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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인의 고통으로 지은 체제는 오래 지속된다고 해도 그 죽음의 냄새는 지워지지 않는다(김진호)
  • 제3시대
    조회 수: 4999, 2008.07.11 14:41:36
  • <계간 당대비평>의 전 편집위원들이 단행본 기획서 출간 모임으로 개편하여, 계간지 대신 기획서를 내기로 했습니다. 지난 해에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를 일종의 준비호처럼 내었고, 이번호부터는 '당비의 생각'이라는 연속기획서 성격의 시리즈를 만들어 그 첫번째 책으로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산책자, 2008.7)를 발간했습니다. 아래 글은 이 책에 수록된 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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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의 고통으로 지은 체제는 오래 지속된다고 해도
    그 죽음의 냄새는 지워지지 않는다


    김진호


    쉬볼렛, 이 말에는 죽음의 냄새가 풍긴다

    기원전 13세기에서 11세기 사이,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부족연맹체이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이 연맹체의 주도세력인 에프라임 지파의 서쪽, 요르단 강 건너편에는 연맹의 일원인 길르앗이라는 약소부족이 있었다. 그런데 이 지역은 암몬 족속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고, 길르앗 족속이 곧 역사에서 사라진 것으로 보건대 아마도 얼마 후 암몬 족속에게 병합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길르앗 족속의 잔존 세력은 바로 북부의, 부족연맹체의 또 다른 일원인 므나쎄 족속 지역으로 피신해가서 그 일부로 흡수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하는 때는 길르앗 족속이 아직 건재하던 시절이다. 이 족속에서 영웅이 등장해 암몬 족을 몰아내고, 부족의 지도자로 부상한 때였다. 그의 이름은 입다(Jepthah)였다.
    근데 에프라임 지파는 입다의 등장에서 심상치 않은 기조를 읽어낸다. 맑스주의 성서학자인 노먼 갓월드(Norman K. Gottwald)가 정리한 것처럼, 부족동맹체가 군주제 사회로 이행할지도 모른다는, 하여 권력독점의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문제의식을 느꼈던 것일 수 있다. 그들이 연맹의 질서를 책임지던 주도세력이었으니 느슨하나마 동맹의 이데올로기에 가장 큰 책임의식을 가졌다고 보는 것은 개연성이 있다. 혹은 군주제사회로의 이행기에 있는 부족동맹사회의 헤게모니 부족인 에프라임이 강력하게 대두하는 길르앗 족속을 견제하려는 것이었다고 보는 최근의 다수 학자들의 견해도 설득력이 적지 않다. 아무튼 에프라임의 장로들은 입다의 부상(浮上)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길르앗의 장로들은 암몬 족속의 공세로부터 부족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다른 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에프라임의 간섭을 부당한 개입으로 느끼고 있었다. 결국 두 부족 간에 전투가 벌어진다. 에프라임의 의용군이 요르단 강을 건너 출병한 것이다.
    상식으로 보자면 에프라임이 승리해서, 길르앗은 다시 부족동맹체의 질서에 순응하는 약소부족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길르앗에는 입다가 있었다. 어떤 전략을 사용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전투는 길르앗군의 대승으로 끝났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한다.
    에프라임 패잔병들의 귀향을 막으려고 입다는 강의 요소요소에 병사를 배치시켰다. 강을 건너려는 사람들은 길르앗 병사들의 심문을 받아야했다. ‘쉬볼렛이라고 말해 보아라.’ 만약 그가 ‘시볼렛’이라고 하면 그는 곧바로 처형당했다. 그렇게 말하는 이는 영락없이 에프라임 족속일 테니 말이다.
    이때 죽은 이의 수가 4만 2천 명이라고, 성서의 전승은 말한다(「판관기」 12장 6절). 터무니없이 과장된 숫자다. 고고학자인 이스라엘 핑컬스타인(Israel Finkelstein)은 부족동맹체의 범위를 확대해석하면서 팔레스타인 중부 산악지대에 거주한 사람들의 전체 수가 4만 5천 명을 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산한다. 그러니 성서 전승에서 ‘대단히 많은 이가 이 전투로 죽었다’는 뜻 이상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은 무리다.
    ‘쉬볼렛’, 이후 이 단어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나게 되었다. 그 말뜻과는 상관없이 누구도 그때 죽임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관한 기억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채 이 단어를 사용해야 했기에 말이다. 누가 말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거기에서는 죽음의 악취가 잔인하게 풍겼던 것이다. 죽은 이가 무얼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들은 입이 봉쇄되었으나, 쉬볼렛, 그 말 속에 자기들의 비명을 실어 보냄으로써 역사 속에 저 끔찍한 학살의 흔적을 남겨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그 역겨운 냄새엔 향수가 뿌려졌다

