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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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과 여호와 이름과의 관계(두 번째 글)
  • 김인찬
    조회 수: 5398, 2004.02.05 22:06:14
  • 먼저 구약의 여호와가 신약의 아버지로 직접 바뀌었다는 것을 시정하려고 합니다.
    구약의 여호와는 신약에서 주라는 호칭으로 대신 사용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라는 호칭은 신약에서 새롭게 나타난 호칭으로 생각되어진다. 이와 같이 아버지의 호칭은 여호와가 사라진 대신 새롭게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여호와와 구약 백성의 관계가 삼위와 신약 백성의 관계로 바뀜)

    [내용]
    한글 신약성경에서 하나님(데오스)으로 나오는 호칭은 성부를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 나오는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없고 또한 성자라고 이해하는 것도 부적절하다(요한과 같이 특수한 경우는 제외).

    오직 신약성서에서 하나님(데오스)으로 호칭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성부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성령은 성령으로 또는 하나님의 영으로 분명히 나타난다. 그리고 이렇게 성령은 성부와 엄격히 구분된다.

    또한 성자도 하나님의 아들 또는 그리스도 등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것은 삼위가 명백하게 구분되는 신약성경의 특징이다. 이렇게 삼위가 구분된다는 것은 하나님(데오스)이라는 호칭이 한 인격적 성부(단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만약 하나님(데오스)을 삼위공동으로 이해한다면 이는 신약성서에서 하나님으로 사용된 호칭이 성부를 가리키는 여러 구절들에 의해서 스스로 오류가 되어버린다. 데오스(하나님)가 분명히 성부를 가리키는 구절이 있다면 이것은 가장 큰 증거가 될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삼위를 모두 사용하는 경우에서는 하나님이 성부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성자로 또 하나님의 영 등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삼위가 동시에 나타날 경우 하나님(데오스)은 성부라는 사실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용과 달리 단독으로 하나님(데오스)의 호칭이 사용될 경우에도 역시 성부를 가리키는 것이며 이를 증거 하는 구절들이 산제하다.
    이렇게 삼위 공동으로 나타나는 경우나 하나님(데오스) 단독으로 나타나는 경우 거의모두 신약성경에서 성부를 나타낸다는 사실이다.(요한은 예수를 특별히 하나님으로 몇 번 설명)

    중요한 것은 하나님(데오스)이라는 호칭이 단독으로 나오는 경우 예수가 그 하나님 안에 포함되었다는 신약의 증거가 없고 또 삼위 공동으로 나오는 경우에서는 당연히 예수는 하나님이라는 호칭과 분리되어 설명된다.(성부는 하나님 아버지로 성자는 하나님의 아들 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의 영 등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호칭의 사용으로 성자의 위치가 하나님(데오스)으로 신약시대에 호칭으로 사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자연히 하나님의 아들(데오스의) 또는 그리스도 등으로 나타난다.

    성경은 이 땅에서 예배와 기도의 유일한 대상이 성령과 예수가 직접적인 대상이 아닌 성부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성부가 예배를 직접 받으신다면 성자 예수는 우리에게 직접 기도와 예배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심지어 성령에게도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을 의지할 수는 있어도 성령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은 신약성경이 잘 따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는 성부에게 예배가 되도록 중보자적인 입장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 땅에서 예수가 독자적으로 기도와 예배를 받는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이 홀로계신 성부이며 성부에게 예배를 독자적으로 성도들이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죽은 성도들이 계시록에서 하나님과 예수가 함께 영광을 받고 있는 것과 같이 하늘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하나님과 우편에 있는 예수 앞에서 천사들과 무리들은 하나님께만 홀로 찬송하기도 하고 또 달리 그 우편에 계신 어린양에게도 찬송을 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찬송하는 경우도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다음에 아들에게 영광을 돌린다. 이렇게 하늘에서는 성부, 성자 동시 찬송과 영광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삼위 찬송을 하는 예배행위는 과연 성경적인 것인가?
    성경은 오히려 살아있는 성도들은 성부에게 찬송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 땅에서는 성부가 예배의 대상, 찬송의 대상, 기도의 대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도 하나님은 홀로 영광의 대상이 되는 반면에 예수는 성부와 같이 홀로 영광을 받는 위치가 아닌 하나님 우편에서 영광을 성부하나님과 함께 천사와 사람들로부터 찬송을 받는다. 예수는 홀로 영광을 받는 대상이 아닌 성부하나님 우편에서 성부하나님과 함께 천사들과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는다는 것이다.(계시록)

