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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달리야의 꿈에서 위기를 보다--재앙을 넘어서는 길에 관한 신학적 역사적 상상
  • 김진호
    조회 수: 6833, 2009.02.01 23:29:59
  • [기독교사상] 2009년 2월호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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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달리야의 꿈에서 위기를 보다
    재앙을 넘어서는 길에 관한 신학적 역사적 상상


    김진호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1. 재앙

    재앙에 관한 설(說)들이 난무했다. 쌀을 제외한 곡물자급률이 5%를 넘지 못하는 우리 현실에서 국제곡물가격의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낳는다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Agriculture+Inflation) 재앙설은 더 이상 남의 얘기일 수 없다. 환경에 관한 각종 재앙 시나리오들에 낯설어하는 이는 이젠 없을 정도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2008년 여름)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상승하는 유가 소식을 접하면서 에너지 재앙설 또한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국제기축화폐라고 할 수 있는 달러화의 붕괴 가설에 관한 책 몇 권이 번역 출간되면서 그런 것도 치명적 재앙의 가능성으로 우리에게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에 난망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가능성들과는 다소 다른 시나리오로 구성된 재앙이 우리는 사납게 덮쳐버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에서 시작한 미국발 금융위기가 낳은 경제재앙. 이미 그 파괴력이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우리 삶의 현장들에서 현실화되고 있지만, 아직은 시작일 뿐이다. 그것이 어떤 경로로 어떻게 우리의 존재 조건들을 무참히 짓밟아 버릴지, 불길한 예측들이 난무한다.
    많이 개선되긴 했어도 미국경제에 대한 의존성이 여전히 큰 상황에서 미국발 재앙은 우리에게 남다른 위기로서 다가온다. 특히 가계부채가 무려 660조가 넘는 부채과다현상은 매우 치명적이다. 경기침체로 인한 채무불이행사태가 속출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가계수지가 적자인 가정이 거의 30%에 달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온 바 있다.
    이미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의 상하향 분해 추세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특히 빈곤층의 크게 늘었으며, 상류층의 부가 크게 증가하는 현상이 현저한데, 최근의 경기침체는 이러한 사정을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요컨대 소득 양극화 문제는 최근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가장 심각한 위기의 요소다.
    한국의 MB 정부는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감세와 규제완화 정책을 실행에 옮겼다.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 종합부동산세의 사실상의 폐지 등, 그리고 수도권 규제완화, 출자총액 제한제 폐지, 금융ㆍ산업 분리의 폐지 등이 추진 중이다. 또한 공기업 민영화, 지상파방송의 민영화, 한ㆍ미 FTA 같은 고강도 세계화 정책 등에 대해서도 강력한 시행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박정희식 성장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시장근본주의를 결합한 위기대처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소득양극화를 크게 심화시켰던 국민의정부나 참여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들보다 훨씬 더 강자와 약자의 이분법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령,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가운데 조세부담율이 가장 낮은 한국사회에서 감세정책을 펴고, 역시 가장 낮은 사회안전망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 직면한 위기를 타개할 국가전략으로 제시되고 있다면, 이 위기요법이 초래할 계층분화의 방향이 어떨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설사 이러한 정책이 투자를 활성화시키고 경기부양 효과가 있어 낮은 성장률의 문제가 해소된다고 해도 성장 혜택의 분배를 공정하게 할 의지가 정부에게 있는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있다 하더라도 이미 불공정 게임룰이 제도화된 터에, 배분할 ‘파이’가 커지든 안든 양극화는 심화될 것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어느 경우든 양가적인 면이 있듯이 재앙 또한 위기인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평소라면 좀처럼 시행할 수 없는 근원적인 개혁을 드라이브할 수 있는 순간이 도래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감한 정책이 때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우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 경우 당면한 재앙은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징조가 되어버릴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MB 정부의 위기관리 전략은 심히 우려스럽다. 우리는 바로 이런 우울한 교훈을, 하여 우리를 비판적으로 점검할 안성마춤의 사례를 성서의 이야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2. 선택

    그 때에 주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록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나와 빈다고 해도, 내가 이 백성에게 마음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이 백성을 내 앞에서 쫓아내라! 그들이 너에게 ‘어디로 가야 하느냐’ 하고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어디를 가든지, 염병에 걸려 죽을 자는 염병에 걸려 죽고, 칼에 맞아 죽을 자는 칼에 맞아 죽고, 굶어 죽을 자는 굶어 죽고, 포로로 끌려갈 자는 포로로 끌려갈 것이다.’ 나는 이렇게 네 가지로 그들을 벌할 것이다. 그들을 칼에 맞아 죽게 하며, 개가 그들을 뜯어먹게 하며, 공중의 새가 그들의 시체를 쪼아먹게 하며, 들짐승이 그들을 먹어 치우게 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예레미야서」 15장 1~3절