    오백 년쯤 지났을까? 이 오래된 얘기들이 글로 쓰였다. 과거 이스라엘 부족동맹체의 전통을 건국신화의 일부로 편입시키려 했던 유다왕국의 역사가들은 요시아 왕(BCE. 641/640~609년)에게 헌정하는 역사 문서를 만들었다. 쉬볼렛의 이야기도 여기에 편입되었는데, 사가들은 이 얘기를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맺음하였다. “길르앗 사람 입다는 여섯 해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다. 입다는 죽어서, 길르앗에 있는 한 성읍에 묻혔다.”(「판관기」 12장 7절)
    이것은 이들 사가들이 판관들, 즉 부족동맹 시절의 영웅들을 이야기하면서 끝맺음하는 전형적인 어구이다. 다시 말하면 쉬볼렛 이야기는 입다의 영웅담의 일부로 편입된 것이다. 그리고 입다는 길르앗의 영웅이 아니라 이스라엘 부족동맹의 영웅이 되었다. 그를 포함한 전설상의 옛 영웅들, 더욱이 북왕국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해석하는 게 옳을 그들 대다수는, 북왕국이 멸망한 이후 남왕국 유다의 선조로 둔갑하여 역사 무대 위로 호출된 것이다.
    한데 이러한 왕실 사가들의 편집 작업은 이후 쉬볼렛 이야기의 기억의 행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단어에서 아무도 죽음의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한 영웅의 영웅담, ‘자랑스런’ 조상의 무용담을 떠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기억의 복원, 에스트레마두라의 소리 들리는 곳에서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다. 무려 이천 오백년이 지난 뒤, 사람들은 한 시인을 통해 ‘쉬볼렛’에 관해 다시 듣는다. 1955년에 출간된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Von Schwelle zu Schwelle)라는 시집. 루마니아 출신 유태인 작가 파울 첼란(Paul Celan)의 시집으로, 여기에는 그의 시 <쉬볼렛>이 수록되었다. 이 시는 1936년 발발한 스페인 내전을 이야기하고 있다. 시민과 민중세력이 연합한 공화파가 선거혁명을 통해 재집권한 그해 2월, 젊은 장군 프랑코는 군인을 책동하여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로부터 3년간 계속된 내전은 사망자만 1백만 명이 넘는 대재앙의 역사로 남겨지게 된다.
    스페인 내란이 발발한 지 20년이 조금 못된 시기에, 아직 그 독재자가 생생하게 살아 있던 시기에, 자기에게 저항했다는 이유로 수만 명을 죽이고, 수십만 명을 구금하던 정치보복이 여전히 계속되던 바로 그 시기에, 파울 첼란의 이 시집은 출간되었다. <쉬볼렛>이 쓰인 시기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시집을 통해 독자들은 이미 끝난 사건임에도 여전히 죽음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 해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스페인 내전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이 시에서 그 죽음들에 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성서의 오래된 학살의 이야기를, 성서 자신이 왜곡시켜버린 뒤, 이젠 거의 아무도 거기에서 죽음의 음울한 기조를 읽어내지 못하던 바로 그 이야기를 호출해낸 것이다.

    그들은 나를 끌고 갔다,
    저기,
    내 앞에서 아무런 맹세도 하지 않은
    깃발 펄럭이는
    시장 한가운데로
    ―파울 첼란의 <쉬볼렛> 중에서(둘째 연)

    어쩌면 시인은, 스페인 내전 당시 죽임당했던 이들을 기리는, 아직 기념관도 없던 시절의 시장에서 펼쳐지던 조촐한 행사를 참관하면서 이 시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거기에서 “반 꺾인 깃대”에 죽은 이들을 위해 걸은 조기를 보면서, 바로 그 현장, 죽임의 현장, “에스트레마두라의/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호출당한다. 포르투갈과의 국경 근처에 있던 도시인 에스트레마두라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많은 이들이 유명을 달리했던 것이다.