    이 땅에서 삼위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행위는 성경이 절대로 따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는 성부에게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린다는 것이다. 예수가 이 땅에서 영광과 찬송과 기도를 성도들로부터 직접 받는다는 증거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을 보면 하늘에서는 예수가 하늘의 천사들과 무리들로부터 찬송을 받는데 홀로 받는 것이 아닌 반듯이 아버지로부터 또는 아버지와 함께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예수 앞에 있으면 예수를 찬송하고 경배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에서와 같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이 타당하다. 경배도 사실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예배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면 경배는 실재로 그 앞에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계시록 19장에서 나오는 하나님은 위에서 말한 삼위이해로 성부가 분명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계시록에서 예수에 대한 호칭은 달리 나오고 있다.
    계19장에서 예수는 성부을 가리키는 하나님과 달리 어린양으로 나타낸다(계19:7) 이렇게 어린양이신 예수로 나오는 것은 예수와 하나님(데오스)이 계시록에서도 분명히 구분되어 설명된다.

    신약에서 하나님(데오스)은 단수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6절에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뒤집어서 전능하신 이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전능하신 이는 성령이라고 말할 수 없고 또 예수라고 말할 수 없지만 성부에게만 [전능하신이]라고 자연스럽게 신약에서는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에게는 전능하신이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고 성령을 전능하신이의 성령으로 설명해야 된다.(표현상 전능하신 이는 성령이라고 말할 수 없고, 전능하신 이는 예수라고 말할 수 없다. 신약에서 전능하신 이는 성부 하나님을 먼저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성경도 이를 따르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특히 단수로 이해하고 있는 구절이 있다.(빌4:20)
    신약성경에서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데오스)-]이라고 또한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 성자가 포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 성령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성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데오스는 성부라는 일관성에 의해서)

    지상에 있는 사람들로 영광을 홀로 받으시는 주체는 성부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는 영광을 홀로 받는 주체가 아니다. 성부는 홀로 영광을 얻는다. 예수도 세상에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드린 것이 사실이다.(십자가의 죽음으로) 그러나 성부 하나님은 어떤 피조물에게도 영광을 돌려드린 적인 없다.

    하나님(성부)은 오직 모든 사람들과 천사와 모든 것들로 말미암아 홀로 영광을 얻으시는 분이시다. 성령이 영광을 홀로 받는다는 주체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성령이 홀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아니다. 또 성령은 성부에게 영광이 되기 위해서 오히려 우리를 돕는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기도 대상(하나님 아버지)과 예배의 대상이 성자나 성령이 아닌 성부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도할 때에 성령에게 기도하거나 성령에게 예배드리라는 성경적인 근거가 그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성령은 우리의 예배가 되도록 돕고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아버지께 올라가도록 성도들을 돕는다는 명백한 성경적인 근거와 구절이 있다.(요한복음, 계시록 등)

    우리가 예수께 기도하지 않는 것은 예수께서도 자신에게 기도하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라고 가르치신 것이다.(공관복음에 증거 되고 있다. 또한 계시록에서 예수가 영광을 얻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하늘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있고 그 앞에 서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 홀로 영광을 돌려드리기도 하고 아버지와 아들 모두에게 영광을 돌려드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지상에서는 하나님께 영광만을 돌리는 것이 지상에 있는 성도들의 자세이다)

    이와 같이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는 주체는 지상에서 성부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성경에서 얼마든지 입증된다는 것이다. 만약에 성령께 기도하라! 또는 성자께 기도하라! 라는 것이 성경적으로 합당한 사용인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또 그러한 근거를 찾으라고 한다면 결코 찾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유일한 예배의 대상이 성부라는 사실은 주기도문에서도 명백히 입증된다.(아버지로 시작해서 아버지로 끝나는 것) 신약 성경 거의 모든 곳에서 성부 하나님이 그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어떤 이성적인 이론보다도 앞선다는 것이다. 성경에 하나님 아버지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것은 헬라어 데오스가 성부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용어가 신약성경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 곧 성부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역시 성령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사용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아버지]라고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곧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에 [-의]사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할 때에 아버지는 하나님이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하나님=아버지)

    이와 달리 성경에 [하나님 아들]이라고 사용되는 구절에 대한 이해는 아들이 하나님이라고 이해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즉 앞에 나오는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뒤에 나오는 아들과 다르다는 것이다.