    예레미야 예언자가 예고한 재앙 시나리오는 그대로 실현되었다. 바빌로니아에 의해 전 국토가 잿더미가 된 것이다. 두 번의 침공(주전 597년 여호야긴 왕 때; 주전 586년 시드기야 왕 때)으로 거의 대부분의 도시들이 불타 사라졌고, 수많은 농촌마을 또한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에 무려 85%의 거주지가 역사에서 사라졌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후 급부상한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은 한때 인구가 일만오천 명에 이르는, 요시아 왕 당시 팔레스티나에서 가장 커다란 도시가 되었으나, 전란 후 오랫동안 그 십분의 일인 일천오백 명을 넘지 않는 소읍 정도로 전락해버렸다. 농촌의 경작지들은 거의 쑥대밭이 되었고, 대다수의 주민들은 유민이 되어 타지역으로 이주하여 마을은 거의 비어버렸다. 유대 지역은 이후 오랫동안 회복되지 못한 채 버려진 땅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심각한 재앙이 기회이기도 했다. 예루살렘이 정복되고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눈알이 뽑힌 채 바빌로니아 중원으로 압송되어 구금됨으로써(「열하」 25,7) 유다 왕국은 완전히 몰락하였다. 물론 바빌로니아는 이 지역을 직할통치지역으로 삼지 않았다. 그보다는 대중의 지지를 쉽게 받을 수 있는 토착인사를 통치자로 위임하는 것이 비용도 적게 들고 보다 안정된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국은 정복지역에 대한 이런 방식의 체제재편을 선호하였다.
    유대 지역의 통치자로 위임된 이는 ‘그달리야’라는 사람이다. 그는 사반의 손자이며 아히감의 아들이라고 한다(「열하」 25,22). 사반은 요시아 개혁 당시 사관 등 요직을 역임한 인물이고(「열하」 22,8),1) 그의 아들 그마리야와 손자 미가야는 반개혁의 시대인 여호야김 왕 때에 반왕당파인 개혁파의 주요 인사로, 종종 왕에 반하는 필화사건을 일으킨 급진적 인사인 예레미야를 음으로 양으로 비호하곤 했다(「예레」 36,11~20). 그리고 사반의 또 다른 아들이자 그달리야의 부친인 아히감 또한 개혁당파의 핵심인물이었다(「예레」 26,24). 요컨대 이 가문은 요시아 개혁을 지지하는 유력한 세력을 대표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시아 개혁은 왕당파와 민중세력(‘암하아레츠’)이 연대하여 귀족세력을 위축시키는, 이른바 ‘위로부터의 개혁’이다. 그 이전까지 유다 왕국은 고대 팔레스티나에서 약소국으로 국가발전이 매우 더뎠던 나라다. 인구도 적었고 토양도 척박했으니 말이다. 당연히 왕권제로의 제도화도 뒤쳐진 후진국이었다. 오므리-아합 왕 치하의 이스라엘 왕국의 봉신국이 된 기원전 9세기 초 이후 왕권은 조금 더 발달하게 되지만 여전히 주변정세와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이후 왕당파와 귀족간의 본격적인 정쟁이 계속되었고, 약소국이 대개 그렇듯이 이 정쟁은 주변의 나라들이나 제국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힘의 균형이 깨지곤 했다. 이 과정에서 유다 왕국의 여러 왕들이 궁중 암투로 살해되거나 감금되어 명목상의 왕위만을 유지하는 등,2) 왕권은 여전히 잘 확립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열왕기」에는 이러한 정쟁 과정에 ‘암하아레츠’라는 존재가 등장하고 있다.
    동시대 문헌들의 용례에 따르면 이 용어는 비하적으로 표현되건 아니건 ‘농민 일반’을 개략적으로 지칭하고 있다.3) 한데 제1성서(=구약성서)에서 사용된 17회 중 식민지 시대를 다루는 2회4)를 제외한 15회가 유다 왕국의 정쟁과 관련된 텍스트에서 사용되고 있다.5) 다시 말하면 유다 왕국 역사와 관련하여 성서에 등장하는 암하아레츠는, 무정형적인 농민 일반이 아니라, 정치세력화한 농민세력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요아스, 아마샤, 아사랴, 요시아 왕을 즉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만큼 무시할 수 없는 정치세력으로 존재하는 농민세력을 가리킨다.  
    요시아 왕은 이들을 지지세력으로 삼아 과감한 개혁정책을 편다. 농민의 몰락을 억제하고, 이미 몰락한 이들을 보호하는 조치들이 과감하게 시행된 것이다. 땅의 소유권을 옮기는 것에 대한 금령(「신명」19,14), 고리대금과 악랄한 부채 회수에 대한 금령(24,6‧10~13‧17), 정의로운 재판 강조(16,18~20), 뇌물수수 금령(16,18~20), 정량화된 도량형(25,13~16) 등이 이 개혁의 주요 내용들인 것이다. 이는 정치세력화한 농민세력을 가정할 때, 이들이 요시아 정부에 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는 가정을 할 때 가장 타당하게 설명되는 조치들이다.
    다시 그달리야로 돌아가자. 그는 이러한 민중적 개혁의 관점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인물이다. 통치자로 위임되자 그는 얼마 남지 않은 빈민화된 주민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식량을 배급해준다(「예레」 39,10; 40,10). 또한 그가 도읍으로 삼은 미스바는, 전란 중 파괴되지 않은 성읍으로, 바로 이러한 민중주의적 정책에 안성마춤인 도시다. 과거 지파동맹 시대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는 성읍으로(「사사」 20,1), 그의 민중주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해줄 만한 전통이 살아있는 고도(古都)이다. 그리고 유다 왕국에서 그러한 민중적 전통을 대변하는 또 다른 읍락인 아나돗 출신의 명망가 예레미야(「예레」 1,1) 또한 그달리야를 지지하고 나섰다(「예레」 40,6). 뿐만 아니라 세겜, 실로, 사마리아 같은 오래된 지파동맹의 전통을 간직한 또 다른 지역 출신 인사들도 그의 체제 속으로 속속 귀의하고 있었다(「예레」 41,5).
    재앙을 맞아 모든 생산기반이 붕괴된 상황에 놓인 사회에서, 지도자 그달리야는 이렇게 대중의 자생력을 강화하는 이데올로기와 정책을 펴고자 했다. 엘리트집단을 강화함으로써 붕괴된 체제를 재건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중사회의 활력을 통해서 체제를 굳건히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의 꿈은, 그의 비전은 한순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구왕족 출신의 군부인사였던 이스마엘이라는 사람이 그를 암살한 것이다(「열하」 25,25). 이스마엘이 보기에 그달리야의 꿈은 그토록 불온해보였던 모양이다.6)
    지도자를 잃어버린 체제는 동시에 그 꿈도 잃어버렸다. 그달리야에게로 귀하한 구왕국의 귀족들은 그가 죽자 어찌할지 몰라 허둥댄다. 그들은 예언자들에게 자문을 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레미야에게도 그렇게 한 듯하다.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소. 주 우리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우리가 이집트로 가서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전하게 하셨을 리가 없소. 이것은 틀림없이,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우리를 바빌로니아 사람의 손에 넘겨주어서 그들이 우리를 죽이거나 바빌로니아로 잡아가도록 하려고, 당신을 꾄 것이오.
    ―「예레미야서」 43장 2절 하반부~3절