    비엔나와 마드리드에서의
    쌍둥이 같이 붉던
    어둠을 기억하라
    ―파울 첼란의 <쉬볼렛> 중에서(마지막 여섯 번째 연)

    시인의 외침이다. 자신을 불러낸 죽임당한 이들의 초대장에 더 침묵할 수 없어 외친다. 그 외침은 죽임당한 이들의 그 소리를 시인 자신이 대행하는 소리다.

    여기 시장 한 가운데서
    그곳, 쉬볼렛을 외쳐라
    ―파울 첼란의 <쉬볼렛> 중에서(다섯 번째 연)

    그가 기억하라고 외친 ‘쉬볼렛’, 이 말을 통해서 스페인 내전의 희생자가 이 시가 쓰이던 시대의 역사 속으로 호출되고, 나아가 길르앗-에프라임 전쟁의 희생자 또한 시간의 부름을 받는다. 잊혀진 죽음의 이야기가 사람들 앞에 그 처참한 몰골을 드러낸다. 그 가려진 이야기가, 그 봉쇄된 입이 열리게 된 것이다.
    시인은 하나의 학살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학살의 기억을 회생시킴으로써, 두 개의 학살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고, 나아가 세계의 학살의 이야기들이 서로 연대하여, 역사의 봉쇄된 목소리를 부활시키고 학살자의 만행을 상기시키는, 죽임당한 자의 기억의 정치를 펴게 되는 것이다. 죽은 자, 죽임 당한 자의 연대는 이렇게 산 자, 승리한 자, 저 ‘성공한’ 학살의 주인공을 기억의 심판대 위로 올려 보내는 것이다.

    또 한 번의 기억의 재현. 지구화의 화염 속에서

    그리고 2007년, 성서와 성서학자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쉬볼렛은 콜롬비아 출신 여성작가인 도리스 살체도(Doris Salcedo)의 작품을 통해서 다시 우리 동시대의 역사 속으로 호출된다. 런던 한복판의 폐쇄된 화력발전소에 세워진 테이트모던 갤러리(Tate Modern Gallery)에 설치된 거대한 작품, 그것은 놀랍게도 미술관 바닥에 길게 좌우로 균열을 내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작품의 이름을 <쉬볼렛>이라고 이름지었다. 쉬볼렛이 학살을 연상시키는 상징어라면, 갤러리 바닥에 낸 균열은 도대체 학살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그림] 영국 테이트모던 갤러리에 설치된 도리스 살체도의 작품 <쉬볼렛>.

