날을 정한 자체가 비 성경적인 것이 아닌지??
    성탄절기는 사실 초대교회에서도 성경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사람이 임으로 만든 절기라는 것이다. 신약에서 절기가 되려면 성경적인 근거가 분명히 있어야 된다. 그런데 오히려 성경은 이러한 구약의 절기나 날짜에 의해서 신앙을 하려는 것들에 경고하고 있다는 것이다.(히) 신약의 교회는 성탄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것이 아닌 그 정반대로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고 예수의 부활로 재림을 소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이러한 불법을 성경적인 것이라고 주장할 용기가 있는가??

    예수는 자신이 살았을 때에 한 가지만을 기념하라고 가르친 것이다.(자신의 탄생, 세례, 기적, 등이 아닌 십자가의 죽음) 그것이 자신의 죽음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은 성경에 근거하고 사도들의 증언에 근거한다.
    초대교회는 유대인들의 각종 절기를 페하면서 절기에 매이지 않는 신앙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신앙이 이제는 퇴색하여서 마치 과거 유대인들이 절기를 지키듯이 기독교가 절기를 지키는 반 성경적인 원리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구약의 절기도 예수와 관계된 것이지만 구약의 절기라는 것은 많은 부분 기념하는 것과 관계된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절기는 과거의 어떤 중요한 사건에(출애굽) 대해서 기억하기 위해서 기념을 위한 절기행사를 대부분 시행하였다. 이는 장차 예수로 이룰 것에 대한 그림자적인 약속으로써 주어진 구약의 절기라는 것이다. 이렇게 구약의 절기의 특징이 있다. 이러한 구약의 절기가 예수의 죽음으로 모두 과거가 되어버린 것이다. 예수로 과거가 된 것은 예수도 자신을 먼저 율법 안에 오게 하고 그 다음에 율법에서 벗어난 새 육체를 입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율법 안에서 지켜졌던 것이 이제는 율법을 벗어난 예수로 말미암아 신약의 교회가 율법 안에서 지키던 유대인들의 절기에 매이지 않게 된 것이다.

    예수의 탄생은 사실 유대인의 왕으로 먼저 왔던 것이다. 유대인으로 오신 왕이라는 의미이다. 예수가 세상에 만왕의 왕으로 탄생한 것이 아닌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사건이 그의 탄생이다. 예수가 탄생함으로 그는 먼저 유대인의 왕으로 죽기까지 활동한다. 예수가 이렇게 유대인의 왕으로 활동한 사역의 기간은 그가 십자가에 죽기까지의 기간이다. 그 후 그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것이었다. 예수가 십자가로 죽기 전에 행한 모든 것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십자가의 길이 본래 최종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역의 길이 모든 이방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일단 예수가 십자가에 죽기 전 그의 사역은 적어도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유대인의 왕이었다는 것이다.(옛 언약에 해당되는)

    그렇게 과거 유대 땅 베들레헴에 유대인의 왕으로 왔던 아기 예수를 신약시대 우리가 믿는 것보다는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신약시대에 만왕의 왕으로 부활한 예수를 믿는 것이다. 이는 부활한 예수와 우리가 현재 항상 관계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탄생을 절기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의 탄생은 이미 지나갔다. 축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에 이 땅에 예수가 다시 탄생한다면 축하하러 갈 수 있지만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예수의 탄생을 절기로 만들면 유대인의 왕을 절기로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가 유대인의 왕으로 온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십자가에 죽고서 만왕의 왕이 되기 위해서 탄생한 비하의 사건이다.(성육신이 아닌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탄생=성 부활이 오히려 의미가 있다) 이러한 예수의 비하 된 사건을 우리의 축제로 만들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만이 신약의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죄 사함의 사건인 요나의 표적과 같은 사건이며 이 사건으로 우리가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매 주마다 시행하게 된 것이다.(최소한 매 주마다 행한 것)
    이것은 성경에서 증거 되고 있으며 초대교회가 행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구원과 직접 관계된 성찬은 무시하고 과거 가톨릭처럼 예수에 대한 인간적인 탄생에 우리 신앙의 표준을 삼은 것이 문제이다.(아기 예수는 마리아와 관계되는 것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숭배사상에 기초-가톨릭의 영향)

    성찬은 사실 예수의 죽음에 대한 비극적인 것을 바라보는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성찬을 행할 때에 예수가 부활한 주일에 모여서 시행한 이유가 있었다. 이는 죽음만을 가지고 성찬을 행한 것이 아닌 이미 살았다는 주일에 모여서 그들은 과거의 예수에 대한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다.
    즉 예수의 죽음을 성찬으로 기념하고 예수로 말미암아 자신의 부활을 소망하려고 주일에 모인 것이다.(부활의 소망은 재림과 직접연결) 이러한 주일의 의미가 퇴색된 것은 구원의 중심이 예수의 죽음이라는 것을 크게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중요한 예수의 죽음을 잃어버리게 만든 것은 사람들이 구원에 대한 중요성을 사람 중심으로 둘 때에 나타난 것이다.