    이 텍스트는, 그달리야의 정책을 계승하라는 예레미야의 충고에 대한 귀족들의 반응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개의 선택지가 갈등하고 있다. 하나는 ‘이집트로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미스바로의 길’이다. 미스바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그달리야의 비전이고 대중의 꿈이다. 대중과의 공존을 강조하는 것이고, 함께 식탁을 나누는(「예레」 41,3) 평등주의 사회의 지향을 담고 있다. 반면, ‘이집트로의 길’은, 오래된 모세 설화가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출애굽한 대중이 미래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꿈으로 회귀하고픈 퇴행적 갈망을 상징한다. 바로 ‘풍요에 대한 노예의 꿈’이다. 주인들의 풍요로운 식탁을 꿈꾸며 자기들도 그 자리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갈망이 바로 ‘이집트로의 길’인 것이다. 또한 전자가 대중의 삶에서 시작하는 정치를 시사한다면, 후자는 누가 누리든 어떻게 나누어지든 풍요 그 자체에 주목하는 정치를 암시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미스바와 이집트를 지향하는 두 길, 혹은 그달리야와 이스마엘로 나뉘는 두 길은 역사인 동시에 정치에 대한 상징이다. 어떤 정치가 진정 야훼의 길이며, 어떤 정치가 진정 야훼의 백성이 꿈꾸어야 할 길인가. 바로 이 선택 앞에 우리는 지금 서 있다.
    결국 그달리야가 죽은 이후, 예레미야 같은 이의 간곡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들 남은 지도자들은 예레미야 등을 볼모로 하여 이집트로 간다. 본문이 말하는 것처럼 이 길이 바빌로니아의 보복을 벗어나는 길이라고 그들은 믿었던 것이다. 바빌로니아가 재앙을 상징한다면, 바로 재앙을 벗어나는 길은 과거 회귀적인 퇴행적 꿈, 풍요주의/발전주의를 향하는 것이라고 보았다는 얘기다. 그 길로 예레미야를, 대중을 강제로 끌고 간 것이다.