    작가는 무려 167미터짜리 긴 균열을 템즈 강과 같은 방향으로 내어, 갤러리를 좌우로 갈라버렸다. 관람객들은 마치 요르단 강처럼 보이는 이 균열을 따라 걸으면서, 좌우로 갈라진 경계를 가로지르기도 하면서, 학살자가 되어보기도 하고 또 학살당한 자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3천 년 전의 사건과 만난다. 일부 관객이 그 균열에 자기 신발을 걸어 놓아, 마치 거꾸로 매달린 사람의 흔적처럼 보이게 한 것은, 관객이 그때에 죽음당한 이가 되어보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이로써 시간의 간격은 매워지고,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간격도 매워지는 초시간적이고 초공간적인 대화의 현장이 될 수 있었다.
    한데 이 작품은 그 이상의 의미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갤러리의 공간 구조를 통해 그 의미의 잉여 지점에 다가갈 수 있다. 테이트모던 갤러리는 원래 화력발전소였다가 폐쇄(1981년)된 후, 거의 20년이 지난 2000년에 갤러리로 화려하게 재건축된 전시장이다. 그런데 이곳은 꽤 흥미로운 구조로 되어 있다. 강을 따라 길게 지어진 직사각형 모양의 이 건물에서 강을 등진 쪽은 창 하나 없는 콘크리트 벽면이고, 강을 바라보는 쪽은 화려한 상가가 있고, 또 전면 유리로 되어 있어 강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게 리모델링되었다.
    그런데 강을 등진, 견고한 벽으로 막힌 이 웅장한 갤러리 뒤편에는 런던 시의 커다란 빈민가가 놓여 있다. 필경 설계자는 저 흉측한 동네를 수많은 관광객의 눈에 보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전망 좋은 다른 편엔 화려한 상가와, 환하게 열린 개방된 공간을 연출함으로써, 시선의 미학을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설계자의 특별한 취향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누구라도, 자기 집을 짓든 공공건물을 짓든,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도리스 살체도는 바로 그러한 감춤과 드러냄, 누구라도 당연히 그렇게 했을 법한 저 자본주의적인 미학에 균열을 내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쉬볼렛’, 바로 학살의 현장을 상기시키는 이름을 붙였다. 누구라도 당연히 할 법한 그것은 바로 학살이라고......
    파울 첼란의 시들을 비평가들은 ‘전율의 미학’이라고 평한다. 그만큼 저 처절한 죽음의 악취가 그의 시 속에 적나라하게 풍긴다. 반면 도리스 살체도의 작품은 ‘은폐의 미학’이라고 할 법하다. 그 은폐된 뒤편엔, ‘양차 세계대전’을 연상시키는 야만적 학살 대신에, 후기자본주의 사회 식의 학살이 자행되고 있었다. 궁핍의 공간이 일상 한 가운데 버젓이 놓여 있건만, 사람들의 눈은 다른 아름다움을 보느라, 혹은 다른 일상에 분주하여 그곳을 볼 수 없다.
    지난 2004년 깐느 영화제에서 14세의 소년에게 남우주연상을 선사한 영화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유야 야기라 주연)는 지구화시대의 메트로폴리탄인 도쿄에서, 런던 이상의 도시인 그곳에서 고아이고 차상위계층인 네 명의 아이들이 지역의 일상 속에 지속적으로 사람들과 마주치고 있음에도, 아무도 모르는 존재, 곧 비존재로서 살아가고 있는 현상을 사실적 은유처럼 묘사하고 있다. 오늘날의 빈곤에 관한 주요 연구 주제인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 개념이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은폐의 메커니즘, 아니 ‘타인의 고통’을 가려버리고 다른 아름다음에 탐닉하게 하는 ‘은폐의 미학’은 이 영화에서,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닌 듯이, 아니 그런 쿨함 속에 그 누구도 면죄부를 얻을 수 없다는 듯이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살체도의 작품 <쉬볼렛> 또한 바로 그렇게 지구화 시대의 은폐된 학살을 담담하게 증언하고 있다.