    미사와 같이 의식만이 아닌 예수의 부활의 날에 우리가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은 그가 이미 살아난 것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요한 사실에 대해서 초대교회에 형식이 따라오게 된 것이 성찬이다. 이러한 성찬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닌 할 수만 있으면 예수의 죽음을 매주 기념해야 되면서 예수의 부활을 매주 소망해야 된다는 것에 대한 거의 자동적인 의식이었다.

    개신교는 오늘날 주일을 안식일이라고 가르치고 그날에 성찬을 잊고 주님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갖는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이 부활의 신앙은 재림의 신앙과 직접 연결된다) 그 예로 여러 가지 각종 주일에 이름을 걸어서 각종 절기를 만든 것이다. 사람이 중심이 되자 어버이 주일과 예배라는 기막힌 일이 일어난 것이다. 주일에 사람이 중심이 될 수 없는데도 사람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주일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로 교회가 모인다는 것이며 이러한 것이 절대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럼에도 사람이 중심이 된 것은 이렇게 절기를 만들어 놓게 된 것이다.

    사실 이 땅에서 절기를 만들 만한 어떤 내용도 교회에서는 없다. 어떤 사람도 죄인이며 그들의 업적은 사람들에게 기념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만이 그러한 업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일을 기념하는 행위도 사실 신앙으로 보면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참 생일이 있다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러한 날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기념하는 것은 우리의 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의도 없다.(죄악 중에 출생) 오직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가 우리를 위해서 먼저 죽었다는 그 이유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원한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만이 우리의 신앙의 감사의 행위가 된 것이다.

    사람이 중심이 되면 우리의 생일을 지키듯이 예수의 생일도 지킨다는 것으로 만든다.
    예수는 이미 새로운 생일이 있다. 그것이 부활이다. 이미 새로운 육체로 부활한 그가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서 하늘에 계시는 것이다. 그럼으로 사실 예수 부활의 날에 우리가 모이게 된 것이고 그 부활을 소망하는 것이다. 예수의 생일은 사실 유대인을 위한 생일과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위한 또 한번의 생일이 있는 것이다. 그 또 한번의 생일이 예수의 부활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부활이 있기 전 우리는 우리들을 위한 십자가를 보게 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유일한 구원의 표적이 된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사실 매주일 예수의 참 생일인 부활을 기억한다는 것이고 우리의 구원의 유일한 표적인 예수의 죽음을 기념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유대인에게 찾아 온 것보다 예수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다시 찾아온 부활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이다.(예수 자신도 이일을 위해서 세상에 왔다고 증언한다) 유대인으로 온 예수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시고 살아난 그 일이 모든 죄인에게 더 중요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가 육체로 세상에 오심은 그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왔으나 그러나 먼저 그는 유대인의 왕으로 먼저 일하고 그 후 그가 십자가에 죽고서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만왕의 왕으로 우리에게 부활하여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신약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새 언약의 출발이 예수의 죽음으로 성취된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죽기 전에는 누구도 새 언약에 온전히 적용되지 못하였다. 예수의 죽음이 있기 전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여전히 유대인의 왕이었고 예수는 여전히 이스라엘 안에서 구원을 선포하였다.
    이 때에는 신약의 시대가 아닌 것이며 구약의 시대에 있었고 그들이 모두 옛 언약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세례요한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직 그 때에는 새 언약의 체결인 십자가의 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죽음으로 새 언약이 성취됨으로 말미암아 유대인의 왕은 지나갔고 예수의 과거 모든 사역은 예수의 십자가로 이루어져서 새 언약의 시대로 넘어간 것이다. 새 언약의 시대에는 우리가 기념할 것이 있다면 옛 언약에서 새 언약의 출발인 그의 죽음만이 우리의 유일한 기념의 대상이 된다.