    3. 위기를 보는 시선

    재앙에 대한 MB 정부의 대응책은 어느 길을 택하고 있는가. 어느 길로 시민을 인도하려 하는가. 지난 20년간의 민주주의적 기조를 뒤흔들면서까지 강권을 휘두르며 대중을 이끌려는 그 길은 어디인가. 그토록 절박하게 그들을 부르는 그들 식의 유토피아는 어디인가. ‘이집트’인가 ‘미스바’인가.
    내가 만난 한 경제학자와 또 한 명의 목사는 내게, 나의 이야기 라인을 따라 선택의 문제를 고려한다 해도 ‘미스바로의 길’은 단지 ‘도덕적’인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충고를 하였다. ‘미스바로의 길’이란 결코 현실 속에서 재앙 타개책으로 검증되지 않은 방식에 불과하다고. 반면 IMF 식의 구조조정이 추구했던 신자유주의나 박정희 식의 성장주의는 위기를 해소한 방식임이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MB식 성장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표준은 재앙을 대처하는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방식이라는 주장이다.
    한데 과연 그런가. 1990년의 ‘워싱턴 컨센서스’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의 정치학, 그 시장근본주의적인 정치경제학은 국제무역을 자유화하고, 이를 제약하는 각종 규제를 철폐하며, 금융의 국제적 이동의 자유를 절대화하고, 공공적인 것을 민영화하는 등의 기조에 따라 세계은행(WB)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는 국가들의 개발정책을 강제하였다. 그런데 이런 개발정책은 과연 재앙에 대처하는 국제표준이라고 해도 무관한가.
    1990년대 말 지구를 휩쓴, 특히 남아시아와 동아시아 지역을 휩쓴 외환위기는 이러한 워싱턴 컨센서스의 국제적 실험의 장이었다. 그리고 세계은행은 1999년 새로운 발전모델을 제시한다.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할 만한 이 모델의 기조는 시장근본주의적 개발정책은 세계의 빈곤화를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또 다른 지구적 위기를, 재앙 위의 재앙을 초래하였다는 반성에서 출발한다. 하여 시민사회의 빈곤화를 억제하고 빈곤화된 대중의 회생 프로그램을 통해 저들을 다시 시장으로 진입하게 하는 방식의 새로운 개발모델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세계은행그룹 내부에서 제시된 것이다. 2006년 노벨상을 수상한 그라민 은행이 거둔 마이크로크래디트 운동의 성과는 전체 운용기금의 97%를 제공한 국제 금융기구 등의 개발정책과 깊은 관련이 있다. 또한 세계 각 곳의 시장주의자들과 거대자본들이 운용하는 연구기관들은 막대한 기금을 투자하여 빈곤화된 대중의 시장진입을 위한 프로그램의 가능성에 대해 조사 연구를 시행하였다. 요컨대 IMF식의 신자유주의적 표준은 더 이상 국제표준으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지 못하며, 오히려 작은자들의 회생프로그램이 오늘의 시장이 선호하는 표준적 지위를 획득해 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미스바와 이집트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의 정부를 돌아보고, 그것에 대한 우리 자신의 입장을 묻는 자리로 돌아가자. 나의 관심은 시장이 선호하는 선택의 적실성이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문제의식을 낭만적 도덕성으로 폄하하는 신자유주의적 독선에 대해 반론을 펴고 싶었을 뿐이다. 나의 관심은 오늘의 재앙을 보면서, 재앙 위의 재앙을 막는 선택에 관한 신학적 판단 혹은 해석에 있다. 나는 그 해석의 준거를 말하기 위해 요시아 개혁을 경유해서 미완으로 끝난 그달이야의 비전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쳤다. 미스바의 길은 요시아 개혁과 예레미야 예언자의 신탁이 만나는 지점에서 그달리야를 통해 정책적 실험에 돌입한 방식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빈민의 회생에서 몰락한 국가의 회생을 꿈꾸는 한 지도자의 비전을 통해 역사화된 것이다.
    이스마엘의 암살로 이 실험은 미완으로 끝났다. 그리고 이스마엘은 예레미야와 대중을 강제로 이끌고 이집트로 갔다. 그것이 결국 재앙 위의 재앙이 되었는지, 역사학은 그것을 판단하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신학은 그것에 판단을 내린다. 그것은 야훼의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를 통한 그달리야 에피소드에서 ‘야훼의 길’은 명백하게 미스바를 향하라고 권고한다. 적어도 이 상황에서 빈민의 희망은 곧 야훼의 희망인 것이다. □