    2천 년대 서울, 지구화와 빈곤화, 그 양면 거울의 한 편엔 ‘킹콩’이 보인다

    살체도의 쉬볼렛, 그 학살의 해석은 2천 년대 서울에서 보다 안성마춤의 현장을 발견할 수 있다. IMF 재앙을 거친 뒤 한국은 급속하게 지구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지난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한국의 지구화는 1997년을 거치면서 광속 엔진의 불을 뿜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한국사회에서 민주화와 지구화는 분리할 수 없이 얽힌 제도화의 구성요소였음을 의미한다.  
    이때 민주정부들의 지구화 대응 전략은 신자유주의적인 지식기반경제(knowledge-based economy)로의 재구조화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수많은 갈등과 저항이 잇따랐고, 적절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정책적 제도화가 절름거리며 진행되는 양상을 띠었지만, 민주화 과정에서 자본의 국가 정책 구성 능력이 현저히 강화됨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거대자본을 추동력으로 하여 정책화되는 신자유주의적인 지식기반경제로의 재구조화는 비교적 일관되게 추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재구조화가 노동시장의 분할을 동반하면서 진행되었다는 점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주로 부가가치가 크고 숙련노동에 의해 구성되는 ‘1차 노동시장’과, 저부가가치의 비숙련노동으로 주로 구성되는 ‘2차 노동시장’이 결정적으로 분할되었는데, 여기서 1차 노동시장에서 특히 두드러진 노동형태는 ‘지식기반노동’(knowledge-based labor)이며, 전통적인 ‘근력기반노동’(brawn-based labor)은 점점 2차 노동시장의 특징적 노동형태로 굳어져 가는 추세에 있다. 이 두 노동시장 간에는 격차가 점점 커지고 경계 너머로의 사회적 이동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 지구화 이후 두드러져 가고 있다. 한데 이 과정에서 2차 노동시장에서 하향 분해된 또 다른 차원의 노동시장인 ‘빈곤노동시장’(working poor labor market)이 형성된다. 이러한 노동시장으로 편입된 이들은 빈곤선(poverty line)을 훨씬 밑도는 임금, 불안정한 고용 등으로, 빈곤탈출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셋으로 분화된 노동시장(triple labor markets) 상황이 오늘 한국의 빈곤 현실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잘 알려져 있다시피, 1차 노동시장을 제외한 노동시장 전체에서 광범위하게 비정규직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거의 모든 노동자계층으로 하여금 2차 노동시장에서 빈곤노동시장으로 추락할 가능성에 직면하게 했다. 한편 지식기반경제는 피터 드러커(Peter Druker)가 말하는 지식경영자(chief knowledge officers)로서 주체가 재구성된, 매우 자율성 높은 고소득 노동자화된 존재의 경우도 항시적인 추락의 예감 속에서 자기 자신을 규율하도록 강제한다. 이러한 상황은 빈곤노동시장에서 멀든 아니든, 대부분의 노동자들을 몰락의 위기의식 속에 몰아넣는다. 즉 지식기반경제 아래에서 ‘하향의 회색지대’(going-down gray zone)가 광범위하게 구축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시절, ‘상향의 회색지대’(going-up gray zone)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모두가 성공에 대한 꿈으로 충일되어 삶을 총동원하고 전체주의에 존재를 위탁하던 것과는 매우 다른 사회적 현상 속으로 사람들을 호출한다. 이 하향의 회색지대의 주된 사회심리의 하나로 우리는 시민사회의 ‘무능력에 대한 공포’를 이야기할 수 있다. 이때의 무능력은 ‘역할기대’에 비해 ‘행위수행’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자타의 이해가 낳은 행위자의 자기의식과 관련된다. 이것은 최근 ‘무능력’이라는 말의 용례가, 역할기대나 행위수행 모두가 매우 낮은 상태를 가리키는 전통적인 무능력 개념과는 다르게 위와 같은 함의(역할기대〉행위수행)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는 데서 도출한 해석이다. 그런 점에서 이는 일종의 ‘예감된 무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예감은 자기 전 존재를 생존을 위한 총력전 속으로 몰아간다. 즉 하향의 회색지대의 사회심리는, 홀거 하이데(Holger Heide) 등이 신자유주의적 노동재구조화의 현상으로 제안한 것처럼, 일터와 쉼터의 이분구조가 해체되고 ‘노동으로 회수된 존재’로의 행위 지향성을 낳았다는 것이다.
    근데 이러한 행위 지향성은 ‘타자에 대한 인식의 몰락’을 낳는다. 요컨대 오늘 한국의 시민사회는 타자를 자아상에서 제거하면서 형성되는 시민의식으로 넘쳐나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타자가 부재한 자아인식이 시민적 주체의 특징이 된 것이다. 가령, 민주적 제도화 과정에서 형성된 우리사회의 시민적 평등의식 속에는 타자에 대한 감수성은 매우 낮은 상황에서, 자기에 대한 인정욕망이 과도하게 넘쳐난다.
    한편 빈곤노동시장은, 위에서 말했듯이, 빈곤탈출 가능성이 극히 제한된 상황에 놓인 사람들로 채워져 간다. 일반노동시장에서 배제되어 빈곤노동시장으로 추락한 이들은 극히 불안정한 고용상황에서 단순 비숙련 노동으로 매우 짧은 기간 동안만 일할 수 있을 뿐이고, 이러한 노동과 비노동 상황의 반복 속에서 그들의 노동 능력은 더욱 무능력화되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 과정이 장기간 반복되면서 노동의 무능력화는 존재의 무능력화로 이어진다. 