    예수가 죽기 전 유대인의 왕으로 일한 모든 기적과 행위는 기념이 아닌 이미 지나간 교훈으로 남겨진 것이다. 만약에 예수가 죽고서 살지 못했다면 사람들은 예수의 이러한 행위를 기념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과거 죽기 전 예수가 병든 자를 고쳤던 일이나 예수가 기적으로 바다를 걸어간 것이나 예수가 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먹인 것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궁극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행한 것이고 또 하나는 가장 큰 구원의 죽음을 이루기 위해서 준비 된 과정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있는 우리는 과거 예수가 죽기 전에 행한 기적들은 우리의 구원의 표적이 아니며 오직 예수가 십자가에 죽은 그것이 우리의 구원의 유일한 표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 죽음이 바로 새 언약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옛 언약에서 행한 예수의 기적도 우리의 기념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예수가 죽기 전 기적을 오늘날도 이루어져야 된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
    그 일은 기적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닌 십자가를 이루려고 걸어간 준비된 길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구원의 표적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사실이다. 신약 시대의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유일한 표적은 예수의 탄생도 예수의 기적도 아닌 예수의 십자가라는 사실이다. 이것만이 유일한 요나와 같은 표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표적인 십자가를 바라보는 성찬이 이미 사도들에 의해서 교회에 명령 되었는데도(만찬) 이것을 소홀히 하고 다른 절기들을 만들어 놓은 것은 잘못된 것이다.
    각종 절기들은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부활절을 지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이미 예수가 하늘에 부활의 주로 계시기에 매주일에 자신의 부활을 소망하면서 모인다는 것이다. 이는 따로 부활절을 갖아야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매 주일이 부활절이 된다는 것도 아니다. 매 주일이 절기가 아닌 예수의 부활을 소망하기 위해서 모인다는 것뿐이다. 오순절은 이미 성령이 왔으며 이는 구약의 오순절을 예수가 성취하였다. 즉 성취한 오순절을 지키는 것은 구약으로 돌아가려는 것과 같다. 우리는 오순절에 이룬 성령의 강림으로 성령시대에 이미 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추수감사절이라는 것은 더욱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구약에서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신약에서 유지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실수 이다. 구약의 절기는 유대인의 것이다. 이러한 절기가 있어야 한다면 다른 유대인의 절기도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십일조) 구약의 절기는 예수가 오셔서 이루실 것에 대한 약속의 성격이다. 이미 예수가 오셔서 구약의 절기를 패하신 것은 그 절기들이 예수로 대부분 이루어진 것이며 또는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구약의 추수감사는 신약에서 영적 구원의 추수) 신약에서는 추수감사절이 아닌 추수 감사를 하면 된다.

    만약에 추수감사절기가 타당하다면 우리가 감사할 내용을 모두 절기로 만들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사실 이러한 비슷한 일이 있다. 그것이 교회들이 행하는 각종 기념행사이다. 교회 안에서 행하는 몇 주년 행사 등이다. 교회가 몇 년 되었다는 것에 대한 행사는 절기와 같이 지켜지고 있는 실정이다.(사실은 예배당이 몇 년 되었다는 것을 교회가 몇 년 되었다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지 교회가 세워진 것에 대한 행사가 거부되어야 하는 이유는 초대교회 오순절의 성령강림이 모든 교회의 출발이다. 심지어 사람의 동상을 만들어서 사람을 기념하는 타락한 일도 있고 죽은 사람을 기념하는 것으로 건물에 사람의 이름을 지어서 기념하는 반 성경적인 행위도 즐비하다.

    부활절, 오순절, 각종 절기들은 신약시대에 은혜의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절기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며 이러한 것으로 우리의 신앙의 기념과 행위를 삼는 자체가 가장 중요하고 절대적으로 빠지지 말아야할 성찬을 약화 시킨 것이다. 주님의 명령과 사도들의 명령과 초대교회의 전통인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만찬을 우리는 거의 약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주의 만찬도 사실상 절기가 아니다. 절기가 아닌 주님의 죽음을 기억하는 기념일뿐이다. 부활절이 정당화 되면 주님이 죽으신 유월절이 정당화되고 주님이 안식하신 안식일이 지켜져야 한다는 논리가 된다. 그리고 신약의 성도들은 이러한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사실 구약의 절기는 구약에서 제정된 것이다. 그러나 부활절은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구체적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이 부활을 했으니 부활절을 만들면 주님이 금요일에 죽었으니 신 유월절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 할 것이고 또 주님이 토요일에 안식하셨으니 신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는 억지 주장이 정당화 된다는 것이다.

    단지 주님이 부활한 일요일에 모이는 것뿐이다. 일요일이 매주 있듯이 매주 모이게 된 것이다. 만약에 일요일이 한달에 6번 있었으면 그렇게 6번 모였을 것이다. 이는 주님이 부활한 날에 모인다는 의미일 뿐 그 날이 신성한 날이 되거나 절기가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날에 비해서 일요일 날이 예수의 부활로 말미암아 성도들에게는 중요한 날로 모이게 된 것이다.(예수의 일요일 부활 사건으로 인해서 일요일이 성도들에게 중요한 날이 된 것)

    그리스도의 죽음이 없었다면 교회가 있을 수 없고 세상의 모든 구원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의 죽음을 귀하게 여기는 애찬(성찬)을 매주일에 갖아야 되는 충분한 명분이 있는 것이다.
    교회의 각종 절기는 헌금과 관계된다. 상당한 헌금을 차지한다. 이러한 사실은 물질과 절기가 별개가 아닌 것이다. 여러 가지의 절기로 헌금을 걷어내는 것은 사실 교회들의 물질적 향락적인 세속화의 결과이다.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성탄절 행사의 비용을 선교에 써야 한다. 우리가 교회에서 먹고 마시는 사이게 지금도 굶어서 죽어가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은 우리의 축제가 아닌 우리의 자비를 원하신다. 모든 교회가 성탄의 비용을 선교지역에 보낸다면 고통 중에 있는 선교지역은 적어도 성탄절이라고 부르는 기간에는 굶어서 죽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사랑을 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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