    [하나님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석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를 [하나님의 아버지]로 해석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데오스)이 곧 아버지이기 때문이다.(성경도 이러한 표현을 자주 사용=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빌4:20) 이 헬라어 데오스가 의미하는 것은 아버지라는 것이다. 또한 성령이 곧 하나님이라고 이해하는 것 보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해해야 된다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으로 말할 수 없고 반대로 하나님 성령으로 말하지 않는다. 표현상 성부하나님의 성령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을 독자적으로 하나님(데오스)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데오스)이 아닌 하나님(데오스)의 영이라는 사실이며 또한 그와 같이 사용한다.

    성령을 독자적으로 하나님으로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예수도 마찬가지이다. 예수에게도 요한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나님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예수가 하나님과 분리된 것이 아니다. 요한이 말한 것을 굿이 설명한다면 하나님의 아들로써 하나님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용보다는 거의 하나님(성부)의 아들로 사용된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사용할 때에 삼위 중 성부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들은 [하나님=아들]이라는 공식이 불가능하고 [하나님의 아들]로써만 가능하게 설명된다.
    성령도 [하나님=성령]으로 신약성경이 설명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설명한다.
    이상과 같이 명백하게 신약성경의 하나님(데오스)이 성부를 거의 가리킨다는 사실은 이외에도 성경의 많은 구절들이 명백히 증거하고 있다.

    구약의 여호와가 성부의 이름으로 한 인격을 지향한다.
    하나님(엘로힘)은 호칭이며 성자는 아버지(엘로힘)의 품에 포함되어 있지만 두 인격을 모두 부르는 것보다는 호칭의 대상은 성부 하나님(엘로힘)에게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여호와는 성부를 의미하는 엘로힘의 이름(단수)으로 이해해야 한다.

    성부와 성자는 본체적으로 함께 있었으나 성부와 성자를 함께 묶어서 두 인격을 동시에 가리키면서 여호와라고 불렀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름은 한 인격적인 신을 부르는 것으로 성부인 여호와를 가리키는 단수적인 이름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부르는 성부 안에 아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마치 어머니 이름을 부르면 어머니 안에 아들을 동시에 부르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면 그 배속에 있는 아기는 제외 된다는 것이다. 인격적으로 어머니를 부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머니 안에 아기가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여호와가 한 인격적 성부를 가리키지만 만약에 여호와가 두 인격(성부와 성자)을 동시에 가리키는 이름으로 생각한다면 신약시대에서는 두 인격(성부와 성자)이 각각 독립되어 나타났기에 두 인격을 포함해서 사용했던 구약의 여호와 이름은 신약시대에서는 더더욱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구약시대에서 여호와가 두 인격을 호칭하는 이름이라고 주장한다면 신약에서는 두 인격이 독립되어 각각 독립적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주장한다고 해도 여호와의 호칭은 신약시대에 사용될 수 없는 호칭으로 남는다.(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여호와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모두 포함된 이름으로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실재로 보수주의에서는 이렇게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구약시대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이 사용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여호와의 신]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여호와의 신]인 성령을 [여호와]와 분리해서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는 여호와의 신을 여호와라고 말할 수 없고 성부에게만 여호와가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사야에서 나오는 여호와의 종이 신약의 예수를 직접 가리키는 것이라면 그 종이 예수이며 이 예수를 포함시키지 않고 여호와라는 이름을 성부 하나님(엘로힘)에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여호와가 성부하나님을 호칭할 때 사용될 수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여호와의 신]이라면 이는 [여호와]와 [여호와의 신]이 구분될 수 있다는 것이며 그리고 [여호와의 종]이라면 [여호와]와 [여호와의 종]이 각각 구분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구약의 여호와 이름이 성부를 직접 가리킨다고 볼 수 있듯이 신약의 하나님(데오스)이 성부를 직접 가리키는 것으로 여호와와 신약의 하나님(데오스)이 서로 일치된다는 것이다. 아래와 같이 여호와 이름이 단수적인 표현이 되었다면 신약에서는 아버지로 바꾸어져서 사용된다는 것이다.