하여 역할기대도 행위수행도 거의 최하점에 있는 절대적 무능력화의 상황, 이 희망 없는 존재의 상황은 ‘욕망의 몰락’이라는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북미의 하위계급(under class) 연구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빈곤화된 이들의 집촌지역은 더욱 비도덕적이고 더욱 범죄적이며, 부적절한 의존성(술, 마약)이 보다 심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우리사회는 아직 미국 대도시 지역의 하위계급화의 전형적 현상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일반 시민사회보다는 훨씬 더 부정적인 빈민문화가 자리잡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즉 욕망의 몰락 현상은 개체적 체험의 영역을 넘어 빈곤계층의 문화현상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욕망의 몰락은 ‘언어의 몰락’으로 포착되곤 한다. 가령 빈곤계층의 아동이 언어 습득의 속도가 매우 느리다거나, 노숙자로 전락한 이들에게서 말이 어눌해지는 언어 장애 현상이 폭넓게 관찰되고 있다거나 하는 분석은 그 증후에 속한다. 나아가 자신의 사회적 박탈의 체험을 가정폭력으로 표현한다거나, 보다 약한 다른 동료에게 상습적인 폭행을 가한다거나, 습관적 방화 등의 범죄행위에 빠진다거나, 혹은 알콜이나 마약 같은 대체물에 의존한다거나 하는, 자기 설명의 반복된 실패를 언어의 몰락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빈곤계층에게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언어 몰락 현상을 나는 ‘사회적 실어증’(social aphasia)이라고 명명한 바 있는데, 이는 빈곤계층의 집단적인 ‘말하지 못함의 상태’를 나타내는 동시에 그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시민사회의 상태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빈곤계층은 자기의 박탈 체험을 언어화하지 못함으로써 자아가 붕괴되고 자활의 전략을 구상하는 데 대체로 실패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실패는 개인의 실패처럼 드러난다. 즉 그 배후의 사회적 문제를 가려버린다. 그런 점에서 성공과 실패를 개인화하여 해석하는 담론체계인 신자유주의적 지식기반사회론이 설득력을 갖는 듯이 보이게 한다.
    또한 언어의 몰락은 성찰의 부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성찰의 부재는 ‘빈곤의 문화’를 미학화할 수 없게 한다. 가령 「마태오복음」은 사회정치적 가난을 ‘자발적 가난’이라는 승화된 체험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재난처럼 덮쳐온 고통의 트라우마가 서로에 대한 공격성으로 표출되는 것을 억제하고 서로에게 호혜적인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담론 전략으로 복음의 내용을 구성하고자 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빈곤의 문화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수동성, 무력감, 내부에 대한 과도한 공격성 등의 자기 파괴적인 요소들을 발견해냈다. 이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민중문화의 가능성을 상상하기는커녕,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해석체계를 정당화하는 역사적 징후로서 빈곤을 보이게 했다.
    이렇게 비시민화된 빈민계층의 사회적 실어증의 ‘말하지 못함’은 시민사회의 ‘듣지 못함’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듣지 못함’의 상태는, 앞서 이야기한 지식기반사회의 하향의 회색지대의 사회심리 효과와 맞물리면서, ‘타자성이 붕괴된 시민성’을 낳았다. 가령,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은 대체로 범죄집단과 연결되어 있다는 개연성 높은 의혹은 빈곤문화가 호혜적으로 제도화되기보다는 폭력적으로 제도화되는 경향과 연결된 이해의 산물이다. 이는 구걸하는 자에 대한 궁휼지심을 실행에 옮길 필요를 제거하며, 나아가 궁휼지심 자체를 비현실적인 감상으로 보이게 한다.
    이러한 타자성의 붕괴는, 말할 것도 없이, ‘배타주의적’이다. 그런데 이 배타주의는 일탈적이기보다 일상적이고, 공격적이기보다 방어적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배타주의는 생존을 위해 민주주의를 유보해야 한다는 인식과 결합되어 있었다. 여기서 배타주의는 일탈적 인식에 속한다. 하지만 민주화된 사회에서 그러한 배타주의는 허용될 수 없다. 반면 오늘의 사회에서 배타주의는 습관과 태도 속으로 숨어들어, 배타심을 품은 이 자신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는 ‘은폐된 배타성’으로 표현된다. 마치 도리스 살체도의 <쉬볼렛>처럼 시선에 장애를 주어 저 자본주의의 ‘사회적 학살’을 은폐하는 것처럼, 일상 속에 스며든 배타성은, 그들이 늘 주위에 있으나,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없음으로써 은폐된 배타성인 것이다.  
    또한 그 배타성은 ‘방어적’이다. 저들이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 한, 즉 ‘공격’이라는 언어를 선택하지 않는 한 저들의 소리는 침묵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빈민은 우리 시대의 킹콩이다. 때로 유영철처럼, 시민사회를 공격하는 괴물이 되어 그 소리가 청취권 안에 들어오곤 하지만, 일상의 시간에는 시민사회가 보고 읽고 재현하는 방식에 의해서만 관찰되는 ‘박제된 괴물’일 뿐이다.
    이상과 같이 민주화와 지구화의 제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적인 고통의 불균등 배분의 산물임에도, 킹콩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허용된 대상화된 존재, 그 비존재의 존재로 빈곤계층은 구성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유럽의 지식인들은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 빌어온 언어를 통해서만 부분적으로 묘사될 뿐, 아직 학술적 이름을 얻지는 못한 상태로 시민사회의 주변부를 배회하고 있다. 쉬볼렛이, 그 죽음의 악취 풍기는 냄새가 사관들에 의해 은폐된 채 성서 텍스트의 일부로 재현된 것처럼, 오늘날 빈곤계층에 대한 사회적 학살의 흔적은 여전히 잘 포착되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그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에 의해서조차 말이다.