    [주]

    1) 최근 이 시기에 대한 역사적 연구에 충실한 학자들은 유다 왕국에서 처음으로 왕실의 역사가 기록되던 시기를 히스기야 왕 시절이거나 요시아 왕 시절로 본다. 바로 그 시기에 사관, 즉 왕실 이데올로기를 펴는 역사서술 책임자의 위상은 대단히 중차대하였을 것이다.
    2) 아하시야 왕(「열하」 9,27)은 이스라엘 왕국에서 벌어진 예후 쿠데타 때에 살해되었고, 그의 부인이자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었던 오므리의 딸인 아달랴가 남편 아하시야 사후 권력을 장악했으나 궁중에서 일어난 정변으로 살해된다(11,16). 이 쿠데타로 즉위한 요아스도 피살되었으며(12,20), 그의 아들 아마샤도 정변으로 희생되었다(14,19). 이렇게 유다 왕국이 이스라엘 왕국의 봉신국이 되면서 발달된 왕권제에 관한 관념이 도입되고, 시리아-팔레스티나의 국제관계 망 속에 흡수되면서 연속된 네 명의 통치자가 정변으로 죽임을 당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또 그를 승계한 아사랴(웃시야)는 「역대기하」 26장 19절에 의하면, 사제들과의 갈등 이후 문둥병자가 되어 평생을 밀실에 갇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어쩌면 궁중암투의 상황을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후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까지 네 명의 통치자는 명껏 왕으로 재임하였지만, 그 이후인 아몬부터 마지막 시드기야까지 6명의 왕중, 여호야김을 제외한 모든 왕이 정변으로 죽거나 전사하거나 제국통치자에 의해 볼모로 끌려가야 했다. 요컨대 선진적 왕권제가 도입된 아하시야부터 마지막 시드기야까지 15명의 왕 중, 네 명을 제외한 모든 통치자가 불의(不意)의 최후를 맞았다.  
    3) 무지랑이 농촌 대중을 가리키거나, 지주 혹은 씨족장 등을 중심으로 하는 농민을 가리킨다.
    4) 「느헤」 7,6; 「에스겔」 12,19.
    5) 「열하」 11,14・18・19・20; 21,20・24; 23,30; 24,14; 「역하」 23,13・20・21; 33,25; 36,1; 「예레」 11,9; 52,25.
    6) 여기서 오해의 여지가 있을까 하여 부연하면, 그달리야는 바벨로니아에 의해 위임된 통치자이지만 그렇다고 그는 식민주의자이고, 이스마엘은 자주파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유다 왕국이 선진화되면서, 왕실은 끊임없이 국제관계 속에서 체제를 해석하면서 발전하였다. 왕국 말기만 하더라도, 정부 내에는 친 아시리아-친 이집트 노선의 세력과 친 바벨로니아 노선의 세력으로 나뉘어 서로 정쟁을 벌였다. 말했듯이 그달리야는 친 바빌로니아 세력이었는데, 아마도 이스마엘은 친 에집트 세력인 듯하다. 한편 고대의 제국들은 점령지역에 봉신국 지도자를 위임했지만, 이들 봉신국 지도자들은 제국에 무조건 충성하는 이들은 아니었다. 그마큼 제국의 영향력은 촘촘하지 못했다. 사실상 봉신국 왕들은 제국에 반기를 들지 않는 한 영토에 대한 거의 자율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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