    [구약] [신약]
    A. 구약의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 대신 신약에서 보편적인 주(퀴리오스)로 호칭된다.
    여호와=================주(성부)
    여호와의 신==============주의 신(성령)
    여호와의 종==============주의 종(성자)

    B. 구약의 여호와가 사라진 것 대신 신약에서는 또 다른 호칭인 아버지가 나타난다.
    여호와=================아버지(성부)
    여호와의 신=============아버지의 신(성령)
    여호와의 종=============아버지의 아들(성자)

    C. 구약의 하나님(엘로힘)이 신약의 하나님(데오스)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엘로힘)==========하나님(데오스=성부)
    하나님의 신============하나님의 신(성령)
    하나님의 종============하나님의 아들(성자)

    D.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 대신 신약에서는 아버지 하나님으로 나타난다.
    여호와 하나님(엘로힘)=======아버지 하나님(데오스=성부)
    여호와 하나님의 신=========아버지 하나님의 신(성령)
    여호와 하나님의 종=========아버지 하나님의 아들(성자)

    이렇게 구약에서도 여호와=하나님(엘로힘)은 같은 인격(단수)을 부르는 이름과 호칭이다. 때로는 여호와로만 때로는 하나님으로만 때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자유롭게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는 여호와=하나님(엘로힘)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는 구약의 엘로힘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것이다. 이렇게 여호와=하나님(엘로힘)이 되려면 동시에 사용할 수도 있고 각각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호와의 종이라고 할 때에 그 종은 여호와인 성부의 종이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동시에 엘로힘의 종이라고 이해해야 된다. 엘로힘은 성부를 호칭하는 것으로 엘로힘의 종은 엘로힘과 구분된다.

    구약에서 여호와=하나님(엘로힘)으로 사용되었다면 신약에서는 주=하나님(데오스)로 나타난다. 그러나 여호와 이름이 주로 바꾸어진 것은 여호와 이름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야한다.
    그리고 이러한 증거는 여호와가 주라는 호칭으로 사용된 것이 이를 입증한다.

    구약시대의 여호와 이름이 사라진 것 대신에 신약시대에서는 새로운 호칭이 나타난다. 그것이 아버지라는 호칭이다. 아버지=하나님(데오스)이라는 호칭은 구약의 여호와=하나님(엘로힘)이 사라진 것 대신해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약시대에 아버지로만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데오스)으로만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 아버지로 사용되기도 한다. 즉 아버지라는 사용은 예수로부터 출발한 것이지만 그 기원은 구약의 여호와 엘로힘에 의해서 직접 나타난 것 보다는 여호와가 사라진 것 대신 예수로 말미암아 새롭게 나타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연이 아닌 구약의 엘로힘과 신약의 데오스가 성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된 것이라면 구약에서는 여호와가 성부 엘로힘을 직접 가리킨 이름으로 사용된 것과 같이 신약에서는 데오스을 아버지로 직접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연구는 더 해보아야 되겠지만 구약과 신약의 일관성을 찾는다면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데오스가 성부 하나님으로 서로 일치되는 것이 우연히 아닌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신약시대에 구약의 여호와라는 이름이 만약에 사용되어진다면 여호와 하나님(데오스)로 불러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용을 신약이 따르지 않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유대인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고 그들이 주라는 대리적 호칭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으로 여호와가 사라진 것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

    하나님께 아버지라는 용어를 유대인들이 사용하지 않았는데 신약의 교회는 과감히 쉽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가? 그리고 만약 여호와라는 이름을 신약시대에 사용한다면 [주 여호와 아버지 하나님이여!] 등과 같이 이렇게 사용되는 것도 있어야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와 같이 사용하지 않는 것은 여호와라는 호칭이 사라지고 주라는 호칭과 함께 아버지라는 호칭이 신약시대에 더 합리적인 사용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여호와를 대신한 것이 있다면 주라는 호칭이며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여호와에서 신약시대에서는 보편적인 주라는 호칭으로 바꾸어서 사용한 것이 사실이다.
    이것과 관련해 보편적인 호칭으로 구약에서 흔히 사용되지 않고 있었던 아버지는 신약시대에 새롭게 주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엘로힘)을 달리 부를 수 있다면 여호와라고 이름을 부른 것이다. 이와 같이 신약에서 하나님(데오스)을 다른 호칭으로 부른다면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 이는 주라는 호칭보다는 우리와 직접 관계되는 아버지라는 호칭이 더욱더 하나님을 우리와 가깝게 하고 우리와 직접 관계시킨다는 것이다.(하나님=아버지)