    MB 시대의 킹콩들, 그들은 어떻게 재현될까

    앞에서 지식기반사회로의 제도화와 빈민계층에 대한 사회적 배제의 체계를 마치 잘 진행된 것처럼 서술했지만, 실상 지구화와 민주화의 합류는 그리 순탄치 않았다. 시종일관 무엇과 무엇이 갈등관계인지조차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혼란스런 대립과 비타협이 계속되었고, 대개는 조정에 실패하고 힘의 우위에 의해 밀어붙이기 식의 제도화가 실행에 옮겨졌으며, 그렇기 때문에 어정쩡한 반쪽짜리 제도화들로 넘쳐났다.
    송호근은 민주화 정부 시대의 이러한 혼란의 배후에는 이데올로기의 빈곤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즉 그는 민주화 정부들의 개혁이 과거 권위주의 시대 정부들과 3당합당파 보수적 민주정부의 실패를 뒤집는 요인들을 모자이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 개혁적 민주정부들 시대에 신자유주의적인 지식기반사회로의 제도화를 강력히 추진한 것은 방향 잃은 지구화 대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혼란의 결과는 민주화에 대한 시민사회적 욕망의 붕괴로 나타났다. 지구화로 인한 하향의 회색지대가 광범위하게 구축되면서 나타난 무능력화에 대한 사회적 공포감의 반작용이 지난 대선에서 ‘경제대통령 신화’로서 표출되었고, 이는 민주화에 대한 대체물로서의 대안적인 시민적 욕망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포스트민주화의 계기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신화의 주역인 MB는 이러한 반작용적 욕망을 담아내는 이데올로기를 제시함으로써 포스트민주화 체제의 등장을 선언하고자 했다.
    냉전적 이데올로기를 넘어선다는 의미에서 과거 청산적 함의를 지니는 ‘실용’은, ‘선진화’라는 미래 전망적 개념을 통해 보충됨으로써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토대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 출범 이후 석달을 보내면서 발견한 것은, MB의 캐릭터가 결코 ‘실용’스럽지도, ‘선진화’스럽지도 않은, 구태의 모습을 너무나 강하게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MB 정부의 정책들에서 어떤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기조를 지향하고 있다기보다는, ‘민주적 개혁정부들의 실패를 뒤집는 요인들을 모자이크한 것’에 지나지 않는, 그런 점에서 민주화 시대 정부들의 실패를 단순 반복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럼에도 MB 정부가 산만하게나마 제시하는 정책의 기조 속에서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더욱 강화된 형태의 지식기반사회적 전망이 엿보인다는 점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것은 선진화 담론의 배후에 박세일을 필두로 하는 일련의 이데올로그들이 구축하고 있는 뼈대가 건재하기 때문이다.
    박세일이 주장하는 공동체 자유주의는 시장자유주의와 작은 정부론이 결합된 신자유주의적 기획의 산물이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라는 명칭은 지식기반사회적 인간형으로 조직된 자율적 행위자들에 의해 사회가 통합되는 체제를 가리킨다. 즉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보충하는 사회적 전략을 함축하는 공화주의적 요소는 여기에 없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이상에 의해 결속된 공동체라는 의미가 지배적이다. 이는 사회적 배제의 문제가 고려되어 있지 않은 공동체주의라는 뜻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기획은 민주화 정부들 시대의 갈등들에서 일정한 영향을 미쳤던 민중주의적 요소를 정책 구성의 변수에서 삭제함으로써 제도화를 실행하는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말했듯이, 사회적 배제를 간과함으로써 자본의 자율성을 신장시키고 발전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도덕주의적 전제가 깔린다. ‘착한 자본’이 자율성의 헤게모니를 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선한’ 자본의 자율성의 확대가 발전을 낳고, 이것이 공동체의 풍요로 이어지는 박세일류의 ‘행복한’ 선진화 담론은, 권위주의 시대의 CEO형 리더십을 표상하는 MB가 아니라 지식기반사회적 리더십을 보여준 ‘문국현’과 보다 잘 부합한다. 요컨대 MB체제는 이데올로그 박세일과 문국현 식의 ‘착한’ 리더십이 결합되었을 때 포스트민주화시대의 신보수주의적 체제로서 보다 견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첨가하면, ‘착한 강남문화’를 신앙화한 교회주의가 보수주의적인 시민문화를 한층 강화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소망교회로 표상되는 명품기독교, 귀족적 기독교는, 이미 한국 대형교회의 구조조정을 선도하고 있는 바, ‘한기총’류의 ‘무례한/천박한’ 보수주의 대신 ‘도덕적 보수주의’를 기저로 하는 시민사회의 인적이고 물적인 동력화를 주도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체제가 구축된다면, MB정부가 이러한 보수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민주화 시대를 대체하는 체제를 구현해낸다면, 지난 민주화 정부들 시대의 사회적 학살들보다 더욱 심각한 배제의 체제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한 체제가 자기 정당화 논리를 보다 견고히 갖추어 ‘무너지지 않는 체제’를 구현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잿더미가 된 비판들의 잔해들로 도배질된 집과 같은 것이 될 수도 있다.

    킹콩의 부활, 그리고 킹콩을 사랑한 얼간이들

    하지만 이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이고, 거의 불가능한 줄거리이다. 무엇보다도 사회적 학살의 희생자의 냄새를 가장 잘 희석화하는 향수가 발전된 때에도 그것은 완벽히 숨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파울 첼란이 <쉬볼렛>에서 말한 것처럼,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회적 학살의 상황이 과거의 은폐된 것조차 호출해내기 때문이다. 그 죽음의 냄새에 맞장구하지 않을 수 없는 이가 그 죽음의 냄새를 폭로할 것이기 때문이다. 완벽히 은폐되는 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틈새를 통해 사회적 학살은 기억의 통로로 비집고 나온다.
    MB 체제는 시작부터 모든 걸 들켜버렸다. 또 그 시행착오가 지양되고, 이데올로그가 그리는 이상적 시나리오에 의해 구현될지라도, 그것이 담고 있는 위험한 측면까지 이미 다 들켜버렸다. 그런 점에서 이 체제는 결코 비판들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리지 못할 것이고, 시종 끊임없이 그 은폐, 허술한 그 메커니즘으로 시비거리에 오르는 정책들로 씨름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을 지녔다.
    그리하여 MB 시대의 킹콩들은 박제된 괴물이 아니다, 아닐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사회적 학살이 자행되는 곳곳에서 킹콩들은 저 죽임의 체제에 대한 파괴적 몸짓을 거침없이 해댈 것이다. 그리고 그 킹콩들을 사랑한 ‘얼간이들’이 킹콩의 몸짓에 언어를 첨부해 준다면, 어쩌면 세상은 점차 킹콩들과 대화하는 통로를 발견할지도 모르고, 그 대화를 토대삼아 새로운 제도화로의 실험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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