    구약의 여호와라는 이름이 신약의 아버지 호칭으로 직접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구약에서 사용한 여호와가 신약시대에서 사라진 것과 구약시대에서 사용하지 않는 아버지의 호칭이 신약시대에서 자주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사라진 것 대신 아버지의 호칭으로 신약시대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주]라는 호칭은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사용되는 일반적인 호칭이다. 유대인들이 신약시대에 여호와를 주로 호칭한 것은 사실이다.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주라는 호칭이 일부분 여호와 대신 사용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주라는 호칭이 여호와 이름만을 대신해서 사용한 것은 아니다. 신약시대에 주라는 호칭은 성부에게도 성자에게도 사용되었다.

    주라는 칭호가 이렇게 사용된 것으로 구약에서 사용된 여호와와 신약에서 사용된 주라는 호칭이 모두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구약에서 여호와=신약에서 주)
    신약성경에서 성부에게 주로 호칭하는 경우와 성자에게 주로 호칭한 경우에서 우리는 주라는 호칭이 다양하게 사용된 것을 확인한다. 구약의 여호와가 신약에서 주로 호칭되는 모든 것을 여호와로 해석해야 된다는 것은 무리가 된다. 신약시대에 성부를 주로 호칭한 것은 구약의 여호와 대신 사용한 것으로 인정하더라도 성자에게 주로 호칭한 것을 여호와로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된다는 것이다.(성자는 여호와의 종)

    만약 신약시대에 여호와의 이름이 계속 사용된다면 신약시대와 같이 삼위로 나타나는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타나는 구약의 단일 신사상은 신약시대에 나타난 삼위의 관계와 다르다는 것이다. 성부와 성자의 관계가 드러난 신약의 시대에 여호와가 계속 사용된다면 성부와 성자의 관계에서 여호와는 어디에 해당되는가? 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성부에 해당된다는 주장을 여기에서는 했으나 성자에게도 여호와라는 이름이 주어진다면 두 여호와의 이름이 나타난다.(성부 여호와, 성자 여호와) 이러한 문제는 구약의 여호와가 성부인가? 혹은 성자까지 포함되어야 하는가? 등으로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이 문제의 해결은 구약의 엘로힘이 성부인가? 성자인가? 라는 질문과 같은 것이다.

    구약의 엘로힘이 성부라는 사실로 접근한 이 글은 신약의 데오스가 성부라는 것과 직접 연결된다. 그리고 구약의 여호와가 성부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부인 여호와의 품속에 예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자연히 여호와는 성부이며 여호와(성부) 안에 예수가 있었고 그 예수가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온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엘로힘)]이 신약에서 [주 하나님(데오스)]으로 호칭된 것이며 이 모두 성부를 호칭한다고 볼 수 있다. 신약에서 [주 하나님(데오스)]은 성부를 분명히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는 거꾸로 신약에서 호칭되는 [주 하나님]이 성부이듯이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 성부라는 사실이다. 신약에서 [하나님(데오스)]이 성부이듯이 구약의 [하나님(엘로힘)]이 성부를 호칭한다고 볼 수 있다. 신약의 데오스와 구약의 엘로힘은 동일한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차이도 있다. 구약의 엘로힘(하나님) 안에는 성자가 포함되어 있었고 신약의 데오스(하나님) 안에는 성자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약에서는 이미 성자가 성부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되어 나타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구약에서 예수는 하나님 품속에 있었고 신약에서 예수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삼위(성부, 성자, 성령)와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들이 없으면 삼위의 관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들이 세상에 드러나진 않았던 구약시대에서 삼위관계는 거의 찾을 수 없는 비밀에 감추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가 세상에 오셔서 성도들과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구약에서도 이미 삼위로 존재했던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관계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은 약 2000년 전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오셔서 죽음으로 말미암아 신약의 교회가 삼위와 직접 관계된 것이다. 이러한 신약의 관계(삼위)는 구약에서는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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